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승혁 朴昇赫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2001년생.
len2011@naver.com
Drop the ‘B’
오빠가 죽었다. 두둥탁. 엄마가 소식을 전하던 때 방 안에선 붐뱁 비트의 한마디가 플레이되고 있었다. 할 말을 다 했는지 엄마는 등 돌리고 나갔다. 속으로 어림잡고 계산해봤다. 이제 오빠는 이십대였을 것이다. 레미에게 연락해 오늘 모임엔 나가지 못하겠다고 알렸다.
왜.
방금 나의 브로가 죽었대.
브로 누구.
브로는 나의 오빠야.
오빠가 있었니.
거기서 통화를 끊었다. 오빠는 없어진 지가 오래였다. 작업 중이던 비트가 루프를 먹은 채 쿵칫탓칫 되풀이됐다.
내게 형제가 있는 줄은 다들 잘 모른다. 나 자신도 잘 모른다. 오빠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집을 떠났다. 오빠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이기도 했다. 졸업식날 오빠는 폭탄을 터뜨릴 거라고 예고했다. 새벽에 익명으로 남긴 게시글은 경찰에 신고되었고 날이 밝는 대로 학교 정문이 폐쇄됐다. 졸업예정생들과 등교생들 그리고 교직원들이 폴리스라인 바깥에서 기다리는 동안 경찰들은 오빠의 폭탄을 찾기 위해 교내를 막무가내 수색했다. 나는 그 모든 광경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날 오빠가 제시간에 등교했던 것만은 기억한다. 그는 교문 밖으로 곤혹스레 내몰린 보통의 학생들 사이에 무람없이 섞여 자신이 빚어낸 헛소동을 번히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폭탄은 나오지 않았다. 폭탄은 없었지만 졸업식은 터졌다. 오빠 기수 졸업생들은 졸업식 없이 졸업했고 오빠는 졸업장보다 먼저 고소장을 받았다. 그가 졸업했는지 퇴학당했는지는 지금껏 알지 못한다.
오빠가 남긴 예고문은 게시판 규정 위반을 이유로 차단돼 원본이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은 아카이브 페이지와 복사본이 남아 있다. 새벽의 게시판 이용자들이 발 빠르게 스크린샷 이미지로 박제를 뜬 것이었다. 그것은 인터넷 이곳저곳에 오르내리고 퍼날라져 주기적인 떡밥이 됐다. 비슷한 허위 폭파 예고 사례들을 모으거나 정리하는 게시글 등에 그의 예고문이 끼어 있곤 했다. 그런 일은 꽤 많은 듯했다. 처음으로 가짜 폭탄을 던진 누군가가 있었고 뒤이어 모방하는 사람들이 복작복작 나타났다. 연쇄적이고도 폭발적으로. 오빠도 그 연쇄 폭발의 일부였다. 다들 폭탄은 아니어도 무언갈 터뜨리고 싶은 마음은 왕성히 가지고 있었다. 세상엔 정말로 폭탄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이런 식으로 터뜨리지는 않는 모양이다. 아무튼 진짜 폭탄이 터지는 일은 좀처럼 없다. 세상은 터뜨리고 싶다는 마음과 터뜨리겠다는 말만으로도 터져버리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지금껏 알지 못한다. 그땐 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오빠가 한 일에 대해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무언가 말해줬다고 하더라도 쓸모있는 소리는 아니었을 거다. 그런 일들의 이유를 속 시원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TV 토론회나 신문칼럼 같은 데에선 오빠 같은 사람들이 불만이라든가 불안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둥 설명했다. 적어도 오빠 자신은 기자나 경찰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그런 식으로 조리있는 대답은 대지 못했다.
그해 연말 우리 집은 오빠를 쫓아낸다. 나는 이해가 가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느낀다. 쫓겨나는 오빠는 현관 문간 앞에서 나에게 몰래 타이르듯 가르쳐준다.
쉽게 말해서, 내 머릿속에 다이너마이트가 들었거든. 나는 외계인에게 납치되어서 잔인하게 개조당하고 말았어. 지금 난 인간 폭탄이야. 뇌 바로 옆에 시한폭탄이 장치되어 있다고.
폭탄이 들었다는 곳은 머리일 텐데 오빠는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한다.
들리니?
오빠가 묻는 건 폭탄의 시침이 돌아가는 소리다. 나는 오빠의 이마를 뚫어져라 보면서 그 속의 소리를 분간해보려 애쓴다.
그는 내가 소리를 가려낼 새도 주지 않고 말을 마저 잇는다. 쿵쿵쿵쿵, 째깍째깍인가. 아무튼 이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몰라. 그래서 너랑 엄마랑 같이 살 수 없게 된 거야. 오빠는 이미 죽은 셈이라고 생각하렴. 그는 신을 신으며 구겨진 신발 혀를 당기다가 벽에 머리를 부딪힌다. 쿵, 그리고 씨발! 그것이 내게 기억된 최초의 욕이다. Kick & F-Bomb! 나는 그 찰나의 폭발이 오빠의 위태로운 머릿속 심지를 격발하고 그래서 우리 집을 모조리 날려버릴까봐 흠칫 뒷걸음질 친다. 신발을 다 신고 나서 오빠가 현관을 나선다. 그는 외계인에게 간다. 폭탄이 된 오빠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외계인을 찾아가 자폭으로 앙갚음해준다.
