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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박민규 朴玟奎
1968년 출생. 소설집 『카스테라』 『더블』, 장편소설 『지구영웅전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핑퐁』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이 있음.
여름의 시작
그 수는 극히 적지만
회랑(回廊)의 진의를 깨우친 이는 어느 외딴 숲의 오솔길, 내지는 허허벌판의 자갈 섞인 흙길에서도 자신의 회랑을 그려내고 그 통로를 걸을 수 있다. 이는 그가 하늘을 지붕으로 삼을 줄 안다는 뜻이며 바람과 격랑이 흐르는 이 세계가 그 자체로 신이 채색해놓은 거대한 구조물임을 간파했다는 증거이다. 사실 그에겐 길이 필요치 않다. 이동을 할 이유도 없으며 더는 회랑과 낭하(廊下)를 구분할 필요조차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스토아의 중심에 선 자이며 범인(凡人)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새로운 존재, 채색된 기둥이다.
느닷없이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제논의 기둥: 스토아 포이킬레를 허물며』라는 긴 제목인데
쉴레 이모가 아끼던 책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나로선 우웩
서문만 읽다가 접었던 책이기 때문이다.
쉴레 이모는
따지자면 자신이 스토아학파라고 했다.
아마도
몰입할 무언가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병원에서나 입을 법한 흰 가운이 몸에 걸친 전부인데
실은 알몸이다. 후회는 아니지만
이제부터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
내지는 거부감을 가려줄
정신의 채색... 스스로의 지붕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떠올린 느닷없는 문장들을
나는 말없이 속으로 되뇐다.
진정, 진정.
도움이 될까?
눈앞에 놓인 놀라운 비율의 테이블도 한몫했을 것이다. 길고, 길고, 길고 긴 테이블이다. 영화의 어떤 장면에서도 이토록 긴 테이블을 본 적이 없다. 흰색일까? 어쩌면 투명한 재질인 것도 같은데 바닥과 천장, 벽까지 조명이 매립된 빛으로 가득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길고 길고 길고 긴 빛의 회랑 앞에 선 기분이다. 길이고... 통로 같은, 그런 테이블이다. 안내자 한 사람이 의자를 당겨주었다. 의자는 단 두개, 지금 내가 앉은 의자와... 저 멀리 맞은편 마주 앉은 의뢰인이 보인다. 그가 누군지는 알 수 없다. 안내자며, 의뢰인이란 이름마저도 내가 임의로 붙인 거니까. 거리가 너무 멀어 그인지 그녀인지 분간도 안 되지만 빛에 대비된 검은색 옷, 검은 챙모자만큼은 단단한 조약돌처럼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일이 끝나면
20만 유로를 받을 수 있다. 분명히 명시된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쉴레 이모가 이 사실을 안다면 이 이상한 물물교환에 대해 어떤 견해를 피력할까? 알 바 아니다. 하지만 이모의 집을 떠나기 전 그녀가 아끼는 도자기를 실수로 깨뜨렸다. 손잡이 부분이었다. 접착제로 몰래 붙여놓긴 했지만 내내 그것이 맘에 걸린다. 지금쯤 알아차리고 화가 났을까? 설마 실종신고를 하진 않았겠지. 편지를 남기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게 그 정도의 관심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짜르르르르...
안내자가 타이머를 작동시키자 익숙한 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신경을 자극하는 작은 소린데 뭐랄까, 여름 숲에서 들리는 곤충 소리 같기도 하고... 언젠가 뉘른베르크 박물관에서 본 중세시대 시계태엽이 낼 것 같은, 그런 소리다. 지난 6개월간 이 소리에 맞춰 훈련을 받았다. 말하자면 배변훈련이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타이머를 틀고 최대한 그 시간에 배변을 하는 훈련... 처음엔 30분 내로, 또 20분, 10분 내로 간격을 좁혀나가는 식이었다. 신기하게도 적응이 되었다.
짜르르르르... 소리가 고이면서, 부르고뉴 공작을 위한 시계태엽1 같은 것이 정말로 몸속에서 작동되기 시작한다. 이제 곧 신호를 보내오겠지. 긴장된 마음으로 기대어 앉아 나는 가만가만 복부를 어루만진다. 이곳에 들어와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인간의 몸이 일종의 ‘규칙’이란 사실이다. 어떤 형태이든, 또 어떻게 변형되든 그것은 일정한 규칙을 이룬다. 누군가는 이를 적응이라 여길 테고 또 어떤 이는 진화라고 칭하겠지. 꿈틀, 복부를 감싼 손끝에서 태엽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뉘른베르크 박물관에 나를 데려간 것은 엄마다. 생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어릴 때였다. 겨울이었다.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인데... 길목과 골목 보석처럼 박혀 있던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기억에 남아 있다. 여긴 박물관의 도시야, 엄마.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예전엔 나치의 도시였지. 엄마가 말했다. 그녀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젊다. 그 무렵의, 엄마의, 얼굴이다. 왜 갑자기 찾아와 여행을 데려갔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물론 아빠도 동의한 일이지만... 궁금하지는 않다. 엄마는 엄마, 나는 나니까.
