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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K담론의 성취와 미래

 

K문화가 가야 할 보편의 길

‘인간해방의 논리’를 구현하는 문화를 향하여

 

 

박여선 朴麗仙

영문학자.

서울대 학부대학 강의교수. 논문 「포스트디지털 시대 디지털 미디어 서사를 활용한 영문학 교육: 강의실 젠더갈등 해소를 향한 가능성」, 평론 「주관적 감정과 재현의 보편성」 등이 있음.

kirillo7@snu.ac.kr

 

 

전세계적으로 ‘한국적인 것’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른바 한류는 1990년대 후반 드라마 중심으로 부상했던 한류 1.0 시대에서 K팝의 부상과 함께 한류스타에 대한 아시아 팬덤이 형성된 한류 2.0을 거쳐 OTT 플랫폼의 도래로 시작된 한류 3.0 이후 아시아를 넘어 미주·유럽·아프리카 등 전세계로 확산했다.1 콘텐츠의 범위도 K팝이나 영화·드라마를 넘어 문학, 공연예술, 게임, 음식문화 등 문화영역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한국 전통문화에 관한 관심도 폭발하여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비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관람객 수(2025년 650만명)가 루브르박물관 등에 이어 세계 3~4위권으로 도약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전세계의 ‘한국앓이’가 예사롭지 않은 듯하다. 도대체 ‘K’가 세계에 발신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해방된 직후인 1947년, 백범(白凡) 김구(金九)2는 「나의 소원」(도진순 편저 『김구·여운형: 합작과 통일, 시대와의 불화』, 한국사상선 21, 창비 2026, 이하 이 책에서 인용시 면수만 표기)에서 세계 인류가 필요로 하는 것은 “새로운 생활원리의 발견과 실천”이고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담당할 천직”(107면)이라 주장하면서 향후 우리 민족이 높은 차원의 문화를 건설하여 세계 무대에 주연배우로 등장할 것을 예견했다. 그후 80여년 만에 대다수 한국인은 그의 소원이 정말로 현실화되고 있다는 데 놀라워하고 있다. 식민지와 전쟁, 군사독재의 시기를 거쳐온 우리가 세계의 흐름에 맞춰 우리의 현재를 재단하던 일은 이제 의심할 바 없이 과거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이제 한계를 맞이한 자본주의체제와 기후환경의 위기, 서구 민주주의의 혼란과 극우의 득세 속에서 “세계가 우리의 위치를 가늠하고 나아갈 거리를 재어보는 기준점”으로 작동하기는커녕 “나서서 돌봐야 할 망가져가는 무엇”이 돼버린 것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K문화의 부상은 우리에게 단순한 자부심을 넘어선 “무거운 책임”을 안겨준다.3 열심히 달려온 길 끝에서 어느덧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이끌 위치에 서게 되었고, 이제는 진지한 마음으로 이 현실을 받아들이며 김구가 말했던 ‘새로운 생활원리’를 사유하고 발명해야 할 임무를 갖게 되었다. 그것을 세계가 열광하는 한류문화 속에 담아내는 일이 우리에게 숙명적 과제가 된 것이다.

 

 

문화를 통해 도달해야 할 경지

 

백범 김구가 오래전에 제시했던 비전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무척 적실하므로 이 시점에서 그가 피력했던 소망의 내용을 세심하게 살펴보는 일이 의미가 있을 듯하다. 「나의 소원」 전문을 읽으면 그의 사상이 얼마나 선도적이고 이미 세계적이었는지 감탄하게 된다. 당시 미국의 민주주의도 최후의 완성된 정치제도는 아니라 판단한 김구는 진정한 민주주의란 백성이 주권자가 되는 것이며, 그를 위해서는 문화와 교육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우리나라가 먹고살 만큼의 무력과 경제력, 자연과학의 힘을 기르되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아니라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113면) 소원했다. 이어 그는 “최고의 문화를 건설하는 사명을 달성할 민족은 한마디로 말하면 국민 모두를 성인(聖人)으로 만드는 데 있다”(114면)고 강조했다.

