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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초점 | 이 계절에 주목할 신작

 

봄을 기다리는 마음들

 

 

이미진 李美眞

문학평론가. 평론집 주요 평론으로 「‘우리’라는 실재」 등이 있음

bluerocke@naver.com

 

 

김병운 소설집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 (문학동네 2025)

 

김병운의 소설은 내어준 일기 같다. 훔쳐보지 않아도 되는, 기꺼이 꺼내 보인 일기. 그 일상의 중심에는 ‘나’와 곁을 나누는 ‘관계들’이 있다. 그의 소설에서 ‘사랑’은 미숙함에도 기꺼이 나누며 견고해지는 관계맺기의 과정이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은 전작들처럼 퀴어서사를 그리면서도 그 관계맺음의 영역을 확장한다. 일곱편의 단편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감정의 색채들로 연동된다. 각각의 소설 속 인물들은 어딘가 서로 닮아 있는데, 자꾸만 그 비슷함을 들여다보고 싶고 그 마음을 알고 싶은 기분이 된다.

소설 속 인물에 대한 애착은 그들이 우리의 소중한 사람들과 닮아 있다는 사실로부터 온다. 아니, 우리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같다. 그러니까 ‘닮다’와 ‘같다’의 차이처럼, 인물들은 ‘마치’보다는 ‘거의’에 가까운 감정을 전한다. 가령 죽은 아빠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품은 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옛 연인과의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을 곱씹는 ‘나’(「만나고 나서 하는 생각」)는 엄마의 입원을 계기로 가족과의 쉽지 않았던 기억들을 돌아보며 새로운 연인을 찾을 준비를 하는 ‘나’(「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사소한 일이다」) 같고, 무심한 듯 아들의 애인을 위해 초콜릿을 챙기는 엄마(「봄에는 더 잘해줘」)는 퀴어 작가인 아들의 인터뷰를 동네 사람들이 읽을까봐 걱정하는 엄마(「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사소한 일이다」)의 다른 얼굴 같다. 그 인간적 편린들이 어쩐지 책을 읽고 있는 나와 우리 엄마 같아서, 자꾸만 더 그들을 알고 싶은 기분이 된다. 그렇게 소설들은 서로에게 충실한 밀도로 평범하고도 감정적인 순간들을 차분히 건져올린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서사에 스며들게 하는 부드럽고도 강한 핍진성은 ‘일상’에 대한 깊고도 찬찬한 음미로부터 온다. 미묘한 행복감, 본인도 느끼지 못하는 질투, 사소한 애착 같은 것들. 우리는 매일매일이 모든 사소롭고도 버거운 감정들을 안고서 살아간다. 감정의 뚝딱거림은 그렇게 퀴어적 일상을 모두의 소설로 만든다.

「봄에는 더 잘해줘」는 모든 평범한 사랑에 스며 있는 죄책감에 관한 소설이다. 소설은 ‘나’를 둘러싼 방사형 관계들로 구축된다. 남의 집에서 오랫동안 가사도우미로 일해온 엄마 그리고 나. 다른 사람의 애인으로 알게 되었지만 지금은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 영묵 그리고 나. 영묵의 전 애인과 친한 사이였지만 언제나 한결같은 친구로 남아 있는 경주 그리고 나. 관계들은 ‘그리고 나’를 벗어나 또다른 관계들로 연결된다. 엄마는 오랫동안 돌봐온, 이제는 성장해 어엿한 사회인이 된 다른 집 아이들에게 ‘나’는 모르는 애정을 주고, 퀴어 커뮤니티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했던 경주는 이성과 결혼해 ‘나’와 만나는 자리에 아기를 데리고 나오기도 하며 영묵의 전 애인인 M과도 여전히 친한 사이이다. 쉽사리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관계들은 불안정과 불안을 유발하지만, 확장됨으로써 만들어지는 새로운 매개의 순간들이 있다.