나는 오빠가 떠난 현관에 남아 오랫동안 초조하다. 어쩌면 내가 그를 따라가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어쩐지 나는 가만히 있다.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는 느낌, 소리 지르거나 달려나가야만 할 것 같은 느낌에 멍하게 시달린다. 하지만 나는 무고하게 기다린다. 그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다.
쿵쿵쿵쿵, 엄마가 노크로 재촉했다. 나갈 준비 하라고. 오빠를 인수하러 가야 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삼일 결석했다. 결석을 인정받으려면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병원 원무과에서 사망진단서를 내어줄 것이라고 담임이 설명했다. 오빠는 병원에서 죽지 않았는데요. 담임이 그럼? 하고 눈을 끔벅였다. 담임을 마주 보고 나도 그렇게 했다. 그의 어수선한 책상엔 내가 학기 초에 작성했던 가정환경조사서가 새삼스레 꺼내어져 있었다. 명단에서 엄마는 친밀도 ‘중’으로, 아빠는 동거 여부 ‘X’ 하는 식으로 표현되었고 오빠는 누락되었다. 담임이 흐음 한숨 쉬며 고개를 돌렸다. 종이 울렸다. 여태 교무실에 있던 늑장 기질 교사들이 부랴부랴 일어서서, 파티션 사이 좁은 통로에 선 내가 한발짝 비켜주었다. 담임은 일단 교실로 날 돌려보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쟀다. 우리 담임은 젊은 교사라서 어쩌면 이런 일을 처리해본 경험이 아직 없는지 몰랐다. 수업을 마치고 남아야 하는 것일지 헷갈렸지만 곧장 하교했다. 싸이퍼 모임이 있었다.
우리는 물 나올 일 없는 겨울 분수대를 밟고 둥글게 모였다. 원 가운데에 크루장이 스피커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이럴 때마다 그는 ‘드롭 더 비트’를 외면서 엄지와 검지로 만든 브이자 손을 낮게 내리찍는다. 농구공을 튕기듯이 또는 테이블에 카드를 늘어놓듯이. 그건 무슨 제스처냐고 물어본 적 있는데 실은 아무런 의미 없댔다. 습관이거나 장난이다. 나는 비트가 드롭되는 때마다 그의 손버릇을 자그맣게 따라 해본다. 비트가 시작된다. 레미가 첫째로 튀어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레미는 그날이나 전날 요사이 겪었던 일들을 재깍 가사로 삼았고 언제나 할 말이 있었다. 그가 랩하고 나면 그에게 어제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알게 된다. 최근에 랩 실력을 디스당했다고 한다. 어젯밤 늦게 귀가한 그는 불이 모두 꺼진 채 기척 없는 집에 들어서면서 한창 연습 중이던 플로우를 대수롭잖게 읊기 시작했다. 학교 축제 때에 공연할 자작 랩을 틈틈이 연습 중이었다. 동생이 방문 열고 나왔다. 있는 줄도 모르게 방 안에 조용히 박혀 있다가 별안간에 튀어나오더니 그거 뭐냐, 하고 물었다. 그거는 랩이었고 시끄럽게 했다면 미안한 일이라고, 레미는 그저 그렇게 대답했다. 동생은 레미가 쪽팔려할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는데 레미는 쪽팔리지 않았다. 그러나 동생은 그의 랩이 구리기 때문에 쪽팔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좋은 랩과 구린 랩 정도는 분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누나를 랩으로 바를 수 있다고 강짜 부렸다. 오케이, 레미는 그 프라이드를 리스펙트해본다. 자기를 바르고 스킬을 프루브할 수 있도록 가만히 리슨하겠다고 회유한다. 들어줄 테니 한번 해보라며 판을 내어주었다. 그러나 갑자기 랩을 시켜봤자 동생에겐 할 말이 없었다. 무반주라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떼쓰는 거잖아?” 결국 동생은 대답도 없이 방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 “걘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레미가 랩을 마칠 때까지 우리는 어, 어, 예, 예 하면서 건들거리거나 끄덕거렸다.
제 차례를 마친 사람은 마이크를 중앙에 되돌려놓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겨 다음 순서를 지목한다. 레미는 내게 마이크를 돌렸다. 난 준비된 말이 없었다.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사양하는 티를 냈다. 하지만 레미는 마이크를 물러주지 않았다. 레미가 손잡이를 꼬리질처럼 까닥댔다. 다들 슬금슬금 박자를 타면서 바람 잡았다. 이런 일은 거절한다고 거절되는 게 아니었다. 프리스타일이라 해도 모든 것이 프리할 순 없다. 난 마이크를 낚아채고 입으로 가져간다. “오빠가 죽었는데 랩해야 하나요? Give me a break.” 무의미한 손짓과 함께 준비되지 않았던 말들이 쏟아진다. 듣는 사람들도 놀라지만 그걸 말하고 있는 나 자신도 놀라 질색한다. 이런 걸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려 한다.
기본적으로, 여기선 어떤 말이든 해도 된다.
나는 오늘 스쳐 본 뉴스나 전 애인 같은 것들에 관해 횡설수설 멈블점블하다가 여덟마디만 잇고 말았다. 입에서 마이크를 내렸다. 짧게 마치자 레미가 내게 어깨를 부딪쳤다.
오빠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 아냐.
