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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중편 특집)

 

 

전성태 全成太

1969년 전남 고흥 출생. 1994년 실천문학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여기는 괜찮아요』 『두번의 자화상』 『늑대』 『국경을 넘는 일』『매향(埋香)』,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 등이 있음.

jstroot@hanmail.net

 

 

 

걷는사람

 

 

1.

 

일출 시간대가 여섯시로 떨어졌다. 해가 나지 않고 진눈깨비가 날린다. 오늘은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에 진입한다. 3킬로미터 전방에 국경도시 하산이 있다. 상진은 조산리에서 철교를 건널 계획이었다. 그는 워커 앱을 띄웠다. 두만강역을 출발해 로또스 호수에 이르는 로드맵이 떴다. 7킬로미터가 조금 넘었다. 현지 기온 영하 6도에 북서풍이 심하다. 그는 워커 앱을 보면서 골목을 걸어 나왔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고 인적이 없다. 골목을 벗어날수록 물가의 냉한 바람이 얼굴로 달려들었다. 홍매화 가로수들에 꽃봉오리가 맺혔으나 그림자 같은 어둠에 묻혀 꽃은 거뭇해 보였다. 골목 어귀에 음식물쓰레기 수거 차량이 작업 중이었다. 상진은 청소차를 빠르게 지나갔다. 상진이 나진항을 통과한 건 닷새 전이었다. 함북선 철길 루트를 버리고 만포, 번포 호수를 품은 개활지로 우회해 걸었다. 철길 루트보다 20킬로미터를 더 걷는 경로였지만, 한반도에서 가장 크다는 호수를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그 어마어마한 갈대밭을 보고 싶었다. 바람을 그대로 굴려내는 간척지를 걷는 길은 적막했다. 상진은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제 숨소리만 들으며 걸었다.

그는 184일째 걷고 있었다. 가을에 나선 길이 어느덧 봄에 들었다. 최북단에 도착했다는 기쁨보다 이제 겨우 반도를 벗어난다는 아득한 마음이 밀려왔다. 애초에 그는 두만강까지만 걸을 생각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한반도 끝단으로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조차 왜?라는 질문을 의식했을 때 만들어진 구실이고 무의식에서는 더 단순할지 몰랐다. 북청 사람을 만났 고, 고려인들을 봐서 그럴지 모른다. 두만강을 향해 동해안을 따라 걷는 동 안 상진은 마음이 바뀌었다. 함흥을 지날 무렵 올겨울 들어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 남북 전역에 눈이 내린 날이었다. 이튿날에도 눈보라가 나부꼈고 눈길을 걷자니 고립감이 엄습했다. 그는 우주를 떠도는 보이저호를 떠올렸다. 걷는 동안 자주 빠져드는 상념이었다. 이내 고행이 안기는 무심하고 평온한 각성 상태에 들었고, 현실에서 유리되는 해방감이 찾아왔다. 가보는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이 차올랐다. 성간에 던져진 영원한 떠돌이가 되어도 좋을 것 같았다. 다음 목적지를 블라지보스또끄로 연장했다.

그는 큰길로 나와 갈림길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걸음을 멈추자, 자동으로 스트리트 뷰가 구동하며 두만강역 주변 풍경을 보여주었다. 일대 가 토목 공사장처럼 온통 황톳빛이었다. 야적장에 건설자재가 가득 쌓여 있었다. 인도교 공사에 쓰이는 자재들인 모양이었다. 상진은 위성사진에서 인도교 공사 현장을 터치했다. 강에 성냥개비 같은 다리가 반만 걸쳐 있었는데 앱 이미지에는 러시아 쪽에서 다리가 다가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었다. 북과 러가 반씩 나누어 공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오늘 같은 날은 어디 망루 같은 데에 잠시 서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름에 있다는 전승대(戰勝臺)에 올라 자축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앱에는 그런 곳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고개를 든 상진은 눈앞의 아파트 단지와 그 너머 공단 풍경을 지우고 광활하게 펼쳐진 대륙을 떠올렸다.

그는 다시 발걸음을 뗐다. 앱에서 지리정보 음성서비스가 흘러나왔다. 이순신과 녹둔도(鹿屯島)에 대한 역사 정보였다. 같은 내용이 사흘째 반복되고 있었다. 이 일대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고, 데이터가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는 주변을 걷고 있는 유저를 표시하는 알림 기능을 켜보았다. 어떤 아이콘도 뜨지 않았다. 그는 이 황량한 곳에 혼자였다.

이 북방 변경에서 사십대의 이순신이 만호로 근무했다. 지금으로 치면 영 관급 무관 시절을 그는 이곳에서 보냈다. 임란이 있기 사년 전이었다. 이순신은 보직에서 해임되는 백의종군을 두차례 했는데 조산은 처음 해임된 곳 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여진 유민 일족과 두차례 싸웠다. 첫 전투에서 승리하고도 해임되었다가 다음 전투에서 족장을 생포해 복권했다. 그의 나이 마흔넷, 공교롭게도 상진과 같은 나이였다. 이후 이순신은 낙향했다가 임지를 남해로 옮겨 생애 마지막 십년을 보냈다.

조선사회에서는 백의종군이 흔했고 가혹한 징계는 아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무관에게 불명예만큼 가혹한 형벌이 있었을까. 상진은 백의종군 얘기보다 이순신이 한반도의 북단에서 남단까지 오갔다는 사실이 더 흥미로웠다. 그가 북막 임지를 찾아 오르내린 길은 밝혀져 있을까? 섬진강 쪽에는 임란 때 백의종군한 길이 복원되어 있다. 상진은 그 길을 통해 이 도보 여행을 시작했다. 이순신은 김화-철령-함흥-경성-회령으로 이어지는 관북길을 이용해 북막으로 갔을까? 북방 탐방로가 있다면 상진은 종주해보고 싶었다. 세상에는 무한대의 길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길이라면 어디든 걸어보고 싶었다.

번포는 굴과 황어 산지다. 앱은 이들 식재료로 만든 요리 리뷰까지 들려주지는 않는다. 앱이 제공하는 지리 정보는 남쪽 사람들이 생성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제작된 것이므로 맛 품평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황어는 초봄 이맘때 남대천 같은 기수역으로 산란 회귀를 하는 생선인데 상진은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찾아보니 잔가시가 많고 맛이 별로라는 평이 많았다. 낚시꾼 이 손맛만 보고 방생한다는 소감이 블로그에 여럿 잡혔다.

남해에 굴이 아직 날 때였다. 상진은 겨울이면 굴국 잘하는 식당을 단골로 삼았다. 점심 저녁 두끼를 해결한 날도 있다. 『난중일기』에는 석화죽으로 어머니를 봉양한 기록이 있다. 이순신은 생전에 두 지방의 굴을 다 맛보았을 것이다. 여기 차가운 석호에서 나오는 굴은 어떤 맛일까. 어패류는 북으로 오를수록 맛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려준 이는 탈북민이었다. 그는 북청에서 대대로 문어잡이를 한 어부였는데 그곳 피문어가 육질이 더 차지다고 들려주었다. 그를 다시 만나면 번포 석화에 대해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탱글탱글하니 향이 아주 환한 게 기가 막힙네다” 하고, 그는 뻐드렁니를 보이며 자랑할지 모른다.

 

삼년 전 상진은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매년 한두차례씩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들게 허리 통증이 찾아왔고, 병원에서는 시술을 권했다. 통증을 다스리며 두어주 조심하면 괜찮아지곤 해서 그는 참고 지냈다. 그는 알람을 맞춰놓고 소설을 쓰거나 책을 읽었고, 알람이 울리면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그런데도 지난해 봄부터 통증과 저림 증상이 엉덩이와 넙다리로 내려왔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들 만큼 끔찍한 통증이었다. 골반 깊숙이 하 지로 이어지는 한점 신경이 예민하게 감각되었다. 상체와 하체가 마치 작은 매듭 하나로 허술하게 묶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매듭진 데가 실없이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마음이 먼저 겁을 먹어서 몸 틀고 앉기가 두려웠다. 그는 아침마다 벽을 짚고 한동안 뭉그적거려야 했다.

통증이 한달을 넘겨 가시지 않았다. 그는 도리 없이 내시경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의사는 재발할 수 있다며 허리 근육을 보강하라고 권했다. 그는 보조대를 차고 집 근처의 호수공원으로 나갔다. 하루 1만보를 목표로 매일 착실히 걸었다. 1킬로미터 남짓 되는 공원 둘레길을 그는 여덟바퀴씩 돌았다. 강의가 있는 날은 심야에라도 공원으로 나갔다. 멀리 출장을 갔다 오는 길에는 열차간을 오가며 걸음 수를 채웠다. 하노이 여행 때는 남은 3천보를 기내에서 기어이 채우기도 했다. 만보에 집착하는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했지만, 기록 루틴이 생기면 그렇게 되고 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관리를 했는데도 상진은 디스크가 재발했다. 그는 이제 고질병으로 갖고 살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수술대에 눕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호수공원은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농수용 저수지를 확장한 것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습지가 형성되고 수목도 무성해졌다. 습지 한 귀에서 연꽃이 피고, 부들과 갈대가 군락을 이루었다. 철마다 쇠기러기나 두루미, 백로, 물떼새 같은 철새들이 바뀌어 찾아왔다. 고라니와 너구리가 눈에 띄기도 했다. 신도시 규모가 갖춰지면서 인근 주민들이 아침저녁으로 쏟아져나와 운동과 산책을 즐겼다.

습지는 사계를 또렷이 새겨냈다. 여름에는 부들과 갈대가 무성한 습지에 내리는 비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11월이 되면서 부들과 갈대는 누렇게 고스러졌다. 잎은 물러서 퇴비처럼 쌓이고 앙상한 줄기만 촘촘히 잔해로 남아 말라갔다. 이 억센 줄기는 새순이 돋아나는 봄까지 습지를 메우고 서 있었다. 봄인데도 그런 낡은 풍경으로 선 줄기들을 바라보노라면 조바심이 났다. 여린 새순들이 저걸 어떻게 헤치고 나올지 걱정되고, 망할 것들이 질기게 남아서 봄 풍경을 망쳐놓는가 싶어 속상했다. 부들이나 갈대 줄기는 어린 새순이 자라서 저희를 덮을 때까지, 새것들에게 자리를 내줄 수 없다는 노욕의 화살처럼 박혀 있었다. 그러나 한두해 습지를 겪으면서 자연의 순리랄까, 저들의 방식을 짐작하게 되었다.

5월 하루이틀 비에 묵은 것들이 감쪽같이 녹아 사라졌다. 그 묵은 것들은 할 일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여린 줄기들이 허리를 죽 펼 때까지 지지대로 남는 것 같았다. 줄기들이 투실하게 몸을 세우고 무성해지는 게 느껴졌다. 호수가 소란스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허리를 세우는 일, 그건 상진에게도 너무나 절실한 일이었다. 날마다 확인하고 싶은 풍경이 생겼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통증을 다스리며 그는 그런 마음을 풍경에 투사하면서 공원을 걸었다. 공원을 걸으며 몸을 얼마나 회복했는지 모르나 상진은 걷는 일을 즐기게 되었다. 사람과의 관계로 심란한 내면의 한 귀가 허물리고, 해롭지 않은 것들이 차지해가는 평화를 그는 가만히 받아들였다.

