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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윤유경 『전국 언론 자랑』, 사계절 2025
자랑해도 좋을 지역언론과 함께 써야 할 희망
이정훈 李政勳
언론학자, 신한대 교수,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보도상 심사위원장
leetzsche@gmail.com
편집국장이 직접 노년여성들과 발달장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교육을 진행해 그들의 목소리를 지면에 고정으로 싣는 언론(진안신문), 주민들의 심부름을 해주고 그 삯으로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 기사를 쓰는 언론(경남신문), 빨래방을 만들어 노인들의 빨래를 해주며 세탁비 대신 이야기를 받은 언론(부산일보), 지역 한달살기와 인턴기자 프로그램을 결합하여 청년들의 관심을 모은 언론(주간함양), 언론사 대표가 아침에는 도시락을 배달하고 점심에는 지역민들과 같이 밥을 먹으며 저녁에는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는 언론(옥천신문)이 있다면 믿으시겠는가? 그뿐 아니다. 『전국 언론 자랑』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삼성중공업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사고를 18년 동안 취재하고 있는 언론(태안신문)도 있고, 평범한 시민들이 나서서 ‘든든한 백’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하는 언론(뉴스민)도 있으며, 수몰된 충청도 국악의 역사적 기원—국악단 청풍승평계(淸風昇平稧)의 연습장소—을 찾기 위해 수중 다이빙에 도전하는 언론(중도일보)도 있다. 어느 언론사에선 취재한 내용을 지역의 역사책으로 펴내고 기자들이 직접 강연을 다니는가 하면(거제신문), 해녀부터 편의점 사장까지 현업을 병행하는 기자들이 섬 속의 섬인 제주 우도 주민들의 이야기를 실어내는 언론(달그리안)도 있다.
이 책은 미디어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의 윤유경 기자가 지역언론사 19곳을 직접 찾아가 기자들의 취재에 동행하며 관찰하고 경험한 내용을 묶은 책이다. 책에 실린 19곳 지역언론의 공통점은 ‘지역 밀착’ 또는 ‘지역주민 밀착’이다. 서울에 있는 ‘중앙언론’과 달리 지역언론은 지역과 사람에 밀착해 적극적으로 취재하고, 중앙으로부터 소외된 지역과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흔히 ‘소멸위기’라 여겨지는 지역의 이미지와 달리 이들의 기사에는 생동감과 활기가 넘친다. 이것은 정치권의 아귀다툼, 부정과 비리, 대형 사건·사고 중심의 중앙언론 기사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이 책은 얼핏 건강한 지역언론의 성공담을 모아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곱씹어 읽다보면 한국의 언론이 어쩌다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실마리가 드러난다. 놀랍게도 오늘날 언론에는 ‘독자’가 없다. 무엇이 뉴스가 될지에 대한 결정, 다시 말해 취재할 대상과 보도할 방법을 결정하는 일은 오로지 언론사와 기자들의 몫이다. 취재원 내지 뉴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정부 및 공공기관과 대기업 등 엘리트 기관들이며, 언론이 자신의 기사를 주의 깊게 읽어주기를 바라는 대상 또한 그 엘리트들이다. 즉 언론에는 평범한 시민 독자의 자리가 없다. 뉴스거리를 결정하는 과정도, 뉴스를 제작하는 과정도, 언론이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언론이 시민 독자에게 갖는 관심은 기사 클릭수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전국 언론 자랑』에 나오는 지역언론과 그 독자들이 하나같이 ‘지역·주민 밀착’을 말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이야기’가 실리는 지역언론은 지역민들에게 단순한 보도 이상의 자부심을 갖게 만든다. 지역에서 언론은 생활의 일부가 되어 민원센터 역할까지 수행하며 버스 노선 신설 등 작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다. 반면 ‘중앙언론’의 독자들은 언론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쏟아지는 기사 속에서 나의 목소리, 나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까? 선택 가능한 무수한 볼거리 읽을거리 중에 굳이 이 신문이거나 이 방송이어야 할 필요성을 느낄까? 아직도 중앙언론의 기자들은 뉴스를 잘 만들고 단독보도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위기가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시민 독자를 소외시키는 방식으로는 마찬가지 결과일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독자를 찾아 분석하고 연구하여 그들이 원하는 것과 바라는 것을 ‘좋은 기사’ 속에 녹여넣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 요컨대 언론의 미래는 언론·기자와 독자 사이의 새로운 관계 설정에 있다
“‘소멸’이 아니라 ‘삶’을 담는 지역 언론 이야기”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국 언론 자랑』은 결국 지역과 지역민의 이야기다.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서울중심주의에 대한 문제의식’(6면)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이 독자들에게 (지역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전”(10면)으로 읽히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지역은 소멸되어가는 공간으로만 이해되며, 때로는 ‘소멸위험지수’와 같은 숫자로 표현되거나 때로는 지역균형발전과 같은 정책의 수혜 대상이 될 뿐이다. 그러나 지역언론에서 지역은 그저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의 터전이요, 오늘도 그곳에는 자기 삶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단지 ‘중앙’에서는 그것이 보이지 않을 뿐, 아니 그것을 보지 않을 뿐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지역소멸은 지역의 실패가 아니라 서울중심주의의 실패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중앙의 눈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낼 게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과 머리를 맞대고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찾다보면 어렵게만 느껴지는 지역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지 모른다
물론 오늘날 지역언론이 처한 어려움과 문제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돈’이 문제다. 대형 언론사처럼 재정의 대부분을 광고에 의존하기에는 지역언론의 독자 수와 지역경제의 규모는 너무 작다. 독자가 취재원이며 언론과 독자 사이에 신뢰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는 지역언론에게 유료 가입자 모델은 정성을 들여 가꿔볼 만한 수익모델이다. 독자 입장에서도 유료 회원 가입은 지역언론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좋은 방법이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고향의 지역언론을 유료 구독하는 것은 고향도 돕고, 고향 소식도 듣는 일석이조가 될 수 있다.
지역언론 이야기로 읽기 시작한 『전국 언론 자랑』은 한국언론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넌지시 보여주더니,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쯤에는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쉬는 사람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언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지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모두 흥미롭게 읽을 책이다. 그리고 어떤 동기에서 시작하더라도 다 읽을 때쯤엔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져 있음을 느낄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올해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는 해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중앙’의 정치와 언론에서는 지역 이야기를 쏟아낼 것이다. 그때에도 그들은 지역소멸을 이야기하고 균형발전을 이야기하며, 그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가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전국 언론 자랑』을 일독해보는 것도 지방선거에 임하는 꽤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