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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위기의 한국, 무엇을 해야 하나

 

‘적’을 만드는 정부와 시민사회 연대의 재건

 

 

이태호 李泰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공저서로 『촛불 이후 사회운동의 과제 및 전망』 『변혁적 중도론』 등이 있음.

gaemy@pspd.org

 

 

1. 들어가며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9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윤석열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말하고, 그보다 더 자주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상식보다는 몰상식에 가까우며, 그동안 구축해온 것은 공정이라기보다는 배제와 혐오였다. 그가 16분간의 취임사에서 35번이나 언급한 자유는 사람과 자연을 살리고 조화롭고 다양하게 공존하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방치하거나 고립시키거나 죽게 내버려두는 자유였다. 그는 나라 안팎에서 ‘적’을 찾아내고 적의와 혐오를 고취시키는 것으로 정치와 협치를 대신하고 있다. 지난 8개월간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몇 안 되는 측근들은 권력의 칼자루를 잡고 있는 자가 그들 자신이라는 것만큼은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법과 원칙이 그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얼마나 빠르고 광범위하게 형해화하고 위협할 수 있는지도 넉넉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지수가 8계단이나 하락한 것 역시 이를 잘 드러낸다.1 이제 한층 줄어든 지지자들조차 이 정부에 공정이나 상식 따위를 기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윤대통령과 측근들의 몰상식이 추가로 만들어낼 ‘리스크’를 걱정하고, 정권탈환을 위해 가까스로 형성했던 보수세력의 연합이 더이상 침식되지 않기만을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들이 동원해낸 혐오와 차별로 인해, 그리고 더욱 위태롭고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게 될 시민들의 불안과 분노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고 정권과 정치의 위기가 만성화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만성적 위기가 자동으로 더 나은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2. 윤석열정부 이후의 한국사회

 

수구보수연합과 혐오의 정치

보수진영은 정권교체를 위한 연합을 구축하기 위해 나름의 뼈를 깎는 재편 작업을 강행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형성된 촛불-탄핵 연합으로 인해 존망의 기로에 놓인 구(舊)여권의 생존을 위한 고육지계였으며, 촛불정부 2기가 들어서서 개혁을 가속화하는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수구세력의 기득권수호 의지의 표출이기도 했다.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의석을 독점한 것은 위축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과 수구세력에 위기와 더불어 기회를 제공했다. 국민의힘은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30대를 당대표로 세우는 한편 박근혜 대통령을 수사하여 당을 존폐의 위기에 이르게 한 담당 검사를 대통령 후보로 영입했다. 대선 막바지에는 안철수를 비롯해 중도 개혁보수를 표방한 정치세력과 연합했다. 그 결과 전통적 보수세력 및 수구기득권 계급과 주관적 정치성향이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이대남’, 그리고 중도보수를 연결하는 3축체계가 구축됐다. 일부에서는 ‘한 지붕 세 가족’이라고 평가절하했지만, 시민들에게는 쇄신의 진통 또는 정치적 역동으로 읽힐 수도 있었다.

이들은 적어도 대선까지는 갈등 속의 통합을 유지했다. 당시 윤석열 캠프가 보수층 결집의 접착제로 동원한 것은 ‘공정’을 앞세운 혐오와 낙인찍기였다. ‘여성가족부 폐지’ ‘시민단체 부당이익 환수’ 등을 주요 공약으로 띄워 여성과 시민단체들을 공공의 적처럼 묘사한 것이 대표적이다.2 또한 ‘집권 시 문재인정부 적폐청산 수사’와 같은 언급으로 은근슬쩍 문재인정부를 박근혜정부와 동일한 특권집단으로 등치시키는가 하면 ‘대북 선제공격’ 발언, 난데없는 ‘멸콩’ 캠페인 참여 등으로 진영논리를 부추겼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퇴행으로만 읽으면 상황의 일면만 보는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20대 여성과 남성이 스스로를 조직해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했으며, 의제를 형성하고 각 선본을 움직였다. 이들이 기득권정치의 들러리였는지 아니면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 형성의 신호탄인지는 이후의 한국정치가 답할 것이다. 한편 ‘정권교체’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이재명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막바지 ‘정치교체’라는 의제를 제시해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 등 일련의 정치개혁을 약속한 것도 의미가 크다. 정치개혁 논의는 윤석열정부 출범 직후 잠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듯했으나 점점 현안으로 재등장하는 중이다.

