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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명박 이후’를 내다보며

 

‘삽질’ 없는 지역살리기

 

 

유시주 柳時珠

희망제작소 소장. 저서로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공저)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신화』, 역서로 『미국사에 던지는 질문』 등이 있음.

ysj@makehope.org

 

 

1. ‘지역’의 등장

 

최근 10년 사이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국가적 의제로 새롭게 부각된 것 중의 하나가 지역문제다. 그렇게 된 데에는 크게 두가지 원인 혹은 흐름이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첫번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지역문제 자체가 정말로 중대한 국가적 사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비슷한 발전단계에 있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도권 집중과 지역간 불균형 문제를 안고 있다. 수도권의 면적은 국토의 약 12%에 불과하나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여기에 살고 있고, 지역총생산의 48%, 제조업체의 50.5%, 금융예금의 65.1%, 공공기관의 79%를 수도권이 점하고 있다.1) 통계수치를 굳이 인용하는 것이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누구나 이 기이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수도권은 과밀로 고통받고, 비수도권은 결핍으로 고통받는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국가발전에 저해가 되리라는 것도 상식이 있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게 보면 2000년대 들어서야 ‘지역’이 국가적 의제의 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이론이나 지역개발정책을 둘러싼 세계적 흐름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보다 앞서 도시문제, 지역격차문제를 겪은 유럽과 미국에서는 90년대 들어 기존의 지역발전이론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이 정치학, 경제학, 지리학, 사회학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제기되었다. 이론의 뿌리와 맥락은 분과마다 다르지만 이런 문제의식은 지역연구와 연계되면서 일정한 방향으로 수렴되었다. 지역개발정책의 관점과 방법에 큰 변화를 가져온 이 흐름의 요점은 지역이 경제 및 사회생활의 기본단위로서 지역발전은 물론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2) 자유시장과 국민국가 단위에 토대를 둔 기존의 지역발전이론에서 지역은 시장과 국가를 구성하는 하부공간이자 발전의 대상이었고, 지역발전은 국민경제발전의 결과물로 취급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이론들은 그 관계를 뒤집어 지역이 스스로의 발전을 추구해가는 능동적 주체일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국가경쟁력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런 흐름은 90년대 이후 급속히 진전된 세계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세계화는 세계를 단일한 시장으로 만들면서 국가의 힘과 국가간의 경계를 약화시켰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면서 국가는 상대적으로 국지화되었고, 이에 따라 국경을 초월한 국제분업구조가 형성되면서 도시와 지역이 경제활동 단위로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지역 자체를 발전의 주체로 보는만큼, 이 새로운 흐름에 입각한 지역개발정책은 지역의 능동적인 참여와 자립, 지역내 자원을 동력으로 삼는 내생적(內生的) 발전을 강조한다. 현재 유럽 각국이나 유럽연합(EU),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내놓는 대부분의 지역개발 관련 보고서들도 이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지역은 “동질적인 특징을 가진 공간영역”을 말한다. 물론 ‘동질적 특징’은 자연적・인문적・정치적・기능적 등 여러 기준에 의해 묶일 수 있겠다.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지리적・행정적 구분단위로서 주민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삶의 터전”이라는 생활감각에 기댄 설명도 있다. 학계에서는 “국가의 하위 공간단위로서 독특한 물적・문화적 특성을 지닌 지리적 범역”이라는 정의가 가장 널리 쓰인다.