그것 때문에 프리스타일을 떠민 모양이었다. 오빠에 대해선 이미 레미가 조문을 왔던 날에 모두 털어놓았다. 오빠가 인간 폭탄이 되었다면서 집을 나간 이후론 전혀 만나지 못했다고 기억하는 대로 이야기했다. 레미는 오빠의 이야기가 엉터리라는 걸 알았다. 머릿속의 다이너마이트 같은 건 사실 ‘볼가박사’의 이야기라는 거였다. 볼가박사는 뭔데. 레미는 어느 오래된 만화영화의 클립 영상을 보여줬다. 장례식장 식당 한복판에서 나는 거북목을 만들어가며 그 화면을 들여다봤다.
앞을 보지 않고 걸어다니던 주인공 아이들이 커다란 무언가에 부딪힌다. 그건 볼가박사의 등이다. 친절한 볼가는 아이들의 잘못을 웃어넘긴다. 주인공 소년과 단역 볼가박사의 첫 만남이다. 볼가는 극에 등장한 지 얼마 안 되어 악당 외계인들에게 납치된다. 끌려갔던 볼가는 얼마 후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수상한 냄새를 맡은 주인공 소년은 볼가를 찾아가 어찌된 일인지 따져본다. 그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태엽 소리에 박사의 머릿속에 폭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지구를 지키는 주인공 소년은 인간 폭탄이 된 박사를 데리고 자신의 전투기에 오른다. 뭘 하는 겐가? 볼가박사가 묻는다. 소년은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만 볼가에겐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것을 이해시키기엔 폭발의 시한이 너무 촉박하다. 배후에선 외계인의 비행정이 쫓아오고 있다. 주인공 소년은 결단한다. 소년이 버튼을 누르자 폭격용 출구가 열린다. 그리고 인간 폭탄 볼가는 악당들에게 투하된다. 드롭 더 밤, 그리고 붐! 볼가는 죽고 주인공의 세계는 무사하다.
에피소드 전체가 한때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었댔다. 볼가의 난폭하고 두서없는 최후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충격과 얕은 웃음을 주어 컬트가 되었다. 모르느냐고 레미가 물었다. 난 몰랐고 모를 만했다. 해묵고 철지난 밈이었다. 오빠가 십대였을 시절에 유통되던 소재였다. 오빠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 형편에 맞게 변주해서 나에게 내리 들려준 거였다. 난 그게 오빠가 마음대로 지어낸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는 유행을 따랐을 뿐이었다.
레미는 다시 물었다. 머릿속의 다이너마이트 같은 이야기 말고 네 오빠는 정말로 어떤 사람이었던 거냐고 되물었다. 오빠는 이십대 남자였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얼굴도 알아볼 수 없는 낯선 친족들이 이따금 우리 자리로 와선 나를 위로하기 위해 오빠에 대해 몇마디 좋게 말해주고 갔는데 그것도 오빠를 잘 알고 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엄마는 분향실에 가능한 한 말없이 앉아 있었다.
마이크를 원의 중앙에 돌려놓았다. 내려놓은 마이크를 누군가가 대번에 이어받았다. 그는 무릎을 털면서 조심히 플로우를 고르다 번뜩 랩하기 시작했다. 자기 죽은 아버지를 회고하는 고백적인 가사였다. 듣자니 그의 아버지는 흔히 있는 나쁜 놈이지만 그렇더라도 오랜 시간 한 사람의 아버지였다는 식이다. 좋은 랩이었는데 날 보면서 하지만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눈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 숙여 바닥만 보고 있었더니 옆 사람이 내 등을 토닥였다. 다들 랩을 듣다가도 나한테 한번씩 시선을 돌렸다. 분위기가 점잖고 경건해진다. 간지럽고 소름이 끼친다. 이제 다들 자기가 아는 죽은 이에 대해 몇소절쯤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힙합 노랫말에 등장하는 사람이란 대체로 나쁜 놈들이다. 우리는 노래하는 동안 그들을 좋아한다. 그들이 죽었기 때문인 것 같다. 추모라는 것이 그렇다. 어쩌면 좋은 나쁜 자식은 죽은 나쁜 자식뿐이다. Good bastards are dead bastards.
마이크가 원을 한바퀴 돌 때까지 난 손과 목의 끄덕임으로 비트에 호응한다. 어. 어. 예. 예. 의미도 모르고 들인 버릇에 의존하고 만다.
오빠가 어쩌다 잘못되었니. 담임은 죽는단 말을 그렇게 둘러댔다. 잘못되다.
담임이 알아봤더니 병원이 아닌 곳에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의사의 사망선고가 필요하기 때문에 오빠를 인계받은 병원이 있었을 거라고 한다. 그곳에서 검안서를 재발급받으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난 오빠가 어디서 잘못된 것인지 모를 뿐만 아니라 잘못되고 나서 어디로 가게 됐는지 역시 알지 못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잘못된 오빠를 확인하러 경찰과 병원에 불려 갔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때 발급되었을 검안서가 엄마한테 몇부쯤 있을지 몰랐다. 담임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 나는 말렸다. 서류는 알아서 가져올 테니까 엄마한테는 말할 것 없다고 어차피 엄마도 오빠를 잘 모르거든요. 한숨을 내뱉은 담임은 자신이 한숨을 쉬었다는 걸 깨닫고는 공연히 웃음 지었다. 이제 가봐도 좋다. 나가려던 나를 학생부장 선생이 저기, 하고 불러 세웠다.