한창 일에 매달려 있을 때 그가 유일하게 꿈꾸는 건 쉬거나 잠을 벌충하는 게 아니라 걷는 일이었다. 이 일을 끝내면 하루 종일 걸을 거야, 하고 그는 되뇌었다. 그는 보리밭 사잇길을 한없이 걷는 자신을 상상하곤 했다. 열두어살 무렵의 고향에서 묻혀 온 이미지일 테지만 그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이라고 믿었다. 걷는 사람. 훗날 생의 마지막 숨을 내쉴 때 그가 그리워할 건 바람과 햇볕을 맞으며 단독자로 걷는 이 감각일 것 같았다. 살아 있다는 게 뭐냐고 신이 묻는다면 그는 마땅히 걷는 존재라고 말할 용의가 있었다.

그는 임대아파트에서 독신으로 지냈는데 아파트에는 고려인 동포가 여러 세대 입주해 있었다. 대부분 고령층인 고려인들은 옷차림이 눈에 띄었다. 남자는 털실로 짠 도삐를 쓰고, 양복이 깡똥했다. 여자는 쁠라또끄라는 두건을 즐겨 써서 중앙아시아의 입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 차림을 하고 그들은 철마다 버스를 대절해 어딘가로 가고는 했다. 고려인들을 지켜보노라면 시간이 얼마간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와 현재가 혼재한 공간에 사는 것 같았다. 2024년에 1937년이 겹치는 건 무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상 진의 생각을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는 시간을 확장하는 그들의 존재를 좋아했다. 뭔가를 맹렬히 상상하게 했다.

 

그 무렵 상진은 장편소설을 쓰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2천명의 민간인이 집단 학살되었다. 1948년 가을, 여수에 주둔한 14연대 군인들이 봉기해 사흘간 시를 점령했고, 토벌대는 도시 탈환 후 부역자와 동조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보복하듯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다. 시신을 전시하고, 불에 태우거나 야산과 골짜기에 암매장했다.

상진은 매산등 선교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에 주목했다. 그가 다닌 고등학교 부근에서 일어난 학살이었지만 당시에는 그 역사를 알지 못했고,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진행한 유해 발굴 기사를 접하고 처음 알게 되었다. 진화위는 선교마을 매장지를 1호 유해 발굴지로 지정했다. 희생자들은 한마을 주민 스물다섯명이었다. 저녁을 지을 무렵, 군인들에게 불려나와 학교 담벼락에서 총기 난사를 당했다. 희생자에는 세살 아이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시신 두구는 당시에 유족이 수습하고, 나머지 시신은 미국인 선교사가 인부를 고용해 선교부 부지의 밭에 가매장했다.

42-1번지 매장지는 진화위 출범 전부터 지역 시민단체의 오랜 문헌조사, 탐문조사를 통해 꽤 알려져 있었다. 보이열(Elmer T. Boyer) 선교사의 회고록이 사후에 미국에서 발간되었고, 무엇보다도 시신을 직접 수습한 노인을 찾아 매장지를 특정할 수 있었다. 당시 인부 네명이 시신을 매장했는데 노인은 유일한 생존자였다. 노인은 구덩이를 서너개 너르게 파고 시신을 침상에 눕히듯 네댓구씩 나란히 묻었다고 증언했다. 희생자가 일가인 경우 되도록 함께 묻었다.

보이열 선교사는 추후 시신의 신원을 밝힐 수 있도록 선교부 부설병원에서 나온 1그램짜리 페니실린 병에다가 희생자의 이름을 적은 쪽지를 넣었다. 그걸 시신의 품에 안기거나 입에 물려 매장했다. 선교사나 인부들은 자신들이 시신을 가매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했다. 그러나 시신을 다시 수습하는 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릴 줄 몰랐다. 집단 매장지가 특정되고 발굴 대상지가 된 연유도 군인들에 의한 암매장이 아니라 민간에서 시신을 수습했기에 가능했다.

상진은 성경학교가 있던 시절의 선교마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자취방을 오가는 길이었다. 붉은 벽돌의 단층 교사가 그때는 이미 폐쇄되어 방치되어 있었다. 주위에 빈터가 많았는데 아주까리처럼 키 큰 식물이 무성했고, 그 틈에서 선교사들이 심어놓은 칸나가 붉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선교사들이 관사로 썼던 석조건물은 그때는 숲이 깊어서 눈에 띄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주변에 펜스가 둘러져 있어 항상 호기심을 자극했다.

학살 현장은 선교마을 아래쪽에 있었다. 상진이 ‘31계단’이라 불렀던 계단을 오르면 나오는 언덕길이었다. 언덕에는 정자가 있고 팽나무 네그루가 고즈넉하니 서 있었다. 그는 신문배달을 했는데 매일 새벽마다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그 계단을 오르내렸다. 저녁이면 한 여자아이를 마중하던 길이기도 했다. 그는 학교 담장이 성처럼 이어지는 길을 올라 다녔다.

1948년 10월 23일, 그 언덕에서 학살이 자행되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성경학교 자리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선교부 토지는 찢겨서 아파트와 단독주택에 잠식된 지 오래였고 숲속 선교사 관사 앞으로 산복도로가 새로 놓여 있었다. 아파트 주민들이야 주거지 근방이 그런 끔찍한 장소인지 모르고 살다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마을 토박이들은 드디어 그날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개발 광풍에도 칠십년 동안 매장지가 나대지로 남은 것도 그곳이 흉한 자리인 걸 알음알음 알고 있어서였다.

2008년 유해 발굴은 무위로 끝났다. 거짓말처럼 한구의 유해도 수습하지 못했다. 토층을 확인한 결과 사람의 손길이 닿은 적 없는 생토였다. 즉 매장한 흔적이 아예 없었다. 유해 발굴단은 주택이 들어서는 등 지형 변화가 심해 더 광범위한 지표조사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호수공원에는 공공근로를 하는 주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형 종량제봉투와 쇠집게를 들고 다니며 공원 환경을 관리했는데 한번은 사십대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버드나무 아래 벤치에서 우연히 통화하는 걸 듣게 되었다. 그때는 여름이어서 버드나무에서는 매미 소리가 듣그러웠다. 그래서인지 통화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무례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내가 누굽둥? 잘 있습매. 어마니만 아프지 마오. 고려약은 왜 자꾸 먹슴 둥? 보내준 약 부지런히 먹으오.”

상진은 고려인 3세나 되나보다고 짐작했다.

하루는 남자가 방죽 수문에서 쪼그려 앉아서 통화하는 소리를 흘려들었다. 거긴 그늘이 없고 콘크리트 지열이 높아 걷다보면 얼른 지나가고 싶은 곳이었다. 그는 여전히 목소리가 높았다. 상대가 귀가 어둡거나 통화 품질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진숙이 가래는 인차 들어온다함매. ……그게 말루나 쉬운 줄 압둥?”

한번 인상을 받아놓은 후 남자가 자주 눈에 띄었다. 그는 일행과 떨어져 혼자 일했고 한눈에 봐도 작업에는 건성이었다. 늘 그는 공원 한갓진 데서 전화기를 붙들고 지냈다.

“내 담달에 또 기별가겠습매. 어마니, 가내 어무이 소식 아직 없슴둥?”

옆집 젊은 부부가 이사 가고 그 집에 중년의 탈북 여성이 입주했을 때, 집들이에 한무리의 주민이 드나드는데 그 남자도 보였다. 아파트에 북에서 온 주민이 꽤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무렵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라졌던 알뜰장이 아파트 관리동 앞에 다시 섰다. 소음과 주차 문제로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으나 노약자가 많고 시장 볼 시간이 여의찮은 주민을 위해 부녀회에서 알뜰장 입점을 허가한 모양이었다. 금요일에 서는 장은 규모가 예전만 못했다. 그래도 상진은 시장 보기가 한결 편해졌다. 그는 수산물 노점에서 내놓은 돌문어 생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중짜가 쌈직한데 혼자 먹기에는 부담스러워 사기를 주저하던 참이었다.

“거 문어 새깽이 보라, 정만 먹음직하네.”

귀에 익은 목소리에 상진은 돌아보았다. 남자가 앞으로 나서더니 그물망을 살짝 들어서 문어를 살펴보고는 상진에게 말했다.

“요놈 한마리 제껴가재구 선생이랑 나랑 좀 노나 가주겠소?”

제낀다는 게 무슨 말인가 했다. 듣자 하니 둘이 한마리를 사서 나누자는 소리였다. 상진은 엉겁결에 남자와 값을 맞추어 문어를 샀다. 상인이 문어를 도마에 올리고 토막 치려는 걸 남자가 손사래를 쳤다.

“칼질은 왜 함둥? 문어는 통으로 쪄내야 제맛이디.”

그렇게 해서 상진은 사내를 대동해 자신의 집으로 왔다. 그들은 문어를 나누지 않고 함께 먹었다. 남자가 문어숙회를 능숙하게 차려 내놓았다. 남자는 북에 살 때 문어를 잡았다고 했다.

“내 말로만 듣던 작가 선생을 여기서 보오. 어째 예사롭디 않더만.”

“네?”

“거 헛하늘만 빤히 보며 걷디 않슴둥?”

남자는 고개를 세우고 배에 손을 얹고 걷는 상진의 모습을 흉내냈다.

그날 남자가 책장을 유심히 보기에 상진은 그가 돌아갈 때 읽을 만한 걸 골라 서너권 챙겨서 보냈다.

문석과 알고 지내게 된 후 두 사람은 집을 오가거나 인근 식당에서 어울렸다. 문석은 남으로 온 지 반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중국과 라오스를 거쳐 태국을 통해 입국했다. 시청에서 알선해준 물류창고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전기기능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내사 마이 벌어야기오.”

문석이 천진스럽게 말했다. 그 이유를 더 밝히지 않았다. 고향에 남은 부모와 딸을 데려올 생각인 듯했다.

워커 앱을 알게 된 건 문석을 통해서였다. 문석은 신기한 게 있다고 자기 휴대폰을 상진에게 보여주었다. 유저의 걸음 수를 계산해서 가상의 루트에 일대일로 매핑해주는 걷기 앱이었다. 하나원에서 함께 지낸 탈북자가 만든 거라는데 앱은 동네를 걸으면서 세계여행을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사용자가 GPS 기반으로 걷는 실제 거리를 앱에 설정된 루트에 구현하는데 운동량 데이터 지원은 물론 마일스톤 팝업, 스트리트 뷰, 오디오 가이드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디지털 여권이나 스탬프 발급 여부도 선택할 수 있었다. 같은 루트를 걷는 유저들을 아이콘으로 표시해주는 기능도 있었다. 걷기 앱이라면 만보기 기능이면 족해서 상진은 앱이 장난스럽게 여겨졌다. “그래 문석씨는 어디로 여행하고 있어요?”