이는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문화가 어떤 문화여야 하는지 정의해주는 동시에 많은 생각을 부르는 말이다. 우선, 아무리 한국이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서리란 꿈같은 믿음이 실현됐다 한들 평범한 모두를 성인으로 만드는 문화라니 너무 멀리 나간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기서 ‘성인’은 신비한 경지에 이른 종교적 성인이라기보다 도덕적·인격적으로 완성된 인간을 뜻하는 것이라 볼 수 있지만, 다수 대중 모두가 이러한 완성의 경지에 도달한 문화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의 완성이 그 나라의 국민성뿐 아니라 신앙과 철학에 달렸다고 보는 백범의 말을 고려하면, 이는 지나친 이상주의에서 나온 어불성설이 아니라 어쩌면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의 필요충분조건일지도 모른다.

실상 우리 전통의 대표적 3대 사유체계인 유불선(儒佛仙)에서는 모든 평범한 사람이 성인이 될 가능성을 기본으로 삼는다. 누구라도 수양과 실천을 통해 내적 깨달음에 이르고 사회적·윤리적 완성을 성취하며 우주만물과의 영적 합일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사유가 동아시아의 유불선 전통의 근본이다. 이러한 우리 전통의 맥락에서 “모두를 성인으로 만드는” 문화의 의미를 가늠해본다면, 이는 신앙적·철학적 차원 속에서 문화를 통해 도달해야 할 어떤 ‘인간해방’의 경지를 뜻하는 말로 이해해볼 수 있다. ‘높은 문화의 나라’라는 축으로 세계적 보편에 참여하는 비전을 제시한 것은 물론 백범의 탁월한 면이지만, 제도적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실질적 인간해방을 추구하며 우리 민족해방을 보편적 세계해방의 지평과 접목해 달성하기를 강조한 것은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와 조소앙(趙素昻) 등 식민지시기 해방운동 지도자들이 공유한 관점이기도 했다.4 그것이 전쟁과 분단체제 성립으로 인해 위기를 맞았을지언정 끊이지 않고 살아 있었음을, 또한 한 차원 심화되었음을 우리는 백낙청의 인간해방론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백낙청은 1979년에 출간한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개정합본판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 창비 2011, 이하 이 책에서 인용시 글제목 및 면 수만 표기)에서 민족의 특수한 맥락과 세계적 보편성을 연결하면서 모두의 인간해방을 실현할 수 있는 총체적 세계관을 그려본다. 그에게 진정한 인간해방의 논리는 학자나 지식인이 내놓는 이론이 아니라 생산하는 노동을 수행하는 민중의 생활논리, 즉 생활 속 진리와 연결된 것이다. 어렵고 까다로운 것이 아닌 다수 대중의 삶 속에서 발현되는 “평이함과 생생한 실감”을 갖는 논리다(「책머리에」 431면). 그러나 주권자이자 역사의 주인으로서 민중은 “하늘의 지혜”와 맞닿아 있는 동시에 생활상의 욕구와 잘살아보겠다는 욕망에 휘둘리기도 하기에 적지 않은 경우 “인간의 지혜”에도 미달하는 우매한 대중으로 이해되곤 한다(「민중은 누구인가」 563면). 그럼에도 백낙청은 민중과 대중이 다르지 않음을 아는 것이야말로 실제적이고 과학적인 인식이며, 이러한 인식 위에서 실천하는 인간해방운동은 사회적·정치적 운동일 뿐 아니라 문화적·생활적·영성적 운동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가 특히 인간해방의 의미에는 ‘영성해방’까지 포함된다고 강조하는 것5은 시대와 문화의 근본적 속성에 대한 깊은 통찰과 관련이 있다.

