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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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K담론의 성취와 미래

 

분단체제의 정치와 K민주주의

 

 

이남주 李南周

정치학자, 성공회대 교수.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저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공저서 『21세기의 한반도 구상』 『동아시아의 지역질서』 『백년의 변혁』, 편서 『이중과제론』 등이 있음.

lee87@skhu.ac.kr

 

 

1. 왜 K민주주의인가

 

정치에서의 핵심문제는 ‘민주주의’이며 한국의 현대정치도 민주주의를 화두로 두고 변화해왔다. 민주주의의 의미를 둘러싼 논쟁은 역사가 길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냉전체제 해체 이후에는 서구식 대의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로서 그 지위를 확고히 했다. 프랜씨스 후꾸야마(Francis Fukuyama)의 ‘역사종언론’에서 그러한 변화가 상징적으로 확인되는바, 그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인류의 이념적 진화의 종착점이자 통치의 최종적 형식으로 보편화되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보며, 더 나은 체제로 나아가는 역사의 과정이 마무리되었다고 주장했다. 후꾸야마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인데, 여기서 민주주의는 인민(people)이 비밀선거에 기초한 주기적인 다당제 선거를 통해 자신의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통치 모델, 즉 대의민주주의를 의미한다.1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논의도 기본적으로는 한국에 어떻게 대의민주주의 모델을 적용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이러한 접근법에서는 한국의 정치가 ‘선진’ 모델에 비해 항상 낙후된 것으로 비춰졌고, 그 인식은 최근까지도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한국정치의 낙후적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해도 한국의 정치변화를 서구의 선진적 모델을 수용하는 과정으로만 설명한다면 우리 안의 역동성을 포착하기 어려울뿐더러 그 의미를 실답게 평가할 수도 없다. 한국이 민주화과정에서 서구 모델의 수용에 그치지 않고 그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과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방향성을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만들어왔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민주화 흐름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성과는 민(民)이 지속적으로 주체로서 출현했다는 점이다. 동학혁명부터 3·1운동까지, 4·19혁명부터 1987년 민주화운동까지, 그리고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진전시키는 과정이 이처럼 오래 지속되고 또 그 전과정에 민이 계속해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한 것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힘이 어떻게 가능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사상자원이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 K민주주의 논의에서 규명해야 할 핵심적 사안이다. 나아가 한국정치가 지금까지와 같은 변화의 경로를 걷게 만든 가장 근본적 요인이 분단체제이고,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동력도 분단체제에 기반한 정치동학 속에서 형성되어왔다. 따라서 K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분단체제에 대한 인식을 경유해야 한다.

 

 

2. 분단체제의 정치동학과 변혁적 중도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가 시작되기 이전까지 한국정치는 흔히 비민주적 정치체제인 귄위주의체제로 설명되었다. 권위주의체제는 사회적 요구가 제도정치를 통해 대표되는 것을 제약하며 노동자 등 주요 사회세력을 정치에서 배제했다. 그 결과 다양한 사회적 요구는 제도정치 밖에서 표출되어야 했고, 재야 및 운동권으로 불리는 제도 바깥의 정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같은 권위주의체제는 한국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 널리 출현했는데, 경제발전단계와 마찬가지로 정치의 저발전 상태로 간주되었다. 이에 따라 학계 및 담론계에서도 정치의 저발전을 초래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이를 해결할 전략들을 제시했다. 한국의 경우 분단이라는 특수상황이 권위주의체제를 성립·지속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 중 하나로 설명되었지만, 민주화가 추진됨에 따라 분단의 정치적 규정력도 결정적으로 약화될 것이라 보는 시각이 더 많았다. 분단을 체제로서 인식하지 않고, 정치제도의 변화에 따라 그 영향력이 크게 달라지는 외생 변수로 취급한 결과이다.

