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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애란 金愛欄
1980년 인천 출생.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안녕이라 그랬어』,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이중 하나는 거짓말』 등이 있음.
brokenname@empas.com
그릇장
어진이 부엌으로 나와 잠옷 위에 누빔조끼를 덧입었다. 그러고는 추운 듯 어깨를 웅크린 채 전기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부엌창 너머로 전신주의 어지러운 선과 가지 잘린 회백색 나무가 보였다. 한파 탓인지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어진은 간밤 딸애와의 말다툼을 떠올리며 한숨 쉬었다. 올해 고 2가 된 유라는 새삼 미술이 하고 싶다며 입시학원을 끊어달라고 했다. 어진 이 여러 이유를 대며 반대하자 유라는 잠자코 있다 무심하게 한마디 했다.
—돈 없으면 그냥 없다고 해.
어진이 부엌 한편의 그릇장 쪽으로 서너발짝 걸어갔다. 키가 크지 않은 직육면체 모양에 반투명 유리문이 달린 꼬냑빛 원목장이었다. 어진은 두개의 여닫이문을 열어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봤다. 지난 이십여년간 새 계약을 맺거나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차곡차곡 하나씩 사 모은 것들이었다. 생활이 정말 어려웠을 때조차 오히려 그 생활에 지지 않으려 고집해 더 애정이 가는. 그중에는 ‘우리 형편에 무슨……’ 하고 몇번이나 들었다 놓은 잔도 있었다. 어진이 나뭇잎 모양의 찻잔받침을 꺼내 식탁에 놨다. 이어서 백자 잔 두개도 꺼냈다. 모든 게 낡고 좁은 이 빌라에서 그 조그마한 흰빛이 실향민의 특정 악센트처럼 존재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어진의 한 후배는 이곳에 놀러왔다 집 안 곳곳에 독버섯처럼 핀 미(美)를 보고 농담하듯 말했었다.
—선배. 여기, 그 미장센으로 유명한 감독 세트장 같아요. 그러곤 아무 악의 없이 해맑게 덧붙였다.
—그런데 그거 알아요? 그 감독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죄짓는 거.
어진이 차판에 찻잔을 올렸다. 찻물을 버릴 수 있도록 대나무 문살 구멍이 뚫려 있고 아래로는 물받침 서랍이 달린 차판이었다. 어진은 거기 찻주전자인 자사호와 물 식히는 대접인 숙우도 함께 올렸다. 그러곤 찬장에서 보이 차를 꺼내 차칼로 조금 떼어냈다. 중국에 출장을 다녀온 동료가 선물해준 차로 어진이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을 때마다 아껴 먹는 거였다. 둥글게 뭉친 찻잎 주위로 흙냄새와 비 냄새, 풀내음이 퍼져 익숙한 기대감이 일었다. 십여년 전 육아로 기진맥진하던 때는 맥주가 더 당겼는데, 아이가 크고 나서야 비로소 다구 쓸 일이 생겼다. 돌봄과 살림 그리고 본업까지 감당하느라 잠잘 시간도 모자랐던 어진이 자신만을 위해 가까스로 확보한 한뼘의 땅. 그렇다고 누워 잘 만한 크기는 안 되고 전장에 나가기 전 잠깐 숨 고를 정도의 자리는 됐다.
어진이 뜨거운 물로 자사호와 찻잔을 데운 뒤 그 물을 차판 퇴수기에 버렸다. 한차례 데워진 자사호에 찻잎과 뜨거운 물을 담은 다음 뚜껑을 닫고 그 위로도 한번 더 물을 부었다. 수증기가 휘발되며 자사호 겉면이 말라가는 사이 어진은 어둠 속에서 느린 꿈처럼 부풀 찻잎의 운동을 상상했다. 수행하듯 뭔가 계속 씻어내고 데우고 비워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간밤의 속 시끄러움이 잦아들지 않았다. 어진은 첫 찻물을 따라버리고 내린 두번째 차를 유리 숙우에 받아 앞서 데워둔 백자 잔에 따랐다. 그러곤 ‘일단 차를 마시며 생각해보자’고, 따뜻한 물로 속을 데우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자기암시를 걸었다. 그러려면 “돈 없으면 그냥 없다고 해”라는 말부터 씻어 내려야 했다.
대학원에서 네살 연하의 남자를 만나 삼십대 초반에 예정 없이 미혼모가 된 어진은 임신부 시절부터 삽화 일을 가리지 않았다. 유아용 그림책을 비롯해 위인전과 학습지, 기업 브로슈어, 공공기관 홍보물 등에 그림을 댔다. 원래는 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인데 경력이 쌓이다보니 그대로 본업이 됐다. 게다가 삽화 일은 어진이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였다. 그중 어진이 가장 오래 한 일은 십여년간 한 불교신문에 삽화를 실은 거였다. 어진네 사정을 잘 아는 스님이 자신이 일주일에 한번씩 신문에 칼럼을 쓰니 거기 그림을 얹자 하여 생긴 일이었다. 심지어 어진은 불자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년 전, 스님이 지병으로 돌아가시면서 연재 일마저 끊겨 어진은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 ‘그 정도 그림’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맡기는 게 더 빠르고 경제적이라 판단한 업계 흐름도 한몫했다. 그간 큰 조명을 받은 적도 없고, 대표작이랄 만한 것도 없었지만 업계 사람들이 ‘같 이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 정도로는 살아온 것 같은데,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온 듯했다. 언제는 시키는 대로 하라더니 갑자기 창의성과 고유성 타령을 하며 맡겨둔 돈 찾듯 굴었다. 어진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자주 잠을 설쳤다. 어느 때는 ‘내 그림이 너무 올드한가?’ ‘아니, 나는 내 그림 내 작업이랄 게 거의 없는데? 값에 맞춰 원하는 결 과물을 내줬는데?’ 자문했다. ‘어쩌면 바로 그게 문제였을까?’ 하고. ‘그 긴 미술사를 거쳐 마침내 우리가 도착한 데가 여기인가?’ 싶은 회의도 들었다. 와중에 딸애는 눈치 없이 미대에 가겠다고 떼를 써 복장이 터졌다. 지금도 분명 깨어 있을 텐데 일부러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게 확실했다.