그는 자본주의와 기술문명이 심화한 현대사회에서 인간해방의 문제는 “불교의 진리와도 일치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사상과 행동 없이는 감당하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다”고 진단하고 인간을 억압하는 “온갖 문물과 본질적으로 다른 관계에로 인간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인간해방과 민족문화운동」 552면). 이 말은 ‘깨달음’이 문화가 되는 정도의 사회가 아니고서는 물질중심주의 시대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과도 같다. 다만 이는 깨달음을 통해 물질문명을 단순 배척하거나 제압하자는 뜻이 아니라, 물질문명을 추구하더라도 우리가 물질과 관계맺는 방식이 곧 진리에 도달하는 한 방식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자주 인용하는 원불교의 개교표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를 빌려 표현하자면, 깨달음을 통해서 물질개벽의 시대를 살아내는 방식으로만 이 문명을 극복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신앙적·철학적인 유불선의 전통도, 그 전통에 대한 비판적·혁신적 계승인 동학조차도 현대 기술문명과 창조적 관계맺음을 성취할 수 없다면 인간해방에 실질적으로 공헌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정신개벽이 물질개벽과 분리된 실천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인간해방의 경지를 담아내는 것을 문화의 궁극적 목표로 본다면, 오늘날 K문화는 그 지평을 어떤 방식으로 열어가고 있는가. 최근 K문화 열광을 주도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와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K콘텐츠가 글로벌 세계를 만나는 방식: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리얼리즘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는 2025년 6월 공개 후 두달 만에 넷플릭스 최다시청 애니메이션이 되었고, 넷플릭스 콘텐츠 중 최초로 3억 조회수(2025년 9월 기준)를 돌파해 지금까지 역대 조회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기의 여세를 타고 미국비평가협회와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비롯한 각종 상을 휩쓸고, 아카데미에도 2개 부문 후보로 오른 상태다. 사운드트랙은 빌보드 핫100 차트 ‘톱10’에 동시에 4곡이 오르는 전례없는 기록을 세웠는가 하면, 얼마 전 삽입곡 「Golden」(골든)이 K팝 최초로 그래미어워드를 수상했다. 이 작품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무속·국악·한복·한옥·민화 등 한국의 전통문화적 요소와 현대한국의 도시적 생활감각을 K팝이라는 틀 안에서 세련되게 조합하여, 로컬과 글로벌이 어우러진 새로운 문화적 통합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전통문화의 재해석과 서울의 일상 감각을 실감나게 재현한 리얼리즘은 그간 미국 자본 기반의 글로벌 애니메이션이 “이국적인 시각요소만을 혼합해 비현실적인 아시아 이미지”를 만들어온 “오리엔탈리즘적 재현”의 한계로부터 벗어난 성과로 호평받는다.6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계 제작진과 미국 자본, 글로벌 플랫폼이 결합하여 이뤄낸 성과이기에 ‘한류’ 콘텐츠이지만 ‘한국’ 콘텐츠는 아닌 역설적 상황을 지적하면서,7 작품이 구현하는 ‘한국적인 것’이나 나아가 K가 지시하는 ‘한국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수많은 문답이 쏟아지고 있다.

예컨대 대중문화비평가 윤광은은 「케데헌」의 성취가 한국문화를 ‘외부자의 눈’으로도 바라볼 수 있었던 “이중적 위치”의 균형 덕분임을 강조하면서 문화의 ‘순수성’이나 ‘국적성’에 대한 집착을 선제적으로 경계하기도 한다. 이어 그는 “세계의 중심부가 될 수 없는 지역 문화가 보편성을 획득하는 길은 자기 고유성을 해체하면서 외부에 전유되는 것뿐”이며 「케데헌」이 현실화한 이 전망을 이어가려면 K라는 기호의 확장을 바라볼 새로운 관점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8 기표 K와 연동된 ‘한국성’을 “하나의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복수적이고 관계적인 구성물”9로 보아야 한다거나 한류를 “탈중심적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 문화 생태계”10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평자들은 입을 모아 「케데헌」이 구현한 한국성을 글로벌과 로컬 사이의 긴장 속에서 이상적으로 구현된 ‘혼종성’의 가치로 제시한다.11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김구와 백낙청의 민족-보편의 구도가 로컬-글로벌 구도로 변화하면서 오히려 긴장관계가 공허해진 것 아닌가 질문해봄직하다. 로컬과 글로벌 사이에서 역동하는 관계적이고 복수적이며 비본질적인 혼종성은 그 속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관계와 구조에 관한 한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 수사로 끝나기가 쉽다. 단순 잡탕과 진정한 혼종의 실현은 어떻게 구분되는 것인가. ‘자기 고유성을 해체하면서 외부에 전유되는 것’에 저항하면 순수 민족주의에 집착하는 것인가. 김구와 백낙청이 제시한 민족-보편의 긴장구도를 되돌아볼 시점이 온 것 같다. 보편성을 얻기 위해 자기 고유성을 해체하기보다 외려 자기가 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보편에도 도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제기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케데헌」의 문화적 성과는 혼종의 이상적 구현이나 로컬-글로벌의 융합이기보다, 감독 매기 강(Maggie Kang)의 현실이해에 기초한 리얼리즘에 있다. 이 작품은 단순히 한국적인 요소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K팝이 지금 이곳에서 한국인과 세계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며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가장 한국적인 맥락의 기원으로 거슬러올라가서 탐구한다. 이런 점에서 「케데헌」의 첫 장면은 매우 중요하다. 수백년 전 악귀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아 세상을 암흑에 빠뜨리자, 세명의 여성 무당이 노래를 부르며 등장해 그들을 퇴치하고 ‘혼문’을 세워 악귀를 세상과 차단한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우리말의 판소리로 “홀로 어둠을 밝히랴/우리 노래 부르리라/굳건한 이 소리로/이 세상을 고치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한국 대중음악사 속 여성 3인 그룹의 계보를 그리듯 미군정기의 여성 트리오부터 1990년대 후반의 아이돌 그룹과 오늘날의 K팝 스타를 떠올리게 하는 이들의 모습을 연달아 제시한다. 불과 1분도 안 되는 이 장면을 통해 영화는 한민족의 역사 속에 K팝의 기원을 새롭게 정립한다. 빼앗고 착취하는 힘으로부터 지켜내고 보호해온 역사, 굿과 노래로 한을 어루만져온 역사,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자 했던 역사가 바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K팝을 뒷받침해온 기원인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매기 강 감독은 “굿이 최초의 콘서트”라고 말한 바 있다.12 이는 한국 굿의 본질적 성격인 공연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보여준다. 무당은 단순히 귀신을 물리치는 존재가 아니며, 퇴마는 한국적 정서와는 본질적 거리가 있다. 한국적 정서의 핵심은 ‘재앙의 원인이 원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혼이 품은 한에 있다’는 인식에 있으며, 따라서 귀신의 원을 풀어주어 마땅히 갈 곳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데 있다. 나아가 굿은 ‘사회적·문화적 열망’을 반영하며 공동체적 갈등을 해소하는 의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굿판에서는 무당과 참여 대중 사이의 정서적 공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굿의 본질은 결국 모든 존재가 신명나게 어우러지는 축제라는 데 있으며13 영화 속 혼문의 힘 또한 바로 그 축제에 참여한 대중이 느끼는 신명에서 비롯된다.