오빠가 죽었는데 노래할 수 있니. 맞은편 책상 가림막 위로 눈만 멀거니 내민 학생부장이랑 오랫동안 눈 마주쳤다. 그는 학교 축제 감독이었다. 공연 무대 신청서를 본 모양이었다. 못해야 하나요. 가림막 아래에서 굼뜨게 어어, 하고 입 벌어진 소리가 났다. 이미 공연에 쓸 비트를 만들고 있다고 대뜸 못을 박았다. 작업 중인 붐뱁 비트는 이전부터 만들던 거였지만 축제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해도 상관없었다. 비트가 뭐냐고 학생부장이 싱겁게 되물었다. 비트를 뭐라 설명해야 하나 싱거운 고민을 했다. 랩하는 동안 내 아래에 깔리는 것, 드롭되는 것, 되풀이되는 것, 쿵칫탓칫 하는 것. 폭발(boom-bap)일 수도 함정(trap)일 수도 있는 것, 잘못 고르면 자기 랩까지도 잘못되고 마는 것.
오빠가 죽었는데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비트가 있었더라면 방금 학생부장도 그런 유치한 펀치라인을 말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학교 축제에서 자작곡을 공연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크루원들에게 소식 전했다. 처음 메시지를 본 사람이 응원 이모티콘과 함께 질문했다. 네가 자작곡이 있었어?
없었다. 있더라도 남한테 공개한 적은 없었다.
작업 중이던 붐뱁 비트가 바탕화면에 그대로 있었다. 장례를 치르고 뒷일을 추스르는 동안에 손이 멈춰 있었다. 대체로 완성이었는데 적절한 소리를 찾지 못해 허하게 남겨진 빈 부분들이 있었다. 인트로가 드롭되는 순간에 들어갈 소리를 구해야 했다. 뚝 떨어지면서, 곧 도래할 첫마디 훅의 폭발을 예고하는 소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낙하하는 볼가박사가 자신의 폭발을 예감하며 내질렀던 비명을 떠올린다.
볼가박사를 검색해도 그가 등장한 에피소드의 원본 영상은 곧바로 찾기가 어려웠다. 그 에피소드를 소재 삼은 아마추어 편집 영상들이 잔뜩 제작되고 인기를 얻어, 검색엔진에서 정식 자료보다도 상단에 노출되고 있었다. 마니악한 농담을 위한 지저분한 편집본들이었다. 인터넷에선 그런 것들을 패러디라고 불렀다. 내용은 서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느 영상을 보더라도 일정한 모티프와 콘셉트가 반복됐다. 영상에서 주인공 소년은 대체로 살육을 즐기는 맑은 눈의 살인광으로 그려진다. 그의 동생은 대뜸 식칼을 휘두르며 그를 죽이려 달려든다. 그럴 때마다 동생은 “오빠는 나쁜 인간이야. 나쁜 인간은 죽여버리겠어!”라고 외치고 있다. 한편 동생은 악당 외계인들에게 자꾸만 납치당하기도 한다. 소년은 동생을 구하기 위해 자꾸만 외계인을 죽여야 하고 외계인을 죽이기 위해 자꾸만 인간 폭탄 볼가를 투하해야 한다. 그곳에서 볼가는 끝없이 낙하하고 폭발하고 죽었다. 폭격 장면은 거의 반드시 삽입되는 필수 요소였다. 폭발이 일어나야 할 필연이나 필요가 없더라도 볼가는 막무가내 폭발한다. 다들 그것을 클리셰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의 폭발엔 이유가 없다.
낙하 장면의 원본이 들어간 영상을 찾았다. 내려받아 음원으로 추출하고 비트의 도입부에 샘플링했다. 내리꽂히고 멀어지듯 고부라지는 2초간의 으어어어. 거칠고 앙상한 비명이 지나가고 울적한 피아노의 리드가 시작됐다. 그걸 들은 레미는 쿵, 쿵, 2비트로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다.
잘도 이런 미치광이 레코드를. 미쳤는지는 상관없었다. 그건 의도되고 예상된데다가 익숙하기까지 한 효과였다. 신경 쓰이는 건 그것이 비트를 이상하거나 잘못된 것으로 들리게 하는지였다. 레미는 먼 곳을 보고 말했다. 작업물에 잘못된 건 없다. 음악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으니까 일단은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다. 레미에게 의아한 건 그런 일을 왜 저질렀는지였다. 그가 마우스를 답삭 채가더니 볼가 드롭을 재생했다. 레미는 이게 나의 오빠에 관한 곡이 될 거라고 짐작했다. 똑 부러지게 정해둔 것은 없었다. 어쩌면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고 느낀다. 재생시켜둔 비트가 드롭을 지나 벌스로 넘어갔다. 레미는 드럼의 박자를 헤아리려 흐리한 말들을 이리저리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붐뱁의 드럼 패턴은 전형적이고 단순했다. 쿵칫탓칫은 들리는 대로 그저 쿵칫탓칫이었다. 나는 박자에 맞춰 목과 어깨를 끄덕거렸다. 오빠에 관해 랩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애써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미 모두 알았다. 레미도 실은 알 만큼은 알았는데 자기가 알 만큼 알았다는 걸 믿지 못할 뿐이었다. 미완성 비트는 금세 한바퀴를 돌아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볼가의 비명이 흘러나왔다. 레미가 곁눈질 보내며 넌지시 해명을 바랐다.
