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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내 삶을 돌본 것 ⑤

무지무지, 무지

 

 

박준 朴濬

시인.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 등이 있음.

mynameisjoon@hanmail.net

 

 

 

버릇과 조사

 

선생님, 가끔 제게 글을 보내주시지요. 답을 드리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불경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열어둔 창은 진작에 닫혔을 테니까요. 수일 전 보내주신 장문은 시였고 그제 보내주신 단문은 시적이었습니다. 매번 답을 드리지는 않지만 선생님과 나눈 대화와 필담을 적어두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처음 던진 질문은 적(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통속과 통속적인 것의 차이와 분별을 모르겠다고 투정 섞어 던진 물음. 이어 미와 미적, 시와 시적, 예술과 예술적, 마음과 심적, 느낌과 느낌적, 병과 병적, 산과 산적 같은 것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요 하고 스스로 던진 질문을 희롱하듯 중얼거렸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눈은 순간 번뜩였습니다. 그러고는 네가 알아서 가려내라고 하셨습니다. 이어 작심하신 듯 너는 무엇보다 은과 는과 이와 가의 분별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은는이가의 미묘한 차이를 모르면 쓰기는커녕 제대로 읽지도 못한다고.

선생님. 통속은 거리고 통속적인 것은 골목일까요. 아니면 통속이 거리고 통속적인 것이 골목일까요. 던져주신 고민거리 덕분에 저의 첫 시집 제목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가 아니라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제목을 정확히 말하거나 외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자주 혼동합니다.

선생님이 처음 사주신 음식을 기억합니다. 선어회를 팔던 작은 횟집. 시인이 된 일을 축하해주시던 자리. 이곳에서도 배움은 이어졌습니다. 제가 맥주 두병만 주세요 하고 주문하자 왜 맥주 뒤에 ‘만’을 붙이냐고 하셨지요. 말버릇이라고 대꾸하자 두병만 마실 게 아니지 않냐고 그런 버릇은 없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어 참치 먹는 법에 관한 이야기. 고추냉이는 간장에 풀지 말고 참치의 한쪽 끝에 올릴 것. 반대쪽 끝에는 간장 조금. 무순은 기호에 따라 간장에 미리 살짝 적셔둔 후에 곁들이면 된다고. 별안간 선생님은 상에 오른 음식들의 주요 원산지를 줄줄 읊었습니다.

“너 발트 삼국이 어딘지 알아?”

“핀란드 근처 아니에요?”

“모르면 모른다고 해.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지. 아는데 모르는 척하는 건 어려운 일이고."

“그럼 저 몰라요. 저기요, 여기 맥주 두병만 더 주세요.

 

 

책장을 덮어도 눈이 어둡습니다

 

선배가 후배에게 알려줄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지식은 어쩌면 음식에 관한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를 실천하듯 선생님은 제게 참 많은 밥을 사주셨고요. 그중 제가 처음 맛본다는 음식을 사주실 때 유독 즐거워 보였습니다.

“너 월남국수 먹어봤어? 1993년에 서울 혜화동에 처음으로 베트남음식점이 생겼거든. 얼마나 기쁘던지. 한동안 자주 갔는데. 지금은 없어졌어.”

“복국 먹어봤어? 먹기 전에 식초를 넣어야 한다. 생각보다 많이 넣어야 해. 그러면 국물 색이 변한다. 맛도 좋아지고.”

“너 가자미식해 먹어봤어?”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이 얼마인지 알아?”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책을 읽어라.”

“끄로뽀뜨낀의 상호부조론이라고 들어봤어?”

“우리 쇼스따꼬비치 왈츠 듣자. 내일까지 듣자.”

“현대무용에 관심 있어?”

“아이슬란드에는 군대가 없대.”

“준아, 이거 월터 옹이라는 사람의 책이야. 선물이다. 도움이 될 거야.”

