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민주주의의 위기마다 힘이 되어준 창비
▶ 대학 새내기 시절에 선배들이 추천해준 ‘필독서’ 목록에서 처음 만난『창작과비평』이 어느덧 60주년을 맞는다니 감회가 새롭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던 담론들도 많았지만, 『창비』를 읽어오며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더 넓어진 것을 느낀다. 특히 2010년대 중반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창비』로부터 큰 힘을 얻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16년 봄호(50주년 기념호)의 특집 ‘대전환, 어디서 시작할까’가 기억에 많이 남는데, 「수구의 ‘롤백 전략’과 시민사회의 ‘대전환’ 기획」(이남주), 「소수자 인권과 한국사회 시민권의 재구성」(백영경) 등의 글을 읽으며 혼란스러웠던 생각들이 정돈될 수 있었고, 한명의 시민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배울 수 있었다. 『창비』의 또다른 특징은 매호의 권두언이 한 계절을 정리하고 다음 계절을 전망하는 지표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2025년 겨울호 ‘책머리에’(황정아 「다시 만나야 할 세계」)는 ‘60주년을 맞는 『창비』의 새로운 다짐’처럼 읽었는데, 단순한 기념을 넘어 변혁적 지성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 점이 큰 울림을 주었다. 『창비』가 60년 동안 지켜온 실천적 지성과 현장성이 내게도 큰 영향을 미쳐 삶을 확장시켰다. 이론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하는 글들을 읽으며,나 또한 내가 선 자리에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수 있었던 것이다. 60년 전통의 귀한 자산이 이어지려면 새로운 세대를 위해 문턱을 많이 낮춰야 하리라는 점도 제안하고 싶다.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는 자칫 『창비』가 너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2025년 겨울호 대화(김내훈·이승원·이태호·황희두 「극우현상, 실체는 있는가」)에서 보여준 ‘세대간의 대화’처럼 MZ세대와 알파세대까지 아우르는 젊은 필진들을 적극 발굴해주기를 바란다. 미래세대가 『창비』를 통해 자신들의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모색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살아 있는 지성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
노용철
따라 읽는 보람이 있는 잡지
▶ 그간 『창작과비평』을 읽으면서 어려운 글은 일단 피하려 했던 성향이 많이 바뀌었다. 어려운 개념이나 문장들을 많이 접하면서 읽기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할까,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지 읽기의 차원이 아니라 어떤 사건에 대해 생각하는 시야도 넓어졌는데, 이전에는 한쪽으로 치우친 입장에 익숙했다면 지금은 여러 각도에서 접근해보는 사고능력이 좋아진 것 같아 읽는 보람을 느끼곤 한다. 지난 5년여간 좋게 읽은 글들은 무척 많지만, 그래도 ‘최애’는 산문란의 ‘내가 사는 곳’ 연재 (2022년 봄호~2024년 겨울호, 전12편)이다. 누군가의 ‘사는 곳’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역소멸 문제와 풀어가야 할 과제를 떠올리면서 읽곤 했다. 역시나 그처럼 생생한 글이어서인지 지난호의 현장 「대림동에서 안녕을 묻습니다」(한채민)도 흥미롭게 읽었다.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것은 누구인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해보게 됐다. 정치에 대해 관심이 많아도 뉴스를 통해 현상으로만 접하면서 한계를 느꼈는데, 『창비』를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더 깊이 알게 된다는 점이 좋다. 계간지에 실린 글들이 책으로 출간될 때의 반가움도 크다. 2020년부터 ‘클럽창비’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초기 활동이 더 재밌었다는 의견은 전하고 싶다. 계간지 읽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예쁘지만 불필요한 굿즈들이 늘어난 것 같아서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60주년 이후로도 클럽창비 활동을 해나가면서 『창비』와 함께하고 싶다.
김혜진
독자가 머물 수 있는 여백이 좀더 많아지기를
▶ 누군가는 거창한 계기로 『창작과비평』을 만났을 법도 하지만, 나는 SNS 피드를 넘기다 ‘클럽창비’ 콘텐츠를 우연히 마주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홍보영상 속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으며 ‘아, 이런 언어들이 모여 있는 곳이구나’ 싶어 독자가 되었다. 알고리즘이 만들어준 우연한 인연인 셈이다. 그 끌림의 방식 그대로 요란하지 않게 느리고 조용히 『창비』를 찾아 읽어왔다. 그간의 여러 글들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백수린의 장편연재 「온통 부드러운 흰빛」(2025년 가을호 및 겨울호)이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지만 나는 고양이 뒤를 쫓다가 이상한 나라에 간 적이 있다”(2025년 가을호 102면)는 첫 문장이 어떤 고백 같기도 하고, 기억과 환상이 뒤섞여도 이상하지 않은 세계로 초대받는 것만 같았다. 소설을 읽으며 부드러운 문장으로 현실을 살짝 비껴가는 방식을 배우고, 그러나 그 비껴감이 허무나 도피가 아닌 다른 진실로의 연결일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느꼈다. 지난 겨울호에 실린 김현의 시 「COOL25」도 기억에 남는다. “택시에 우산을 두고 내렸다 그럴 줄 알고 산 육천원짜리 비닐우산 너와 헤어질 줄은 몰랐지만”하는 문장이 갑작스러운 이별의 마음을 잘 표현한 것 같다. 매호 특집도 좋고 시대와 사회에 대한 굵직한 논의들도 좋지만, 이처럼 말해지지 않은 상상이나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의 영역까지 문학의 장으로 건져올려지는 순간에 『창비』에 더 마음을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 내 삶에서 『창비』는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잡지이다. 문장 하나하나에 발이 걸리고, 왜 내가 지금 이 문장에 사로잡혔을까 사유하게 되고, 쉬운 답보다는 오래 남는 질문들을 안게 된다. 그래서인지 한 계절을 다 읽고 난 뒤에도, 그 속의 사유들이 일상에 남아 다음 계절까지 함께한다. 60주년을 축하하며 한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렇듯 독자가 머무는 틈을 좀더 마련해주었으면 한다. 깊고 단단한 것도 좋지만, 숨을 고를 여백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면 어떨까. 그 안에서 기꺼이 더 오래 머무르고 싶다.
김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