우리는 결코 타인에 대해 온전히 알 수 없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상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진다고 하지만, 알고 싶은 것이 그 사람 자체인지 아니면 그가 맺고 있는 또다른 관계들인지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 이 미숙한 감정 안에는 사라지지 않는 아쉬움, 체념된 질투, 순전한 집착의 감정들이 부유한다. 김병운의 인물들은 사랑하는 대상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거둘 수 없는 감정 때문에 속절없이 괴롭힘을 당한다. 결국 삶은 인연이라는 통제할 수 없는 바닷속에 던져져 있다는 것, 그 저항할 수 없는 파도 안에서 끊임없이 부딪히고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라는 사실이 소설 속 ‘나’들을 괴롭힌다.

「만나고 나서 하는 생각」은 완벽하지 못한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내는 ‘진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삼촌과 조카가 등장하는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나 사제관계가 그려지는 「교분」에서 퀴어의 사랑은 세대를 잇는 ‘상속’의 가치가 된다. 별일 없는 일상을 안간힘으로 버텨내는 누군가의 삶은, 그와 닮은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로할 약속이 된다.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와 「오프닝 나이트」는 퀴어의 ‘다양한’ 삶 속으로 좀더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장소와 그 안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리는 소설이다. 섬세한 흐름 속에서 교차되는 외로움과 기쁨의 전율을 통해 삶의 이유가 생성된다.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 진짜 사랑을 해보라”(「만나고 나서 하는 생각」 59면)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짜’와 ‘거의’ 모두를 부정하게 하고, 동시에 둘 다를 긍정하게 한다. ‘거의’ 사랑하는 것과 ‘진짜’ 사랑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완전하지 못하다는 불안 때문에, 우리는 상대를 더 애틋해하며 사랑하게 된다. 사심 없는 일기 같은 마지막 단편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사소한 일이다」는 ‘거의’와 ‘진짜’가 결국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며, 사랑은 다만 사랑일 뿐이라고 말한다.

 

 

김성중 소설집 『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 (문학동네 2025)

 

인간이 이야기에 대한 욕망을 갖고 태어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김성중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그건 그저 운명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번 네번째 소설집에서 그는 비인간과 인공지능, 생태와 환경 같은 거대한 주제들에 ‘상상력’으로 맞서고자 한다. 이때의 상상력은 살아 있는 인간의 징표이기도 하지만, 깨고 나면 사라지는 꿈같이 취약한 것이다. 그 때문인지 소설들의 진짜 묘미는 이야기의 욕망들이 사그라드는 지점에서 나타난다. 거대한 줄 알았던 서사가 다만 소박한 낭만으로 추동되는 착한 농담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 느껴지는 묘한 쾌감이 있다.

첫 수록작 「유령들」에서 유령들이 주로 머무는 장소는 도서관이다. 도서관을 자주 찾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특유의 외로운 공간성이 유령들의 존재를 통해 서사화된다. 죽은 자들의 장소인 도서관에서, 유령들은 산 사람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눈치를 보고, 서로 질투를 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듯 닮은 세 유령은 윤회의 굴레에 얽혀 있는 하나의 존재 같다. 생(生)과 사(死)의 경계에서 우주를 여행하듯 부유하는 이들의 모험담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로봇청소기의 영혼과 합류하며 급물살을 탄다.

「새로운 남편」은 인공지능이 남편을 대체할 수 있게 된 미래의 어느날을 배경으로 한다. 화자는 기혼여성의 가정 문제를 상담하는 공무원으로, 내담자의 문제가 심각하면 ‘유령 신랑’이라 불리는 인공지능 기반 홀로그램을 활용한다. 실제 남편과 똑같은 외형과 목소리를 하고 있으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설계된 홀로그램은 “부정적인 말, 모멸감을 주는 비아냥, 고함 섞인 명령, 잔소리”(53면)를 하지 않는다. 화자 역시 ‘새로운 남편’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새로운 남편’에게 ‘몸’을 선물할 계획을 세운다. 그 과정에서 사랑과 몸 그리고 죽음의 의미가 새롭게 조망된다.