6월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화가 시작되자, 제도정치 내의 개혁을 통해 정치의 권위주의적 속성을 약화시키고 민주주의를 더욱 진전시키는 일이 주요한 과제로 제시되었다. 이에 서구의 ‘성숙한’ 대의정치 모델이 적극적으로 참조된바, 서로 다른 이념과 사회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당들이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경쟁을 거쳐 국가 단위의 집합적 의사의 결정 및 실행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단체제의 정치적 규정력을 간과하고 서구의 정치 모델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하려는 접근에서는 한국정치의 동학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분단체제는 예외상태를 상례로 만드는 정치 메커니즘을 끊임없이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서구 민주주의 내에 긴급사태 혹은 비상사태와 같이 법적·제도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 법률의 효력을 정지시켜야 하는 아포리아(난제)가 내재하며, 오늘날에는 이러한 예외상태가 점차 예외적인 조치를 넘어 통치술로 등장할뿐더러 “법질서를 구성하는 패러다임으로서의 본성”까지 드러내고 있다고 보았다.2 자유민주주의적 질서 내에서 끊임없이 예외상태가 호출되었던 사태들을 고려하면 그가 근대 민주주의의 본질적 측면 중 하나를 날카롭게 포착했다는 점을 수긍할 수 있으며, 분단체제는 이러한 설명이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는 역사적 상황이다.3

예외상태에 의존하는 분단체제 기득권은 민주적 거버넌스를 실현하려는 과정을 ‘분단체제 통치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새로운 예외상태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그 위협을 소멸시키고자 했다. 우리가 목도한 이명박정부 시기 천안함사건에 대한 대응, 박근혜정부 시기 수구의 ‘롤백’ 전략과 점진 쿠데타 시도, 그리고 윤석열의 분단체제 재공고화와 내란 시도 등이 이같은 분단체제 정치동학의 주요한 구성요소였다.4 특히 12·3 계엄 선포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북측에 무인기를 침투시켜 군사적 대응을 유도하려 한 행태가 최근의 단적인 사례다. 따라서 한국에서 더 나은 민주주의에 대한 모색은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변혁적 목표와 연계되어 진행되어야 한다.

변혁적 목표를 갖지 않는 개혁세력은 그간 분단체제 기득권세력의 반격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분단체제 극복과 연결되지 않은 ‘보수-진보’ 프레임으로 한국 정치지형을 재편하려는 시도도 문제였는데, 분단체제 극복에 기여할 만한 정치적 동력까지 ‘진보’에서 배제시키는 비현실적인 정치노선은 오히려 자신을 주변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유방법으로서 제시된 것이 ‘변혁적 중도’이다. 이는 분단체제의 실상과 동떨어져 단순논리로 분열되어 있는 여러 세력이 분단체제 ‘변혁’의 목표 아래 새롭게 힘을 합쳐 참된 ‘중도’를 찾아야 한다는 요청이다.5 즉 다양한 지향의 정치세력이 협력해 분단체제 기득권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고 진보적 실천의 공간을 넓혀가는 것을 핵심적 과제로 제시한다. 실제로 민의 에너지는 수구기득권의 반동적 행태를 제압해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고 분단체제 극복의 지평을 열어가는 방향으로 모여왔고, 촛불혁명이 그 노력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윤석열의 내란 기도를 좌절시키는 데 있어 민주당을 중심으로 제도정치권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큰 변화인데, 이 역시 촛불혁명의 효과이자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음을 말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변혁적 중도는 회고적 기획이 아니라 한반도 차원에서나 글로벌 차원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전망적 기획이다. 분단이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역사적 과정이 남긴 유산인 탓에 분단체제 극복도 지금까지 완수하지 못한 지체된 과제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분단체제는 단순히 통일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분단과 달리 구체적인 역사 국면을 가리킨다. 분단체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한반도에서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남과 북에서 기득권의 통치성을 재생산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분단체제 극복 역시 남과 북이 하나의 국가로서 통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지구적 차원에서 더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요인들을 극복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다는 점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촛불혁명은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고 K민주주의에 대한 사유를 촉발하는 사건이다.6 이러한 맥락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글로벌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이고, 분단체제하에서 길을 개척해온 K민주주의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3.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기

 

최근 글로벌 차원에서 민주주의 문제, 특히 그 퇴조가 중대한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확산과 퇴조는 과거에도 주기적으로 나타났지만 이전에는 주로 개발도상국에서의 문제로 논의되었다면, 지금은 성숙한 대의민주주의를 운영한다고 알려진 국가에서도 민주주의의 퇴조가 드러나는 중이다. 이는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매우 의미가 큰 변화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청하는 사태이다.