 

지지율 하락과 보수연합의 이완

네거티브 전략으로 집권한 윤석열정부는 급격한 지지율 하락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 반대보다도 대통령 개인의 실책과 집권세력 내부의 균열로 인한 것이다. 우선 내각과 대통령실에 대한 첫 인사부터 공정성, 투명성, 적절성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뚜렷한 이유나 필요성이 설명되지 않은 무리한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도 구설수와 더불어 연쇄적인 부작용을 유발했다. 그중에는 10·29 이태원참사도 포함된다. 대통령의 잦은 말실수, 무개념한 발언, 부적절한 언행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외교 무대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를 야기했으며, 그 과정에서 이전부터 제기되어온 영부인 김건희 리스크도 더 부각됐다. 윤석열정부가 문재인정부를 ‘내로남불’로 비난해왔기에 새 정권에 대한 실망과 냉소가 확산되는 속도와 폭은 빠르고 깊다.

각종 혐오를 동원하면서 가까스로 형성했던 보수연합은 대선 승리 이후 균열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이준석 당대표의 성상납 의혹과 당대표직 박탈 논란으로 시작해 최근 나경원 전 의원의 당대표 출마에 대한 대통령실의 공개 반대 논란까지 파열음이 지속되고 있다. 가장 극적인 것은 선거기간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던 20대 남성의 변화다. 임기 초반인 2022년 6월에 20대 남성의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율은 60%에 달했지만 12월에는 28%로 급락했다. 국민의힘 지지율 역시 48%에서 33%로 낮아졌다. 이러한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 곡선은 전체 평균보다 더 가파르고 결과값도 더 낮다.3 한편 ‘윤핵관’ 중심으로 정부 및 정당 리더십을 교체하려는 시도는 이전의 역동성을 퇴색시키며 선거용 연합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외부에서 ‘모셔온’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의 여당 통제 시도가 강화될수록 연합의 균열이 가속화되는 딜레마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복합위기의 본격화

한국사회가 마주한 복합적인 위기에 대한 윤석열정부의 대응은 우려스럽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지속되는 세계적 수준의 경제위기에 대한 처방으로 윤석열정부는 ‘규제 완화’와 ‘민간·기업·시장 주도의 경제 활성화’를 내세운다. 자산가·기업 대상의 감세와 재정 긴축, 금융 및 부동산에 관한 규제 완화, 민영화, 노동시간 유연화와 임금인상 통제 등의 경제정책은 친자본-반노동, 친부자-반서민 경향을 뚜렷이 드러낸다. 그러나 철 지난 신자유주의의 유행가 같은 이러한 정책 방향이 ‘경제 활성화’나 ‘투자 의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신호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의 난방비 지원 논란에서 보듯 ‘재정 긴축’ 기조는 시민들의 불만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정부가 강조하는 경제 체질개선의 근간인 ‘규제 혁신’은 기실 그 경제적 효과를 추구하는 것이라기보다, 경제위기의 공포를 활용해 이미 불균형한 기업과 노동 간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려 하는 ‘재난자본주의’4의 큰 그림을 드러낸다. 규제 혁신으로 제거해야 할 ‘이권 카르텔’과 ‘지대추구’의 중심에 대기업이나 부동산업 등이 아닌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의 예정된 결과는 독점과 불공정, 공공복지의 축소, 민생위기와 양극화의 심화다.

우끄라이나전쟁 등으로 에너지위기가 심화되고 있지만 탄소중립 대책은 ‘기-승-전-원전’이라 할 정도로 핵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은 유예되고 후퇴 중이다. 노후 핵발전소의 안전 문제, 후꾸시마 핵물질 오염수 방류 문제도 제대로 의제화되지 않는 마당에 그린뉴딜같이 보다 전면적인 대책이 논의 테이블에서 진작 배제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는 세계적 흐름에도 역행하는 것으로, 유럽연합은 지난해 논란 끝에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키는 데 합의했지만, 동시에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새로운 무역 규제에도 합의했다. 이로 인해 한국의 주력 수출품에도 탄소배출량에 따른 국경세가 부과될 전망이다. “철강, 알루미늄, 정유, 종이, 자동차, 반도체 수출이 무너지는 마당에 원전, 방산으로 수출 돌파가 되겠는가”5라는 질문이 유의미한 이유다. 게다가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고려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도 문제다. 탈탄소전환에 따른 일자리 재편 등의 비용이 대부분 노동자에게 전가될 것임을 예고한다.