장난으로 그랬지. 레미는 납득하지 않았지만 그도 웃기는 웃었고 웃겼으면 된 것 아닌가.
오빠 자신의 조문객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나랑 엄마를 봐서 온 사람들이었다. 드물게 그의 고등학교 동창들이 문상을 왔다. 오빠의 폭발 예고로 졸업식을 치르지 못했던 사람들. 그들은 오빠에게 두번 절하고 오랫동안 밥을 먹었다. 그리고 불발된 졸업식을 회고하면서 오빠를 떠올려내려고 했다. 오빠를 최근까지 알고 지낸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부고 연락이 졸업 이래 수년 만의 소식이었을 것이다. 죽은 듯이 살다가 죽었으니 이럴 줄 알았다는 사람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사람도 있었다. 몰랐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차분해 보였고 알았다는 사람들도 어느정도는 놀랐던 기색이라 결국은 모두가 비슷한 정도로 느끼는 것 같았다. 그들 중에 한때의 카녜이 웨스트 닮은 머리스타일의 사람이 있었다. 금발로 염색한 삭발이었다. 언젠가는 진짜 폭탄을 가지고 진짜로 누군가를 해칠 거라고 생각했어. 카녜이 머리가 말했다. 누군가를 해치는 데에 진짜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 그는 아마도 술을 좀 마셨다. 옆에 있던 사람이 누굴, 하고 물었다. 카녜이는 글쎄 하면서 대답할 말을 고르다가 결국 대통령 이름이나 댔다. 그들이 맞은편 식탁에서 대화하는 동안 우리는 조용히 듣고 있었고 레미는 우리의 침묵을 들키지 않으려고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하려고 애썼다. 나는 도움이 필요한 기분이 아니었다.
동생을 너무 혼자 두는 거 아니야? 레미에겐 종종 통금이 있었다. 자신의 통금이 아닌 동생의 통금이었다. 부모가 들어오지 않는 날엔 그가 동생을 돌봤다. 내 적당한 걱정을 레미는 넉살스레 사양했다. 집에 누가 있건 없건 어차피 그애는 자기 방에만 박혀 있는댔다. 하루 정도 혼자더라도 걔는 신경 쓰지 않을걸. 레미는 되도록 오래 머물러주려는 눈치였다. 하지만 동생은 네가 올 줄 알고 있을 텐데. 레미가 날 말끄러미 쳐다봤다. 내 말을 들어준 건 좋은데 날 보지만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상을 치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내 눈을 들여다보곤 했다. 정작 내 얼굴에 볼 만한 것은 눈빛도 표정도 주름도 아무것도 없었다. 상대는 무언갈 눈치챘다고 생각하고 나는 속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별 뜻 없었는데 레미는 네 뜻이 그렇다면,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아마도 오해했다. 예상되는 오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생긴다. 레미, 너는 누나고 너의 동생은 동생이고 나의 오빠는 오빠지만 나는 동생이 아니야. 오빠가 있던 시간보다 더 길고 지속적인 시간을 오빠 없이 지냈다. 내가 누군가의 동생이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때와 장소를 가리느라 이런 말들을 하지 못했다.
레미를 배웅하러 따라 나갔다. 빈소를 지켜야 하는 것 아니야? 그래야 할지도 몰랐다. 어쩌면 나는 해야 하는 대로 하지 않았다. 레미는 내 기운을 관찰할 뿐이지 자기 기분을 관철하려 하진 않았다. 레미는 토 달지 않고 배웅받았다. 시간이 늦어 조문객을 맞아야 할 일도 어지간해선 없었다. 큰삼촌에게 나갔다 오겠다 말했다. 그는 대답 대신 빈소에 있는 엄마를 흘깃 살폈다. 엄마는 오빠의 향로와 향에서 피는 해쓱한 연기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나를 눈치채기엔 너무 넋이 없었다. 넋이 멀쩡하더라도 엄마는 날 나무랄 수 없었다.
발인은 언제니. 정류소의 전광판을 올려다보던 레미가 대뜸 물었다.
기억나지 않았다. 혹은 알았던 적이 아예 없었거나. 버스는 금방 와서 레미를 태우고 갔다. 나는 이어폰을 꺼내 랜덤으로 곡을 재생하며 식장으로 돌아갔다. 입구 옆 흡연구역의 벤치에서 카녜이 머리가 담배 피우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오빠에 의해 맞절을 나눈 사이라 서로 알아볼 수 있었다.
동생! 카녜이가 말을 붙여왔다. 음악 듣는 거예요?
네, 이게 제 진로라서. 그에게 걸어갔다.
뭘 하는데요?
랩이요.
그러자 카녜이가 아하, 했고 그의 아하,는 말끝이 낮게 떨어지는 오묘한 억양을 가졌다. 힙합 유행 지났잖아요. 그러고는 하하 웃었는데 그는 하하,든 아하,든 비슷한 뉘앙스로 표현했다.
나도 이어받듯 하하, 하고 웃었다. 유행이라서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카녜이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 겸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거듭 물었다. 그러면 왜 하느냐고.
왜냐고 물으면 알 수 없었다. 불만이 많고 불안해서? 나는 그가 비벼 끈 담배에 멀거니 시선을 팔다가 거기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고개를 들고 다시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근데 그쪽 머리 카녜이 닮았어요.
카녜이 머리는 그 카녜이? 하고 눈을 벌렁였다. 래퍼 카녜이요?
