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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지 않으려면



이정모

빈대라니 빈대는 우리와 매우 밀접한 동물일 것 같지만 며칠 전 환갑을 맞이한 나도 빈대를 실제로 본 적은 한번도 없다. 그저 자칫 잘못하다가는 초가삼간을 태워먹는 원인이거나 돈이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라는 이야기로나 알고 있을 뿐이다. 빈대는 빈대떡 모양으로 얇게 생긴 동물일까? 아무리 봐도 빈대와 빈대떡은 닮지 않았다. 살짝 납작한 타원형이기는 하지만 1센티미터도 안 되는 놈을 보고서 빈대떡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색깔이 전혀 다르다. ‘떡’을 뜻하는 중국어 병자(餠子)의 중국음인 ‘빙쟈’가 빙자-빈자를 거쳐 빈대가 되었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요리라는 뜻의 빈자(貧者)떡이 빈대떡이 되었다고 한다. 또 속 편한 사람들은 빈대떡 팔던 정동 거리에 빈대가 많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단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운다고 아니, 빈대가 도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우리 조상들은 자칫 잘못하면 초가삼간을 태울 정도로 빈대를 잡는 데 진심이었단 말인가? 빈대는 사람과 동물의 피를 빨아 먹고 산다. 피를 빠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물리면 매우 가렵기까지 하다. 모기나 빈대처럼 피를 빨아 먹는 곤충에 물리면 무척 가렵다. 빈대와 모기가 일부러 사람을 괴롭히려고 간지럽히는 건 아니고, 동물의 혈관이 파손되면 자동적으로 혈소판이 모여서 혈관을 막는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모기와 빈대가 사람 피부에 침을 박아서 피를 빠는 동안 피가 굳어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기나 빈대는 사람의 피를 빨기 위해 주둥이를 박으면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그러면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이 세상에는 모기나 빈대 같은 곤충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여태 번창하는 비장의 무기가 있는데 피가 굳지 못하게 하는 물질을 내뿜는 게 바로 그것이다. 사람에게도 결코 스스로 원한 것은 아니지만 진화 과정에서 훌륭한 방어 장치가 생겼다. 바로 가려움이다. 곤충이 피가 굳지 않게 내뿜은 물질이 몸속에 들어오면 사람은 가려움증을 느낀다. 괴로울 정도로 가렵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곤충을 피하거나 잡으려고 한다. 만약에 이 가려움증이 없었다면 사람은 벌써 멸종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빈대가 모기보다 나은 점이 하나 있다. 모기와 달리 질병을 전염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매년 7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기 때문에 감염되어 죽는다. 하지만 빈대 때문에 죽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모기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은 없지 않은가? 아니, 모기보다 훨씬 인간친화적인 빈대를 사람들은 왜 모기보다 더 싫어하게 되었을까? 병을 옮기는 것보다 가려운 게 더 싫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모기보다 빈대가 훨씬 더 박멸하기 어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모기는 한두번 흡혈하고 나면 200~600개의 알을 낳고 죽는다. 그런데 빈대는 수개월 동안 생존하면서 수천번 증식한다. 또 모기는 시끄럽게 날아다니면서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잡을 수 있다. 그런데 날개가 없는 빈대는 침대에서 우리와 함께 생활하면서(빈대를 영어로 ‘bedbug’라고 한다) 소리도 없이 작은 틈에 숨는다. 모기보다 가려운데 잡기는 더 어렵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모기에 물린 자국이 있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지만 빈대에게 물린 자국이 있는 사람은 회피한다. 그의 몸에는 빈대가 붙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빈대에게 물린 자국은 모기에게 물린 자국보다 훨씬 커서 쉽게 눈에 띄기 때문에 감출 수도 없다. 빈대에게 물려서 가려워 죽겠는데 이웃마저 피하는 괴로움을 당하다보면 조상님들이 초가삼간 태울 만도 했나보다. 


빈대는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 2011)을 쓰게 만든 살충제 DDT로 인해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부침개 이름과 속담에나 남아 있던 빈대가 다시 21세기 뉴스에 등장했다. DDT에 내성이 생긴 빈대가 나타난 것이다. 남 탓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빈대 사태가 2023년 10~11월 유럽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번졌다고 한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급증한 유럽여행객과 잼버리 참가자 탓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빈대는 이미 2020년부터 우리나라 뉴스에 등장하곤 했다. 방역업체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빈대는 유럽 빈대가 아니라 한국 토종 빈대라고 밝히고 있다. 전세계 빈대는 75종인데 우리나라 토종은 2종뿐이니 전문가는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 


유럽 빈대든 한국 빈대는 상관없다. 없애야 한다. 어떻게? 일단 집에 나타났다면 개인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빈대도 마찬가지다. 초가삼간 태우지 말고 전문가에게 맡기자. 


덧: 빈대, 벼룩, 이


계-문-강-목-과-속-종이라는 생물 분류체계를 기억하실 것이다. 사람은 포유강에 속한다. 포유강에는 유대목, 바다소목, 장비목, 박쥐목, 영장목 등 많은 목이 있다. 몸을 머리-가슴-배로 나눌 수 있고 다리가 여섯개인 동물을 우리는 곤충이라고 하는데, 곤충 역시 하나의 ‘강’이다. 곤충강에도 많은 목이 있다. 빈대, 벼룩, 이[蝨] 가운데 가장 흔한 이(louse/lice)는 이목-이과에 속한다. 쌀처럼 생겼다. 이는 발진티푸스의 원인이다. 뛰어봤자고, 간을 내주기도 하며, 낯짝이 있다는 벼룩(flea)은 벼룩목-벼룩과에 속한다. 티푸스, 흑사병과 관련있다. 빈대(bedbug)는 노린재목-빈대과다. 빈대, 벼룩, 이는 오리너구리, 코끼리, 박쥐만큼이나 서로 상관없는 사이다. 빈대, 벼룩, 이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오리너구리, 코끼리, 박쥐를 같은 동물로 보는 것과 같다.


이정모 / 펭귄각종과학관장

2023.12.19.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