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부산시의 독단적인 퐁피두분관 설립 중단하라
남송우
지금 부산 문화판에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부산시가 부산 이기대 도시자연공원에 예술공원을 조성하면서 프랑스의 퐁피두미술관 분관을 건립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약 4천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도 없이 이처럼 엄청난 시민 혈세를 사용하고자 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퐁피두분관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퐁피두센터와 비밀협정서를 통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광역시-조르주 퐁피두 국립 예술문화센터 양해각서」는 모두 9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6조 기밀유지/소통’ 부분에서 “각 당사자는 (…)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기밀 정보를 보호하고 공개하지 않을 것” 그리고 “서면으로 특별히 합의하지 않는 한 본 양해각서의 존재, 서명, 목적 및 조건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제3자 또는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고 못박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비밀유지의무는 본 양해각서의 서명일로부터 10년의 기간 동안 유지된다”는 점까지 분명히 하고 있다.
그동안 부산시는 공식적으로 퐁피두분관 유치를 발표하면서도 어떤 내용으로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함구했다. 협정서 조항대로 ‘비밀리에’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비밀협정서에 나타난 ‘제5조 재무조건’에서는 매년 부산시가 사백만 유로(60억원)를 지불할 뿐만 아니라, 상설전·기획전과 교육활동비로 연간 이백만 유로(30억원), 연간 브랜드 사용료 이백만 유로(30억원)을 지불하며, 운송료·보험료·세금 및 관세까지 부산시가 부담하는 것으로 명기되어 있다. 분관 건립비도 부산시의 몫으로, 건립과 운영에 필요한 모든 재정 중 퐁피두센터가 부담하는 부분은 전혀 없다. 이런 재정적인 불평등 협의 못지않게 더욱 공분을 사는 건 ‘제8조 언어와 준거법’이다. “본 양해각서는 영어와 프랑스어로 작성되고 두 버전은 모두 정본이다. 해석상의 이견이 있을 경우 영문본이 우선한다”, “본 양해각서는 프랑스법에 따른다”고 명기하고 있다. 나라의 언어까지 팔아먹은 굴욕적인 협의가 담겨 있는 비밀문건이기에 부산시는 퐁피두분관 유치를 진행하고 발표하면서도 시민들에게 그 구체적 내용을 공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부산시 국정감사 때 이소영 국회의원이 퐁피두와의 비밀협정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비밀이기에 국회에 제출할 수 없다던 협정서가 실은 부산시의회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었고, 이것이 공개되면서 부산시의 추악한 진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부산지역 22개 문화예술단체와 시민단체는 ‘이기대 난개발 퐁피두분관 반대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부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퐁피두분관 유치 문화정책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토론회와 시민설명회는 물론 부산시청 앞에서 1인시위도 계속하였다. 그러자 부산시는 뒤늦게 관변단체들을 동원해서 두차례의 시민설명회를 독단적으로 강행했다. 이기대공원이 위치한 부산시 남구 지역 대형 아파트단지 주민을 대상으로 퐁피두분관 유치에 대한 일방적인 찬성 서명지를 돌리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부산예총(부산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의 문화예술 단체에 은밀하게 찬성 서명활동을 주문했다. 그러면서도 부산시는 비밀협정서 내용을 있는 그대로 시민들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단지 세계적인 미술관인 퐁피두분관이 건립되고 이기대공원이 예술공원으로 조성되면 남구 지역은 지가도 오르고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다는 사탕발림 수사만 난발할 뿐이었다.
퐁피두분관 건립 예정지인 이기대공원의 예술공원 조성사업 역시 아무런 공론화 과정 없이 부산시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8조 1항에는 “공원녹지 기본계획 수립권자는 공원녹지 기본계획을 수립하거나 변경하려면 미리 공청회를 열어 주민과 관계전문가 등으로부터 의견을 들어야 한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부산시는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한 도시의 예술공원 조성사업이 굴욕적인 비밀협정에 의해 진행된다는 점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것이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이기대를 본격적으로 훼손하는 작업으로 이어지리라는 사실이다. 천혜의 자연공간으로서 부산에서 인간의 개발개입이 없었던 마지막 공원이라 할 이기대를 예술공원이라는 명목하에 마구잡이식으로 개발하겠다는 것은 기후위기 시대 환경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역행하는 처사이다. 부산시는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겠다고 공표했지만 실제 용역보고서에 나와 있는 내용만 보더라도 시민들을 기만하는 말뿐인 행정처리에 지나지 않았다.
공원일몰제에 의해 이기대공원 내 용호동 사유지를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부산시는 곧장 이 사유지를 공시지가로 매입했다. 공식적인 매입 이유는 사유지 개발을 막아 이기대공원을 온전히 보호하기 위함이었지만, 매입 이후 부산시는 곧바로 수변공원인 이기대공원을 근린공원으로 변경하고 조성사업에 착수했다. 오륙도 아트센터, 숲속 갤러리, 아트 파빌리온 건립 등 추산예산 3659억원을 계획하고 예술공원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시가 진정으로 공원 보존을 생각했더라면, 준비단계에서부터 이기대 자연에 대한 영향평가를 실시했어야 했고, 이를 토대로 훼손지를 최소화하는 그림을 먼저 그려야 했다. 그러나 용역보고서 어디에도 여기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기대에 서식하는 식물이나 생명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과 현황조사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부산시가 내세우는 세계적인 관광지 개발이라는 화려한 계획 뒤에는 천혜의 이기대 자연경관과 동식물의 서식지를 마구잡이로 훼손하는 일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부산시는 올해 12월까지 퐁피두와의 공식협약 체결을 목표로 무모한 속도로 행정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맞서 ‘이기대 난개발 퐁피두분관 반대 대책위원회’는 이 어처구니없는 질주를 멈추기 위해 주민투표를 준비 중이다. 아직도 시민이 도시의 주인이 되지 못한 부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를 향한 절박하고도 단호한 몸짓이다.
남송우 / 이기대 난개발 퐁피두분관 반대 대책위원회 공동대표, 부경대 명예교수
2025.12.9.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