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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ㅣ6·15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

 

양극화와 한반도경제

 

 

전병유 田炳裕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주요 저서로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정책과제』 『한국자본주의 발전모델의 역사와 위기』(공저) 등이 있음. bycheon@kli.re.kr

 

 

우리는 모두 날개가 하나뿐인 천사와 같다.

서로 부둥켜안지 않고는 하늘을 날 수 없다.

—Bennis and Biederman, Organizing Genius:

The Secrets of Creative Collaboration

 

 

1. 양극화와 국가발전모델

 

2006년 남한의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남한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제기했다. 그 며칠 전에는 북한의 국방위원장이 중국 시장개혁의 상징인 꽝져우(廣州)와 션젼(深圳)을 방문했다. 두 사건의 상관성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기란 그리 쉽지 않지만 양자가 꼭 분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양극화는 단순히 불평등의 확대문제가 아니라 한반도의 발전양식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양극화는 우리 사회 국가발전 모델의 문제이자 미래 비전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에서 북한은 매우 주요한 변수이다. 그럼에도 남한경제 2030 비전의 청사진에 한반도의 북쪽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양극화도 장래 한반도 민중의 삶의 양식을 규정할 국가발전모델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발전모델의 구상 속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양극화는 글로벌화에 따른 경제·산업구조의 고도화 또는 선진화 과정에서 개별 경제주체들의 대응능력 차이로 인해 나타난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도 글로벌화에 따라 진전된 것이기는 하나 나름의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국가발전전략의 부재로 인해 취약부문의 혁신역량을 높이는 데 자원이 과소배분됨으로써 발생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국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새로운 발전모델이 필요한 것이다.

남한사회의 양극화는 성장과 분배의 문제이다. 양극화는 성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분배만으로도 지속적으로 완화하기 어렵다. 성장만으로 분배를 해결했던 예외적인 동아시아의 실험은 끝났다.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장과 분배를 결합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야 하고 이것은 한반도의 북쪽까지 포함한 것이어야 한다.

 

 

2. 양극화의 현황과 특징, 원인

 

최근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거시경제, 산업, 기업, 노동, 지역, 소비, 의료, 주택, 심지어 문화 부문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전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전방위적 양극화 현상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을 불가능하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어렵사리 확보한 민주주의 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