‘힘에 기초한 평화’를 내세운 한반도 및 대외 정책은 이미 그 부작용이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윤석열정부는 이전 정부가 추진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남북간 합의를 대부분 부정하고 심지어 수사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북한과 상호 무력시위를 벌여왔다. 또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해 ‘한·미·일 군사협력’을 확대해왔다. 하지만 ‘힘에 기초한 평화’ 기조와는 달리 한반도 평화도, 비핵화도 현실적인 목표에서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남북간의 양보 없는 무력시위로 무장충돌 위험이 급격히 고조되었으며, 정책 추진은 시작부터 현실적 난관에 봉착했다. 가령 지금은 미중관계 악화 및 우끄라이나전쟁으로 인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간 협력을 끌어내기도 어려운 조건으로,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는 고사하고 기존 제재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한반도 위기에 대한 그 어떤 대책도 책임감도 보이지 않는 정부는 남한의 핵보유 혹은 미국과의 핵공유 같은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인 처방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한반도 비핵화의 포기를 의미할뿐더러 핵무기금지조약 등 국제적 흐름에도 배치된다. 북한의 핵보유 구실을 도리어 강화해주고 한미관계마저 균열시킬 수 있는 자해적 주장이다. 대외정책은 어떠한가.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대한 배타적 편승은 합리적 선택을 위한 ‘전략적 모호성’의 공간을 없애고 ‘연루와 방기의 위험’6만 가중시킨다. 외교 무대에서의 잇단 실수와 동의기반 없는 즉흥적 정책 결정이 불필요한 갈등과 위기를 초래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과 위기가 서로 맞물려 복합적으로 심화한다는 것이며, 현 정부가 강조하는 ‘수출 증대를 통한 경제 활성화’에도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적’ 만들기로 연명하는 정권

집권 이후 급속히 하락한 지지율이 좀처럼 반등되지 않는 상황7, 그리고 복합위기에 대한 처방이 마땅치 않고 그렇다고 적극적인 전환을 꾀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상황에서 윤석열정부가 택한 출구는 급증하는 불만의 표적이 될 내외의 ‘적’을 찾는 것이었다.

실현 가능성도 없는 여성가족부 폐지는 당선 직후 흐지부지되는 듯하더니 지난 10월 정부조직개편안으로 다시 부상했다. 또다른 타깃은 노동조합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비정규직의 파업과 화물연대 파업을 계기로 윤석열정부는 노동조합의 ‘기득권’에 대한 ‘개혁’에 착수했다. 윤석열정부가 내세운 것은 ‘노사 법치주의’였다. 그들이 말하는 ‘법’과 ‘원칙’은 조선산업이 최고 호황을 누리던 와중에도 감내해온 최저임금 수준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하청노조의 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파견하는 것, 그리고 원청기업이 노조 간부 5인에게 47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독려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국제노동기구 비준 협약의 위반이라는 사실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서도 윤대통령은 직접 나서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공격했다. 이미 약속했던 ‘안전운임제’의 보장을 요구하는 화물연대에 정부가 맞세운 법은 놀랍게도 ‘공정거래법’이었다. 정부는 화물노동자의 특수한 고용형태를 빌미로 파업 현장에 강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것도 모자라, 화물연대의 파업이 ‘사업자단체’에는 금지된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를 앞세워 현장조사를 시도하고, 끝내 조사 거부를 명분으로 전속고발권을 사용했다. 공정거래위의 강력한 조사권 및 전속고발권은 재벌·대기업의 독점이나 담합을 제재하기 위한 것인데, 이를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있는 화물기사들에 대한 정부의 보복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정부여당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단결권을 보장하고 사측의 손해배상 남용8을 금하기 위한 노조법 개정도 거부하고 있다.

연말을 거치며 윤석열식 노사 법치주의는 노동조합의 회계로 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조부패’를 공직부패와 기업부패에 준하는 3대 부패의 하나로 규정하고 그 척결을 위한 엄격한 법 집행을 주문했으며, 이에 따라 몇몇 노조가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노조의 자주성은 헌법이, 노조 회계의 감사와 공개에 대한 사항은 이미 노조법이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조합비는 자본의 운영이나 세금의 사용과는 엄연히 구분되는데도 마치 동급으로 호도하며 노조를 부패 기득권집단으로 매도하려는 의도다.

시민사회단체를 대상으로 한 ‘부당이득 환수’는 대선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지난 연말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여진다면 국민 여러분께서 이를 알고 용납하지 않을 것”9이라며 정부 각 부처에 시민단체 국고보조금 전수조사와 전면적인 체계 재정비를 지시했다. 대통령실은 곧이어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7년간(2016~22) 비영리민간단체에 들어간 정부 보조금이 총 31조 4천억원 규모라고 밝혀 시민단체에 엄청난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묘사했지만, 이 금액은 각종 협회와 재단, 연맹, 복지시설 등에 지원된 재원을 모두 합한 것이었다. 몇몇 진보 시민단체의 목적 외 사용 사례만을 열거하면서 대통령실이 밝힌 전수조사의 이유는 ‘그동안 적발 건수가 미미했다’는 것이었다.