찻상 앞에 어진이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앉았다. 그러곤 먼 곳의 산수(山水)라도 보듯 제 앞의 빈 잔을 보며 찻물에 입을 적셨다. 한겨울 머그잔을 쥐면 말수 적고 두툼한 손을 가진 남자와 악수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처럼, 차분하니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났다. 괜찮다고, 진정하라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자고. 아니, 할 수 있다면 그 ‘생각’을 내려놓는 일부터 해보자고. 물론 쉽지는 않았다. 십년 넘게 스님의 칼럼을 읽어왔으면서도 어떤 말에는 가닿을 수 없던 것처럼. 어진은 어느새 또 딸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간 한 분야에서 나름 ‘그림밥’을 먹고 살아온 어진에게는 ‘보는 눈’이 있었다. 그리고 어진이 보기에 유라에게는 재능이 없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 면 ‘빛을 향할 수는 있되 스스로 빛이 되기는 어려운, 딱 그만큼의 재능’을 갖고 있었다. 어진 자신만큼의 재능. 제 엄마의 삶을 다 봐왔으면서도 그 길을 가겠다는 아이가 어진은 이상했다. 어쩌면 제 아빠의 길이 궁금해진 걸 까? 살면서 몇번 본 적도 없는데?
어진은 회화과를 졸업하고 패션회사에 다니다 스물아홉에 회사를 관두고 다시 모교 대학원에 들어갔다. 모아둔 돈도, 뚜렷한 전망도 없이 서른이 되기 전 큰 용기를 낸 거였다. 그때는 왠지 서른을 넘기면 화가가 될 기회를 영영 잃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 어진은 재훈을 만났다. 두 사람은 ‘유복하지 않게 큰 예술가 지망생’이란 공통분모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삼년가량 동거 했다. 재훈은 졸업과 동시에 베를린으로 유학을 갔다. 재훈이 떠나고 한달이 지나서야 어진은 임신 사실을 알았다. 두 사람은 이미 헤어진 뒤였지만 어진은 재훈에게 임신 소식을 알렸다. 재훈은 아이를 원치 않았고, 어진은 재훈을 원치 않되 아이는 원했다. 유라도 알고 있는 얘기였다. 몇년 뒤 귀국한 재 훈이 결혼해 아들을 낳은 것과 지방의 모 미술대학에서 비정규직 강사로 일하고 있는 걸 알았지만 어진은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유라의 미술 진로를 그렇게 반대한 것도 어쩌면 그 영혼의 뿌리와 점선을 잇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몰랐다. 정작 본인도 아직 못 놓고 있으면서 그랬다. 불교신문 연재가 끊긴 뒤 어진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자기 작업에 몰두했다. 스물아홉, 꿈을 향해 문득 뒤돌아 걸어갔던 것처럼 마흔아홉, 자신이 이미 떠났다고 생각한 땅으로 다시 들어갔다. 마흔과 쉰은 또 달라서 일년 뒤 오십이 된다는 게 어진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외주 일이 줄자 ‘내 그림’이 궁금해졌다. 이제 남의 이야기는 충분히 도왔다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다. 더불어 그게 조금이나마 생활에 도움이 된다면, 밤마다 잠이 안 올 정도로 두렵고 불안한 이 상태가 조금 나아질 것 같았다.
그림책 공모에 떨어진 뒤 어진은 몹시 실망했다. 하지만 예상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려 애썼다. ‘글작가와 그림작가를 함께 해보기는 처음이라 내가 아직 미숙한가보다’ 생각하면서 같은 원고를 여러번 다듬고 고치길 반복했다. 그렇게 일년 가까이 이런저런 공모와 출판사 문을 두드렸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실패를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한번은 아는 편집자에게 ‘가볍게 한번 검토해달라’며 원고를 직접 전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연락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석달이 지났을 즈음 어진은 출판사에 먼저 전화했다. 담당편집자는 난처하고 예의바른 말투로 ‘내부회의가 길어져 연락이 늦었다’고 했다. 그러곤 ‘작품이 출판사의 성격과 맞지 않아’ 출간이 어려울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렇게 오십이 됐고, 그러고도 도무지 포기가 안 돼 어진은 반년 정도 더 원고를 붙들었다. 그러다 통장잔고가 비고, 기존에 해온 일마저 끊기겠다 싶어 겁이 날 즈음 어진은 다시 고정적인 일감을 찾으러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출판물 시장은 전보다 더 얼어붙어 있었다. 이제는 정말 전공이나 경력과 무관한 일을 찾아야 할지 몰랐다. 그 무 렵, 어진은 대학 은사의 장례식에 갔다 학교 선배를 만났다. 육개장과 절편, 편육과 맥주 등을 앞에 두고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선배가 ‘오랫동안 구청문화센터에 강의를 나갔는데 몸이 아파 더이상 못하게 됐다’며 어진에게 혹시 관심 있으면 이력서를 내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곧 홈페이지에 구인공고가 뜰 텐데 공채 형식이라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담당자에게 언질은 해놓겠다고. 강의료가 지나치게 적었지만 어진은 서둘러 서류를 냈다. 다행히 얼마 안 돼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렇게 지난 12월, 늦깎이 강사로서 생애 첫 강의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번, 하루 두 시간, 8주짜리 ‘기초 드로잉’ 과정이었다. 운이 좋으면 다음 또 그다음 분기에도 일이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그 드로잉 수업의 마지막 날이었다. 강의평가에 영향을 주는 만큼 어진은 마지막 수업을 잘 마치고 싶었다. 그러려면 하루의 시작이 무척 중요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몸과 마음이 영 맑아지지 않았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마음이 만든 일일뿐이라지만, 그 마음의 힘이 너무 셌다. 어진이 빈 잔에 다시 찻물을 따르며 벽시계를 봤다. 수업 시작까지 아직 다섯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
