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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유담 金裕潭

1983년 부산 출생.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neverend1130@hanmail.net

 

 

 

이완의 자세

 

 

1

 

만수는 크다. 키는 187센티에 몸무게는 90킬로가 넘는다. 목소리도 크다. 길에서 알은체하며 큰 소리로 부를 때면,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진다. 어려서부터 녀석은 나를 누나라고 부르며 따라다녔다. 지금은 기분이 좋을 때만 누나라고 부른다. 만수는 야구를 잘한다. 아니 잘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또래 중 가장 성적이 좋은 좌완 투수였다. 메이저리거의 꿈을 안고 일본으로 야구 유학을 떠났던 만수는 환호성을 받으며 출루했지만 맥없이 아웃을 당한 타자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만수가 돌아왔을 때 만수 엄마는 여탕에서 목욕을 하다 말고 엉엉 서럽게 울었다. 벌거벗은 여자들이 몰려와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한달 전까지만 해도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 입구에 들어선 손님들은, 이 집 아들 만수가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로 80센티, 세로 110센티 크기의 커다란 사진 액자 속에서 유니폼을 입은 만수는 우승기를 흔들고 있었다. 만수가 일본에서 돌아오면서 그 액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액자가 걸려 있던 위치만 확연하게 드러났다. 꼬질꼬질하게 때가 쌓인 주위 벽면과는 대비될 정도로 표백된 듯 하얗게 남은 액자의 자리는, 흩날려진 만수의 꿈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만수의 사진이 걸려 있던 자리에는 같은 크기의 다른 액자가 놓였다. ‘참숯 불가마의 효능’이라는 커다란 표제 아래 불가마 사진과 그에 관련된 글귀가 진지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참숯이 아닐 시에는 1억원을 배상하겠습니다!!’라는 빨간 고딕체의 글씨로 마무리된 하단이 인상적이었다. 만수의 꿈이 뜯겨진 자리를 ‘참숯 불가마’가 보란 듯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만수와 나는 다르다. 엄마의 사물함 벽면에 붙어 있는 내 사진을 떠올렸다. 엄마는 내가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트로피를 든 채 찍은 사진과, 나에 대한 기사가 실린 무용 잡지를 코팅해 사물함에 붙여놓았다. 나는 더이상 무대에 설 수 없지만, 엄마에게 얼른 그 사진들을 떼어버리라고 말하기 어렵다. 엄마는 이제 대체 어떤 희망으로 그 조그만 사물함의 문을 여닫을 수 있을까.

 

 

2

 

엄마는 시선을 끌었다. 엄마의 피부는 매끈하고, 윤기가 흐른다. 특별히 썬탠을 하지 않아도 몸 전체가 건강한 구릿빛을 띤다. 몸매는 마른 편이지만 팔과 다리, 그리고 복부에까지 잔잔한 근육들이 붙어 있다. 가슴과 엉덩이에 조금만 더 살집이 있었더라면 남미의 댄서같이 뇌쇄적인 분위기를 풍겼을 텐데. 볼륨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엄마는 충분히 섹시하다. 우리 엄마처럼 빨간색 팬티와 브래지어 세트가 잘 어울리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빨간색 브래지어를 입은 엄마의 가슴골 사이에 송송히 맺혀 있는 땀방울을 볼 때면, 나는 아찔하면서도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손바닥과 발바닥이 유난히 하얗다. 그 손바닥과 발바닥은 하루 종일 물을 머금은 채로 쭈글쭈글했다. 엄마는 시간이 날 때마다 손에 묻은 물기를 닦고 핸드크림이나 오일을 발랐지만 거칠고 볼품없는 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엄마의 손과 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유라 엄마는 어쩜 그렇게 젊어 보여? 어떻게 이 나이에 이런 S라인이 나와? 군살이 하나도 없네. 목욕탕에서 엄마를 만난 중년 여자들은 모두들 엄마의 몸매와 젊음을 부러워했다. 속 썩이는 서방이 없어서 그렇지. 나처럼 살면 살이 찔 수가 없다니까. 목욕탕을 찾는 아줌마들 앞에서는 별거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엄마가 지금의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그리고 그걸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엄마는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의 지하 1층 여탕에서 일한다. 이십년 전만 해도 이곳은 선녀탕이라는 조그만 공중목욕탕이었다. 전국적으로 찜질방 붐이 일어나기 시작한 십년 전을 기점으로 사장은 목욕탕을 헐고 3층 건물을 지어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를 개업했다. 그리고 삼년 전 증축을 해서, 지금은 스포츠센터까지 갖춘 5층 건물의 찜질방이 되었다. 시내의 유명 찜질방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인근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고 시설이 깔끔한 편이라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한자리에서 이십년째 일하고 있는 엄마를 보고 이곳을 찾는 여자들도 많았다. 엄마는 만수가 태어나기 전인 선녀탕 시절부터 때밀이로 일해왔다. 지금이야 세신사니 목욕관리사니 있어 보이는 말을 쓰지만 그 시절에는 때밀이가 엄마를 가리키는 자연스러운 단어였다. 사실 요즘도 손님들은 엄마를 때밀이 아줌마나 여탕 아줌마, 혹은 유라 엄마라고 부른다.

엄마가 때밀이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다닌 대학의 무용학과 전공생 중에는 태어나서 대중탕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이들도 꽤 있었다. 엄마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어머, 그래?”라며 입은 웃고 있지만 눈썹은 위로 올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며 깜짝 놀라기도 한다.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미안한 기색을 표하는 이들에게 나는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할지 난감했다. 내가 때밀이의 딸이라고 얼굴에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그런 걸 모르는 게 왜 그들이 미안해할 일인가. 내가 그동안 만나다 말았던 남자들도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대놓고 ‘뜨악’하는 속물은 차라리 귀여웠다. 짐짓 교양있는 척하면서 “나는 괜찮아. 상관 안 해”라고 말하는 녀석들은 활활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집어넣어 고문한 다음, 진심을 토로하게 만들고 싶었다. 우리 엄마가 저더러 어쨌다고 자기가 괜찮다고 말하는지, 상관하지 않겠다고 굳이 강조하는 것은 이게 상관할 일이라는 뜻인지 제대로 따져 묻기도 전에 그들은 나와 무관한 사이가 됐다.

 

 

3

 

엄마의 이름은 오혜자다. 한때는 그녀도 가슴에 명찰을 달고, 오혜자씨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는 여상을 졸업하기도 전에 서울 시내에서 가장 큰 백화점의 1층 화장품 매장에 취직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당시만 해도 백화점은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무나 매장 직원으로 뽑지도 않았다. 명문여상 출신 중에서 성적이 우수하고 용모가 단정한 사람만을 채용했다. 엄마의 경우 명문여상도 아니었을뿐더러 성적이 딱히 우수하지도 않았지만, 용모가 특출나게 단정했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며 백화점에 입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엄마는 백화점 1층에서도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하는 화장품 브랜드 매장을 담당했다. 내 아버지는 그 매장을 들락날락하는 본사의 영업직원이었다. 본사라는 단어에 스무살 엄마의 가슴은 묘하게 두근거렸다. 명동의 중심가에 위치한 백화점 안에서도 가장 눈에 띄고 중심이 되는 자리에 매일 서 있으면서 엄마는 주목받는 삶을 동경하고 갈망하게 되었다.

사실 내 아버지는 본사의 중심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전국의 화장품 매장을 돌며 재고를 조사하고, 주문서를 받는 게 그의 일이었다. 정작 엄마가 본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된 것은, 아버지가 죽은 후였다. 지방 출장길에 고속도로에서 유명을 달리한 아버지가 산업재해로 인한 순직을 인정받기까지는 이년이 넘게 걸렸다. 그전까지 엄마는 커다란 직육면체 모양의 화장품 가방을 어깨에 메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동네 아줌마들의 피부 마사지와 눈썹 문신을 해주며 돈을 벌었다. 걸음마조차 떼지 못한 나를 포대기에 싸서 업은 채로, 엄마는 남의 집 초인종을 눌러야 했다.

지리멸렬한 싸움 끝에 겨우 받은 아버지의 보상금은 엄마가 살면서 만져본 돈 중 가장 액수가 컸다. 엄마는 아버지의 부모 형제들과 인연을 끊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지은 아파트단지 앞에 ‘오혜린 피부관리숍’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피부관리실을 차렸다. 엄마는 장사 수완이 좋았다. 피부관리실이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사지 실력이 아니라 원장의 피부였다. 엄마는 윤기 나고 반짝이는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큰 공을 들였다. 동네 아줌마들을 상대하는 피부관리실이기는 했지만, 최대한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인테리어에도 적지 않은 돈을 들였다. 엄마는 세련된 옷을 차려입고 빨간 스포츠카를 몰면서 집에서 십분 거리의 가게에 출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환하고 반짝거리는 것이 아름답다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다.

사파이어 아저씨가 가게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아저씨의 얼굴은 특별히 관리를 받지 않아도 하얗고, 빛이 났다. 아저씨는 목소리도 좋았다. 침대에 엉덩이를 걸친 아저씨가 내 머리맡에서 동화책을 읽어줄 때면, 나는 잠들지 않으려고 억지로 눈꺼풀을 치켜세웠다. 그가 달콤한 목소리로 전해주는 동화 속 세상에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었다.

아저씨가 우리 집에 처음 오던 날, 내게 커다란 곰인형을 선물했다. 내 키만 한 곰인형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우물대고 있을 때 그는 한 팔로는 나를, 다른 한 팔로는 곰인형을 번쩍 들어 올려 내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나는 너무 좋은 나머지 그의 목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날부터 우리는 함께 살았다. 아저씨는 생선살을 발라 내 숟가락 위에 얹어주었고, 유치원 발표회 때는 맨 앞자리에서 가장 크게 박수를 쳐주었으며, 놀이동산에 함께 가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 시절 엄마는 항상 웃고 있었다. 나의 조그마한 재롱에도 숨이 넘어갈 듯 까르르 웃으며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안방에서 엄마와 아저씨 사이에 누워 잠드는 것을 좋아했다. 일어나보면 신기하게도 내 방 침대였다. 아저씨가 잠든 나를 번쩍 들어 옮겨놓은 것이다. 가끔 어설프게 잠이 들었을 때면 아저씨가 숨을 죽인 채로 조심스럽게 나를 안아 올리는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럴 때면 부러 죽은 것처럼 온몸을 축 늘어뜨렸다. 아저씨가 나를 쉽게 옮길 수 있도록, 온몸에 힘을 빼서 새털처럼 가볍게 만들고 싶었다.

엄마는 피부관리실 선반에 전시되어 있던 프랑스산 화장품을 치우고, 아저씨가 팔던 다양한 종류의 건강식품과 세제, 화장품을 즐비하게 늘어놓았다. 이 제품들을 사들이면 더 예뻐지고, 더 젊어질 수 있다는 말에 많은 손님들이 관심을 보였다.

엄마는 다이아몬드가 되겠다고 했다. 아저씨를 먼저 다이아몬드로 만들고, 다음 차례는 엄마가 될 것이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다이아몬드가 뭐냐고 묻자 엄마는 얇은 잡지책의 표지를 가리켰다. 잡지의 표지에는 정수리에 붙은 머리카락을 크게 부풀리고, 짙게 화장을 한 중년 여자가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엄마는 자신보다 훨씬 늙고 못생긴 그 여자처럼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이 다이아몬드라고, 모두가 엄마를 우러러볼 날이 멀지 않았다고 큰소리를 쳤다.

아저씨가 사라진 후 한동안 엄마는 말을 잃었다. 가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여자들이 몰려와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엄마는 아저씨와 나란히 누웠던 황토전기장판의 스위치를 켜고 누운 채 안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가끔씩 방문을 열고 들어가, 등을 보이고 누워 있는 엄마의 어깨가 오르락내리락하는지 조심스레 확인해보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가 걷어낸 이불을 다시 끌어올려 머리끝까지 썼다. 당시 일곱살에 불과했던 나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엄마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다. 이렇게 먹지도 마시지도 않다가 엄마가 죽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두려워도, 불길한 기운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 같아서 꾹꾹 참았다.

엄마를 대신해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것은 나였다. 엄마는 온몸에 열꽃이 잔뜩 오른 나를 업고 한밤중에 병원으로 달려가며 울부짖었다.

“하느님, 부처님, 천주님, 누구든 저희 좀 살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우리 유라까지 잘못되면 저는 죽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다시는 헛된 꿈 안 꾸고 살겠습니다.”