「케데헌」의 주요 서사는 황금 혼문을 완성해야 악령을 영구히 몰아낼 수 있다는 신념에 구속됐던 주인공 ‘루미’가 그 이원론적 틀에서 해방되는 과정과, 수치와 비참함이 응어리진 한을 4백년 동안 품어온 ‘진우’가 마침내 해원을 이루는 과정이다. 「케데헌」의 서울을 오늘날 표준화된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다면 ‘귀마’는 자본주의가 사람들 속에 만들어놓은 마음의 지옥을 상징하고, 잘살고 싶은 마음에 가족을 저버린 진우의 수치심과 한은 자본주의사회를 사는 평범한 대중의 원한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다. 루미가 자신의 내면 속 어둠과 화해하고 반인반마라는 경계인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자 진우 역시 루미를 위해 내면에 잠재해 있던 영혼을 발현시키고, 두 사람은 결국 ‘혐오의 감정만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었던’ 귀마를 함께 물리칠 수 있게 된다. 이 마지막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노래가 담당하는 역할은 대단히 중요한데, 이는 단순히 루미의 내적 각성을 표현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매기 강 감독은 전통적으로 뮤지컬에서 노래가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되지만, 「케데헌」에서는 노래가 서사를 더 심층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도록 의도했음을 밝힌 바 있다.14 루미가 속한 그룹 ‘헌트릭스’가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 「What It Sounds Like」는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사태의 ‘진실’을 드러내는 핵심적 장치로 기능한다. 더불어 굿판에서 무당의 소리가 개인의 해원을 구하는 동시에 공동체를 향한 공적 울림을 지니듯, 이 노래는 ‘나’에서 출발해 ‘우리’로 확장된다.15 혼자 부르던 노래가 헌트릭스 멤버들과 팬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로 공명하면서 공동체 전체의 신명풀이로 확산되고, 무너졌던 혼문은 무지갯빛으로 되살아난다. 여기서 해방과 연대의 주체는 바로 팬 대중이다. 해원의 굿판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흥겨운 기운이 미학적으로 고양된 상태 속에서 신명으로 연결된 사람들은 홀로는 밝힐 수 없는 어둠을 함께 밝히며 세상을 고쳐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케데헌」의 삽입곡들이 실제 K팝의 트렌드와 수준에 맞추어 현실의 아이돌 노래와 견주어도 손색없게 제작된 이유는 이 노래들이 현실에서 K팝 생태계의 일원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16 실제로 삽입된 곡들이 큰 인기를 모았음은 물론, 관객들이 영화를 같이 관람하며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번외 제작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싱어롱」(2025)은 한국을 비롯해 북미·남미·유럽·호주와 뉴질랜드까지 확산되었다. 나아가 팬들이 함께 모여 굳건한 소리로 어둠을 밝히고 세상을 고치는 작품 속의 제의가 현실 팬들에 의해 실제로도 실천되고 있는데, 지난해 미국의 뉴욕시장 선거에서 「Golden」이 투표 독려 노래로 개사되어 불린 것이다. 민주당 후보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의 승리와 더불어 큰 호응을 얻었고, 투표 독려 ‘떼창’을 공개한 뉴욕시 게이 합창단의 인스타그램(@nycgmc)에는 2026년 중간선거에도 이 곡을 써달라는 수천개의 댓글이 달렸다. 작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케데헌」은 가상의 해방굿을 현실의 해방굿으로 확장해나간다. 가장 한국적인 정신의 기원을 찾아 그것이 현재에 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으로 불러들이는 것, 이것이 K문화가 글로벌 보편의 지위를 획득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K콘텐츠가 미래와 만나는 방식: AI 로봇에게 배우는 ‘리얼’한 사랑