삼성, LG등 제조업 수출대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세계적 차원에서 기업을 경영한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그리고 노동자·농민은 글로벌화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상장기업의 순익은 2000년에 10조이던 것이 2004년에는 49조로 증가했다. 그중 절반 이상을 10대기업이 가져가지만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약탈적 하도급 관행은 확대될 뿐이다. 이른바 글로벌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봉건성 강화의 역설이다. 약탈적 하청네트워크와 비정규직 남용으로 부가가치와 이익은 대기업으로 쏠려들어가거나 외국으로 유출된다. 생산성이 높은 영역은 국내 자원을 독점하면서도 생산성이 낮은 쪽으로 고용을 방출한다. 그 결과 성장은 고용을 보장하지 못하고 성장할수록 분배는 악화된다. 최근 우리 경제의 자화상이다. 우리나라 양극화의 핵심은 경제·산업구조의 양극화이다. 분배가 성장을 이끄는 메커니즘을 가져본 경험이 없는 남한경제에서 경제·산업구조의 양극화는 바로 성장과 분배 간 연계고리의 단절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양극화의 또다른 특징은 저성장하의 양극화라고 할 수 있다. 성장잠재력의 저하를 초래하는 요인들로는 자본의 한계효율 저하, 노동력 공급 확대의 한계, 인적자원 개발의 지체, 사회적 갈등의 심화 등이 있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새로운 발전모델의 부재 그리고 혁신에 기초한 새로운 성장원천의 부재를 들 수 있다. 발전모델과 성장원천의 부재가 투자 및 소비 침체를 유발하고, 이는 성장잠재력 및 고용창출 둔화라는 우리 경제의 무기력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CDMA이후로 국가전략적 투자기회가 소진되고 장기투자를 촉진하는 금융씨스템이 확립되지 못함에 따라 투자율이 떨어지고 실질고정자본 형성이 정체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 30%를 훨씬 넘던 투자율은 외환위기 이후 20% 중반 언저리에 걸쳐 있다. 카드채·주택대출 등 가계부채로 소비가 위축된 상태에서 고용불안, 노후불안, 교육비·주거비 부담, 근로빈곤층 증대 등으로 소비위축이 구조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잠재성장률이 4%대까지 떨어졌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고, 인구대비 취업자 비율을 나타내는 고용률도 2005년 현재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양극화 없는 성장이 가능하려면 중소기업과 지역의 혁신역량이 확충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 및 글로벌기업 들과의 연계를 통한 혁신역량 제고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고, 독자적인 혁신역량을 가진 혁신형 중소기업들이 창출될 수 있는 여건도 미흡하다. 다수의 중소기업들은 저기술·저부가가치 산업에 집중되어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한 채 한정된 시장에서 과당경쟁하고 자금난·기술난·인력난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면서 정부의 정책지원에 의지하여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지역의 경우에도 인적자원·물적자본·기술 등 자체적인 혁신역량 구축에 필요한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에서의 중소기업의 전반적인 혁신역량 약화는 이공계 기피현상, 청년층 실업문제, 제조업 인력난 등의 문제를 야기하여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경제·산업의 양극화는 고용구조의 양극화로 이어져 결국에는 사회적 양극화로 확산된다. 노동소득분배율은 외환위기 전 63%에 달하던 것이 이제는 60%대 이하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조직이나 제도·정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시장에 의해서만 삶의 질이 결정되는 이른바 사각지대의 빈곤계층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데, 이들은 글로벌화와 경기침체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1차적 사회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최저생계비 이하 인구 7% 중 2.9%만 지원하는 데 그치고 있고, 전국민의 25%가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이른바 신빈곤 문제는 개발연대(年代)의 고성장 속의 빈곤문제와는 그 형태와 성격이 다르다. 과거의 빈곤층이 일할 능력과 의지를 상실하여 성장기회에 동참할 수 없었던 퇴적된 빈곤층이라면, 최근의 빈곤층은 능력과 의지가 있는데도 성장에 동참할 기회를 박탈당한 계층이거나 동참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적정한 생활수준을 보장받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양극화는 현상적으로 선진화와 개방화의 추세에 대한 개별 경제주체들의 대응능력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 차이는 이미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특정부문에 자원을 집중한 전략의 결과이기도 하고, 취약부문으로 자원배분을 집중함으로써 전체적인 성과를 높이는 능력과 체제가 형성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양극화 경향은 글로벌경제의 심화와 더불어 모든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국가간 격차도 심화되어 최고소득국가와 최저소득국가 간의 소득격차는 1913년 11대 1에서 1973년 44대 1, 1992년 72대 1로 계속 확대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200인의 총재산이 하위 40% 소득계층의 수입을 웃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선진국들에서 90년대 중반 이후 소득불균형이 완화되거나 악화속도가 둔화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우리는 그 싯점부터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주요 소득분배지표인 노동소득분배율이나 학력별 임금격차 등을 보더라도 90년대 중반 이후 상황이 크게 악화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저성장하의 양극화뿐만 아니라 부문간 양극화(between polarization)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선진국들이 경험하는 양극화보다 더 어렵고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의미한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동일 업종이나 동일 규모의 기업 내에서 개인 능력 차이로 인한 부문내 양극화(within polarization) 경향이 강하다. 이 경우 양극화의 원인은 구조변화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대처능력 차이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교육훈련기회의 확대 같은 정책처방으로 대응이 가능하다. 반면 대기업—중소기업, 제조업—써비스업, 수도권—비수도권, 정규직—비정규직 등과 같이 부문간에 벌어지는 우리의 양극화는 좀더 구조적이고 씨스템적인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즉 우리의 양극화는 발전모델과 성장전략의 문제이다. 물론 이러한 구조적 차이가 경제주체의 개인적 차이의 원인으로 작용하여 학력별 격차 같은 부문내 격차의 확대로 나타나고, 노동의 세대간 이동이 제약되는 빈곤의 대물림 현상도 발생하지만, 우리나라 양극화는 그 주된 원인이 경제·사회적 구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여러 부문에서 잔존하는 박정희식 개발모델은 글로벌화에 따른 냉전체제의 해체, 급속한 기술변화, 중국의 부상 등 경제환경 변화에 따라 발전모델로서의 한계를 이미 노정하였다. 군부·관료·재벌이라는 산업화를 위한 강력한 주체와 권력·규제권·독점 등 강력한 인쎈티브 구조를 가진 개발모델은 고도성장·일자리창출이라는 성장전략으로 양극화를 어느정도 제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발모델은 노동 배제, 중소기업 및 지역 소외를 야기하는 대기업 중심의 배타적 모델로서 생산요소 투입을 위주로 한 성장모델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외환위기 후에도 성장은 생산성 향상보다는 자본투입 증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자본생산성은 지속적으로 하락했으며,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등으로 노동투입의 확대를 통한 성장에도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성장에 따라 분배효과가 늘어남으로써 개발모델의 정당성을 유지시켜주던 성장의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가 글로벌화에 따른 경제의 이중구조화 심화로 인해 상실되고 있다.