축축하게 젖은 엄마의 등에 뺨을 부비며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급성 폐렴으로 나는 한달 넘게 병원 신세를 졌다. 병실로 찾아온 아버지의 부모, 그러니까 나의 조부모는 분노와 측은함이 뒤섞인 눈빛으로 나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다가 엄마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고 사라졌다.

 

 

4

 

퇴원 후 나는 엄마를 따라 원래 살던 곳에서 한시간 넘게 차를 타고 경기도 외곽의 한 동네로 갔다. 엄마는 재래시장 입구에 삐죽이 솟아오른 선녀탕의 굴뚝을 가리키며 우리가 당분간, 지낼 곳이라고 당분간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나는 우리가 예전에 살던 아파트는 아니더라도 ‘집’에서 살 줄 알았다. 여탕 탈의실 옷장에 짐을 부리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남은 것은 적지 않은 빚과 어린 딸뿐이었다. 엄마는 나의 조부모에게 빌린 돈으로 집을 구하는 대신 선녀탕의 때밀이 자리를 샀다. 이제부터는 양손에 스포츠카의 운전대가 아니라 이태리타월을 쥐어야 했다. 처음부터 엄마가 능숙하게 여자들의 때를 민 것은 아니다. 힘 조절에 서툴렀고, 손님들은 자주 불만을 토로했다. 엄마는 매일 밤 나를 식어가는 온탕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서 내 몸에 훈기가 돌 무렵 플라스틱으로 된 파란 침대 위에 눕혔다. 엄마는 나를 눕혀놓고 프로 때밀이가 되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다.

등뼈가 닿은 바닥은 딱딱했고, 엄마의 손길에는 자비가 없었다. 버둥거릴 때마다 엄마는 물 묻은 손으로 내 몸의 곳곳을 큰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때렸다.

“움직이지 마.”

“엄마, 나 아파.”

“이게 뭐가 아파. 가만히 있으라니까.”

여탕 안의 난방장치는 이미 꺼져 있었고, 내 몸은 금방 식었다. 때가 제대로 나올 리 만무했다. 때가 나오지 않는다며 엄마는 또 신경질을 부리며 나를 때렸다. 엄마와 나 둘밖에 없었지만 넓은 공간에 그렇게 벌거벗은 채로 누워 있는 것이 수치스러워서 눈물이 났다.

내가 눈물을 찔끔거리면 엄마는 또다시 손바닥으로 나를 매섭게 내리쳤다.

“울지 마. 뭐 이깟 일로 울고 그래? 지금 이건 우리 모녀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야. 이것도 못 견디면 둘이 같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야. 그냥 여기서 우리 같이 죽을래?”

싸늘한 엄마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어금니를 깨문 채로 추위와 아픔, 그리고 수치와 모멸감을 견뎠다. 버둥거리지 말고, 울지도 말고, 몸에 힘을 뺀 채로 가만히 누워 있으라는 엄마의 요구조건을 일곱살의 내가 모두 수용하기는 힘들었다. 나는 몸에 힘을 잔뜩 주고 긴장한 상태로 그 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힘주지 마! 힘 빼. 좀 참으란 말이야!”

엄마는 손에 든 때수건을 벗어던지고 다시 나를 때렸다. 나는 무엇이 그토록 엄마를 화나게 하는지, 엄마의 분노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몰랐다. 내가 참아야 하는 것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아프고 서러웠을 뿐이다. 이게 아니면 둘이 같이 죽는 수밖에 없다고 엄마가 독기 어린 표정으로 말했을 때, 나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죽음보다는 그녀의 손찌검이 더 두려웠다. 비누거품이 묻은 엄마의 때수건이 사타구니 사이를 거칠게 지나칠 때, 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을 앙다물었다. 목욕이 끝나면 내 몸 곳곳은 울긋불긋했다. 엄마가 때수건으로 민 자국과 때린 손자국이 온몸에 교차된 채 남아 있었다.

엄마가 일이 손에 꽤 익은 다음에도 밤마다 이루어지는 목욕 의식은 끝나지 않았다. 일과가 끝나면,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나를 찾았다. 엄마의 신경이 하루 중 가장 날카로운 때였다. 결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밤마다 어떤 방식으로든 엄마의 신경을 거슬렀다. 엄마가 나를 찾는 소리에 즉각 반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맞았고,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바로 달려오다가 조심성이 없다고 맞았다. 엄마는 필요 이상으로 거품을 많이 내어 내 몸의 곳곳을 온 힘을 다해 밀었고, 거칠게 머리를 감겼다. 목욕이 끝나면 수건을 한 손으로 쥐고 휘젓듯이 내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아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몸을 빼거나 반항하면 그때부터 소리를 지르며 때렸다.

하루 종일 여자들의 몸을 씻기느라 녹초가 된 상황에서도, 엄마는 자신의 밑바닥에 남은 마지막 힘까지 소진하려는 듯 필사적으로 울음 섞인 고함을 질렀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사는데! 나도 너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보내고 팔자나 고치면 속 편하지. 너 때문에 못하는 거야. 애비 없이 사는 것도 서러운데 에미까지 없이 그렇게 살아야겠니? 그럴 바엔 같이 죽자.”

흠씬 두들겨 맞으며 목욕을 하고 나면 쉽게 잠에 빠졌다. 나는 찐득찐득한 탈의실 바닥에 깐 전기장판 위에 온몸을 옹송그린 채 잠이 들었다. 황토장판에서 올라오는 열기 때문에 등은 뜨거웠지만, 코끝을 스치는 공기는 축축하고 차가웠다. 마치 내 몸이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공기가 만나는 경계면처럼 느껴졌다. 매일 밤 눅눅하게 나를 에워싸는 서러운 기운의 정체를 끝내 파악하지 못한 채, 나는 온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정신없이 곯아떨어지곤 했다.

 

 

5

 

낮 시간의 목욕탕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탕에서 갓 나온 여자들의 몸에서 나오는 훈기와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여탕의 공기에 나는 숨이 턱턱 막히곤 했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사람들의 몸이 자연스러웠다. 나는 하루 종일 발가벗은 채로 밥을 먹었고, 목욕탕을 뛰어다녔고, 축축한 물기가 남아 있는 나무 평상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았다. 선녀탕에서 머무른 지 몇달 되지 않아 나는 소아질염 진단을 받았다. 밤마다 밑이 가렵다며 몸을 뒤틀어대는 나를 엄마는 황망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엄마는 시장에서 흰색 면 팬티를 여러장 사왔다. 엉덩이 부분에 만화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팬티였다. 엄마는 내 팬티를 주기적으로 휴대용 가스렌지에 삶았다. 나는 엄마가 사람들 앞에서 팬티가 가득 든 빨래솥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부끄러웠다. 가장 참기 힘들었던 순간은 병원에서 처방받아온 갈색 세정제를 뜨거운 물에 풀어놓은 대야에 나를 앉혀놓을 때였다. 하루에 두세번씩 좌욕을 시켜주라는 의사의 처방에 엄마는 여탕에 다른 손님들이 있건 없건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시간이 날 때면 나를 목욕탕으로 불러들여 다리를 벌린 채 대야에 앉혔다.

소독약 냄새가 풍기는 갈색의 물속에 아랫도리를 담그고 울상을 짓고 있는 나를 손님들은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아이가 왜 저러고 있느냐고 엄마에게 묻는 오지랖 넓은 여자도 종종 있었다.

“아유, 질염이라나 뭐래나. 거시기에 세균이 들어갔대.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여간 귀찮은 게 아니야.”

좌욕이 끝나면 엄마는 샤워기를 틀어 내 아랫도리를 물로 씻어냈다. 나는 턱을 덜덜 떨며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린 채 서 있었다. 특히 내 또래의 소녀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눈을 질끈 감았다.

처음에는 목욕탕에서 또래 여자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목욕탕에서 만난 아이들과는 스스럼없이 친해졌다. 다른 아이가 가지고 온 소꿉놀이 장난감을 물에 담그고 놀면서 까르르 웃어댔고, 번갈아가며 탕에서 잠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아주 잠깐 목욕탕에 들렀다 떠나게 마련이었고, 나는 곧 혼자가 되었다. 나는 엉덩이 부분에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팬티를 입고 평상에 오도카니 앉아 만화영화를 보면서 지루한 나날들을 보내곤 했다. 그 시절 여탕의 텔레비전 리모컨을 쥐고 있는 사람은 나였고, 채널은 늘 케이블 만화영화 방송에 고정되어 있었다.

엄마가 아닌 여자들은 대체로 내게 친절했다. 목욕이 끝난 후 바쁘게 움직이던 여자들이 탈의실 중앙을 멀뚱히 지키고 앉아 있는 나를 모른 척하기 어려웠던 것은 그만큼 내가 안쓰럽게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탕에서 엄마가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듯 나는 탈의실에서 가장 많은 시선과 관심을 받는 존재였다. 목욕탕을 찾은 엄마의 손님들은 나를 속이 훤히 비치는 냉장고 앞으로 데리고 가 마시고 싶은 음료수를 골라보라고 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이들은 오후 두시면 단체로 몰려와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탕 속으로 뛰어들던 유흥업소의 언니들이었다. 그녀들에게는 남다른 아름다움과 분방함이 있었다. 나는 그녀들이 팬티도 입지 않은 채로 평상에 앉아 발톱을 깎고, 매니큐어를 바르는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발가락을 꼼지락댈 때마다 거무스름한 음모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언니들의 성기를 보면서 야릇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언니들은 여탕에서 씀씀이가 가장 컸다. 엄마가 권하는 비싼 마사지도 마다하지 않았고, 내가 아무리 비싼 음료수를 골라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나는 다른 어른들이 몸에 나쁘다고 못 마시게 했던 커피우유나 초코우유를 흔쾌히 허락하는 언니들이 좋았다. 유통기한이 다 된 흰 우유를 몸에 좋은 거라며 억지로 먹으라고 하는 목욕탕 안주인 아줌마보다 훨 나았다. 물론 주인아줌마가 내게 흰 우유를 건네게 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관계의 발전이기는 했다.

처음에 그녀는 우리 모녀가 목욕탕에서 기거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어쩌다가 사장 아저씨와 엄마가 말이라도 섞을라치면 매서운 눈으로 엄마를 흘겨보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 후 칠년 동안 생기지 않던 아이가 들어서자 태도가 달라졌다. 내가 선녀탕에 온 뒤 바로 임신을 하게 되었다며, 나를 복덩이라고 치켜세웠다. 그 아이가 바로 만수이다. 그러니까 나는 만수를, 태아 시절부터 알았던 셈이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나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대신 참석한 사람도 아줌마였다. 담임선생은 만삭의 배를 내민 채 내 옆에 서 있는 그녀에게 눈인사를 하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곧 동생이 태어나겠구나.”

나는 얼마 후 아우를 볼 맏이처럼 애써 어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입학식이 끝난 후 아줌마와 나는 서로 손을 잡고 교문을 나섰다. 작은 손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갔다. 손을 빼고 싶었지만, 아줌마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줌마의 다른 한 손에는 새로 받은 교과서가 잔뜩 들어 있는 책가방이 들려 있었다.

“한번 만져볼래? 아들이야. 애 아빠는 아이를 야구 선수로 키우겠대.”

그녀는 내 손을 자신의 배 위로 가져갔다. 나는 흠칫 놀라 한걸음 물러섰다.

“괜찮아. 만져봐도 돼. 이리로 와보렴.”

땀에 젖은 내 손이 둥근 배 위에 닿자 배를 감싼 원피스 위에 아주 작은 물 얼룩이 찍혔다. 한껏 부풀어오른 아줌마의 배는, 단단하고 따뜻했다. 나는 그 배에 가만히 손끝을 갖다 대었다가 배 안에서 느껴지는 떨림에 깜짝 놀라 손을 뗐다. 만수의 태동이었다.

만수가 태어나자 사장 아저씨는 목욕탕 입구에 붉은색 고추가 달린 금줄을 걸었다. 정작 만수 엄마는 친정에 몸조리를 하러 가 그곳에 있지도 않았다. 입구 유리문 상단에 가렌더처럼 장식되어 있는 금줄을 올려다보며 손님들은 “이거는 출입을 자제해달라는 뜻인데. 거참, 들어오란 소리야 말라는 소리야?”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장 아저씨는 싱겁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고, 묻지도 않은 말들을 늘어놓았다.

