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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기태 金起台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somethingkim@gmail.com

 

 

 

보편 교양

 

 

종료령이 울리면 학생들은 교실을 빠르게 떠났다. 곽은 출석부와 태블릿PC, 두세권의 책, 황동 클립으로 묶은 학습지를 상아색 에코백에 넣었다. 두꺼운 직물을 단단히 박음질한 가방이었다. 그걸 구매한 런던의 고서점을 잠시 회상하면 교실이 텅 비었다. 몇몇 책상 위에는 수업 중 배부되었던 학습지가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그것들을 반듯하게 모아 교실 뒤편 분리수거함에 넣을 때면 가정통신문도 앱으로 배부되는 시대인데 자신의 수업은 너무 많은 종이를 소모하지 않나 고민했다.

복도는 이동하는 학생들로 소란스러웠다. 꼭 다음 수업 교실로 향하는 건 아니었다. 친구를 만나려고, 간식을 사 먹으려고, 혹은 그냥 움직이는 게 즐거워서 움직이는 듯 보였다. 곽은 좁은 계단을 내려가다 체육수업을 마치고 올라오는 한 무리의 십대들 사이에 갇히고는 했다. 땀과 열기와 웃음 속에서 곽은 “실례합니다”라고 말하며 가방을 품에 안았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에 나오는 ‘늙은 교수’를 떠올린 날이 있었다. 현실과 괴리된, 정체된, 그래서 화자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고 해설되는 이미지. 그 늙은 교수는 적어도 ‘노-트를 끼고’ 강의에 출석하며 밤마다 육첩방에서 시를 쓰는 성실한 제자를 두었다. 나는 늙지도 않았고 교수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늙지도 않았고’ 부분의 판단은 유보했다.

수년 전 수업시간이었다. 시였는지 소설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수능 대비 교재에 수록된 70년대, 혹은 60년대 작품이었다. 억압적인 권력에 훼손된 개인의 자유를 형상화하며 반성과 실천을 독려하는…… 식의 설명을 마쳤을 때 맨 앞줄 학생이 질문했다.

“선생님도 민주화운동 했어요?”

곽은 학생이 박정희정권 때 무엇을 해보았냐고 묻는 건 아니며, 늦춰 잡아 전두환, 그러니까 80년대쯤을 상상했다고 가정했다. 그 시대에 자신이 한 일이 있다면 하나, ‘태어나는 일’이었다. 곽은 자기가 그렇게 늙어 보이는지, 학생이 근현대사 연표 학습을 게을리한 것인지 잠시 고민했다. 지루한 수업 분위기가 전환되길 기대하며 분유나 기저귀 같은 단어가 포함된 유머로 대답했다. 2종의 주름 개선 화장품을 추가해 피부관리 루틴을 체계화했다. 가끔 혼자 재치있는 대답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독립운동을 했냐고 묻지 그래요?” 같은 말. 미시사를 포함한 세권의 역사서를 읽고 ‘인간이란 자기가 살지 않은 과거는 뭉뚱그리는 관성이 있다’고 메모했다. 세대론은 의심스러운 도구였지만 젊은 사회학자의 저서는 고교생들의 심성 구조를 상상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마흔살이 된 지금, 곽은 ‘동시대’라는 단어에 소유권이 있다면 자신보다는 십대들의 지분이 크다는 걸 납득했다. 교사는 어린 학생들과 생활하며 유치해지기 쉬운 직업이라고들 했다. 퇴행보다는 조로(早老)가 나았다.

생각은 생각이고 시간은 시간이었다. 충분한 연금 수령액에 도달하려면 15년은 더 일해야 했다. 그 연금을 실제로 받으려면 25년이 남아 있었다. 따지자면 곽은 교무실에서는 젊은 축이었다. 대표전화와 가깝고 방문자들에게 등을 보이는 자리. 도서전에서 받은 머그와 저녁 산책을 하다 구입한 스투키 옆에 가방을 내려놓으면 힘이 빠졌다. 밀린 보직 업무를 시작하기 전, 의자에 몸을 묻고 수업을 돌아봤다. 연주하던 기타를 부수거나 관객에게 주먹을 날린 적이 있는 록밴드들의 음악을 한두곡 이어폰으로 들었다. 오아시스가 인터뷰에서 “우리는 예전에 끝났어”라며 위악적으로 남긴 말은 재미있었다. 그걸 이렇게 바꿔서 속으로 읊기도 했다.

‘교육은 예전에 끝났어. 그러니까 엿 같은 월급이나 내놔.’

냉소는 독이었지만 적당히 쓰면 자기연민을 경계하는 데에 유용했다. 머그에는 『노인과 바다』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탕비실에서 향 좋은 커피를 내리며 그 문장이 자신에게 사치라는 걸, 자신은 패배는커녕 파괴되지도 않았다는 걸 분명히 해두었다. 아쉬운 월급이었지만 임금노동자 평균 수입에 비하면 넉넉했다. 법으로 고용을 보장받고 실적의 압박이 없으며 냉난방이 원활한 공간에서 일했다. 자잘한 연수나 업무가 있긴 해도 방학은 방학이었다. 일년에 두달을 쉴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았다. 균형감각, 계급의식, 뭐라고 부르든 견지해야 할 미덕이 있다면 푸념은 자제해야 했다. 게다가 한국은 대다수의 국민이 십년 이상 공교육을 받는 선진국이므로, 명절의 친척집이든 독서모임이든 포털 댓글란이든 모두가 학교와 교사에 대해 나쁜 기억 하나쯤은 있었다. 병원에 가봤다고 의사의 일을, 은행에 가봤다고 은행원의 일을 다 아는 건 아닐 텐데 다들 지나치게 비난한다는 의문이 들기도 했으나, 그만큼 지난 시대 교육이 남긴 상흔이 큰 탓일지도 몰랐다. 곽은 사람들에게 물을 따라주고 냅킨을 건넸으며 겸손하면서도 정직하고 싶어서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교사는 감사한 직업이고, 가끔은 아주 감사한 직업이에요. 학생에게 뭘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면 말예요.”