시민사회단체 전체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는 이런 방식의 먼지떨기는 2021년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되면서부터 이미 시작된 바 있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 바로세우기’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가치 실현과 관련된 12개 분야의 민간보조·위탁 사업을 대표적인 낭비사업으로 규정하고 예산안을 대폭 삭감 편성하는 한편, 관련 단체들에 대한 전면적인 감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오세훈-윤석열로 이어지는 시민단체 부당이익 환수 소동은 이런 종류의 견제를 견뎌온 전통적인 대변형 단체보다 주로 지방자치와 관련된 풀뿌리조직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이들 주민참여 조직, 사회적경제 조직들에 대한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체계는 애초 지역 시민사회를 활성화하고 주민자치와 협치를 확대하려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었으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는 일이기도 했다.10 유엔이 주도하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는 물론 대다수의 국제기구가 이들 풀뿌리 시민사회단체의 역할 제고와 지원체계 개선을 주문하고 특히 팬데믹을 계기로 그 공적 기능이 더욱 강조되는 가운데 정부여당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윤석열정부의 적 만들기는 국가정보원을 앞세운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까지 나아가는 듯하다. 너무 뻔한 전개지만 분단체제에서 가장 손쉽고도 효과가 큰 것은 ‘이적행위자’ ‘비국민’이라는 낙인이다. 이 싸구려 부적이 풀뿌리 활동가부터 야당 정치인에게까지 여기저기 나붙을 기세다. 지난 연말에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댓글 조작 등에 관여해 수감 중이던 이들이 일제히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았다. 2024년 경찰로 이관될 예정인 대공수사권에 대해서도 정부여당은 ‘재검토’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현 정부여당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밀어붙이면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강변하고, 자본과 공권력 앞에서 노동자들이 처한 구조적 취약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노조를 기득권집단으로 공격한다. 영세한 풀뿌리 시민단체들의 회계처리 미숙이나 드물게 발생하는 회계 부정을 영수증 없이 지출되고 내역도 공개되지 않는 검찰의 특수활동비11보다 더 심각한 적폐로 취급한다. 그리고 이제는 공안정국마저 재조성되어가는 분위기다. 공공의 적을 만드는 이러한 일련의 정치적 조작을 통해서 일시적으로는 정략적 이득을 챙길 수 있을는지 모른다.12 하지만 윤석열정부가 쳐놓은 덫은 결국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총체적 실패를 재촉할 것이다. 예컨대 윤정부가 새해 들어 천명한 3대 개혁은 이미 그 실패가 예정되어 있다. 노동개혁·교육개혁·연금개혁 중 협치와 사회적 합의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풀뿌리 주민운동의 협력 없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리 없다.

 

재난의 일상화와 재난자본주의

정부가 적을 찾아내고 그들의 약점을 뒤지기 위해 행정력을 총동원하는 동안 국민을 보호하고 지킬 의무는 방기되고 국가시스템은 급격히 후퇴한다. 10·29 이태원참사가 대표적이다.13 막을 수 있었던 사고를 정부가 방치하고 제때 적절한 방법으로 구조하지 못한 결과로 159명이나 되는 목숨이 희생되었다. 참사 직후부터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또다른 참사였다. 희생자의 시신은 수도권의 병원으로 분산되었고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연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당수의 유가족은 수사당국으로부터 마약투약 여부에 대한 부검을 제안받았다. 국무총리는 “주최 측이 없는 상황”을 운운했고, 대통령의 측근이기도 한 행정안전부장관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용산구청장은 핼러윈데이가 “현상”이라고 우겼다. 참사 후 경찰은 현장의 CCTV를 수거해 공공연한 용의자 색출에 나섰다. 이러한 과정에서 희생자와 생존자들에 대한 마녀사냥과 혐오가 끓어올랐고, 위로와 치유가 시급한 이들은 2차, 3차 피해를 겪어야 했다. 윤석열정부는 영정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를 서둘러 차리고 국가애도기간을 설정했지만 가족들에게 제대로 연락하는 일도, 설명하는 자리도 없었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정부는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 가족들을 위해 단 한차례도 공식적인 보고회를 가진 적이 없다. 유가족들이 모여 함께 추모하고 위로할 공간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도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았다.