“순산이에요! 아들입니다. 아주 건강한 아들이에요!”

목욕탕 건물의 꼭대기 층이 사장 내외의 살림집이었다. 갓난쟁이 만수는 하루에 한번 여탕으로 내려와 목욕을 했다. 만수가 내려오면 엄마나 매점 언니가 아기 욕조를 꺼내 적당한 온도로 물을 받았다. 욕조 속에서 만수는 방긋방긋 웃으며 여자들의 시선을 받아냈다.

“아이고, 고놈 고추 실하네. 만수 엄마는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어.”

“중국 황실 자손도 아니고, 이렇게 여자들한테 둘러싸여서 목욕을 하다니…… 속으로 무슨 영문이냐 이러고 있겠어. 만수야, 그치?”

“우쭈쭈, 아가야 너 여기가 금남의 구역인 걸 알고는 있니?”

만수를 보면서 여자들은 한마디씩 보탰다. 만수는 기분이 좋은지 발끝으로 물을 튕겨냈다.

엄마는 손님이 없을 때면 만수 엄마 곁에서 아기 목욕을 도왔다. 무릎을 꿇은 채로 아기의 머리를 감기는 엄마의 손길은 재빠르면서도 조심스러웠다. 그런 엄마를 볼 때면 왈칵하고 서러움이 올라왔다. 나는 벌거벗은 미미인형들을 세숫대야에 담그고 거칠게 씻겼다. 미미인형의 가랑이 사이는 밋밋하고 딱딱했다. 나는 인형의 가랑이를 쭉 찢어서 비누칠을 했다.

 

엄마는 이사 가기 전날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면서, 사글셋방 얻을 돈을 마련하는 한편 틈틈이 빚을 갚았다. 나는 말수 적고 눈치 빠른 아이로 자라났다. 목욕탕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와 혼자 책가방을 쌌고, 양치질까지 스스로 끝낸 후 엄마가 돌아오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반듯한 자세로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딸의 얼굴 위로 손바닥을 휘저어보곤 했다.

나는 그곳에서 살지 않게 된 이후로 절대 공중목욕탕 침대에 누워 때를 밀지 않는다. 밥을 먹고 숙제를 하면서 그곳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면서도 엄마에게 때를 밀지는 않았다. 엄마가 나를 여탕 침대 위로 눕힐라치면, 탈의실로 도망가 매점 언니의 뒤에 숨었다. 엄마에게 잡혀 호되게 맞은 적도 몇번 있었지만,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흥, 안 밀면 너만 찝찝하고 손해지 뭐! 이게 얼마짜리 서비스인데, 제가 얼마나 호강에 겨워 있는지 모르는 계집애 같으니라고.”

어느 순간부터 엄마도 나를 완력으로 제압하는 것을 포기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여탕을 자주 찾지만, 절대로 엄마에게 세신을 부탁하지는 않는다.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구석에서 간단한 샤워 정도만 하고 나와버리곤 한다. 언젠가 목욕탕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내 어깨 뒤로 엄마가 다가와 등을 밀어주겠다고 했을 때, 엄마를 노려보면서 내 몸에 손대지 말라며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질렀다. 앙칼진 목소리가 목욕탕 안에서 크게 울렸다. 벌거벗은 여자들의 시선이 우리 모녀에게로 모이자 엄마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후로 며칠간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

이제 와서 엄마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엄마는 지금의 내 또래에 불과했고,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따금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면 때수건으로 아주 세게 민 것처럼 마음이 따끔따끔해지곤 한다.

 

 

6

 

윤금희 원장은 목욕탕 구석진 자리에 벌거벗은 채 앉아 미미인형의 목을 비틀고 있는 나를 보고 다가왔다.

“니는 이기 이뻐 보이나. 누가 니한테 이래 하면 좋겠나?”

나는 들고 있던 인형을 등 뒤로 감추었다.

“니 내처럼 이래 할 줄 아나? 모가지 이래 뒤로 꺾을 줄 아나?”

윤원장은 허리에 두 손을 짚더니 뒤통수가 등에 닿을 정도로 목을 꺾었다. 두툼한 뱃살을 누르고 있는 두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옆으로 퍼져 있던 살덩어리가 앞쪽으로 쏠렸다.

그녀는 목욕탕 길 건너의 상가 2층에 있는, ‘윤금희고전무용학원’의 원장이었다. 작달막한 키와 푸근한 몸매는 ‘윤금희’라는 이름과 썩 잘 어울렸고, 백번 양보해 투박한 사투리가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긴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무용’과는 도무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여자였다. 그러나 동네에서 꽤 실력있는 선생으로 통하는 것으로 보아 ‘학원’을 운영하는 능력이 출중한 듯했다.

“딸래미가 재주가 쫌 있어 보이던데, 엄마를 닮아가 몸꼴도 좋고. 한번 시키보는 기 어떨랑교.”

윤원장은 엄마의 눈빛이 흔들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무용학원에 등록한 첫날, 나와 같은 말을 들은 20여명의 여자아이들과 함께 한시간 남짓 다리 찢기 연습을 하고 헤어졌다. 무용학원의 연습실은 삼면이 거울로 둘러싸여 있었다. 거울이 없는 입구 쪽 벽면에는 원장의 과거 공연 사진과 제자들의 대회 입상 사진이 걸려 있었다.

엄마는 윤원장에게 내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내가 무용대회에서 적지 않은 트로피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엄마는 트로피를 나의 몸을 닦을 때보다 더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닦아 장식장 안에 넣어두었다.

윤원장은 목욕탕에 갈 때마다 엄마에게 내 칭찬을 늘어놓았다. 장차 내가 큰 무대에 서는 무용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엄마는 원장의 몸을 다른 손님들보다 더 공들여 밀었다. 때 목욕이 끝나면 언제나 서비스로 안마를 해줬다.

엄마는 아프지도 않고 간지럽지도 않게, 적절하게 힘을 조절해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데 능했다. 엄마가 손님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다른 이유는 안마 솜씨가 좋기 때문이었다. 때만 미는 것이 아니라 몇만원을 더 내고 피부 마사지와 안마를 받는 손님들이 많았기에 엄마의 벌이는 꽤 쏠쏠했다. 젖은 손으로 목욕탕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나게 몸을 철썩철썩 때렸지만 여자들은 아파하기는커녕 그 시간이 좀더 지속되기를 원했다. 유라 엄마, 여기도 좀. 유라 엄마, 요새 어깨가 많이 안 좋아. 나 꼬리뼈 부분 몇번만 더 두드려줘요. 알몸의 여자를 뒤로 눕혀놓은 채로 어깨부터 다리까지 순서대로 쳐내려가는 엄마의 모습은 너무도 진지해서 묵언의 안수기도를 올리는 성직자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엄마는 수다스러운 다른 세신사들과 달랐다. 원래 말이 많은 성격도 아니었지만, 때를 밀 때만큼은 말수가 더 적어졌다. 옆으로, 뒤로, 손 올려요, 다리 벌려요. 몇가지 지시사항만을 전달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단골손님들에게는 수신호로 대신했다. 엄마의 단골들은 알몸이 되어 누운 채로 엄마의 신호대로 착착 움직였다. 엄마의 눈짓과 손짓 하나에 몸을 눕혔다가 뒤집었고 마지막에 크게 물을 끼얹으며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외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엄마의 절도있는 동작에 그들도 같이 박자를 맞춰 절도있게 행동하게 되는 것 같았다.

엄마는 목욕탕에서 일한 지 삼년이 지나지 않아 빚을 모두 갚았다. 나는 엄마가 다시 오혜린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는 여전히 지하 1층의 여탕을 지키고 있다.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처럼 씻겨도 씻겨도 또다시 더러워지고 마는 여자들의 몸뚱이를 닦아주면서,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승용차를 샀다. 매일 밤 집에 돌아와 다리미판 옆에 젖은 돈을 쌓아두고서는 한장씩 정성 들여 다리며 중얼거렸다.

“도둑년 돈이든, 갈보년 돈이든 들어오기만 해라. 내가 빳빳하게 다려서 새 돈처럼 만들어놓을 테니.”

남의 돈은 원래 더럽게 마련이라며 담담하게 때 묻은 돈을 세는 엄마의 밑에서 나는 자랐다. 내가 태어난 이래 우리 모녀의 삶은 늘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하지만 동정받을 정도는 아니었고, 제자리를 지키면서 서로를 그럭저럭 지켜왔다. 엄마는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 자가용을 몰았고, 명품 백을 사기도 했다. 나는 엄마의 돈으로 무용을 전공했고, 대학원도 다닌다.

 

 

7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엄마는 여름 내내 일을 쉬었다. 여름은 원래 사계절 중 목욕탕 장사가 가장 되지 않는 계절이다. 여름날 한낮의 여탕은 한가롭기 그지없어서 엄마도 탈의실에 나와 텔레비전을 보거나, 수박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다. 그해의 최고 기온을 경신할 만큼 날씨가 더운 날에는 때밀이 손님이 하루에 한두명에 그칠 때도 있었다.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이른 시각부터 중천에 떠서 작열하는 해를 보면서 눈을 찡그리곤 했다.

“젠장, 오늘도 공친 날이네.”

굴뚝이 솟은 선녀탕 건물을 허문 자리에 만수불가마사우나를 새로 짓는 공사는 7, 8월 두달 동안 진행됐다. 뜻하지 않은 휴가를 받은 엄마는 넘쳐나는 시간을 좀처럼 주체하지 못했다. 엄마는 집 안 곳곳의 세간을 뒤집고 닦으며 부산을 떨었다. 그동안 이렇게 더러운 돼지우리 같은 집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고 악다구니를 해대며 청소를 했다. 생각지도 못한 공간까지 훑어내며 집 안의 위생상태를 맹렬하게 꾸짖어대자 나는 그 비난의 화살이 내게 겨눠진 듯 느껴져 마음이 불편했다.

“엄마, 이건 그냥 때 같은 거야. 밀면 밀수록 나오는 것처럼. 청소도 하면 할수록 끝이 없는 거 아니야? 어차피 엄마 다시 목욕탕 나가면 집은 더러워지게 마련이라고.”

엄마는 손에 쥔 걸레를 바닥에 던지며 눈을 흘겼다.

“망할 년, 그걸 말이라고 하냐? 사람 때가 한번 밀고 안 나오는 거면 우리가 이렇게 밥 먹고 살 수 있는 줄 알아? 진짜 그런 상황이면, 너 무용이고 뭐고 일찌감치 때려치워야 하는 거야. 잘난 척하지 마.”

 

한동안 집 청소에만 매달리던 엄마는 내가 여름방학에 돌입하자마자, 뜬금없이 혼자 필리핀으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통보했다. 엄마의 여행 가방은 단출했다. 그녀의 트렁크에는 비키니 수영복도, 수경도, 오리발이나 튜브도 없었다. 밤에 몰래 열어본 트렁크 속에는 간단한 세면도구와 옷가지, 그리고 신문지로 야무지게 싸맨 식칼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제야 예전의 사파이어 아저씨가 필리핀으로 도피했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일주일로 예정됐던 엄마의 여행은 보름 더 연장되었다. 엄마가 없는 집은 다시 먼지가 쌓여갔다. 나는 혼자 일어나 오전에는 동네 보습학원에 가서 국영수 수업을 들었고, 오후에는 윤금희무용학원에서 무용을 배웠다. 엄마는 학원비를 선납하고, 내 책상 서랍에 넉넉하게 현금을 넣어놓고 떠났다. 나는 혼자 라면을 끓여 먹거나, 엄마가 남겨둔 돈으로 동네 식당 여러군데를 배회하며 끼니를 때웠다. 특별히 갈 곳도 없었다. 집과 학원을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이었다. 목욕탕은 가림막이 쳐진 채 공사 중이었다. 종종 만수 엄마에게 밥을 먹으러 오라는 연락이 오기도 했다.