 

2016년 대학로에서 초연된 한국의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국내 유수의 뮤지컬 상을 받고 6연까지 공연을 이어갈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작가 박천휴 그리고 그의 뉴욕대학 동창인 작곡가 윌 애런슨(Will Aronson)의 공동창작으로 탄생한 이 작품은 창작과정부터 이미 한국어와 영어로 쓰였고, 공연의 실제 제작과정 역시 초기부터 양국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브로드웨이 진출에 성공한 뒤 이듬해에 브로드웨이 최고 권위의 토니상에서 6개 부문을 석권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아 K뮤지컬의 세계적 도약의 상징이 되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명한 원작이나 스타 배우에 기대지 않으면 제작이 어려운 뮤지컬계에서 순수 창작뮤지컬이 길어올린 눈부신 성과다. 아시아 배우가 주연이고 서울과 제주가 배경이며 중간중간 한글이 사용되는 작품인데도 보편적 서사와 감동적인 메시지로 뉴욕 브로드웨이 관객의 공감을 얻은 것이다.

이 작품은 미래의 메트로폴리탄 서울의 외곽, 구형이 되어 버려진 도우미 로봇들이 모여 생활하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로봇들의 일상과 내면생활을 보여준다. ‘헬퍼봇 버전 5’인 올리버는 내구성이 좋은 클래식 모델이지만 기능이 제한적이고, 버전 6인 클레어는 기능은 많으나 훨씬 불안정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올리버는 내성적이고 원칙적이나 긍정적인 데 비해 클레어는 적극적이고 사교적이지만 냉소적이다. 이 성격은 이들의 이전 주인인 인간에게서 영향받은 것이다. 충전 배터리가 불안정한 클레어는 자꾸 방전되어서 언제 멈춰버릴지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상황인데, 극은 클레어가 충전기를 빌리기 위해 올리버의 방문을 두드리면서 시작된다. 충전기를 공유하다가 서로에게서 사랑을 배우게 된 두 로봇은 더이상 부품이 수급되지 않아 임박해오는 소멸을 앞두고, 남겨진 로봇이 겪을 상실의 고통이 가슴 아파서, 서로를 위해 사랑의 기억이 저장된 데이터를 각자 삭제하기로 결정한다.