생각해보면 선생님을 통해 처음 경험하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그간 제가 못 읽고 못 듣고 못 본 것들이 잔뜩 흘러나왔으니까요. 읽고 보고 들으라는 뜻이었겠지요. 처음에는 숙제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어쩌면 이게 공부구나 싶어졌습니다. 다만 숙제 검사는 하지 않으셨으므로 그간의 것을 다 읽고 다 보고 다 듣지는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하기 싫었던 숙제는 시와 시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시인이 되었지만 삶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후련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단하게 읽어온 현대시가 드디어 현대시사(詩史)가 되었으니까요. 비유하자면 학기 말이 되어 때 묻은 교과서를 폐지더미 위로 던질 때의 신남 같은 것이었습니다. 과거의 어느 시인이 되었든 이제 등을 돌리고 저는 ‘첨단의 노래’만을 부르면 될 테니까. 다른 첨단 시인들하고만 견주어보면 될 테니까. 이런 헛바람을 읽으셨던 모양입니다. 바늘처럼 따가운 글을 보내주셨지요. 말씀의 요지는 다시 읽어라! 처음에는 싫고 불편했습니다. 다 읽은 것을 또 읽으라니. 유급이나 낙제를 하는 듯한 기분. 하지만 다행스러운 일은 그때만큼은 제가 선생님 뜻을 고분고분 따랐다는 것입니다. 다시 보니 좋더라, 다시 보니 더 잘 보이더라의 차원이 아니라 세상에는 다시 보아도 늘 새로 보아야 하는 끝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현대시를 통독하고 나서 시인으로 출발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보아라. 지금까지는 손이 가는 대로 시를 보았겠지만 앞으로는 시인별로 시를 읽어보거라. 내가 보기에 한국시의 절정은 1960~80년대인 것 같다. 이 시기 시인들의 시집을 죽 읽어보아라. 신동엽 김수영에 이어 김지하 이성부 정현종 오규원 황동규 김종삼 김광섭 강은교 정호승 정진규 이하석 이수익 이건청 이근배 등등이겠지.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있는 박목월 후기 생활시도 좋고. 이어서 1980년대 시인들을 죽 읽어보아라. 이성복 황지우 김정환 박노해 최승자 고정희. 여기에 장석남에서 나희덕 손택수 문태준에 이르는 1990년대 시인들을 만나보고. 그런 다음 1930~40년대 시로 거슬러 가보아라. 그러면 한국현대시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시는 관계인 것 같더라. 시적 자아와 시적 대상과의 관계, 시적 대상과 대상들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시처럼 보이더라. 나와 이것, 나와 저것, 이것과 저것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맺어주지 못하면 그건 시가 되기 어렵지.

 

선생님은 종종 저를 불러내었습니다. 그때 한동네에 살고 있었지요. 제가 살던 집과 선생님 댁은 천천히 걸어도 십분이면 오갈 수 있었습니다. 선생과 제자 혹은 선배와 후배라는 관계에 더해 자연스레 동네 친구 같은 정서도 생겼습니다. 동네 친구는 별일 없이 만나 작은 일을 벌이는 사이니까요. 서로의 단골집을 순례했고 그러다 잔뜩 취해 선생님 댁까지 갈 때도 있었습니다. 오밤중에 취객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패기라니. 지금 생각해도 존경의 마음이 절로 우러나옵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께는 분노를 제게는 다정을 보여주신 사모님. 그리고 이리저리 뛰며 반겨주던 밤비.

“맥주 안주는 부추김치가 최고다. 단 한가닥씩 먹어야 한다.”

동네 친구이기도 하니까 저도 마음을 내려놓고 할 말이든 못할 말이든 참 많이도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하루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드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울분에 차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커다란 미움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제가 잘못해도 미워했고 잘하려고 하면 더 미워했습니다. 맥주병을 길게 세워가며 억울함을 토로했고 부당함을 일러바쳤습니다. 한편으로는 선생님도 그 사람을 평소 달가워하지 않으셨을 테니 제 말에 동조하거나 속으로 통쾌해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한시간 남짓 묵묵히 제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일순간 무섭게 화를 내셨습니다.

“너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몰라? 네가 내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나도 싫은 생각과 이야기를 해야 하잖아.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이렇게 해서 내가 얻는 것이 뭐고 네가 얻을 것은 뭐야.”

그날을 계기로 저는 사람을 어떻게 미워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누군가를 향한 거대한 미움을 쉬이 사라지게 하거나 극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적어도 미움이 나를 지배하게 두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미움이 만든 사나움은 결국 나와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에게 맴도는 것이니까요.