강의 첫날, 어진이 구청 2층에 자리한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안에 있던 사람은 모두 아홉명이었다. 강좌를 여는 데 필요한 최소 인원이 여섯이었으니 그만하면 나쁘지 않았다. 수강생 대부분은 오륙십대였고 칠십대 어르신도 한분 계셨다. 대부분 실직이나 은퇴 뒤 남아도는 시간을 어찌할 줄 모르거나 늦게나마 취미와 취향을 찾아 걸음한 이들이었다. 젊은층은 주로 웹툰이나 외국어 수업에 관심이 높다고 했다. 수강생의 면면은 다양했는데, 서예에 조예가 깊은 한 어르신은 처음부터 어진을 평가하고 불신하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미술시간이 제일 버거웠지만 딸의 등쌀에 못이겨 한번 와봤다’는 육십대 여성은 정말 그날 딱 하루만 나오고 말았다. 주위에 떡이나 사탕을 돌리며 사교에 부쩍 관심이 많았던 분도 발길이 끊겼고, 왼쪽에 편마비가 왔지만 오른손은 멀쩡하다며 의욕을 보였던 내성적인 남성 수강생도 나오다 말길 반복하다 소식이 없었다. 초창기의 호기심과 생기는 금방 사라져 수업 집중도가 날로 떨어졌다. 그러다 강의 막바지에는 수강생이 반으로 줄었다. 그리고 종강일인 오늘, 어진이 여느 때처럼 수업 오분 전 강의실로 들어섰을 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고작 세명뿐이었다. 어 진은 체면과 품위를 지키려 애쓰며 남은 시간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수업 시작 후 삼십분도 안 돼 한 사람이 데생을 하다 말고 갑자기 전화를 받았다. 그러곤 주위 반응은 아랑곳 않고 상대와 큰 소리로 대화하다 그대로 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어진은 남은 두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며 수업을 마쳤다. 그리고 아침에 집에서 차를 마시며 준비했던 마지막 인사를 했다.
—손에 익지 않은 일이라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그동안 모두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분이 그림을 더 사랑하고, 삶에 놀라는 법 한가지를 더 얻어가셨기를 바랍니다.
어진 말에 감화받은 듯 수강생 중 한명이 박수를 쳤다. 이어서 남은 한명 도 “선생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강의실 불을 끈 어진은 복도로 나가 수강생 둘과 어색하게 승강기를 기다렸다. 초짜 강사 어진이 엉겁결에 “어떻게, 식사라도 하고 헤어질까요?” 물었다가 이내 후회했다. 아니나 다를까 수강생 중 한명이 “죄송한데 저는 선약이 있어서요”라고 말했다. 어진은 “아, 네, 그럼 가보셔야죠” 라 답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문득 이상한 기운을 느껴 뒤를 돌 아보니 강의실에서 어진에게 박수를 쳐주었던 수강생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어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수업에 한번도 빠지지 않은 이른바 ‘우리 반 모범생’ 김숙희씨였다.
밖으로 나오니 주위가 벌써 어둑해져 있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 들어 하늘을 봤다.
—눈이 오네요?
—그러게요.
두 사람은 식당가가 밀집한 인근 골목 쪽으로 함께 걸어가 유리문에 메뉴 이름이 큼지막이 붙은 돼지두루치기집에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안에서 음식냄새 가득한 습기와 열기가 훅 끼쳐왔다. 어진이 낡은 코트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안경을 닦았다.
—선생님 맥주 한잔 하실래요?
숙희씨의 자연스러운 물음에 어진이 “아, 네, 그러죠”라 답했다. 수강생과 독대가 어색했지만 실은 계속 갈증이 나던 차였다. 어진이 물티슈로 양손을 닦으며 예의 바르게 물었다.
—수업은 들을 만하셨나요?
숙희씨도 내심 어색한지 앞의 물티슈를 뜯었다.
—아유, 그럼요. 저도 몸 쓰는 일 말고 평생 이런 붓질이나 하고 살면 좋겠어요.
그러곤 아차 싶었는지 서둘러 말을 보탰다.
—제가 나중에 수채화랑 유화도 배울 거거든요. 그걸 집에 액자로 걸어두는 게 꿈이에요. 다이소에서 물감세트도 미리 사다놨어요.
사실 전부터 어진은 김숙희씨에 대한 옅은 호감과 호기심이 있었다. 수업 첫날 자기소개 시간 때, 김숙희씨는 자신이 이삿짐센터에서 일한다고, 그런 데 최근 허리를 다쳐 잠시 일을 쉬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한 날 어진은 휴게공간을 지나가다 수강생 몇명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무리 중 한 사람이 “우리 이어진 선생님 유명한 분이셔?”라고 물었다. “유명한데 혹시 나만 모르는가 싶어서”라고. 그러자 다른 사람이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유명 한 분이 그 돈 받고 여기 왜 오겠냐?”고 했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순간 어진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표 안 나게 이 자리를 지나칠까 궁리하는데 가림막 너머로 김숙희씨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명한 분들은 자기가 유명해지는 데 관심이 많아서 정작 수업에는 소홀할 때가 많대요.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 선생님 정도 되니까 그 돈 받고도 우리 같은 초짜를 다정하고 정중하게 가르쳐주시는 거라고요. 나도 이사철마다 신참들 받아봐서 아는데, 잘 아는 사람이 뭘 모르는 사람한테 속도 맞춰주고, 마음 읽어주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고요.
못 들은 척 얼른 몸을 숙였지만 어진은 하마터면 감동할 뻔했다. 그러나 그간 전혀 표 내지 않았고 오늘도 그럴 계획이었다.
—국자 주세요, 제가 뜰게요.