우선 민주주의의 본래 의미를 점검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오랫동안 민주주의는 그 본래의 의미에 괄호를 쳐둔 채 논의되어왔고, 그것이 현재 민주주의의 곤경을 초래한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그리스어 데모크라티아(demokratia)에서 유래한 민주주의(democracy)는 ‘데모스(demos, 민民)의 통치’를 의미하는데, 그동안의 논의는 민의 통치가 지닌 의미를 사실상 무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7 알다시피 그 개념이 등장한 이래로 오랜 기간 동안 민주주의는 바람직한 통치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위험한 통치 형태로 간주되었다. 규범적 정당성을 얻게 된 현대에 이르러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 대신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이 민주주의의 의미를 변용하는 주요 근거로 활용되었다. 현대국가에서 민의 통치를 실현시킬 방법이 없고, 민이 국가통치에 필요한 자원(시간, 정보, 지식 등)을 갖추기도 어렵다는 주장들이 대두한 것이다. 그 결과, 민의 통치는 이상에 불과하며 민을 ‘대의’하는 사람들에 의한 통치만이 실현 가능하다는 인식이 민주주의 논의를 지배하게 되었다.8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의 해소가 아니라 대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라는 새로운 문제를 출현시켰지만, 서구에서의 대의민주주의 정착은 그 질문이 논의의 장에 진입하는 것을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봉쇄했고, 민의 통치 불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로서 대의민주주의의 지위는 점점 강화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에 의해 전유되면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는 더욱 뚜렷해졌다. 후꾸야마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가 친화적이라고 주장했지만, 개인주의를 기초로 하는 자유주의와 다수의 지배를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는 본래 상충하는 정치이념이다. 전통적으로도 민주주의에 대한 공포는 상당부분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억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 기인했다. 대의민주주의는 민의 통치 불가능성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로서만 발전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자유주의와 결합시키는 기획으로 실현되었기에 민주주의에 한계를 긋는 방식이기도 했다.9 결국 대의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보편적 규범으로 수용되는 데 기여했지만 역설적으로 오늘날 민주주의가 그 본래의 의미에서 멀어질 한계를 노정했는데, ‘대의’는 필연적으로 민의 의지를 여과하는 과정을 동반하기에 이 과정을 통제하는 엘리트의 통치로도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했다. 이에 더해 자유주의적 원리는 민의 통치를 제약하는 더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민주주의에 기입했으니 이른바 ‘법의 지배’가 그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법은 소수 엘리트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장치로 전락하게 된다.

지금 서구사회가 봉착한 민주주의의 위기와 전망의 부재는 이러한 문제를 잘 드러낸다. 그런데 이를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의 계기로 삼기보다 외부적 요인에 의한 위기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우세하다. 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는 물론 중요한 사안이지만, 민주주의 문제를 떠나 민 혹은 민생의 문제를 논하는 노력에는 한계가 있고 부족한 처방으로 이어질 공산도 크다. 지금은 대의민주주의하에서 왜 불평등이 심화되었는가, 나아가 지금의 대의민주주의가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은 아닌가 하는 질문이 더 중요하게 논해져야 한다.

사태가 이에 이르러서는 한동안 서구에서 대의민주주의 모델이 비교적 잘 작동한 데에는 특수한 상황적 요인이 작용한 것 아닌가 하는 차원의 물음도 제기해봄직하다. 대의민주주의는 역사적 제도로서, 역사적 상황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고 변화된 것이었다. 대의민주주의는 그 발생 때부터 ‘배제’에 기초하고 있었고, 선거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대의민주주의가 자리잡은 지는 백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과정이 유럽의 제국주의적 팽창기와 맞물린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내적 연관이 있는 것일까?

