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조효제 『불타는 지구에서 다르게 살 용기』, 창비 2025
녹색 민주시민의 지침서
송종원 宋鐘元
문학평론가
renton13@daum.net
지구가 불타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을 비롯한 이상기후는 물론이고 지구 곳곳에서 지속 중인 전쟁이나 과열적인 난개발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생물권(biosphere)이 이를 잘 말해준다. 어디 그뿐일까. 경제적 양극화와 혐오의 정동이 사람들의 울분을 극대화하는 가운데, 여전히 제국적 생활양식을 삶의 표준으로 삼아 남반구에 대한 착취를 일삼는 행태가 파국과 종말의 서사를 부추긴다. 이 모든 문제는 국제적으로 연합하여 해결해야 할 공동의 과제이지만, 그보다 경제적으로 동질적인 집단—거대 글로벌 자본과 기업—이 ‘부족화’되어 성채를 짓고 위기를 심화시키며 세계를 흔들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밑바닥에서 발본적으로 다시 사유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위기의 주요 원인이라 할 자본주의는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분리를 가속화해왔다. 개개인의 삶이 시장질서 안에서 흥정의 대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 존재의 기본 조건인 지구 또한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지구와도, 타인과도,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도 멀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공공의 것을 되살려야 하는 때다.
조효제의 『불타는 지구에서 다르게 살 용기』는 파국의 서사를 대체할 ‘전환의 서사’를 이야기한다. 저자가 볼 때 전환이라는 말은 정치적 혁명과 달리 “의도적이고 계획적이며 비폭력적인 변화를 통해 경제·사회·문화·행동을 속속들이 바꾼다는 뉘앙스”(146면)를 품는다. 그는 탄소자본주의 문명에서 벗어나 생태문명으로 나아가는 ‘사회생태 전환’을 지향한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흔히 알려진 파국과 종말의 서사를 해체하는 순간이다. 조효제는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지구의 문명 역시 ‘성장-보전-이완-재조직’이라는 일종의 생애주기를 갖는다는 ‘행성 단계 전환 이론’에 기대어 자본주의의 주기를 살핀다. 그에 따르면 18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성장해 황금기를 맞았던 자본주의가 현재는 경제·금융·에너지·식량 등 다중의 위기를 맞아 이완(release)단계에 접어들었고, 우리가 겪는 각종 시스템의 퇴조와 파국·종말에 대한 불안이 바로 이 이완단계의 혼란상이다. 이러한 분석 덕분에 우리는 파괴적 전망을 넘어 지금의 자본주의 문명을 다음 문명의 단계로 ‘연착륙’시켜야 한다는 인류적 과제를 마주하게 된다. “탄소자본주의 문명의 종말은 생태문명으로 가는 과정”(204면)이기도 한 것이다.
설득력 있는 서사의 전개를 위해 저자는 적재적소에 ‘서사적 이정표’를 배치한다. 본문을 시작하기 전 논의의 기본방향으로 설정한 14개의 키워드(「들어가며」)와 각 장 제목을 이루는 15개의 질문이 모두 그러한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내장된 사유방식이 있다. 단순논리로 대상을 분별하는 일에서 벗어나 일견 모순되어 보이거나 전혀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창조적으로 결합하고 종합해내는 사유다. ‘꿰어야 할 지식의 구슬들’로 표현된 생태사회주의, 에코페미니즘, 생태경제학, 정의로운 전환, 에너지 민주주의 등의 담론이 풍성히 소개되는 가운데 저자는 그것들의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창조적 시선—저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비선형적 시각’—을 견지한다. 사회시스템과 지구시스템을 ‘사회-지구시스템’으로 결합하는 주장이 대표적인데, 여기서 그는 민중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싸워온 사회시스템 패러다임과 생태·환경을 위해 싸워온 지구시스템 패러다임의 상호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학문적 지혜와 시각을 모아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이때 ‘변혁적 중도’의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강조점이다. 근대에 적응하고 극복하는 ‘이중과제’적 사유와 실천 역시 중요한데, 가령 기술을 무조건 배척하기보다 “생태계에 위협이 되지 않는 수준으로” 관리하고 “최대한 탈상품화하여 공익적·사회적으로 선용”하는 ‘적정기술’의 활용이 필요하다(243면).