그러나 개발모델을 대체한 87년 이후의 민주화 개혁모델도 발전과 성장에 관한 뚜렷한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차세대 성장동력, 지역혁신씨스템, 과학기술입국 등 주요 국정과제도 국가발전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혁신주도형 성장전략과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모델을 제시하지만, 이를 현실의 정책으로 실현할 강력한 추진주체를 형성하고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87년체제’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발전모델 없이 정치개혁·경제정의의 아젠다만으로는 잠재성장률 하락, 고용 없는 성장, 좋은 일자리 파괴, 사회 양극화를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글로벌화의 심화는 냉전체제와 동시에 분단체제를 약화시켰고 분단체제에 끼워맞춰져 있던 국가발전모델의 한계도 드러냈다. 분단을 매개로 한 남북한의 강제적·명령적 동원체제가 더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 것이다. 분단체제하에서 국가주도의‘따라잡기(catch-up) 전략’을 각각의 방식대로 펼쳐온 남과 북은 모두 1990년대 들어 서로 다른 형태의 경제위기를 겪었다. 그 결과 남한경제는 글로벌경제로의 편입이 강화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고, 북한경제는 제한적으로나마 개혁·개방에 들어섰으나 국영기업 부문은 해체되고 비공식 부문은 확대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분단체제는 한국경제가 국민경제로 존재하는 데 매우 위협적인 교란요인으로 존재하고 그에 따른 기회비용도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양극화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해법은 대내적 산업연관 강화, 중소기업 혁신, 인적자본 육성, 사회안전망 확충 등이다. 그러나 양극화의 해법으로 한국경제의 여기저기를 이리저리 손질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좀더 넓은 틀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양극화는 발전전략의 문제인 동시에 성장과 분배의 새로운 결합의 문제이다. 기존 발전전략의 문제점이 분단체제하에서 남한경제의 한계로 인해 나타났다면, 양극화 문제도 남북을 아우르는 한반도의 발전전략 차원에서 대안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성장잠재력의 약화와 분배구조의 악화 문제를 한정된 국내 자원과 시장에 촛점을 맞춘 정책으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낙후부문의 혁신역량을 끌어올리는 국가전략이 필요하고 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재원확보가 요구되는데, 이를 국내 대기업과 정부의 재정지원에만 의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물론 남한만의 모델이라면 사회민주주의적 모델을 세련화해 한국 실정에 맞게 적용하는 데서 대안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위기와 기회의 요인인 북한이라는 변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남한만의 사회민주주의적 모델은 이념적으로 바람직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 북한이 위기요인으로 작용할 경우 남한의 사회민주주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구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경제주체들간의 새로운 사회계약을 통해 부문간 상생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듯이, 북한을 기회요인으로 만들어 남북간 경제관계에 상생의 네트워크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남한의 사회민주주의적 모델도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분단체제를 전제로 한 경제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체제를 국가발전전략으로 설계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도 글로벌화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체제, 양극화를 해결하면서도 고령화와 북한이라는 변수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성장과 분배의 새로운 결합을 지향하는 것이고, 양극화를 유발하지 않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것이다. 정보통신산업의 경우 성장동력을 확충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나 양극화를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분단체제를 뛰어넘는 상상력은 양극화를 유발하지 않는 성장동력의 발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3. 양극화와 한반도경제

 

글로벌화에 따른 양극화의 심화는 박현채(朴玄埰) 민족경제론의 문제제기를 새로운 맥락에서 검토할 필요를 제기한다. 양극화가 제기하는 문제가 민족경제론의 핵심주장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현채 민족경제론의 핵심은 자립적 민족경제와 경제사회적 민주화이다. 민족적 삶의 경제적 공간을 어떻게 확보하고 어떤 모습으로 꾸려가야 하는가 그리고 사회구성원간의 경제적 삶과 권리를 최소한 어떻게 균등하게 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가 민족경제론이 해결하고자 한 과제였다. 특히 민족경제론은 남한중심의 국민경제를 실패한 반쪽짜리 국민경제로 파악하여 한반도 전체 차원의 국민경제 형성을 추구했다.