어진이 손을 내밀었다. 숙희씨가 작은 국자로 두루치기 철판 테두리에 맺힌 양념 거품을 능숙하게 걷어냈다.
—미술하는 분은 손을 아끼셔야죠. 손이 재산인데. 고지식한 어진이 이번에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모든 사람의 손은 귀하죠.
그 말에 숙희씨가 가만 웃었다. 평소 명랑하고 수다스럽던 모습과 달리 어딘가 너그럽고 부드러운 미소였다.
—어이쿠, 내 정신 좀 봐. 선생님 잔 비었네.
술이 들어가자 드문드문 이어지던 대화가 좀더 활기를 띠었다. 매운 음식을 먹고 땀까지 흘리니 어진도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두 사람은 수업 때 일 화나 다른 수강생 얘기로 얼마간 이야기를 이어갔다. 더불어 어진은 숙희씨 가 여상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시장에 뛰어든 점, 이삿짐센터에서 일하기 전에는 경리며 계산원, 잡화점 직원 등 여러 일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밖에도 숙희씨가 어진보다 다섯살 위라는 점, 아이나 동거인은 없고 혼자 산다는 점, 취미로 꽃꽂이를 배운 적이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근데 꽃꽂이는 돈이 많이 들더라고요. 생화라 금방 시들고. 그래서 차라리 내가 꽃을 그려버리자 하고 생각했지요. 어진이 두 손으로 공손히 맥주를 따랐다.
—취미가 많으면 좋죠.
숙희씨도 배려하듯 몸을 기울여 맥주를 받았다. 비스듬 기울어진 잔 위로 황금빛 기포가 빠르게 올라왔다.
—그렇죠, 백세 인생이라는데. 뭐라도 하고 살아야죠. 숙희씨의 말에 어진이 깊이 공감했다.
—그렇죠, 뭐라도.
숙희씨가 집게로 돼지두루치기를 집어 어진의 앞접시에 가득 담았다. 그 런 뒤 자신의 접시에도 몇점 옮겼다.
—선생님은 취미가 뭐예요?
—저요?
—네.
—저는……
어진이 주저하다 뭐 대단한 비밀인가 싶어 입을 열었다.
—그릇 모으는 걸 좋아해요.
순간 숙희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머, 정말요? 저도! 저도 그릇 모으는 게 취미예요. 신기하다, 진짜.
—그래요?
—네에! 저희 집에 그릇 진짜 많아요. 제가 근 십년간 차곡차곡 하나씩 다 모은 거예요.
—반갑네요. 실은 제가 거의 유일하게 하는 사치예요.
—아이구, 사치는요. 선생님 검소하신 거 딱 봐도 표 나는데.
—제가요?
—아뇨, 아뇨, 제 말은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미적인 거 공부하신 분이 미적인 거 좋아하는 게 뭔 죄냐는 거죠.
순간 숙희씨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두 눈을 반짝였다.
—그럼 이따 저희 집 가서 차 한잔 하실래요? 어진이 당황하며 두 눈을 깜빡였다.
—제가 모은 그릇들 보여드릴게요. 집도 바로 이 근처라 멀지 않아요. 어진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숙희씨가 잠시 상기됐던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레 말했다.
—실은 오늘이 종강일이라 선생님께 작은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 집에 그릇 하나를 포장해두었거든요. 근데 정신머리 없이 그걸 깜빡하고 왔지 뭐예요. 괜히 선생님이 부담 가지실까봐 얘기 못했는데. 겸사겸사 같이 가시는 게 어때요?
*
숙희씨의 집은 3층짜리 다세대주택 1층에 있었다. 방 두개에 거실 겸 부엌 하나, 화장실로 이뤄져 그 크기나 구조가 어진의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에 화분이 많네요.
어진이 신을 벗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아, 제가 나무, 풀, 꽃 이런 거 좋아해서요. 그림도 골 아픈 건 싫고 풍 경화가 제일 좋아요.
숙희씨가 어진의 코트와 가방을 받아 안방 옷걸이에 걸었다. 본인 패딩은 거실 한쪽의 1인용 소파에 대충 던져두고 본격적인 ‘티타임’을 준비했다. 소 매를 걷고 의욕적으로 개수대 앞에 선 숙희씨가 말을 이었다.
—선생님, 근데 이삿짐 인부들이 제일 싫어하는 짐 중 하나가 저 화분이에요.
—왜요?
—잘 쓰러지고, 깨지고, 하나하나 직접 옮겨야 해서 무게랑 상관없이 괜히 힘만 빠지거든요.
숙희씨가 스테인리스 볼에 딸기를 담고 수돗물을 틀더니 곧장 전기주전 자에 빠르게 물을 올렸다. 이삿짐 정리에 도가 튼 사람답게 모든 일에 효율 과 속도가 배어 있었다.
—저도 도울게요.
—아유, 가만 계세요. 저희 집 손님이신걸요.
—과일 말고 케이크나 빵 사 올걸. 괜히 일을 만들어드렸네요.
—아녜요, 선생님. 손님이라도 와야 저도 이런 거 먹지. 평소에는 귀찮아서 잘 안 사요.
숙희씨가 씻은 딸기를 둥근 접시에 담아 어진 앞에 내놓았다. 남은 딸기 한팩은 바로 냉장실에 넣었다.
—칭기스 칸이네요?
분주한 숙희씨의 몸짓을 눈으로 좇던 어진이 알은체를 했다.
—이거요? 제 남친이 준 거예요.
숙희씨가 주방용 수건으로 젖은 손을 닦았다.
—몽골사람이었어요. 작년에 울란바토르에 갔다 오며 하나 사 주더라고 요. 아, 그렇다고 이것만 준 건 아니고요. 캐시미어 머플러도 선물했어요. 어진이 부드럽게 대꾸했다.