신호가 왔다.
싸인을 주자, 테이블에 올라설 수 있도록 안내자들이 도와주었다. 일으킨 내 몸을 잡아주고 자신들의 어깨를 짚게 했다. 늘 그랬듯 그들은 정중하다. 내가 걸친 가운의 매듭을 풀어주고 비커를 건네주고... 남은 절차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수없이 머릿속으로 이 상황을 그리곤 했다. 실수를 해선 곤란하다. 마지막에 와서 20만 유로라는 도자기의 손잡이를 깨뜨릴 순 없는 거니까.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나는 정면을 바라본다. 알몸으로 서 있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궁금하지만... 당당하게 이 일을 끝내고 싶다. 비틀린 왼팔이 신경은 쓰였으나 이건 뭐, 어쩔 수 없다. 팬데믹 광풍이 유럽을 휩쓸 때였다. 중국년이다! 한무리의 소년들이 달려와 니네 나라로 돌아가 쌍년, 침을 뱉으며 테러를 가했다. 주머니칼이 보이고 몽둥이가 보였다. 백주대낮에 일어난 일이다. 닷새 만에 나는 깨어났지만 여러군데 골절이 일어난 왼팔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유럽인이었다. 채색된 기둥처럼 똑바로 서 있다가 나는 말없이 테이블 위를 걷기 시작한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여긴 박물관의 도시야 예전엔 나치의 도시였지 여긴... 예전엔... 여긴.. 예전엔.. 과거의 대화를 떠올리며 스스로의 태엽을 풀어나간다. 얼마를 걸었을까. 이윽고 반듯이 놓여 있는 타원형의 은쟁반 앞에서 걸음을 멈춰 선다. 커다란 쟁반이다. 어쩌면 접시일지도 모른다. 여긴, 예전엔, 여긴... 예전엔 접시였지... 엄마의 목소리가 에코의 잔향처럼 머무르다 사라진다. 그나마 의뢰인이 가깝게 느껴지는 거리였다. 하지만 얼굴을 볼 순 없었다. 모자챙과 연결된 검은 망사가 커튼처럼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신분을 숨겨야 하는 자구나, 생각은 했지만... 이제 정말로 집중을 해야 할 순간이다. 급기야 몸이 강렬한 신호를 보내왔고, 그
빛의 회랑에서
나는 쪼그려 앉은 채 배변을 하기 시작했다. 소변이 섞여선 안 된다는 조건을 지키기 위해 요도 쪽에 바짝 비커를 밀착시키고... 그래, 연습한 대로 순조로이... 일을 진행시켰다. 소리가 났다. 또...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숙이니 은쟁반에 서리는 하얀 김이 보였고... 그래, 이것은 물물교환이야... 20만 유로를 생각하며 천천히 배에 힘을 주었다. 고개를 들 순 없지만 모두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들이 평소 보여준 진지함이 없었다면 적잖이 이 순간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최대한 소리를 줄이려 나는 노력했고... 그래, 여기 있는 모두가... 차라리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라 상상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긴 시간은 결코 아니었다.
담담하려 나는 애를 썼지만
그래서 담담히
배변을 끝내고 일어섰지만
끝까지 담담함을 유지한 채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수고했다는 듯 걸쳐주는 가운의 촉감이 따뜻했다. 가도 된다는 안내자의 음성을 들었지만 좀더 있어도 되냐고 나는 물었다. 문제될 건 없다, 끄덕이는 제스처를 보고 나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멀리, 저 멀리... 건너편의 의뢰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조건을 제시했는지... 알고 싶었다. 어느새 세팅이 이루어져 있었다. 가물가물한 거리지만... 의뢰인 앞으로 쟁반이 옮겨져 있고 거기 담긴 내용물도 그대로였다. 그리고 냅킨, 포크와 나이프가 보였다. 그는 천천히... 마치 스테이크를 썰 듯... 매우 절제된 동작으로 내용물을 잘랐고... 포크에 발라 분명히 입으로... 그리고 음미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자르고, 먹는다, 자르고... 아무리 먼 거리라 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시식의 풍경이다. 그의 식사는 길었다. 신전의 회랑에 모였던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길고 긴 식사시간이었다.
