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언론개혁이라는 묵은 과제, 정보·소통 환경의 재구성이라는 새 과제
정준희
어떤 말은 사상을 담는다. 언론개혁이라는 말 속에는 어떤 사상이 담겨 있을까? 사실의 왜곡 없는 정확한 보도, 그리고 의견이라는 미명하에 정치질을 하지 않는 공정한 언론상을 구현하는 일 정도일 것이다. 사상이 현실 속에서 구현되려면 방법론을 필요로 한다. 요즘은 흔히 가짜뉴스라고 지칭되는 악의적인 왜곡보도에 더 강한 징벌을 가하여 심각한 문제를 교정하는 동시에 예방하고, 공영방송이라는 공공적 언론매체가 정권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일정한 독립성을 보장하는 한편 이들의 공공성을 촉진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게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제시되어온 방향이었다.
최근 민주당은 ‘허위조작정보’를 온라인으로 유포하는 언론사나 개인에 대해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언론탄압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본 국민의힘 등의 일부 정당과 언론현업단체의 반발이 있었지만 2025년 크리스마스 무렵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다. 이 법은 2026년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변경하는 이른바 방송3법 개정안은 그전에 통과되어 이미 시행 중이다. 이를 통해 KBS와 EBS의 이사회, 그리고 MBC를 감독하는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 수가 대폭 확대됐고, 정치권이 독점하던 이사 추천권을 다양화했다. 사장 선출이 집권 정파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 이때에도 국민의힘의 반대가 있었지만, 현업자들은 신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그래서일까 국민의힘의 당시 반대 논리는 ‘노조의 손에 방송이 장악되도록 하는 법’이라는 거였다.
이를 보면, 앞에서 논의했던 언론개혁의 방법론이 얼추 현실화된 듯하다.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징벌성이 대폭 강화됐고,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에 대한 정치권의 영향력을 꽤 약화시킬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이 마련됐다. 하지만 몇가지 입법 혹은 정책이 언론개혁을 목표로 더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개정 정보통신망법이 모든 언론사나 개인들까지 포괄하기는 하지만 ‘종이신문’이라는 전통적인 영역이 남아 있다. 요즘 세상에 종이신문을 보는 사람도 거의 없고, 종이신문에만 싣는 기사가 따로 있을 까닭도 없기는 하지만, 어떻든 제도화된 언론사를 대상으로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아서, 언론중재법 역시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또 공영방송의 사장 선출 방식이 바뀌었다고 해서 공영방송이 곧바로 독립성과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공공적 운영을 촉구하는 제도를 추가적으로 입법화하거나 정부정책 속에 반영하는 과정이 후행될 필요도 있다.
아직 집권 1년이 안 된 이재명정부로서는 국정 지지율이 뒷받침되는 한, 필요로 되는 언론개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언론개혁에 우호적인 정당이 국회에서 (패스트트랙 같은 것조차 시도할 필요도 없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관계로만 보면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문재인정부 후반기보다도 훨씬 더 유리한 조건이다. 당시에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야당과 현업단체, 그리고 국제인권기구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었지만, 앞서 언급했던 법안들이 이번에 통과되는 과정을 보면 이른바 ‘역풍’이 두렵다는 이유로 반드시 해야 할 개혁을 못할 것 같지는 않다. 김대중·노무현정부 이래로 민주·진보적 지향을 갖고 있던 이들의 염원과도 같았던 언론개혁이 거의 20년 만에 드디어 목표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 마련돼 있는 셈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그림이 제대로 펼쳐질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정확함’이나 ‘공정함’ 그리고 ‘독립성’ ‘공공성’이라는 언론개혁의 사상이 그리 명료하게 합의된 개념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들은 ‘사실’과 ‘의견’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본디 사실과 의견은 서로 명확히 분리되기 어려운 것들이어서도 그렇지만, 신뢰할 만한 정보에 대한 우리의 판단 자체가 그렇게 사실 기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을 묶어 제시한 의견이라고 해도 그 의견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맞지 않으면 ‘가짜뉴스’라고 부르곤 한다. 그저 다를 뿐인 의견조차도 용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또 우리의 표현은 100% 순도의 ‘참인 사실’로 구성되었을 때에만 정당한 것 역시 아니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거짓인 사실’이 포함될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참과 거짓이 판명될 수 있곤 하다. 심지어 지금의 참이 언젠가 거짓이 되기도 하고, 지금의 거짓이 언젠가 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서 어느 정도까지 심각한 수준으로 ‘거짓인 사실’이 유포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에 우리 사회가 합의할 수 없다면, 사실에 근거하여 공정한 의견을 내는 언론이 다수를 차지하는 상태에 다다르는 건 본원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독립적인 언론’과 ‘공공성을 구현하는 공영방송’에 대한 선호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 적어도 과거에는 꽤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게 최근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지형을 관찰해온 (나의) 결과다. 지금의 우리는 자신의 심리와 판단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독립적인 언론을 그다지 바라지 않게 되었다. 공공성에 천착하는 공영방송에게도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때문에 (이 자체도 성립되기 어려운 개념이기는 하지만 일단 이상적으로 전제하다면) 모든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인 언론을 존중하기보다는 배척할 가능성이 ‘전반적으로는’ 높다. 또 말로는 공공성을 구현하는 공영방송이 필요하다고는 해도, 실제 공공성에 초점을 맞춘 공영방송을 진심으로 즐기며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수신료 지불이나 공적 지원 규모의 확대 등을) 대중적으로 지지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요컨대 언론개혁이라는 말 속에 담긴 사상의 실효성과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이 지속적으로 저하되어왔다는 것이다. 사상이 모호해졌다면 그것을 이루는 방법론 역시 원하는 결과를 빚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진척되어온 언론개혁의 의미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언론개혁과 그에 수반되는 방법론이 이제는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지 못할 공산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비유하자면 지형과 목표점이 바뀌고 있는 사막 한가운데에서는, 제아무리 홍해를 갈랐던 모세라고 하더라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신이 세워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알고 보면 우리 각자가 서로 달리 바라보고 있는 상들을 얼기설기 조합한 집단적 신기루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얼마 전부터 ‘언론개혁’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꺼린다. 그 말이 가지는 효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향해 나아가면 된다고 외치기보다, 밤낮으로 바람이 불어 지형이 바뀌는 막막한 사막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고 인정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보는 까닭이다. 우리에게는 사막 전체를 단시간에 옥토로 바꿀 능력이 없다. 다만 사막 안에도 길을 내고 이정표를 만들 필요가 있으며, 그 이정표가 곳곳의 오아시스로 인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일이 중요하다. 즉 신뢰할 만한 언론행위자들이 공통적으로 준거할 최소한의 지침을 합의하고, 그들과 마주치며 장기적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줄 공공적 알고리즘을 마련하는 것 말이다. 게다가 그 오아시스가 사악한 세력에 의해 장악되는 걸 막을 장치, 오아시스에 모인 이들이 오염되지 않은 물과 식량을 적절히 나눠 쓸 수 있도록 해줄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언론개혁이란 말보다는 사회적 정보환경과 커뮤니케이션 질서의 ‘개선’ 및 ‘재정립’이 중요하다. 단기적으로는 개선이고, 중장기적으로는 재정립과 재설계일 텐데, 새로운 중장기 설계도 아래에서 단기적 개선안을 마련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개선과 재정립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데 이 과정의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사막은 지금 이 시간에도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다.
정준희 / 미디어인문학교 해시칼리지 원장
2026.1.20. ⓒ창비주간논평
커버이미지: ⓒ연합뉴스(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통과 당시 국회 본회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