 

 

누구나 삼심만원이 필요하다

 

선생님은 자주 제 생계에 대해 물었습니다. 아울러 몇몇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짚으며 누구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 하고도 물었습니다. 관심 어린 인사말을 넘어 감각이라 생각합니다. 생계와 생활의 끝자락을 절실하게 붙들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가질 수 있는 감각. 그래서인지 작든 크든 돈이 될 만한 일을 자주 소개해주셨지요. 보통 사보나 보고서에 실릴 글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감사한 마음과는 별개로 저는 큰 공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잡문쯤으로 여긴 것입니다. 기한 내에 분량을 채우고 고료를 받으면 되는 일. 요즘 말로 영혼을 쏙 빼고. 잡(雜)이 가진 엄격함을 미처 헤아리지 못할 때의 일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으로부터 통지문 같은 것이 날아왔습니다.

 

1. 애정을 갖고 임하자.

2. 사안의 의미와 내용을 장악하고 압축한다.

3. 정확하고 친절하게 쓴다.

4. 문장은 단정하고 품위있게 구사한다.

5. 기사 서술방식에 변화를 준다. 취지와 목적을 앞에 서술하는 방식을 쓰되 가끔씩 구체적인 내용을 앞에 내세우며 전체적으로 변화를 주는 방식.

6. 모든 글의 숨겨진 주어는 발행인이다.

7. 궁금한 사항은 언제든 나에게 물어볼 것.

 

저의 속내를 장악하고 압축한 글. 단정하고 품위있게 문제를 지적하는 글. 정확하고 친절하게 해법을 설명하는 글. 그러면서도 애정이 묻어나는 글. 틈날 때마다 선생님의 통지문을 읽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도약과 비약이 뒤섞인 시적 문장을 궁리하는 게 제 글쓰기의 전부였으니까요. 아무리 시적이어도 의미와 애정이 결핍된 문장은 시가 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제가 겨우 생각해낸 시와 시적인 것의 차이와 분별입니다. 하나 인상적인 것은 선생님은 일없이도 제게 종종 돈을 주셨습니다. 돈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 돈을 받는 일은 결국 돈을 받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취중 즉흥으로 지갑에서 돈을 꺼내주시는 법은 없었습니다. 만나자마자 맑은 정신으로 봉투를 꺼냈는데 매번 그 봉투에는 ‘준이는 삼십만원이 필요하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봉투 안에는 정말 삼십만원이 들어 있었고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살면서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에게 선생님도 같은 방식으로 종종 봉투를 받았다는 것. 자신에게 갚을 생각은 하지 말고 너도 나중에 후배가 생기면 그때 갚으라 하셨습니다. 저는 비교적 최근에야 몇번 선생님을 따라 해봤습니다. 해보니 중요한 걸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는 삼십만원이 필요하다’라는 문장을 적은 봉투를 건넬 때만큼은 스스로가 멋있게 느껴졌으니까요.

 

 

다시 무지의 세계

 

시간이 흘러 결혼을 앞둔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주례를 부탁드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뻔한 관계처럼 보일까 싶어서 이내 생각을 접었습니다. 그 대신 아내가 될 사람과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렸지요. 예상과 달리 선생님의 첫마디는 축하가 아닌 지적이었습니다.

“아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 결혼 전까지 여기저기 연락할 일이 많을 텐데 윗사람에게 말할 때는 처라고 해야지.”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한 뒤 전화를 끊고 사전을 펼쳤습니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 호칭과 언어예절에 대한 게시글도 샅샅이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아내라는 낱말이 높임의 의미를 지닌다는 규정이나 설명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억울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면전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선생님은 언제나 그랬듯 제가 모르는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지요.

선생님. 너무나 잘 알고 계시겠지만 그간 제 삶을 돌본 것은 무지였습니다. 다만 덕분에 제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존함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불안한 마음에 어제는 늦은 답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선생님을 생각하며 글을 한편 쓰고 있다고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네 마음대로 하거라. 나는 간만에 가출 기도. 준아, 나 힘들 때 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