상대적으로 영토적 제국주의가 약했던 미국도 대의민주주의의 발전은 팽창주의 정책과 함께 진행되었는데, 양자 사이의 연관관계를 주목한 사람 중 하나가 셸던 월린(Sheldon Wolin)이다. 그는 미국이 건국 이후 “정치 참여를 경제적 기회와 자립으로, 평등을 경쟁으로 대체했다”며 “매우 짧은 기간 동안 팽창은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리적 팽창은 (그것이 중앙 집중화하는 기술의 지원을 받거나, 일국적 시장이라는 틀 내로 통합되거나, 중앙정부에 종속되지 않는 한) 지역의 민주적 자기-통치가 실현될 공간을 제공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미국은 지금까지 계속 이러한 ‘개척’적 태도를 견지해왔는데, 그같은 팽창은 그 대상이 되었던 이들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주었을 뿐 아니라 지금은 미국 내에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전도된 전체주의’가 출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진단했다.10 ‘성숙한’ 혹은 비교적 포괄적인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가능했던 것이 무엇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의 기득권적 위치를 통해 자국에 경제적 이익 및 새로운 정치적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다수 국민을 순치시킬 수 있었던 상황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들 국가의 국민 또한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엘리트가 ‘대의’하도록 하는 체제에 대체로 만족할 수 있었던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는 추측은 근거가 없지 않다. 이러한 분석은 민주주의를 국가 단위 넘어 세계체제 속에서 사유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제국적 팽창의 과실을 누려온 유럽과 미국에서 권력과 부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실천방식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엘리트 통치가 심화되자, 그에 대한 불만이 폭력적이고 일탈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대의민주주의가 이처럼 제국적 팽창과 함께 진행된 현상이라면, 그러한 팽창이 어려워진 지금 대의민주주의가 직면할 문제는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러한 문제제기가 민주주의의 성취를 무시하고 역사를 거꾸로 돌리자는 식의 주장으로 이어질 이유는 없다. 대의민주주의는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형성된 제도인 동시에, 그 민주적 성격을 강화하려는 민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선거권 확대를 위한 운동, 노동권 운동 등 민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움직임과 노력이 없었다면 서구에서 대의민주주의라고 할 만한 제도가 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그 성과는 유지해 마땅하되 대의민주주의의 엘리트 통치적 성격을 극복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모색하는 일이 긴요하다. 이러한 지평을 여는 데 기여할 때K, 민주주의에 대한 사유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4. 촛불혁명과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

 

대의민주주의에 비판적 개입이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시도는 대체로 현대 민주주의 내에 존재하는 배제를 극복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대의민주주의 제도는 민의 의지가 결집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요소를 내포하거니와 정치적 행위 역시 권리를 갖는 국민과 갖지 못하는 비국민의 구별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더 나은 민주주의에 대한 모색은 민이 그간 배제되어온 영역을 포괄해가며 스스로를 정치의 실질적 주체로 만들어가는 지속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11 다만 이를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는 다른 차원이다. 제도에 의해 포괄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제도는 항상 어떤 경계를 설정하고 이는 또다른 배제의 원리와 장치를 작동시키는 기반이 된다. 그렇다고 제도를 부정하자면 행위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고, 권리의 보장 역시 유동적 상황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비판적 논의를 넘어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구성적 힘을 만들기 어렵다.

진태원은 이와 관련해 에띠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의 논의를 참조점으로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발리바르의 민주주의 이론은 민주주의의 봉기적 성격(또는 해방의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의 구성적 성격(또는 절차와 제도로서 민주주의)을 중시하는 강점이 있다. 진태원은 제도 안에서의 노력과 제도 바깥에서의 노력을 통해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제시한 발리바르의 주장이 민주주의 담론장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고 평가한다.12 한편, 앞에서 언급한 월린은 ‘탈주적(fugitive) 민주주의’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했다. 그는 민의 정치는 간헐적이고 탈주적일 수밖에 없지만, 민주주의의 생존과 번영은 스스로를 민으로 만들어가면서 그 자신의 행동을 통해 민으로 존재하는 이들에게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13