에이, 카녜이는 래퍼 아니죠.
그는 오오, 하고 냉소적으로 감탄했다. 진심으로요?
아니었다. 진심이 아니었는데 불현듯이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힙합 팬 중 어떤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말하곤 했으니까. 카녜이는 팝스타이지 래퍼는 아니라고 과장하고 스스로 모질어지길 즐기는 사람들. 카녜이 머리도 이런 말들의 감수성을 이해하는지 제법 웃었다. 어느 순간 맛이 가버렸고 맛이 간 행적으로 인하여 별안간 한물가고 몰락할 듯한, 심지어는 죽어버릴 듯한 불안한 래퍼의 이름을 가지고서 그와 난 한동안 농담을 나눴다.
나는 이런 농담도 알았다. 카녜이는 5집이나 6집까지만 발매하고 일찌감치 죽었으면 더욱 추앙받았을 것이다. 커리어깨나 쌓인 유명 가수들에겐 예사로 따라붙는 시망스러운 우스개였다. 포텐을 터뜨리고서 이삼십대에 죽은 가수들을 우리는 좋아한다.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카녜이 머리에게 그 농담을 꺼낼지 말지 오래 고민했다. 그것은 대체로 농담이었는데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오빠랑은 친하셨어요?
카녜이 머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서 한숨 쉬었다. 가슴속 가로막이 느슨해지며 저절로 날숨이 빠져나오듯이.
친하지 않아도 와야죠. 잘 몰라도 와야 하고.
친했던 척하고 알았던 척하기. 그게 죽은 사람에게 해야 하는 일이었다.
축제준비위원회에 완성된 비트를 넘겼다. 회장은 나에게 갑작스레 부탁한 것이 있었다. 다른 학생과 듀오로 합 맞추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랩으로 공연하려는 사람이 나 말고도 있는데 공연 일정이 빠듯하댔다. 합칠 수 있는 무대는 가능한 한 합쳐야 최대한 많은 이들이 공평하게 공연할 수 있댔다. 나랑 그 사람이 합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어떻게 아는 건지 궁금했다. 똑같이 랩하는 거잖아, 합치려면 합칠 수 있지. 회장은 주는 것도 없으면서 퉁치려 했다.
뒤늦게 끼어들어 온 래퍼는 1학년 후배였다. 점심시간에 그가 찾아왔다. 잘 웃고 또 욕을 잘하는 남학생이었다.
혹시 저 아세요?
아니.
저는 선배 본 적 있는데.
그는 첫인사를 그렇게 했다. 듣는 입장에서 딱히 돌려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듀오를 하고 말고는 그나 나나 서로 공연할 내용을 확인해보고 결정할 일이었다. 랩해봐. 우리는 사람이 없는 옥상층의 잠겨 있는 문간으로 올라갔다. 준비된 가사는 있는지 그에게 물었다. 가사요? 자기 가사를 쓰는 부류는 아닌 눈치였다. 그는 기성곡을 커버할 셈이었다. 그가 점찍어둔 곡을 스포티파이로 틀어주었다. 야심차게도 영어 가사의 외국 힙합이었다. 후배는 그걸 본토라고 불렀다. 얼핏 위협적인 외국어지만 내용은 단순해서 어련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남자들은 총으로 쏴 죽이고 여자들은 돈이면 다 된다는 이야기였다. 후배는 이걸로 공연 나갈 요량이었다. 물론 이 녀석은 총도 돈도 없다. 그런 식으로 누굴 죽여본 적도 누구와 섹스한 적도 없을 거였다. 나는 진짜로 이걸 할 생각이냐고 물어본다.
그는 나에게 왜 지랄이냐고 묻는다.
하기는 그건 이미 대중적으로 무사하게 소비되는 노래였고 그런 가사도 힙합에서 일상화된 기믹이었다. 깊이 생각할 것 없이 가볍게 들으면 그만이었다. 부르는 사람도 큰 생각이 있어서 그런 노랫말을 쓰는 건 아니었다. 선을 넘는 말장난들이 정말로 선을 넘는 일들로 이어질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왜 다큐로 받냐고요. 후배는 자기만 이런 식으로 꼬집혀서 곤혹스럽고 억울한 듯했다.
하지만 이것은 디스였다. 지랄이나 다큐가 아니라. 본토를 거들먹이면서 정작 디스 문화엔 익숙지 않은 모양이다.