10·29 이태원참사는 세월호참사와 너무도 흡사한 전개 과정을 보이며 우리 사회 재난참사의 절망적인 특징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첫째, 예방-대비-대응-구조-수습에서 국가 기능의 총체적인 부재다. 박근혜정부는 세월호참사를 ‘교통사고’로 정의하려 했고 윤석열정부는 이태원참사를 주최자 없는 행사에서 일어난 ‘사고’로 규정하려 했지만, 이는 결국 국가의 부재를 증명할 뿐이다. 둘째, 정권의 책임 회피를 위한 국가공권력의 체계적 발동과 공작적 개입이다. 재난참사의 대비-대응-구조-수습에서는 결코 발휘되지 않았던 공권력이 진실을 감추고 정권의 안위를 지키는 데는 체계적으로 작동한다. 공적 책임은 주로 국가기구의 말단 현장에 전가되고 실질적 책임이 있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불처벌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된다. 셋째, 피해자 권리에 대한 전반적 침해와 2차, 3차 가해다. 생존자나 지역주민들은 방치되거나 심지어 일부는 가해자로 지목된다. 재난을 ‘정치화’하는 세력과 결탁한 사익 추구자로 매도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비틀어지고 망가지더라도 기득권이 도전받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는 것. 이것야말로 재난자본주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3.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의지와 연대의 재건14

 

사회적 연대의 복원

서슬 퍼런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는 윤석열정권은 그러나 이미 스스로 무너져가고 있다. 적의로 무장한 텅 빈 국가의 실체는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드러나는 중이다. 하지만 수구세력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탱하는 힘이 ‘뭘 한들 달라지는 게 있겠냐’라는 회의, 다시 말해 사회구성원 사이의 신뢰 저하에서 온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 윤석열정부의 만성적 위기가 자동으로 더 나은 사회로의 전환에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이유, 동시에 이 정부가 무수한 ‘적’ 만들기에 몰입하는 이유다. 따라서 정말로 걱정해야 할 것은 일상이 재난이 된 사회에 방치될 수많은 불안하고 위태로운 ‘생존자들’, 우리 시민들의 절망이다. 이 절망은 정권에 대한 회의를 넘어 국가의 공적 기능과 책무 이행에 대한 회의, 사회적 연대를 통한 권리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현저하게 낮아지고 있다. 한 신뢰도 조사 결과보고서15에 따르면, 한국사회 주요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정부 및 미디어에 대한 신뢰 하락이 가장 극심하고, 기업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높은 신뢰도를 보이는 NGO 역시 완만한 편이지만 하락 추이를 보인다. 특기할 만한 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 추락이다. 문재인정부 마지막 해인 2021년과 윤석열정부 첫해인 2022년에 각각 8%씩 무려 16%가 하락했다. 2022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향후 5년 동안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이 나아질 것인가’에 대해서도 28%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조사대상 27개국 중 가장 낮은 수치이며,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의 회의가 더 극심했다.

촛불대항쟁 직후에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우리 사회와 세계가 직면한 공통의 위기와 위험들, 예컨대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대의민주주의의 오작동 같은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인 상태였지만 시민의 연대와 민주적 협치로 개선이 가능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세월호참사 이후 시민들은 ‘가만히 있지 말자’는 약속 아래 더 안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연대행동에 나섰고, 결국 평화적인 방법으로 박근혜정권을 탄핵함으로써 퇴행의 위기를 전환의 계기로 바꾸었다. ‘나라다운 나라’를 함께 만들 수 있다는 사회적 자신감과 신뢰기반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정부에서 시도된 개혁과 구조전환은 기득권의 저항에 직면했고 이 과정에서 개혁 주체로서의 한계와 문제점도 드러났다. 팬데믹과 경제위기에 직면하자 시민들의 신뢰와 연대 의지는 급격히 약화됐다. 승자독식 정치구조 개혁이 지체되고 집권여당이 총선에서 일방적 승리를 거둔 것 또한 촛불정치연합의 해체를 가속화한 면이 있다. 출구를 찾지 못한 불안감은 취약한 시민들 간의 갈등, 예컨대 20대 여성과 남성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공정’은 고도성장을 꿈꾸기 어려운 세대, 그중에서도 특히 남성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투사하는 언어가 되었으며 ‘분노’는 민주화운동과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를 가져오는 자양분이 되었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신뢰도가 2019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해온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공정’과 ‘상식’을 앞세운—실제로는 차별, 배제, 혐오를 동원한—윤석열정부로의 정권교체 이후 사회구성원들의 절망과 냉소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따라서 윤석열정부를 규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적·정치적 연대를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신뢰, 희망, 의지를 재건해야 한다. 모두가 배제되지 않고 존중받는다는 신뢰, 서로를 돌보며 함께 안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고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겠다는 집합적 의지, 이런 마음들을 다시 만들고 모아내야 한다.

 

새로운 대항연합과 ‘변혁적 중도’

윤석열정부의 ‘공정’과 ‘자유’의 실패 및 퇴행을 대체할 새로운 연대, 새로운 대항연합의 내용과 주체는 아직 충분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시민의 의지와 연대를 재건하기 위해 시민사회운동이 나서야 할 역할은 뭘까.