별생각 없이 물었는데 문석은 선뜻 대답을 못했다. 그는 뜸 들이다가 중국 쿤밍(昆明)으로 가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이고, 언제 갑니까?”

“퍼써 문산이래 왔습네다.”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뚜벅뚜벅 걷다보믄 언젠가 가디 않갔시요.”

“곤명에는 왜요?”

그가 다시 뜸을 들였다. 문석이 너름새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말수가 적고 조심하는 티가 역력해서 상진도 조심스러워졌다. 어쩌면 문석은 잔뜩 긴장해 자신을 다그치며 살고 있는지 몰랐다. 문어를 나누자는 제안은 즉흥적인 게 아니라 소심한 사람이 자기에게 부여한 미션 같은 거였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문석이 결심한 듯, 그러나 상진의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

“거기서래 사람을 하나 놓쳤음둥.”

사람을 잃었다는 소리인가? 누가 죽었다는 말인가? 쿤밍은 동남아 국가들이 지척인 도시이므로 탈북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보았다.

중국으로 먼저 나온 건 문석의 아내였다. 친정 살림이 복잡했다. 군대에 가고 학교 다니는 동생들에다가 갑자기 홀어머니가 암에 걸렸다. 한해 만에 아내한테서 연락이 끊겨서 그는 아내를 찾아 중국으로 나왔다. 아내가 창춘(長春)에서 지낼 때 몸을 의탁한 처가의 먼 친척을 찾아갔다가 그는 아내가 중국인과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세상에 그런 데가 박혔나 싶은 산골에서 아내를 찾아냈다. 아내는 늙은 중국인 농부와 살고 있었다. 이미 갓난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었다. 아내를 빼내 쿤밍까지 와서 월경 브로커와 접선했는데 아내가 제 발로 종적을 감추었다.

“아새끼 때문에 아니갔음둥.”

그는 국경을 넘는 걸 포기하고 몸을 돌렸다고 했다.

“북으로 다시 들어갔다는 겁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이 없지 않슴둥?”

그는 이듬해에 다시 중국을 거쳐 남으로 왔다. 지금은 여동생 부부가 중 국으로 나와서 남한으로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돈이 요망을 떠는 기니, 다시 가정을 모아야 하디 않갔나…… 그 미련곰베이가 내가 이 가즈게 와 있는 줄사 기저 모를 검메.”

아내에게 하는 말 같았다.

 

문석은 여름내 공공근로를 하며 지냈다. 상진은 오전 느지막이 공원 연밭에 꽃봉오리를 맺은 걸 들여다보고 있다가 공공근로 나온 문석을 만났다. 그날은 고라니 한마리가 습지에 나타나서 둘은 나란히 펜스에 기대서서 한 참 구경했다.

“연길에도 큰 호수가 있단 말임둥. 십이월이 되무 꽝꽝 얼어붙소. 애동네 들이 썰매를 타구 야단법석이람매.”

문석이 밤 기차를 탄 날을 이야기했다. 기차역으로 가기 전 그는 호숫가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워서 언 호수에 던졌다. 돌이 또르르 굴러가서 섰다. 뭔가에 맞았으나 아무것도 맞히지 못한 듯했다. 몸을 돌릴 때까지 돌은 호수 위에 그대로 있었다. 해동이나 되어야 돌멩이가 물에 닿겠지, 하고 그는 돌아섰다.

“아즉도 그 돌매기 고러고 있디 싶단 말입네다, 형님.”

문석이 그런 말을 흘려놓았다. 지체되는 자기 삶에 대한 회환인지 희망인지 착잡해서 상진은 뭐라고 거들기도 마땅치 않았다.

9월이 왔고 밤에는 날이 선선해졌다. 문석을 만난 지 석달쯤 되었을 때였다. 문석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 종적이 없었다. 평소 그가 옆집 여자와도 교류가 있었으므로 여자한테 알아보았지만, 자기 역시 궁금해하던 참이라고 말했다. 자기네들끼리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인연이 이만큼인가. 상진은 인사 한마디 없이 떠난 문석이 섭섭했다. 보름쯤 지나 관리사무소에서 연락이 와서 책을 찾아가라고 했다. 문석이 떠난 아파트에 메모 한장 붙인 쇼핑백이 있었다고 했다. 메모에는 ‘돌려주세요’라는 부탁과 상진의 집 동호수와 이름만 적혀 있었다. 문석이 앱에서 나와서 실지를 여행하고 있는지 몰랐다. 쿤밍이든 북청이든, 아니면 아내가 있는 곳이든 그는 그곳으로 가고 있는지 몰랐다.

상진이 워커 앱으로 여행을 시작한 건 그 무렵이었다.

상진은 남원으로 올라 태백을 거쳐 속초로 넘어가 동해 길을 따라 걸었다. 고성에서 월북해 원산, 함흥, 청진을 거쳐 북쪽으로 걸었다. 산맥도 강도 없고, 국경이나 검문소도 없었으며 객지 잠도 없는 길이었다. 하루 8킬로미 터, 10킬로미터를 축적하는 걷기만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일상이 온전히 여행자로 변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단조로운 호수 둘레길이 시야에서 지워지고 그는 가상의 여행지를 감각하며 걸었다. 비를 맞기도 하고, 별을 보며 걷기도 했다. 얼굴이 수척해지고 수염이 덥수룩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면 식탁에 오랫동안 가만 앉아 있고는 했다. 잠들기 전에는 다음 날 걸 어야 할 길을 앱에 설정하고 그곳 정보를 검색했다.

 

 

2.

 

상진은 순천으로 옮겨온 후 여러차례 선교마을을 찾았다. 유족을 수소문했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일가가 몰살된 경우가 많았고, 유족이 있더라도 그 일을 겪고 뿔뿔이 마을을 떠났으리라 싶었다. 시신을 매장 한 유일한 생존자 노인도 이미 사망하고 없었다. 사건 당시에 태어난 사람이 일흔살이 넘었을 시간이었다. 증언자들 역시 그날 일을 직접 겪었다기보 다 전해 들은 주민이 대부분이었다.

42-1번지는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마을 등성이에 있었다. 비탈길을 올라 고개를 드니 산이 눈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비탈 끝에 경로당이 있고, 배수탑이 있었다. 그 뒤편으로 풀에 뒤덮인 유해 발굴지가 나타났다. 어떤 표지판도 없었지만 상진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집 한채 들어설 만한 크기의 땅은 농사를 짓다가 버린 밭처럼 잡초가 무성했다. 이만한 부지를 그냥 놀릴 일이 없었다. 그는 주위를 에운 주택들을 둘러보았다. 도대체 스물세구의 유해들은 어디에 묻힌 걸까?

그날 상진은 경로당에서 증언을 청취했다. 여자 방에서 그 일은 남자들 이 잘 안다고 해서 상진은 남자 방으로 떠밀리듯 들어가 앉았다. 노인 다섯이 있었는데 취재를 왔다고 하니 그런 건 교감 선생한테 들으라고 한 노인을 앞세웠다. 지목당한 노인은 이곳 출신도 아닌데 무슨 인터뷰냐고 겸사를 하더니 이내 물어보라는 얼굴로 상진을 건너다보았다. 그는 초등학교 교감으로 은퇴한 사람이었다. 그와 몇마디 대화가 오가다보니 뒤로 빠져 앉았던 노인들이 “그건 그게 아니고……” 하면서 한마디씩 참견했다. 그래서 뒤에는 집단 인터뷰를 하는 꼴이 되었다. 여순사건을 몸소 경험한 노인들은 없었다. 이 마을에서 사오십년씩 산 주민일 뿐이었다. 노인들의 증언은 풍문을 전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한 노인이 객담처럼 한마디를 흘렸다.

“당시에 가족들이 남몰래 수습하지 않았겄어? 이냥 뒀을라고.”

그 노인의 얘기가 왠지 솔깃했다. 그냥 흘려들을 수 있었으나 유해가 발굴되지 않은 그럴듯한 사유를 들은 것 같았다. 사건의 비극성이 잘 드러나는 추정이었다. 유족이라면 마땅히 그러지 않았을까. 아무리 두렵고 공포스럽더라도 그렇게 행동하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남몰래 가족의 시신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여러 증언을 종합해보아도 그런 추론이 타당했다. 시신이 매장되기 전 그곳은 선교부의 채소밭이었고, 선교사들이 떠난 뒤로는 오래 방치되어 있었다. 마을이 형성되면서 그곳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이 되었고, 사정을 모르고 그 땅에 텃밭을 일구려는 손길도 생겼다. 토민들이 거기에 코스모스씨를 뿌려 밭을 갈아먹지 못하게 했다고 증언하는 것으로 미루어 마을에서는 그 공지의 내력을 널리 공유하고 있었던 듯싶다. 그럼에도 텃밭을 일구는 손을 막지 못했다. 거기에 시신이 묻혀 있다고 발설하고 회유할 수 없었다. 노인들은 마지못해 땅을 깊이 갈지 말라고 당부할 도리밖에 없었다.

“뻬라도 나와봐, 동네가 어떻게 되겠어.”

노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진은 답답한 마음에 그들에게 물었다.

“그때 유해가 일부라도 나왔더라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요.”

한 노인이 손사래를 쳤다.

“나오면 안 되제. 나라에서 잘못했다, 딱 인정을 해줘야 나오제 그전에 나와서 쓰겄어? 못 나오제. 세상이 바뀌고 있응게 인저 나오지 않겠더라고. 이나마도 우덜이 말을 내놓는 것도 세상 변한 덕이야. 그짝은 아직 젊어 잘 모르것지만 전에는 입도 뻥긋 못했어. 순 빨갱이 동네라고 낙인을 찍어부렀는디 숨이라도 쉬고 살았간.”

그러나 노인들은 유해를 찾는 일에는 회의적이었다.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는 것이다. 집을 짓거나 땅고르기 작업을 하다가 사람 뼈가 나왔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뻬가 나와도 말을 못 했겄제. 지 집 밑에 아부지가 묻혀 있는 것 같더래도 내긋도 못하고 살지 않었겄드라고.”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주민들은 매장지를 잘못 짚고 지켜온 셈이었다. 쉬 쉬하며 살다보니 생길 수 있는 일 같았다. 저 땅이 성소처럼 되어서 대물림이 된 게 아닐까. 주민들이 추모탑 하나 모시듯 헛곳을 지키고 살았다는 말이었다.

“답답하제. 다들 그랬다더라, 듣고만 살았제 지 눈으로 본 사램이 있어야 제. 옛말에 용은 그려도 퇴끼는 못 그린다는 말이 있잖어. 당장 저기 어디에 묻혀 있을 거라고 누가 장담해. 그걸 누가 알어?”

“동네 꾸들장을 다 뒤께봐, 나오남. 애진작에 글렀어.”

“긍게. 뻬가 나옴작시면 좋제. 근디 뻬가 나오면 여순이고, 안 나오면 아닌 가베.”

지금껏 뒤편에서 한마디 없던 노인이었다.

