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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전춘화 全春花
1987년 중국 길림성 화룡시 출생. 2023년 소설집 『야버즈』로 국내 작품활동 시작.
chunhua611@gmail.com
대림역 12번 출구에서 만나
1.
공장 앞마당에 스타렉스가 멈추자 나는 직원을 따라 느릿느릿 내렸다. 이 제 겨우 아침인데 몸 안에 돌멩이라도 가득 들어찬 것처럼 무거웠다. 정면의 롤링 셔터 도어는 굳게 잠겨 있었다. 직원은 얼른 따라오라는 듯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공장 옆문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문을 통과하고 나니 낯선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깥 햇빛을 놔두고 굳이 블라인드로 막아둔 넓은 실내, 높은 천장에 환하게 켜진 LED, 그 아래 바닥 전체에 펼쳐진 반질반질한 녹색 페인트, 그리고 귀가 멍해질 정도로 쏟아져나오는 여러 기계들의 급박한 금속음. 나중에야 바닥의 생소한 촉 감이 ‘에폭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원은 관리자인 듯한 사람과 몇마디를 나누더니 “여섯시에 픽업 올게요”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곧 저만치에서 목장갑을 낀 아주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며 나를 향해 손짓했다. 무언가 말하는 것 같았지만 기계 소리가 모든 음절을 삼켜버렸다. 손짓을 봤으니 망정이지.
“아유, 빠릿빠릿해야 해! 뭣 하러 그러고 서 있어!”
나는 허리를 잔뜩 굽히며 뛰어가 인사부터 했다. 모름지기 한국에서의 사회생활은 허리를 숙이는 인사가 먼저였다. 싹싹함과 미소는 금상첨화였다.
“안녕하세요!”
“인사성 밝네. 나 여기 반장이야.”
한국인 반장이 웃으며 내 등을 다독였다.
“조선족인가? 탈북민?”
낯선 환경에 잠시 풀려 있던 정신이 철컹철컹, 제자리로 조립되듯 돌아왔다. 두마디로 알아챌 만큼 내 한국어가 서툰 건 아닐 텐데. 방금 내뱉은 억양을 머릿속에서 다시 되짚어보았다.
“우리나라 아가씨들은 여길 잘 안 오니까.”
무심한 듯, 그러나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말투로 반장이 한마디를 더 얹고는 나를 2호기 사출기 앞에 세웠다.
사출기에서 길쭉한 베이지색 플라스틱 용기가 철컥 떨어질 때마다 양옆의 외국인 여자 둘이 재빠르게 손을 뻗어 표면의 흠집을 확인한 다음 부직 포를 깔아놓은 박스에 지그재그로 조심스레 놓았다. 나에게 화장품용기 포장 방법을 알려주려던 반장은 다른 사출기의 직원이 뛰어와 큰 소리로 부르자 “아유, 일도 많아라” 하곤 힘껏 소리치고 사라졌다.
“춘애야, 여기 신입 좀!”
춘애라니, 친근한 이 이름은 어쩐지 동족일 것 같은 느낌, 아니라면 오륙십대 한국인 아주머니일지도 몰랐다. 춘애가 느릿느릿 경직된 얼굴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나는 그가 풍기는 공기만으로 동족임을 알아챘다. 밀림에서 동류끼리 냄새를 맡고 서로를 알아보는 것처럼. 춘애에겐 아직 씻겨나가지 않은 고집스러운 이민자의 표정과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잘 움직이지 않는 커다란 눈동자와 불거진 광대뼈, 뭉툭한 턱선과 단단한 어깨, 튼실한 허벅지에 올백으로 아무렇게나 뒤로 질끈 묶은 머리까지. 연변식 표현대로라면 드살이 센 여자라는 말이 딱 맞을 것 같았다. 먼 저 인사를 건넬까 하다가 관뒀다. 춘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불량품 용기 몇개를 불쑥 내밀었으니까.
“보이시죠, 여기 그리고 여기. 검은 점 하나만 찍혀 있어도 불량이에요. 이쪽에 분류해요.”
그외에 몇가지 주의사항도 알려주었다. 아마 새로 온 사람들에게 수십번 반복했을 법한 사무적이고 투박한 목소리였다. 내 반응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다 말고 내 손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호주머니에서 새 목장갑을 꺼내 내밀었다.
“아…… 씨, 신입이 오면 입구에서 목장갑부터 챙겨주라니까.”
혼잣말이었다. 목장갑을 끼는데 춘애가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그대로 서서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골적으로 한번 훑었다.
“딱 봐도 오래 못 버틸 것 같은데…… 용돈벌이로 온 거예요?”
“뭐, 열심히 해야죠.”
불쾌함을 티내지 않으면서도 딱딱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 공장에서 얼마나 일할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 사람과는 엮이지도 말고, 만만하게 보이지도 않기로 마음먹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또 춘애가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목장갑은 헛갈리지 않게 뒤쪽 박스 위에 잘 올려두세요. 날 따라와요.”
나는 그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공식적인 직함은 없는 것 같은데 묘하게 관리자 같은 뉘앙스가 있었다. 그리고 문장 끝에 “요”만 붙이면 정중한 서울말이 된다고 믿는 듯한 성의 없고 껄렁껄렁한 말투도 거슬렸다.
공장 길 건너에 한식 뷔페집이 있었다. 그곳에는 여러 공장의 사람들, 땀에 젖은 작업복에 묻은 흙을 털며 들어오는 남자들이며 어딘가에서 냉동식 품이나 생필품을 포장하고 박스를 패킹했을 여자들이 테이블마다 앉아 상추에 고기를 싸먹고 있었다.
“저기 다 중국사람들이에요.”
춘애가 턱짓으로 맨 뒤쪽 테이블을 가리켰다. 시래깃국과 상추쌈을 듬뿍 담아서는 자리에 앉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러시아여자와 고려인 아주머니가 그들의 언어로 속삭이듯 수다를 떨고 있었다. 둘 사이에서 간간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함께 앉은 조선족 여자 셋은 예의상 우리에게 고향이 어딘지 묻고는 곧 중국어로 저들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건 춘애였다. 이제 반쯤밖에 먹지 못한 내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자 춘애가 슬며시 내 어깨를 눌러 앉혔다.
“천천히 먹어요. 전 할 일이 많아요.”
알겠다고는 했지만 혼자 밥 먹기는 뭐해서 조금 뒤 나도 작업장에 돌아왔다. 바깥의 축축하던 기운은 완연히 사라져 있었다. 마르기 시작한 땅 위에 서넛씩 둥글게 모여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이 보였다.
내가 서 있던 사출기는 오전보다 속도가 둔해져 있었다. 컨베이어벨트 옆에 붙어 선 여자들이 굼뜬 손으로 용기를 포장하면서 벽에 걸린 시계를 흘깃흘깃 확인했다. 괜히 일찍 들어왔나 싶어 슬며시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하필이면 사출기 옆에서 허리를 굽히고 박스를 풀어헤치던 춘애와 눈이 마주쳤다.