이러한 논의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확대시키지만, 지금 더 주목할 부분은 그 가능성이 한국의 민주주의 실천에서 보다 현실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서구의 논의에 대한 참조를 넘어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우리의 실천과 사유를 돌아보고 전망하는 일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민의 주체성이 크게 고양되었다.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기마다 민의 참여가 결정적 역할을 해왔음을 의미있게 평가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대의가 잘 작동하지 않을 경우 이를 해결하는 장치가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자가 주권자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장치가 선거이지만, 선거에서 주권자에게 주어지는 선택의 폭은 매우 좁다. 또한 선거가 지닌 평가와 심판의 유효성을 어느정도 인정하더라도 일단 선출되고 난 뒤의 권력이 대의를 충실히 따르도록 만들기는 더욱 어렵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 대의민주주의는 엘리트 지배로 전화되기 쉬운데, 한국에서는 민의 주체적 참여와 개입으로 대응해온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대의민주주의와 대립하지 않고, 혹은 단순히 탈주에 만족하지 않고, 민의 주체성을 제도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창조적 개입방법을 찾아왔다. 2016년 하반기 촛불항쟁 때 이 항쟁이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인가를 미리 계획했던 이는 없었지만, 결국 탄핵이라는 헌법에 명시된 방법을 찾아냈다. 처음에는 탄핵 절차에 소극적이었던 정치권도 아래로부터의 압력으로 탄핵을 추진하게 되었다. 2022년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촛불혁명에 대한 다양한 회의론이 출현했고, 지금도 2024년 12월 계엄령 선포라는 우연적 사건이 없었다면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화되었을 것이라는 인식이 적지 않다. 그러나 계엄령 선포라는 자충수 또한 2024년 4월 총선에서 민의 의지가 야당의 변화를 견인하고 압도적 승리를 촉진해 윤석열정부에 큰 타격을 준 결과로 보아야 한다. 이 민의 주체성은 지금도 한국사회가 촛불혁명의 자장 내에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한다.

촛불혁명은 오랜 항쟁역사의 한 국면이지만, 한국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도화되기 시작한 이후 나타난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실천’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국면이기도 하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특정 제도 내의 관습화된 양식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민의 주체성 구현을 위한 지속적 실천을 통해 작동하며 제도 안과 바깥의 정치가 건설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따라서—촛불혁명 시기의 시민적 저항을 완전히 부정하는 논의는 논외로 하더라도—비상한 상황에 비상한 대응으로서 촛불혁명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하되 문제해결의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라거나 일회적 사건에 그칠 뿐이라는 시각은 촛불혁명의 의미를 제대로 본 평가가 아니다.14 흥미로운 점은 2016~17년의 촛불혁명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즉 한국정치의 비정상성에 더 주목했던 서구 언론들이 2024~25년의 ‘빛의 혁명’에 대해서는 민주주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보여주는 드문 사례로 적극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평가도 한계를 노정하는 특정한 민주주의 모델을 전제로 할 뿐, 촛불혁명이 열어가는 민주주의 새로운 지평에 대한 인식은 결여하지 않았는지 따져볼 문제다.

이러한 시각에서 한국 내 극우현상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오늘날 극우현상은 우리에게 새로운 동시에 실은 낯설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폭력적 방식으로 타자를 제거하고자 하는 욕망과 행태는 분단체제와 깊은 연관성을 지닌 오랜 문제이기 때문이다. 분단체제가 고착화되는 과정에서 해방정국의 극우적 폭력은 국가 권력기구에 의한 체계적 억압으로 대체되었는데, 분단체제가 흔들리고 수구기득권이 약화되는 국면이 오자 그 극우적 폭력이 재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최근 드러나는 새로운 양상도 무시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차이는 극우적 담론이 청년층에서 꽤 넓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고용 및 주택 문제로 인한 삶의 불안정성이 극도로 높아지고 현 체제에서 불안정성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낮아지면서, 청년들이 페미니즘이나 이민자 등 타자에게 그 책임을 돌리는 우익에 포섭되거나 축적 위기를 해소하려는 자본의 시도에 포획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민주주의 위기와 한국의 상황을 단순히 동일시할 일은 아니다. 한국 극우는 그 기생적 성격으로 인해 청년이 직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자신의 강령을 제시하지 못하고, 서구 극우의 논리를 견강부회식으로 수입하거나 혐오정서에 기대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정치적 주류로 진입하려는 극우의 시도를 좌절시켰을 뿐 아니라 극우세력의 확장을 억제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극우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조장하기보다는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주체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대응방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과도한 위기의식이 아니라 더 나은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이 중요하다.

우리는 분단체제하에서 제도정치의 한계에 대한 감각을 키워왔고,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실천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더 거슬러올라가면 동학부터 이러한 도정이 시작되었다. 즉 식민지, 분단, 한국전쟁 등의 수난을 겪으면서도 민의 주체성이 지속적으로 표출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적 현상이 아니라 사상적 힘에 의해 뒷받침된 일이다. 이러한 사상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사유와 결합시키는 것이 K사상과 K민주주의 논의의 주요 과제이다.