우선 윤석열정부의 폭주와 퇴행을 막아내기 위한 힘을 모아야 한다. 윤석열식 ‘법치’는 전세계가 부러워하던 우리 사회의 역동적 민주주의16를 겨냥하고 있다. 이 역동적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로 보장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시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법과 제도, 작동하지 않는 대의정치를 넘어서려는 시민의 의지와 실천으로 발전시켜온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정부가 법과 원칙을 외칠수록 시민의 자유와 권리는 통제되고 공론장은 위축되고 있다. 그리고 민주적 공간의 축소는 시민의 생계와 안전을 위협하고 젠더 불평등의 심화, 기후위기 대응 약화, 전쟁 위험을 동반하고 있다.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함께 대응해야 할 이유다. 이태원참사 피해자들을 비롯해 국가가 책무를 다하지 못해 희생당하고 권리를 침해당한 모든 이들과 힘껏 연대하여 시민의 권리를 지키고 국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노동자와 시민의 정당한 권리 주장이 고립되거나 각개격파당하지 않도록 돕고 지원해야 한다. 정권 위기관리의 칼잡이로 동원되고 있는 검찰, 경찰, 감사원, 그리고 비밀정보경찰로 복귀하려는 국정원 등의 일탈을 바로잡고 이들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 제도개혁이 제 길을 가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권력이 남용되고 권리가 침해되는 현장 속으로, 현실과 가상현실의 모든 공론장과 광장으로 부지런히 ‘싸우러’ 나가야 한다.

둘째, 혐오와 차별에 단호하게 함께 맞서야 한다. 공공연한 혹은 드러나지 않는 폭력에 관해 사회운동 및 시민사회 전반이 스스로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 윤석열정부가 법과 원칙을 내세워 기득권집단으로 매도하고 사정의 칼날을 겨누고 있는 타깃은 한국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차별받아왔거나 상대적으로 취약한 집단, 혹은 그런 이들의 침해된 권리를 옹호해온 단체들이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사회적 약자를 기득권층으로 둔갑시키고, 권리를 침해당한 이들을 비윤리적이고 파렴치한 사익 추구자로 낙인찍는 수구보수세력의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고도화하고 있다. 종북 색출 소동마저 극성을 부릴 기세다. 여성, 성소수자, 이주자, 장애인, 무슬림, ‘종북주의자’ 등에 대한 낙인찍기와 공격에 함께 저항하고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 차별금지법 등 제도적 대책의 수립을 더 적극적으로 촉구해야 한다.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

셋째, 사람과 지구를 함께 돌보는 연대를 실현해야 한다. 경제위기 해결을 빌미로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 생태계위기와 기후위기를 더 악화시키는 것을 용납해선 안 된다. 사회적 불평등과 특권의 구조를 드러내고 그 근본 원인에 발본적으로 대응하는 실천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기후위기 극복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며,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경제 모델을 형성해나가는 일과 민생복지는 조화될 수 있다. 전쟁을 준비하는 것 대신 무력 외의 방법으로 평화를 실현하는 것은 가능하다. 정의로운 전환, 그린뉴딜, 돌봄뉴딜, 한반도 평화체제를 유보할 수 없는 당면과제로 제시하고 정부와 정치권에 그 실현을 촉구해야 한다.

넷째, 근본적인 개혁과 전환의 목표와 관점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폭넓은 공감과 유대를 형성해야 한다. 배타적으로 사고하고 일방적으로 실천해서는 변화를 이룰 수 없다. 이 점에서 ‘변혁적 중도’17는 새로운 대항연합 구성의 화두라 할 수 있다. 평화적 방법으로 일으킨 촛불혁명과 그 과정에서 형성되었던 촛불연합은 합리적 보수를 성찰적 진보가 견인해낸 구체적인 사례다. 비록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얼치기 수구보수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앞에서 열거한 세가지 당면과제를 연결하려면 이 시대에 필요한 ‘변혁적 중도’의 길, 합리적 보수까지 아우를 성찰적 진보의 길을 찾아야 한다.

다섯째, 다양한 입장과 서로 다른 생각이 교차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하고 확장해야 한다. 투쟁과 저항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근본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대화와 합의도 필수적이다. 상대의 완전한 극복, 상대에 대한 완전한 승리라는 진영의 공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같은 입장끼리만 모이고 흩어지는 배타적인 정치적 부족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당장 합의를 구하지 않더라도 차이는 인정하고 공통점을 찾는 구동존이(求同存異, agree to disagree)의 규범과 지혜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개혁과 연합정치의 실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대의제를 뜯어고치는 일은 점점 더 중요하고 절박한 과제가 되고 있다. 편협하고 획일화된 편가르기 속에 다양한 민의와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욱여넣고 재단하는 과두정치의 부작용이 너무 크다. 민의에 따라 정치적 대표성을 획득하고, 다양성과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더 큰 목적을 위해 연합할 수 있는 정치구조를 창출해야 한다.

