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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12년, 아픔의 계보가 연대의 계보가 되었다



김선우


2014년 4월 16일.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날,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났다.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할 국가는 없었다. 생존자 명단도 파악 못한 채 거짓말을 반복하던 정부의 모습은 재난 상황에서 이 사회가 얼마나 무력하고 무책임한지 날것 그대로 보여주었다. 304명이 차가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가 아니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않은 구조적 참사였다. 참사 직후 피해자 가족들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65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명으로 응답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그 목소리들은 이 사회가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묻는 집단적 질문이었다.


그로부터 12년이 흘렀다. 그동안 세월호운동은 한국사회에 깊고 넓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가장 큰 변화는 재난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세월호참사 이전까지 대형 재난은 사용자 등 개인의 형사책임을 묻는 것으로 마무리되었고, 진상규명은 수사 결과로서만 이루어졌다.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재난은 비로소 ‘사회적 참사’이자 ‘국가의 구조적 책임’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피해자 가족들이 운동의 주체로 나선 것도 역사적 전환이다. 그들은 수동적 피해자에 머물지 않았다. 진실규명 없는 경제적 보상을 거부하고, 국회 앞에서 밤샘 농성을 하고, 전국 간담회를 여는 등 진실을 알리는 일에 힘썼다. 세월호 가족들의 운동방식은 이후 이태원참사,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를 비롯한 모든 재난참사피해자운동의 원형이 되었다. 2023년에는 삼풍, 씨랜드, 인천 인현동, 대구지하철, 가습기살균제, 공주사대부고, 스텔라데이지호, 세월호 등 참사 유가족들이 모여 ‘재난참사피해자연대’를 출범시켰다(2026년 4월 기준, 부천화재참사, 제천화재참사, 광주학동참사를 포함해 총 11개 재난참사). 서로 다른 참사의 피해자들이 함께 연대하는 이 상설 기구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세월호운동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연대의 형식이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시민의 인식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복종하던 사회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사회로 나아가게 되었다. 세월호는 우리가 재난 앞에서, 권력 앞에서, 불의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다. 


‘벌써 12년’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이제 잊어도 되지 않느냐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아직 12년’이라고 말하고 싶다. 12년이 지났지만 세월호참사 이후 진상규명을 방해하며 피해자와 시민들에게 저지른 국가폭력에 대한 국가의 공식 사과는 없었다.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여전히 30년 봉인된 채 ‘대통령기록물’이라는 이름으로 잠들어 있다(얼마 전 4월 10일, 해당 문건을 비공개할 근거가 없다는 법원의 파기환송심 판결이 나왔다). 구조책임이 있는 해경 지휘부는 단 한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지 않은 한, 12년이라는 긴 시간은 망각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싸워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숫자가 될 것이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행위가 아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이 일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의지를 지속하는 일이다. 304명의 이름을 기억하는 시민이 있는 한, 권력은 진실을 영원히 덮을 수 없다. 기억공동체는 그 존재 자체로 저항이다.


세월호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는 피해자와 함께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다. 연대는 동정이나 위로가 아니다. 피해자의 요구를 같이 이야기하고, 피해자가 고발하는 진실을 믿으며, 함께 싸우는 것이다. 이 연대의 방식은 10·29 이태원참사에서 다시 발휘되었다.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은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을 찾아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나누었다. 아픔의 계보가 연대의 계보가 되었다.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이 처음 광장에 나섰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그 질문에 피해자들은 이렇게 답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그 말은 예언이 되었다. 참사는 반복되었다. 2024년 12월 29일,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가 추락해 179명이 숨졌다. 한국 역사상 최악의 항공참사였다. 참사의 규모도, 현장도, 원인도 달랐지만 그다음에 벌어진 일들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거짓 정보가 나돌았고 책임자는 말을 바꾸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은 보상을 노린다는 시선을 견뎌야 했다. 세월호 피해자들은 이 장면을 잘 알고 있었다. 12년 전 그들이 통과한 길이었다. 그래서 지체 없이 무안으로 향했다. 위로의 말보다는 ‘경험’을 나누기 위해. ‘언론은 이렇게 대응하면 됩니다. 정부와 대화할 때는 이 지점을 잡으세요. 보상 합의를 진상규명보다 서두르지 마세요.’ 12년의 싸움이 만들어낸 지혜를 건넸다.


4·16연대는 지금도 재난참사피해자연대와 함께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진상규명 요구를 지지하며 연대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호가 만들어낸 ‘사회적 참사’ 개념과 독립 조사기구의 선례는 무안참사에서도 중요한 참조점이 되었다.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고 재발 방지를 제도화하는 그 싸움의 방법을 세월호운동이 처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 참사의 교훈이 다음 참사의 피해자를 살리는 것. 한 참사의 유가족이 다음 참사의 유가족 곁으로 달려가는 것. 이것이 연대의 실질적 의미다. 그리고 이 연대는 세월호 없이는 불가능했다. 반복되는 참사 앞에서, 12년의 기억은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된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이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노란리본을 달고, 4월 16일 하루 묵념하고, 세월호 관련 기록물을 읽는 것.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을 한번 찾아가는 것. 4·16연대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4·16연대 회원이 되는 것. 이 작은 행동들이 기억공동체를 살아 있게 한다. 4월이 되면 전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수많은 4·16기억공동체가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행사를 연다. 서울에서, 제주에서, LA에서, 런던에서. 어느 지역에 살든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 자리에 한번 나가는 것. 세월호와 함께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들이다.


4월 16일이 다가온다. 열두번째 봄이다. 올해의 슬로건은 진실과 생명안전을 향한 노란빛 동행이다. 12년이라는 시간은 망각의 이유가 아닌 더 단단해진 연대의 증거다.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304명의 이름을 기억하는 한, 그리고 그 이름들이 요구하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한. 이 ‘동행’의 물결 그리고 ‘우리’ 안에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있다. 아직 12년. 우리는 함께 계속 걷는다.



김선우 / 4·16연대 사무처장

2026.4.14.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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