브로드웨이 작품의 감독을 맡은 마이클 아든(Michael Arden)은 한국 작품의 미국 버전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이를 작가·작곡가와 공유했다고 한다.17 결과적으로 브로드웨이 작품에서는 한국 작품의 은유적이고 시적인 가사가 영어의 직관적이고 맥락을 설명하는 가사로 성격을 달리했고, 올리버와 클레어가 전 주인들에게 버려진 이유가 전사(前史)로서 서사에 첨가되었으며, 따뜻한 감성과 친밀감 중심의 소박한 무대는 기술적 무대전환과 시각적 효과를 강화한 미래도시 무대로 전환되었다. 재즈와 서정적 발라드 중심으로 로봇의 내면과 감정 전달에 집중했던 음악도 브로드웨이에서는 재즈는 유지하되 확장된 오케스트라 편성이 더해져 사운드가 강화되었다. 동시에 서울이나 제주도 등 한국의 지명을 유지하고, 올리버의 말동무이자 반려소품인 ‘화분’도 영어가 아닌 ‘HwaBoon’으로 그대로 사용했다.18 올리버의 방에서 유일하게 생명을 가진 화분은 그의 하나뿐인 친구이자 반려 대상으로 끊임없는 주의와 돌봄이 필요한 존재다. 브로드웨이에서는 말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이 소품을 작품의 주요 배우로 의인화하여 프로그램북의 인물 소개란에도 넣고 인스타그램 계정(@thereal_hwaboon)도 만들어주었는데, 이는 물론 마케팅 수단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비인간이 살아 있는 인간처럼 우리 앞에 현현했을 때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작품이 던지는 질문의 익살스러운 체현이기도 하다. 이를 받아 「어쩌면 해피엔딩」의 팬들은 ‘화분 밈(meme)’을 만들어 공유하고,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댓글을 달고, 화분 피규어나 팬아트를 생산하고, 심지어 화분에게 인터뷰도 하는 등 작품을 함께 관람하며 경험했던 “내적으로 연결되는 감각”을 작품 바깥으로 연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19

이 작품의 성공을 놓고 로컬과 글로벌, 한국적 특수성과 브로드웨이 현지화 및 세계화 전략에 대한 수많은 분석이 있지만 실상 이 작품은 서울과 브로드웨이 모두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많은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다. 통상적인 대형 뮤지컬 작품이 가진 유명한 원작도, 거대자본이나 스타 배우, 작가도 없었을뿐더러 배우의 성량을 자랑하며 작품의 시그니처가 될 만한 고음의 노래도 없다. 자극적 요소가 없는 잔잔한 작품에다 로봇의 사랑 이야기라는 얼마간 촌스럽고 감상적인 주제를 녹인 뮤지컬인 것이다. 아마 작품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로봇도 사랑을 한다니 얄팍하고 감상적인 이야기라는 편견을 가질 법한데, 이 작품이 일단 관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후에야 티켓 판매량이 치솟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20

그런데도 이 작은 작품에 한국과 글로벌 대중 모두가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 이유는 너무나 상식적이어서 새삼스러운데, 평이한 주제의 보편성과 이를 구현한 실감나는 정서의 리얼리즘에 있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첨단에 도달한 도시적 삶의 이면에 있는 외로움, 쓸모없음, 소멸의 감정과 돌봄, 관계, 사랑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탐사한다. 우리는 새삼스럽게도 AI 로봇 역시 시간과 자연의 속박을 피할 수 없으며, 늙어서 죽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구식이 되어 폐기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쉽게 소모되고 버려지는 로봇에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겹쳐 보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작품의 클라이맥스에서 나오는 노래 제목) 우리는 ‘왜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로봇의 관계적 서사 속에서 인간성을 회복하고 그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계기를 만난다. 기술문명에 집착할수록 서로에게서 멀어질 뿐 아니라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된 존재로서 점점 생명 있는 삶에서 유리되어가는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미국 평자 루이스(C. Lewis)는 이 작품을 “인간이 되는 법을 가르쳐주는 뮤지컬”21이라 했는데, 진부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작품이 우리에게 하는 일에 대한 가장 정확한 판단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너무나 중요해서 오히려 진부해져버린 주제를 실감나는 정서를 통해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승연이 이 작품의 공연 현장에서만 일어나는 어떤 “감성의 리얼리즘” 같은 것이 있다고 진단한 말도 적확할 듯하다.22 제주 여행길에서 인간의 행세를 하고 인간의 사랑하는 법을 따라 해보다가 정말로 사랑에 빠져버린 로봇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사랑한다. 인간이 가르쳐주기만 하고 정작 실행 못하는 친절, 배려, 헌신과 같은 프로그래밍된 가치들을 지극히 실천하여 소멸을 앞둔 현실에서 그 사랑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만드는 것이다. 서로를 지켜주려고 각자의 기억에 저장된 데이터를 지우기로 결정한 다음 날, 클레어가 다시 충전기를 빌리기 위해 올리버의 아파트 문을 두드렸을 때, 우리는 이들이 정말로 데이터를 지웠는지, 아니면 첫 장면과 똑같이 돌아간 이 시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을 시작해볼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충전 없이도 충만한 생명력으로 빛을 내는 반딧불이의 짧은 생처럼 자신의 소멸을 더 큰 질서 속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짧지만 충만한 사랑을 이뤄낸 두 로봇에게 진짜 해피엔딩은 그런 빛나는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자체에 있다는 것을 이미 이해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성공의 주체는 무엇보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열어주는 경험의 경지를 알아봤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 적극적으로 작품을 홍보하고 여러차례 회전관람을 하며 오늘의 의미를 일구어낸 대중 관객들이다. 특히 극중 두 로봇의 사랑을 상징하는 반딧불이에서 이름을 딴 미국 내 자발적 팬덤 ‘파이어플라이즈’(Fireflies)는 대단히 헌신적이고 온라인 결집력이 강한 팬덤인데, 레딧(Reddit)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만 살펴도 좋은 공연이 빛을 못 보고 사라지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수많은 팬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한국과 브로드웨이 작품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 관객과 브로드웨이 관객을 하나의 정서 공동체로 통합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될 수 있는 최고의 방식으로 평이한, 그러나 잊히기 쉬워 우리가 다시 가꾸고 회복해야 할 보편 주제를 실감나는 정서에 실어나른 작품의 리얼리즘이다. 이것이 진정한 지역-보편의 결합이며 K뮤지컬이 글로벌 보편에 도달하는 방식이 아닐까.