“여순이 여든살이여. 나도 못 살아본 세상이란 말여. 작가 선생, 바로잡겄다고 들짝시면 진상을 캐야제. 뻬보담 안 썩는 글자들 있을 거잖애. 문서고 족보고 잘 뒤져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덜 성명 삼자 모으고, 학살한 놈들, 빨갱이를 이쑤시개처럼 물고 사는 놈들, 이름 석자 새개놓는 게 우리가 바라 마지않는 명예회복이여.”

노인들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노인 하나가 상진에게 알려주었다.

“우리 동네 김대중이여.”

상진은 시신이 이미 소실되었으리라는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집을 짓다가 뼈가 나왔다는 말은 지어낸 소문일 수 있었다. 금기에 눌리면 괴담이 생긴다. 당자의 입으로 직접 전한 얘기가 아니라 건너고 건너 들은 소리라면 괴담일 공산이 크다. 두려움에서든 호기심에서든 입이 틀어막히면 변죽을 울리게 마련이다. 그래야만 미치지 않고 살 수 있다. 한편으로 무덤을 마을에서 치워버리고 싶은 욕망도 있었을 것이다. 누가 무덤 위에 마을을 세우고 싶겠는가. 무덤 곁에서 잠들고 싶겠는가.

상진은 노인들이 내놓은 단서를 따져갔다.

“저기를 꽃밭으로 만든 적이 있다고 하셨죠?”

“우리가?”

노인들이 서로를 훔치며 되물었다.

“자꾸 텃밭을 갈려는 사람들이 생겨서 그것 막느라고 코스모스밭을 만들었다면서요?”

아까 그런 증언을 했던 노인이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꽃밭은 박씨인가 김씨인가 철공소 하던 사램이 했제, 아마.”

그러자 곁노인이 끼어들었다.

“거기가 철공소를 했어, 고물상 아니고?”

“여튼 꽃밭은 그이가 맹글었어. 그도 나가 중학생 때 일이라 참 먼 일이네. 아무 날 불쑥 마을에 나타났어. 저 우뜸에 집 겉지도 않은 오두막이 한채 있었는디 거그 세 들어서 한 두어해 살았으까…… 그러다가 안 보였어. 그땐 그런 일이 쌨어. 이짝으로 아파트가 들어오네, 저짝으로 길이 놓이네 함 서 토백이고 떠돌이고 막 새낐지.”

“어라, 멀리도 안 갔어. 저기 청수골에 집 사서 넘어갔다던디.”

노인들의 증언이 조금씩 달랐지만 꽃밭을 일군 사람이 있었다는 건 분명했다.

“그 사람이 왜 꽃밭을 일구었을까요?”

“뭔 소리까?”

노인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투였다.

“외지인이 거기에 시신이 묻힌 걸 어떻게 알고요?”

“어디서 들었겄제.”

노인이 시들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곁노인이 구시렁거렸다.

“참말로 왜 그랬으까?”

“어른들이 밭떼기를 보기 좋게 맹글었다고 찬사는 했어도 트집 잡는 건 못 봤어. 흉해도 묻힌 이들이 불쌍하니게 너도나도 지키자는 맴으로 그랬으까.”

“제 생각인데요……” 상진은 더 파고들었다.

“혹 유족이지 않았을까요, 그 사람?”

노인들은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노인들은 자기들끼리 그 사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맞춰나갔다. 철공소를 했는지 고물상을 했는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인상이 험상궂었다는 노인도 있고, 순했다는 노인도 있었다. 살림을 했는지 홀몸이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근디 술버릇이 고약했어. 한번씩 취해서 저 아래서 올라오믄 애들이 놀 다가 내빼고 했응게. 아나 어른이나 보이는 대로 욕도 퍼붓고, 돌멩이도 떤지고……”

“어디 그 짓만 했남. 질바닥이고 마당이고 대고 엎어져서 자고 그랬제.” “지금 생각해보믄 우리랑 낫새도 얼매 차이가 안 났을 거라잉?”

“지금 대학생들 나이나 됐을라. 하여튼 난 말 한번 안 붙여봤네.”

노인정에서 물러나 마을을 내려오며 상진은 꽃밭을 일군 남자에 대한 의문이 씻기지 않았다. 밤이면 꽃밭에 들어앉아 유골을 하나씩 캐내서 마대로 옮기는 뼈 도둑을 상상했다. 처음에는 제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형제를 찾으려고 시작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일이 커졌는지 모른다. 사내는 유해 들을 어떻게 했을까? 어딘가 더 안전한 장소에 모시지 않았을까. 상진은 고개를 들어 남에서 서로 도시를 에운 산의 능선을 바라보았다. 더 깊은 골짜기였을까? 아니면 평생 끼고 이사를 다녔을지 모른다. 태우고 빻아 자루에 담아서. 그러나 그도 나이 들어 유언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면 유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는 발아래로 펼쳐진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들쭉날쭉한 구옥들과 불쑥 솟은 빌딩들이, 지지 않는 여름 해를 반사하며 제 형체를 감추고 있었다. 상 진은 그 헛된 망상을 소설에 담고 싶었다.

상진은 그날 산복도로를 걸어 옛 자취방이 있던 마을로 갔다. 산자락 하나를 넘으면 자취하던 청수골이 있었다. 한해 세 들어 살던 집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그는 순천에 와서 지내면서 거기를 한번쯤 가보고 싶었지만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근처에 있는 식당을 들락거려도 이상하게 가지질 않았다. 그런 상진이 문득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린 건 술주정뱅 이 얘기가 불러일으킨 어두운 기억 탓이었다. 하필 그는 술주정뱅이가 주인인 집에 방을 얻어 지냈다. 참으로 끔찍한 사내였다. 자취생의 쌀자루까지 들어내서 술을 마시던 위인이었다. 더욱 끔찍한 건 상진이 그 집 딸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는 청수골 우물터 앞에 안내판이 서 있는 걸 보았다. 고등학생 때 우물물을 먹으면서는 몰랐는데 시에서 단장하고 보존하는 걸 보면 꽤 유서 깊은 우물이었던 모양이다. 상진이 신문배달을 그만두었을 때 신문보급소 총무 형이 등교하는 상진을 우물가에 세워놓고 뺨을 때렸다. 미리 말하지 않고 펑크를 내서 화가 나 있었다. 상진을 신문보급소에 소개해주고 좋은 구역을 떼준 형이었는데 자기 딴에는 서운한가보았다. 총무 형은 한달만 더 하고 그만두라고 했다. 상진은 구독자에게 우유 도둑 누명까지 써가며 신문을 배달하고 싶지 않았다. 끝내 상진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총무 형은 우물물을 한바가지 떠서 벌컬벌컥 비웠다. 형은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기 전에 말했다.

“니, 평생 오늘을 못 잊을 거다.”

 

 

3.

 

상진은 두 사람이나 겨우 다닐 만한 좁은 골목을 올라갔다. 계단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골목이 이십년 전 그대로인 게 마음을 울적하게 했다. 자취하던 집은 헐리고 없었다. 집 자리에 달맞이꽃이 가득한 꽃밭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계단을 되짚어 내려가보기도 했다. 그 집 자리가 맞는 듯했다. 집터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꽃밭이 작아서 놀랐다. 도대체 이 손바닥만 한 데에서 두 가구 네 식구가 살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집 뒤로는 산자락이 뚝 떨어져서 벼랑 같았는데 지금은 대숲을 이루고 있었다. 겨우 집터 귀퉁이에서 늙은 동백나무 한그루를 발견하고는 그 집이구나, 싶었다. 이십여년 전 그대로 잎이 빠닥빠닥 푸르렀다. 그 나무 그늘 밑으로 자취방을 드나들곤 했다.

상진은 고등학생 때 유학을 와 처음에는 기숙사에서 지냈다. 기숙사생들 은 교실만 한 자습실에서 자정까지 사감 선생의 감독 속에서 입시공부를 해야 했다. 상진은 이미 소설 습작에 재미가 붙어 있었다. 책상 한쪽에다가 중 학교 졸업식에서 받은 영어사전을 펴서 위장해놓고, 소설을 읽고 짧은 이야기들을 쓰고는 했다. 주인공이 늘 죽고 마는 소설들이었다. 요절한 작가들, 천재 예술가의 광기 같은 이야기에 끌리고는 했다. 코피를 쏟고는 그 흔적을 일기장에 받아 남긴 적도 있었으며 그런 짓 탓에 마음 한쪽에서 스멀거리는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주인공이 죽는 결말로 귀결되는 자신의 습작들에 의심이 들었다. 상진은 소설뿐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죽고 말리라는 예감인지 자기암시인지 모를 심리상태에 시달렸다.

고개를 들면 참고서에 눈을 박은 친구들의 뒷모습이 보였고, 세상에 대한 어떤 의심도 회의도 없다는 듯 견고한 등짝에 적의가 일고는 했다. 그는 이 내 그 적의가 공부에 대한 불안증이라는 걸 감지했다. 소설의 세계로 도피한 자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잔뜩 겁을 먹은 열여섯살에 불과했다.

하룻밤에는 소리도 없이 사감 선생이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어서 상진은 화들짝 놀라 소설책을 덮었다.

“사전이 너무 작지 않니? 에센스 같은 걸 사서 봐.”

사감 선생은 나직이 말해놓고 멀어져갔다. 딴짓을 눈감아준 건지 모르지만 그 자습실의 밤이 상진은 늘 불안했다. 급기야 뒷머리에서 피가 쓸려 내려가는 듯한 증세가 나타났다. 공부고 뭐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 상진은 자신이 미쳐가는 것 같았다.

상진은 며칠 동안 중앙로의 정신과의원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용기를 내서 병원 계단을 밟았다. 새벽이면 신문을 넣는 병원이었다. 문 닫을 시간이 임박해서 손님이 없었다. 그는 간호사에게 쭈뼛쭈뼛 다가가 물었다.

“혹시 여기 다녀가면 기록에 남나요?”

간호사가 웃었다.

“진료를 받아봐야 알죠.”

간호사는 상진을 진료실로 데려갔다. 의사는 나이 든 노인이었다. 의사는 상진에게 알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아예 껍데기를 까서 줘서 입에 넣지 않 을 수 없었다. 이윽고 의사가 문진을 했는데 사탕이 너무 커서 상진은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의사의 노림수가 아닐까 하고 의심되었다. 의사가 묻고 그는 짧게 대답하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의 주인공을 자꾸 죽이게 된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주고 싶었으나 그런 긴 이야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의사가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자취해?”

“기숙사요.”

“주말에 집에 가?”

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계셔?”

상진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잘 들어. 참기름 한종지에다가 날계란을 깨서 달라고 해. 그렇게 몇번 먹으면 증세가 없어질 거야.”

의사는 그만 가보라고 웃어 보였다. 상진은 얼떨결에 인사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의사가 진료실에서 간호사에게 소리 높여 말했다.

“김양아, 진료비 받지 마.”

상진은 주말에 염전으로 내려가서 부모님에게 자취하고 싶다는 의향을 비쳤다. 기숙사를 나가는 게 낙오처럼 밀려나는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그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자위했다.

“기숙사 밥이 을매나 부실해부렀으믄 빈혈이라냐. 인저 조석은 또 어치게 끼레묵고 댕길랑가 걱정이다이.”