그래서 하늘이 맑고 바람이 따뜻하고 학생들이 잠드는 5월의 어느날, 곽은 자신이 수업시간에 정치적으로 편향된 내용을 가르쳤다는 민원을 교장으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다소 놀랐다. 분노나 환멸보다 잃어버렸던 무엇을 찾은 듯한 반가움이 먼저였다. 곽은 곤란한 표정의 교장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제가 뭘 가르쳤다고 하던가요?”

 

‘고전읽기’는 올해 처음 개설된 3학년 선택과목이었다.

곽의 또래들만 해도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종일 한 교실 한 자리에서 꼼짝없이 듣는 수업에 익숙했으므로, 곽이 요즘 고등학생들은 수강과목의 절반 이상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면 다들 신기해했다. 선택권을 주는 척만 하고 학교가 행정편의에 맞춰 배정했던 과거와도 달랐다. ‘학생이 주체적으로 진로를 설계해 각자의 적성과 흥미를 계발하도록 수요자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할 것.’ 그런 문장이 밑줄로 강조된 각종 지침과 사업안내가 문서함에 끊임없이 하달되었다. 대입종합전형에서도 자기주도성, 전공적합성 같은 평가요소가 부상한 지 오래였다. 학생이 무슨 과목을 택했는지에서부터 가늠되는 자질이었다. 있는 꿈도 없는 듯 주머니에 쑤셔넣고 문제집을 푸는 게 과거의 입시라면, 없는 꿈도 있는 듯 만들어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지금의 입시였다. 곽은 경쟁은 여전히 경쟁이며 선택은 기만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 주체가 자신의 결정에 따라 배우고 성장할 가능성이 마련되긴 했다는, 그런 원론적인 차원에서 새 교육정책을 얼마간 환영했다.

심리학, 여행지리, 영상제작의 이해, 세계문제와 미래사회…… 선택과목 안내서를 보다보면 학생들이 부럽기도 했다. 수능 문제집이 가득한 바구니를 책상 옆에 두고 기계처럼 정답과 오답을 솎아냈던 고교 시절을 돌아봤다. 순수할 정도로 반복적인 문제풀이도 나름의 근육을 남겼고, 드물게는 정서적 안정까지 제공했으므로 그 시절을 완전히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졸업할 때까지 관심 분야의 책 한권 편히 읽지 못하는 걸 ‘공부’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동료들이 난색을 표했던 과목인 고전읽기에 곽이 자원한 건, 그 ‘공부’를 학생들과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고전읽기의 ‘고전’은 「관동별곡」처럼 수능에 나올 법한 고전문학을 지시하는 게 아니었다. 동서고금의 명저 모두를 뜻했다. 곽은 ‘지문’이 아니라 ‘책’을 다루고 싶었다. 객관식 문제를 내기 위해 토막 낸 소설이나 논문을 도식화하는 데에 학생들만큼이나 지쳐 있었던 것이다.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보편적인 교양과 바람직한 인성을 형성하며, 학문이나 직업활동에 필요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고, 읽기는 물론 말하기와 글쓰기 등 통합적인 국어 능력의 향상을 꾀한다.’

그런 과목 취지와 성취 기준만이 존재할 뿐 교과서도 개발되지 않은 과목이었다. ‘고전을 통해 자아와 세계를 이해한다’ 식의 추상적 기준에 뼈와 살을 부여해야 하는 건 담당교사의 몫이었다. 부담이 크다는 뜻이었지만 곽은 그 부담을 어떤 가능성으로 받아들였다. 새 학기를 앞둔 겨울방학을 수업준비로 보냈다. 출근은 하지 않았지만 베이글에 바질페스토를 바르는 아침부터 씽잉볼을 문지르고 잠자리에 드는 밤까지 스스로 묻고 답하며 수업의 얼개를 정리했다.

첫째, 인류의 지성사와 예술사에서 고유의 좌표를 차지하는 열권 내외의 도서를 선정한다. 핵심내용과 의의를 각각 3차시 내외의 강의와 학습지로 소개한다. 이러한 추천과 해설은 일종의 정전(正典)주의를 강화할 위험이 있으나 독서 경험이 얕은 학생들에게는 비계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학생들은 지망 전공이나 개인적 호기심에 따라 자유롭게 한권의 도서를 택해 읽는다. 추천도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실제로 책을 읽으며 꾸준히 독서록을 쓰는 시간을 마련한다. 2차 저작을 고를 수도 있고 발췌독을 해도 무방하다. 제한적으로 이해하더라도 온전한 책을 손에 쥐는 경험은 유의미하다.

셋째, 최종적으로 학생들은 읽은 책을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담은 한편의 글을 쓴다. 주제 탐색부터 개요 조직, 집필과 공유와 퇴고까지 지원한다. 학습이란 입력뿐 아니라 출력도 포함하며,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오래 널리 읽힌 저작의 권위를 빌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의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전하기 위해 인용한다면 더 훌륭하다.

먼저 추천도서를 선정해야 했다. 곽은 현대문학 석사일 뿐인 자신의 독서 이력이 불충분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수학교사가 인공지능을, 윤리교사가 심리학을 담당하는 일도 흔해지고 있었다. 새 시대에 학생들이 요구받는 새 자질이 있다면 교사도 부담해야 할 몫이 있는 게 당연했다. 곽은 스스로를 고전읽기 수업의 첫 수강생으로 여겼다. 공립도서관에 출입했고 3층 창가의 채광이 공부하기에 좋다는 걸 발견했다. 수업에서 쓰지 않더라도 물질적이고도 정신적인 자산으로 남을 것이므로 삼십여만원어치의 도서를 사비로 구입해 집에서도 읽었다. 그중 두권은 겨울휴가로 명명한 5박 6일의 싱가포르 여행에 동행했다. 새 과목에서 새 학생들과 읽을 책을 고르는 일이 마치 여행을 앞두고 차에서 들을 플레이리스트를 편집하듯 즐거웠다. 학생들이 각자의 진로희망과 연관되는 책을 한권쯤은 발견할 수 있도록 인문계, 사회계, 상경계, 예능계, 그리고 자연과학계까지 고루 배분해야 했다. 대입만을 위한 수업은 아니므로 학제 구분을 넘어 귀를 기울여볼 만한 책들도 포함해야 했다. 너무 두껍거나 어려워서 손도 대지 못할 정도는 아니어야 했는데, 그런 이유로 배제하기에 어떤 책들은 의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발췌역 문고판으로라도 다루기로 했다.