†
내 이름은 봄, 꽃이 피는 계절을 뜻하는 한국어 이름이다. 한국을 가본 적은 없지만 아빠와 엄마가 한국인이다. 물론 과거형이다. 유럽에서 두 사람은 딸을 낳았고 자신들이 아는 가장 예쁜 한국어를 이름으로 지어주었다. 정말로 기뻐했다고 들었다. 아빠나 엄마의 말이 아니라 쉴레 이모로부터 들은 말이다. 두 사람 다 특이하고 복잡한 삶을 살았는데, 어쩌면 특이해서 복잡한 삶을 산 건지도 모르겠다. 자기주장이 너무 뚜렷하고, 자신과 가족을 돌보기보다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 우선이라 믿었다. 그래, 어떤 의미로든 그들은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그 수는 극히 적지만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이 세계엔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모인 그룹에서 태어나고 길러진 인간이다. 아빠와 엄마가 유럽에 온 것은 (각자의 차이는 있지만) 80년대의 일이라 들었다. 두 사람 다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을 했고, 지명수배를 피한다거나 하는 이유로 도피를 한 셈이었다. 자세한 건 나도 모른다. 또 말을 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두 사람은 마치 운명인 듯 연인이 되었고, 그보다 더 운명적으로 ‘이비사(Ibiza)의 후예’들을 만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내가 임의로 붙인 이름이다. 훗날 이들이 만든 무수한 단체와 기구를 생각한다면 이외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주 잠깐
설명을 덧붙이자면 60년대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쉴레 이모의 어머니, 그 또래의 이야기들이다. 당시엔 히피운동이란 것이 있었는데, 유럽의 젊은이들이 자연스레 모여든 곳이 스페인의 이비사섬이었다. 뉴욕, 쌘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머나먼 미국보다는 가까운 아지트가 필요했던 까닭이다. 영국, 프랑스, 이딸리아,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유럽 각국의 히피들이 섬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여 반전(反戰)을 외치고 춤과 노래... 공동체를 이루어 아이를 낳고, 함께 아이를 기르고... 또 약(drug)을 하고 약을 팔면서... 세계의 변혁을 논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놀기 좋은 섬이었다. 쉴레 이모는 이비사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부모세대의 그런 흐름이 그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 다시금 나타났다고 했다. 이모처럼 생물학적으로도 후예인 사람은 물론,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예들이 대거 흐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들이 그룹을 결성했을 때 운명처럼 한국에서 온 대학생들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너무나 신선했다고 한다. 아시아에도 많은 문제가 있구나, 우리가 고민해온 문제들이 실은 세계의 문제였구나... 서로의 시각과 사고가 확장되며 끈끈한 연결고리가 형성되었다. 아빠와 엄마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더 시급한 세계의 문제들이 언제나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은 말이야.
방파제가 없는 리아스식 해안 같은 것이야.
아무 대비 없이 파도를 맞아야 하는데
우리가 선 해안선은 너무나 길고
복잡하기 마련이지.
쉴레 이모가 언젠가 한 말이다. 아빠와 엄마에 국한해 말해보자면 이들은 곧 극단적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육식 반대운동에 앞장섰으며... 반전활동과 환경보호 운동, 또 감시활동...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법안추진 운동, 독점자본이나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맞서는 법률지원 활동... 대양오염 감시기구 조직 및 활동, 난민 인권보장을 위한 기구 설립... 그리고, 그리고 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알고 싶지는 않다. 그들이 걸어온 해안선이 너무나 길고, 복잡하므로. 그리고 끝까지
손을 잡고 걸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는 아빠를 떠났다. 그전에 우선 두 사람의 관심사, 활동조직이 달라졌고... 엄마는 그곳에서 알게 된 로베르또와 동거를 시작했다. 활동가들에게 결혼은 좀더 긴밀한 동지를 찾는 것과 비슷한 일이야. 훗날 아빠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쉴레 이모가 해준 말처럼, 엄마의 파트너는 바뀌고 또 바뀌었다. 아빠의 삶도 비슷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두 사람의 활동무대가 겹친 것은 팬데믹이 지난 후였다. 17년만의 재회였고 장소는 남미, 콜롬비아였다. 콩고에 파견 중이던 쉴레 이모에게 소식이 전해진 것은 그로부터 몇달 후였다. 두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 말이다.