“일루 와봐요!”
춘애가 크게 소리쳤다. 당황스러워 생쥐처럼 후다닥 달려가 춘애 앞에 섰다. 덩치 큰 춘애가 주는 위압감이란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거 다시 묶어봐요.”
그건 명령이었다. 마지못해 포장용기를 가득 채운 비닐을 잡아 묶으며 오전에 춘애가 알려준 ‘적당한 세기’를 기억해내려 애썼다. 포장박스는 이동 과정에서 풀리지 않을 만큼, 그러면서도 충진업체 직원이 쉽게 풀 수 있을 만큼 묶어야 한다고 했다. 춘애는 내가 묶은 비닐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더니 이번에는 낯익은 화장품용기 다섯병을 내 앞에 툭 내려놓았다.
“이 중에 불량품 골라봐요.”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하곤 눈에 힘을 주고 깐깐하게 용기들을 훑었다.
“다섯병 모두 불량이네요.”
춘애에게 아주 작은 점 하나가 찍힌 부분, 병 밑굽의 마찰된 흔적 같은 것들을 차례로 보여주었다.
“하…… 그럼 이거 누구지? 또 마이인가? 가봐요.”
춘애는 짜증을 억누르며 혼잣말을 섞어 말했다.
나는 말뚝처럼 서서 춘애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바쁜 와중에 사과를 요구하며 감정싸움을 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무례함을 쉽게 넘기고 싶지도 않았다. 무례한 사람은 상대를 봐가며 무례하다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춘애씨, 이거 끝나면 얘기 좀 나눠요.”
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어우, 바빠 죽겠는데 무슨.”
춘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중얼거렸다. 목소리에는 한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얘는 원래 이래. 나한테도 과장님한테도 그래. 그냥 그러려니 해, 응? 저기 믹스커피 한잔 마시면서 좀 쉬어. 오늘 바쁜 날이거든. 그러니 일당도 불렀지.”
반장이 어르고 달래듯 재빨리 내 등을 한번 토닥였다. 무엇보다 그가 힘주어 말하는 ‘일당’이라는 말에 씁쓸하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내키지 않으면 내일은 이 공장에 오지 않으면 그만이니 하루치 불쾌한 감정 정도는 알아서 삼키라는 무언의 메시지처럼 들렸다.
하루는 느리고 고단하게 흘러갔다. 포장만 하는 일이라 손엔 금방 익었지만 종일 서 있는 탓에 한번씩 종아리를 주물러야 했다.
“이때쯤 되면 슬슬 잠 오니까 정신 바짝 차리라고 속도 좀 올릴게유.”
과장인 듯한 남자가 농담처럼 한마디를 슬쩍 던지고는 기계 앞에서 버튼을 눌렀다. 그 말을 들었을 땐 그런가보다, 무디고 태만한 마음이었는데 그 다음 순간 다들 표정이 굳었다. 속도는 살벌했다. 기계도 발작을 하나. 일정한 장단에 맞춰 부르던 노래가 갑자기 속사포 랩으로 바뀌듯 용기들이 정신없이 쏟아졌다.
내 오른쪽에 서 있던 여자가 낯선 언어로 짜증을 뱉어냈다.
“블랴!”
정확한 뜻은 몰랐지만 말투에 실린 악감정과 날 선 목소리로 보아 욕설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삽시에 작업장 안에 긴장감이 확 퍼졌다. 반장과 춘애 는 사출기 라인들을 오가며 밀려드는 용기들을 정신없이 담아냈다. 그러다 틈틈이 손이 아직 서툰 사람들 곁에 서서 그들이 포장한 박스를 빠르게 뒤적거렸다. 모두가 화장실을 다녀올 여유도 없이 두시간가량 사출기와 사투를 벌였다. 등 뒤로 박스가 착착 쌓이면 남자들이 초록색 공장용 카트에 담아 밖으로 내보냈다.
반장과 과장이 잠시 말을 주고받더니 사출기의 속도가 다시 돌아왔다. 할 당량을 얼추 채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어쩐지 허탈감과 분노가 찌꺼기처럼 남아 있었다. 방금까지 컨베이어벨트의 박자에 익숙해지려 애쓰면서 양옆의 외국인 여자들이 미처 처리 못한 용기도 한두개씩 당겨왔던 것이다. 언제부터 감정과 손이 서로 다른 리듬으로 움직이게 되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했다. 사출기의 속도와 작업장의 분위기가 달라져도 남의 일인 것처럼 태연히 일하는 속도를 올리지 않는 양옆의 여자들이 얄밉기는커녕 오히려 투사처럼 보였다. 반장은 등 뒤에서 “얘네 둘은 내일 안 되겠어”라고 대놓고 말했지만 둘 다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못 알아들은 듯해서 쓸데없는
안도감마저 내 몫이 되었다. 야간근무자들이 우르르 들어와 교대를 하고 나서야 내의까지 땀에 흠뻑 젖었다는 걸 깨달았다.
“윤화라 했나? 내일은 속도 안 올릴 거야. 꼭 와.”
반장의 묘하게 따뜻한 말에 나는 애써 웃었다. “네”라고 시원하게 대답하기도, 싫은 티를 내기도 애매했다.
“어유, 얼굴이 벌게진 거 봐.”
굽석 인사를 하고 작업장을 나오는데 등 뒤에서 반장이 한마디 더 붙였다. 못 들은 척 곧추 걸어나오다가 복도 거울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뭐 같은 기분을 어떻게든 감추려는 집요한 의지가 잔뜩 들어찬 굳은 입술, 체력 고갈을 숨기지 못한 채 벌겋게 상기된 볼, 어딘가 초점을 잃은 듯한 눈빛이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따로 놀고 있었다.
스타렉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내려 다시 대림역으로 향하는 동안, 붐비는 전철 안에 서서 멀뚱히 천장을 바라보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일은 다른 공장에 가볼까, 오늘 여기만 유독 빡센 곳일까. 반장이 내일은 속도를 올리지 않을 거라 했지만 모레, 글피, 또 그다음 날은 모르는 일이었다. 용기 포장 자체는 일이 깔끔하고 손에 잘 맞는데도 찝찝한 기분이 자꾸만 걸렸다. 운 좋게 앉을 자리가 나서 꾸벅꾸벅 졸다 내릴 곳에 도착했다.