살던 집이 없어진 만수네는 근처 아파트를 월세로 얻었다. 만수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만수 엄마는 이제 진짜 학부모가 되었다. 내가 집에 들어서자 만수는 러닝셔츠와 삼각팬티만 입은 채로 바닥에 엎드려 받아쓰기를 하고 있었다. 얇은 원피스를 입고 앉은 만수 엄마는 부채를 부치며 만수에게 국어책에 나오는 문장을 읊어주는 중이었다. 만수는 나를 보고는 갑자기 옷을 입겠다고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나왔다. 제 엄마까지 불러들여 법석을 떨더니 긴 청바지에 양말까지 갖춰 신고 나온 만수를 나는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목욕탕이 아닌 곳에서 만나는 이들 모자는 생경했다. 만수 엄마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구워 상을 차려주었다. 여탕 평상에서 신문지를 깔고 배달 음식을 먹었던 것 외에 이들 모자와 밥다운 밥을 먹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밥상 옆에서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만수 엄마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한쪽 다리는 땅에 붙인 채 앉아 있다가 다리를 바꿔 앉았다. 다리를 바꾸는 사이에 만수 엄마의 팬티가 살짝 보였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눈을 돌렸다. 수없이 만수 엄마의 알몸을 보았음에도 그 순간 몹시 부끄럽고 민망했다.

만수는 밥을 다 먹고 난 후 나를 욕실로 데려갔다. 스물세평짜리 아파트의 욕실은 욕조와 세면대, 변기만으로도 꽉 찬 듯한 느낌을 주었다. 만수는 좁은 욕실에 들어가 옆면에 물때가 낀 푸른색 욕조를 쓰다듬으며 배시시 웃었다.

“누나, 이거 좋지? 이거는 우리 식구들만 쓰는 거야. 나 이렇게 욕조 있는 집에 처음 살아봐. 우리 새로 짓는 살림집에도 욕조는 안 넣는대.”

목욕탕집 아들이 욕조가 왜 필요하냐며 만수 엄마가 핀잔을 놓았다. 새로 짓는 찜질방에는 온탕, 열탕, 이벤트탕, 한방탕 등 훨씬 더 다양한 욕탕 시설을 들여놓을 것이라고도 했다. 재개업을 준비 중인 찜질방 시설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 만수 엄마의 말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들으며 나는 찌개 냄비에 숟가락을 담갔다. 국물이 흥건한 된장찌개는 맹탕이었다.

엄마는 필리핀에서 하루걸러 한번씩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음성은 흐릿하고 피로하게 와닿았다. 나는 엄마가 그곳에서 머무르며 찾는 대상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대신 언제 돌아올 거냐고 매번 채근했다. 엄마가 이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두려웠다. 한편으로 나는 이미 혼자이며 이 사실은 엄마가 돌아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마가 없는 사이, 나는 초경을 했다.

보름 만에 트렁크를 끌면서 나타난 엄마의 목에는 한줄의 붉고 짙은 상처가 걸려 있었다. 손자국인지 끈으로 눌린 자국인지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붉은 상처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며 내 목을 감싸쥐었다. 비쩍 마르고 피부는 새카맣게 탄 채로 눈망울만 커다래진 엄마는 한동안 얼이 빠진 얼굴로 현관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에게 말을 붙이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트렁크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방에서 나오지 않고 스무시간을 내리 잤다.

나는 지금도 엄마가 필리핀에서 누구를 만났으며,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혼자서 초경을 겪는 것보다는 훨씬 더 무섭고 외로운 일이었으리라고 짐작해볼 뿐이다. 그저 엄마가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약국에 다녀왔다.

엄마는 남은 여름 내내 안방에 드러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사다 준 약을 부지런히 바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나는 엄마가 떠나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 밥을 먹었고, 혼자 생리대를 사러 갔다. 찜질방이 완공되었을 때에는 이미 엄마 목의 상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손끝으로 살짝 가을바람이 느껴질 무렵, 엄마는 다시 붉은색 브래지어와 팬티를 입고 새롭게 단장된 일터로 출근했다.

 

 

8

 

중학교에 가서도 무용을 계속하기로 결심한 것은 머리카락을 자유롭게 기르고 싶어서였다. 당시 내가 다니던 여중에서는 무용이나 연기를 전공하는 학생을 제외하고는 귀밑 10센티 이내의 단발머리를 유지해야 했다. 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주 미용실에 가야 했다. 나는 미용실이 싫었다. 누군가가 내 뒷목과 어깨, 머리카락에 손을 대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손이 뒷덜미에 닿기라도 하면, 어깨를 움츠리며 몸서리를 쳤다. 나와 친밀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입시반으로 넘어와 일대일 레슨을 받으면서 나는 꽤 애를 먹었다.

“어깨가 너무 뻣뻣하다 아이가. 어깨에 힘을 빼라! 퍼뜩!”

윤원장의 손이 내 어깨에 올라오자 경직되면서 힘이 더 들어갔다. 팔을 자연스럽게 들어 올려보라며 선생이 한쪽 팔을 잡으면 나는 양팔이 경직되면서 동작이 더 어색해졌다. 평소에 잘되던 스트레칭 동작을 할 때조차도 내 몸에 원장의 손이 닿으면 허리가 끝까지 굽혀지지 않았다.

“굽히봐라, 쫌! 니 이거밖에 안 되나? 더, 더, 해보라카이.”

내 몸은 점점 더 굳어갔고, 등이 굽혀지기는커녕 점점 고개가 위로 올라왔다.

“이거 이래 갖고 되겠나. 내사 모르겠다. 내 니 근처에 얼씬도 안 하께. 꼴리는 대로 한번 춰봐라.”

윤원장은 장구를 앞에 끼고 두드리면서, 장단에 맞춰 마음대로 춤을 춰보라고 했다. 나는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쉰 다음, 그동안 배운 동작을 응용해 민살풀이 춤을 췄다. 장단과 장단 사이에 호흡을 조절하면서 손목을 꺾어 다양한 모양의 곡선을 허공에다 그리다보니, 나도 모르게 흥이 났다. 손바닥을 엎었다 뒤집었다 하며 노는 내 모습을 윤원장은 골똘하게 바라보았다.

그후로 원장은 내 몸에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교정하려 들면 들수록 춤이 좋아지지 않으니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겠다고 했다. 그녀는 늘 한발짝 떨어져서 내 동작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시범을 보이면서 레슨을 이어나갔다. 몸이 풀리지 않는 날은 스텝부터 다시 가르쳤다. 나는 치마를 두르고 뒷짐을 진 채로 몇시간이고 연습실을 뱅뱅 돌아야 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배에 힘이 들어갔다.

“몸에는 힘을 빼고, 배에만 힘이 들어가도록 계속 걸어보래이. 오야, 그래 잘한다. 애가 터지도록 돌고 또 돌아보래이. 그래하다보면 윽수로 가벼워지든지 무거워지든지 둘 중에 하나는 된다 아이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나는 유명 교수들의 레슨을 따로 받지 않았다. 비용도 부담스럽거니와 어차피 별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 윤원장과의 레슨에 집중했다. 다행히 윤원장이 짜준 15분짜리 승무공연으로 큰 대회에서 입상한 덕분에 엄마가 바라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경축. 본원 출신 김유라 E여대 합격!

2층 상가의 유리창에 내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그러나 길 건너 만수불가마사우나 건물 벽면에 세로로 길게 늘어뜨려진 대형 현수막이 더 크게 눈에 띄었다.

—축. P초등학교 이만수 대통령배 전국야구대회 MVP 수상!

목욕탕을 찾은 여자들은 경사가 겹쳤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에게는 영부인들이 나온 명문여대에 딸이 합격했으니 한턱을 내야 한다고 추켜세웠고, 만수 엄마에게는 대통령상 수상이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가문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좋을 게 뭐가 있냐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돌아오는 휴무일에 밥을 사겠다고 약속했고, 만수 엄마는 앞으로 만수가 미국 대통령도 알아보는 메이저리거가 될 거라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나와 만수에게는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던 듯하다. 두 엄마들 모두 한껏 부푼 꿈을 안고 잠들던 나날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지 일년쯤 지났을 때 목욕탕 입구에서 만수를 만난 적이 있다. 중학생이던 만수는 그때 이미 나와 키가 엇비슷했다. 나는 길 건너 까페에서 만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카운터에서 아이스크림을 받아 든 만수의 걸음걸이가 영 시원치 않아 보였다. 만수는 뒤뚱거리며 걸어와 아주 천천히 자세를 낮추며 의자 끝에 겨우 걸터앉았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래? 맞은 거야?”

“별거 아냐. 코치님한테 단체기합 받았어.”

만수는 아이스크림을 느리게 입에 떠넣었다. 나는 스푼을 테이블에 놓은 채 녀석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별거 아니긴. 심해 보이는데? 볼기 맞은 거 맞지? 부모님한테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말씀드리면 뭐? 뭐가 해결되나? 야구 관둘 거 아닌 이상은 그냥 참아야 해. 다들 그렇게 운동 배우는 거야.”

“그렇게까지 해서 야구를 계속해야 하는 거야? 넌 야구가 그렇게 좋니?”

“딴 거 할 것도 없잖아? 누나, 나는 이 구질구질한 변두리 동네를 뜨는 게 꿈이야. 온갖 사람들이 다 드나들면서 나더러 알은체하는 찜질방도 싫고…… 기억나? 난 혼자 욕조 쓰는 게 꿈이라니까. 이왕이면 졸라 큰 걸로!”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고 있는데도 쓴웃음이 올라왔다.

 

 

9

 

만수는 찜질방 바닥에 떨어진 회색 수건을 한 손으로 줍고 있었다. 한쪽 팔은 깁스를 한 상태였다.

“어이, 유라짱. 오랜만이야. 안 본 사이 더 예뻐졌는데?”

만수는 손에 든 수건이 장삼자락인 양 큰 동작으로 흔들며 알은체를 했다. 일본의 야구 명문고로 유학을 떠났던 만수가 부상을 당해 귀국했다는 소식이 동네에 퍼진 지는 오래였다. 못 본 사이 고개를 숙여 나를 내려다볼 정도로 키가 훌쩍 컸고, 몸이 여문 느낌이었다.

“누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팔은 왜 그래? 많이 다친 거야?”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뭘 그리 팍팍하게 구십니까요. 내 얘기 못 들었어? 나 어깨 아작 나서 다 때려치우고 한국 왔잖아.”

만수는 붕대가 칭칭 감긴 어깨를 가리키며 피식 웃었다.

“이제 일본은 다시 안 가는 거야? 그럼 학교는?”

“일본이고 한국이고 받아주는 학교가 있어야 가지. 당분간은 병원도 계속 다녀야 하니까 집에 있으려고.”

“괜찮아? 여기 나와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나도 안 괜찮아. 존나 심심해. 입으로만 걱정하지 말고 나랑 좀 놀아주든가. 내가 오죽 심심하면 이렇게 찜질방에서 뺑이를 치고 있겠냐?”

그후로 만수는 걸핏하면 내게 연락을 해왔다. 안쓰러운 마음에 담배 심부름을 한번 해준 것이 화근이었다. 만수는 담배가 떨어질 때마다 대신 담배를 사다 달라고 졸랐다. 귀찮아서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수십통씩 걸어대는 통에 휴대전화 배터리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였다. 만수는 내가 올 때까지 찜질방 주차장에서 밤새도록 기다리겠다고 엄포를 놓은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만수가 그렇게까지 나오면 나는 결국 야멸치게 거절하지 못하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집을 나서곤 했다.

“아, 이제 살 거 같다. 진짜 유라짱밖에 없어. 고마워.”

말보로 한갑을 받자마자 재빠르게 껍질을 벗겨 한개비를 꺼내 물며 녀석이 말했다. 찜질방 건물 뒤편의 주차장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꼴이 영 볼썽사나웠다.

“근데 여기서 이래도 되는 거야? 누가 보면 어쩌려고.”

“괜찮아, 어두워서 누군지 잘 몰라. 어딜 봐서 내가 고등학생이야? 일본에서는 신분증 없이도 담배 쉽게 샀는데, 이 동네에서 내가 목욕탕 집 아들인 거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이깟 담배 한갑 사 피우기도 졸라 빡세다니까. 아, 좋다.”

만수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몽롱한 눈길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손바닥을 휘휘 저으며 얼굴에 닿는 연기와 시선을 걷어냈다.

“그렇게 좋냐? 그리고 이렇게 한갑씩 얻어다 피우면서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차라리 한보루씩 사놔. 내가 한보루 사다줄까?”

“뭘 몰라도 한참을 모르시네. 담배 쟁여놨다가 우리 부모님한테 걸리기라도 하면, 그땐 어쩔 거야? 그러면 나뿐만 아니라 유라짱도 아작 나는 거라고. 그리고 말이야, 나는 늘 이렇게 새 담배 한갑을 손에 쥘 때마다 결심을 해. 시바, 그래. 내가 이거 한갑만 다 피우고 끊는다! 늘 그렇게 결심을 한다고요.”

