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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시인선
이용훈 李鎔勳
201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 『근무일지』 등이 있음.
seonhyeyoo07@gmail.com
희곡지구
쪼개진 돌 부스러기 돌덩이를 채운 자루의 행렬에서, 앞서가는 자의 낡은 운동화 실밥 한오라기 나불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대 자루를 능숙하게 짊어지고 나르는 기술 아닌 육체를 밑천삼아, 질기고 퍽퍽한 쉰내의 육즙을 품고 있는 삽질의 단역이, 한무더기 쌓인 쓰레기더미 똥자루를 옮기고 있습니다
흐르는 땀에 달라붙는 돌가루 끈적이니, 돌덩이 부스러기 줄줄 새는 값에 채울 수 없는 값값, 둘러맨 자루의 무게만큼 채우고 싶은 값값, 똥자루 말고, 파스값을, 똥자루 말고, 피곤한 근육 소생시킬 값을, 목구멍에 묵은 먼지 쓸어내릴 값을
하루벌이 쪼개고 쪼개도 모자람은 어쩔수 없다는 잡부의 쓰레기 비질 소리에 벌겋게 달아오른 몸뚱이가 갑갑합니다 만신창이 몸에 약침 하나 꽂으면 시원하겠다 원 없겠다 다시금 살아날 수 있을는지, 산허리 삭둑 잘라내고 크레인 한개 두개 세개 내리 박고 땅을 갈아엎고 터를 두드리는 거대한 항타기 매질 소리 들판에 퍼지는 속삭임은, 목숨 겨우 이어가는 도시 잃어가던 생명 이어줄 외침인지, 화창한 이른 봄날 무장무장 올라오는 허허벌판에 고개 숙인 서툰 몸짓의 잡부들인지
신도시 건설되는 마음으로 되살아나고 싶었던 나는 아니었는지
등에 박힌 돌 쪼가리 수건으로 털고, 신발 벗어 탈탈 털고, 양말 벗어 툴툴 털고, 발가락 벌려 사이사이 털듯 거친 숨소리를, 폐기물 차량으로 이어지는 긴 여운에 군말 없이 내맡기고자 합니다, 파란 방수포 펼쳐진 드넓은 대지 먼바다의 망망을 유리창에 비친 얼굴이 흘러가는 구름처럼 읊으면, 비언어 신체극의 막은 내려가겠지요, 한마디 대사 없는 행동의 지시문으로, 떠도는 자의 익숙함으로, 공사장 가림막 철판 펜스 짙은 그늘 밟으며 달리며, 기웃거려봅니다, 맡은바 배역에 충실함으로
인력 배달 차량에 몸 싣고 가는 평택항 희곡지구
내 몸뚱아리 욱여넣고 달래볼까
후덥지근한 물안개 알싸한 락스 냄새 속이 비어 쓰립니다 꿉꿉한 곰팡내 정든 청국장 냄새 침 삼켜 허기를 달래보려 합니다
대형 세척기 컨베아가 내뿜는 증기는 불가마 한증막 같더니, 펄펄 끓는 물에 녹아듭니다
찰랑찰랑 싱크대 은빛 가루 세제 한바가지 풀어 스며듭니다 고약한 수증기 쌓여가는 더러운 식판들 세젯물에 문드러진 손톱은 감각조차 없습니다 세척실은 찜통입니다 식판을 닦고 있는 사람을 삶기에 충분합니다
오염된 식판 받들고 세척기에 집어넣는 사람의 몸에서 뽀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수저 넣고, 국그릇 넣고, 넣고 넣고 마구마구 집어넣고…… 채워도 채워도 밥 달라고 보채는 세척기
내 몸뚱아리 욱여넣고 달래볼까?
시큼한 찌꺼기 버섯이라든가 석류 피시소스 산나물에 케첩 고추기름 젓갈범벅에 으깨진 돼지비계 퍼어런 부추 뒤엉킨, 뒤엉켜 버려지는 것들은 언제나 창백하다니까…… 파쇄기에서 짓이겨지는 아주 잔인하고 무자비한 단합이 떠오릅니다 그러니까 물 빠진 미각들의 뒤섞임 같은 아우성 희멀건 음식물 찌꺼기가 만두소 닮았다던, 단체 급식실의 세척장이었습니다
반짝반짝 뽀얀, 세척돼서 나오는 식기들을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배식대는 사각사각 사람들은 일렬종대 한가득 퍼 담으려는 얼굴들은 사각입니다 허기를 채우고 버려지는 것들은 언제나 싱거운 것들이라니까 딱딱하게 굳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들은 언제나 짜고 매콤한 것들뿐이라니까 퉁퉁 불은 배춧잎 누르스름 국그릇 둥둥 떠다니는 밥풀들 타일 바닥 고무장화 밑으로 수채통이 막혔습니다
누가 수도꼭지 좀 잠가주시겠습니까? 거기 아무도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