대림역 12번 출구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없다. 꼬불한 계단을 탁탁 소리 내어 밟으면서 일부러 숨이 찬 척, 거친 숨을 몇번 내쉬었다. 대학원을 졸업하며 첫 구직을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조선족 선배들이 분명히 ‘중국어 가능자 우대’에 해당하는 직장을 우선 찾으라며 업종을 콕 집어 알려주기까지 했었다.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화장품회사, 중국 몰을 운영하는 전자상거래 회사, 글로벌 물류, K뷰티나 K콘텐츠 마케팅, 그리고 중국어강사. 그 길을 갔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나는 한국인들과 동일하게 같은 일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용정에서 자란 윤동주의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문장에 과하게 감흥을 받은 탓에 애석하게도 인문학을 전공하고 말았다. 이과생들 말마따나 별과 바람은 애초에 만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좀더 일찍 깨달았다면 내 삶이 지금 보단 덜 곤궁했을까. 그동안 몇번 계약직으로 다큐 촬영팀 보조작가 일을 했지만 다음 프로젝트는 늘 기약이 없었다. 부르면 언제든 투입될 마음으로 잠시 생산직으로 발길을 옮겼지만 이 생활을 언제까지 이어가야 하는지 막막했다.
현장에 있을 때 피디들은 조선족 출신인 애가 한글로 대본을 쓰고 섭외도 곧잘 해온다며 일말의 호기심을 품는 듯했다. “중국과 관련된 일이 생기면 연락하겠다”고 말했지만 요즘 분위기로 봐서는 가망이 없어 보였다. 한국 선배들의 오픈마인드, 사회적 맥락을 읽는 감각, 다층적 역사관, 세련되게 스며드는 정서까지 미세 단위로 침투해 읽고 배우려 애썼다. 겉보기엔 실력에서 이질감이 없으면서도 필요할 땐 중국 출신이라는 카드를 옵션처럼 꺼 내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업계는 좁았고 현장에는 날고뛰는 실력자들이 차고 넘쳤다.
오분만 더 걸으면 버스 정류장이었다. 거기서 가산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아늑한 원룸에 금방 도착할 수 있는데도 12번 출구 앞에서 숨을 고른 뒤 대림시장 방향으로 꺾어 들어갔다. 로컬음식을 뭐라도 포장해 갈 요량이었다. 늘쩡늘쩡 걸으며 골목 양쪽에 소상공인들이 펼쳐놓은 노점들을 두리번거렸다. 고소한 해바라기씨도 사고 중국식 훠궈 양념도 두봉 챙겼다. 그러다 바로 그 골목에서 뜻하지 않게 춘애와 맞닥뜨렸다.
“어……”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애매한 신음이 입에서 새어나왔다.
“내일도 우리 공장에 와요? 오늘 보니까 일솜씨 죽이던데.”
춘애가 먼저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다.
“모르겠어요. 연락을 기다려봐야죠.”
“에이, 순진하기는. 아웃소싱업체는 벌써 퇴근 때 공장마다 들러서 누가 일머리가 있는지 체크했을걸요. 유나씨는 내일 더 빡센 현장으로 돌릴 거야.”
“왜……요?”
지금 내 앞의 춘애는 빌런이 아닌 깜찍요정으로 안전한 여정을 안내하고 자 잠깐 등장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왜기는. 참, 근데 유나씨는 저녁밥 먹었어요? 지금 막 마라탕 먹으러 가는 길이었는데. 같이 갈래요?”
춘애는 나를 윤화가 아닌 유나라 불렀다. 오후에 있었던 불쾌한 일이 떠 올라 망설여졌다. 춘애의 태도는 경계를 하고 싶을 만큼 집요했지만 작업장에서의 일처리를 보면 딱히 음습하게 굴 성향은 아닐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쩌면 춘애는 그냥 혼자 밥 먹기가 싫은지도 모른다. 너그러운 마음이 불쑥 올라와 후미진 골목에 있는 마라탕가게로 따라 걸었다. 간판부터 중국어로만 적혀 있는 작은 가게는 사람들이 복작거렸다. 춘애는 용하게도 비좁은 통로 양옆 테이블을 배와 엉덩이로 밀면서 안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테이블을 슬쩍 밀 때마다 마라탕 국물이 출렁거려서 손님들이 미간을 한번씩 찌푸렸다. 안쪽 자리에 겨우 앉아 춘애가 맛있다고 극찬한 뜨끈한 마라탕 국물을 한입 들이켜보니, 그새 한국 스타일의 담백한 마라탕 맛에 길들여진 탓 인지 과하게 자극적이고 맵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거야말로 오리지날 중국 맛이라는 춘애의 말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내일 내 운명의 룰렛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한 뒷이야기를 계속 들어야만 했다.
“거기 아웃소싱 과장 있잖아요, 사람이 살가워 보여도 일머리 좋고 순진한 알바들 들어오면 공장 여기저기 돌려보는 스타일이에요. 궁중팬 포장공장은 하루만 일해도 손목 아프고요, 견과류 포장공장은 소음이 장난 아님. 핫도그 포장공장은 냉동실 들락거려야 해서 생리날은 진짜 죽음이에요.”
춘애는 젓가락으로 쉼 없이 마라탕 건더기들을 집어 먹으며 칠년간 이 바닥에서 경험해본 생산직들이 열곳 이상이라는 것과, 그중 화장품용기 생산직이 제일 손에 맞아서 삼년째 일하고 있음을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근데 왜 그분은 여러군데로 일용직들을 자꾸 돌려봐요?”
“이 바닥에도 쉬운 일이 있고 힘든 일이 있단 말이에요. 토, 일에는 한국 직장인들이 투잡 개념으로 우르르 몰려오기도 해요. 아웃소싱 업체야 빤하죠. 요일별로, 국가별로, 일솜씨에 따라 인력 배치를 하죠. 일머리 있는 애들은 힘든 데로 보내봐서 별말 없으면 고정시켜버리죠. 의외로 꽂아넣는 대로 불만 없이 소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또 많아요. 특히 말 안 통하는 외국인 애들.”
들어볼수록 일리가 있었다. 그때 마침, 드라마틱하게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윤화씨, 내일은 궁중팬 포장공장에 가봐요. 거기 페이가 오늘 공장보다 더 세.”
“오늘 일했던 데는 또 못 가요?”
나는 짐짓 춘애의 말의 진위를 테스트해볼 요량으로 물었다.
“음…… 거긴 내일 일용직 니즈가 없을걸. 오늘만 바빴나봐.”
노골적으로 대화 내용을 듣던 춘애가 통화가 끝나자마자 깔깔 웃었다.
“내 말 맞죠? 우리 공장 요즘 한창 바쁠 때라 내일도 일용직 필요할 텐데.”
얼굴이 다시 벌겋게 달아올랐다. 점심에 춘애로 인해 스크래치가 났던 불쾌한 감정이 다시 오소소 올라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춘애는 중국음료를 꿀꺽꿀꺽 마시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박과장님, 오늘 일했던 유나씨 있잖아요. 내일도 우리 쪽으로 오게 해줘요. 아웃소싱에 얼른 전화해줘요.”