좋은 서사가 그러하듯이 이 책에는 독자의 이목을 끄는 세부 또한 풍부하다. 한 예로 저자는 한국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논의가 한창이던 2024년 당시에 필리핀은 11월 한달 동안에만 무려 6개의 태풍 피해를 입어 수많은 사망자와 이재민이 생겼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기후위기와 정치적·경제적 어려움이 맞물리고 해외이주가 늘어나며 “필리핀 노동계급의 불안정성”(163면)이 급격히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싱크홀 사고의 예를 들어 우리가 자연환경이 아닌 ‘건조환경’(built environment)에 살 고 있으며 ‘기술권적 인간’이 되었다는 분석도 실감을 불러일으킨다. 사회 적 급변을 예측하고 개입하는 서사에 각을 세워줄 ‘티핑 포인트’ ‘최대 개입 지점’ 등의 개념이나 MZ세대의 소비에서 적극적인 주체성을 주목하는 미 닝아웃(meaning out), 포스트 자본주의의 실천방안 중 하나로 거론되는 탈 배움(unlearning) 등의 개념도 또렷이 각인된다. 그외에도 냉소와 불안을 넘어 새로운 삶을 고민하게 이끄는 크고 작은 개념들이 이정표 중간중간 등 장해 생생한 현실감을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결국 살아 있는 인간을 향한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서사의 이정표 끝에는 지구 한계 내에서 “모든 존재의 좋은 삶”(260면)을 꿈 꾸는 마음이 있다. 누군가는 원대한 추상이라고 몰아세울 법도 하지만, 조효 제는 그것이 실은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꿈꾸는 모습이라고 긍정한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웃으면서 협력하는 길을 찾을 수 있는 존재”(50면)이고, “사회문화적 세계 속에서 의미를 추구하고, 정치적 행위주체성을 발현하면서 살아가는 존재”(70면)이며, “현실이 어려워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적응적 대처’를 할 수 있는 존재”(212면)이다. 이와 비슷한 정의가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인간에 대한 저자의 신뢰를 본다. 그리고 이 신뢰는 저자가 인간을 기술한 문장을 거꾸로 뒤집을 때 더 정확히 드러난다. 웃으면서 협력하는 길에서 인간을 만나고,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적응적 대처의 노동을 해나가면서 인간이 되어간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책은 그런 과정의 보고서이기도 하다
기후생태위기에 영감을 주는 ‘꿋꿋한 의연함’을 보여준 사과 농부의 편지부터 자본주의의 ‘사악함’을 직시하라고 말한 어느 교수의 퇴임사, 최종목적지에 도달하는 지혜로운 전략을 알려준 한 자전거 라이더의 말, 거대기업을 상대로 기후재난의 책임을 묻는 투쟁을 벌여온 페루 농부의 일화 등 수많은 이들의 이름과 이야기가 이 책에 등장한다. 이는 저자가 “민주시민의 시각과 정신”(15면)을 얼마나 중시하며 이 책을 저술했는지를 증명해 보인다. 『불타는 지구에서 다르게 살 용기』는 문명전환의 시기에 때맞춰 도착한 선물 같은 지도이다. 탄소자본주의 문명을 넘어서 녹색 민주시민의 삶을 살아갈 길에 오를 때, 이 지도를 손에 쥔 이는 분명 용기를 얻을 것이다. 이미 그 길 위에 많은 사람들이 행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함은 물론이고, 자신과 비슷한 얼굴의 사람들 역시 그 길에서 보게 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