—다음에는 같이 가세요. 사막 구경도 하고. 숙희씨가 주춤하다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헤어졌어요. 반년 전에. 이 칭기스 칸 자석도 실은 나 주려고 산 게 아니라 자기가 보려고 붙여놓은 것 같은데. 짐 싸갖고 나갈 때 깜박했나봐요. 어진이 냉장고에 붙은 하나뿐인 자석을 유의 깊게 바라봤다. 검은 실루엣의 칭기스 칸이 말 위에 올라 어딘가로 돌진하고 있었다. 숙희씨가 무언가 찾는 듯 찬장 서랍을 뒤졌다.
—선생님, 근데 있잖아요. 제가 아는 언니가 한명 있는데요. 그 언니는 이사 일 할 때마다 꼭 그 집에서 냉장고 자석을 하나씩 가져오는 게 취미래요. 그 언니 집에 가면 냉장고가 막 세계지도야. 정작 그중 자기가 가본 데는 하나도 없고. 하하. 아, 찾았다.
숙희씨가 겉면에 자잘한 꽃무늬가 가득 박힌 종이상자를 내보이며 방긋 웃었다.
—이거 제 친구가 저번에 유럽여행 갔다 사 온 차인데요. 저도 한번 마셔 봤는데 너무너무 맛있는 거예요. 선생님, 카페인 괜찮으시죠?
—네. 중독자입니다.
—그럼 그전에 잔 먼저 고르실래요? 아, 내 정신 좀 봐. 그릇장 먼저 보여드린다는 게.
숙희씨가 식탁에서 몇걸음 안 되는 곳으로 어진을 이끌었다. 세로로 긴 직육면체 형태에 크림색 페인트가 두껍게 입혀진 프로방스풍 가구였다. 이윽고 숙희씨가 두 팔 벌려 짜잔 하고 그릇장을 열었다. 얼굴 위로 숨길 수 없는 기쁨과 자긍심이 어렸다. 어진도 기대감 어린 눈으로 그릇장을 살폈지만, 이내 실망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그 안에는 어진이 상상한 앤 티크나 빈티지 잔 대신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투박한 머그컵과 식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색도 선도 만듦새도 어진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그릇들이었다. 영어 숙어 그대로 ‘댓츠 낫 마이 컵 오브 티’(That’s not my cup of tea).
—근사하네요.
애써 칭찬하다 문득 한곳에 시선을 멈췄다.
—그런데 종지가 엄청 많네요?
그릇장 맨 아래 칸에 조그마한 종지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모양도 무늬 도 제각각인 게 어림잡아 몇백개는 되어 보였다. 마치 선체에 붙은 따개비처럼 다글다글했다.
—누가 보면 무슨 횟집이라도 차린 줄 알 거예요. 아니, 차린 게 아니라 망했다 여기려나?
어진이 종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숙희씨가 화제를 돌렸다.
—무슨 잔에 드실래요? 과일향 나는 이 홍차 마실 거예요. 괜찮으시죠?
—그럼요.
어진이 고심하다 금박 테두리와 분홍 장미로 장식된 영국산 찻잔 세트를 골랐다. 잔 모으는 사람들에게는 나름 유명해 어진도 이미 알고 있는 제품이 었다.
—어쩜 제 생각과 같으시네요. 실은 우리 집에서 제일 좋은 잔에 드리고 싶었거든요. 역시 보는 눈이 있으셔.
이윽고 두 사람이 식탁에 마주 앉았다. 어진은 잔에 담긴 맑은 홍찻물을 가만 응시했다. 그러곤 넝쿨 모양의 찻잔 손잡이를 들어 입가로 가져갔다. 차에서 다소 인공적인 감미가 느껴졌지만 식도를 타고 가슴으로 퍼지는 물 의 흐름이 따뜻한 안정감을 줬다.
—음, 맛있네요.
실은 숙희씨가 말한 것처럼 ‘너무너무 맛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진은 그런 걸 분간하는 자신을 조금 징그럽다 여기며 기꺼이 몸을 데웠다. 동시에 누군가와 이렇게 차담을 나누는 게 얼마 만인가 싶었다. 어진이 생각하기에 인간은 언젠가 ‘아무도 나에게 바라는 게 없는, 얻을 게 없는’ 시기를 맞게 되는데, 누군가는 그걸 좀더 빨리 겪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어진 자신 이었다. 어느덧 꿈도 사랑도 우정도 희미해진 중년이 되어 문득 주위를 둘러보다 적막해지는 순간. 자신이 가진 것뿐 아니라 남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줄어듦을 실감하는 때. 젊을 때는 ‘교환’ 없는 만남이 순수함의 증거라고 여겼었는데. 그 무엇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해줄 거라 믿은 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나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면서 딸애에게 자주 읽어줬던 그림책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마녀』 속 울분에 찬 마녀처럼 되지 않으려 자신을 단속했다. 그러니 지난 문화강좌가 어진에게 준 것 중 가장 큰 것은 아마 돈도 존경도 아닌 바로 그 ‘필요한 사람’의 감각이었는지도 몰랐다.
—맛있죠, 선생님? 젊을 땐 저도 물맛이 다 거기서 거기지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어진 또한 그랬다. 어릴 때는 차를 선물받아도 다 마시지 못하고 소비기한을 넘길 때가 많았는데 나이 들고 입이 자주 마르다보니 절로 차를 찾게 되었다. 그러다 화장실에 자주 가고 그러면 또 갈증이 나고 그러다보니 다시 차를 마시는 식으로.
—참, 이런 거 보면 유럽 애들이 빨라요.
숙희씨가 짐짓 우쭐한 투로 찻잔을 허공에 돌리면서 말했다. 그러자 방금 숙희씨에게 한발짝 다가섰던 어진의 마음이 다시 두발짝 물러섰다. ‘그렇 지, 나이 들어 우정은 쉽지 않지. 우호면 몰라도.’ 어진이 차분하게 아니라고, 차 문화는 중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고 정정해주려다 말았다. 괜히 잘난 체하고 싶지 않았다. ‘유럽에서는 차는 수입품이자 사치재였고 그러다보니 지금 우리처럼 서로의 성에 방문해 도자기방을 자랑하는 사교가 유행했었다’는 말도 삼켰다. 어진도 전에 다구회사의 사보 그림작업을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다행히 숙희씨가 다른 화제를 꺼냈다.