지구 곳곳에서 해마다 200명 정도의 환경운동가들이 살해당한다. 공식적인 수치다. 의문사, 사고사, 테러, 폭행 등 비공식 집계까지 더한다면 그 수가 크게 늘 것이다. 개발이 가로막힌 거대기업들, 이권을 약속받은 권력자들, 사주를 받은 지역의 갱들이나 선동된 주민들이 주로 그 일을 행한다. 그해에는 177명의 운동가들이 살해당했는데 그 속에 아빠와 엄마가 있었다. 마침 우끄라이나에서 발발한 전쟁 때문에 뉴스 한줄 실리지 않은 죽음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현지에서 장례가 치러졌는데 파트너이자 동지로서, 쉴레 이모가 그곳을 다녀왔다. 걸림돌이 제거된 현지에선 재개된 개발공사가 한창이었다. 주변이 온통 공사장이었다고 이모가 말했다. 더는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훼손된 시신의 상태 내지는 불투명한 진상규명... 이런 것들에 대해 함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묻지 않았다. 나는 늘, 이런 이야기에 둘러싸여 성장한 공동체의 후예였기 때문이다. 오래전
이비사에 모였다 흩어진 그룹의 스펙트럼은 참으로 다양했다. 유럽 각지에서 반정부투쟁을 선택한 극단적인 이들도 있고, 묵묵히 조직과 기구를 결성해 영향력을 키우는 실천가들도 있었다. 세계 각지의 투쟁현장을 지원하며 싸우는 행동가도 많았고, 유엔 산하에 들어가 기금 마련의 열쇠를 손에 쥔 키맨도 있었다. 평범한 삶을 선택했으나 꾸준히 후원을 하는 소시민들이 있고, 여러 기구의 활동을 전문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인... 정당을 결성해 활동가들을 대변하는 정치세력도 있었다. 대학교수, 변호인 등 직업도 다양했고 하물며 유럽 전역의 마약 카르텔과 줄이 닿는 막강한 범죄자도 있었다. 환경오염을 감시하다 회유에 넘어간 변절자도 많았고, 다국적기업에 정보를 팔아넘긴 배신자도 즐비했다. 그리고, 그리고 열거하자면 한이 없겠지만... 기나긴 목록의 맨 끝에는 활동을 하다 살해된 사망자가 있을 것이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이모는
마치 옛날의 엄마처럼
나를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 같이 가지 않으련?
느닷없이 도착한 곳은 이비사섬이었다.
내가 태어난 곳이야, 내 어머니의 아지트였지. 이모는 말했지만
평범한 섬이었다.
관광과 유흥만 남은 그곳에서
우리는 밤늦도록 술을 마셨다.
멀리
조명이 번쩍이는 야외 클럽에서
라라라라라 함성이 터져나왔다.
연이어 레레레레레가
반복되는 노래였다.
라라라라라
레레레레레
이모는 한참이나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
제의가 들어온 것이 그 무렵이다. 처음엔 장난전화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조심스레 사람이 접촉해왔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상대였다. 세상 사람 대부분이 알고 있는 제약회사였고 6개월 임상실험에 응하는 일이었다. 공고를 통한 모집이 아니라 선별 접촉을 하는 이유도 명확히 밝혔다. 특별한 실험이고 비건(극단적 채식주의자) 이상의 비건을 찾기 위해 모든 정보력을 가동한 성과라 했다. 신체에 무해한 실험, 20만 유로가 지급되는 조건이었다. 결과가 좋으면 다음 스텝이 있는데 그땐 실험 참가자가 스스로 페이를 정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상으로는 적격인 셈이었다. 채식을 하나의 종교로 가정한다면 나는 이른바 모태신앙을 지닌 비건이었다.
20만 유로요?
내가 묻자
그 이상도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이렇게 큰돈을 번 적이 없었다. 그럴 가능성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팔에 장애를 입었고, 자폐를 지녔으며... 사실상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말라깽이 동양인 여성에게 도대체 누가 그런 기회를 주겠는가, 말이다. 딱히 어느 나라 출신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곳을 전전한 삶이었다. 아빠를 따라 유럽 곳곳의 지부를 옮겨다니며 마련된 숙소를 쓴 셈이지만, 그렇다고 아빠가 나를 보살핀 것은 아니었다. 나를 기른 것은 공동체였다. 다만 가는 곳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아이였다. 커서는 단체나 지부 사무실에서 잡무를 보며 생활할 수 있었고... 그나마 쉴레 이모의 ‘집’에서 최근 몇년을 보낸 셈이다. 괜찮니, 봄? 이 문장을 떠올리면 절로 아빠의 얼굴이 그려진다. 다른 숱한 얼굴들도 차례차례 떠오른다. 아마도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 내 인생의 문장이다. 그때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 괜찮구나,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아빠도 그랬다.
괜찮니, 봄? 이비사섬에서 취한 눈으로 이모가 물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이 질문이 스스로를 스토아학파라 생각하는 인간이 관계를 정리하는 방식, 그 출발선이라 받아들였다. 당연한 일이다. 이모는 이모고 나는 나니까. 너 괜찮냐는 말에는 내가 괜찮지 않다는 말이 녹아 있다. 아빠도 그랬다. 언제나 스스로가 괜찮기 위해 괜찮니, 봄? 묻고는 했다. 아빠와 엄마, 오랜 친구들을 떠나보낸 이모의 마음도 리아스식 해안처럼 복잡했을 것이다. 그녀의 삶도 간단해질 권리가 있다. 라라라라라 레레레레레 함성을 함께 질러줬다면(어깨를 걸고 말이다) 조금이나마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겠지만 내 삶도 마찬가지, 간단해질 권리가 있는 것이다.
