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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시인선
유수연 劉帥沇
1994년 강원 춘천 출생.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 등이 있음.
gabegiveme@gmail.com
깃털 같은 사람
첫눈을 맞았어요
알았어요
조심해요
처음은 알리고 싶다
앞에 앉은 할머니의 자리를 대신 앉고 싶다
누구에게 전화하는지 다 들리는 안부를 모르고 싶다
정말 깃털 같은 사람이었는데 왜 그렇게 변했는지 역시 이곳은 그런 곳인가봐요
변할 줄 몰랐다 처음 느낌 그대로
나는 이미 엉망이었는데
그보다 더 엉켰다
물티슈로
패딩을 계속 닦으며
숨이 잔뜩 죽은 삼년의 얼룩을 본다
비쌀수록 가볍고
싼 한숨은 무겁고 춥다
입에 걸린 걸 계속 뱉어내려
내 안에 풍성한 걸
걸리적거리지 말라고 삼키지 못했다
역시 나 소름 돋게 다 뽑힌 것이다
추울수록
험할수록
가득한 구호선에서 여섯시는 지옥인 걸 알면서도
이쯤 견디는 게 그쯤 늦는 것보단 낫지
서로 닿은 몸이 비닐들이라
연약하면 예민하다
그래도 가끔
강풍에 거슬러오르는 눈발을 보며
아직 가벼운 건 떨어지는 것도 제대로 못한다며
추락은 역시 잔뜩 물오른 경지라고
그럼 이제
내 앞에 서서 조는
어깨에 삐져나온 깃털을 보며
누가 보기 전에 뽑아 몰래 바람을 불어보다
그대로 올려두면
어디에 천사처럼
앉았다 갈까
의자에
제일 처음 벗어두고 벗은 순서대로 쌓인다는 건
마지막부터 입게 된다는 것이니까
나는 바깥에서 안으로 한겹씩
그리고 아주 작게
다 뜯겨나간
더 벗지 못할 때까지
누가 떼어준 적 없어 남겨질 몸은
나중에 걸치기로 한다
개 같은 삶
소신은 어디까지 굽히고 네 말이 맞다는 걸 어디까지 인정해줘야
내 말도 맞기도 한다고
생각해줄래
궁리하여 내놓은 생각이나 계획을 안이라고 부르고
모든 안은 내가 아니란 것만 골라지는데
버릴 생각 하지 않으니 먹을 궁리가 생긴 것일까
꼭 쓰레기 같은 선택을 하는구나
치우는 사람도 생기게
이게 그때 화가 많아진 것 같다는 것에 대한 답이다
화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나의 아직도 누가 달려오는 꿈을 꿔
지금도 어떻게 막아야 할지 열린 문을 봐
관성 같은 마음은
손톱 옆에 덜 뜯긴 거스러미처럼
뜯고만 싶은 살이야
분명 아플 거야
꾹 참지 못할 침묵이겠지만
거래할 수 없는 건 거부할 수 없는 기회니까
돈 주고 살 수 있는 건 잠시뿐이지만
내가 준 게 내 전부였지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고요
정답을 찾으려던 게 오답에 가까워지지만
추측 근처에 서성거린 게 제일 잘 맞는 일이었다니
놀랍지 않은가요
누가 알아주길 바라기보다
내가 더 그것에 대해 고민하면 된다
모두 견뎌냈고, 모든 것은 쓸려가고 잊었어1
비 오는 날에도
화단에 물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자라나는 걸 기대하지 않는 행동만 남길 거야
아 봄은 또 섣부른 사랑을 키우겠구나
견디기 힘든 이파리가
뚫은 것은 마음만은 아닐 텐데
상처받았다 말하는 걸 자랑으로 받아주기도 벅차고
내가 먼저 상처받았다고 말해주고만 싶은데
적당한 때가 오지 않네
-
- Édith Piaf, Non, je ne regrette ri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