—선생님, 선생님의 첫 잔은 뭐예요? 그릇 모으는 게 취미면 뭐든 시작이 있으셨을 거 아녜요.
어진이 잠시 회상에 잠겼다.
—커피잔 세트였어요. 상아색 2인조 세트. 숙희씨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커플템이네.
어진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숙희씨 말이 맞았다. 이십여년 전, 재 훈과 동거할 때 어진은 백화점 지하상가에 마감세일하는 식품을 사러 갔었다. 그러다 우연히 마음에 드는 커피잔 세트를 발견했다. 받침 포함 총 네벌로 이뤄진 2인조 세트였다. 우아한 상아색 바탕에 기하학적 금박 무늬가 새겨진 잔을 보고 어진은 한눈에 반했다. 그럼에도 매장 안을 괜히 몇번씩 돌며 마음을 다스렸다. 할인 폭이 꽤 높았는데도 부담되는 가격이었다. 어진은 결국 할부로 그 잔을 샀다. 대신 원래 구성이 아닌 1인조 세트만 샀다. 그런데 그날 저녁 밥을 먹다 스치듯 그 이야기를 들은 재훈이 다음 날 백화점에서 어진이 말한 것과 똑같은 걸 사 왔다. 그러곤 태연스레 “이제 짝이 맞는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런데, 그렇게 떠났으면 잘살지. 오십을 목전에 두고 여전히 어렵게 살면서 그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유라까지 버렸을까. 그렇게 겁이 났나, 가난이.’
—그거 지금도 갖고 계세요? 어진이 담담하게 답했다.
—그럼요. 딸애랑 써요. 최근 받침 하나에 이가 나갔는데 이걸 버려야지, 버려야지 하면서도 계속 이고 사네요? 둘 중 한 사람만 격식 갖추기 뭣해 아 예 그 잔 세트는 안 꺼내거나 꺼내더라도 둘 다 받침 없이 마시거나 그러고 있어요.
숙희씨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저도 이삿짐센터에서 팔년 가까이 일하며 별별 집에 다 다녀 봤는데요. 저 사람은 왜 저런 것까지 이고 사나 싶고, 또 저 가족은 왜 이런 귀 하고 멀쩡한 것까지 버리나 싶더라고요. 선생님, 딸기 좀 드세요. 나만 먹네.
—저 많이 먹었어요.
숙희씨가 냉장고 자석이 붙어 있는 쪽으로 가만 시선을 돌렸다.
—전 남친도 거기서 만났어요. 요새 이삿짐 인부들 몽골인이 대세거든 요. 유목민들이라 그런가 짐 싸는 데 아주 선수들이야, 정리가 기가 막혀요. 그이도 그랬어요. 젊고, 맑고, 건강하고. 저보다 다섯살 어렸거든요. 저랑 사 년이나 살았어요, 여기서.
숙희씨가 다시 찻물로 입을 적셨다.
—처음에는 얘가 나이도 많은 나랑 왜 만나나 궁금하고 막 의심도 들고 그랬거든요. 근데 동거하는 내내 결혼하자는 말을 한번도 안 하네? 그래서 어느날 제가 그랬죠. 너 나랑 결혼하면 한국 국적 얻을 수 있어. 그랬더니 씩 웃기만 하고 대답을 안 해. 몇년 뒤에 지나가듯 다시 또 물었더니 그때도 미소만 짓고. 그러다 헤어졌어요. 반년 전에. 나 허리 다치고 쉬는 사이에. 어진이 괜히 손끝으로 찻잔 둘레를 만지작거렸다.
—혼자서 몽골로 돌아가신 거예요?
—아니요. 여전히 이삿짐센터에서 일해요.
숙희씨가 다시 차를 마시려다 문득 두 찻잔이 모두 빈 걸 보고 뭔가 고민 했다.
—선생님,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 집에 좋은 산삼주가 있는데 목 축이실 래요? 페트병에 파는 담금주용 소주 말고 일품 안동소주로 만든 거예요. 담근 지 이십년도 넘어요.
—아,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 한번 드셔보세요. 이런 술은 술이 아니라 약이에요, 약. 숙희씨가 장난스레 한쪽 눈을 찡긋한 뒤 작은 국자와 놋주전자를 챙겨 부엌 뒷문으로 사라졌다가 얼마 후 주전자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숙희씨는 어진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고 그릇장에서 소주잔 두개를 가져왔다.
—집에 이렇게 잔이 많은데 술이 없으면 안 되죠. 신발이 많은데 약속이 없어도 안 되고. 정이 많은데 친구가 없어도. 어, 또 뭐가 있지?
어진이 잔잔하게 맞장구를 쳤다.
—경력이 많은데 일이 없어도?
—맞아, 바로 그거예요.
숙희씨가 어진의 잔에 먼저 초로록 술을 따랐다. 투명한 유리 안에서 옅은 황금빛 액체가 출렁였다.
한잔은 두잔으로, 두잔은 또 세잔으로 가속도가 붙었다. 선생답게 체면을 지키려 했던 어진도 어느새 조금 나른한 상태가 됐다. 어진이 산삼주 때문에 잠시 옆으로 밀린 분홍 장미 찻잔을 가리키며 살짝 상기된 투로 말했다.
—이 잔들 말이에요…… 속에 뼛가루 섞인 거 아세요? 숙희씨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정말요?
—네. 본차이나 할 때 그 본이 뼈더라고요. 저도 작업하다 알았어요. 전부터 흙에 우골분을 꽤 섞었대요. 단단해지라고.
숙희씨가 개구지게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마치 어린아이처럼 말에 아무 힘을 주지 않고 어진이 듣기에 놀라운 말을 했다.