“니가 퍽이나 끊겠다.”

주차장 한구석에 15인승 은색 승합차가 서 있었다. 그 차는 언제나 찜질방 건물 뒷벽과 가장 가까운 주차 라인에 있다. 옆면에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그 차는 만수가 초등학교 6학년 되던 해 야구부 주장이 되었을 때부터 이곳 주차장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장 아저씨, 그러니까 만수 아버지는 그 차로 만수네 학교 야구부 아이들을 곳곳으로 실어 나르느라 바빴다. 차의 목적지는 인근의 다른 학교 야구부 연습장이 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때로 그 승합차는 실제 시합이 벌어지는 동대문구장으로 향하기도 했고, 주말의 프로야구 경기장으로 경쾌하게 달리기도 했다. 만수 아버지는 지방 전지훈련 캠프까지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씩 승합차에 가득 차 있던 야구부 아이들이 남탕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누렇게 먼지가 낀 유니폼을 입은 채 찜질방 입구로 뛰어 들어오는 남자아이들에게서는 시큼한 냄새가 풍겼다. 걸걸한 변성기의 남자아이들이 사우나 입구 카운터 앞에 몰려들어 웅성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동물의 왕국에 온 것만 같았다. 아이들에게 줄을 서라고 소리를 빽 질러대며 로커 키와 수건을 순서대로 나눠주는 만수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나마 만수가 아들인 게 다행이지. 딸을 낳아서 운동부라도 시켰으면, 여탕이 난장판이 됐을 게다.”

만수가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승합차는 야구부 소년들을 여러차례 태워 다녔다. 아들이 일본으로 떠난 후에도 만수 아버지는 차를 팔지 않았다. 종종 단체 손님들을 태우러 오라는 요청이 있다는 핑계를 댔지만, 속으로는 나중에 만수가 프로선수로 데뷔하게 되면 이 차에 동네 사람들을 태워 잠실야구장으로 응원 갈 꿈에 부풀어 있다는 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만수가 유학을 떠난 후로 좀처럼 시동 걸 일이 없었던 만수네 승합차는 지난해 겨울, 오랜만에 시내 나들이를 했다. 내 졸업작품 발표회를 찾은 손님들은 예상보다 많았다. 만수 아버지는 자신의 아내와 우리 엄마는 물론, 매점 언니와 윤원장, 무용학원 후배들까지 열명 남짓한 승객들을 싣고 공연장으로 왔다.

졸업작품인 전통무용극 「심청」에서 나는 여러개의 배역을 맡았다. 심청과 함께 해류를 타며 깊은 바닷속을 허우적거리는 해초가 되었다가, 물속에서 솟아오른 심청의 연꽃을 열어젖히고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선녀들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부녀 상봉이 이뤄지는 엔딩 무대에서는 잔치에 초대된 객이 되어 무대 가장자리에서 어깨춤을 췄다.

나를 보러 온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앉아 열심히 박수를 쳤지만, 정작 내가 어디에서 나타나고 사라졌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손님들 중에서 나를 알아본 이는 엄마와 윤원장, 단 두 사람뿐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윤원장은 꽃다발을 안겨주며 나의 춤선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엄마는 굳은 얼굴로 나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나는 공연 도중 엄마와 눈을 마주쳤던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여러번.

채플이 열리는 붉은색 벽돌 건물 앞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외제차와 고급 세단 사이에서 은회색 승합차는 단연 튀었다. 공연 후 뒤풀이에 참석해야 했던 나는 도깨비 같은 분장을 한 채 차에 탄 손님들을 배웅했다. 제 몸집보다 훨씬 작은 승용차들 사이를 비집으며 느릿느릿 학교를 빠져나가는 덩치 큰 승합차를 보면서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나는 주인공에 뽑히지 못한 것이 그다지 서운하지 않았다. 안쓰러운 형편 때문에 이웃들의 동정을 받은 심청도 싫었고, 연꽃 위로 떠올라 왕후가 되는 바람에 동경의 대상이 되는 심청은 더더욱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무용극 속의 심청이 인당수 장면에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디찬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무대는 어차피 거짓일 뿐이라고 냉소했다. 온탕에 몸을 담글 때조차 사람들은 조금씩 몸에 물을 묻힌 후 들어간다. 발끝이나 손끝으로 물의 온도를 확인한 후에 탕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는 벌거벗은 여자들을 보면서 나는 자랐다. 무용을 통해 인간의 몸이 얼마나 아름다운 곡선과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는지 배우기 이전에 그저 몸은 몸일 뿐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채버렸다. 그것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끊임없이 씻겨주어야 하는 살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오히려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자라면서 몸이 여자의 꼴을 갖춰갈수록 내 안에서는 망설임과 두려움이 커져갔고, 내 춤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10

 

오전 9시 전후로 여탕에는 출근 멤버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전용 개인 로커를 두고 매일 목욕탕을 찾는 중년 여성들의 사교모임은 평일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에 가장 활발해지는데, 얼음을 띄운 녹차를 마시며 피부관리와 다이어트에 대한 정보를 나누다가 재테크와 사교육으로 화제가 옮겨지는 식이었다.

여탕 커뮤니티에서 입김이 가장 센 여자는 ‘수리부인’이었다. 수리부인은 길 건너 사거리에 위치한 하이레벨수학학원의 원장 부인으로 초등부 강의와 상담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나도 수포자가 되기 전인 중학교 2학년 때 그 학원을 잠깐 다닌 적이 있다. 그녀는 점수에 예민하게 굴면서 원장보다 더 극성맞게 학생들을 괴롭히는 바람에 원생들 사이에서 수리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하이레벨수학학원이 이 지역에서 빠르게 자리 잡는 데에는 수리부인의 수완이 큰 역할을 했다. 학교 성적이 우수한 소수의 학생들을 모아 원장이 특별 지도하는 심화반을 만들어놓고 학부모나 학생이 제 맘에 들지 않으면 레벨이 낮은 반으로 강등시켜버리곤 하는 수리부인에게 학부모들은 돈을 내고 학원을 다니면서도 절절맸다. 처음부터 잘하는 아이들을 모아놓아서 아이들의 성적이 잘 나오는 것임에도 심화반은 동경의 대상이 됐다. 수리부인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입담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데 능했고, 여탕에서 오가는 여러 정보의 중심에 있었다. 재테크와 사교육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자질을 뽐냈고, 동네에서 떠도는 각종 추문에도 밝았다.

문제는 엄마와 수리부인이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목욕탕은 만수네 소유였지만, 목욕침대에서 지켜야 하는 룰은 엄마가 정했다. 계산은 선불이 원칙이었고, 아니면 로커 키를 맡겨야 했다. 엄마가 쓰는 샤워기 옆의 벽면에는 긴 열쇠걸이가 붙어 있었다. 로커 키를 맡기는 순서대로 때를 미는 순서가 정해졌기 때문에 손님들은 목욕탕에 들어오자마자 열쇠걸이에 자신의 키를 걸어놓곤 했다. 키를 미리 맡기지 않아도, 때를 밀기 직전에는 로커 키를 내놓거나 현금을 가져와야 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온탕에서 때를 적당하게 불린 상태에서 물 묻은 몸으로 탈의실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을 꺼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엄마의 룰에 따르지 않는 여자는 목욕침대 위에 누울 수 없었다.

“싫으면 밀지 마요. 여기 지금 다른 사람들 키 걸어놓은 거 안 보여요? 다들 이렇게 하고 있어요. 키를 맡기시든지 선불로 내시든지.”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수리부인에게 엄마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니, 이봐 여탕! 이렇게 젖은 몸으로 어딜 나갔다 들어오라는 거야? 내가 나중에 준다잖아. 이 여자가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먹어?”

수리부인은 대뜸 말을 놓으며 쏘아붙였다. 엄마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말귀 못 알아먹는 사람이 누군지 잘 모르겠네. 됐고, 나는 당신 같은 손님 안 받으니까 시끄럽게 하지 마요.”

“야,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니가 뭔데 손님을 받고 안 받고를 결정해? 너 내가 누군지나 알아?”

“나는 아줌마가 누군지는 전혀 관심 없고요. 로커 키 몇번 손님인지, 나한테 키를 맡길 건지 말 건지만 궁금하거든요? 기분 나쁘다면 죄송하지만, 선불이 원칙이에요.”

매일 목욕탕에 출근하다시피 하는 수리부인이 누구인지 엄마가 모를 리가 없었다. 사실 여탕에 오는 모든 손님들이 엄마에게 아는 사람이자 모르는 사람이었다. 엄마에게 알몸을 맡기며 친해졌다는 생각으로 몇만원 외상을 하려는 단골에게도 엄마는 매몰차게 굴었다. 선불 요금을 내거나, 로커 키를 맡기거나. 엄마가 표독하다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이 원칙을 고집하는 것은 더이상 그 누구에게도 속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후 나는 목욕탕에 수리부인이 나타날 때마다 긴장이 됐다. 그녀가 걸핏하면 엄마에게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다. 목욕탕 바닥이 너무 더럽다느니, 목욕의자에 물때가 끼었다느니, 물 온도가 차갑거나 뜨겁다고도 트집을 잡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걸 왜 나한테 그래요? 청소 아줌마는 따로 있는데”라고 맞받아치면서도 그녀의 불만거리를 해결하려 애썼다. 샤워기를 틀어 타일 위에 뜨거운 물을 흩뿌린다든지, 카운터에 연락해 물 온도를 조절해달라고 한다든지…… 손님이 뜸할 때는 직접 고무장갑을 끼고 목욕의자나 세숫대야 등속을 닦아대기도 했다. 수리부인을 포함해 엄마를 여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누군가 “어이, 여탕!”이라고 소리치며 엄마를 부르고, 거기에 아무렇지 않게 엄마가 호응할 때면 나는 찬물세례를 맞은 것처럼 마음이 착잡해졌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수리부인이 옷도 벗지 않은 채로 씩씩거리며 여탕에 들어와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던 순간, 공교롭게도 나는 습식사우나실에서 땀을 빼고 있었다. 불과 십분 전 습식사우나실에 모인 여자들이 미용 소금을 각자의 몸에 비벼 바르며 수리부인에 대해 뒷담화할 때만 해도 그 불똥이 엄마에게 튈 줄은 몰랐다. 수학학원 원장이 명문대 수학과 출신이라고 떠들썩하게 광고하더니 알고 보니 그 대학의 지방캠퍼스 출신이었고, 남편과 캠퍼스 커플이었다고 자랑했던 수리부인은 그마저도 졸업한 적이 없더라고 수군대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여탕 커뮤니티에서는 꽤나 뜨거운 화젯거리인 모양이었다. “그만해, 유라 듣겠다. 나가서 이야기해.” 이미 내가 다 듣도록 떠들다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사우나실 밖으로 나가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혼자 남은 사우나실에서 다리를 곧게 피고 앉아 스트레칭을 하려던 참이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고성에 나도 모르게 다리를 멈칫하게 되었다.

“니가 그랬지? 소문낸 거 너지?”

옷도 벗지 않고 훈기가 가득한 여탕으로 들어온 수리부인은 금방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엄마는 때수건을 손에 낀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수리부인을 바라보았다.

“바쁜 사람 붙잡고 갑자기 무슨 시비야?”

“여탕이 나한테 감정이 좋지 않은 줄은 알았지만 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이러면 안 되지. 누굴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니? 너 인생 그렇게 살지 마. 그렇게 살면 죄받아. 결국 다 자식한테 가게 되어 있어.”

“이 여자가 못하는 소리가 없네. 왜 뜬금없이 남의 자식한테 악담이야?”

내 얘기가 나오자 엄마는 파르르 떨며 때수건을 벗어던졌다. 수리부인은 조금도 기세가 꺾이지 않은 채 엄마를 노려보았다.

“이봐 여탕, 할 말 있으면 앞에서 해. 뒤에서 사람 우습게 만들지 말라고. 다들 그러던데, 여탕이 그러더라고. 니가 내 얘기 이상하게 하고 다닌 거잖아! 얻다 대고 말질이야?”

“여탕에서 들은 거겠지, 여탕한테 들은 게 아니라. 왜 이러는지 대충 짐작은 가는데, 따질 거면 번지수나 정확히 알고 제대로 따져. 그리고 그동안 참았는데 내가 왜 여탕이니? 여탕은 호칭이 아니라 장소야. 좋은 학교 나왔다고 뻐기더니 그것도 모르냐?”