방과후에 위원회실을 다시 찾아갔다. 그와는 듀오를 하지 않겠다 거부했다. 그게 안 된다면 아예 공연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회장은 회유하려 들었는데 난 흥정을 받지 않을 셈이었다. 학생부장이 회장을 워워 만류했다. 쟤 하겠단 대로 시켜주라면서, 꼬리가 처진 눈으로 내게 눈짓했다. 나는 요 며칠간 그 눈초리가 익숙하다. 쟤 지금 힘들다. 학생부장은 회장을 모호히 구슬리면서 날 돌려보냈다. 오빠에 관한 말들은 항상 모호하다. 이유는 그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가는 문을 공손히 닫기가 힘들다. 내가 나가고 나면 학생부장은 회장에게 좀더 구체적인 까닭을 밝혀줄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독무대를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공원 가운데에 누군가 빚어놓고 간 눈사람들을 지켜보며 싸이퍼 인원이 모이길 기다렸다. 발목 정도 높이의 눈사람 무리를 하굣길 초등학생들이 재미나게 부수고 있었다. 몸통만 한 머리들이 펑펑 흩어져 날아갔다. 완성된 비트 들어봤어. 레미는 까치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추위를 떨치려 까불었다. 사운드클라우드에 업로드한 작업물을 들어봤댔다. 그런데 붐뱁이라고? 레미는 의아해했다. 우리가 들어온 붐뱁 비트들과는 느낌이 다르다는 거였다. 붐뱁은 보통 단순하잖아. 우리에게 익숙한 붐뱁 비트의 칙칙한 정조에 비해 내 작업물은 꾸밈이 많고 시끄러웠다. 그 초과로 인해서 내 비트가 붐뱁일 수는 없는 것으로 결정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붐뱁은 일단 그거잖아, 붐, 뱁, 붐, 붐, 뱁, 드럼 소리를 흉내낸 의성어일 뿐이잖아. 그 이상의 정확하고 심오한 진상은 없었다. 붐뱁에 의미가 있어? 붐뱁에 의미는 없어. 그건 그저 드럼이 터지는 소리다. 쿵, 또는 붐 하고.
정말 그것뿐이야? 레미는 놀란 건지 못 믿는 건지 모를 반응을 했다.
드럼 패턴 외에 가사와 랩으로 붐뱁을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기도 했다. 나는 그런 식으론 구분할 줄 몰랐다. 그런 방식은 일종의 편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확대되고 재생산되는 방식, 그러니까 과장하고 되풀이하는 방식. 크루장이 도착했다. 먼저 와 있던 멤버들에게 인사하고는 분수대 중앙의 눈 무덤을 거둬내며 스피커 놓을 자리를 만들었다. 슬슬 원으로 모여 설 때였다.
축제가 언제니. 레미가 물었다. 네 공연 볼래.
안 돼. 나는 일단 안 된다고 대꾸했다.
왜! 레미가 신발 앞코로 장난스레 눈밭을 걷어찼다. 안 되는 데엔 이유가 필요했다.
올바른 이유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축제가 연기되거나 취소될 거라고 말한다. 학생회 SNS에 누군가가 익명 계정으로 테러 협박 멘션을 달았다고 이야기한다. 폭탄? 하고 되묻는 레미에게 폭탄, 하고 확인해준다. 세상엔 이런 일들이 너무 많다고 불평한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무성의하게 궁금해한다.
레미는 까치발을 내리고 내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는다. 나는 무슨 말이든 덧붙여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리고 아마 레미도 그렇다. 웃어야 해? 레미가 물어도 나는 확인해주지 않는다.
가만히 있는 우릴 분수대에서 불렀다. 우리는 달려나가 원에 끼어들었다. 난 오늘 있었던 불만을 기억나는 대로 뱉으려 했다. 주로 축제 준비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준비했던 말들을 거의 모두 잃어버린다.
첫마디부터 더럭 실수했다. “선생은 자꾸 보채네 오빠의 해부도.” 해부도가 아니라 검안서였다. 이번주까지는 떼어 오기로 되어 있었다.
오빠와 관련된 서류들을 장례식장에서 아직 보관하는 중이었다. 검안서 사본을 받을 수 있었다. 검안 내용은 읽기 어렵지 않았다. 오빠의 사인은 머리 손상이다. 사인의 원인은 낙상이다. 사인의 원인의 원인과 그 원인의 원인까지도 밝혀 적을 수 있는 서식이 마련되어 있지만 오빠의 경우 거기까지는 기재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경우 그렇게 생략한다. 또는 이미 너무 명백해서 그 이상으로 말할 필요가 없는 경우. 나는 교무실 문을 젖히고 담임에게 검안서를 가져다 내민다. 오빠가 어쩌다 잘못됐는진 몰라요. 저도 못 봤거든요.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오빠는 한낮에 옥상에서 떨어졌어요. 고의로. 사람은 머리가 가장 무거우니까. 추락하면 머리부터 떨어진대요. 그래서 머리가 터졌겠죠. 보지는 못했지만요.
나는 많은 말을 생각하고 있다. 그 말들을 하는 동안 엄지와 검지로 브이자 혹은 권총 모양을 만들어 내 머리를 찌르듯 가리킬 수도, 그런 제스처를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축제날 오후에 레미가 문자했다. 폭탄 정말 있어? 나는 암막 뒤에 서서 스피커가 내보내는 공격적인 중저음의 진동에 온몸을 어둡게 얻어맞으면서 기다렸다. 앞의 강단에선 디스가 서툰 후배가 사람 죽인단 이야기를 랩하고 있었다. 노래하는 동안 그에겐 죽이고 싶은 사람이 많았다. 관객들에게도 저마다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잔뜩 생겨났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내 가사를 되뇌었다. 오빠는 죽었다거나 오빠의 머리가 폭탄이 되어 터졌다거나 오빠가 자신의 졸업식을 터뜨려버렸다거나 하는 말들에 관해 고민했다. 그것들은 모두 비슷했고 서로를 우습게 만드는 방식으로 맞물려 있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떤 것도 결정적이지 않았다. 후배는 마지막인지도 모르게 마지막 훅을 마쳤다. 분주해 보이는 방송부 막내가 다음은 너라고 일깨웠다. 긴장할 것 없어요. 내가 뻣뻣이 있으니까 걱정하고 갔다. 무대 오르기 직전에 레미에게 답장했다. 정말이라고, 곧 터질지도 모른다고. 폰을 집어넣기 전에 레미의 답장을 볼 수 있었다. 레미는 웃었다. 문자에선 다들 할 말이 없으면 웃는다. 레미에게 쪽팔린다. 나에게 머릿속의 다이너마이트 이야기를 늘어놓던 오빠도 쪽팔렸을까? 나는 비식비식 터지려는 입가의 웃음을 손등으로 닦으며 무대 가운데로 나갔다.