—그럼 이거 완전 뼈그릇이네. 원효대사 해골물. 어쩐지 달더라. 그러곤 적당히 취기가 오른 채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선생님, 저 비밀 하나 말해도 돼요?
비밀이라니. 평소라면 바로 부담되었을 텐데 지금은 왠지 살짝 호기심이 들었다.
—지금껏 남한테는 말한 적 없는데 선생님한테만 특별히 말씀드리는 거예요. 근데 선생님이 나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
숙희씨가 진심으로 고민했다.
—에이 모르겠다. 선생님, 제 몽골 애인 있잖아요. 그 사람 집 나가고 제가 되게 힘든 시간을 보냈거든요? 그러다 한 날 그 사람이 너무 미워서 술 먹고 홧김에 신고를 했어요. 어찌어찌 번호 검색해서 전화를 했단 말이에요? 여보세요? 저 불법체류자 신고하려는데요. 네. 이름이요? 저요? 그 사람이요? 횡설수설했는데, 그런데, 차마 이름을 못 말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도중에 그냥 끊었어요.
어진이 아무 말 없이 숙희씨의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생각보다 술주전자가 무거워 손이 떨렸다. 언제부터인가 손목뿐 아니라 손아귀 힘도 약해져 뭘 잘 놓쳤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그릇을 깨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직업병 아니면 우연이려니 했는데 이제 그냥 그런 나이가 된 거였다. 가만히 있어도 무 언갈 놓치는. 손가락 사이로 뭔가 계속 빠져나가는. 아마 숙희씨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선생님, 근데 있잖아요. 제가 동거했던 그 남자가요, 이 집 나가면서 저 그릇장에서 제가 제일 아끼는, 의미있는 그릇을 가져갔어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어느날 보니 없는 거예요. 딱 그것만.
—설마요. 혹시 착각하신 건 아니고요?
—아녜요. 걔밖에 없어요, 이 집에 오는 사람은. 걔가 맞아요.
—무슨…… 그릇이었는데요? 숙희씨가 뜻 모를 표정을 지었다.
—종지요, 간장종지.
그러곤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릇장으로 향했다.
—이것도 진짜 아무한테도 얘기한 적 없는데요.
어진은 숙희씨가 말과 다르게 이 순간 무언가 몹시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고 느꼈다. 심지어 이런 시간을 고대한 것 같다고.
—대신 저 비웃으시면 안 돼요.
어진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숙희씨처럼 나 역시 그런가? 외로웠나?’ 자문했다.
—아까 제가 이사하는 집에서 냉장고 자석 훔치는 언니 얘기했잖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그게 종지였어요, 이 간장종지.
숙희씨가 그릇장 문을 열어 맨 아래 칸을 바라봤다. 동시에 어진의 시선도 그리 향했다.
—그 언니는 막상 본인이 가본 데는 하나도 없는데요. 나는 내가 다 가본 집들 종지에요. 어디 보자, 이건 저기 그 한강이 내다보였던 반포 아파트 거, 이건 동소문동에 자리한 단독주택에서 가져온 거, 또 이건…… 사실 시작은 별거 없었어요. 한 날 제가 짐을 싸다 제 손바닥만 한 유리접시를 하나 깨뜨린 적 있거든요? 근데 그게 글쎄 백만원이 넘는 거였어요. 저는 그 집 주인분이 말해줘서 알았고요. 팀장님도 나서서 사과하고 난리가 났죠. 근데 그 사모님이 화를 안 내. 대신 언짢은 듯 묘하게 웃으면서 저한테 좀 조심하지 그랬냐고 하데요. 변상은 됐다면서. 이거 하나가 아주머니 일당보다 몇배는 한다면서. 살짝 피가 나는 손가락을 다른 손으로 감싸쥔 채 사모님께 연신 감사하다고 했어요. 죄송하다고도요. 그날 처음이었어요. 남의 집 종지를 가져온 건.
어진은 어느새 숙희씨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스스로를 경계하려 애썼다.
—종지라는 게 되게 애매하잖아요. 원래 없던 건지 없어진 건지 헷갈리고. 항의하자니 증거도 없는데다 너무 싸고 하찮은 물건이고. 요즘 시대에 또 누군가를 그렇게 대놓고 의심하는 게 피차 불편한 일이기도 하고요. 귀찮고.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에는 찝찝한데 또 금방 잊히는 게 이 종지예요, 종지. 그래서 저는요, 제가 일한 집에서 나올 때마다 조끼 주머니나 소매 안쪽에 꼭 이런 종지 하나씩을 숨겨 오곤 했어요.
여기까지 말한 뒤 숙희씨는 잠시 숨을 골랐다.
—저한테 실망하신 거 아니죠?
어진은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가만있었다.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지만요. 그래도 제가 어디 가든 꼭 지켜온 원칙이 하나 있어요. 아무리 마음에 드는 종지가 있다 한들 절대 두개는 안 가져온다는 거예요. 한 집당 딱 하나. 지금까지 그걸 어긴 적은 한번도 없어요. 상대를 비난하지도 두둔하지도 않는 말을 고르다 어진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똑같은 종지가 하나도 없네요?
숙희씨가 ‘그걸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 기쁘다’ 하는 얼굴로 눈을 크게 떴다.
—네, 맞아요. 선생님. 여기 똑같은 건 없어요.
—우연히 겹친 적도요?
—있어요. 어쩌다 똑같은 게 두개 이상 생길 때가 당연히 있어요. 그러면 저는 그중 하나를 늘 몸에 지니고 다니다가 다른 집에 슬쩍 두고 와요.
—어떤 집에요?
—간장종지가 없는 집에요. 어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상 어딘가에는 당연히 그런 집이 있을 거 아니에요. 뭐, 살림을 전혀 안 한다거나 환경이 여의치 않은. 그럼 제가 그 집 찬장이나 서랍 안을 행주질하는 척하다 슬며시 그 안에 종지를 놓고 오는 거예요.