절차는 까다로웠지만
세계적인 제약회사답게 안전하고
탄탄한 계약서가 마무리되었다.
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상자
80명 중 하나였고
실험은
별도의 연구시설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이모에겐 고맙다는 말을 남겨주었다.
편지의 말미에 그렇게 썼다.
라라라라라 레레레레레를 외치는 것보단
쉬운 일이었다.
†
집결지였던 공항에는 열댓명가량의 여자애들이 모여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들뜬 분위기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애초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막역한 대화를 나누는 이도 있었다. 혹시 불 있니? 내게 말을 건 것은 미아라는 흑인 소녀가 유일했는데 나이는 어리지만 사나운 인상이었다. 20만 유로에 대한 잡담이 주를 이뤘다. 왁자지껄... 벌칙은 뭘로 정할까? 누군가 소리치자 롤프 부흐홀츠2와 섹스하기! 누군가 말을 받았다. 그건 약해, 롤프 부흐홀츠와 애널섹스하기 또 누군가 말을 바꾸자 깔깔깔 웃음이 터져나왔다. 소풍이라도 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니까
6개월 전의 일이다. 제약회사가 마련한 전용기에 올랐는데 옆자리에 앉은 것도 미아였다. 이상해.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아가 입을 열었다. 흑인들만 모일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잖아. 게다가 넌 치노(중국인)고... 얘길 들어보니 미아가 선별된 이유는 누에르인3의 유전자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의 모든 유전자 풀을 갖고 있니 어쩌니 쌉소리도 했다구. 표정을 구기며 속삭이는데 강렬한 고기 냄새가 입에서 진동했다. 실은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알렉시예비치의 말처럼... 비건에겐 비건의 얼굴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봐도 그런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유일한 비건인지도 몰랐다. 또 이상한 일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잠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졸면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잠이 아니라
마치 곯아떨어지듯
한순간 고개를 떨구었다.
마지막까지 이를 지켜본 것이 나였으므로
자신있게 ‘모두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비록 잠깐이지만 도중에 눈을 뜨기도 했다.
몇초에 불과했을 그 짧은 시간
내가 본 것은 창밖의 눈보라였다.
휘몰아치는, 거센
다시 눈을 떴을 땐 혼자였다. 환복이 된 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고 마치 마취가 덜 풀린 듯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순간 공포를 느꼈으나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었다. 전쟁은 당신이 원할 때 시작되지만, 당신이 원할 때 끝나지 않는다... 고전적 공화주의자였던 마끼아벨리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 실험이... 내가 원할 때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불안이 솟구쳤다. 괜찮니, 봄? 괜찮지 않은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괜찮아지기 위해서였다. 실은 한번도
괜찮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래, 괜찮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내가 원할 때 시작된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
원할 때 끝낼 수는 있지만
원해서 끝낸다기엔 무리가 있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실험일까.
그리고 이것은
어떤 형태의 전쟁일까.
그리고 대체
누구의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삶’은 내 외할머니의 ‘죽음’이었다. 우연히 보게 된 풍경이다. 잡무를 거들고 일이 손에 잡힐 무렵, 단체 사무실에 딸린 작은 창고를 정리하던 와중이었다. 1985.10.3. 기추자(奇秋子) 발인. 퇴색된 라벨이 붙은 오래된 비디오테이프가 보였는데 뜻은 몰라도 한글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빠에게 가져가자 아, 탄식을 뱉더니 설명을 해주었다. 장례식에 오지 못한 딸을 위해 한국의 가족들이 보내온 테이프, 다시 말해 내 외할머니의 장례식이 담긴 영상이었다. 이게 왜 창고에 있는 거야? 물으니 유럽과 아시아의 재생 방식이 달랐거든, 때문에 장비가 갖춰진 사무실에서만 영상을 봤다고 했다. 다행히 창고에는 그 옛날의 장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시간이 훨씬 넘는 영상이었다. 어떤 설명도 대사도 없이... 그저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걷고, 걷고, 또 걷는 영상이었다. 밀밭 비슷한 평야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 비탈을 타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행렬이었다. 그 선두에 하얀 꽃으로 뒤덮인 작은 오두막이 있었다. 말이나 바퀴의 힘으로 끄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어깨에 지고 걷는 흔들, 하고 들썩이는 무엇이었다. 작물이 출렁대는 평야를 지날 때에, 그래서 그것은 작은 배〔船〕처럼도 보였다. 저것은 ‘상여’라는 것인데... 아빠가 말했다. 죽은 사람만이 탈 수 있는 롤스로이스라고도 했다. 가족과 친척, 이웃과 동네 사람... 살면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 망자의 뒤를 따르는 거라고 아빠는 말했다. 그들은 울고 또 울며 걸었다. 그리고 아리랑4을 불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아름다워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녀의 죽음은
삶의 얼굴을 하고 있고
그녀의 삶은
죽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괜찮습니까? 낯선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안해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도 덧붙였다. 미리 말씀은 못 드렸지만, 이곳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부득불 행한 조치라며 양해를 구했다. 안심해도 된다는 듯 그는 미소를 지었다. 꼭대기 층 창문만 빼꼼 열어젖힌 성마리아성당5처럼 정중함을 잃지 않는 미소였다. 그것이 안내자와의 첫 만남이다. 그들은 누구도 이름을 말하지 않았고, 정말로 이름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머리카락이 전혀 없었고 모두가 흰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안내자’라 통칭했다. 달리 다른 방법이 없기도 했다.
