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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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불능의 정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갑오년의 혼돈이 만만치 않다. 한여름을 갓 넘겼을 뿐인데 이미 희대미문의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다. 생명보전이라는 공동체 존립의 전제가 되는 가치가 철저히 짓밟힌 일만 해도 연초의 대학 신입생 환영행사 시설 붕괴부터 세월호참사, 군내의 가혹행위에 따른 총기사고와 자살, 엽기적 구타사망까지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세월호참사는 그 이전과 이후라는 시대구분이 필요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각별한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는 사건이었고, 실제로 대통령이 나서 ‘국가개조’를 다짐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현실은 국가개조는커녕, 그 첫걸음인 진상조사라는 문턱을 넘어서기도 힘겹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협상에서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하지 않으려는 정부·여당의 완강한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조사가 얼마나 철저하게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이미 7·30재보궐선거 직전부터 새누리당의 주요 당직자들이 세월호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하고 나선 것은 국가개조 운운이 국민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사탕발림에 불과했음을 자백한 게 아닌가. 그런 망언은 세월호 희생자 유족의 목숨을 건 단식에 대해 “죽을 각오로 해야 한다” “제대로 하면 병원에 실려갔어야 한다”는 한 여당 국회의원의 발언으로 이어졌다. 시민안전에 대한 감수성이 이 지경이라면 숱한 개선약속을 비웃으며 반복되는 군대 내부의 반인권적 관행이 단절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군대를 가야 하고 그 가족은 불안과 불면에 시달리는 상황이 우리 사회의 긴장감을 폭발 직전으로 상승시키고 있다.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사건 자체만이 아니다. 공동체의 존재이유에 회의감을 갖게 만드는 사태에 대한 정치의 불능도 한몫을 한다. 이명박정부의 역주행이 민주, 민생, 남북관계 등 국정 전반의 위기를 심화시킨 이후 변화와 혁신이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주요한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이명박정부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구태의 반복과 국정혼란을 겪고 있다. 그 결과 정치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 아니 변화를 위한 진지한 노력에 착수하리라는 믿음조차 갖기 어렵다. 사실 정치의 불능은 지구적 현상이기도 하다. 민간항공기의 피격,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포격, 에볼라바이러스 확산 등의 사태들도 문제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본지 여름호 머리말에서 지적한 ‘임계(臨)사고’의 위험은 고삐 풀린 자본축적 요구와 힘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권주의로 인해 세계 도처로 퍼져나간 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적 불능은 현상유지가 아니라 핵사고, 전쟁, 전염병의 확산 등 상상하기 힘든 재앙을 예비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일과(一過)적·우연적이 아니라 매우 징후적이며, 따라서 불능의 정치를 극복하고 변화를 위한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한반도와 지구촌의 시급한 과제이다.

다시 우리 사회로 눈을 돌리면 얼마 전 실시된 7·30재보궐선거는 정치적 불능을 재확인해주었다. 얼핏 보기에 세월호사건 진상규명을 갖가지 핑계를 대며 회피하려는 여당과 사건에 대한 책임을 밝히자는 야당 중 국민이 전자를 선택함으로써, 세월호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졌던 변화의 에너지가 일순간에 사라진 형국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불능이 결코 변화의 동력이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변화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촛불항쟁 이후 계기가 있을 때마다 솟아올랐다. 정치의 반복된 배신에도 굴하지 않고 그처럼 지속적으로 표출되어온 것이 차라리 놀랍다. 재보궐선거의 유권자 선택도 변화에 대한 거부라기보다는 불능의 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변화에 대한 갈구로 보아야 한다. 선거와 같은 시기(7.29~7.31)에 진행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3%가 세월호 진상조사회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하자는 데 찬성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태에 상당한 책임이 있음에도 난데없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라며 정치권으로 책임을 돌리는 대통령에게 국민이 얼마나 많은 것을 기대하겠는가? 재보궐선거 결과는 정부·여당의 변화 약속이 진정한 변화를 막기 위한 수단임을 알아차리고도, 국민이 원하는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는 야권에 채찍을 가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는 민심이 표출된 것이다. 처절하면서도 비극적인 선택이다.

문제는 야권과 민주개혁세력이 이러한 절박한 갈구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이다. 현재 모습으로는 야권이 2016년 총선에서 몰락을 피하기 어렵다. 자기혁신 없이 정부·여당의 실정에 의존하려는 태도로는 미래가 없다. 바로 그 점을 야당 정치인들도 직시하기 시작한 것이 일루의 희망인지 모른다. 그러나 2016년 총선으로 가는 과정에서 혁신에 대한 집합적 요구와 개인 및 계파 이익 사이의 충돌을 넘어설 힘이 만들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치권의 자성에다 외부로부터의 지속적 압박이 필요하며 국민이 또다시 큰 짐을 져야 하는 형국이다.

이 큰 짐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무엇보다 시대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이 진정한 변화의 길이 무엇인가를 궁구하고 이를 자신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작업에서 시작해야 한다. 지난 시기 변화에 대한 요구가 정치적 불능에 대한 효과적 처방이 되지 못한 데는 변화라는 수사(修辭)가 사적인 이익과 욕구에 오염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국민도 이러한 수사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변화를 거부하기 위한 변화의 수사,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변화의 수사, 현실과 유리된 변화의 수사를 그때그때 날카롭게 식별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변화의 길을 찾고 국민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에 우리는 변혁적 중도가 그러한 식별능력을 기르고 현재의 난국을 넘어설 길이라고 다시 주장한다.