겨울방학의 절반이 지났을 무렵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밀의 『자유론』으로 시작해서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로 끝나는 열한권의 목록을 작성했다. 고르고 보니 『논어』를 빼면 전부 백인 남성들의 저작이었다.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카슨의 『침묵의 봄』으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네루의 『세계사 편력』으로 바꾸었다. 학습지와 PPT 슬라이드를 만들고 미디어 자료를 찾았다. 미리 받아둔 예산으로 전용 교실에 새 책장을 집어넣고 추천도서 다섯권씩을 비롯하여 연계도서까지 백여권을 채웠다. 큐레이션 메모를 컬러로 출력해 코팅해서 붙였다. 학생들이 서점이나 도서관에 갈 필요 없이 손만 뻗으면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했다. 차분한 암녹색과 진회색으로 교실을 칠하고 타탄체크 커튼을 구매했다. 개학 전날 빈 교실에서 커튼에 핀을 꽂고 있을 때 지나가던 동료가 “정성이네, 정성이야” 하며 거들었다. 곽은 의자에 올라가 커튼을 달며 말했다.

“어때요? 막 책을 읽고 싶어지는 분위기 아니에요?”

3월 첫 수업. 곽은 아끼는 네이비색 재킷을 입었다. 한번 접은 소매로 살짝 보이는 블루 스트라이프의 안감이 젊고 시원한 인상을 주길 기대했다. 교실에 들어서며 대다수 학생이 노트 한권 펜 한자루 없이 나타났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불길한 암시로 해석하지 않았다. 선입견을 경계해야 했다. 고전에 담긴 지혜와 아름다움은 닫힌 마음에 스며들 수 없었다. 그러한 조건을 곽 자신도 공평히 수용했다. 수강생들의 성적 자료도 열람하지 않았으며, 담임교사에게 평판을 묻지도 않았다. ‘학생’으로 통칭하며 ‘성적’이라는 가치로 파악하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비판한 동일성 원리란 학교에서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곽은 한명 한명의 개별성을 포착하기 위해 수강생이 스스로 자신에 대해 기술할 수 있는 양식을 나누어주었다. 수강신청 동기와 희망 진로, 관심 주제를 포함하여 일곱개의 물음을 담았고, 물론 자유롭게 전하고 싶은 말을 쓰는 칸도 있었다. 대단치 않은 양식이었지만 곽은 그걸 ‘작은 노력’이라 불러보기로 했다.

동료들은 이미 퇴근한 저녁. 곽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자신의 책상을 밝힐 만큼의 형광등만 두고 나머지는 껐다. 머그에 따뜻한 홍차를 우리며 ‘작은 노력’을 천천히 넘겨 보았다. 대다수는…… 빈칸이었다.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자기기술도 연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동안 교육과정에서 자기표현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방증일 수도 있었다. 적절한 빛깔로 우러난 홍차에서 티백을 빼고 한모금을 마셨다. 수강 동기를 묻는 질문에는 ‘미적분이나 영어는 싫고 그나마 국어라서’라는 답변이 다수였다. 곽은 교육과정표를 꺼내봤고 맹점을 발견했다. 졸업요건을 채우기 위해 과목을 조합하다보면 3학년 때 ‘미적분’과 ‘진로영어’, 그리고 ‘고전읽기’를 저울질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학업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은 이공계 진학을 선호하는 분위기라 대개 미적분으로 모였을 것이다. 대학 학과명에 ‘글로벌’이 붙은 지 오래였고, 근래에는 ‘세계시민’ 같은 키워드도 인기이므로 인문사회계 진학 희망자들에게는 ‘진로영어’가 유망해 보일 수 있었다. 즉 ‘고전읽기’에는, 고전을 읽고 싶다기보다 다른 걸 하기 싫은 학생들이 모이기 쉬웠다. 희망 진로 또는 지망 전공을 밝히는 칸에 내심 기대했던 문학이나 사회학은 한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다. 뷰티매니저, 게임 크리에이터, 실용음악 보컬…… 절반 이상은 ‘모름’이거나 빈칸이었다. 독서 욕구나 이해력을 지레짐작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고전읽기는 일하고 사랑하고 꿈꾸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보편적 교양을 담은 수업이어야 했다. 그날 밤 곽은 사철제본되어 펼침이 좋은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수업 첫날의 수강생은 교사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수업 마지막 날의 수강생은 교사의 책임이다.’

3월이 지나며 곽은 수업 중에 창밖을 자주 보게 되었다.

교실은 실명 공간이며 모두가 독자적 인격이라는 의미에서 매시간 출석을 부르려 했으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곽이 교실에 들어서는 시점에 이미 절반은 엎드려 자고 있었다. 노트를 가져온 학생보다 베개를 가져온 학생이 더 많았다. “일어납시다”라고 한들 한두명이 부스스 몸을 일으킬 뿐, 대개 깊은 잠에 빠져 이름을 불러도 듣지 못했다. 다가가서 깨우면 찌뿌둥한 얼굴로 겨우 깨어났다가 곽이 돌아서면 다시 엎드렸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활기찬 음악을 틀어보기도 했으나 그런 꼼수도 두어번이 한계였다. 유머러스한 사례나 시각자료도 수면 앞에서는 쓸모가 없었다. 곽은 아무리 훌륭한 스탠드업 코미디언도 자는 관객을 웃길 수는 없다는 비유를 생각해냈다. 지적 호기심은커녕 생에 호기심을 잃은 듯한 학생들을 깨우다 지친 날. 사실 주체성이란 드문 자질이 아닌지,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영위하려는 꿈과 끼가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믿음은 미신이 아닌지 의심했다. “인간은 굴종을 원해” 운운했던 영화 속 파시스트 악당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그런 의심을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 한번은 종료령도 듣지 못하고 잠든 채 교실에 남아 있는 학생을 흔들어 깨웠다. 새벽까지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봤을 거라 짐작하며 어제 무엇을 했길래 이렇게 자냐고 물었다. 학생은 짜증 내는 기색 없이 입가의 침을 훔치며 겸연쩍게 말했다.