시작할 구호를 정해야 했다. 드롭 더 비트, 드롭 더 볼가? 그것은 틀렸고 볼가(Volga)의 머리글자는 브이다. 나는 중지와 검지로 브이자 만든 손을 낮게 내리찍는다. 드롭 더 밤! 드롭 마이 브로. 그러면 볼가의 비명이 울리고, 그 모든 것이 익숙하고도 웃기게 떨어진다.
심사평
이번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문의 응모작은 총 502편이었으며, 예심을 거쳐 선정된 아홉편의 작품이 본심에서 논의되었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단편이라는 형식의 특성과 기법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개성적인 목소리를 내고자 분투하고 있었고, 목표와 방향은 각자 달라도 작품을 통해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했다. 「도시 두더지 전설」은 잘 짜인 구성이, 「구원로봇」은 음울한 분위기를 타협 없이 밀고 나아가는 기세가 인상적이었다. 「맛있고, 싼」은 사려 깊은 시선을 지닌 화자가, 「라쿤을 아십니까?」는 재기와 재치가 두드러졌고, 「정상으로부터」와 「곰의 영역」은 능숙하고 안정적인 진행이 눈에 띄었다.
심사위원들이 집중적으로 논의한 작품은 「할아버지 옮기기」 「한 줌」 「Drop the ‘B’」였다. 「할아버지 옮기기」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절’이라는 배경과 ‘냉’이라는 상징을 통해 색다르게 해석한 작품으로, 느긋하고 태평한 유머가 글의 활기를 더해주었다. 「한 줌」은 기술적으로 말끔한 솜씨를 보여주며 소설스터디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익숙한 가족서사에 세련된 깊이를 부여한 작품이었다.
「Drop the ‘B’」를 당선작으로 결정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이 부족한 게 아니라 이 작품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폭탄(bomb)은 못 터뜨려도 비트(beat)는 내리찍을 수 있다. 내리찍은 비트가 폭발하면 힙합이 시작되고, 그 순간 힙합이 유행이 지났는지 아닌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있지도 않았던 폭탄을 터뜨린 뒤 사라진 오빠를 기억하고 그와 연결되는 일은 그렇게 가능해진다. 생생한 언어가 날카로운 리듬을 타고 거침없이 흐르며 만들어내는 에너지에 심사위원들도 기꺼이 끌려들어갔다. 당선을 축하하고, 응모자들에게도 감사와 격려를 전한다.
김인숙 김희선 최민우
당선소감
나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을 때 울음이 나왔다. 이건 나다운 일인가 하고 묻게 된다. 나는 이 일을 내가 글쓰기를 허락받았다는 식으로 느끼고 있다. 계속 써도 되겠다. 그런 거라면 좋겠다. 허락받는 일은 어딘지 나 다운 것일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다운 게 무엇인가 하고 묻게 되지는 않는다. 나는 저제까지와 같이 이제부터도 나답지 않음을 겪으며 쓸 수 있을 것이다. 글 쓰는 동안 나는 내가 나답지 않다는 사실을 허락한다.
이번에 쓴 글을 미워했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글이 나의 마음대로 될 수 없다는 것, 마음이 그 자체로 글이 되진 못한다는 것, 글이 ‘마음 같지 않다’는 건 곤혹스러운 일이다. 내가 생산하는 것들 중 가장 마음의 형식을 닮은 산물은 아마도 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요리한 음식, 내가 꾸민 옷차림, 내가 남기는 사진, 내가 저지르고 어지른 잘못과 난장판, 나의 행동과 상황 같은 것들에 비해 나의 마음에 더 잘 조응한다. 그럴 줄로 기대된다.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에선 글은 어쩌면 마음보다 세계를 더 닮았다. 그러니까 내가 만든 잘못된 행동과 상황들, 난장판 같은 사진과 옷차림과 음식 등을 더 닮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것들을 미워했다. 내가 무언갈 미워한다는 건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라는 걸 안다. 자기가 쓰는 글이라고 해서 자기의 마음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항상 격려와 조언 베풀어주신 강지희 교수님, 류재향 교수님, 백수린 교수님, 임지은 교수님, 정한아 교수님, 나와 나의 글쓰기가 가장 못났던 시절을 바로잡아주신 배주하 선생님과 홍성표 선생님, 내가 쓴 것을 나보다 더 잘 믿어주는 서우와 민수와 나영, 연말 투고를 독려해준 지수 선배, 멀지만 오랫동안 글 쓰는 즐거움을 함께해준 필립형, 여러 이유로 이름을 부르기 민망한 여러 사람들, 글로는 적지 못할 말들을 견뎌주는 아빠, 자신과 너무 다른 자식을 견뎌주는 엄마, 나랑 가장 오랜 시간 친구 해줬던 미소! 기쁜 일로 감사 전할 수 있어 기쁩니다. 혼이 나는 것 같은 엄하고 쑥스러운 마음으로 상을 받습니다.
박승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