†
프로젝트의 과정은 이것이 과연 실험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쉽고 간결했다. 하루 세번, 그들이 제공하는 팩을 남김없이 먹고 하루 한번, 정해진 시간에 배변을 하는 훈련... 그게 전부라면 전부였다. 팩에 든 음식물은 재료를 알 수 없는 걸쭉한 액체였고... 때로는 약간 미끈거린다, 싶은 식감이었다. 냄새는 나쁘지 않지만 맛이 있다고는 할 수 없는 일종의 즙이었다. 다만 배변은... 타이머를 놓고 안내자의 참관하에 행해야 한다는 끔찍한 규칙이 있었는데... 아마도 20만 유로를 떠올리며 다들 적응하지 않았을까, 추측을 하게 된다. 자폐를 가진 나조차도
적응을 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롤프 부흐홀츠와 애널섹스하기를 외칠 정도라면 눈 딱 감고 20만 유로! 핀볼을 쏘듯 해치우지 않았을까,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미아의 경우엔 먹는 게 고역이었을지 모른다. 이게 뭐야? 이걸 먹으라고? 직접 따지고 대드는 건 물론 오호, 세게 나오시겠다 이 얘기지? 그녀의 표정이 바로 그려지지만... 어떻게든 그녀도 적응을 했을 거란 게 내 생각이다. 물론 대상자 개개인의 사정은 다 다르겠지만, 내가 느끼는 고충은 따로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실험의 목적을 알 수 없다는 고통... 의문 그 자체가 내게는 유일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정원이 있었다.
이곳의 정원을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로소
사랑하고 싶은 남자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말하자면 그런
남자의 얼굴을 한 정원이다.
구조로 보자면 영화에서 본 교도소의 운동장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철저히 격리된 개인의 공간, 그리고 공공장소로서의 정원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풍경은 전혀 다르다. 수감자들이 모여 잡담을 나누는 교도소의 운동장과 달리, 이곳에선 동료를 만날 수 없다. 이용시간이 다르거나 정원 자체가 격리된 설계일 수 있겠지만 실은 더 간단한 이유가 있다. 너무나 방대하고... 웅장한 정원이기 때문이다(펜스가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알고 있는 정원이 아니라 차라리 거대한 숲, 아마존의 열대우림에 가까운 풍경인 것이다. 하지만 숲이 아니라 분명한 정원이다. 이런 정원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노아의 방주에 실었던 모든 씨앗을 이곳에 심어 또 수천년 가꿔온 정원 같았다. 나는 이곳을
신이 만든 정원
신의 정원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이곳이 실내정원이란 사실이다. 뒤늦게 그걸 알 수 있었다. 너무 높은 위치기도 하고, 또 평소엔 빛에 가려 보이지 않던 거대한 빔 구조물... 그 일부를 어느날 보게 된 것이다.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결국 만나진 못했으나 미아를 꼭 한번은 만나고 싶었다. 이거 설마 사기는 아니겠지? 제약회사 이름을 팔아서 말이야. 알바니아 갱들이 뒤에 있는 거라면 젠장, 비행기에서 속삭이던 그녀에게 괜찮니, 미아? 스스로가 괜찮은 상태에서 괜찮냐고 묻고 싶었다. 그리고 허락한다면, 손을 잡고 이 정원을 함께 걷고 싶었다. 아빠도 엄마도
어쩌면
내가 만난 모든 이들이
이런 세계를
걷고, 걷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망자만이 탄다는 롤스로이스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처럼
걷고, 걸어
누군가를 묻어주고
누군가는 자라나고
괜찮냐 묻지 않아도
서로가 괜찮은 세계
‘추자’라는 할머니의 이름에는 가을이란 의미가 들어 있다고 아빠는 말했다. 그럼 엄마의 이름엔 겨울이 있는 거냐 물으니 그건 아니라고, 웃으며 답했다. 장례엔 가지 못했지만 협회에 올라온 보고서를 열람해 아빠와 엄마가 어떤 죽음을 맞았는지 소상히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마체떼(정글도)로 17회의 공격을 받았고... 아마도 훼손과정에선 더 많은 칼질이 가해졌을 것이다. 아빠는 세발의 총을 맞았다. 훼손의 정도는 엄마보다 심했고, 두 사람은 20미터쯤 떨어진 각자의 숙소에서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아빠는 혼자였고 엄마는 당시 동거 중이던 이고르와 함께였다. 지도를 찾아보니 한국에도 콜롬비아에도 수많은 섬을 가진 길고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이 존재했다.