엄마는 세숫대야를 들어 올려 빈 목욕 침대 위에 물을 쏴 하고 끼얹었다. 목욕침대 옆에 서 있던 여자의 한쪽 허벅지로 뜨거운 물이 쏟아져내렸다.

“앗, 뜨거! 이년이 보자 보자 하니까.”

수리부인이 엄마의 머리채를 휘어잡으면서 두 여자가 엉켜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여탕의 다른 손님들은 “어머, 어떡해!”라며 발만 동동 굴렀지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는 이가 없었다. 내가 굳이 엄마를 말리지 않은 것은 엄마에게 전적으로 유리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수리부인은 목소리만 컸지 제대로 맥도 못 추렸다. 알몸인 엄마는 젖은 머리카락을 잡혔다가 수리부인을 밀치면서 풀려났다. 흥분한 수리부인이 괴성을 지르며 다시 달려들었지만 미끌미끌한 엄마의 알몸에 제대로 손을 댈 수조차 없었다. 엄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았다가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엄마는 수리부인보다 몸피는 작아도 팔다리가 길었고 팔 힘이 훨씬 더 셌다. 매점 언니가 뛰어 들어와 뜯어말리기도 전에 수리부인은 여탕 바닥에 풀썩 나동그라졌다.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저년이 나를 죽이려고 작정을 했네. 다들 봤지? 나 방금 죽이려고 내던지는 거. 이 미끄러운 바닥에서 머리라도 부딪혔으면 바로 뇌진탕이야.”

수리부인이 바닥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죽는시늉을 해대자 엄마는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묶으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던지긴. 당신이 제 힘에 못 이겨 튕겨나간 거잖아!”

수리부인은 폭행, 살인미수, 모욕, 명예훼손 등등 잡스러운 죄목을 열거하며 엄마를 고발하겠다느니, 망하게 하겠다느니 한참이나 길길이 뛰다가 땀이 범벅이 된 채로 목욕탕을 나갔다. 소문낸 적이 없다고, 계속 아니라고 하는데도 억지를 부리며 엄마를 몰아붙이는 수리부인의 모습은 그저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흔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여탕에 문제가 생길 때면 엄마를 먼저 찾았다. 뭔가를 잃어버리고 짜증이 치밀어 올랐거나, 목욕탕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 다짜고짜 엄마부터 다그쳤다. 여탕에서 가장 만만한 사람이 엄마였으니까.

“딸년 대학 잘 보냈다고 기고만장해가지고는. 평생 남의 때나 밀어주고 살아라!”

수리부인은 내게 시선을 힐끗 던지며 여탕을 나갔다. 여자가 퍼붓던 그 어떤 험한 말보다 나 때문에 엄마가 기고만장해졌다는 말이 나를 아프게 했다. 수리부인의 악의로 가득 찬 험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에게 유일한 희망이 나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알았다. 엄마의 꿈이 비누거품처럼 형체도 없이 흩어져버릴 예정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서 나는 오래도록 머금고 있었다.

목욕탕은 계급장을 떼고 알몸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엄연히 서열과 위계가 존재했다. 여탕에서는 피부와 몸매 관리, 재테크, 자식 교육에 능한 여자들의 입김이 세고 서열이 높았다. 예쁘고 날씬한데다 재개발이 예정된 지역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고, 자식 대학까지 잘 보낸 엄마를 사람들이 대놓고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때밀이 아줌마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때밀이인데도 불구하고 아름다웠고, 돈을 잘 벌었고, 자식을 잘 키운 여자. 엄마의 모든 행위 앞에는 ‘불구하고’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것은 아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엄마가 때를 밀어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무용을 전공하고 있는 내게도 마찬가지로 따라다니는 수식어였다. ‘불구하고’라는 수식어는 어쩌면 ‘불과하다’와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 때밀이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엄마를 추켜세우는 목소리는 역설적으로 그녀가 때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 모녀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11

 

수리부인 사건만 아니었다면, 무용을 포기하려던 선택이 조금 더 빨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전공을 바꿔 다른 학과로 옮기는 것은 어떨지 여러번 고민했다. 무용학과를 다니는 데에는 등록금 외에도 많은 돈이 들었다. 의상비, 작품비, 분장비 등 학기마다 여러가지 명목으로 엄마에게 돈을 타 갈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씀씀이가 큰 동기들과 어울리는 일도 스트레스였다.

실기수업 시간에 전공교수는 시선 처리가 어색하다며 나를 앞으로 불러 세웠다. 내 앞에는 열명 남짓한 학생들이 있을 뿐이었지만, 네모난 연습실 벽면이 모두 거울로 둘러싸인 탓에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수백개로 늘어나 있었다. 교수는 호통을 치며 내게 방금 한 동작을 다시 해보라고 했다. 나는 엉거주춤한 포즈로 등을 꺾고 팔을 올렸다.

“그게 아니야. 좀더 비스듬하게 등을 돌려야 해!”

교수는 짝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내 등짝을 세게 내리쳤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나는 다시 몸의 각도를 조금 비틀어보려 애썼지만, 자세는 오히려 더 구부정해졌다.

“어머, 얘 좀 봐. 너 왜 이렇게 먹통처럼 구니? 다시, 다시, 다시!”

선생은 내 팔을, 허리를, 어깨를 잡고 흔들며 내가 만들어야 하는 몸의 각도가 얼마만큼인지를 반복적으로 주입했다. 그날 수업이 끝나는 시각까지 나는 다른 학생들 앞에서 자세 교정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결국 교수가 원하는 자세를 완성하지 못한 채 그 시간을 흘려보냈다.

윤원장처럼 나에게 맞춤식으로 무용을 가르쳐주는 스승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이 나를 배려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는 늘 형편없는 전공실기 점수를 메우기 위해, 이론이나 교양 과목을 열심히 들어야 했다.

나는 대학 시절 내내 독무를 추거나 무대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엄마는 당신의 딸이 단역에 불과하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몸으로 확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나는 좋은 춤을 추기에는 너무 뻣뻣했고, 경직되어 있었다. 주인공은 단 한명뿐이다. 누구든 확률적으로 조연이나 엑스트라에 머물 비율이 훨씬 더 높다는 점을 엄마는 간과하고 있었다.

졸업작품 발표회에서 주인공 심청 역을 맡은 동기는 심청처럼 편부 슬하도 아니었고, 나처럼 편모 슬하도 아니었다. 그녀는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직후부터 발레를 배웠고, 예술중, 예술고를 거치는 동안 지금까지 단 한번도 스포트라이트를 놓쳐본 적이 없는 무용수였다. 부족함 없이 자라난 그 아이와 나의 환경을 비교하고, 내 처지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한계가 너무 명확했고, 그것을 넘어설 의지도 박약했다. 어쩌면 이러한 태도의 차이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예술적 재능의 유무’를 결정짓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종종 생각했다.

“이런 거 하지 마. 그게 엄마를 돕는 거야. 넌 아무 신경 쓰지 말고 무용만 잘하면 돼.”

여탕 바닥에 떨어진 우유팩과 일회용 샴푸 껍질 따위를 줍고 있는 나를 보고 엄마는 손님 때를 밀다 멈추고 달려왔다. 엄마는 내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무용 한가지만 잘하면 된다고, 손에 물 묻히는 일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다.

엄마는 콩쿠르에서 일등을 차지한 나의 사진이 실린 무용잡지 기사를 코팅해 탈의실에 있는 자신의 사물함에 붙여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들여다보았다. ‘정중동(靜中動)의 호흡을 완벽히 숙지하여 나이답지 않은 한(恨)의 정서를 승무에 담아내었다’는 심사평이 실린 기사였다. 내 효도는 거기까지였다. 무용을 잘하는 게 가장 큰 효도라고 강조했던 엄마를 나는 결국 배신해버렸다. 승무는 모든 고전무용의 기본이 되는 춤일 뿐, 나는 거기서 더 발전된 다른 무용을 보여줄 자질이 없다며 엄마를 설득했다. 다양한 춤을 사사하기 위해서는 가욋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과 해외 콩쿠르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작품비는 물론 교수의 항공료와 체류비용 일체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졸업공연의 주인공 심청은 의상을 딱 한번 갈아입었다. 바다에 빠지기 전에는 남루한 옷을 입었다가 화려한 옷을 입고 왕후로 다시 살아났다. 그녀와는 달리 나는 선녀, 해초, 잔치손님 등등 여러개의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빠르게 의상을 갈아입고 무대를 오르내리느라 물 한잔 마실 틈이 없었다. 단역이라고 해서 준비가 쉬운 것도 아니었다. 배역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춤 동작을 익히느라 바빴고, 다른 단역들과 호흡을 맞춰 군무를 추기 위해 오랜 시간 연습해야 했다. 그리고 그 무대는 내 생애 마지막 무용 공연이 됐다. 주인공이 아닌 사람들,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은 버거울 정도로 여러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무용만 잘하면 안 해도 된다고 들었던 일의 목록을 무용을 그만두면서 떠올려보게 됐다.

 

 

12

 

무용단 오디션을 포기하고 예술경영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윤원장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니는 원래 큰 춤꾼은 못될 재목인기라. 몸이 그래 쉽게 안 풀리가 우째 춤을 계속 추겠노. 때리치울 때가 됐는데, 때리치울 때가 됐는데…… 저 가스나가 언제까지 할라나 한번 두고 보자 카면서 계속 봤는데, 생각보다 끈질기가 신기하다 캤다.”

“선생님, 근데 왜 포기하라고 안 하셨어요?”

“니가 계속해볼라 카는데, 내가 머한다꼬 때리치아라 카노.”

“그래도, 어차피 안 될 거라는 거 아셨잖아요.”

“와, 내가 너거 엄마한테 돈만 홀켜먹은 거 같나?”

“아니, 그게 아니라……”

“니가 남의 손은 쉽게 못 받아도 말귀를 잘 알아먹고, 니 춤이 이상하게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기 있어갖고 하는 데까지는 한번 해보자. 그래 싶었지. 니 승무 추는 거 보면 내는 한번씩 윽수로 슬퍼갖고 걱정되드라. 가스나 저거 저래 승무 추다가 진짜 비구니처럼 살아서는 안 될 낀데.”

“네? 비구니라뇨.”

“니도 너거 엄마처럼 살까봐 내가 걱정이 태산이다. 춤이야 때리치아도 되는데 평생 외로블까봐……”

“선생님은 엄마랑 반대로 말씀하시네요. 엄마는 결혼도 안 하고 아기도 안 낳아도 된대요. 무용가로 성공해서 비즈니스 클래스 타고 다니면서 세계 곳곳에 공연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대요.”

“니 어차피 그럴 그릇은 안 된다. 니도 그거는 알고 있제?”

나는 멋쩍게 웃으며 물었다.

“선생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뭔데?”

“선생님은 꿈이 뭐였어요?”

“내 꿈? 내야 뭐, 인간문화재가 되는 기 꿈이었다 아이가.”

“인간문화재요? 근데 왜 못 됐어요?”

“우리 스승이 인간문화재가 안 돼가지고. 원래 스승이 먼저 인간문화재가 돼야 나중에 그 스승한테 배운 제자도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는 긴데.”

젊은 시절, 윤원장은 무형문화재인 동래학춤의 전수자였다. 갓을 쓰고 흰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춤사위를 펼쳐대는 그녀의 옛날 사진을 보면, 시시한 춤꾼 같지는 않았다. 인간문화재가 되지 못한 스승에게 배운 원장은 인간문화재는커녕 무용가도 되지 못한 채 변두리 무용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나는 어쩌면 윤원장보다 더 초라하게 늙어갈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스쳤다.

“청출어람도 다 헛말이네요. 뭐 이렇게 갈수록 후져진담.”

“유라야, 니 학춤의 최고 경지가 뭔지 아나?”

“그게 뭔데요?”

“학춤의 최고 경지는 학을 불렀는지 내를 불렀는지 모르는 거라꼬, 우리 스승님이 그러시더라. 사람들이 보고 저거를 춤이다 생각하는 기 아이라, 저거는 인간이 아니고 학이다! 이래 느끼야 되는 거라고.”

“에이, 말도 안 돼요. 종(種)이 다른데, 무슨…… 그냥 하는 말이겠죠.”