어쩐지 자존심이 상해 고맙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오후 일은 이걸로 퉁치기로 하고 혼자 계산을 끝내버렸다.
“우리 공장에서 며칠 일해보고 그냥 직원으로 일해요. 아웃소싱이 매일 떼가는 소개비, 한달이면 얼마야. 어우, 직원 되면 4대보험도 적용되고 좀 좋아? 솔직히 외국인 건강보험 지역가입 보험료 매달 10만원 넘는 거 부담되잖아요.”
춘애는 거친 사회생활을 오래해온 사람답게 현실적인 말들을 골라서 했다. 하지만 직원이 되면 생산직에서 아예 발을 못 뺄 것 같은 불안함이 엄습했다. 아직 내겐 화이트칼라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비싼 대학 원 등록금이며 그동안 갈아넣은 노력에, 아직 접지 못한 거창한 나만의 코리안드림까지.
“사실 난……”
뜻밖에 받은 호의 때문인지, 아니면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왁자지껄한 중국집 분위기 탓인지 나는 경계를 풀고 속사정을 얘기해버렸다. 춘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석사? 박사예요? 한국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작가요?”
“목소리를 낮춰요.”
나는 민망해서 얼른 춘애의 입을 막았다. 오버스러운 반응에 괜히 말했나 싶은 후회가 밀려왔다.
“이건…… 비밀이에요.”
힘없이 중얼거리자 춘애가 상기되어 갑자기 의자를 앞으로 당기며 내 쪽으로 얼굴을 바투 들이댔다.
“작가 하는 조선족 처음 봐요. 우리도 작가, 연예인 이런 직업이 많아져야 한다니까.”
낮에 공장에서 정색하며 삐딱하던 춘애의 표정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눈빛이 확 달라지고 언성까지 높였다. 춘애가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옥죄어오는 불안감에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들었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과한 선망을 품은 순수무구한 춘애의 눈빛은 당장 대작을 써낼 작가를 바라보는 듯한 경이감마저 품고 있었다.
“공장에서 일하면 그것도 나중에 글 쓸 때 다 도움되겠네. 근데 유나씨는 몇살이에요?”
나는 슬쩍 춘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오늘 부대껴본 춘애의 성향으로 유추해볼 때 내가 더 어리면 언니 동생 하자고 들이댈 것이고, 내가 나이가 더 많아도 고참이라고 은근슬쩍 계속 말 놓으며 훈수질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춘애의 나이 공격을 피해 갈 구멍은 딱히 없어 보였다.
“뭐? 동갑이라고?”
춘애가 또 한번 톤을 높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들 떠드는 분위기라 시선이 집중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튀는 행동이었다. 나는 창피함을 꾹꾹 누르며 목석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뻥이지? 외국인등록증 보여줘.”
사회생활을 하다 만난 사람들끼리는 여간해선 말을 놓지 않는다는 기본 예의 따위는 마라탕 국물에 시원하게 말아먹은 듯 춘애는 가볍게 선을 넘어 버렸다.
“속고만 살았나? 동갑 맞아.”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춘애의 손을 찰싹 치며 반말로 되받았다. 그녀는 능숙하게 칭따오맥주 뚜껑을 숟가락으로 딴 뒤 사이다가 아직 반가량 남은 내 유리컵에 들이부었다.
“친구 된 기념으로 짠!”
일은 점점 더 꼬이고 있었다. 흔쾌히 받는 척 요란하게 유리컵을 내밀며 속으론 쌍욕을 퍼부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연거푸 맥주 두잔을 받아 마셨는데도 정신이 더 말짱해지는 것 같았다. 정신줄을 똑바로 잡고 빠른 시간 내에 공장을 떠나지 못하면 내 주위에 춘애 같은 애들만 꼬일 것 같은 위기감이 마음 한가운데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춘애의 신세타령이 이어졌다. 밖에는 줄 선 손님들이 대기 중이고 마라탕가게 주인의 눈치가 보여서 이럴 바엔 맥줏집으로 자릴 옮기자고 제안했다. 춘애는 신나서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서더니 덥석 내 팔짱까지 꼈다. 그러곤 길을 걸으면서도 주저리주저리 말을 이었다. 시골 태생인 춘애는 십오년 전 아버지가 한국에 일하러 왔다가 건축현장에서 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쳤다고 했다.
“보상 처리를 안 해줘서 그대로 고향에 돌아갔는데 반신불수야. 맨날 술 만 마시고 나한테 전화해. 10만원, 20만원씩 부쳐달래. 언제 죽냐? 씨.”
고생 많았다고 위로하며 좋게 넘어가려 했는데 춘애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국사람들 진짜 웃기지 않냐? 우리보고 보이스피싱 어쩌고 하면서 조선족들 비자 사기 친 거랑 월급 체불에 재해보상 제대로 안 해준 건 모른 척하잖아. 그래서 난 한국사람 많은 동네에 이사 안 가. 그냥 대림동에서 평생 썩을래.”
“그럴 수도 있겠네.”
침착하게 최선의 대꾸를 하면서 차마 대림동도 서울 한복판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춘애는 계속, 계속 떠들었다. 들려주는 말이 아닌, 속에서 부글부글 끓던 것들을 일순간 욱, 하고 구토처럼 밖으로 분출하는 느낌이었다. 맥줏집에 가서도 나는 칭따오 두병에 짝태 하나, 매콤한 요리 하나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고 속으로 가늠했다. 하지만 내 계산보다 빨랐던 건 춘애의 걸걸한 목소리였다.
“여기 칭따오 여섯병이요!”
“두병만 마셔. 내일 또 출근해야 하잖아.”
“남으면 환불하면 되지.”
춘애는 요리도 사준다며 메뉴판을 펼쳐놓고 몇가지를 턱턱 짚었다. 순식간에 작은 테이블이 매콤한 빨간색으로 버무려진 중국요리들로 가득 찼다. 춘애는 만족스러운 듯 내게 이것저것 권하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뻔했다. 조선족들이 흔히 들려주는 그 서사들, 어떻게 한국에 넘어왔고 어떤 고생을 했으며…… 중간에 한번씩 한국사람에게 당한 수모를 언급한 뒤 한국이 얼마나 작은 나라고 빡센 곳이며 한국인들은 또 얼마나 예민하고 속 좁은 사람들인지에 대해 춘애는 쉬지 않고 말했다. 목이 마르면 맥주를 꿀꺽꿀꺽 마셨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업그레이드가 될 수 없는 소프트웨어를 보는 듯 답답했다. 한치의 연민이나 공감도 내보이지 않았다.
“학교는 어디까지 나왔어?”
어느정도 술기운이 오르자 나는 노골적으로 물었다.
“고등학교지 뭐.”