 

예사롭지 않은 시기를 맞이해 이번 특집은 세월호와 군내 폭력 같은 비극적인 사고를 낳은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다각도로 진단하려는 취지로 구성했다. 먼저 김종엽은 ‘◯◯사회’로 표현되는 유행담론들의 성취와 한계를 짚는다. 그는 분단체제라는 시간지평을 시야에 끌어들일 때,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제약이나 구성원의 퇴영적 행태에 대한 묘사를 넘어 이러한 주객관적 문제와 이를 극복하려는 혁신의 동력 사이에 형성되는 역동적 관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엘리는 분단체제하에서 오랫동안 구조화된 군사주의가 신자유주의와 만나 단순한 폭력과 억압의 지배방식에서 벗어나 대중의 삶 속에서 자기이익과 부합하며 작동하는 신()군사주의로 진화했다고 진단한다. 정연우는 세월호사고 보도에서 드러난 한국언론의 문제점과 가능성을 동시에 포착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전형적 사례라고 할 여론마당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공영방송의 독립성 및 공정성 확보가 여전히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한다. 유정길은 기존 ‘운동권’의 사고방식이나 실천양식과 단절하고 사회 곳곳에 운동하는 삶의 문화가 뿌리내려야 변화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분노나 적대감, 우월의식이 아니라 행복, 비전, 희망 같은 긍정적 에너지를 운동의 동력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이어지는 대화와 논단과 현장도 이와 문제의식을 같이한다. 대화에서는 본지 편집자 박주용이 김성환, 박가분, 조세영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래의 세대담론이 대개 젊은층을 위로받아야 할 ‘아픈 청춘’으로 대상화했다면, 본 대화에서는 미래세대로서 망가진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꿀지 당당하게 주장하는 주체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이동걸의 글은 ‘관피아’가 사회문제로 부상한 상황에서 미봉책이 아닌 강력하고 실효성있는 관료개혁의 필요성과 그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다.

세편의 문학평론은 무거운 사회현안 위주로 가을호가 꾸려진 듯한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김성호의 평문은 여름호 문학특집의 황정아 글을 품평하면서 총체성 논의를 더 확장하는 한편 제임슨의 최근 리얼리즘론에 대한 비평적 검토를 통해 ‘존재 리얼리즘’이라는 필자 자신의 입론을 제시하고 그 대표적인 사례로 쿳시 소설을 거론한다. 그의 과감하고 흥미로운 입론이 향후 생산적인 토론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윤정임은 소설가, 철학자, 비평가, 극작가 등 다양한 면모의 싸르트르에게 소설이 무엇이었는가를 궁구하면서 그 특이한 지점을 세심하게 짚어내는데, 소설과 전기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종국에는 ‘진짜 소설’로서의 전기에 몰두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창비신인평론상 당선자 이은지의 글은 서사의 이기(利)와 그것의 극복으로서의 이타(利)라는 발상에서 출발하여 이기호의 근작 소설을 몰입하여 읽되 비평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흔치 않은 노력을 보여주었다.

 

이번호 창작란도 풍성하다. 열두분의 시인이 다채롭게 시란을 밝히는 가운데 창비신인시인상 수상자 손유미도 대열에 가세한다. 소설란에서는 신동엽문학상 수상작가 김미월의 장편연재 첫회와 권여선 윤성희 정용준의 매력적인 단편이 독자들을 찾아간다.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은 정영수의 첫걸음도 주목해주시기를 당부한다.

작가조명에서는 장편 『소년이 온다』를 출간한 한강을 동갑내기 소설가 김연수가 만난다. 공식적인 역사기록 속에서 화석화되었을지 모를 1980년 광주를 다시 불러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내기까지 창작과정의 고투와 보람이 진하게 느껴진다. 좌담 형식으로 이 계절의 화제작을 조명하는 문학초점에서는 문학평론가 백지연을 초대해 각 작품의 의미와 장단을 친절하게 때로 날카롭게 짚는다. 촌평과 문화평 및 교육시평도 분량은 적지만 본지를 맛깔나게 만드는 데 빠져서는 안되는 꼭지다.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해준 필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올해 만해문학상은 소설가 한강에게, 신동엽문학상은 시인 김성규와 소설가 최진영에게 돌아갔다. 뛰어난 작품으로 한국문학에 기여한 세분께 칭송과 축하를 보낸다. 독자들께서도 함께 성원하고 격려해주리라 믿는다. 아울러 창비신인문학상 각 부문 당선자에게도 기대의 눈길이 머물기를 부탁한다.

끝으로 본지 편집위원진의 작은 변화를 알려드린다. 2006년부터 상임위원으로 활동해온 이장욱이 비상임위원으로, 진은영이 상임위원으로 자리를 교대한다.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하며 앞으로 더욱 정진하자고 다짐한다. 말뿐이 아니라 실천이 따르는, 남들의 변화를 요구하기에 앞서 자기혁신을 실천하는 태도로 자신의 현장을 바꿔나갈 때 시대변화를 이룰 수 있다. 본지도 이러한 자세로 매진하겠다는 각오를 다시 다진다. 더위가 가시고 가을이 오지만 어려운 시절이 이어지는 지금, 창비가 진정한 변화를 이룩하는 데 작으나마 힘이 되기 바란다.

 

李南周

이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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