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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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金旼指

1989년 경기 성남 출생. 2021년 『파란』으로 등단.

something.text@gmail.com

 

 

 

염소가 열리는 나무

 

 

겁 많은 염소가 천적을 피해 절벽에 오른다

 

두갈래 발굽이 없었다면

여러갈래 울음이 없었다면

 

외국에는 앞뒤 차와 매우 좁은 간격을 유지하며

긴 버스를 안전하고 유연하게 모는 기사가 있다는데

 

반바퀴만 엇나가도 벼랑 아래 바다인데

매일 웃으며 운전하는

그게 된다 사람은

 

조금 먹은 겁이

조금 삼킨 물이

무언가를 틔운다

 

나는 물이라는 씨앗을 믿지

너의 눈물을 믿고

오히려 물 같은 억겁 앞에서

 

곡선은 신의 선, 웃는 얼굴엔 곡선뿐이라

그렇다고 우는 얼굴에 눈물이 직선으로 떨어지는 일도 드물어서

 

밤이면 둥글어지는 눈동자를 하고

낮에는 단추를 만나기 전 단춧구멍 같은 눈동자를 하고

 

뜯어 먹는 말들

풀벌레 소리 나는 계절처럼

양을 세는 염소처럼

 

울고 웃는 게 동시에 되다

문득 잠에 드는 사람처럼

 

죽음을 오랜 잠이라 여기는

깨어나지 못한 슬픔으로 산다

 

아르간 열매가

사람 얼굴이 열어둔 눈구멍에 꼭 맞는 모양으로 열리면

아르간 나무에 오르는 염소들

 

꿈같은 광경도

현실에서만 볼 수 있다는 걸 잊은 채

양만 세는 너와 나

 

 

 

불릿의 시

 

 

아빠의 엄마는 머릿속이 온통 온점이었다

뇌 하나가 시꺼먼 온점이 될 때까지 살았다

 

엄마의 엄마는 조금 더 오래 살았다

무릎이 얼굴을 볼 때까지

 

번지고 굽어가는 게

덜 마른 옷을 입은 채 스스로 체취를 맡는 게

인생 같았다

 

구르지 않는 시간이었다

 

무슨 생각 해

무슨 생각 하냐고

 

응, 아니, 세월이 깊어

 

조금 더 힘줘서 소리 내면 될 것을

기뻐도 될 것을

 

누워 있던 할머니와

굽어 있던 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나는 아직 남들처럼 걷고 있다

 

멀리 보면 오래는 아닌 것이

누구에게나 있다니

 

자식들 생각해서 가셨다는 말과

함께 남아 있었다

 

휑뎅하지만 다정한

외풍 드는 창가 커튼처럼

 

가끔 자는 엄마 코끝에 손을 얼쩡거리며 아빠를 생각한다

 

이 정도 바람이 좋은 것 같다

삶에 말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