 

 

K문화가 가야 할 보편의 길

 

AI의 발달로 물질 생산력의 극대화가 코앞에 다가왔고 기존 지식사회는 기반부터 흔들리고 있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불균형한 AI 기술의 발전도와 만연한 공학 만능주의는 새로운 ‘기술 제국주의’를 불러올 위험까지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 한류 4.0이 마주한 도전은 AI나 가상현실(VR) 같은 첨단기술과의 융합에만 그치지 않으며, 기후·환경 문제와 지속가능한 발전 등의 중대 글로벌 이슈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도 포함한다. 변화하는 시대에 기민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에도 유효할 비전은 결국 보편적 가치에 기반해야 한다23.

흔히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창조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창조적 삶은 우선 내 안에서 ‘경이로운 나’를 만날 때 가능하다. 이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면서 내가 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느끼는 경이로움이다. 그것이 지성, 춤, 노래, 웃음으로 발현될 때 우리는 이를 신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신명의 순간은 곧 ‘영성해방’의 순간이며, 이 신명은 홀로는 도달할 수 없고 함께할 때 비로소 폭발한다는 점에서 ‘협동적 창조 과정’24이기도 하다. 오늘날 인간해방의 논리는 더욱 절실해질 수 밖에 없다. AI와 같이 첨단을 달리는 기술문명이 극성을 부릴수록 불안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존재의 근원과 영혼의 안식, 평온을 갈망하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깨달음이 문화적 욕구가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김구가 말한 성인은 진정한 자신과 일치하여 자신의 현실을 창조하고 사명을 실현하는 힘을 지닌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인을 길러낼 수 있는 문화에서라면 AI 역시 제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K문화는 바로 이러한 미래의 도래에 기여할 잠재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의 혁신도 하고 혼종도 하고 로컬과 글로벌의 융합도 한다. 창조와 제작의 원만한 조화를 위해 자본을 모으고 제어할 수 있는 사업 모델도 채택하며 현지화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의 궁극적 목표가 존재의 근원에 이르는 영적 여행길이라는 점,25 모두의 인간해방을 향한 논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점, 그것이 혼자가 아닌 연대의 길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K문화가 세계를 향해 발신하고 있는 보편의 길이다. 지금, 여기에 가장 충실한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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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심두보 「한류: 21세기 글로벌 문화 지형도에서 길을 찾다」, 심두보・배기형・정호재 엮음 『한류 101』, 동국대학교 출판문화원 2025, 56~57면. 다만 심두보는 이런 시대구분의 한계 역시 지적하며 이는 오직 분석의 출발점으로서만 유효하다는 단서를 단다.
  2. 2026년은 그의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로, ‘김구 탄생 150주년’이 ‘유네스코 기념해’로 공식 지정되었다.
  3. 황정아 「다시 만나야 할 세계」, 『창작과비평』 2025년 겨울호 ‘책머리에’.
  4. 안창호 사상에 대해서는 강경석 편저 『안창호: 민족혁명의 이정표』(한국사상선 19, 창비 2024), 조소앙 사상에 대해서는 백영서 「변혁적 중도로 다시 보는 삼균주의」(『창작과비평』 2025년 가을호) 및 백영서 편저 『조소앙: 균등사회의 새로운 민주주의』(한국사상선 23, 창비 2026) 참조
  5. 백낙청・이보현 「인간해방의 논리와 개벽사상」, 백낙청 외 『세계적 K사상을 위하여』, 창비 2024, 205면.
  6. 이민하 「K-pop 콘텐츠의 확장과 재구성」,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19권 6호, 2025, 224면.