뜬금없는 학력 공격에 춘애 목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기를 눌러보려고 그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나라와 한국인에 대해 불평하는 일이 개인의 발전과 일상에 득이 될 건 없으니 멈추라고 속으론 호되게 혼내고 싶었 다. 이렇게 많은 조선족 젊은이들이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대도시로 철새처럼 이주할 팔자였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학교에서도 국제적으로 그닥 인기 없는 사회주의사상 말고 이주민 필수교양이나 생존철학 같은 걸 가르치는 게 더 좋았을 텐데.
하지만 난 그날이 나와 춘애가 만난 첫날임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술 몇잔에 살짝궁 마음의 각도가 기울어 건네는 솔직한 말들이 춘애에겐 선 넘는 무례함이나 시건방진 가르침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터이니 “그랬구나” “고생 많았네”와 같은 영혼 없는 추임새만 골라 붙였다. 맥주 두병을 비울 즈음에 춘애는 잠깐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계단에서 그의 몸이 한번 휘청거렸다. 나는 그 틈에 식은 보리차를 두어모금 들이킨 뒤 숨을 고르듯 내쉬었다. 요리들이 밑바닥을 보일 정도로 연거푸 집어먹고 서비스로 나온 땅콩까지 다 삼켰는데도 춘애가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되어 나가봤더니 춘애는 가게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는 왼손에 담배를 들고 오른손에 핸드폰을 든 채 모름지기 조선족이라면 익숙할 법한 온갖 쌍욕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었다. 표정은 분명히 화가 나 있었는데 눈은 어쩐지 서글퍼보였다. 핸드폰을 든 오른손이 떨리고 왼손에 든 담배에서 재가 힘없이 호도 독, 먼지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나를 흘깃 본 춘애는 그제야 다급하게 전화 를 끊었다. 수화기에선 잔뜩 취하고 화가 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다가 갑작스럽게 뚝 끊겼다.
“반신불수야. 개짜증나.”
나는 대답 없이 옆에 서 있었다. 여름밤 중국사람들이 취기에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 가게 셔터 문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깥에 길게 늘어뜨려진 웜라이트 줄전구 빛 아래 춘애의 겉늙은 얼굴이 어쩐지 낯익어 보였다. 잠시 잊었던 인문학도의 정체성이 일순간 목구멍을 메울 것처럼 차올랐다. 그 순간만큼은 한 인간인 춘애의 마음이 어떤 것이든 무조건 감쌀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인간이든, 마음을 다해 바라보면 이해의 언저리까지는 닿을 수 있었다. 다만 이해할지 말지, 어디까지 이해할지 선은 정해야 하는 것이고, 내가 보인 이해심만큼 내 말과 행동, 마음까지도 따라붙어야 했다. 춘애가 ‘쭝화’라고 적힌 빨간 담배케이스에서 중국산 담배를 한대 더 꺼내 불을 붙인 뒤 다 피울 때까지 나는 옆에 함께 앉아 하품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대림의 밤이었고 춘애가 피우는 담배는 꽤 독해 보였다. 착잡했던 마음이 그 평화로움에 기대어 잠시 잦아들었다. 그날 따라 어쩐지 대림동이 내게도 고향처럼 아늑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대림 같은 차이나타운이 있어서 춘애 같은 사람들은 고향 같다는 한모금의 착각과 위로를 흡입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2.
일은 며칠 만에 손에 익었다. 플라스틱 몰드의 색깔은 그동안 몇번이고 바뀌었다. 은빛 노랑이었다가, 출렁이는 바다처럼 푸른색이었다가. 색이 바뀔 때마다 보틀형 용기의 모양도 달라졌다. 목이 길게 빠진 병, 항아리처럼 둥근 병, 네모반듯한 각병까지 매일 달랐다.
사출기의 속도는 여전히 빨라졌다 느려졌다 했다. 정해진 패턴이나 주기 같은 건 없었다. 그저 한국인 과장이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기계 앞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춘애 말대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당분간 눌러앉기로 한 내 양옆에 마이와 올레나가 고정 파트너로 섰다.
올레나의 뽀얀 피부와 인형같이 커다란 눈, 오똑한 콧날을 보며 머릿속에 입력된 우끄라이나에 대한 지식이 우툴두툴 튀어나왔다. 올레나는 다소 퉁명스러웠고 시도 때도 없이 내 팔을 툭툭 치며 “언니야”라고 불렀다. 그가 알고 있는 한국어는 “언니야”와 “오빠야” 정도인 것 같았다. 보디랭귀지로 열심히 소통을 시도해도 표정이 뿌루퉁해서 나만 재롱떠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기계 속도가 빨라지면 올레나는 “언니야!”를 다급하게 두번 외쳤다. 그때가 유일하게 그의 감정이 격하게 튕겨나오는 순간이자 절박하게 나를 필요로 하는 때였다.
내 오른쪽 옆에 선 마이는 베트남 출신으로 올레나와 달리 한국어에 능숙한 편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내게 와 말을 붙이며 한국어를 더 배우려고 열성을 피우는 마이가 싫지 않았다. 기계 속도가 빨라질 때, 마이는 부산을 피웠다. 물론 마이가 용기를 더 많이 포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거의 생중계하듯 법석을 떨었다.
“죄송해요! 제가 두개 놓쳤어요! 윤화씨! 저거 저거 도와줘요!”
그때마다 나는 최대한 손을 길게 뻗어 마이 앞 벨트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용기를 가까스로 잡았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는 그 시간이 지나면 마이는 내게 퇴근할 때 캔커피를 내밀었다.
“윤화씨,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이의 감사 인사를 동전처럼 쌓아두면 곰돌이 저금통 하나는 그득 찰 것이다. 나는 조금씩 마이를 응원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마이는 낯선 나라에서 살아남는 법을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 같았다.
3.
공장에 출근하는 일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계절이 두번 바뀌는 동 안 다큐팀에서 일할 때보다 더 많은 페이가 달마다 입금되었다. 무엇보다 다음달에도 같은 금액이 들어올 것이라는 안정감은 스스로 일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을 주었다.
그 기간에도 나는 저녁이나 주말을 비워두지 않고 이주민에 관한 칼럼을 썼다. 시리즈로 묶어 언론사에 기고했고, 곧바로 편집자의 응답 메일을 받았다. 출입국 사이트에 업로드된 비자별 체류현황, 다큐팀 막내작가 시절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들, 그리고 나의 사적인 경험을 적당히 섞어 현 시점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들이 서 있는 생존의 좌표를 찍었다. 그러곤 작년부터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의 현실과 그에 비해 태만한 이주민 인식, 앞으로 이 들과 어떻게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단상도 덧붙였다. 감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언제라도 다시 작가로 합류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워밍업이었다. 누구나 알 만한 메이저 언론사에 발표한 칼럼은 이력서에 남길 만한 한줄이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때때로 함께 일했던 선배 작가들의 SNS를 들여다보며 요즘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가끔은 안부를 핑계 삼아 먼저 연락도 했다. 다시 이력서를 던지고 면접을 보는 것보다 소개를 받는 편이 훨씬 안정적이고 빨랐다.
