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오정주

오정주 吳貞炷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2001년생.

4wick8@gmail.com

 

 

 

애니메이션 오프닝에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는 엑스트라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둘이서 한몸인 채로

평일 자정의 오락실 안쪽은 텅 비어서 무슨 말을 하든 잔향(殘響)이 생겼다.

 

두더지 한마리를 잡았을 뿐인데

열마리는 죽은 것처럼 소리가 울렸다. 예상보다 형편없이 낮은 점수. 두더지잡기 세계 1위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두더지를 잡고 있겠지.

누군가 오락실 문을 열고 우리에게 물었다. 여기 사람이에요?

 

여기가 어딘데요?

 

네가 되묻자

 

누군가는 어깨를 으쓱하고 나가버렸다. 하지만 매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세계 1위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얼굴 잃어버리기 세계 1위……

불 끄고 샤워하기 세계 1위……

신분 증명 실패하기 세계 1위……

 

우리와 우리의 친구들은 전부 세계 1위였겠지. 한번만 더 하면 정말 뽑을 수 있을 것 같아 한번만 더 하면…… 천원만 더 쓰면……

 

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형을 뽑는 것에 골몰하고 있었다. 평일 자정

의 오락실 안쪽에서

 

매일 맞아 머리가 터진 두더지 한마리

유리상자 안에 와글와글 방치된 솜덩어리들

 

그거 언제까지 할 거야?

내가 물었을 때 너는 돌아보지 않았다. 다른 사람. 여기 사람인 것처럼. 신중하게 크레인을 조종하는 너의 뒷모습.

 

부럽다

너에게는 몸이 있잖아

 

그렇게 말하며 조이스틱을 놓지 않는

 

네가

 

아침에 일어나 거울 앞에 섰을 때 보게 될 미래의 얼굴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무한히 반사될 그 얼굴이라면

 

어떤 불한당이라도 미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다린다.

 

세계 1위가 될 때까지.

 

너에게

몸이 생길 때까지.

 

 

 

천사를 보내줘서 고마워*

 

 

교양 없는 계집애!

……라는 말을 듣고 청강을 신청했습니다

 

목요일 아침의 미술사 수업에서 케빈을 처음 만났어요

 

“백점의 지옥도 연작을 그린 말레이시아 화가 K는 모든 작품의 구석에 작은 천사를 숨겨두었습니다”

그러나 케빈은 천사라기보단 하얀 자벌레 같아요

 

돌아가는 길에는 여러번 삿대질을 당했습니다

 

지옥도는 지옥도로 남겨둬!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만

 

케빈은 언제나 하얗고 멀뚱멀뚱합니다

이 지옥을 손쓸 방법은 상상도 못하겠다는 양……

 

자주 화가 나는데도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내일도 해가 뜬다는 걸 믿기 어려웠습니다

매일 눈부신 아침을 맞으면서도

 

“헤드라이트가 너무 밝아서 너인 줄 몰랐어”

애인은 조수석에 타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운전석에 천사가 앉아 있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그는 멀뚱멀뚱

밤의 드라이브에 어울리는 클래식을 선곡할 뿐이고

 

그래도 네겐 교양이 있으니 다행이야

 

그러다 하마터면 사람을 칠 뻔하기도 하며

 

K의 지옥도에는

짝수가 없는 주사위

온몸의 털이 다 뽑힌 사람

전부 알기에는 너무 두꺼운 책

 

사는 게 참 어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의 강의계획에 케빈은 없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수업에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착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예의도 바르고 친절하구나

말해주었습니다

 

하나도 고맙지 않아 큰일이었지만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말라 죽어가는 지렁이 한마리

풀숲에 놓아주었습니다

 

이봐! 난 자살하는 중이었다고

……라고 소리치길래 울며 사과했습니다

 

 

 

섬에서 나고 자랐으니 섬에서 죽을 것

 

 

벽 너머에서 이웃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가정한다

세상의 모든 벽을 허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언제든 이웃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가 콸콸 쏟아져나온다면

 

어젯밤에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고

 

반대편 길로 가기 위해 이웃의 집을 통과해야 하는 섬처럼

이 가정은 드물고 무섭다

 

방문을 열어두지 않아 죽은 날에는

살아날 수 없어 열린 문만 상상했다

집과 집 사이, 자신의 무덤자리를 정해두었다는

이름 모를 남자의 얼굴을 지켜보면서

 

혀를

어디 두어야 하는지 자주 잊고

 

가정 속에서

그에게 말을 건다. 저기요

하면 남자는 대답한다. sí

 

우리

친구가 될까요?