어머니는 의사의 처방대로 참기름에다가 날계란을 풀어서 주었다. 놀랍게도 상진은 이튿날부터 머리에서 피가 빠지는 듯한 증세를 떨어냈다.

5월 들어 염전이 바빠져서 그는 부모의 도움 없이 손수 자취방을 구해야 했다. 마음에 담아둔 동네가 있었다. 김승옥의 「건(乾)」을 읽으면서 그는 작가가 틀림없이 소설 무대로 삼았으리라 싶은 곳,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동네에다가 방을 얻을 생각이었다. 상진은 우물에서 목을 축이고 골목을 거슬러올라가며 세놓는 방을 붙인 대문들을 기웃거렸다. 학기 중이라 빈방이 많지 않았다.

거식아, 하고 부르는 소리에 상진은 고개를 돌렸다. 두 여자 노인이 양지바른 대문턱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상진을 부른 게 아니었다. 마당에서 노는 누렁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태 쟈 이름을 못 지었어?”

“아따, 애럽드라니게. 나가 누구 이름을 지봤어야제.”

그러면서 개 주인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옆의 할머니도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는 혀를 차고 개 주인을 타박했다.

“인저 글렀어. 거식이가 쟈 이름이 되고 말았구먼. 아이, 거식아!”

하고 할머니가 강아지를 불렀다. 강아지가 꼬리를 살랑거렸다.

“아이가!”

“봐, 지 부르는 중 알잖애. 저 갱아지는 인저 거식이여이.”

상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할머니들이 기척을 듣고 돌아보았다. 상진은 계면쩍어서 담벼락의 묵고 누진 광고지로 시선을 돌렸다.

머잖아 한 할머니가 소리쳤다. 개 주인 할머니였다.

“학상! 방 구허고 있안?”

상진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지대로 주인 만났네이.”

할머니가 팔꿈치로 옆 할머니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가 담배를 길바닥에 짓지르고는 끙, 일어났다. 할머니는 목에 큰 지방종을 달고 있었다. 깡마른 체격에 주름이 자글거리고 침을 삼킬 때 얼굴 거죽이 함께 넘어가는 것 같았다.

“요번에 싹 손본 집인디 한번 볼랑가?”

할머니가 앞장섰다. 뒤에 남은 개 주인 할머니가 장난치는 소리가 들렸다.

“거식아! 오매, 오매……”

앞서 걷던 할머니가 피식 웃었다.

할머니는 계단이 끝나는 곳의 집으로 이끌었다. 방을 둘 들인 작은 집이었다. 할머니 말대로 집은 새로 지어서 깔끔했다. 단연 눈에 띄는 건 좁은 마당에 놓인 평상인데 앙증맞아서 꼭 영화 세트장 소품 같았다. 벼랑에 지은 제비집처럼 울 없는 마당 밑으로 아랫집 지붕이 보였다. 그 집 감나무의 우듬지가 눈앞에 벌어져 있었다. 상진은 머리를 빼서 아랫집을 내려다보았다. 뒤란에서 중학생쯤 되는 남학생이 자전거에 래커를 뿌리다가 무심하게 올려보았다. 상진은 뒤로 물러났다. 멀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집 곁에는 동백이 한겹 짙은 음영을 드리우고 서 있었다. 할머니는 동백나무 그늘이 빗기는 건넛방으로 상진을 안내했다. 부엌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이었다. 셋방으로 놓으려고 따로 부엌을 들인 듯했다. 방은 작으나 밝았다. 창문을 열 자 「건」이 그려놓은 도심 풍경이 펼쳐졌다. 멀리 도립병원이 보이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옥천이 새긴 듯 도드라져 보였다. 향교 주변으로 주택단지 지붕 이 타일처럼 빽빽했다. 일본으로 간 미영이라는 애가 살았다는 저택이 저기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 같았다. 상진이 마음에 그린 집이었다. 사글세도 웬만한 구옥들이 내놓은 방보다 쌌다.

“보일라도 새로 놓고, 웃풍은 인자껏 없고이. 절간맨치로 조용할 거시여.”

할머니가 걸레로 창턱을 훔쳐내며 중얼거렸다.

“어짤랑가 몰겄네이.”

 

그다음 주말에 상진이 이사했다.

이불 보따리를 평상에 옮겨놓았을 때 할머니가 가쁜 숨을 내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할머니는 숨도 돌리지 않고 물걸레를 가져다가 방을 훔쳤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마치 옹색한 집에 손님을 맞는 것처럼 마음을 썼다. 단출한 짐이 정리되어가는 걸 할머니는 부엌에 서서 지켜보았다. 상진이 부엌으로 내려섰을 때 할머니는 오래 기다렸다는 듯 며느리 없는 집이라고 혀를 찼다.

“시방 집안이 쪼깐 거시기해. 내가 댕겨가매 들여다보고 할 거니게 지내기 뭐한 거 있고 그라믄 야그해이.”

이 집은 큰아들네라고 했다. 당신은 아랫동네 작은아들네에서 지내면서 큰집 살림을 돌보고 있었다. 여상에 다니는 그 집 딸과 초등학생 아들이 나타났다. 교회에 다녀오는지 여학생은 성경책을 안고 있었다. 마르고 새침해 보였다. 금방 어디로 사라졌다. 새카맣게 탄 아들은 비염이 심한 아이처럼 입을 살짝 벌리고 있었는데 대문니가 벌어져 있었다. 그애는 평상에 남아 요요를 갖고 놀며 건넛방을 흘깃거렸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주인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지방을 떠돌면서 품팔이라도 하는가보았다. 딸 구희는 상진보다 한 학년 위였다. 첫인상대로 새침하고 침울했다. 구희와는 서로 어색해서 데면데면했다. 상진은 주인집에 용건이 있으면 어린 민수에게 묻거나 전했다. 전기세나 수도세를 받아가는 아이 도 민수였다. 민수는 골목에서 놀다가 저녁때마다 제 누나가 찾아나서야 돌아오고는 했다. 남매가 투덕거리는 소리가 벽 너머로 들려오고는 했다. 구희는 제 동생에게 밥을 차려 먹이고 목욕도 시키고 숙제도 봐주는 눈치였다. 할머니는 매일 드나들었는데 살림하는 손녀를 꾸짖기 일쑤였다. 구희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 할머니를 무시하거나 무서워하는 것 같진 않았다. 너무 지친 나머지 마음을 닫아버린 것처럼 굴었다.

민수는 제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다.

“어디가 편찮으셔?”

“할매가 병원에 넣었어요.”

“왜?”

“술 땜에.”

제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 민수는 시무룩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아랫집 뒤뜰에서 래커 냄새가 올라왔다. 민수가 상진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아랫집 형아는요, 자전거를 쌔벼요.”

“훔친다고?”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만원만 가져오면 나한테도 한대 준댔는데. 형은 자전거 안 타요? 필요하면 말해요. 내가 말해줄게. 내가 두대나 팔아줬다고요.”

어느 주말에 웬 아주머니가 안집 부엌에서 나왔다. 마당 빨랫줄에 빨래가 가득 널려 있었다. 수더분해 뵈는 아주머니를 보고 상진은 이 집 어머니라는 걸 직감했다. 상진이 고개 숙여 인사하자 아주머니가 말했다.

 

“불편한 것 없어요?”

아주머니가 저녁에 민수 손에 들려 부추부침개를 한접시 상진에게 보내왔다. 세 식구가 툇마루에 앉아 저녁을 먹으면서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가 말했다.

“이제 아빠 오시면 당분간 못 와봐.”

내내 말없이 조용하던 구희가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전화번호라도 줘.”

“안 돼.”

“아빠한테 말 안 할게.”

“그게 되겠니? 들들 볶이면 말 안 하고 배기겠냐고.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게 나아.”

한동안 조용해졌다가 다시 대화가 이어지고는 했다.

“전산학원 다녀야 한다고 했지? 학원비는 경애 이모한테 부쳐놓을 테니까 타다 써. 한 일년만 꾹 참고 지내. 그래, 취업은 어떻게 할 거야? 어디 새마을금고라도 되면 좋겠다.”

“금고는 무슨……”

“아무튼 자격증 따놔. 사람 일은 모르잖니.”

저녁상을 물리고 아주머니가 떠나는 눈치였다.

그러고는 닷새쯤 뒤 그 집 아버지가 나타났다. 하굣길에 상진은 툇마루에 러닝셔츠 차림으로 앉은 남자와 마주쳤다. 할머니와 인상이 닮아 있었다. 그는 상진에게 건넛방에 들어온 학생이냐며, 집이 누추하다고 깍듯하게 맞아 주었다. 남자는 앞니가 하나 빠지고 없었다. 그가 존대를 써서 상진은 무안했다. 막연히 가졌던 선입견과 전혀 딴판이었다.

아이들을 대하는 남자의 태도가 다정했다. “아들!” “딸!” 하고 다정하게 부르고, 쉴 새 없이 말을 걸어보려고 했다. 민수는 귀찮아하면서도 제법 응대를 해주는데 구희는 응대를 하지 않았다.

며칠 만에 그는 본색을 드러냈다. 상진은 그가 마당에 서서 시내를 향해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술주정하는 모습을 보았다. 고향에도 그런 사람이 하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쫓아내자고 회의까지 열고는 했다. 화장실에서 똥물을 퍼다가 그 집 대문에 뿌린 이웃도 있었다.

어느날은 남자가 마당에 널브러져 잠들어 있었다. 평상까지도 못 가고 대문을 막 넘어선 마당에서 잠들어 있었다. 상진은 구희 남매와 함께 그를 툇 마루로 끌어다가 눕혀놓았다. 잠결에도 술주정을 해댔다.

“싹 싸질러불 거야, 개새끼들!”

민수가 이불을 가져다가 덮어주었는데 한두번 해본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에게 손찌검은 하지 않았지만 구희에게 엄마한테 받은 돈을 내놓으라고 생짜를 부릴 때는 상진의 주먹이 다 쥐어졌다. 남매에게 아내를 흉보고 욕하는 소리가 집요했다. 술집년 본색을 못 버렸다느니, 자식들 버린 년이라느니, 애들 듣기 민망한 소리를 해댔다.

남자가 병원에 입원한 게 아니라 방화로 교도소에 갔다 온 사실을 알려준 건 총무 형이었다. 제 집에 불을 냈을 뿐 아니라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갔다. 용케 세 가족이 목숨은 건졌지만 집을 다 태우고 말았다. 남자는 걸핏하면 아내를 상대로 자해와 협박을 일삼았고, 아내가 가출하고 나서는 더 못쓰게 되었다.

비로소 상진은 새로 지은 집에 왜 그렇게 쉽게 방을 얻을 수 있었는지 수긍이 갔다.

총무 형은 말했다.

“그 집에서 나와, 죽기 싫음.”

총무 형은 구희 할아버지가 여순사건 때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구희 할머니가 지내는 작은아들네는 개가해 낳은 자식이라고 했다. 동네가 내놓은 망나니를 제 새끼라고 드나들며 품는 할머니가 가엾다고 했다.