다큐 작가가 점프할 수 있는 여력은 크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투잡, 쓰리잡으로 뛸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글쓰기의 영역을 더 넓히거나 이제라도 글쓰기 역량에 플러스가 될 만한 회사에 입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필요가 있었다. 공장의 단순노무직도 첫 며칠만 이질감이 들었을 뿐이지 그 감각이 손에 익고 나니 또 하나의 파이프라인이 뚫린 것처럼 마음에 작은 든든함이 생겼다.
춘애는 가끔 퇴근하고 대림역에서 같이 밥 먹자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언제 여길 떠나 다시 작가를 할 거냐며 걱정하듯 캐묻다가도, 여기서 오래오래 일했으면 좋겠다고 한입으로 두 말을 했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도 이 공장은 일이 끊긴 적이 없었다고 꼬드겼다. 청결과 외모관리에 진심인 한국인들에겐 화장품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라나.
춘애는 중국 맛집에서 맥주를 한병씩 비우고 기름진 요리로 배를 채운 뒤, 계산대 앞에선 늘 객기를 부리듯 내 손을 걷어내고 자기 카드를 들이밀었다. 작가가 무슨 돈이 있어. 내가 더 벌어.
춘애가 거하게 트림을 할 때마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저러다 바닥에 한판 크게 토해낼 것만 같았다. 실제로 두번쯤 그랬고, 나는 주위 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이를 어째, 어떡하냐고. 그러면 춘애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여긴 대림이니까 안심하라고. 개소리였다.
그런데도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 중 누구도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다.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남의 일에 관심을 끄는 것.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인들의 도덕적 핸디캡이자 동시에 사회적 미덕이었다.
그리고 나는 춘애에게 처음보다 무덤덤해져 있었다. 춘애 이년에게 뭘 기대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고, 한톨만큼의 마음도 건네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동료니까 밥 정도는 먹어주고 공장을 떠나는 즉시 나도 대림동에서 발을 끊을 것이다.
얼른 집에 가려고 대림역 12번 출구 앞까지 왔는데 몰려 있던 사람들이 분주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칼부림이라도 난 거야? 왜 다들 몰려 있었어?”
춘애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눈치 없이 큰 소리로 물었다. 무덤덤해졌다고 믿었던 마음이 순간 움찔했다. 나도 모르게 타박하듯 춘애에게 말했다.
“얘는, 대림에 오래 살면서 칼부림 자주 봤니?”
“아니.”
“그니까, 너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나는 짐짓 ‘너는’에 힘을 주어 말했다. 춘애는 내 말뜻을 이해한 것 같지 않았다. 다시 말을 바꾸어 “무슨 일이래?” 하고 물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중국인들을 모두 추방시키라는 혐오단체의 시위가 해산하는 중이었다. 현수막과 피켓에 가시 같은 말들이 쓰여 있었다. 옆에서 맞불작전으로 중국인들의 혐오 반대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춘애가 대번에 표정을 찡그리며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내가 이래서 한국사람들 싫어한다니까.”
춘애가 아무 생각 없이 뱉어내는 말은 이주민으로서의 감수성이나 자의 식이 과한 내 심기를 잘도 건드렸다.
“저기 시위 나온 한국사람은 꼴랑 몇명뿐이잖아. 그것도 혐오야.”
춘애는 어느샌가 눈빛도 표정도 말짱해져 있었다. 역시 취했을 땐 편의점 숙취해소제나 24시간 해장국보다는 구토가 효율적이었다. 춘애가 완전히 깨어 있는 게 더 문제였다. 갑자기 아무런 설명 없이 내 손목을 잡고 우악지게 막다른 골목으로 끌었다. 영문도 모르고 질질 끌려가면서 놓으라고 소리 질렀다. 이런 무식이 같으니라고. 춘애가 손을 풀자 거긴 희미한 가로등이 간신히 빛을 비추는 인적 드문 골목이었다. 오랜 빌라들 틈에 여러개의 직업소개소가 보였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구인공고들이 스탠딩 간판에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중국 교포 환영’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글이 눈을 찔렀다.
사우나 청소, 재활병원 간병인, 차 부품・선루프, 숯불장치, 전자제품 사출, 건설폐기물 선별, 한우농장, 데크 조립, 스텐 자바라 제조, 패널 압착가공, 구리 제련작업…… 나는 한글을 처음 떼는 아이처럼 속삭이듯 낯선 단어들을 천천히 읊었다. 알 만한 단어도 있었지만 무슨 일인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는 것들이 훨씬 많았다. 춘애는 또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웠다. 그날따 라 꽁초만 남을 때까지 오래 담배를 피웠다. 춘애가 나를 기다려주는 건지, 내가 그를 기다려주는 건지 몰랐다. 춘애를 답답하고 한심하게 보다가도, 또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이상한 양심이 형체를 알 수 없는 바닷속 괴물처럼 마음 위로 잠깐 출몰했다. 암만 책을 많이 읽고 사람마저 읽어보려 해도 춘애에겐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어둡고 복잡한 미로 같은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춘애와 그 골목에서 헤어지고 대림역까지 돌아오는 동안 나는 잰걸음을 걸으며 눈은 당황한 듯 쉴 새 없이 주위를 훑었다. 대림역에서 두 블록 벗어 난 골목이었다. 가끔씩 대림역 근처 맛집에 선배들을 초대하거나, 로컬음식을 포장해 먹으면서도 주거 빌라 구역까지는 들어와본 적이 없었다. 유튜버들의 영상에서처럼 특별히 길거리가 지저분하거나 무서운 느낌은 없었지만 가로등 몇개가 더 필요해 보이긴 했다. 지방으로 내려가 일하거나 야간 교대근무를 하기 때문에 늦은 밤 불이 들어오는 집이 많지 않을 거라고 춘 애가 했던 말이 얼핏 기억났다. 골목을 막 벗어날 때 즈음에 발밑에 전단지 하나가 밟혔다.
‘빌라 급매, 교포 대출 환영.’
똥이라도 밟은 듯 후다닥 발을 옮겼다. 외국 국적은 시중 은행 대출이 쉽 지 않을 텐데 저건 무슨 대출일까. 행여 춘애가 이런 환영에 혹할까봐 노파심이 일었다. 황망히 눈을 들어 앞을 보니 화려한 간판들이 줄지어 선 번화가가 보였다. 안도감이 들어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4.
