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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한형조 『두 개의 논어』, 김영사 2025

주희와 정약용을 통해 『논어』를 다시 읽다

 

 

이영호 李昤昊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lyh6896@skku.edu

 

 

 

『두 개의 논어』는 한형조(韓亨祚, 1958~2024) 교수의 유작이다. 그의 사후 제자들이 유문을 습득하여 엮은 책이다. 왜 하필 ‘두 개의 논어’인가? 중국을 필두로 동아시아 경학사(經學史)에서 가장 많은 주석서(해설서)를 산출한 책이 『논어』이다.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릴 정도이고 집에 쌓아놓으면 들보에 닿을 정도의 양이라고 한다(汗牛充棟). 그 많은 『논어』 주석서 중에서 어떤 기준으로 단 두개만을 선정하였는가

한형조의 학문의 여정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의 박사학위논문(1992)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 『주희에서 정약용으로』(세계사 1996)였다. 학문 도야의 첫걸음에서 한형조는 주희(朱熹, 1130~1200)와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을 선택하였다. 이 선택은 그와 평생을 함께했으며, 그의 죽음 이후에도 남았다. 하여 ‘두 개의 논어’에서 하나는 주희의 『논어집주(論語集註)』이며, 또다른 하나는 정약용의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이다.

주희와 정약용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주희는 유학을 새롭게 해석하여 지난 세기 천년을 지탱하는 이념을 제공하였으며, 정약용은 신유학을 대체할 새로운 유학체계를 구상하였다. 둘의 차이는 전자는 학문의 영역에서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에 영향을 지대하게 미쳤다는 데 비해, 후자는 구상으로 끝났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학문의 광대함은 가히 각각 중국과 조선을 대표할 만하다고 평가할 수 있

한형조는 학문의 시작을 이 두 학자로 삼았으며, 학문의 마지막을 두 학자의 『논어』 주석에 대한 해설로 구성하였다. 다만 한형조의 해설은 기왕의 해설들과는 그 궤를 분명히 달리한다. 그는 주희와 정약용의 『논어』 해석을 비교하는 첫걸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두 사람의 고전 해석을 추적하는 것은 신나는 모험이다. 장면 하나하나마다 드라마틱한 대치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27면)

정자(程子)는 『논어』 읽기의 궁극을 ‘손과 발이 춤추는 경지(手之舞之 足之蹈之)’(「서설」, 『논어집주』)라고 하였다. 즉 최고의 『논어』 독자는 그 내용을 기억하거나 잘 정리함을 넘어서 온몸으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는 고전 읽기의 최고봉은 지식의 영역이라기보다 감성의 영역에 가깝다는 의미이다

한형조도 이 길을 걸어간다. 그에게 주희와 정약용의 『논어』 주석을 추적함은 기왕의 해석을 학술적으로 정밀하게 비교 분석함을 넘어서 지적 모험이자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여정이다. 이 여정에서 한형조는 정약용의 주석을 주희의 해석과 대비적으로 거론하면서 그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다산의 울분과 한탄이 절절이 묻어 있다” “다산은 분노한다” “다산은 힘찬 목소리로 웅변한다”(362면)는 표현들을 그의 감성적 『논어』 읽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한형조의 독법은 기존의 『논어』 주석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 현재 우리가 보는 『논어』는 1편 「학이(學而)」에서 20편 「요왈(堯曰)」에 이르기까지 모두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간 대부분의 『논어』 주석은 이 20편의 순서에 따라 해설을 덧붙여왔다

그런데 이 책은 그 해설 방식이 확연하게 이질적인바, 장편의 서설과 본문, 그리고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설은 주희와 다산의 사유의 특징, 그들의 사유가 『논어집주』와 『논어고금주』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중심으로 논한다. 이어 3부로 구성된 본문은 이 책의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데 1부는 사건과 인물들, 2부는 공자의 제자들, 3부는 공자의 사상이다. 이 내용들이 책의 핵심이다.

한형조는 주희와 정약용이라는 두 학자의 상이한 독법을 여실히 보여주면서도 정약용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정약용의 『논어』 독법을 지표로 삼아 주희의 해석을 곁들여서 공자의 본의를 찾아간다. 특히 주목할 점은 『논어』의 경문보다 오히려 주희와 정약용의 해석과 그 해석이 지닌 함의에 대한 논의일 것이다. 저자는 ‘명상의 주희’와 ‘활동의 정약용’으로 선명한 지침을 제시하며, 줄곧 이 두가지 관점에서 『논어』를 읽어나간다. 하나의 예를 살펴보기로 하자

『논어』의 첫 구절은 ‘학(學)’으로 시작한다(“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 1장). 여기서 ‘학’의 정체는 무엇인가? 주희는 내면의 고요한 마음으로 초점을 맞추어서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자각의 노력’이라고 정의했다. 반면 정약용은 주희의 이러한 정적인 정의에 반대하면서, 학은 시(詩)와 서(書)를 중심으로 하는 고전에 대한 학습이며 구체적으로 가정과 사회에서 권장되는 규범들에 대한 동적 실천이라고 주장했다. 이 비판의 말미에 정약용은 주희의 해석이 공자와 맹자가 구상한 본래의 의미가 아니며, 멀어져도 너무 멀어졌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주희의 이런 해석의 폐단이 조선조의 정신적 해이와 사회적 실패를 낳았다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558면)

한형조는 이를 두고서 “정말 달라도 너무 다른 체계가 아닌가? 어떻게 같은 책, 같은 글자를 두고 엇갈리다 못해 이렇게 서로 부딪히는 해석들이 존재할 수 있는가? 과연 누가 공자를 더 리얼하게 보여주고, 유학 정신에 더 가까이 가 있는가? 아니면 둘 다 기실은 서로 가까우며, 병존함에 아무런 해됨이 없는가?”(560면)라고 의문을 던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형조는 주희와 정약용의 『논어』 주석에 내재한 서로 다른 층위의 해석에 그 의미를 충분하게 부여하였다. 그 결과 “주자의 새로운 해석이 표준적 권위를 인정받았고, 다산의 주석은 고금의 주석을 종합, 비평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저작을 축으로 하면 『논어』의 해석을 대략 포괄한다고 나는 생각한다”(501~502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한형조의 학문이 주희, 정약용, 경학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대목이다

한편 이 책의 마지막에는 저자와 한평생 함께 학문을 연찬하고 삶을 나눈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진덕 명예교수의 장편 추모사(「한형조의 바다와 삶, 학문과 철학」)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처음부터 읽어나가기보다 가장 끝에 위치한 이 추모사를 먼저 읽기를 권유한다. 『두 개의 논어』라는 책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바다 사나이 한형조가 육지 속에서 어떻게 공부하고 살아가다가 스러져갔는지를 감동적으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