구희 어머니에 대한 평판도 좋지 않았다. 예전에는 동정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아이들을 저렇게 방치해도 되느냐고 못마땅해했다.

상진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라서 외려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이미 일년치 방세를 내놓았고, 기숙사를 박차고 나오며 제 손으로 얻은 방을 옮기겠다고 하면 부모님이 어떻게 나올 지 걱정이었다. 그건 열여섯살이 감당할 수 없는 일 같았고, 그래서 그는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부엌 한구석에 둔 쌀자루를 도둑맞는 일이 생겼다. 고향에서 부쳐준 쌀이었는데 20킬로그램에서 얼마 축내지 않았다. 그런데 쌀이 문제가 아니었다. 상진은 신문배달을 하고 받은 아르바이트비 석달치를 쌀 속에 박아놓았다. 모두 75만원이었다. 그는 MP3 플레이어와 노트북을 사려고 2백만원을 모으고 있었다. 월급 5만원을 더 받으려고 광고 찌라시 작업까지 자청해 하고 있었다. 그걸 하려면 새벽 5시까지는 보급소에 나가야 했다. 그는 도둑맞은 물건이 더 있는지 방과 부엌을 둘러보았다. 쌀자루 말고는 손길을 탄 흔적이 없었다. 쌀자루에 돈을 숨긴 걸 훔쳐본 놈의 소행이 분명했다. 얼른 아랫집 쌔비에 주인집 민수가 떠올랐다.

상진은 너무 어이가 없고 당황스러워 안집 부엌으로 쫓아가 구희에게 말했다. 구희는 입술을 사리물고 제 아버지가 잠든 안방을 쏘아보았다. 그러더니 상진에게 가볼 데가 있다고 앞장섰다.

상진은 구희를 따라 아랫동네 소주방으로 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홀은 텅 비어 있었다.

“이모!”

머잖아 주방에서 여자가 혀를 차며 나왔다.

“으이구, 쌀자루 찾으러 왔어?”

그러면서 계산대 옆에서 쌀자루를 내놨다. 상진의 쌀자루가 맞았다.

“이제 어쩌냐, 자취생 쌀까지 들어내니? 어서 가지고 가.”

상진은 쌀자루를 어깨에 멨다. 그런데 구희가 씩씩거리며 여자에게 쏘아붙이는 거였다.

“이모는 왜 아빠한테 자꾸 술을 파는데?”

여자가 눈이 동그래졌다.

“어머, 얘 맹랑한 것 좀 봐…… 내가 쌀 훔쳐오라고 시켰어? 나라도 받아주니 너희 아빠가 아직 살아 있는 거야. 너희 엄마가 오죽했으면 외상을 받아주라고 했겠니. 니네 아빠, 어디서 술 한잔 얻어 마실 수 있는 데가 있는 줄 아니?”

구희가 ‘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몸을 떨었다.

구희가 소주방을 뛰쳐나갔다. 상진은 얼른 쫓아나갔다. 그도 마음이 급하긴 마찬가지였다. 얼른 집에 들어가서 쌀자루 속을 확인해야 했다. 골목을 오르는 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진은 조바심이 났지만, 할 말도 없고 마음이 바빴다.

대문 앞에 와서 구희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이사 가도 돼.”

그래놓고 구희는 집으로 쌩하니 들어가버렸다. 상진에게 이런 꼴을 보여서 몹시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상진은 대문을 몸으로 밀며 들어갔다. 비닐봉지에 싸서 쌀자루에 박은 돈은 다행히 그대로 있었다.

그날 밤 누군가 평상에 앉아 우는 소리가 방으로 들려왔다. 툭 터놓고 우 는 게 아니라 어금니를 악물고 우는 소리였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구희인 게 분명했다. 쌀자루 일로 속이 상해 저러는 것이다. 상진은 난처했다. 구희가 울음을 그치기를, 그는 어두운 방에 누워 숨죽여 기다렸다. 알은체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상진이 방을 뺄까봐 저 걱정이라면 어쩌나 싶었다. 경솔한지 모르지만 그는 슬리퍼를 꿰고 마당으로 나갔다. 구희는 도심을 향해 앉아 미동도 없었다. 상진은 평상 옆에 서서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사 안 갈 건데.”

여전히 구희는 그 자세로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

“걱정하지 말라고.”

그제야 구희가 고개를 돌려 상진을 쏘아보았다.

“뭐?”

구희가 콧방귀를 뀌었다. 구희의 반응에 상진은 당황했다. 그는 더 서 있기도 그랬지만 자리를 뜨기도 난감해서 멀뚱히 서 있었다. 남북으로 길게 놓인 도시의 야경이 아름다웠다. 아마도 하행선 막차일 듯싶은 기차가 칸칸 이 불을 밝히고 시내로 진입하고 있었다. 형편이 이런 애들끼리 예쁜 풍경을 보고 있자니 이도 무슨 형벌 같았다. 그새 구희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상 진은 제 방 창문을 열어 두루마리 휴지를 꺼내다가 구희 옆에 밀어놓았다. 구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상진이 휴지를 떼어내 코를 세게 풀었다. 퉁소 소리가 났다. 그는 두번 세번 휴지를 접어가며 힘껏 코를 풀었다. 이내 구희 가 휴지를 떼어내 눈물을 닦고 코를 훔쳤다.

구희가 휴지를 한줄 더 떼어내고 상진 쪽으로 밀어놓았다.

“야경 더럽게 이쁘네.”

상진은 중얼거리며 평상 한 귀에 엉거주춤 앉았다. 이슬이 내려서 아랫집 감나무 우듬지가 축축했다. 구희가 홀연히 일어났다.

“잘 자.”

구희는 인사하고 아버지와 민수가 잠든 방으로 들어갔다.

 

며칠 뒤 상진이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물가에서 고등학생 남자애들 서넛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였고 예감이 좋지 않았다. 「건」에서처럼 불길한 일이 꾸며지고 있는 것 같았다. 상진이 지나가자 녀석들은 휘파람을 불어서 세웠다.

“담배 하나 주고 가.”

저희끼리 낄낄거렸다. 아랫집 자전거 쌔비도 끼어 있었다.

“담배 안 피우는데.”

상진이 대답했다. 쌔비가 제 친구들에게 말했다.

“야, 그냥 보내줘. 쟤 고생하는 애야.”

상진은 몸을 돌렸다. 그는 골목을 오르며 구희가 걱정되었다. 학원을 끝내고 돌아올 시각이었다.

상진은 민수를 불러내 골목을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구희가 쫓기듯 골목을 달려 올라오고 있었다. 민수가 “누나!” 하고 불렀다. 녀석들이 저만치서 걸음을 멈추고 외쳤다.

“누가 어쩐대, 씨발아!”

이튿날 밤에 상진은 신문보급소 자전거를 타고 전산학원 앞에서 구희를 기다렸다. 구희는 상진을 보고 놀란 눈치였다. 상진은 자전거를 끌고 구희와 나란히 걸었다. 이십분 남짓한 길이 불편하고 답답하고, 그리고 두근거렸다. 31계단을 오를 때 상진이 자전거를 어깨에 올려 멨다. 구희가 핸들 쪽을 잡아서 거들었다.

동네 입구에 닿았다. 골목 계단으로는 자전거를 끌고 가기 힘들어서 상진은 편의점 앞 거치대에다가 자전거를 세우고 와이어 자물쇠를 채웠다. 구희가 편의점에서 비비콘 세개를 사왔다. 상진은 하나를 받았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골목길을 오르자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집 앞에서 상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구희에게 물었다.

“누나라고 불러요?”

구희가 빤히 쳐다보았다. 상진은 서둘러 말했다.

“누나라고 부를게.”

그렇지만 그뒤로 밤길을 매일 마중 다니면서 상진이 구희를 누나라고 불러본 적은 없었다. 주말에 상진은 구희를 따라 감리교회에 갔다. 그는 미션스쿨인 학교에서 하는 종교활동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그 무렵 그는 부쩍 생에 대한 질문이 많아졌다. 고통이라든가 구원이라든가 자유에 대해 일기장에 쓰고는 했다. 그렇다고 하여 그의 신앙생활이 깊었던 건 아니 다. 그런 질문과 별개로 교회에는 입시의 압박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커뮤니티 문화가 있었다. 고등부 아이들과 어울리는 재미가 있었다. 그사이에 편의점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잃어버렸다. 자전거 도둑은 절단기로 와이어를 끊고 자전거를 가져갔다. 신문보급소 자전거라 물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상진은 아랫집 쌔비한테 7만원을 주고 자전거를 샀다. 강변 공원에서 쌔비를 만나 도색된 자전거를 인수해 끌고 오면서 혹시나 제가 잃어버린 자전거가 아닌지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쌔비는 그렇게 허술한 아이는 아닐 거였다. 어쩌면 쌔비 같은 애들 손에 이 도시의 자전거는 돌고 도는지 몰랐다.

구희 아버지가 집에 다시 불을 질렀다. 11월 말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마룻장과 벽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안방 문은 뜯겨서 마당으로 던져져 있었다. 구희 할머니가 낌새를 알아채서 조기에 막을 수 있었다. 다행히 구희와 민수는 학교에 가고 없었지만 구희 아버지는 얼굴과 팔에 화상을 입었다. 생명이 위독할 만큼 심각한 화상은 아니라고 했다.

구희 할머니가 상진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구희 아버지는 병원으로 갔고, 구희와 민수는 당분간 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할 거라고 했다. 상진에 게는 남은 월세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상진은 기숙사로 돌아가기 전까지 그 집에서 보름 넘게 지냈다.

구희 할머니와 함께 보낸 보름 동안을 상진은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할머니는 아들과 손주들이 떠난 집으로 들어와 지냈다. 그을린 벽을 닦아내고 집을 정리했다. 목수를 사다가 마룻장을 보수하고 문짝을 새로 해 달았다. 그 시간 동안 상진은 아침저녁으로 할머니가 지어주는 밥상을 받았다. 할머니는 도시락까지 싸주었다. 상진은 몹시 부담스러웠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렸지만 할머니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기도하는 거여. 불쌍한 할머니 청이니 그리 예기고 받아줘이.”

할머니는 실제로 새벽이면 우물에서 물을 떠다가 동백 밑에 두고 비손을 했다.

구희 아버지는 할머니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애초 방화는 소방서나 경찰서에 신고되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주민들이 민원을 접수했다. 주민회의에서 위험을 방치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차제에 눈엣가시인 주정뱅이를 마을에서 영영 몰아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할머니는 음식을 해서 마을 사람들을 초대했다. 수육을 삶고, 백숙을 끓이고, 국수를 삶았다. 평상에는 식재료가 항상 쌓여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왜 이러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 저녁참에 중년 남자가 집에 들이닥쳤다. 화학공단의 대기업 점퍼를 걸친 남자가 부엌 앞에서 할머니에게 퍼부었다.

“대체 왜 이러셔? 이 집구석에서 뭐 하는 거냐고!”

그는 상진이 처음 보는 둘째아들인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아무 대꾸도 못했다. 아들은 읍소하고 협박했다.