“늦게까지 배달을 해서…… 죄송합니다.”

사연을 물을지 고민하는 곽을 두고 학생은 목덜미를 긁으며 베개를 들고 교실을 떠났다. 곽은 스무살도 안 된 아이를 밤마다 거리로 내모는 사회가 새삼 무서웠다. 각자의 삶에서 이 수업이란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차라리 50분의 숙면이 더 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을 교실에 가두는 것은 어른들의 욕심이 아닐까. 엎드린 이 학생, 그리고 저 학생도, 억압적인 제도교육에 대하여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에 나오는 바틀비처럼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그러니까 잠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아닐까.

깨어 있는 학생들 중 다수도 수업을 외면했다. 고전읽기는 수능 과목이 아니었다. 절대평가 과목이라 상당수의 대학은 내신 성적에 산입하지도 않았다. 담당교사가 기술하는 특기사항은 종합전형에 지원하지 않는다면 필요가 없었다. 맨 앞에 앉아서 이어폰을 꽂고 ‘확률과 통계’ 문제집을 풀고 있는 학생을 제지할 수 없었다. 당사자에게는 긴급한 과제임을 곽도 이해했다. 물론 수업에서 소개하는 고전에 귀를 기울이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뛰어난 성취와 풍요로운 삶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학생의 문제집 아래 깔린 학습지에 곽 스스로 적어둔 것이 있었다. ‘밀은 『자유론』에서 개인의 행동이 설사 그 자신의 이익과 상충되는 듯 보이더라도, 그러할 자유를 보장하는 게 포괄적 공리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좋은 수업이란 훌륭한 예술품들이 그러하듯 내용과 형식이 일치해야 했다. 물론 충분히 이성적이지 못한 미성년자들의 자유는 제한할 수 있다는 구절도 기억났으나, 밀이 같은 논리로 당시 식민지인들에 대한 지배도 정당화했다는 점에 주의해야 했다. 3월이 끝나갈 무렵 곽은 주체, 타자, 대상화, 전유, 포섭, 폭력 같은 단어들이 섞인 일기를 이렇게 끝맺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나의 식민지가 아니다.’

4월이 되자 완연히 따뜻해진 날씨에 꽃나무들이 만개했다. 고전읽기 교실은 2층이라 창밖으로 손을 뻗으면 하얗고 부드러운 꽃잎들을 손으로 만질 수도 있을 듯했다. 교실 안으로 고개를 돌리면 엎드려 자거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다른 과목 문제집을 풀고 있는 학생들이 한가득 보였다. 곽은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감사하려고 했다. 네다섯은 곽의 설명을 듣고 텍스트를 읽고 학습지를 쓰고 있었으며 이따금 웃어주기도 했다. 은재도 그중 한명이었다. 철학이나 사회학 전공을 고려하고 있다고, ‘수업 재미있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라고 정돈된 글씨체로 썼던 은재. 그렇다고 평가를 계산하며 요란하게 열심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단지 허리를 펴고 수업을 듣다가 종종 무언가를 끄적거리며 초연하게 앉아 있던 은재. 덕분에 창밖으로 뛰어내리지 않았다고 농담을 건네며 나중에 악수라도 하고 싶었던 은재.

민원을 넣은 건 은재의 아버지였다. 은재가 맑스를 읽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본론』은 수업에서 소개하는 열한권의 추천도서 중 하나였다.

 

“그 집 아버지가 교양 없이 막 그런 사람 같진 않고……”

교장의 말에 따르면 은재의 아버지가 우악스럽게 항의한 건 아니었다. 구체적인 요구도 없었다. ‘걱정된다’는 의견을 전했을 뿐이지만, 대응에 따라서 문제가 커질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게 교장의 입장이었다. 교장은 그간 곽의 성실한 근태와 안정적인 수업 운영을 몇마디 치하한 뒤 조언했다. 삿되게 호들갑을 떠는 학부모에게는 비위를 맞춰주면 쉽게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 오히려 점잖은 쪽이 위험하다. 그런 치들은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선택할 수 있는 다음 패를 지니고 있으며, 거기에는 법과 제도, 언론의 힘도 포함된다.

“자기 전교조는 아니더라고?”

그 말을 듣고 곽은 조합에 가입해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민원으로부터 보호받으려면 조직이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전교조와 교총 등 모든 교원조직 가입을 거절했던 이유를 돌아보고 있을 때 교장이 말을 이었다.

“다행이네. 전교조 교사, 수업 중 맑스 읽혀. 이런 기사라도 나봐. 작살난다.”

기사에 달릴 댓글이 눈에 선했다. 전교조가 사상교육으로 학생들을 세뇌하며 공교육의 저반을 흔들고 있다…… 노동조합에 대한 몰이해는 차치하고, 곽이 가늠할 때 조합에는 그런 영향력이 남아 있지도 않았다. 학생들이 들어줘야 세뇌를 하고, 조합원이 존재해야 저반을 흔들 것 아닌가. 전교조를 한국교육에 암약하는 간첩 집단 취급하는 세계관은 황당하다 못해 순진해 보였다. 하지만 광범위하게 실재하는 편견이기도 했다. 통제할 수 없는 채널과 연루되면 진의가 왜곡될 수도 있었다. 전교조가 내세우는 의제 중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려운 것도 있었고, 그건 다른 조직도 마찬가지였다. 문제 틀을 정확히 조각하기 위해서는 혼자 맞서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맞서다’라는 단어를 떠올린 자신에게 조금 놀랐다.