최근 전개되는 양극화 현상인 국내산업간 연관관계의 약화, 산업과 고용의 이중구조화, 빈곤의 심화 등은 박현채가 60년대 이후 직면한 현실과 비슷한 양상이다. 87년 이후 정치적 민주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고는 하지만 경제사회적 민주화는 지지부진했고, 외환위기를 계기로 글로벌경제로 급격히 편입되면서 국민경제의 뒤틀림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양극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민족경제론적 관점을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경제하의 양극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경제씨스템 구축에서 국민국가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자립경제론적 관점으로는 한계가 있다. 민족경제론은 남북의 경제를 민족공동체 안에서 수렴하여 한반도 범위에서 자립적 경제를 확립하는 것을 추구했지만, 글로벌화의 전개와 중국의 급성장 등 동북아의 변화를 고려할 때 한반도 차원에 한정된 자립경제의 의미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산업간 연계가 강화된 국민경제의 틀도 이제는 한반도 차원이 아닌 좀더 넓은 동아시아 차원에서의 분업관계의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양극화 극복을 위한 한반도 차원의 발전전략은 민족경제론의 문제의식을 계승하면서도 한반도 단일경제권의 관점, 개방과 동아시아의 관점, 네크워크형의 전략적 투자 관점 등을 포함해야 한다.