—……그렇군요.
—네. 그런데 제 몽골 애인이요, 그러니까 걔가 이 집을 떠나면서 제가 가장 아끼는 종지를 가져갔어요. 이 그릇장을 사게 만들었던 바로 그 첫번째 종지를요.
—아……
어진은 자신의 입에서 나온 탄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바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 집에서 같이 살았으니 걔도 눈치챘겠죠. 이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왜 계속 늘어나는지. 그런데 물어보지 않더라고요. 저는…… 그게 좋았어요. 바보 같은 말이지만 저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느껴졌거든요. 그 모른 척이.
마지막 말을 내뱉으며 숙희씨가 살짝 웃어 보였다. 지난 8주 동안 한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어진은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다음 말을 기다리듯 그녀의 입술을 바라봤다. 그런데 순간 어진의 휴대전화 진동음이 크게 울렸다. 어진이 반사적으로 고개 숙여 화면에 뜬 메시지를 봤다.
‘엄마, 왜 안 와?’
딸애였다. 숙희씨가 방 안의 공기를 붙잡으려는 듯 급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느 비 오는 날 그 사람과 삼겹살을 구워 먹다 그 종지에 소 금장을 만들어주며 제가 직접 말해줬어요. 이 종지가 왜 이 집에 오게 됐는지, 왜 이 집에 어울리지도 않는 그릇장이 놓인 건지 아느냐고. 마치 퀴즈 내듯이. 그런데 그 사람이 제 얘기를 다 듣고 나서도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 말더라고요. 한국말 거의 다 알아들으면서, 절반만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아마 그날이 왜 나한테 결혼하자는 말 안 하냐고 물어봤던 날이었을 거예요.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어진을 구해주려는 듯 다시 한번 휴대전화 진 동음이 울렸다.
‘엄마, 나 그림 같은 거 안 해도 돼. 안 해도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볼게.’ 어진이 뭐라도 얼른 답장을 해줘야 할 것 같아 휴대전화를 들고 망설이자 방금 전까지 달떠 있던 숙희씨 얼굴이 이내 익숙한 수강생의 얼굴로 돌아왔다.
—제가 쓸데없이 말이 많았죠. 산삼주 이거, 요물이네.
—아니에요, 딸애가 집에 혼자 있어서.
—엄마 안 온다고 걱정하는 것 같은데 일어나셔야죠. 제가 주책맞게 선생님을 너무 오래 붙잡았네요. 정말 주책이야, 김숙희.
숙희씨가 자리에서 먼저 일어서며 새삼 격식 있는 투로 “선생님 덕에 정말 많이 배웠고 즐거웠습니다”라고 했다. 어진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가 한 번 더 울렸다. 어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휴대전화를 살폈다.
‘어제 그런 말 해서 미안해.’ 숙희씨가 머뭇대다 말했다.
—언제 또 뵐 수 있을까요?
어진이 옅게 웃으며 “제 수업이 워낙 인기가 없어 잘 모르겠네요”라고 했 다. 숙희씨가 진심으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참, 내 정신 좀 봐. 제가 아까 종강 선물 준비했다고 했죠? 그릇 포장해둔 걸 깜빡했다고.
어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거짓말이었어요. 어진이 가볍게 받아쳤다.
—알고 있었어요.
—안 그러면 선생님이 안 오실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포장만 안 했을 뿐 이지 선물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어요. 저 진짜로 선생님께 그릇 하나 드리고 싶어요.
어진의 답이 나오기도 전에 숙희씨가 이번에도 성큼 그릇장 앞으로 갔다. 그러곤 마치 연회장 문을 열듯 두 팔 벌려 그릇장 문을 열었다.
—하나 골라보시겠어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 얼른 하나 골라보세요. 기념으로 꼭 드리고 싶어요. 숙희씨가 거듭 청하자 어진도 마지못해 허리를 숙였다. 그러곤 자기도 모르게 수백개의 종지가 쌓인 맨 아래 칸으로 손을 뻗어 제일 먼저 닿은 것을 들었다. 흰 바탕에 푸른 테두리가 그려진 종지였다. 종지 겉면에 작고 푸른 점이 마치 눈송이처럼 점점이 찍혀 있었다. 어디에나 있고 흔해 빠진 디자인이었다. 숙희씨 말마따나 당장 없어져도 원래 없던 건지 없어진 건지 모를 물건이었다. 선생님이 과연 무얼 고를지 정말 기대된다는 얼굴로 옆에 서 있던 숙희씨가 기쁘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 잘 고르셨어요, 선생님. 좋은 선택이에요.
어진 또한 잠시 말을 고르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최선일 수 있는 대답을 했다.
—제 생각도 그래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골목에 어느새 눈이 쌓여 있었다. 이런 날에는 잘못 걷다 넘어지기 십상임을 알면서도 어진은 코트 주머니에 깊이 찔러 넣은 두 손을 빼지 않고 뒤뚱뒤뚱 위태롭게 걸어나갔다. 그러면서 한쪽 주머니에 든 작은 종지 하나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손끝에 닿는 작은 종지의 감촉이 선득하고 낯설었다. 그러자 이상하게 살면서 자신이 저지른 크고 작은 실수와 과오, 후회가 떠올랐다. 죄라기에는 너무 하찮고 자산이라기에도 볼품없는 여러 일들이. 동시에 지금 이 순간 그걸 누군가에게 말하고픈 강렬한 욕구가 일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충동이었다. 어진은 어서 집으로 돌아가 그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야지 생각했다. 더불어 오늘 밤 딸애에게 다가가 ‘네가 정 미술이 하고 싶다면 한번 해보라’고 말해줘야지 다짐했다. 그러면서 마치 옛날이야기 속 나그네처럼 겨울밤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들어가며 작아졌다. 풍경화 속 풍경처럼. 자신은 지우고 이야기만 남기려는 듯. 혹은 스스로 이야기가 되려는 듯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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