곽은 그 낯설고 활기찬 감정에 반항심이라는 이름을 붙여보았다. 명백한 수업권 침해였다. 수강생들이 수업을 외면할 수는 있지만, 누가 자신에게 무엇을 가르치거나 가르치지 말라고 지시할 수는 없었다. 이 민원은 나의 불가침한 권리를 파괴하려는 시도 아닌가. 게다가 학생이 까다로운 『자본론』에 관심을 보였다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보호하고 독려해야 할 지적 호기심이 있지 않나. 자신은 물론 학생의 권리를, 나아가 ‘사상의 자유’를 위협하는 민원이라 생각하자 반항심을 더 정당하다 여길 수 있었다. 삶에서 한번은 맞닥뜨릴 거라 예감한, 파괴될지언정 패배해서는 안 되는 시험이 먼 길을 돌아 눈앞에 나타난 듯했다.

잘 수습하겠다고 말은 하고 교장실을 나왔지만, 물러서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북돋았다. ‘투쟁’이란 단어가 떠올랐고 조금이라도 비슷한 경험을 돌아보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대학 신입생 시절 등록금 동결을 요구하는 집회에 동원되었던 적이 있었다. 한낮의 태양이 뜨거웠고 구호를 따라 하기가 어색해 입을 벙긋거렸다는 기억이 전부였다. 머리띠를 매고 팔뚝질을 하거나,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하는 자신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말과 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이곳에 더 적합한 방식이 있을 듯했다. 사실관계를 검토하고 논리를 구축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자본론』의 역사적 의의는 분명했다. ‘개인적으로……’ 같은 비겁한 서두도 불필요했다. 소개할 도서를 선정하며 초기에 한 자리를 할당한 저작이었다. 특별한 애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대학 시절 드물게 맑스 읽기 모임이 있었지만, 학생회관 으슥한 곳에 녹슨 명패를 달고 있는 학회들을 일부러 찾아갈 이유는 없었다.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규정한 적도 없었다. 도리어 수업을 위해 맑스를 급속으로 공부했다고 말하는 편이 정직했다. 학생들에게도 밝혀뒀지만, 곽은 『자본론』을 완독하지도 않았다. 제1권을 도서관에서 빌려 1장과 7장, 12장을 발췌해서 읽었을 뿐이었다. 단지 소개하기 위해 통독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입문서로 통용되는 2차 저작 두권을 속독하고 교수 요소를 추출했다. 수업 목표는 소박했다.

첫째, 저술 배경. 초기 자본주의의 혹독한 노동환경을 가늠하기.

둘째, 핵심내용. 잉여가치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개략적으로 이해하기.

셋째, 의의와 한계. 어떤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져 무엇을 남겼는지 살펴보기.

인터넷 백과사전 수준 이상은 아닌, 두장의 학습지로 진행한 두시간의 수업과, 이해를 돕기 위해 약 30분간 시청한 EBS 다큐멘터리가 전부였다. 곽은 『자본론』이 특정한 정치적 실천을 요구하는 저작이기에 앞서 자본주의의 탄생과 운동법칙을 연구한 학술서라는 점을 강조했다.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은 맑스 경제학보다 풍부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학습지의 말미에 으레 들어가는 ‘생각해보기’ 항목에 이렇게 적어둔 게 문제가 될 수 있을까.

“자본주의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종적인 형태의 경제체제일까? 아니면 다른 미래가 있을까?”

가능한 질문이었다. 가능하다 못해 상투적인 질문이었다. 곽은 그 질문을 이해시키기 위해 이런 예를 덧붙였었다.

“지금으로서는 자본주의 이외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삼백년 전 저잣거리에서 어떤 노비가 이렇게 말했다고 칩시다. 언젠가 양반 상놈 구분 없이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고. 그럼 옆에서 다른 노비가, 헛소리하지 말고 짚신이나 만들라고 했겠죠? 지금 어떻게 됐지요?”

두명쯤은 웃었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지금도 정말 평등한 세상이라고 말하긴 어려우므로 허술한 비유였다. 자신이 맑스와 『자본론』에 옹호적인 태도였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에 스스로 가치를 믿는 저작만 골랐으므로 당연했다. 왜 맑스만 문제가 되나. 맑스를 읽고 사회주의자가 되는 게 공자를 읽고 유교 원리주의자가 되는 것보다 위험한가. 따지자면 추천도서 중에서 까뮈의 『이방인』이 제일 위험하지 않나. 학생이 자기 어머니의 기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대낮의 태양에 눈이 부셔서 아랍인을 총으로 쏠지도 모르니까.

곽은 은재가 어떤 동기로 맑스를 읽고 있으며 아버지와 무슨 대화를 했는지 파악하기로 했다. 학습 주체로서 은재도 현재의 상황을 인지하고 원하는 바를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종례 후 교정 한편의 벤치에 은재와 앉았다. 둘만의 대화는 처음이었다.

“읽어보고 싶어서요.”

은재는 아버지가 전화까지 했다는 사실에는 조금 놀랐지만 어려워하지 않고 말했다. 2학년 ‘사회문화’ 과목에서 맑스와 베버를 배우며 관심이 생겼는데, 3학년이 되고 마침 고전읽기에서 기회가 생겨 『자본론』의 문고판과 2차 저작을 읽고 있다, 『공산당 선언』은 얇아서 완역본을 읽을 계획이다…… 평범한, 아니 모범적인 대답이었다. 과목 간 연계 학습이 이루어진 사례로 발표도 할 법했다. 고전읽기가 아니더라도 공인된 교육과정에 맑스가 등장한다는 게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이라는 걸 곽이 헤아리고 있을 때, 은재가 말했다.

“그리고…… 선생님 좀 진심이신 것 같았거든요.”

“내가? 수업에 아니면 맑스에?”

“둘 다요.”