우선, 양극화를 극복하는 대안적 발전모델에 한반도 단일경제권이라는 관점이 포함되어야 한다. 남한사회 양극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다. 글로벌시장으로 편입되면서 환경변화가 심해짐에 따라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높아졌다. 핵심영역은 이러한 위험과 불안정성, 불확실성을 소화할 역량이 있지만, 낙후부문은 이에 대해 아주 취약하다. 최근 남한경제에서 내수, 자영업, 영세써비스업이 위축된 데는 이러한 경제의 높은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글로벌화와 기술혁신에 따른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증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반도 차원의 단일한 시장 형성이 요구된다. 현재 남한의 경제규모는 싱가포르나 네덜란드 같은 유연한 강소국 모델도 적합하지 않고 인구 1억 이상의 일본, 중국, 미국 등 강대국 모델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글로벌 세계경제체제에 안정적으로 개입해들어가고 동북아경제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인구 1억 정도의 규모를 가진 한반도 단일경제권의 형성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시야를 한반도로 넓혀서 보면 한반도 남쪽의 양극화보다 남북간의 양극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남북간의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통일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남과 북은 서로 선순환하는 구조를 형성하지 못하면 서로에게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어 있다. 서로에게 플러스 아니면 서로에게 마이너스인 관계이다. 남한경제의 양극화와 남북간의 양극화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플러스가 되는 남북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남북간 단일경제권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 자체가 항상 플러스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간 단일경제권 형성의 긍정적 측면을 이해하기에 가장 쉬운 논리는 교역의 이익과 비교우위 전략이다. 남은 자본과 기술을, 북은 사업에 필요한 원자재 및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상호 실리를 보장할 수 있는 공평한 공동사업 관리방식을 택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의 대표적인 예가 개성공단으로, 남한의 자본과 기술을 북한의 노동력과 결합시킨 모델이다. 개성공단 프로젝트는 남한경제에서 제조업 공동화와 중소기업 및 한계기업의 위기로 인한 구조조정이 연착륙하도록 하고, 북한에도 산업기반시설 및 자본 확충을 통한 가동률 및 생산성 제고, 수출을 통한 외화수입 증대, 이를 통한 원자재 조달의 원활화 그리고 다시 공급능력 확충 등의 선순환구조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개성공단의 경제적 효과가 시행 9년차에는 남한경제에 연간 부가가치 24조 4천억원 창출, 일자리 10만 4천개 창출, 북한경제에는 연간 6억달러 수입과 72만 5천개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의 시장경제 학습효과, 남한산업의 경쟁력 강화, 한반도 긴장완화, 통일비용 절감 등의 외부효과도 기대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북한의 경제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북한의 GDP는 남한의 1/30〜1/50 수준으로, 잠재적 시장으로서의 매력이 거의 없는 소국경제일 뿐이다. 제조업이 붕괴되고 1차산업 비중이 오히려 커지는 역산업화현상으로 투자처로서의 매력도 떨어지고, 10여년에 걸친 극심한 식량난으로 정상적인 교육기회의 박탈과 직장 이탈에 따른 숙련 해체로 잠재적인 노동력 공급처로서의 가치도 제한적이다. 북한리스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결국 남북한 생산요소의 보완적 결합의 이익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남북의 경제력 격차는 경제협력 과정에서 상호보완적 이익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고, 남북의 산업구조 격차는 다른 형태의 격차를 유발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력 격차로 인해 한반도 단일경제권 형성에는 독일의 경우보다 훨씬 많은 경제안정화 비용이 들 수 있다. 북한의 낙후된 설비, 기술수준 등을 고려해도 남북한의 비교우위에 기초한 분업과 상호의존관계의 구축만으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한반도 단일경제권의 형성은 좀더 동태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국적 차원의 전략보다는 지방적·지역적 차원의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단일경제권은 북한내 주요 성장 및 협력의 거점을 구축한 이후에 북한내 거점간, 남북 산업 및 지역간 연계와 연계의 확산을 통한 경제공동체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한반도 단일경제권의 형성이 시대적 변화를 기회로 바꾸어 성장의 원천과 동력을 창출할 수 있으려면 글로벌화와 개방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와 동북아시아라는 지역적 차원의 사고가 필요하다. 글로벌화와 개방, 중국이 제공하는 성장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서 한반도경제권의 형성을 한반도에 국한시키지 않고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맥락에서 모색해야 한다. 예컨대 동북아 차원의 분업구조에 북한을 편입시켜 남북 경제협력사업과 동북아 경제협력사업 간의 상호보완성을 확대하고 상호연계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단일경제권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다.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낙후부문의 혁신역량을 끌어올리려면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 전략적 투자란 단기간에는 수익이 나지 않고 성장과 재정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으나, 치밀한 투자계획 및 인쎈티브 구조설계를 통해 외부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커다란 성과를 올리는 전략이다. 북한에 대한 투자도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남한의 낙후부문인 중소기업과 사회간접자본 및 써비스업 등에서 남과 북을 동시에 고려하는 전략적 투자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낙후부문은 혁신에 대한 수용역량이 떨어지기 때문에 치밀한 제도설계가 필요할 것이다. 북한의 경우도 농업 및 제조업 기반이 거의 와해된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혁신역량을 강화할 것인지 매우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전략적 투자에서 중요한 성공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매우 치밀한 제도설계 외에도, 앞에서 언급한 한반도 차원의 내수시장 형성, 동아시아지역의 시장 형성 및 확대, 개방에 따른 외국자본의 활용 기회 등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나진·선봉의 특구 사례는 동북아 차원의 주변시장에 대한 고려 없이 개발계획이 이루어져 실패한 경우로 볼 수 있다. 동북아 경제협력을 통해 창출된 수요를 북한 경제특구에 활용함으로써 남북한과 동북아 주변국가들이 공동의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북한특구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낙후부문의 혁신역량을 높이기 위해 과거와 같이 국가가 개입해서 자원을 집중 배분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존재한다. 예컨대 중소기업의 혁신역량은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강화하고 규모를 확대한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이 가지는 규모, 기술, 지식, 경영자원이나 시장의 한계를 기능의 상호보완 및 협력과 제휴라는 네트워크 방식으로 극복해야 한다. 경제주체들간에 네트워크를 형성해 서로 비교우위를 결합하거나 교환하도록 하고 이러한 네트워크의 형성을 촉진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국가가 담당하는 방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또한 네트워크가 국경을 초월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혁신역량은 이러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함으로써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네트워크형 발전전략은 중소기업뿐 아니라 북한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북한을 포함하여 동북아시아 차원에서 모색되는 에너지협력 네트워크, 교통물류 및 지역개발협력 네트워크, 환황해권 및 환동해권 개발협력 네트워크, 식량농업협력 네트워크 등은 이러한 시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성장정체와 양극화는 우리의 발전모델이 한계에 부닥쳤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성장의 원천을 발굴하고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막힌 곳을 뚫어야 우리 상상력의 한계를 넓혀나갈 수 있다. 이러한 상상력의 확장을 통해 새로운 성장의 원천을 확보하고 삶의 질과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남북의 분단체제는 이러한 상상력에 족쇄로 작용했다고 판단된다. 즉 남북한의 국가발전전략은 국내외의 영토적 경계화에 의해 상상력의 범위를 제한받아왔던 것이다. 한반도가 잘린 허리를 봉합하고 글로벌경제체제하에서 동북아시아의 교통과 소통의 교량이 될 때 한반도에 드리워진 양극화의 무거운 그림자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