 

 

5. 무엇을 할 것인가

 

더 나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에는 여러 차원의 실천이 결합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제기되는바 이에 대한 대응도 시급하다. 문제는 전통적 사회복지 정책만으로는 청년세대에 큰 영향을 주는 주택 및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박근혜정부에 의해 하이재킹된 후 담론장에서 소모되고 사라져버린 ‘경제민주주의’를 다시 소환해봄직하다. 경제민주주의는 구체적 경제정책을 ‘민주적 방식’으로 결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뒷받침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경제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대기업 및 수도권 집중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관건이다. 대기업 집중은 경제성장의 혜택을 소수에 집중시키고 다수 국민의 삶의 질은 악화시키는 주된 요인이며, 수도권 집중과 맞물려 이러한 격차가 증폭되어왔다. 앞으로는 경제성장 논의에 경제민주주의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의 성장에 연연해 결과적으로 문제를 악화시키는 정책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들고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게 된다.

이러한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서도 민주주의의 진전이 필요하다. 우선 시민의 정치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시민의회 등 나라의 주인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적극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촛불혁명 국면에서의 중요한 현상이다. 백낙청은 국민주권을 넘어 민중자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와 병행하고 건설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다양한 영역과 수준에서의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해가야 한다는 것이다.15 주권을 가진 자가 주권의 행사(통치)를 다른 이에게 넘겨주는 것 이외의 선택지가 없다면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16 민의 통치라는 정신을 현실에 맞게 실현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있어 핵심과제이다. 다만 민은 통치할 뿐만 아니라 통치를 받기도 하는 독특한 주체이기에, 통치에서 자치로 나아가는 것이 민주주의를 더 고양시키는 길이다.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시민참여에 기초해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개혁 추진도 필요하다. 국회의원 수의 확대, 선거법 개혁, 국회 운영방식 개선 등을 통해 소수의 목소리가 제도정치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헌법개정도 필요하다. 헌법만이 일련의 논의에서 사실상 신성불가침적 지위를 누리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헌법이 시대의 변화와 민주적 합의에 의해 수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헌 요건을 완화하자는 제안17도 이미 있었는데, 수정 내용에 따라 그 요건을 변경시키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법부 개혁이 주요 의제로 제기된 것도 촛불혁명의 중요한 성과이다. 법의 지배는 본래 다수의 독단으로 소수나 개인의 권리가 억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도입되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사법부가 소수 권리를 보호하기보다 기득권과 결합하고 공동체의 중요한 문제를 기득권의 이익에 맞게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법부도 숙의를 통해 모아진 다수의 의지를 존중해야 하며, 이를 위해 사법부 내의 민주적 운영은 물론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진전은 분단체제 극복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분단체제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여러 차원에서 확인되고 있지만 양자를 연결시키는 사유에는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이 문제는 주로 분단체제 극복을 전통적 통일 프레임과 등치시켜 사고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 연장선에서 북의 ‘적대적 두 국가’론도 분단체제 극복을 더 어렵게 만드는 변화로만 인식되곤 한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연합과 같은 복합국가 모델이 분단체제 극복의 주요한 경로로 제시되어온바 여기에는 두 국가 관계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물론 적대성은 관리되고 해소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를 잘 해낼 수 있다면, 그리고 앞서 말했듯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길을 닦아갈 수 있다면 전망적 기획으로서 분단체제 극복의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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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rancis Fukuyama,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The Free Press 1992, xii면(서문), 43면. 후꾸야마는 자유민주주의에 도전한 여러 이념들의 실패에 설명을 집중했고 정작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모호하고 소략하게 설명하고 있어 민주주의 이론가로 보기는 어렵다.
  2. 조르조 아감벤 『예외상태』, 김항 옮김, 새물결 2009, 23면.
  3. 졸고 「이명박정부의 통치 위기」, 『창작과비평』 2010년 가을호 18~19면
  4. 이에 대한 설명은 앞의 글 및 졸고 「수구의 ‘롤백 전략’과 시민사회의 ‘대전환’ 기획」, 『창작과비평』 2016년 봄호; 「문명 전환 시대, ‘한국’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창작과비평』 2023년 가을호 등을 참조.
  5. 백낙청은 2006년 신년칼럼 「6·15시대의 대한민국」에서 처음 ‘변혁적 중도주의’를 제창했으며, 2025년 신년칼럼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를 통해서는 이후 변혁적 중도 노선의 발전과 현 시점에서의 의미를 명료하게 설명했다. 변혁적 중도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백낙청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창비 2025 참조.
  6. 필자는 사건으로서의 촛불혁명의 의미를 논하며 이같은 시민저항이 반복된 역사는 제도정치의 낙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인민)주권이라는 대의민주주의의 형식으로 소화될 수 없는, 나아가 자본주의체제와 쉽게 화해하기 어려운 근원적인 해방의 요구를 계속 문제화한 과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졸고 「3·1운동, 촛불혁명 그리고 ‘진리사건’」, 『창작과비평』 2019년 봄호 70면.
  7. 김민철은 18세기 부르주아혁명 이후 개혁가들이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점을 반영하는 제도를 설계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인민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끔 하려고 고심했다”며 “주권의 원칙으로서는 인민주권론을 긍정하되 통치의 준칙으로서는 민주정(즉 민치정)을 부정”했다고 주장한다. 김민철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창비 2023, 19면, 강조는 원문.
  8. 로버트 달(Robert Dahl)은 여러 정치주체들이 경쟁적 선거를 통해 대표자로 선출되어 통치하는 ‘다두정’(polyarchy)을 현실적으로 가능한 민주주의의 형태로 제시했다. 그러나 후기에는 다두정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경제민주주의, 정치적 평등 등의 주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했다. 로버트 달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후마니타스 2010;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 후마니타스 2011 참조. 한국 정치학계에 큰 영향을 준 샤츠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의 ‘절반의 인민주권’(the semisovereign people)론도 이 계보 위에서 민주주의를 논했다. 그는 “우리가 (인민에 의한 통치와 같이) 민주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에서 출발한다면, 현대사회에서는 민주주의를 실행할 수 없다는 극히 비관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민주주의는 지도자들과 조직들이 공공정책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경쟁함으로써 일반 대중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일종의 경쟁적 정치체제”라고 정의했다. 그 과정에서 대의가 단순히 엘리트 정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정당의 (동원) 역할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은 로버트 달과의 차이점이다. E. E.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현재호·박수형 옮김, 후마니타스 2008, 210, 222면.
  9.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에 의해 전유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김민철, 앞의 책 238~40면 참조.
  10. 셸던 월린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석영 옮김, 후마니타스 2013, 359~66면.
  11. 배제와 포괄을 주요 개념으로 삼아 민주주의를 논한 사례로는 진태원의 논의를 참고할 만하다.