표제작인 「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와 「서풍」의 메타적 구성은 소설집 전반을 아우르는 자기 고백적 분위기와 잘 맞물린다. 「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는 생활관리사로 독거노인을 돌보는 화자가 경증 치매노인 박우경의 사망 후 그녀의 노트를 옮겨 적은 기록이다. 삶의 우여곡절과 꿈을 담고 있는 이 노트는,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와 노트 주인의 존재가 포개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여기서 ‘꿈’은 잠이라는 구체적 행동을 통해서만 발현되는 것을 넘어, 현실과 그 너머를 매개하는 메타포가 된다. 서사 속에서 인물들은 이야기의 방식으로 꿈을 꾸며, ‘이야기하기’와 ‘꿈꾸기’는 머리와 꼬리가 연결된 뱀처럼 한몸을 이룬다.

한편 「서풍」에서 화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동행하게 되면서 연쇄 방화의 공범이 된다. 소설은 범행을 취조받는 화자의 진술로 기술되고 있어 마치 영화 「아이덴티티」(2003)처럼 다중인격을 가진 범죄자의 고백으로 읽히기도 한다. 휴게소 나들이를 즐기는 ‘나’와 그가 묘사하는 방화범 ‘제프리’는 한 사람의 서로 다른 인격같이 친밀함과 불화를 공유한다. 인물들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음으로써 만들어지는 독특한 서사의 분위기가 소설집 전반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감각은 오늘날 가상의 팽배, 알고리즘에 따른 인지의 상호오염과 같은 진중한 문제들과 연관될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꾼으로서 김성중의 더 큰 관심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시선의 충돌에 있는 것 같다.

「귤락 혹은 귤실」과 「맥주의 알」은 대도시에서의 우연한 조우가 위로와 치유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담으면서 인물 내부의 충돌을 바깥의 연대로 확장시킨다. 「맥주의 알」은 건대입구역 뒷골목에서 산책을 하던 화자가 우연히 ‘상황주의자’ 모임에 가담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다. 대도시적 냉소와 환멸에 찌들어 “기네스가 나를 비웃는 소리”(229면)를 듣곤 하던 화한발짝 벗어나 있지만 나름대로 충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평일 오후 한강둔치에서 모임을 갖기도 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느슨한 연대를 구축한다.

연대의 구축에 기반을 둔 또다른 소설 「맨발 교실」은 판타지적 설정을 앞세워 서사를 이끌어간다. 갑자기 생긴 “투명한 막 같은 것”(267면)으로 인해 집 근처의 공원에 갇히게 되면서, 화자는 함께 갇힌 두명의 할머니들과 고군분투하며 생존을 도모한다. 동화적인 설정과 따뜻한 문체를 통해 상상의 이미지를 구현해내며 지구생태계 문제와 고령화사회 같은 우리 앞의 난제들을 발랄한 어조로 다룬 소설이다. 「도트와 프랭크」는 실제 미국의 인디팝 듀오의 음악을 듣고 쓴 소설(224면)이라는 점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인물들의 관계가 읽는 행복감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연인의 삶은, 함께라서 아름답다.

이번 소설집에서 김성중은 몸과 정신, 사랑과 성(性), 돌봄과 같은 복잡한 주제들을 친근한 설정을 통해 낯설게 풀어낸다. 비인간과 인간,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서사 안에 숨 쉬는 것은 가까운 이웃을 연상시키는 친숙한 인물들이다. 무거운 주제들에 맞서는 그들의 방식이 묘하게 용감하여, 읽고나면 쉬이 잊히지 않는다.

 

 

김유나 소설집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 (창비 2026)

 

성스러움의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던 것들을 인간의 공적 영역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아감벤적 의미에서라면, 김유나의 신작 소설집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은 충분히 ‘세속적’이다. 잘 짜인 일곱 단편은 곳곳에 편재하지만 범박하여 서사화되기 까다로운 우리 사회의 내밀한 감정을 침착하게 그려낸다. 투명하게 현세적인 인물들은 기형화된 자본주의적 질서에 착실히 복무하는데, 이는 시스템 바깥으로 벗어나본 적 없기 때문이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우리 모두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설은 주로 부부, 형제, 모녀 등 친밀한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다룬다. 부부간의 애정도(「부부생활」), 가족에 대한 가장의 책임감도(「물이 가는 곳」), 혈육에 대한 애틋함도(「이름 없는 마음」), 아이에 대한 사랑도(「으름 씨 뱉기」), 모녀 사이의 의리도(「너 하는 그 일」) 결국 먹고사는 문제와 연루된다. 그것이 우리 사는 현실이지만, 김유나는 이 당연한 사실을 날카롭고 집요하게 그려냄으로써 그것을 당연시하게 두지 않는다. 치밀한 현실비판은 무책임한 냉소 대신 휴머니즘을 통해 균형을 얻고, 인물들의 상황을 관념화하거나 작가 개인의 편견에 귀속시키지 않음으로써 핍진한 것이 된다.