본능적으로 웅크린 자세에서
당신의 왼팔이 당신을 살린 거예요.
단단히 머릴 감싼 채 말입니다.
위로를 건네던
의사의 말도 생각이 났다. 언제였나 기억은 불분명하지만 쉴레 이모와 아빠가 술을 마시며 벌였던 격한 논쟁도 떠오른다. 북반구에 모인 인간, 기업, 국가 들이 남반구를 착취해온 구조... 역사에 관한 토론이었다. 아빠도 이모도, 잠결에 이를 엿듣게 된 나 역시 따지고 보면 북반구의 인간이어서 새벽녘까지 이어진 길고 긴 대화를 그만 끝까지 듣고 말았다. 러시아인에겐 약이지만 독일인에겐 독이지... 언젠가 알게 된 러시아 속담이 떠오른다. 이를 가르쳐준 건 이고르였다. 나는 몇차례, 우끄라이나지부 대표로서 출장을 온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엄마와 동거를 하기 훨씬 전의 일이고 그는 엄마보다 여덟살 어린 남자였다.
모노폴리 오이피클 책과장미의날 쌩떼띠엔뒤루브레성당 횡단보도 라이온링크해저케이블 2019년유럽전력보고서 후무스앤팔라펠 어떤이들은말하겠지 오아시스 유럽호랑가시나무 쌍떡잎식물무환자나무목감탕나무과상록교목 도서반납 유럽가시가루조개 유라시아순록 헬싱키중앙도서관 미네랄 피마인디언 탄수화물 코코넛오일 김형일 레만호 제또분수 타짜도르 에스프레소 그리니따꼰빤나 서연주 스노모빌 빠야스페인무곡1번 루세로 테나 핀란드귀뚜라미빵 메디치가문의몰락... 그리고, 그리고 의미없는 말들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안내자가 찾아왔다.
평소와 달리 태블릿을 들고 왔다.
그리고
20만 유로가 송금된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음 스텝에 지원할 의사가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선정된 대상자는 두명인데
원한다면
면담이 진행될 예정이라
그가 말했다.
†
면담은
내가 모르는 또다른 정원에서 이루어졌다. 시설의 가장 상층부, 보다 은밀한 보안이 이뤄지는 장소 같았고... 또 어쩌면 보안이니 이런 것과는 무관한 장소처럼도 느껴졌다. 세상과 분리된 말 그대로의 하늘... 공중정원이었다. 지상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사뭇 다른 느낌의 정원이다. 그리고 중심축이다. 밀에서 보았던 경이로운 풍경... 거대한 돔을 지탱하는 빔 구조물이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진 구조였다. 면담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듯했다. 나는 혼자였고 나를 도왔던 안내자도 손짓만 할 뿐 더는 나를 인도하지 않았다. 정원의 중심부에 서 있는 그가 누군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눈에 익은 검은색 옷... 의뢰인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모자를 쓰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정말로 가까이 가서야 알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거인인지를
그리고 그가
인간과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 있었다.
키가 족히 10피트는 넘어 보였고
그럼에도 수척한 몰골이었다.
윤곽은 인간과 비슷하나
전신화상을 입은 환자 같은
혹은 말라 죽은 나무의 갈라진 껍질 같은
끔찍한 피부를 갖고 있었다.
그는 지그시 나를 응시했는데
한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나는 기다렸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는데
그의 첫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너희의 생각처럼 유일하지 않지.
이 조건에 해당하는 유일한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신’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 내 앞에 신이 서 계신다.
며칠 전
내가 싼 똥을 남김없이 드셨던 그분께서
나를 굽어
살피며 서 계셨다.
그는 자신을 정원사... ‘가드너’라 불러주길 원했다. 그게 편할 거라 했으니 임의로 지은 이름 같았다. 천천히 정원을 거닐며 대화를 나눴는데 정리할 건 정리하고, 요약이 필요한 대화였다. 원활한 소통이 아니었다. 진의를 파악하고 부분부분 의역도 필요했는데... 9년 동안 여러 기구의 여러 현안 서류 작성을 도운 이력이 그나마 도움이 되었다. 우선 약을 만드는 실험이 아니라고 했다. 제약회사는 그저 하부의 하부의 하부에 위치한 도구일 뿐이고 자신의 목적은 따로 있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가드너인 자신이 있듯이 기술자... 엔지니어가 있다는 말을 했다. 지금 세상을 주관하는 건 엔지니어고 자신에겐 그를 막아설 권한이 없다고 했다.