 

당신의 삶을 모조리 들었거든요

 

남자는 벽을 뚫고 화면을 뚫고 가정을

뚫고 들어와 나의 뺨을 세게 후려친다

 

“네가 밟고 있는 그건

내 시체야”

 

발바닥에 힘을 주고 버텼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리얼

 

누군가 벽을 두드리며 조용히 좀 하라고 고함치지만

 

 

 

핼러윈

 

 

제목으로 모든 것을 예측하는 게임을 한다.

 

죽은 사람이 돌아왔다는 서술로 시작될 거야. 너무 이른 나이에 죽은 사람. 아니, 너무 많은 사람을 두고 죽은 사람일 거야. 오랫동안 썩지 않는 사람일 거야. 박물관에 전시된 미라처럼, 화석처럼. 이런 식의 가정은 쉽다. 영원히 말할 수 있다.

 

보고 나면 항상 다른 이야기. 네가 내 입에 단것을 넣어준다. 음…… 분명아는 맛인데. 오렌지인가? 아니면 사과? 아니, 둘 다 아니야. 가늠하는 동안 혀는 단맛에 무감해지고. 꼭 뼈를 입에 넣고 굴리는 것 같아. 서서히 녹는, 둥근 뼈.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안다. 뼈도 못 추리고

빼앗긴다. 모든 것을. 이마에 붙인 이름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라면 항상 실패한다. 너는 쉽게 알아버리지만, 어차피 모두 몸을 가진 자들. 구분하기 어렵다. 너는 컵을 입술에 가져다댄다. 이건…… 카모마일?

 

쿵쿵쿵.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밤새

 

얼음을 얼리고 차를 냉침했을 때. 너무 많은 뼈를 두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초의 악기는 동물뼈로 만든 호루라기라고 하는데. 그걸 불면 누가 찾아올지, 죽은 동물일지 그 동물의 천적일지. 고대의 사람들은 부는 소리만 듣고도 누구의 입술인지 알았을지. 안녕. 그게 뼈에 각인된 말이라는 걸 알았지. 소리가 빗나가는 순간

 

 

 

공회전이 끝났을 때

 

 

거대한 문의 손잡이를 잡고 밀며

돌아봤는데, 뒷사람은 너무 멀리 있었다

 

그냥 갈지 아니면 잡고 있을지

망설이다가

 

지난해 태어난 조카에 대해, 지지난해 죽은 나의 개에 대해

뻔한 상상도 했다

 

나의 개는 나의 개처럼 짖었고

물기도 했고

밥을 먹지 못해 시름시름 앓았다

 

어제는 먹던 것을 모두 게웠다

 

가끔 있는 그런 일

 

나는 한참 문을 잡고 있어야 했고

 

엊그제 유튜브로 보았던

좋은 이모가 되는 법 열가지,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칵테일 만드는 영상과 사랑에 대해서

 

어쩔 줄 몰라

울며 애원한 경험에 대해서

 

너무 긴 시간이 주어졌기에 어쩔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가 떨떠름하게 인사할 순간만을

 

기다리다가

 

사는 일에 대해서라면 할 말도 없고

 

그냥 지겨워 문을 놓았다 앞뒤로 흔들리는 문에 부딪혀 뒷사람은 죽었다

 

 

 

심사평

 

일정한 수준에 오른 응모작이 많아 긴장하며 심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복된 긴장감이었다. 누구나 시의 다양성을 이야기한다. 누구든 시의 새로움을 원한다. 다양성은 곧 새로움이란 말과 같게 취급된다. 다른 시는 곧 새로운 시이다. 새로운 시는 남과는 좀 다른 시여야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새로운 문법을 시도하는 시를 모아놓으면 묘하게 비슷한 구조와 분위기가 보였다. 개성있는 시를 꼽아놓고 천천히 다시 읽으면 어쩔 수 없는 투박함에 끝까지 손에 쥐기 망설여졌다. 시의 새로움은 결국 기성의 시인이 쌓아올린 성과의 꼭대기 근처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시의 개성은 많은 이가 찾는 정상과 다른 산줄기에서 그 깃발이 발견될 때가 많다. 많은 응모작에서 이토록 팽팽한 아이러니 속 분투를 엿볼 수 있었다.

