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이후(以後)의 삶을 위하여
공선옥
1991년 겨울
“말을 안 하면 죽을 것 같고 말을 하면 우스워진다”고 말한 사람은 독일 작가 헤르타 뮐러(Herta Müller)다.
1991년의 겨울 어느날 나는 서울에서 사람들을 만났는데, 각자 돌아가며 자기 말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가 내게도 ‘너의 말’을 하라고 했다. 의도한 건 아닌데, 말을 하다보니 그 말이 나왔다. ‘광주’가. 내 입에서 광주 말, 그러니까 광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나는 이상징후를 느꼈다. 가슴이 뛰고 숨이 가빠지는. 그러나 이왕 나온 말이니 나는 마저 하고 싶었다. 한번 나온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광주가 아닌 곳에서, 광주 이야기를 내 입으로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말을 안 해서가 아니라, 하면 죽을 것 같아서였을까. 광주사람들은 그해 그 봄에 대해서 말을 잘 안 하려 했다. 빙빙 돌려 다른 말을 하다가 그 봄에 대한 말이 나오면 급하게 입을 다물곤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안 해서 죽을 것 같은 말은 한다고 해서 우스워지진 않았다. 적어도 광주에서는. 광주가 아닌 곳에서도 그런 줄 알았다, 나는. 그러나 누군가, 내 말을 잘랐다.
아니, 광주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광주타령입니까? 광주사람들은 광주 아니면 할 말이 없나요?
내 말을 자른 사람을 누군가 타박했다. 그러면서도 굳이 또 오금을 박았다.
어두운 과거는 털어버리고 밝은 미래를 향하여……
나는 입을 다물었고, 자리를 일어서서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역으로 가는 동안 꾹 참았던 눈물이 기차에 오르자마자 터져서 멈추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여수 살 때였다. 용산에서 여수까지 다섯시간이 걸렸다. 그 다섯시간 동안 눈물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때는 광주 끝난 지 10년하고도 1년이 더 흐른 시점이었고, 지금은 그로부터 또다시 33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꾸역꾸역 ‘광주 이야기’ 몇개를 썼다. 정확히 말하면 ‘광주 이후’의 이야기들을. 안 하면 죽을 것 같고 하면 우스워지는 이야기를, 말로는 못하고 글로만.
그게 끝나지 않았나요?
모든 이야기는 사실, ‘이후’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어떤 ‘사태’ 이후엔 그 일이 있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러니까 어떤 ‘사태’ 이후를 살아내는 것이리라.
모든 사태는 끝났어도 끝나지 않는다, 절대로. 세상에 마무리는 없다. 다만 살아가고 살아낼 뿐이다.
‘거리의 신부’ 문정현 신부 일행이 무안공항에서 매주 일요일 추모미사를 드린다고 해서 다녀온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아니, 그게 아직도 해결이 안됐나요?
끝나긴요. 아직도 유족들이 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천막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물은 사람은 놀란다. 보도가 안 돼서 다 끝난 일인 줄 알았다고 한다.
보도가 되었다고 해도, 그리고 ‘다 끝났다고 해도’ 그게 어찌 끝난 일이 될까. 안 끝나고 못 끝낸다. 가족들은 그 일을 평생을 가지고 가겠지. 그래도 살아야 한다. 남아 있는 적막한 시간을.
이후의 이야기들
2002년 태풍 루사는 강원 영동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나는 그때 시사 월간지 『말』에 ‘마흔에 길을 나서다’라는 이름의 글을 쓰고 있었는데, 그러느라 전국을 돌아다니는 중에 그녀를 만났다.
강원도 인제 산골짝 송어횟집도 형체를 알 수 없이 무너졌다. 가을이 되자 지난여름 그 산골짝의 난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여느 해나 마찬가지로 그 산골짝에 단풍객의 행렬은 이어졌다. 그곳에서 그 ‘애기엄마’는 혼자서 지난여름의 태풍의 밤을 앓고 있었다. 물에 휩쓸려 실종된 송어횟집에서 일하던 남편을 기다리며 그 골짜기를 떠나지 못하고 적막한 울음을 토해내던 젊은 그녀는 지금 어디서 어찌 살고 있을까, 이따금 생각난다.
모두가 아는 가을이지만 또 아무도 모르는 가을을 살던, 말하자면 젊은 애기엄마의 ‘사태 이후의 삶’이.
내란의 주범은 잡혀 들어갔지만, 잡아서 ‘족칠’ 수도 없는 우리 집 주범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누군가에게 상담요청이라도 하고 싶은 맘이 들다가도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 짐작은 하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어서 ‘환장’하겠다, 나라의 내란은 진압국면이지만 우리 집 내란은 이제 시작이다……
바로 내 친구 이야기다. 다 같이 죽을 것 같던 2024년의 겨울이 지나고 나서 친구는 이제 혼자 죽을 것 같단다. 지난겨울의 법원 난동자들 속에 제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우세스러워 말도 못하겠다고 한다.
나라의 내란은 알아서들 하겠지만 우리 집 내란은 누가 끝낼 수 있을까. 끝난다고 끝난 일이 될까. 친구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 물음일 테다. 그래도 ‘이 꼴 저 꼴 많이 봐온’ 환갑쟁이 친구는 말한다. 그래도 어쩌겠냐이, 헤진 옷 기워 입듯이 또 살아봐야제이. 우리가 사라사 보제, 죽어불면 못 봐, 그냐 안 그냐.
계엄은 끝났는가. 이렇게 끝내야 하는가.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사법부가 알아서 내란범(그는 단지 내란범일 뿐일까?)에게는 사형이나 무기징역밖에 없다는 징역을 때리면 다 끝난 일이 될까. 그 일에 가담한 이들에게 적절히 징역들을 때리고 나면, 그러면 이제 우리는 이재명정부가 시전하는 ‘정상화’된 나라에서 심신의 평화를 구가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모를 일이로되 다만 한가지, 안 하면 죽을 것 같은 말을 해도 우스워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 이후의 삶에 대해 그치지 말고, 아니 기를 쓰고 이야기하며, 또 들으며 살아갔으면…… 작년과 같이 올해도 또 그러하기를. 올해 이후에도 또 그 이후에도. 내 친구 말대로 살아 있을 때, 이야기 한자리라도 더 하고 더 듣고 얼굴 한번이라도 더 볼 수 있게 되기를.
공선옥 / 소설가
2026.1.6.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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