한때 지역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지방’이란 말을 쓰지 말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서울도 하나의 지방일 뿐인데, 실제로는 서울, 나아가선 수도권이 아닌 모든 지역을 ‘지방’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전적 정의를 따르자면 대한민국의 모든 지역은 저마다의 독특함과 동질성을 가진 균등한 공간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방이란 말의 쓰임새에서 드러나듯 서울(혹은 수도권)과 그 나머지 지역 사이에는 강력한 서열과 위계가 존재한다. 이 글에서 ‘지역’문제나 ‘지역’살리기라고 할 때 그것은 역사적・정치경제적・사회적으로 중앙과 동등하지 않은, 일자리가 없어 사람들이 떠나가는, 중앙에 종속되고 의존하는 지역을 가리킨다.3)

 

 

2. 지역발전전략의 전환

 

외발적 발전과 내생적 발전

현재의 심각한 지역간 불균형은 알다시피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박정희정부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공업화하고 그 성장거점도시에 재원을 집중 투자하는 방법으로 압축적 성장을 꾀했다. 경제적 효율성을 기준으로 적합한 조건을 갖춘 지역을 선택하여 산업단지를 육성하는 이 방식은 지역정책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국가가 입안한 개발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지역을 선택적으로 징발하고 동원한 산업입지전략이었다. 대도시로의 과도한 집중과 더불어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시와 농어촌, 영남과 호남 간의 불균형 발전은 모두 이때 비롯된 것들이다.

이런 격차는 한국경제가 개방되고 탈공업화되면서 더욱 심화되었고, 90년대 들어서는 마침내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쟁점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이에 대한 대책으로 오지(奧地)나 도서(島嶼) 같은 낙후지역을 개발하는 사업4)이 추진되었으나, 주로 의료복지시설이나 도로 건설, 주택 개량 등 정주(定住) 여건을 개선하는 것으로서 ‘지역달래기 정책’에 가까웠다.

이 시기의 낙후지역개발사업은 토건사업 중심이라는 점 외에도 한국형 지역개발사업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업은 지역에서 이루어지는데 결정권은 전적으로 중앙정부에 있다. 사업대상지를 선정하는 것도 중앙정부요, 기본계획을 짜서 내려보내는 것도 중앙의 정치인, 공무원, 전문가 들이다. 계획이라는 것도 지역적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전국적으로 똑같다. 또한 중앙의 여러 부처가 비슷한 사업을 중복 추진해 예산을 낭비한다. 한편, 지역은 중앙으로부터 예산과 사업을 따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운좋게 예산을 지원받으면 중앙에서 내려온 계획에 맞추어 사업을 진행한다. 스스로 계획을 짤 기회를 얻지도 못하고, 그럴 역량도 부족할뿐더러 행여 집행과정에서 지역의 특성을 살린 방안을 시도하려 해도 권한이 없다. 사업이 끝나고 나면 시설만 번듯하게 남을 뿐, 발전을 지속 가능하게 해줄 소득기반이나 자생력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또다시 지원사업에 목을 맨다. 이러한 악순환의 근저에는 ‘지역은 낙후된 곳이며, 발전을 하려면 외부에서 자원을 투입하는 수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이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외발적(外發的) 발전’의 프레임이요 싸이클이다.

1990년대 들어 마을만들기 운동을 비롯해 지역에 기반한 풀뿌리운동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었고, 정치적으로는 지방자치제 실시로 자치와 분권에 대한 요구가 조직되면서 외발적 지역개발정책에 관한 비판적 문제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자치분권운동이 지역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제도개선을 요구했다면, 지역운동 쪽에서는 지역 안에서 자원을 찾아내고, 지역 주도로 추진되며, 사업의 성과가 지역 안에서 순환할 수 있는 ‘내생적 발전’을 지역살리기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참여정부가 세운 멋진 이정표

2003년 참여정부의 출범은 내생적 지역발전담론이 확산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자치분권운동에 몸담았던 인물들이 정권의 핵심세력으로 참여했던만큼, 참여정부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12대 핵심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천명했다.5) 적어도 지역정책에 관한 한, 참여정부는 정책의지에서나 정책방향에서나 한국사회를 그 이전과 이후로 가를 수 있을 만큼 중대한 전환을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비상한 결의를 갖고 추진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이후 지방분권, 국가균형발전, 행정수도 건설과 수도권 기능의 지방 분산을 세 축으로 하여 상호긴밀하게 연관된 종합적인 정책 프로그램을 집행했다.