지난 대선기간 중 이재명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말한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 등 일련의 ‘정치개혁’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검찰의 편파적 수사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 야당 지도부와 전 정부 고위인사에 대한 전방위 수사는 형평성 논란을 일으키며 ‘검찰독재’에 관한 우려와 반발을 유발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에 매몰되지 말고 주권자의 신실한 도구가 되기를 자처하고, 과도하게 누려온 정치적 기득권을 나누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시민사회도 더불어민주당의 반성과 정치교체 약속이 기득권 논리에 의해 좌초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또한 혐오의 정치를 동원해 집권 직후부터 내홍과 위기를 겪고 있는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정치개혁과 정치교체에 진지한 관심을 지닌 주체들이 세력화할 수 있도록 압박과 협력을 병행해야 한다. 선거법 개정 등 정치개혁의 과정은 정당만의 합의로 이루어질 수 없다. 민의에 따라 공평하게 의석을 나누는 방안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를 망라하고 다양한 시민사회의 그룹들이 참여하는 합의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대선 전후 여야 거대정당에 급격히 증가한 권리당원·책임당원들은 정치교체를 앞당길 소중한 동력이다. 그러나 이들은 거대정당이 시민 정치참여의 플랫폼으로서 개방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될 때에만 개혁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개방적인 태도는 새로 유입되는 당원들뿐 아니라, 시민사회 협력 파트너와의 관계에서도 중요하다. 쓴소리를 배척하기 위해 열성 지지자들을 방어 장치로 동원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달콤하지만 크나큰 독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의당 진보당 등 진보정당들도 연합정치가 가능한 구조와 관행의 개혁을 위해 지금보다 더 적극적·전략적으로 임해야 한다.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지지율 동조화 현상은 이미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다. 반면 현 정치제도 아래서 독자적인 세력화가 제한되고 지지율 고착과 사표 양산이 반복되면 진보정치 성장의 희망도 함께 침식될 수 있다. 진보정당과 한국사회의 전환을 위해서는 진보적 정체성과 독자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연합정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구조, 제도, 정치 협약의 창출에 전력을 다하는 전략적 결단과 집중이 필요하다.

 

우리가 처한 복합적인 위기가 결코 간단치 않고, ‘적’ 만들기에 몰입하는 윤석열정부의 칼춤도 예사롭지는 않다. 하지만 재난과 위기는 종종 새로운 상상력이 발휘될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기도 하기에 너무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연대는 지금까지 위기 속에서 길을 열어온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의지와 연대의 재건이 필요하다.

 

 