“평생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이 새끼만 자식이야? 정 이러실 거면 연을 끊읍시다.”

상진은 구희와 민수가 작은집을 두고 왜 시설로 가야 했는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를 보니 그럴 만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노인들 몇이 찾아왔다. 다음에는 여자들이 오고, 끼니마다 할머니의 식사 초대에 응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할머니가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 빤해서 초대에 응하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 이유로 할머니를 찾고 있었다.

상진은 할머니에게 탄원서 이야기를 꺼냈다. 주민들에게 탄원서를 받으면 구희 아버지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말이다.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할게요.”

할머니는 상진의 손을 잡아 토닥였다.

“아니어. 그러믄 쓰겄어?”

상진은 구희 할머니가 마음으로 원하는 일이면서도 왜 마다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염치 때문이라면 상진이 얼마든지 나설 수 있었다.

“상진 학상, 구희 애비 말이여, 불쌍한 사람이야. 근디 인저 돌아오믄 안되겄제. 돌아오믄 안 디야.”

구희 할머니는 하, 하고 한숨을 쉬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진은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날마다 사람들에게 벌이고 있는 짓은 뭐란 말인가.

상진이 짐을 빼는 날 아침에도 할머니는 밥상을 차려주었다. 원래 비쩍 마른 할머니가 그간 더 마르고, 안색이 거칠어져 있었다.

“내가 참 못할 짓을 했제? 용서해어이.”

상진은 괜찮다고 대답했다.

기숙사로 돌아가고 며칠 후 구희 할머니가 입원을 했다는 소식을 교회에 서 들었다. 오래전부터 앓고 있었고 외려 오래 버텨온 거라고 했다.

상진은 기숙사에 돌아온 후 소설 쓰기를 그만두었다. 그는 ‘소설을 끊었다’고 일기장에 썼다. 그는 조금 비장해 있었다. 구희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구희 어머니가 집으로 들어왔고, 구희 남매도 석달 만에 시설에서 돌아왔다. 구희 아버지는 가석방 상태에서 벌인 재범에다가 상습방화로 형량이 가중되었고, 교도소 수감 후 치료감호처분을 받았다. 돌아올 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상진은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학원 앞으로 구희를 찾아갔다. 구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듯 놀란 표정이었다. 상진은 말수가 줄었고 구희는 조금 늘었다. 냉랭한 표정 역시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상진은 그렇게 걸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가겠느냐고 한번 권한 적이 없었다. 바보같이 그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으레 구희 옆에서 자전거를 끌고 걸었다.

초봄에 구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상진은 도립병원의 빈소에 조문을 갔다. 조문을 끝내고 구희와 함께 잠깐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다. 가까운 선교마을 31계단 정자까지 그들은 걸었다. 병원 마당에서 목련이 져 내리고 있었다. 구희는 울거나 할머니 얘기를 하지 않았다. 정자에 앉아 상진은 구희에게 할머니와 보낸 보름 동안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할머니는 가족이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놓고 싶었던 것 같아.”

구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답처럼 말했다.

“동네 사람들이 아빠 재판에 탄원서를 써줬어, 쓸데없이.”

상진은 살짝 놀라서 구희를 바라보았다. 그건 상진이 모르는 일이었다. 차가 지나며 구희 얼굴을 밝혀놓고 갔다. 눈이 살짝 충혈되어 있었다. 구희는 자기를 미워할 때만 울었다. 그건 구희도 모르는, 상진밖에 알지 못하는 비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구희가 우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할매는 늘 아빠를 이해해야 한다고 하셨어. 뭘 이해하라는 건지 말해주지 않았어. 그러니까 이해할 수 없었어.”

 

10월에 구희는 경기도의 라면공장으로 취업을 나갔다. 상진은 구희에게 자주 편지를 썼다. 누나라는 호칭이 쉽게 나왔다. 우리가 다시 만날 거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말들을 상진은 편지마다 잊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마음이 커져서 뒷날 구희와의 재회를 상상하고는 했다. 구희는 네번에 한번쯤 답장을 보내왔다. 글을 참 못 썼고, 편지는 짧았다. 어떤 기대를 품게 하는 말도 없었다. 공장생활이 힘들다, 라면은 쳐다보기도 싫다, 공부 열심히 해라, 중 학생이 된 민수가 걱정된다는 얘기들뿐이었다.

2학년 겨울방학부터 이듬해 겨울까지 상진은 수능 준비에 몰입했다. 상진이 수능시험 볼 무렵에 구희는 삼성동 무역센터의 매장 판매직으로 직장을 옮겼다. 상진은 시험을 끝내면 만나러 가겠다고 편지를 썼다.

상진은 서울로 올라가 낯선 삼성동으로 찾아갔다. 그는 구희가 일을 마치는 여덟시까지 한전사옥 쪽 공원에 앉아서 그녀를 기다렸다. 여러 상상을 했지만 막상 구희를 보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상진과 구희는 서로를 바라보며 그저 쑥스럽게 웃었다. 구희는 화장을 해서 낯설었다. 둘은 까페를 찾아 나섰다. 구희는 무역센터 주변을 아직 잘 모른다고 했다. 이 휘황찬란한 거리에 두 사람이 들 만한 까페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둘은 걷고 또 걸었다. 구두를 신은 구희가 걸음을 세우고 종아리를 주무르곤 했다. 한시간쯤 지났을 무렵에는 서울의료원 근처까지 와 있었고, 겨우 포장마차를 발견했다.

둘은 포장을 걷고 들어가 우동을 시켰다. 상진은 일년 넘게 수많은 말들을 준비했으나 아무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구희 역시 전과 다름없이 속을 모를 아이처럼 말이 없었다. 그래서 둘은 포장마차에 비치된 휴대용 텔레비전에 시선을 던지고 우동이 나오길 기다렸다. 텔레비전에서는 내년으로 다가온 월드컵 뉴스가 길게 이어졌다. 구희가 물잔을 언 손으로 감싸고 상진을 바라보았다.

“대학은 서울로 와?”

“아마도……”

상진은 설핏 웃었다.

우동을 먹고 나와서 둘은 서로를 배웅하듯 삼성역까지 걸어갔다. 헤어지면서 언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둘은 악수를 나누며 어색하게 서로 바라보았다.

“잘 지내.”

“너도.”

상진은 구희를 배웅하듯 바라보았다. 한번쯤 구희가 돌아본다면 그는 전화하겠다고 시늉을 해 보일 생각이었다. 구희는 이내 인파에 묻혀 사라졌다.

상진은 어떤 이야기 한장이 넘어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는 귀를 어루만지며 구희가 사라진 지하철 출입구를 오래 바라보았다.

 

 

4.

 

구희에게서 연락이 온 건 지난 11월 초였다. 그때는 고성에서 막 국경을 넘었을 때였다. 강의가 있어서 새벽에 걷고 학교에 왔더니 조교가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건넸다. 너무나 오랜만에 접하는 이름이라 상진은 당황스럽고 설레었다.

“구희예요.” 구희가 인사했다.

“학교에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전화했어요.”

전화 목소리로는 이십여년 전의 구희가 그려지지 않았다. 구희는 구리에 살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어서 한달에 한번 순천을 다녀가는데 한번 만났으면 한다고 했다. 구희가 내려오는 날로 약속을 잡았다.

구희에게 연락을 받고 나서 상진은 구희 생각을 오래 했다. 함흥으로 가는 열흘 동안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상진은 구희를 자신의 첫사랑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껏 헷갈렸다. 모든 사람이 첫사랑을 갖고 있지만 첫사랑이 애매한 사람이 많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좋아한 걸 첫사랑이라고 해야 할지, 처음으로 가슴앓이를 안겨준 중학교 시절 짝사랑을 첫사랑이라 해야 할지, 처음 입맞춤을 경험한 상대를 첫사랑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첫 섹스 상대가 첫사랑인가. 상진은 십대 시절 다양한 사랑의 감정에 빠졌고 애매한 첫사랑을 겪었다. 사람들은 여러 사랑 중에 첫사랑인 걸 어떻게 알게 될까. 첫사랑도 좋아하는 색을 고르듯 선택한 게 아닐까.

 

구희는 셋째주 월요일에 내려왔다.

상진과 구희는 만나면 보통 교외의 한적한 식당을 찾았다. 사하촌으로 가서 산채요리를 먹거나 민물매운탕집을 찾아 댐 상류로 차를 몰았다. 지난 다섯달 동안 그들은 만나서 점심을 먹고 요양원을 방문했다가 상진의 아파트에서 막차 시간까지 같이 있었다. 달에 한번 함께 보내는 여덟시간이 애틋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는 서로 피했다. 그러나 상진은 그 시절 구희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고 싶을 때가 있다. 삼성동에서 왜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는지 서로 말을 맞춰보고 싶다. 함께 잠을 자는 사이인데도 그런 걸 물어볼 수 없는 관계라는 게 이상했다. 첫사랑 이야기는 우스갯소리처럼 나누었다. 그녀도 상진처럼 애매한 부류였다. 중학생 시절 교회 오빠인 듯도 하고, 열아홉에 취업을 나가서 잠깐 사귄 라면공장의 동료인 것도 같다고 말했다. 교회 언니를 이야기할 때는 그 표정이 실은 그녀를 가장 사랑했다고 고백하는 듯했다.

구희는 어려서부터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곤혹스러웠다고 했다. 옛 학교 쪽으로 산책하던 날 그녀가 그렇게 이야기했다. 31계단을 올라갈 때 그들은 마치 처음 걷는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상진은 어제 일처럼 모든 게 기억났다. 그는 구희도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상진은 구희가 선택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누구나 조금씩 겪는 게 아닐까, 하고 반문했다. 구희는 구도심에 우뚝한 교회 탑을 바라보며 가만히 웃었다. 그녀가 시간을 거슬러갈 때 짓는 표정인 걸 눈치챘다. 거긴 상 진과 구희가 다닌 교회였다.

“그건 능력일 거야. 선택하지 않을 능력.”

구희는 새침해져서 말했다. 상진은 재밌는 농담을 들은 것 같아 웃었다.

“서하 언니 기억해?”

구희는 교회 고등부에서 만난 선배 언니 이야기를 꺼냈다. 구희보다 한 살 위고 상진에게도 두살 많은 여학생을 상진은 어렴풋이 기억해냈다. 그 여학생 이름이 서하였구나. 얼굴이 예뻐서 그 여학생을 보려고 부러 교회를 찾는 남학생들도 있었다.

서하는 교회에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면 남녀 학생을 불문하고 슬그머니 다가가 분홍색 수첩을 펴고 마치 설문조사를 하듯 물었다. 혈액형이 뭐야? 무슨 색을 가장 좋아해? 좋아하는 꽃은? MBTI를 묻는 것처럼 그 시절에는 그런 취향을 물으며 대화를 풀어갔다. 서하는 신앙고백을 듣듯 진지하게 대 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대답을 듣고 나면 몸을 돌렸다. 서하는 오직 취향만 조사하는 사람처럼 더 묻지 않았다. 질문받은 사람은 뜨악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와도 사이가 가까워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열여덟 소녀의 행동은 좀 모자라거나 미숙해 보였다. 자연히 아이들은 숙덕거렸다. 신은 모든 걸 주지 않는다고. 그럼에도 아이들은 서하에게서 유치한 질문을 받아보는 무용담을 갖고 싶어했다. 무슨 유행처럼 이 소녀를 체험해보고 싶어했다.