계절이 쉽게 바뀌어 그날로부터 아홉달이 흘렀다. 춘애 앞에선 어느 순간 나도 연변사투리를 하고 풀어진 모습을 보였다. 어떤 날은 기분이 센티해져 칭따오를 두병이나 무리해서 마신 뒤 구토가 올라와 지하철 화장실까지 줄달음질한 적도 있었다. 춘애는 토하면 속이 시원해진다는데 나는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길바닥에 민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데 안도했을 뿐이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흉측한 내 모습을 마주하고 그제야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춘애처럼 과음을 하고 토하고 얼굴이 벌게지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속이 아주 곪아터져서 스스로를 견딜 수 없을 때에야 가능한 일이라는 깨달음이 뒤늦게 헐레벌떡 도착했다.
집에 돌아오면 루틴처럼 현학적인 책을 집어 읽고 구직공고를 뒤적이며 이력서를 넣었다. 연마해두었던 쿵푸의 감을 잃어버린 건 아닐지 전전긍긍하는 수련생처럼 아이디어 회의나 미팅 때 입으려고 부직포커버를 씌워둔 코트와 몇개월 할부로 끊은 숄더백을 한번씩 꺼내보았다. 그러다 거울 앞에 서면 이제라도 버티지 말고 아무 사무직 회사라도 이력서를 넣어볼까, 아니 면 최소 일년을 공장에서 버티다가 차라리 영주권을 신청하고 이참에 귀화까지 해볼까, 궁리를 했다.
오래전에 다큐팀이 베트남 촬영을 간다며 메인작가 한명이 필요하다고 들썩인 적이 있었다. 중국 국적자는 베트남 입국 비자를 따로 신청해야 했고 절차도 까다로웠다. 보조작가인 나를 지목할 리 없는데도 나는 움찔했다. 그날로 귀화할 수 있는 방법을 검색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는 원하는 경제적 조건이 있었다. 프리랜서로 살아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야간 공장 알바로 일년을 몰아붙이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숫자였다.
다음달이면 공장에서 일한 지도 일년이 되어 시간의 압박을 무겁게 느끼던 즈음에 함께 일했던 작가 선배에게서 불쑥 연락이 왔다. 종편 방송사에서 방영될 다큐멘터리 4부작을 준비 중인 피디에게 나를 추천했다는 희보였다.
“실력도 확실하고 현장감도 좋은 중국교포 출신 작가라고 말했어. 한번 얼굴 보자더라. 이번 아이템이 외국인노동자 이야기라 네 톤이랑도 잘 맞고, 인물 섭외나 현장노동자 네트워크도 네가 훨씬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지.”
한걸음 앞으로 내디딜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언뜻 스치는 것 같았다. 월 차를 내고 급히 만난 피디는 꽤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다. 투명파일에 이력서를 꽂아 들고 갔지만 그는 넣어두라며 손사래를 쳤다. 페이는 이전 계약들보다 훨씬 후했다. 이만한 페이를 받고 과연 잘해낼 수 있을지 위축되던 참에 그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했다.
“이 바닥은 거의 외주라 4대보험도 안 되잖아요. 그만큼 좋은 결과를 내자는 압박이기도 하니까요. 견뎌봅시다.”
잘해보자는 의미로 얼굴 한번 보고 싶었다며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그의 뒤로 언뜻 후광 같은 것이 비치는 듯했다. 하지만 곧이어 나온 말에 나는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혹시요…… 이주민 여성이 한국남자랑 결혼하면 한국에서 결혼식도 하 고, 신혼여행도 가나요? 그쪽으로 윤화씨는 아는 게 있나요?”
상투적으로 접근한 건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마흔을 조금 넘긴 듯한, 몸에서 은은한 앰버 향이 풍기는 말쑥한 피디를 마주한 채 저 질문이 테스트인지, 아니면 그의 뭉툭한 이면이 드러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순간, 자연스럽게 마이와 올레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마이와 올레나는 각각 어떤 비자를 받았을까. 추측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교포라 처음부터 F코드 비자를 받았지만, 마이는 아마 D코드 학업 비자나 한국어연수 비자로 들어와 불법취업을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십대 초반으로 보였으니, 설마 결혼이민 비자인 F-6은 아니겠지. 그럼 올레나는 난민 비자였을까. 하지만 난민 비자는 이 나라에서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난민 신청 중 신분으로, 일년에 한번씩 체류 연장을 해야 하는 G-1-5일지도 몰랐다. 그들이 한국남자와 결혼을 했든, 혹은 그런 삶을 꿈꾸었든 내 머릿속에서는 그들의 양가 가족이 모두 모여 결 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장면이 쉽사리 그려지지 않았다.
5.
다큐 제작에 투입되기로 약속하고 다시 공장에 돌아왔다. 반장도 전날에만 말하면 괜찮다고 했으니 퇴근 때 막 입을 열려던 참이었다. 양옆에 선 마이와 올레나를 한번씩 쳐다보았다. 비자 코드를 그들에게 입혀보고 피디의 말을 상기하는 순간 여러 감정들이 제멋대로 중첩되었다. 옅은 감정은 짙은 감정으로 흡수되고, 비슷한 농도의 감정은 서로의 흔적을 남긴 채 포개졌다. 불필요한 이 감정들을 그저 쓸어버리고 싶었다. 이 세상엔 수없이 많은 이민자가 있고 마이와 올레나는 그저 그중 단 두명일뿐이었다. 혼란스러운 기분을 뒤로하고 사출기 속도에 맞춰 나는 여느 때보다 더욱더, 몸을 사리지 않았다. 올레나 앞의 용기를 향해 팔을 뻗고 마이가 놓친 것도 덥석 잡았다.
“윤화씨, 천천히 해요. 왜 그래요.”
마이가 눈치 없이 큰 소리로 말했다. 뒤에 섰던 반장이 듣고는 그의 등을 툭 쳤다.
“빨리빨리!”
짧은 웃음이 스침과 동시에 올레나 뒤에 쌓여 있던 박스들이 산사태처럼 우르르 쏟아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춘애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올레나! 대충 쌓으니까 금방 무너지잖니. 바빠 죽겠는데, 씨.”
춘애가 큰 소리로 혼내며 올레나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마이가 당황한 올레나를 달래며 흩어진 용기들을 주우려고 하자 춘애는 이번에도 참지 않았다.
“계속 용기가 나오고 있잖아. 네 거나 똑바로 해.”
마이가 시무룩해하며 다시 벨트 앞에 섰다. 나는 손을 멈추지 않고 슬쩍 눈치만 보며 벨트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험하게 일그러진 춘애를 향해 손가락으로 빅엿을 날렸다. 춘애도 어이가 없었던지 반격하듯 왼손 중지를 치켜들었다. 반장은 춘애의 모습만 보고 그의 등에 스매싱을 날렸다.
“일터에서 이게 무슨 짓이니.”
“윤화가 먼저 그랬어요.”
반장이 날 흘끔 쳐다봤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용기 를 만졌다.
“윤화는 그럴 애가 아니잖아, 딱 봐도.”