은재는 맑스를 주제로 기말과제를 계속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사업만 하셔서 잘 모르고 성급히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해결할 테니 괜히 신경 쓰시지 말라며, 죄송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맑스를 공부하다보면 다시 마주칠 수 있는 편견이므로, 은재 스스로 넘어서보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애가 빨간 물이 제대로 들었다’며 혀를 차는 완고한 장년 남성이 아른거렸다. 은재에게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며 만약 어려움이 있을 경우 꼭 연락을 하라고 당부했다. 필요하다면 아버님과 직접 통화를 하겠다고 주지시켰다. 은재는 해사한 미소를 남긴 뒤 요즘은 보기 드문 커다랗고 무거운 가방을 등에 메고 떠났다. 작은 체구의 은재를 땅으로 끌어내리는 듯 보여서, 곽은 대신 들어주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날도 다음 날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소문이 벌써 퍼졌는지 말을 얹는 동료들이 있었다. 짐작을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은재는 성적이 뛰어난 모양이었다. 전교에서 세 손가락에 들어서 서울대 추천을 두고 다툴 정도는 아니고, 유난스럽게 교사들을 따라다니는 유형도 아니어서 존재감이 약했을 뿐, 3학년 부장의 ‘관리 목록’에는 포함되었던 것이다.

“생기부에 사회주의 같은 거 적어도 괜찮을까? 사정관이 어떻게 볼지 모르잖아.”

맑스 읽었다고 떨어뜨릴 대학이면 안 가는 게 낫다고 대답했지만, 다른 의미로 걱정이 되긴 했다. 종합전형에서는 모든 생기부 기재 내용을 총체적으로 평가했다. 붙고 떨어진 요인을 콕 집어 따지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사후에 입시 사례를 분석하다보면 합격 요인과 불합격 요인을 지목할 수밖에 없었다. 말 많은 동료들이 “요새 최상위권 애들이 맑스를 교과활동에 쓰나? 괴델, 콰인, 그런 거 많이 갖고 오던데” 식으로 얘기하면 불안해졌다. 곽은 단순한 문답을 되새겼다. 학생이 맑스를 공부하길 원하는가? 그렇다. 맑스는 공부할 가치가 있는가? 그렇다.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은재는 전과 마찬가지로 평범히 수업을 들었지만 곽은 은재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올 거라는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전화를 기다리다 못해 기대하게 됐다. 정중하면서도 비굴하지 않은 인사말을 상상했다. ‘아이고 아버님’ 같은 실없는 넉살로 시작하진 않으리라 다짐했다. ‘은재가 훌륭한 학생이라서 아버님은 어떤 분이실지 궁금했는데요’ 정도면 적절할 듯했다. 맑스의 의의를 증빙하는 정보들도 수집했다. 영국 공영방송의 설문에 따르면 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한 사상가 1위, 맑스. 지난 1000년간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 1위, 『자본론』. 한국 교수들이 뽑은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 1위, 역시 『자본론』. 서울대학교 권장도서에도 포함되어 있으며, ‘경제’ ‘세계사’ ‘사회문화’ ‘윤리와 사상’의 교육부 인정 교과서에서도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전국연합학력평가 및 수능 연계 교재에도 지문으로 등장한 적 있는 맑스. 이런 정보들은 맑스를 공부하는 게 전혀 위험하지 않음을 지시했다. 자신이 맑스를 긍정하려는 것인지 부정하려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소구 대상을 고려할 때 유효한 정보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전화는 민원으로부터 열흘 뒤, 수업은 끝났지만 근무시간은 남겨둔 때에 왔다. 곽은 은재 아버지가 세심히 때를 골랐을 거라고 짐작했다.

“학생들 가르치시느라 늘 고생이 많으십니다. 은재가 선생님 수업을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상상보다는 덜 점잖은, 어딘가 영업사원같이 사근거리는 어조였다. 곽은 해명해야 할 잘못이 없으므로 조급해할 이유도 없다는 점을 상기하면서도, 전개에 따라 필요할 수도 있는 논리들을 정렬했다. 하지만 어떤 카드도 꺼내기 전에 통화는 종료되었다. 은재 아버지가 “저 때 생각만 하다가 지레 걱정을” 했다며, “다망하실 텐데 신경 쓰이게 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한 것이다. 앞으로도 좋은 수업 부탁드린다는 그의 말에, 곽도 은재에게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싱겁지만 훈훈한 통화였다. 곽은 아버지와 대화하는 은재를 상상했다. 은재는 주어진 과제를 준수하게 수행하는 것을 넘어서, 과제 자체의 의의를 스스로 판단하고 주장하고 설득할 수 있구나. 그런 메타 인지 능력은 정량적 학업성취도가 높은 학생 중에서도 ‘진짜’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희소한 자질이었다. 곽은 은재가 자신의 수업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모처럼 보람을 느꼈다.

‘진심인 것 같았다’는 은재의 말을 곱씹으며 곽은 점점 진심이 됐다. 남은 추천도서들을 다시 펼쳐봤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며 애정을 느꼈다. 해설을 더 정확한 문장으로 다듬었고 학생들의 경험적 삶과 고전의 의의가 맞닿는 사례를 찾으려 노력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소개하는 시간. 곽은 럭키의 황당한 독백을 읽다가 웃음을 터트렸고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마지막 지문에서는 목이 메어 말을 더듬었다.