  1.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민주주의지수 보고에 따르면 한국의 순위는 작년 16위에서 올해 24위로 하락했다. 「한국 민주주의 순위 ‘16위→24위’, 1년 만에 8계단 하락」, MBC 2023.2.3.
  2. 이에 대해서는 정희진의 다음과 같은 논평을 주목할 만하다. “이번 선거에서 성차별을 젠더 갈등으로 변질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젠더를 모르는 힘’ 때문이다. 사회 구조로서 젠더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기 때문에 여성들 사이의 차이, 남성들 사이의 차이를 남녀 차이로 환원할 수 있었다. 즉 ‘극히 일부인 중상층 20대 여성의 과잉 재현’과 ‘현역 징병 대상인 흙수저 20대 남성’을 남녀 일반으로 대립시켜 착시 현상을 만든 것이다. 계급 문제를 성별 갈등으로 조작한 것이다. 기득권 양당에 묻는다. 왜 50대 가난한 여성과 50대 중산층 남성은 비교하지 않는가. 장애 여성과 비장애 남성은 왜 비교하지 않는가? ‘서울 남성’과 ‘지역 여성’의 지위는 왜 비교하지 않는가. (…) 이들을 위한 정책은 어디에 있는가.” 정희진 「여성을 덜 모욕하는 사회에 투표하자」, 한겨레 2022.3.8.
  3. 같은 기간 전체 평균을 보면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은 49%→33%, 국민의힘 지지율은 43%→36%로 낮아졌다. 20대 여성의 경우에는 각각 34%→16%, 18%→16%로 변화했다.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478~524호 2022년 월별·연간 통합 집계표」, 2022.12.23 참조.
  4. 캐나다 저널리스트인 네이오미 클라인(Naomi Klein)이 『쇼크 독트린』에서 사용한 개념으로, 쇼크 독트린은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시민들의 공포를 이용해 지배세력을 위한 체제를 강화시키는 ‘재난자본주의’의 수법이다. 나오미 클라인 『쇼크 독트린』, 김소희 옮김, 살림Biz 2008 참조.
  5. 오기출 「제조업 한국 떠나게 할 건가」, 소셜코리아 2023.1.10.
  6. 비대칭적인 군사동맹에 편승할 때 겪게 되는 약소국의 딜레마 중 하나가 연루(entrapment)와 방기(abandonment)의 위험이다. 연루의 위험이란 동맹국의 편에 서는 가운데 원치 않는 적대관계나 분쟁에 휘말릴 위험을, 방기의 위험이란 동맹관계에도 불구하고 유사시에 약속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외면당할 위험을 말한다.
  7. 한국갤럽의 최근(2023년 2월 2주차)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율은 32%로, 한때 최저 24%까지 떨어졌던 것에 비해서는 반등했지만 좀처럼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의 최근 조사(2023.2.9 발표)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22%를 기록했으며, 이는 조사대상 22개국 지도자 중 가장 낮은 수치다.
  8. 헌법은 파업 등 쟁의행위를 권리의 행사로 인정한다. 김지형 노동법연구소 ‘해밀’ 소장은 그 권리 행사가 불법행위인지 아닌지를 법적으로 판단하려면 ‘권리남용’이 인정되거나 ‘범죄’가 구성되어야 하는데, 권리남용의 인정 요건이 까다롭다보니 ‘업무방해’라는 범죄로 파업행위를 제약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업무방해라는 범죄행위를 구성하는 순간 영업권을 침해한 것이 되므로, 영업손실이 손해배상의 범위가 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반면 다른 나라에선 “파업을 업무방해로 처벌한 예가 없다.” 「“파업 업무방해죄 적용, 메스 댄 의사를 상해죄로 처벌하는 격”」, 한겨레 2022.12.17 참조.
  9. 「尹, 시민단체 보조금 부정 수급 질타 “그들만의 이권카르텔”」, 서울신문 2022.12.27.
  10. 노무현정부에서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이명박정부에서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되어 이른바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설립이 늘어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의 지원체계도 함께 구축되었다. 박근혜정부에서는 ‘도시재생법’ 제정을 통해 마을만들기 주민조직 및 사회적기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청년 지원 프로그램도 앞다투어 생겨났다. 이들 신생 조직과 활동가들을 위한 NPO센터 등 중간지원조직의 설립도 서울시를 시작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에 이어졌다.
  11. 검찰 특수활동비의 규모는 대검찰청만도 2017년 160억원, 2018년 127억원에 달한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세금도둑잡아라·좋은예산센터 공동성명 「검찰 특활비 공개판결, 항소포기하고 자료공개해야」, 2022.1.18 참조.
  12. 이와 관련해 한국 보수정치가 “시대의 위기들에 응전할 비전도, 넓은 동의 기반을 창출할 구상도 갖고 있지 않다”는 지적을 참고할 만하다. “윤석열정부는 ‘노조’, ‘시민단체’, ‘민주화 세력’에 범죄, 위선, 이적집단의 이미지를 덧씌우거나, ‘선제타격’, ‘확전불사’ 같은 말로 북한에 엄포 놓는 식으로 보수 유권자들을 결집해 이득을 취하려 할지 모른다. 그런 편법은 정략적으로 유용할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문제 해결과는 동떨어진 무책임한 대응이다.” 신진욱 「2023년의 글로벌 복합위기와 한국정치」, 한겨레 2023.1.3 참조.
  13. 졸고 「10·29 이태원참사와 재난자본주의」, 창비주간논평 2022.12.20 참조.
  14. 이 장은 졸고 「촛불연합은 왜 지속되지 못했는가: 윤석열 정부 시기 시민사회운동과 정치개혁의 방향과 과제」, 『기독교사상』 2022년 10월호의 내용을 전면 재구성하여 기술하였다.
  15. 「에델만 신뢰도 지표 글로벌 보고서」(Edelman Trust Barometer Global Report), 2020, 2021, 2022, 2023 참조.
  16. 스웨덴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가 발행한 「민주주의보고서 2022」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2011~21년 10년간 민주화가 뚜렷한 국가 중 하나다. 보고서는 한국을 “(지난 10년간) 독재화의 시기를 멈추고 반전시킨 드문 나라”로 특기했다. 다만, 보고서는 한국이 평등지수에서는 세계 179개국 중 29위, 참여지수에서는 43위에 머무르는 것으로 분석했다. V-Dem Institute, “DEMOCRACY REPORT 2022” 참조.
  17. 백낙청은 분단체제의 변혁을 위한 실천노선으로서 ‘변혁적 중도주의’를 제안한다. “기존의 각종 배제의 논리들을 반대하되 각 입장의 합리적 핵심을 살림으로써 개혁 세력을 묶어”내는 통합의 논리, 즉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가 만나고 경쟁하고 연대하게 하는 실천노력이 필요하다. 백낙청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창비 202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