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심사평

 

 

 

응모작 수가 조금 줄긴 했지만 끝까지 기대를 갖고 읽게 되는 글이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었다. 다만 다루는 작품들이 최근 들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몇몇 시인, 작가들에 쏠려 있다든가 비평적 평가 대신 작품을 면밀히 해설하는 데 치중하는 경향이 많아 글쓴이의 비평적 개성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왜 지금 이 작품인가’를 문학적·사회적으로 설득력있게 부각하는 선구안이나 독자적 논리를 갖춘 비평적 평가를 괄호에 묶은 채 이미 널리 조명받고 있는 작품에 대한 ‘지적 해설’로 안이하게 건너가는 것은 문학평론을 교양을 과시하는 감상문과 다를 바 없이 만들어버릴 위험이 있기에 주의를 요한다.

그럼에도 젠더, 계급, SF, 대중문화 등 다양한 주제를 붙들고 각자 고투한 응모작들을 읽는 즐거움은 적지 않았다. 심사자들은 29편의 응모작을 읽고 토론한 끝에 3편에 주목했다. 진은영의 시를 다룬 「시간의 토폴로지: 친애하는 우주의 편린들」(박민아)은 무엇보다 유려한 글쓰기가 매력적이었다. 그러한 글쓰기가 대상작품에 대한 깊은 공감에 근거하고 있는 점이 신뢰를 주었으나 마찬가지 이유로 작품과 비평적 글쓰기 사이의 거리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분석적 평가를 수사적 묘사가 대신한다는 느낌도 지우기 어려웠다.

당선작과 함께 마지막까지 심사자들을 고심하게 만든 글은 일본 서브컬처와 모성이라는 화제를 연결 지어 장수양의 시와 이유리, 김초엽의 소설을 아우른 「모성의 아이러니, 아이러니의 모성」(양진호)이었다. 우리 문학이 애니메이션 등의 일본 서브컬처나 국내외의 대중문화 요소들에 접속한 지 이미 오래인데도 그에 대한 비평적 주목이 결코 활발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 착목해 우리 젊은 시인, 작가들의 작품세계 안으로 들어온 ‘서브컬처적 모성’이라는 주제를 포착하고 의미화하면서 그것을 다시 한국사회의 정치적 변동이라는 맥락으로 설명해내고 있는 이 글은 무엇보다 발견의 참신함이 강점이다. 사회적 맥락을 설명하는 대목들에서 때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지만 입장에 관계없이 주밀하게 전개되는 글의 흐름 또한 필자의 역량이 만만치 않음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선택된 작품들이 서브컬처적 모성이라는 열쇳말을 설명하기에 적합하다는 점 이외에 어떤 점에서 좋은 작품이고 또 그렇지 못한지를 판별해내려는 비평적 감식안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아 작품보다 응모자의 담론적 구도가 우선시된 글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고심 끝에 당선작은 최진영의 소설 『구의 증명』을 새롭게 주목한 권영빈의 평론 「죽음보다 명백한 것, 비평보다 확실한 것」으로 결정했다. 사실 이 글은 다른 두편에 비해 글쓰기의 유려함이나 주밀한 논리적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더 앞선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진영의 소설 가운데서도 비평적으로 그다지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작품이 왜 최근 들어 새로운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가에 의문을 품고 그것을 사회적 참사가 현실정치적으로 소비되는 메커니즘과 겹쳐 읽음으로써 해당 작품이 “죽음을 말하지 않는 현실에 죽음을 사실로서 침투시키기 위한 방편”임을 설득력있게 해명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최근 비평에서 흔히 보이는 막연한 지적 회의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대신 좋은 문학의 사회적 역능에 대한 튼튼한 신뢰가 엿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회현실과 작품의 리얼리티, 비평적 개입의 상호연관에 관한 집요한 문제의식이야말로 이 글을 마지막까지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아쉽게 선에 들지 못한 응모자들에겐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당선자에겐 더욱 정진함으로써 우리 비평을 새롭게 이끌 재목이 되어주시길 당부드린다.

 

강경석 황정아

 

 

 

수상소감

 

 

권영빈 權寧斌

1984년 부산 출생. 동아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저를 창비신인평론상 수상자로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들과 출판사 창비에 감사드립니다. 너무 개인적이거나, 대체로 분과학문장의 관습에 따라 한정되었던 저의 독서경험을 새로운 지평으로 넓히는 전기를 마련해준 최진영 작가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가족들, 존경하는 은사님들 감사합니다.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동료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당선자가 되었다고는 하나 평론을 쓰거나 한다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각오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닌지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껴집니다. 그러나 제가 체득하거나 도달해야 할 무언가를 상정하기보다는, 읽고 쓰는 일이 주는 즐거움과 곤경을 늘 생각하고자 합니다. 앞선 비평들, 평론가들의 자취를 더듬고 헤아려나가는 성실함 속에서만이, 읽고 쓴다는 것이 시련이 아닌 의지가 될 수 있음을 또한 잊지 않겠습니다.

동시대 문학을 통해 기쁨과 위로를 얻고 또 삶의 방향을 찾기를 갈망하는 수많은 이들 중 한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를 비추는 문학의 의미를 밝히는 데 보탬이 되겠습니다.

저의 평론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