퇴근 후 대림역에서 만난 춘애는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었다. 반장의 입을 통해 오늘이 내 마지막이라는 말을 전해 들은 것도 심통이 났을 테고, 공장에서 빅엿을 날린 일도 성질을 돋웠을 것이다.
“넌 어쩌려고 그렇게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해? 왜 올레나랑 마이 편만 맨날 들어줘?”
춘애는 큰 덩치로 나를 툭 밀치더니 목에 슬쩍 초크를 걸었다가 풀었다. 잠깐이었지만 숨이 막혀 뼈다귀를 잘못 삼킨 말티즈처럼 캑캑거렸다. 춘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앞서 12번 출구로 빠져나갔다.
“오늘은 뭐 먹냐? 마지막 날이니까 내가 살게.”
뒤에서 넌지시 말을 건넸지만 춘애는 반응도 하지 않은 채 대림의 번화가를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섰다. 뒤따라 걸으며 춘애에게 할 말을 머릿속에 하나씩 늘어놓았다. 마이와 올레나를 챙기는 이유가 나 또한 이주민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춘애는 이해할까. 솔직히 말해 춘애가 관리자인 척 회사 편에 서서 악역을 자처하는 모습이 끔찍이도 싫었다. 그건 한국사람에게도, 같은 이주민에게도 평판을 잃는 어리석은 방법이었다. 어떤 순간에도 내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했다. 어느 쪽에도 완전히 기대지 않은 채 충돌을 흡수하는 경계석처럼 서 있는 일. 나는 늘 이음매 같은 자리에 있으려고 했다. 두 세계 가 맞닿아 삐걱거릴 때 소리가 나지 않도록 눌러주는 자리, 거기가 딱 내 자리였다.
양꼬치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춘애는 메뉴판을 상장처럼 늠름하게 펼쳐 들었다. 양갈비부터 양힘줄, 양콩팥, 소염통, 소막창에 양깃머리까지 오만가지 꼬치를 줄줄이 부르고 후식으로는 옥수수온면까지 얹었다. 그제야 기분이 한결 누그러뜨려졌는지 말을 꺼냈다.
“새로 취직한 거야?”
“촌스럽게 취직은 무슨. 유명한 피디랑 다큐 만들기로 했어.”
금의환향해 고향 친구 앞에 선 것처럼 괜히 거들먹거리고 싶어졌다. 역시 나 춘애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단기 프로젝트에 불과했지만 MSG를 마구 뿌린 말들을 하는 동안 춘애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진지하게 들었다.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춘애의 얼굴을 보며 준비해둔 말을 꺼냈다.
“너도 돈 착실히 모은 다음에 성실한 남자 만나서 대림동에서 가게 하나 내는 건 어때? 너 잘할 것 같다야.”
눈치껏 얼굴에 웃음을 띄고 한 말이었는데 춘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 동네에도 새로 열었다가 망하는 가게가 얼마나 많은데. 남자는 무슨, 풉. 다 거기서 거기던데.”
춘애는 양꼬치를 양념에 푹푹 찍어 후후 불지도 않고 한입에 욱여넣었다. 꽤 뜨거울 텐데도 개의치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한참 뒤에 먼저 입을 연 건 춘애였다.
“너처럼 머리 좋고 똑똑한 애들이 잘돼야지. 그래야 나 같은 조선족도 어깨 펴고 살지.”
“야, 내가 잘되는 게 어떻게 널 위한 거야. 내가 잘되는 건 날 위한 거고 너는 널 위해서 열심히 하는 거지.”
춘애가 히죽이 웃더니 코앞의 매운 양념에 쯔란 시즈닝을 섞었다.
“한국사람들도 나쁜 사람 많잖아. 그렇지만 전체적인 이미지는 괜찮은 것 같던데. 그게 다 손흥민, BTS 같은 사람들이랑 삼성 덕 아니야?”
실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논지였다. 이상하게 눈에 눈물이 고일 것 같아서 신경질적으로 양꼬치 양념을 휘휘 저었다. 차마 춘애에게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논리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 춘애는 그에게 걸맞은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걸 오류라고 짚는 순간 내가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넌 이주민 체질이 아닌 것 같다고 체념을 담은 농담만 던지고 말았다.
자동회전 양꼬치 화로의 연탄불이 천천히 식어갈 즈음, 춘애가 밖으로 나가 라이터 불을 켰다. 나는 재빨리 계산을 마치고 따라 나가 그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춘애는 이 시간을 꽤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나도 그가 피워 올린 담배연기를 함께 들이켰지만 딱히 싫을 것도 없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또 한대를 꺼내려 하기에 말렸다.
“담배 끊어야지. 아님 초슬림 에쎄나 피우던가.”
나는 괜히 짜증을 냈다. 갑자기 춘애가 담배 피우는 꼴을 계속 보고 있을 자신이 없어졌다. 춘애는 막 입에 댔던 새 담배를 다시 넣고 앞서 걸었다. 그러고 보니 둘이 나란히 걸은 기억이 별로 없었다. 대림동 안에서 춘애는 마치 여기가 자기 세계인 것처럼 거침없이 휘젓고 다녔다. 처음엔 어디로 가는 거냐고 옆에 붙어 묻던 나도 어느 순간 단념하고 말았다. 그저 춘애가 걷는 대로 따라 걸었다. 그날은 한참을 걸었다. 춘애가 한번도 날 데려가지 않았던 곳이었다. 어둑한 골목, 간판도 붙지 않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가게 앞에서 춘애가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 기다려.”
가게로 들어간 춘애가 중국어로 뭐라 말하는 것 같았다. 여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바깥을 한번 흘깃 내다보더니 검정 비닐봉투를 춘애 손에 쥐어주었다. 어쩐지 그 과정이 은밀해 보였다. 춘애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비닐봉투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꽤 묵직했다.
“이건 뭐야?”
“마지막 선물. 너 잘되라고.”
춘애가 대림역 앞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한사코 말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춘애의 집이 이 대림동 어느 골목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또 술 땡기면 연락해.”
“됐어. 너도 바쁠 텐데. 얼른 가.”
춘애가 손짓해서 내가 먼저 돌아섰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검정 비닐봉투를 들고 앞만 보고 곧장 걸었다. 한참 뒤, 골목을 벗어날 즈음에 돌아보니 춘애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길 바랐던 마음이었다.
대림역 화장실에 들러 거울 앞에서 손을 씻다 말고 킁킁, 옷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춘애의 독한 담배냄새가 옷에 밴 것 같았다. 개의치 않는 척 마저 손을 씻고 비닐봉투를 열어보았다. 한국 유명 화장품 샘플들이 브랜드별로 한가득 들어 있었다. 나는 애써 코웃음을 치고 봉투를 다시 정성껏 묶었다. 적당한 세기로. 한데 속이 알싸하게 아파왔다. 생리가 막 올 때 처럼. 거울 속 내 눈이 벌게져 있어서 차가운 물로 박박 눈을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