구희가 고등부에 올라 석달이 지났는데도 서하는 그녀에게 묻지 않았다. 구희는 초조한 마음으로 대답을 준비해본 적도 있었다. 서하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구희는 별별 생각을 해보았다. 혹 숫기 없는 언니가 아닐까.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방편으로 고안해낸 그녀의 대화법일지 몰랐다. 언니는 심호흡 끝에 용기를 내서 말을 걸지만 다음 대화를 잇지 못하는 것이다. 봄비가 내린 날이었다. 구희는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해 교회 현관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회 맞은편 도립병원 정원에서 목련이 져 내리고 있었다. 집 나간 엄마를 교회 앞에서 몰래 만나고 온 날이라서 마음이 더 울적했다.

“무슨 색을 좋아해?”

구희는 화들짝 놀랐다. 서하는 우산 두개를 들고 곁에 서 있었다. 하나는 붉은색, 하나는 검은색 우산이었다. “다음 주일에 갖다놓으면 돼” 하면서 서 하는 신발장 옆 창고 문을 가리켰다. 교인들이 분실한 우산을 모아둔 모양이었다. 구희는 검은색 우산을 골라 들었다.

“무슨 색을 가장 좋아해?”

서하가 재차 물었다. 드디어 그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분홍 수첩도 세 가지 색 싸인펜도 없이 서하가 물었다. 구희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강아지처럼 무구한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거짓말 같은 건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흰색, 보라색, 파란색…… 어쩌면 더 많은 색을 좋아하는데 하나를 꼭 집어 대답하는 건 진심이 아닌 것 같았다. 이 언니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좋아하는 색 없어?”

“모르겠어요. 고르지 못하겠어요.”

서하가 구희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서하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눈과 입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너도 그래?”

둘은 빗길의 비탈을 함께 걸었다. 서하는 구희가 어려워서 그간 말을 걸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차가워 보였다거나 시니컬해 보였다고 말하지 않고 ‘냉철해 보였다’고 표현했다. 그 단어를 처음 들었으므로 구희는 오래 기억 했다.

“저주에 걸려들지 않을 것 같았어. 넌 찬송가도 따라 부르지 않잖아.”

구희는 비밀을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저주요?”

“나는 사람들에게 주문을 걸고 있어.”

“……”

“파란색을 좋아한다고 대답하는 순간 걔는 평생 파란색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며 살게 되지. 혈액형처럼 천부적인 거라고 생각해. 자기가 방금 선택한 거라고 믿지 않아.”

서하는 홀가분해진 얼굴로 덧붙였다.

“나 같은 사람이 한명 더 있어서 안심이야. 우리는 선택하지 않을 능력을 갖고 있어.”

구희는 마치 동류를 찾았다는 듯 말했다. 집으로 돌아와 구희는 신비로운 언니를 오래 생각했다. 언니는 자신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오랫동안 시달린 사람인지 몰랐다. 선택을 하지 못하는 고충을 그렇게 표현한 듯싶었다. 서하 언니는 수녀가 되었다. 이십년 만에 구희에게서 그 소녀의 소식을 듣고 상진은 별수 없이 안타까웠다. 그 선택은 또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지금도 만나?”

“수녀원에 들어가고 연락이 끊겼어. 신대방에서 한동안 가까이 살았는데.”

“자기 신대방에도 살았어?”

그건 상진이 모르는 구희의 시간대였다.

“언니랑 보라매공원에 자주 갔는데.”

“왜 수녀가 된 거지?”

그녀는 한번도 궁금하지 않았다는 듯 상진을 빤히 쳐다보았다.

“수녀로 살고 싶지 않았을까. 그냥 그렇게 됐을걸.”

구희는 왜 서하 이야기를 꺼냈던 걸까. 대화에 어떤 맥락도 없었다. 상진과의 관계에 미리 선을 그으려는 의도였을까. 선택하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두자고 말이다. 상진에게는 빤한 결말을 피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고, 어쩔 수 없이 괴로웠다. 그건 구희와는 상관없이 밀애의 무력감이 불러온 절망이기도 했다.

 

하산에서 블라지보스또끄까지는 167킬로미터. 20여일을 걸어야 한다. 상 진은 연해주에 들어 18일째 걷고 있었다. 어젯밤 늦게 구희가 난데없이 전화를 했다. 그녀가 “어디야?” 하고 물었다.

“아무르 만.”

하고 상진은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너무 의외의 전화였고, 그는 미처 워커 의 세계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흐흐, 웃었다.

“집 곁 호수를 걷고 있어.”

“열심이네. 오늘 되게 추운데?”

강풍이 불어서 체감온도가 낮았다. 상진이 물었다.

“술 한잔 했나봐?”

“아니야. 술은 무슨. 그냥 집에 들어가다가 추운데 뭐 하나 궁금해서. 내가 전화하니까 반갑지?”

흐흐, 하고 상진은 또 웃었다.

“아까 아무르는 무슨 말이야?”

“그냥 그런 거 있어.”

“술집 이름이야?”

“그런 술집이 있어? 전국을 샅샅이 뒤져서 한번 가자.”

“이번달에는 다음주에 내려가게 됐어. 엄마가 안 좋아. 자기, 그날 수업 있어?”

“괜찮아. 참, 나 선물이 있어.”

“선물?”

“기대해.”

“기대된다. 운동 조금만 하고 들어가.”

 

아무르 만을 걷고 있다. 블라지보스또끄가 가까워질수록 하루 8킬로미터의 루틴이 깨지고 서두르게 된다. 욕심내 더 걸으려고 한다. 상진은 그 마음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구간마다 공부를 더 한다. 확실히 천천히 걷는 데 도움이 된다. 아무르 만을 지나는 동안은 무조건 석양이었다. 그는 해 질 녘에 호수공원을 걸었다.

상진은 지난주에 나무 평상을 중고거래로 구매했다. 무심코 발견한 물건이었다. 폐업하는 목욕탕에서 내놓은 싱글침대만 한 평상이 아파트 거실에 어울릴 리 없었다. 평상은 좁은 거실을 가득 메웠다. 상진은 아침이면 평상에 앉아서 빵과 커피를 먹고, 평상에 드러누워 쉬었다. 평상에 자꾸 빨래나 책, 포장음식 용기 같은 게 쌓여갔다.

방죽 수문을 지나는데 돌멩이를 밟아서 상진은 휘청했다. 주먹만 한 돌멩이였다. 그는 관성으로 몇걸음 걷다가 되돌아왔다. 그는 돌멩이를 집어들었다. 차가운 돌은 묵직했다. 그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3월인데도 갈대와 부 들의 마른 줄기는 꼿꼿하게 서 있었다. 노을 지는 하늘이 호수에 내려와 있었다. 그는 돌멩이를 힘껏 던졌다. 갈대 줄기 사이로 돌은 떨어졌고 하늘 한 자리가 깨지며 파문이 일었다. 상진은 파문이 제 발밑까지 오는지 관찰하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그는 아파트로 돌아와 워커 앱 계정을 하나 더 만들었다. 그는 출발지 설정을 ‘쿤밍’으로 했다. 그는 유저 아이콘을 활성화했다. 아이콘이 수두룩 떴 다. 서로 겹쳐서 맵을 덮었다. 모두 232명이었다. 그는 유저들의 닉네임을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정말 다국적 인간들이 쿤밍을 걷고 있었다. 문석으로 추정되는 닉네임은 보이지 않았다. 문석은 쿤밍에 아직 도착하지 못했을지 모 른다. 그는 문산을 떠나 180일을 걸은 워커의 위치를 추산해보았다. 후난성 창사 부근이 떴다. 그는 앱의 첫 화면으로 돌아가 창사를 입력했다. 32명의 유저가 창사 부근을 걷고 있었다. 거기에도 문석으로 추정되는 유저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맵을 귀주까지 확장하고 유저 아이콘을 찾았다. ‘북청물장수’라는 한글 닉네임이 떴다. 그는 이 기적이 믿기지 않았다. 상진은 북청물 장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문석? 많이 갔군요.’

상진의 닉네임은 돌문어였다. 상진은 긴장하며 답신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둘째주 월요일이 왔고, 상진은 기차역으로 구희를 마중 갔다. 역 주차장에 차를 넣고 구희를 기다렸다. 하행선 끝단에 가까워 기차는 종종 연착했다. 그는 주차장으로 나가 천천히 걸었다. 공기에는 바다의 끈적한 습기가 배어 있었고, 그건 틀림없이 환취가 아닐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바다는 도심에서 10킬로미터나 더 나가야 있었다. 바다를 끼고 있지만 이 지방 사람들은 도시를 항구도시라고 생각지 않았다.

구희를 기다리며 그는 늦은 점심 먹을 데를 알아보았다.

황어회가 맛있다는 철이었다. 구희에게 황어회를 먹느냐고 문자를 보냈다. 아마 고속철은 노령의 긴 터널 구간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구희는 잠기를 달고 슬며시 창에 비친 피로한 제 얼굴을 마주하고 있을지 모른다. “깜박 잠들어서 역을 놓칠 뻔했어.” 구희는 첫인사처럼 말하곤 했다. 답신은 금방 오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문자를 제때 받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하루가 지나 서 받기도 했다. 상진이나 구희나 그런 일에 익숙해 있었다.

황어회를 먹을 수 있는 횟집은 교외 포구에 있었다. 마침 요양원 가는 길목에서 멀지 않았다. 앱에서는 이십분 남짓 우회하는 길을 알려주었다. 구희 어머니는 딸을 알아보지 못했다. 다달이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다.

구희 어머니가 죽고 나서도 그녀를 계속 만날 수 있을까? 둘은 밀애의 끝에 다다라 있었다. 머잖아 맞닥뜨릴 그날에 대해 두 사람은 약속처럼 서로 침묵했다. 구희는 징글징글한 고향으로 여행할 구실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상 진은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상진은 구희에게 줄 선물이 있다. 오늘 아침 막 끝낸 소설이었다. 자기 집 밑에 유골을 숨기고 평생 고통스러워한 뼈 도둑에 대한 이야기였다. 평상에 나란히 누워 뼈 도둑 이야기를 읽어줄 것이다. 휴대폰에서 알림 소리가 울렸다. 북청물장수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디입니까.’

그는 주차장 턱으로 올라서서 반갑게 답장했다.

‘아무르 만입니다.’

‘긴 여행이었군요.’

‘사흘 뒤에 블라지보스또끄 도착.’

‘만나러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진은 멀리 기차가 도시로 진입하는 산모퉁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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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10·19사건 증언은 『여순10·19 사건 순천시 유족증언록』 8권(국립순천대학교 10·19연구소, 2026), 「여순사건 순천 유작지 실태조사 및 보존방안 연구보고서」(국립순천대학교 10·19연구소, 2021)를 일부 참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