「이름 없는 마음」은 결혼을 통해 중산층이 된 누나와 “보통 사람들의 기준으로 멀쩡한 구석이 그다지 많지 않은 아이였”(20면)던 남동생 ‘현건’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강을 그린다. 현건의 말투와 행동에서 묻어나는 습관들은 남편의 경제력에 의지해 살아가는 ‘나’를 전전긍긍하게 한다. 그 불안한 마음으로 인해 두 사람은 크게 다투고, 현건이 밤늦게 집을 나가고 나서야 ‘나’는 어린 시절 동생이 주었던 ‘이름 없는 마음’을 떠올린다. 사건에 관한 한 가장 깊은 마음에 가닿는 서사적 기술은 소설집 전반을 통해 다양하게 변주되는데, 「랫풀다운」은 망한 헬스장의 트레이너가 자신을 속이고 잠적한 사장을 쫓아 제주에 당도함으로써 스스로도 몰랐던 자유를 발견하는 여정을 보여주며, 「너 하는 그 일」은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행정고시 준비생 태은의 일상에 애인과 싸우고 집을 나온 엄마가 끼어들면서 벌어지는 감정의 변화를 다룬다. 최상위의 영재 자녀를 둔 평범한 부모의 해외이민에 대한 고민을 그린 「으름 씨 뱉기」는 세대간 감각의 격차와 그럼에도 불변하는 인간의 고유한 관계성과 흘러가 닿게 될 미래를 한국 야생 바나나인 ‘으름’의 씨를 뱉는 행위를 통해 은유적으로 그려낸다. 속된 상황을 다루면서도 그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자연 혹은 인간의 본능을 주된 은유로 삼는 김유나의 방식은, 우연인 듯 운명처럼 만난 학원강사와 요양보호사 부부의 은행털이 완전범죄를 다룬 「부부생활」, 갚아도 갚아도 끝나지 않는 빚을 짊어진 보험 설계사 가장의 분투를 그린 「물이 가는 곳」에서도 흥미롭게 변주된다.

인물들은 열심히 살아감으로써 우리 사회의 망가진 구조를 처연하게 놔두지 않는다. 그들의 생업인 ‘일’은 다만 배경에 그치지 않고, 인물들이 세상과 대면하는 구체적 조건들을 발생시키는 생물이 된다. 물류센터 아르바이트 현장에서의 조건들, 보험설계사의 수익구조와 계약서류의 조항들, 대출금리와 상환 종류 같은 현실적 규칙들은 소설 속으로 들어와 인물들과 얽히고설키며 실랑이를 벌인다.

물론 세상에는 규율과 통제 속으로 인물들을 밀어넣는, 대출금을 갚을 수 없게 하고 빚 때문에 가족을 멀어지게 만들거나 혈육에게 냉소하도록 만들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파투나게 만들기도 하는 더 큰 상위의 구조가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 속 대부분의 사람은 세상에 당하고 또 당하면서도 있는 힘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그 미련한 성실성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실패를 면하는 세속화의 방식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대항할 수 없음을 알기에, 대항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대항하지 않음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강함을 증명한다. 끝이라 생각되는 지점에서 비로소 저다움을 드러낼 때, 아무리 속되고 이기적이고 영악하고 냉소적인 인간도 똑같이 감정을 가진 벌거벗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치밀한 설정과 잘 짜인 서사를 통해 김유나는 감상적이지도 과하지도 않게 그들의 ‘최선’을 그린다. 이 시대적 위안 앞에서, 어찌 다음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