“그러니까 니나 내나 이거밖에 안 되는 기라. 우리는 내를 버리고 학이 될 수가 없다 아이가. 한낱 필부밖에 안 되는 기지.”

“선생님, 근데 전 평범하게 사는 것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 그것도 쉽지 않데이. 특히 니 보면 내가 가심이 갑갑하다. 대학원 가믄 무신 답이 있을 것 같드나?”

“공연 기획을 전공해보려고요. 요즘 한국무용의 세계화가 붐이잖아요. 무용은 계속할 자신이 없으니까.”

확고한 계획이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저 학생 신분을 유예시키기 위해 결정한 일이었다.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윤원장이 천천히 입을 뗐다.

“니가 와 안 되는 줄 아나? 니는 생각이 너무 많아. 춤추는 년이 그렇게 생각이 많아서야……”

나는 샐쭉해져서 입을 내밀었다.

“저도 알아요. 그래서 차라리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그런 거예요.”

“공부도 마찬가지데이. 머든지 생각이 많으면 안 된다. 연애고, 공부고 세상사가 다 그렇드라.”

윤원장은 내게 연애도 하면서 인생을 즐겁게 살라고 조언했다. 나는 대답 없이 싱겁게 웃었다.

 

 

13

 

윤원장에게 말은 안 했지만, 대학 시절 몇명의 남자들과 연애를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과 같이 있을 때면 건식사우나실에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숨을 쉴 수도 없었고, 빨리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불편함만 가득했다. 특히 그들이 내 몸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이 싫었다. 이상하게 남의 손이 내 신체에 닿으면 온몸에 닭살이 돋을 만큼 경직되었다. 성적 흥분과는 달랐다. 팔을 만지면 팔이, 다리를 만지면 다리가 잔뜩 긴장했고, 허리를 감으면 척추가 곧추설 정도로 허리가 긴장됐다. 어떤 남자들은 내가 순진해서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오해였다. 그것은 내가 무용을 배울 때 부딪혔던 것과 같은 종류의 문제였다. 나는 그 누구와도 몸을 섞을 수 없었고, 결국 사우나실의 모래시계를 뒤집듯 그들과의 관계를 서둘러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사는데……”

무용을 관두고 대학원에 진학한 뒤로 엄마는 예전에는 하지 않던 신세 한탄이 부쩍 늘었다. 엄마는 내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랐다. 컴컴한 지하가 아닌 밝은 무대에서 박수받고 살기를 바랐다. 나 또한 엄마처럼 사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하지만 나는 빛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 믿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장단에 몸을 맡기듯 소박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엄마의 삶에서 다른 선택지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선택한 삶은 여탕에서 남의 때를 밀면서 딸을 뒷바라지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자신의 유일한 밑천이 몸이라며, 철저히 건강을 관리하면서 살아왔다. 꼬박꼬박 영양제를 챙겨 먹었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엄마는 여탕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고 제 몸을 닦는 가운데, 속옷을 입고 남의 몸을 씻겨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본의 아니게 엄마의 몸은 벌거벗은 여자들이 가장 유심히 보는 대상이 되었다. 엄마는 늘 속옷만큼은 고급으로 입었다. 속옷이 아니라 작업복이라고 엄마는 누누이 강조했다. 실크로 된 붉은색 브래지어와 팬티를 입은 채로 젖어 있는 엄마의 모습은 꽤 도발적으로 보였다. 어쩌면 여자들은 엄마에게 몸을 맡기면서 묘한 흥분과 우월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대를 끝내고 간단하게 주변 정리를 마친 다음 엄마는 늘 냉탕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사실 수영이라기보다는 좁은 공간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치는 발장구에 가까운 동작이었다.

엄마는 이십년 가까이 아침마다 냉탕에서 정갈한 의식을 치르듯, 최선을 다해 크게 다리를 움직이며 발장구를 쳤다. 손님이 없을 시간이라 엄마의 발장구 소리는 매우 컸다. 사방으로 물이 튈 정도로 큰 물보라까지 만들어냈다. 엄마는 복근과 허벅지를 단련시키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엄마의 전(全)생애의 무게를 발끝에 실어 어디론가 나아가려는 움직임처럼 보였다. 지금 몸을 담근 곳이 냉탕 욕조가 아니고 큰 바다라면 아주 멀리멀리 내가 없는 곳으로 멋지게 유영해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이야말로 엄마는 누구보다 생생했다. 나는 냉탕에서 놀고 있는 엄마를 볼 때면 냉탕 욕조 바닥에 깔린 파란 타일처럼 마음이 시렸다. 첨벙첨벙 엄마의 발장구 소리가 목욕탕 전체에 크게 울려 퍼질 때면 내 마음은 끝도 없는 심해 속으로 텀벙텀벙 가라앉아버릴 것만 같았다.

 

 

14

 

만수는 캠퍼스 한편에 자리 잡은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에 서서 희뿌연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교내에 몇군데 안 되는 흡연 허용 구역이라, 나무 아래 벤치 주변에는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이 여럿 보였다.

만수는 발밑에 소복하게 깔린 노란 은행잎을 툭툭 차면서 빙글거렸다.

“와, 이렇게 여대생들이랑 맞담배 피우고 있으니까 졸라 기분 좋네. 유라짱, 너네 학교 물 진짜 죽인다! 나는 유라짱만 이쁜 줄 알았는데, 여기 와서 보니 유라짱은 그저 그런 수준이야. 나도 나중에 너네 학교 입학해야겠다.”

“멍청하긴, 니가 어떻게 여대에 입학하냐?”

“아 맞다, 여기 여대지? 어쩐지 학교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더라. 나는 옛날부터 여탕이 더 정감있고 편하더라고. 아흐, 남탕은 너무 삭막해.”

휴지통에 담배를 비벼 끄며 너스레를 떠는 녀석의 볼이 푹 꺼져 있었다. 만수는 열흘 전 왼쪽 어깨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았다. 만수의 어깨는 재활불능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만수가 더이상 선수생활을 지속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투수 유망주로 불렸던 만수로서는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학교 구경을 시켜달라는 만수의 부탁을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학교 앞에서 밥이나 한끼 사주면서 기분전환을 시켜줄 생각이었는데, 녀석은 계속 술을 사달라고 졸랐다.

“유라짱, 사람이 이러는 게 아니지. 분명히 퇴원하면 술 사준다고 약속했잖아. 그때 병실에 병문안 왔을 때 약속한 거 나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무슨 소리야? 너 혼자 우긴 거지, 난 약속한 적 없어. 미성년자가 술은 무슨. 까불지 좀 마.”

“씨바, 내가 미성년자니까 유라짱한테 술 사달라고 하지. 내가 내 돈 내고 내 친구들이랑 술집 갈 수 있으면 너한테 왜 사달라고 하겠냐?”

내게 술을 얻어먹을 생각에 힘든 입원 기간을 견뎠다며 억지를 부리는 녀석의 고집을 결국 꺾지 못했다.

학교 앞 호프집에서 만수는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천천히 생각해보라고 했다. 만수는 이제 겨우 열여덟살이었다.

“그러는 유라짱은? 유라짱은 뭐가 결정되어 있나? 학교 다니는 건 재미있어? 대학원 끝나면 교수님 되는 건가?”

“나도 몰라. 공연 기획이나 마케팅을 공부해보려고 대학원 온 건데 졸업 후에 보장된 건 아무것도 없어. 이쪽 계통에서 정규직 취업은 거의 불가능하더라.”

만수는 내게 왜 무용을 포기했는지 물었다.

“난 재능이 없어.”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재능이 대수인가? 그냥 좋으면 하는 거지. 유라짱, 나도 처음에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어서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게 꿈이었어. 그런데 이제 이렇게 되고 보니, 프로팀에 못 들어가고 2군이 되더라도 그라운드에 나설 수만 있으면 좋겠어. 사실 그것도 이제는 물 건너갔지 뭐. 이렇게 몸이 안 따라주게 생겼으니.”

만수는 소주를 입에 털어넣었다. 나는 녀석이 비운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허탈하게 웃었다.

“나도 몸이 안 따라주는 건데?”

내게도 단지 찜질방을 벗어나기 위해 무용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힐끔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목욕탕에서 방과 후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무용학원이 훨씬 편했으니까. 유명한 무용가가 되어서 엄마를 여탕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는 희망을 품은 적도 있었다. 엄마가 화려한 속옷이 아닌, 화려한 외투를 입고 세상을 활보하게 해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만수와 마찬가지로 이 동네로 다시 돌아올 운명이었다.

만수는 다시 일본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만수보다는 자신의 일본 이름인 미쯔히데로 사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도 했다.

“너 일본 가더니 친일파 다 됐구나?”

내가 입을 삐죽거리며 핀잔을 주자 녀석은 발끈하며 대들었다.

“그런 게 아니야! 유라짱도 나름대로 힘든 점이 많았겠지만 시장 입구에 자기 이름이 커다랗게 걸린 채로 사는 인생도 무지 피곤하단 말이야. 내가 만수찜질방의 만수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 목욕탕만 갔다 하면 이놈 저놈이 다 나더러 알은체를 해. 만수야 등 좀 밀어다오. 만수야 치약이 떨어졌구나. 만수야 너희 아버지더러 남탕 온도 좀 높여달라고 해다오. 만수야, 만수야, 만수야…… 언제부터인가 그냥 동네 꼬맹이들도 막 불러도 되는 이름이 되어버렸더라고.”

“그런 심부름은 안 하면 되지. 네가 목욕탕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잖아.”

“내가 누누이 말하잖냐. 상호명이 만수불가마사우나만 아니라도 그냥 쌩까겠다고. 만수사우나에서 만수가 성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우리 부모님은 밤낮으로 눈 시뻘게져서 카운터만 번갈아 지키고 있는데……”

그러고 보니 만수는 어려서부터 손님들에게 싹싹했다. 언제나 밝고 장난기 넘치던 모습 뒤에 숨겨진 고민이 조금 애틋하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야구부 아이들 데려다가 목욕시켜주는 것도 싫었어. 사내놈들이 투명인간이 되면 여탕 구경 간다고들 하잖아. 나는 만약에 그런 기회가 생기면 호텔 스위트룸에 숨어들어서 혼자 조용히 욕조에 몸 담그고 목욕해보고 싶어. 구두쇠인 우리 아버지가 살림집에는 온수 안 나오도록 잠가놓아서 집에서는 샤워도 못해요. 사춘기 때는 몸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잖아. 매일 남탕에 내려가서 목욕해야 하는 거, 진저리나게 싫었어.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는 가출을 고민할 정도였다니까.”

“아유, 귀여워라. 사춘기 시절? 그럼 이제 우리 만수 사춘기 아니야? 이 누나가 보기에 아직도 질풍노도의 반항기 같은데?”

“애 취급하지 말래도 계속 그러네. 나도 알 거 다 알고, 겪을 거 다 겪었어.”

만수는 일본에서 자신의 여자관계가 얼마나 복잡했는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떠벌리면서 허세를 부렸다. 테이블 위의 술병은 점점 더 늘어났다. 나는 내세울 것도 없는 연애사를 늘어놓으며 입 안에 소주를 털어넣었다. 헤어진 남자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면서 한잔, 한잔, 그리고 또 한잔 더. 만수는 나를 비웃었다. 자신은 여자 문제 따위로 고민한 적은 없다며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테이블 위의 술병은 점점 더 늘어났다.

만수와 나는 연거푸 두잔씩 소주를 들이켰다. 취기가 더 빠르게 올라왔다.

“정말? 근데 너 진짜 여자랑 자봤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내가 일본에서 얼마나 날렸는지, 모르지? 요오꼬, 미즈끼, 또 누구냐 음…… 미나짱…… 근데 말이야, 내가 제일 많이 잤던 사람이 유라짱이었어. 흐흐, 물론 상상으로 한 거지만.”

“야, 인마. 너 까불지 말랬지?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너는 태어나지도 않았어. 어릴 때 내가 너 얼마나 많이 업어줬는지 기억 안 나니? 니가 고추 덜렁거리면서 여탕에서 뛰어다니던 것까지 난 다 기억난다고.”

“나도 너 기억나. 내가 일곱살 때까지 여탕에 드나들었는데 말이야. 다른 여자들 몸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유라짱만은 너무 선명하게 기억나. 유라짱은 중학생이었지? 그때 니 가슴, 니 몸매 같은 것들이 아직도 생생해. 그 순간 내 고추가 움찔하던 느낌까지도. 내가 그후로 여탕에 안 갔던 거 유라짱은 모르지?”