엔지니어가 곧
손을 볼 거란 말을 했다.
원래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자 의무라고도 했는데 인간이 우선 대상이었다. 자신도 동의를 했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 반복되어온 일이고, 엔지니어가 이번에 택한 것은 비교적 손쉬운 방법이었다. 바이러스를 쓸 거라고 했다.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고 청소하는 결과가 올 텐데 막지 못한다고... 또 막을 이유도 없다고 가드너는 말했다. 자신은 자신의 역할을 할 뿐이고 그래서 이 일을 준비하는 거라고 했다. 인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간의 재료는 인간뿐이니까. 또 인간은
인간의 재료일 뿐이니까. 그가 말했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난생처음 보는 색다른 정원이었다. 커다란 구근(球根)을 보는 듯했다. 꺼내놓은 양파 같기도 하고 줄지어 올려놓은 호박처럼도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구근도 호박도 아니었다. 엎드린 채 몸을 말고 웅크린 인간이었다. 바싹 마른 시신이었고 그 등에서 뻗어나온 촉수 같은 것... 말라비틀어진 넝쿨줄기가 솟아 있었다. 야차굼바(동충하초)에서 얻은 힌트로 내가 만든 작품이지. 하지만 전부 실패작이야. 가드너는 말했다. 끝없는 고통을 끝내줄
최선책이야.
엔지니어에게 들키지 않고
인간을 보전할
유일한 방법이지.
그래서 인간이 필요한 거야.
성공작이 될 인간
그럴 가능성이 높은 재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이해하기론 그가 말하는 실패작이 웅크린 시신은 아니었다. 인간을 숙주 삼아 싹을 틔우고 올라온... 말라비틀어진 균류를 뜻하는 말이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의식을 담은 균류를 만들어... 인간을 숙주 삼고... 끝나지 않는 고통을 멎게 해주고... 겨울의 벌레와 여름의 풀처럼... 순환 가능한 성공체를 만드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너의 ‘의지’를 사고 싶다고 그가 말했다. 어떤 금액이라도 지불할 용의가 있는데 다만 너는 그 돈을 사용할 수 없을 거라 덧붙였다. 친구든 가족이든 대상을 지정한다면 어김없이 그 금액이 전달될 거라 약속했는데... 하지만 그리 길지 않을 거야, 돈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말이야. 가드너는 말했다.
†††
여름의 시작이 어땠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의식이 돌아왔을 땐
이미 여름이 한창이었다.
가드너의 제안을
곧바로 수락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시간을 요구했다.
지상의 정원을 충분히 사랑할 시간
그와
사랑을 나눌 시간 말이다.
그리고 몇년을 더... 정원에 파묻힌 인간이 되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가드너의 말 그대로, 그리고 엔지니어의 청소가... 그 뚜렷한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시작해도 좋아요. 웃으며 나는 말했다. 정원에서 자라난 단단한 나무처럼 나의 의지도 확고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겨울의 마지막이다. 내 이름은 봄. 그리고 의식이 돌아왔을 때 가드너의 실험이 성공했음을 알 수 있었다. 습관적으로 생각하자면 발아래께... 엎드린 채 웅크리고 있는 가드너의 등이 보였다. 거대하고 둥근 남반구와 같은 등... 가드너가 스스로 자신의 몸을 숙주로 주었는지... 의식이 없는 상태의 내가, 그를 침투하고 숙주로 삼았는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봄은 겨울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바람이 좋다.
부유하듯 퍼져나가는 나 자신의 포자들을 바라보며
잡아먹고 죽지 못하는
외부의 고통에 대해 나는 생각한다.
겨울엔 벌레
여름엔 풀
엔지니어의 눈에 띄지 않고
더는 이 세상에 관여하지 않고
무관한 듯
말없이 우리는 남아 있을 것이다.
여름이다.
그래, 여름이다.
―
- 1430년경 제작된 최초의 시계태엽. 독일 뉘른베르크 게르만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Rolf Buchholz. 가장 많은 피어싱을 한 인물로 기네스에 등재된 독일인. 온몸에 453개의 피어싱을 해 세계기록을 세웠고 이중 278개의 피어싱이 성기에 집중되어 있지만 자신은 아무 문제 없이 성생활을 한다고 밝혀 화제가 되었다.↩
- Nuer. 영국의 인류학자 에번스프리처드(E. Evans-Pritchard)에 의해 조사되고 알려진 수단 남부의 부족. 1940년에 발간된 그의 저서가 국내에선 『누어인』(권이구 옮김, 탐구당 1988)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다.↩
- 哭. 한국의 전통 장례에서 행하는 곡소리를 화자가 아리랑이라 착각한 것이다.↩
- St.Mary’s Basilica. 폴란드 끄라꾸프 중심에 위치한 성당. 첨탑의 작은 창을 열고 나팔수가 시간을 알리는 연주를 하는 전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