“여러분도 늘 무언가를 기다리지 않았나요. 하교를 기다리고, 방학을 기다리고, 졸업과 합격을 기다리고, 성인이 되기를 기다리고…… 졸업하고 합격하고 성인이 되면 기다림은 끝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물론 그 말을 들은 학생은 은재를 비롯한 세네명뿐이었다. 스무명은 엎드려 자고, 다섯명은 이어폰을 꽂고 인터넷강의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곽은 아무 제재도 하지 않았으며 모멸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수업을 듣지 않는 게, 혹은 어떠한 학교 교육에도 참여하지 않는 게 부와 권력만을 추종하고 소수자를 배척하며 환경을 파괴하는 불량배로 성장할 거라는 뜻은 아니었다. 노동착취에 시달리며 형벌 같은 생존을 이어가지만 어떤 비판의식도 벼릴 수 없는 죄수가 된다는 뜻도 아니었다. 아무도 예단할 권리는 없었다. 학교에서 잘 배워야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믿음은, 제도교육에서 ‘모범적인’ 성취를 얻어서 삶의 기반을 마련한 자신 같은 교사들의 고정관념이었다. 공교육이란 중산층의 아비투스를 재생산하고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필연적으로 보수적인 국가 장치 아닌가. 바른 자세로 수업을 경청하라는 지도는 규율화된 신체를 양산해 사회적 유용성을 극대화하려는 학교-감옥의 통치술일지도 몰랐다. 곽은 일리치, 부르디외, 푸꼬 등을 헤아리며 엎드린 학생들의 뒤통수를 애정 어린 눈으로 보았다. 학생들이 버리고 간 학습지의 빈칸에 숨은, 자신이 모르는 언어로 된 가지각색의 목소리들을 상상했다.

은재가 기말과제로 제출한 글은 이렇게 시작했다.

“사람들은 흔히 사회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서 실패했다고 말한다. 인간이란 다른 인간보다 더 많은 것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싶어하며, 그러한 동기가 없다면 나태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 그렇게 쉽게 단정 지어질 수 있다면 학교에서 배우는 온갖 사상이나 주의, 문학작품은 다 무의미할 것이다……”

그 글은 맑스와 사회주의에 대한 흔한 편견, 결과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균등분배하려고 했다는 등의 곡해를 지적하며 오늘날 자본주의의 병폐를 성찰하고 대안적 체제를 모색하는 데에 여전히 맑스가 유효함을 주장했다. 생태와 젠더 등 동시대적 화두에 대해 맑스의 유산에서 활로를 찾는 움직임을 소개하기도 했다. 엄정한 논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학술적 에세이였지만 주제는 선명하고 내용은 풍부했으며, 구성도 문장도 안정적이었다. 무언가를 읽었고, 의견을 생성했으며, 그것을 설득력있게 표현해낸 것이다. 수업의 목표를 완벽히 달성한 과제물이었다.

곽은 은재의 생기부에 교과 담당교사로서 최선의 기록을 남겨주고 싶었다. 바른 자세로 수업을 경청하여 급우들에게 귀감이 되고…… 그런 상투적 상찬이 유효한 시대가 아니었다. 곽은 은재가 제출한 모든 학습지와 독서록을 다시 검토했다. 독서 이력과 습득 개념과 적용 사례, 최종 산출물의 탐구 목적과 방법, 수행 수준, 그 과정에서 드러난 협력적 학습 태도까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맑스’와 ‘자본론’이라는 고유명사를 똑똑히 박아넣었다. 주관적 평가는 말미에 간결하지만 선명하게 남겼다. ‘……지적 탐구심, 비판적 사고력, 논리적 표현 능력 등 모든 면에서 동료 학습자 중 최고 수준의 학업 역량을 갖추었음.’

수험이 임박한 가을부터는 수능 과목이 아니면 자습으로 운영하는 게 암묵적인 합의였다. 수시 원서 작성이나 면접 스터디를 위해 어수선하게 움직이는 학생들, 또는 꼼짝없이 앉아 문제집을 풀며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물론 입시지옥이란 입시에 목을 매는 경우에만 지옥이므로, 다수는 여전히 잠을 자거나 게임을 했고, 아예 학교에 오지 않는 학생들도 많았다. 곽은 모두 각자의 스무살을 향해 나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여기며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다가올 무렵, 은재가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년 동안 전교 1등 한명만을 추천전형으로 간신히 서울대에 보냈는데, 모처럼 은재까지 합격생이 두명이 되어 교무실이 떠들썩해졌다. 추천이 아니라 일반전형으로 합격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1학년 때부터 은재가 참여한 수업, 동아리, 교내 프로그램들이 합격 요인으로 검토되며 고전읽기 수업도 재조명되었다. 민원 사건은 은재가 교내에서 입방아에 올랐던 최근의, 어쩌면 유일한 사건이었으므로 동료들은 지나가며 한마디씩 곽을 추켜세웠다.

“이제 애들 다 『공산당 선언』 읽히고, 머리에 빨간 띠도 매줘야 되는 거 아냐? 하하하.”

3학년 부장은 호탕하게 웃었다. 교내 독서 인증 프로그램의 공식 추천도서 목록이 업데이트되며 『자본론』의 2차 저작 한권과 맑스 평전 한권이 추가되었다. 연구부장의 부탁으로 곽은 교내 전교원 연수에서 ‘전공별 심화독서 플랫폼 과목으로서의 고전읽기’라는 제목으로 15분 분량의 발표를 했다. 담임교사들이 우수한 학생에게 고전읽기 선택을 더 권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한편으로 곽은 모든 호들갑에 거리를 두고 싶었다. 여전히 ‘서울대 몇명 보냈는지’로만 학교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역사회나 거기에 휘둘리는 관리자들에게 동조할 수 없었다. 은재는 읽고 생각하고 쓸 수 있었다. 인류의 정신적 유산을 흡수하며 성장할 수 있는 ‘지성’을 갖고 있었다. 곽은 자신이 알아본 은재의 역량을 대학에서도 알아보았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도, 진정 귀한 것은 지성 그 자체이며 그에 비하면 대학 합격증은 일종의 운전면허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새파란 하늘에 산뜻한 햇살이 빛나는 졸업식 날. 곽은 소란함을 피해 고전읽기 교실로 향했다. 커튼을 걷어 침침한 실내를 밝혔다. 겨울 오전 10시의 햇살과 부유하는 먼지와 가만히 놓여 있는 서른개의 책걸상. 비밀스러운 숲이 그러하듯, 찾아올 누구를 기다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평화로운 풍경.