  7. 김공숙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구현된 ‘코리아니즘’의 양상과 의의」, 『콘텐츠와산업』 7권 4호, 2025, 118면
  8. 윤광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소유권 포기한 K 컬처의 세계화」 미디어스 2025.8.2;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세계화는 무엇이 다른가」 미디어스 2025.9.13. 후자의 글에서 윤광은은 한국성을 ‘혼종성’으로 정의한다.
  9. 김희선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통해 본 K-컬처의 전지구적 확장과 K-헤리티지의 실천적 재구성」, 『판소리연구』 제60집, 2025, 57면.
  10. 같은 글 59면. 이는 한류가 탈중심적 구조를 띠며 일시적・유동적으로 구성되는 어셈블리지 형태라고 본 이기웅의 주장을 받은 것이다. 이기웅 「포스트 지구화와 한류 어셈블리지」, 『황해문화』2022년 여름호 참조
  11. 대표적으로 박상완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혼종적 상상력에 대한 연구」, 『국제어문』 제106집, 2025 참조.
  12. 「테디부터 트와이스까지 협업 비하인드 대공개」, 유튜브 채널 ‘문스오층’, 2025.6.30. 이 인터뷰에서 감독은 자신이 캐나다에서 자랐지만 문화적 정체성은 한국에 두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13. 굿의 의미에 대해 다양한 선행연구를 검토한 다음의 글을 참조. 조은영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굿의 공연적 특성과 해원 기능의 변용 분석」, 『인문콘텐츠』 제78호, 2025
  14. 앞의 인터뷰 참조.
  15. 「What It Sounds Like」(우리말로는 ‘들리는 대로’의 뜻)의 흐름은 ‘이게 바로 진짜 나의 소리야’에서 ‘이게 바로 진짜 우리의 소리야’로 확장된다. 가사는 “My voice without the lies, this is what it sounds like(거짓 한점 없는 나의 목소리, 이게 바로 그 소리야)”에서 “Truth after all this time, our voices all combined(모든 순간이 지난 뒤 진실이 드러나, 우리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져)”로 이어진다.
  16. 앞의 인터뷰 참조.
  17. Rebecca Alter, “Attention Must Be Paid to Hwaboon,” Vulture, 2024.12.25.
  18. 최승연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으로: 브로드웨이 현지화와 정서적 공동체 형성」, 『한국극예술연구』 제85호, 2025; 홍정민 「<어쩌면 해피엔딩>의 성공적 수용과 영미권 진출 K-뮤지컬의 번역에 대한 시사점」, 『번역학연구』 26권 3호, 2025 참조
  19. 최승연, 앞의 글 203면.
  20.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가의 어쩌면 해피엔딩 작업기」, 유튜브 채널 ‘빅퀘스천’, 2025.11.9
  21. Christian Lewis, “‘Maybe Happy Ending’ Review: Broadway’s Deeply Moving Robot Musical, Starring Darren Criss, Teaches Us How to Be Human,” Variety, 2024.11.12.
  22. 「왜 어떻게 ‘어쩌면 해피엔딩’은 토니상 극본상 등 6개 부문 수상했을까? 미국 연극 뮤지컬계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을? 우란문화재단을 시작으로 8년간의 제작히스토리」, 유튜브 채널 ‘김완의 인어뷰 잠못드는밤 잡담 라디오’, 2025.6.27
  23. 심두보, 앞의 글 58~65면.
  24. 한영인은 「오징어 게임」(2021)과 「지옥」(2021)에 대한 탁월한 비평에서 한류의 가능성은 “어떤 특정한 콘텐츠의 성취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한국사회가 집합적으로 이룩하는 협동적 창조의 양상에 그 실현 여부가 달려 있다”며, “우리는 ‘어떤인간’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일 역시 그같은 협동적 창조의 일부”라고 말한다. 한영인 「‘한류’와 협동적 창조의 가능성」, 『창작과비평』 2022년 봄호 64면.
  25. 게오르그 짐멜 『게오르그 짐멜의 문화이론』, 김덕영・배정희 옮김, 도서출판 길 2007, 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