응모작 중 「숙제를 하면 희박해지는 미래」 외 4편, 「계단은 가난한 자들의 고향」 외 4편, 「애니메이션 오프닝에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는 엑스 트라다」 외 4편을 두고 최종적인 논의에 임했다. 「숙제를 하면 희박해지는 미래」는 이미지의 흐름과 구성이 특히 표제작에서 돋보였다. 파편적인 진술이 만드는 메타적 상상력이 다음 시를 계속 읽고 싶게 했다. 다만 이러한 장점이 다른 4편에서는 감소하거나 희박해진다는 점이 아쉬웠다. 「계단은 가난한 자들의 고향」은 ‘가난’과 ‘사랑’이라는 근래 우리 시단에서 흐릿하게 대해왔던 시어와 주제를 과감하게 전면에 등장시킨 점이 도리어 새로웠다. 유연한 멜랑꼴리와 분명한 서사가 잘 어우러진 시였다. 다만 같은 유연함이 5편의 응모작에서 고루 보이지는 않았다. 요컨대, 작품성의 균형감이 최종 선정의 결정적 논거가 되었다.

「애니메이션 오프닝에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는 엑스트라다」는 기성시가 시도하는 새로움을 계승하고, 기성 시 바깥의 개성을 담지하는 작품이었다. 뜻밖의 흐름으로 읽는 이의 긴장을 유도하고, 눙치는 듯 구사하는 유머로 읽는 재미를 더하였다. ‘너’를 호명하는 식으로 거리를 유지하되 사적인 진술로 ‘나’의 이야기를 끌어내었다. 유려한 진술은 진중한 사유가 되었다. 이러한 시의 장점은 다른 4편에도 선명하게 유지되었다. 이에 심사위원은 「애니메이션 오프닝에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는 엑스트라다」 외 4편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수상자에게 축하와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이제 당신과 우리의 진짜 ‘두더지잡기’ 게임이 시작된 셈이다. 응모한 모든 예비 시인에게도 다정하고 강건한 문운이 따르길 바란다.

김소연 서효인 신해욱

 

 

당선소감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자꾸 늘어났습니다. 비밀이어서 말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말할 수 없어서 비밀이 되었어요. 나는 나를 설명 할 수도, 해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가끔 울었습니 다. 사는 일이 무섭고 낯설어 그랬던 것 같아요.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이 많은 사람들에게 각자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믿을 수 없다는 내 생각이 끔찍했습니다.

시를 쓰면서 그런 마음이 괜찮아졌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 소란한 마음을 달래는 것은 시가 아니라 생활이었습니다. 나에게는 사는 것이 중요했어요. 시는 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뜨거운 물로 씻을 때, 손톱을 깎고 쓰레기를 내다버릴 때,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피로한 얼굴을 볼 때 비로소 내 옆에 있어주었습니다. 자신도 왜 여기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요.

그런 시를 붙잡고 나의 몸과 마음을 더듬어왔습니다. 가늠할 수 없는 나를 가늠해보려고요. 말할 수 없는 것들의 윤곽을 써내려고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 알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곁에 있어준다면 좋겠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생활하며 잘 지내보고 싶어요. 몸과 마음과 시의 따뜻한 손을 잡고, 잘 살아보고 싶어요. 살고자 하면 살아진다는 연약한 믿음을 가지고요.

모여 있어도 저마다 혼자인 세상에서, 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붙어 앉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나의 환하고 또 어두운 친구들. 든든한 뒷배가 되어줘서 고마워. 나는 여기에 너희의 이해할 수 없는 친구로 남아 있을게. 쓰는 일과 사는 일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줌으로써, 결국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선생님들께도 고맙습니다. 쓰는 힘을 잃지 않겠습니다. 씩씩하게 나아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 나를 단단히 믿어준 덕분에 기어코 여기까지 쓸 수 있었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그리고 지겹게 서로를 지킵시다. 작은 거울 속에 숨어 있던 얼굴을 발견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기꺼이 이 게임의 스타트버튼을 눌러주셨으니, 이제는 움직여보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채린, 이제 너의 소감에 나의 이름이 쓰일 차례야.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아직도 내가 쓴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습니다.

무서워도 계속 쓰겠습니다.

부디 나를 위해 앵콜을 보내주세요.

오정주

 

 

오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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