    진태원 『을의 민주주의』, 그린비 2017.

  12. 진태원, 앞의 책 162~64면.
  13. 셸던 월린, 앞의 책 390~91면.
  14. 운동정치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가진 논자들은 광장에서 표출되는 정치적 에너지가 정당과 대의체제로 수렴되지 않으면 위험한 것으로 본다. 예컨대 최장집은 운동정치를 지향하는 이들이 ‘촛불시민’이나 ‘깨어 있는 시민’을 우상화한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논지를 전개한다. “이것이 제도적 모습으로 구현되고 표현된 것이 직접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이다. 직접 민주주의의 흥기와 포퓰리즘의 위험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여론에 의한 통치와 소셜미디어 같은 의사소통 매체에 의해 촉진된 ‘동원된 다수의 전제정’이라는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 최장집 「다시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한국정치연구』 29권 2호, 2020, 16면. 최장집이 이 글에서 촛불혁명은 물론 촛불항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촛불시위라고 일컬은 것도 이러한 인식에 따른 선택일 것이다.
  15. 백낙청 신년칼럼 「빛의 혁명과 국민주권시대」, 창비주간논평 및 백낙청TV, 2025.12.31.
  16. 김민철은 주권과 통치의 이러한 분리가 민주주의(김민철의 표현으로는 ‘민주정’)의 본래 의미로부터의 이탈이며, 민주주의는 민이 상당한 정도로 직접 통치에 참여하는 정부 형태를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김민철, 앞의 책 22면.

이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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