신청자가 늘어나 새 학기에는 두개 반이 편성될 예정이었다. 곽은 교실을 쓸고 닦고 유명 서점에서 출시한 디퓨저를 비치했다. 대문호들의 초상을 작은 흑단나무 액자에 넣어 벽에 걸었다. 물러나서 보다가 문학적 위상을 고려해 서너번 위치를 바꿔 걸었다. 창밖 교정에서 졸업을 만끽하는 웃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새로 주문한 도서로 가득한 상자를 열었다. 저작 자체의 성격과 수업에서의 용도를 고려해 책장에 배치해야 했다. 노크 소리가 나고 미닫이문이 천천히 열렸다. 교복을 단정히 입은 은재가 혼자 들어섰다.

“잠깐 도와줄래?”

곽은 은재와 함께 도서를 정리했다. 『도련님』은 우측 중단에, 『수레바퀴 아래서』는 중앙 상단에,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트롤리에 두고 『시민의 불복종』은 좌측 하단에, 『노인과 바다』는…… 자신의 손에서 은재의 손으로, 은재의 손에서 자신의 손으로 건네지는, 함부로 펼친 적 없는 새 책들의 반듯함. 축하의 말과 감사의 말. 요즘 어떻게 보내느냐는 물음에 은재는 맑스의 초기 저작부터 순서대로 읽고 있다며,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의 마지막 문장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곽은 그 문헌을 읽지 않았지만 마지막 문장은 알고 있었으므로 공감을 표했다. 이제는 해프닝이 된 민원전화를 돌아봤다. 그때 아버님이랑 대화를 잘해서 다행이라고, 어떻게 말씀드렸던 건지를 물었다.

“컨설턴트 선생님이 아버지께 전화드렸어요. 맑스 전혀 문제없고 고전읽기 수업도 괜찮다고. 아버지도 좀 물어보고 전화를 하시지.”

은재가 가방에서 네모난 상자를 꺼내어 곽에게 건넸다. 소수의 수집가들을 위해 공들여 만든 양장본처럼 섬세하면서도 단단한 상자였다. 가름끈을 연상시키는 리본 장식 아래에 백화점에서 몇번 지나쳤던 고급 빠띠세리의 이름이 각인돼 있었다. 은재는 별건 아니지만 성의로 받아달라고, 또 찾아뵙겠다며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떠났다. 곽은 빈 교실에서 상자를 열었다. 작고 예쁜, 틀림없이 달콤할 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동봉된 카드에는 고교 생활 중 선생님의 고전읽기 수업이 가장 즐거웠다고 반듯한 필체로 써 있었다.

창밖에서 “하나, 둘”이라거나 “한번 더”처럼 한 무리의 학생들이 단체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렸다. 곽은 상자 속에 있던 피낭시에, 혹은 다쿠아즈나 비스코띠일 수도 있는, 유럽 어느 언어로 된 이름이 분명한 디저트를 하나 입에 넣었다. 역시 달콤했다. 경박한 단맛이 아니라 깊이가 있고 구조가 있는, 하지만 묘사해보려고 하면 이미 여운만 남기고 사라져서 어쩐지 조금 외로워지는 달콤함. 사람을 전혀 파괴하지 않고도 패배시킬 수 있는 달콤함.

곽은 한발 물러나 조금 전 정리한 책장을 봤다. 벽면을 가득 채운 동서고금의 명저들. 유서 깊은 출판사가 기획하고 석학들이 감수한 지식교양총서와 세계문학전집. 하나하나는 알맞게 배치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조화롭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그 불만족을 해석할 언어를 구성할 수 없었다. 넘친 자리가 있었고 빈자리가 있었다. 고전의 의미를 제한적으로만 설정하고 동시대 지식사회의 논의를 반영하지 못한 게 문제일 듯도 했다. 인터넷서점의 장바구니에 넣어둔, 아직 읽지는 못한 이름들을 떠올렸다. 스피박, 버틀러, 아감벤, 랑씨에르, 라뚜르, 브라이도띠, 차크라바르띠, 마사따께, 휜테게르키, 량밍쉬고우, 음뚜아스부이…… 하지만 자신이 뷔페식 속류 인문학을 좇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 딜레땅뜨라는 호명의 모욕적 뉘앙스와 단순한 지식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적 견해와 박사과정 진학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저울질했고, 모든 사유의 방황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거슬러올라가 은재와 은재 아버지와 교장과 동료들의 언사에서 사실과 의견을 분리하였으며, 고전읽기 수업을 포함하여 읽고 쓰고 생각하고 가르치는 삶 전반에서 자신의 패착을 검토했다. 이 세계와 학생들과 부분적으로는 자기 자신까지 더 정교하게 이해하고 설명하고 변호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닿았다.

‘나는 『자본론』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수업을 했다.’

그러므로 『자본론』의 서문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교실에 앉아 대표적인 석학이 몇해 전 내놓은 전면 개역판 세트를 검색했다. 부담이 될 만한 가격은 아니었고 쌓아둔 포인트가 넉넉했으며 ‘지금 주문하면 오후 8시까지 배송’이었다. 귀가하면 서재부터 정돈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곽은 교실 전등을 끄고 문단속을 했다. 한결 한적해진 복도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와르르 웃는 소리가 났고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던 세 학생과 마주쳤다. 빨간 머리가 곽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졸랐다. 옆에서 쌍꺼풀과 후드티가 거들었다. 곽은 졸업을 축하한다고 말하며 셋의 이름을 정확히 불렀다. 셋은 놀라며 ‘대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곽은 세 학생 다 일년 내내 잠만 잤는데 왜 자신과 사진을 남기려는지 의아해하며 엉거주춤 움직였다. 왼쪽 가장자리 혹은 오른쪽 가장자리. 손으로는 브이, 하트, 엄지 또는 주먹. 빨간 머리가 “선생님 고장 났다” 하면서 웃었다. 곽은 그들이 성인의 삶을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불투명한 상황이라면 실례일 수 있으므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셋은 다음으로 생물실로 갈지 음악실로 갈지를 떠들고 서로 때리고 쫓기도 하며 사라졌고 곽은 빈 복도를 한번 돌아본 뒤 퇴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