“미친놈.”

만수가 내게 입을 맞추었다. 나는 입 안으로 감겨들어오는 만수의 혀를 거절하지 않았다.

 

 

15

 

원적외선 찜질방처럼 붉은 조명이 은은하게 퍼져 있는 모텔 침대에 누워 나는 심호흡을 여러번 했다. 경험이 많다고 큰소리쳤던 만수도 꽤 긴장이 되는 눈치였다. 팬티를 벗겨놓고도 어디로 들어와야 하는지 몰라 한참을 헤매는 모습이 서투르고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만수의 뜨거운 성기가 내 아랫도리에 닿았다. 눈을 질끈 감고 숨을 참았다. 만수가 내 안으로 들어오려고 할수록, 내 몸은 더 경직되었다. 녀석은 발기된 성기를 움켜쥔 채로 울상을 지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온몸의 긴장을 풀려고 했지만, 아래위 몸이 따로 노는 듯 하체에만 잔뜩 힘이 들어갔다.

조금씩, 조금씩, 뜨겁고 딱딱한 기운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어금니를 깨물고 고통을 참고 있는 사람은 나인데, 도리어 만수가 소리를 질렀다.

“힘 빼, 다리에 힘 좀 빼라고!”

만수가 시키는 대로 허벅지에 들어간 힘을 빼려고 애썼더니 이번에는 허리와 아랫배로 통증이 몰려왔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만수를 밀쳐냈다. 욕실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만수는 문을 두드리며 패전 위기에 놓인 투수처럼 초조하게 싸인을 보내왔다.

“유라짱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갑자기 그렇게 도망가버리면 난 어떡하라고? 유라짱, 아니 유라 누나! 문 좀 열어봐.”

나는 대답 없이 오래도록 변기 위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알몸으로 변기 뚜껑을 올린 채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무릎 사이로, 다시 무릎과 무릎 사이로 얼굴을 자꾸만 파묻었다. 만수의 노크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내 옆에는 하얗고 커다란 욕조가 있었다. 둥근 욕조 옆에 서서 표면을 매만져보았다. 욕조는 미끈하고, 차가웠다. 나는 샤워기를 틀어 뜨거운 물로 온몸을 오래도록 씻었다.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는 내가 만만하지? 그냥 애처럼 보이지? 사람 가지고 장난치지 마.

 

화장대 위에는 만수가 남긴 메모가 놓여 있었다. 단단히 약이 오른 듯한 녀석의 필체를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만수가 만만해서 같이 자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타인과 타인이, 서로의 몸을 통해 기쁨을 주고 위안을 나눌 수 있다는 서사는 도처에 널렸지만 내 몸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이야기였다. 만수의 쪽지를 휴지통에 버리려다 핸드백에 챙겨 넣었다. 그러고는 옷을 챙겨 입고 거리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16

 

택시 뒷좌석에 앉아 지갑을 확인했다. 술값과 모텔비를 치르고도 꽤 넉넉하게 현금이 남아 있었다. 지갑 속에 손을 넣어 지폐를 세어보았다. 엄마가 내게 건네는 돈은 항상 빳빳하게 다려져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한번 젖었다 말린 돈 특유의 감촉은 사라지지 않았다. 택시는 처음 밝혔던 목적지인 구도심의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 간판 앞에 섰다.

입구로 들어가다가 건물 옆 벽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만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다가가자 만수는 벌레 씹은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든 담배를 땅바닥에 던졌다.

“오늘 일은 미안해. 누나가 되어서 한참 어린 너한테 그러면 안 되는데……”

“아, 씨발. 오늘따라 담배맛 되게 드럽네.”

만수는 내 말을 욕질로 끊으며 땅에 떨어진 담배의 남은 불씨를 발로 비벼 껐다. 그러고는 잔뜩 골을 내며 땅바닥만 쳐다봤다. 나 역시 만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만수를 세워놓고도 쳐다보지 않은 채 대로변에 시선을 두고 한동안 서 있었다. 둘 사이에 고여 있던 침묵을 깬 것은 나였다. 만수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운 주절거림이었다.

“원장 쌤이 예전에 그런 말을 했어. 춤이든 사람이든 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 건 그만큼 자기 자신을 내어준다는 뜻이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내려놓아야 한다고도. 요즘에는 계속 그 말이 생각나.”

만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뭐라는 거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나는 만수를 이해시킬 수 없었다. 한번도 자기 자신을 온전히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제대로 내어주지도 내려놓지도 못한다고, 나는 나 자신인 채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씩씩대는 만수의 얼굴을 보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만수도 나에게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달싹거리다가 말을 삼켰다.

“젠장, 지랄 맞기는! 어디서 꼰대질이야.”

만수는 하려던 말 대신 욕을 내뱉으며 내 어깨를 밀쳐내듯 툭 치면서 지나갔다. 순간 내 몸이 휘청거렸지만 만수는 알은체도 하지 않고 찜질방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이 관계가 망쳐진 지금에야 만수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만수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더 찜질방 앞에서 서성이다가 여탕이 있는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엄마는 아무도 없는 여자 탈의실 평상 위에 혼자 누워 있었다. 팬티와 브래지어도 입지 않고 벌거벗은 채 얼굴에 수건 한장만 덮고 잠들어 있었다. 일자로 누워 있는 엄마의 깡마른 몸은 마네킹을 연상시켰다. 숨 쉴 때마다 미세하게 배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았다면 죽은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고요한 잠이었다. 나는 옆에 앉아 나지막하게 엄마를 불렀다.

“엄마.”

“네, 손님!”

엄마는 화들짝 놀라 수건을 집어 던지며 일어났다가 나를 보고는, 다시 반쯤 눈꺼풀을 닫고 주저앉았다.

“왜 왔어? 이 시간에.”

“그냥. 엄마 보고 싶어서.”

“너 술 먹었니?”

“응, 조금.”

나는 엄마의 옆에 가방을 놓고 앉았다. 엄마의 눈에는 잔뜩 졸음이 실려 있었다. 입을 반쯤 벌리고 무신경하게 앉아 있는 엄마의 몸을 나는 찬찬히 살폈다. 속옷에 가려져 있지 않은 엄마의 몸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가슴이 예전보다 처진 것 같긴 했지만, 사이즈가 큰 편이 아니라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다. 진한 고동색의 유두와 탐스럽게 곱슬한 그녀의 거웃을 보면서, 엄마의 은밀한 곳을 만지고 닦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새삼 안타까웠다. 나는 빤히 엄마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나 오늘 남자랑 모텔 갔다?”

순간 엄마의 눈이 커졌다. 나는 엄마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입술을 앙다문 채 그 어떤 것도 뉘우치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에게 상처 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이.

엄마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한동안 내 표정을 살피다가, 좀 전에 누워 있던 자세 그대로 반듯하게 평상에 머리를 댔다.

“화 안 내? 누구인지는 안 궁금해?”

“미친년.”

“엄마는 어땠어?”

“뭐가.”

“첫 경험 때 말이야. 아빠랑 처음 할 때.”

“니 아빠가 처음이었다고 누가 그러디? 난 그런 말 한 적 없다.”

“그럼 누구였어? 아니, 그것보다 엄마는 어땠어? 나 실은 모텔에 가긴 갔는데…… 근데, 그건 못했어. 처음이라서 그런지…… 잘 안 됐어. 근데 차라리 더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

“혈기 넘치는 젊은 것들이 그 짓도 제대로 못하냐? 하긴, 오히려 젊어서 더 하기 힘든 일도 많은 법이다. 일찍 해서 좋을 것도 없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엄마는 드러누운 채로 기지개를 켰다. 나른하고 긴 기지개였다.

“엄마는 그럼 대체 뭐가 중요해?”

쌔근거리던 엄마의 숨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불안한 마음에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엄마가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말했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도 지나고 나면 전부 아무것도 아니더라.”

“그래도 중요한 게 있을 거 아냐. 엄마는 어떤 생각이 들어?”

“뭐가.”

“때 밀 때. 사람들의 벗은 몸을 만질 때.”

“그냥 나는 아무 생각도 안 난다. 다들 때가 참 많구나…… 이 여자는 지난주에 밀었는데도 또 나오고…… 밀 때마다 때가 많네. 뭐 그런 생각. 이 일은 생각이 많으면 못한다.”

“엄마.”

“왜?”

“나 막 온몸이 너무 아파. 허벅지도 당기고, 어깨도 욱신거려.”

“듣자 듣자 하니까. 야, 이년아. 혼자된 에미 앞에서 그 짓 하고 아프다는 말이 나오냐? 내가 누구 때문에 지금껏 이렇게……”

“안 했다니깐. 안 했다고! 내가 아까 했던 말 못 들었어? 엄마는 사람이 아프다는데, 반응이 왜 그래? 내가 왜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 관심이 있기는 해? 누가 엄마더러 이렇게 살라고 했어? 내가 엄마한테 그러라고 했냐고!”

나는 튕기듯 일어나 엄마를 쏘아보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일어나 누워 있는 엄마를 내려다보는 내 시선은 엄마의 음부를 찌르듯 향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러거나 말거나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피곤해서 온몸의 힘이 빠진 것인지, 이 상황을 피하려고 방어 자세의 의미로 반듯하게 누워 있는 것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허공에 대고 읊조렸다.

“오늘 못하면 다음에 하면 돼. 인생은 지겹도록 기니까. 이제 잠 좀 자자. 너도 집에 들어가 잘 거 아니면 옷 벗고 편하게 누워서 자. 잠 안 오면 온탕에 한번 들어갔다 오고.”

“엄마, 나는 여기서 자는 게 싫어.”

양다리를 무방비 상태로 벌린 채 누워 있는, 엄마의 작고 마른 몸을 내려다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평상 맞은편에 붙어 있는 전신거울에 엄마의 거무스름한 음부가 정면으로 비쳤다. 나는 거울 속으로 들어가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

 

아무도 없는 대중목욕탕의 새벽 공기는 서늘했고, 황량했다. 그 쓸쓸한 공기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쪼그려 앉아 목욕의자와 세숫대야에 낀 물때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어린 시절 이후로 가까이 가지 않았던 목욕침대 위에도 가만히 누워보았다. 등뼈가 아팠던 예전과는 달리 푹신한 재질이었다. 천장에 달려 있는 두개의 봉에 눈길이 갔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양팔을 길게 뻗어 봉을 잡고 서보았다. 엄마는 이 봉을 잡고 서서 벌거벗은 여자들의 등과 엉덩이, 뒷다리를 야무지게 밟았다. 뜨거운 물에 몸을 불리고 때를 씻어낸 후에도 풀리지 않는 피로 때문에 누군가의 발밑에 깔려야 하는 여자들이 이 목욕침대에 매일 눕는다. 엄마는 천장에 달린 봉을 잡고 그녀들의 몸 위를 걸어 다니며 발끝으로 뭉친 곳을 찾았다. 나는 양팔에 힘을 주고 봉을 잡고 매달려보았다. 발끝에 스치는 공기의 감촉을 느끼며 그네를 타듯 몸을 흔들어보다가 체조 선수처럼 두 다리를 양옆으로 벌려보았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들어온 축축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을 관통했다. 입가에서 웃음이 비어져나오면서 팔다리에 힘이 풀렸다.

목욕침대에서 천천히 내려와 물기가 말라 있는 여탕의 돌바닥 위를 거닐었다. 발바닥의 감촉은 건조하고 거칠었지만, 대중탕 특유의 축축한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물비린내와 지린내 사이를 파고드는 락스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천천히 욕조 쪽으로 걸어갔다. 일렁이는 청록색 물 위에 비친 내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수면을 손으로 크게 휘저으며 온탕 속으로 들어갔다. 발끝부터 아랫도리까지 뜨거운 기운이 와닿았다. 목덜미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이곳에서 나는 오롯이 혼자였다. 누구의 딸도, 대단한 무용가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아무도 없는 욕조 속에서 생각을 지워야 한다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몸을 낮추면서 뜨거운 물속으로 몸을 집어넣고 앉았다. 두 가랑이를 넓게 벌려 앉으면서 두 팔을 수면 위로 띄운 채 스르르 눈을 감았다. 온몸을 휘감은 온기 속에서 내 몸의 모든 구멍이 열리고 있었다. 그 안에서 어떤 것이 쏟아져 나올지 나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