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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이화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전3권), 교유서가 2020

동학농민혁명사 백년 연구의 집대성

 

 

조성환 趙晟桓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교수 hansowon7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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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는 작년에 타계한 역사학자 이이화(1936~2020)가 50여년 동안의 동학농민혁명 연구를 집대성하여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대작(大作)이자 유작(遺作)이다. 30대부터 동학 연구를 시작했다고 하는 저자는, 여든이 넘은 2018년 봄에 ‘동학농민혁명 통사’ 저술 작업에 착수했다(이병규 「추기」, 1권). 그리고 2019년 11월에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1년 반 만에 대작을 완성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책의 출간은 보지 못했다. 중국의 유학자 주자(朱子)가 죽는 순간까지 『사서집주(四書集註)』의 집필 작업에 몰두했듯이, 역사학자 이이화도 『동학농민혁명사』를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 생애를 바친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토록 동학농민혁명사 서술에 매달렸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저자의 「서문」 마지막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역사는 기억해야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 (…) 동학농민혁명의 진실을 기억해 미래 인권과 통일의 유산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기억을 위해 늙은 역사학자가 독자에게 선사하는 선물이 될 것이다.”(1권 11면)

이 선물 꾸러미에는 자신의 반세기 동안의 연구는 물론이고 1920년대 이래 국내외의 동학농민혁명 연구와 사료가 총망라되어 있다. 아울러 비전문가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이야기체로 쓰여 있다. 그뿐 아니라 저자가 평생 동안 답사하면서 확보한 풍부한 증언들이 활용되고 있다(「서문」). 그래서 평소에 책으로만 동학농민혁명을 공부했던 (필자와 같은) 연구자들로서는 접할 수 없었던 생생함과 현장감을 더한다(다만 어디까지가 증언자료이고 어느 부분이 문헌자료인지에 대한 명시가 없어서, 전문적인 동학연구자들에게는 답답한 감도 없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의 1권은 동학농민혁명의 배경과 1차 봉기를 소개하고, 2권에서는 일본과의 전쟁에 해당하는 2차 봉기를 다루며, 마지막 3권에서는 동학농민혁명 이후를 인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1권의 특징은 동학이 탄생하기 이전의 정치상황 및 동학의 탄생(1860년)에서 원평집회(1893년)에 이르는 동학농민혁명 전사(前史)에 많은 지면이 할애된다는 점이다. 아울러 전봉준이 젊었을 때 정약용의 저술을 읽고 사회개혁의 방책을 모색했다고 소개하면서,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동학농민혁명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고 해석한 부분이 이색적이다(38~41면). 동학농민혁명의 사상적 동력을 동학보다는 실학에서 찾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술은 저자가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을 암시한다. 그것은 ‘영웅 전봉준’이 선봉에 나선 민중혁명사이자 민족저항사로서의 동학농민혁명이다.

그래서 2권부터는 전봉준 장군을 주인공으로 하는 동학농민혁명의 장대한 드라마가 전개된다. 사건의 전개에 대한 서술이 상세하고 전투 장면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여,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어서 3권은 동학농민혁명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분석과,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사업과 기념재단의 활동, 그리고 부록으로 『전봉준공초』의 번역 등이 실려 있다. 특히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 동학농민혁명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어 흥미진진하다(가령 전봉준의 비서 정백현을 비롯하여 보천교의 창시자인 차경석의 아버지 차치구, 그리고 백범 김구와 홍범도 장군, 박정희와 김대중 등등). 이 부분의 서술은 1994년에 저자가 간행한 『발굴 동학농민전쟁: 인물열전』(한겨레신문사)을 보완한 느낌이다. 마찬가지로 1권과 2권의 집필에도 저자의 선행연구인 『민란의 시대: 조선의 마지막 100년』(한겨레출판 2017)이나 『녹두장군 전봉준』(중심 2006) 등이 토대가 되었으리라.

마지막으로 이 책과 유사한 성격의 동학농민혁명 통사를 소개하면서, 이이화 이후를 전망하는 것으로 촌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국내에서 나온 통사로는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간행된 『동학농민혁명 100년』(나남출판 1995)이 대표적이다. 이 책의 특징은 단독저서가 아니라, 전북일보 동학농민혁명 특별취재팀(김은정·문경민·김원용)과 동학연구자들(박명규·박맹수·이진영)의 협업으로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반면에 구성은 동학농민혁명 전사(前史)와 전사(全史), 그리고 ‘동학농민혁명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어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와 체제가 거의 비슷하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의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는 1995년의 『동학농민혁명 100년』의 확장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달리 역사학자 조경달의 『이단의 민중반란: 동학과 갑오농민전쟁 그리고 조선 민중의 내셔널리즘』(1998, 한국어 번역은 박맹수, 역사비평사 2008)은 남접과 북접 사이에 천관(天觀)에 대한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고 양자를 ‘정통동학’과 ‘이단동학’으로 나누며 동학농민혁명의 성격을 개화적 근대와는 다른 “또 하나의 근대”(340면)를 지향한 민중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른바 ‘사상사’적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을 분석한다. 그렇다면 양자를 아울러서 생각해보면 어떻게 될까? 조경달의 주장대로 동학농민혁명에 강한 사상성과 종교성이 작용했다면, 그리고 이이화의 해석대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 3·1혁명을 거쳐 최근의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면(「서문」),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사건’의 바탕에는 어떤 ‘사상’이 흐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사건과 사상은 세계사적 또는 지구사적 맥락과 어떻게 연동되어 있는 것일까? 아마도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이야말로 이이화 이후의 동학농민혁명 통사에 담겨야 할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