참여정부의 지역정책은 적어도 방향 면에서는 국내외에서 제기되던 문제의식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수렴한 것이었다. 지방분권에서는 단순히 권한을 지방에 나누어주는 차원이 아니라 기존의 중앙집권적 국가운영을 대체할 새로운 분권형 국가운영 씨스템을 만드는 차원으로 ‘분권’을 격상시켰다. 오랫동안 의존적 존재로 중앙의 시혜에 기대왔던 지역에 시민권을 부여한 셈이었다. 또한 국가균형발전에서는 지역 내부에서 혁신역량을 창출하고 강화하여 지역 활성화를 꾀하자는 ‘자립형 지방화’를 내세웠는데, 이는 지역운동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바였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지역정책은 근사한 이정표에 비해서 개발주의정책과 뚜렷이 차별화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지역균형발전은 장기간에 걸쳐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하며 추진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 과제인만큼 아직 확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이르다는 견해도 있지만, ‘균형’으로 포장한 ‘신개발주의’ ‘신성장주의’에 불과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는 정책의 중심축이었던 분권과 균형발전, 수도권 기능 분산 가운데서 분산정책, 즉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나 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기업도시 건설에 무게중심이 쏠린 결과로 평가된다. 균형발전정책 가운데는 지역의 협력 네트워크 형성을 지원하거나 지식, 기술, 문화 자원의 발굴을 촉진하는 좋은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그 역시 현장 활동가들로부터 기존의 하향식 지원사업과 큰 차별성이 없는 추진방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6) 전체적으로, 개발주의와 성장연합(growth coalition)이 강력히 온존하고 있고, 내생적 발전을 추동할 지역 내부의 역량이 지극히 취약한 현실에서 정책의 취지와 방향을 세부사업에 구현할 수 있을 만큼의 정책수단과 집행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정부도 되돌리지 못한 것

이명박정부는 참여정부의 지역정책을 “산술적・결과적 균형에 집착한 나머지 실질적 지역발전과 국가경쟁력으로의 연계에 한계”를 보였다고 비판하며 참여정부와의 차별화를 추진했다.7) ‘균형’ ‘혁신’ 같은 참여정부의 용어를 추방하고,8) 경쟁과 효율성을 기본원칙으로 천명한 것 외에 정책상의 가장 큰 차이는 지역발전의 기본 공간단위를 5+2 광역경제권9)으로 설정한 것, 그에 따라 수도권을 비수도권의 대립항이 아니라 5대 광역권 중 하나로 그 특권적 위상을 희석하고 수도권에 대해 규제완화를 시도한 것이었다. 물론 지역정책의 우선순위도 낮아졌고, 참여정부 때는 국가균형발전위에서 다루었던 수도권 관련 정책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로 넘겨 규제완화를 꾀하고 있다. 30개 선도 프로젝트10)나 수변지역개발 같은 토건사업을 새로 입안하면서 지역혁신역량 강화 예산은 감축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의 지역정책을 꼼꼼히 뜯어보면 의외의 사실을 알 수 있다. 국정 전반에 걸친 신자유주의적 관점이 지역정책에도 당연히 스며들어 있기는 하나, 지역발전에 관한 지난 10년간의 진전을 완전히 되돌리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명박정부의 지역정책을 종합적으로 담아놓은 「MB정부의 국가균형발전 방향과 전략」에는 “지역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이라거나 “지역의 여건과 특성을 바탕으로 특성화된 지역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거나 “지방분권・자율을 통한 지역 주도적 발전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참여정부의 지역정책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사실은 홍철(洪哲) 지역발전위원회 2기 위원장의 인터뷰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11) 평소에도 지역 스스로의 내생적 발전을 강조해왔다는 그는 시・도연구원이 “주민회관 짓고 연구쎈터 설립하는 식의 하드한 접근만이 아니라 훨씬 더 소프트한 쪽”, 이를테면 “뒷골목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 지역의 역사와 문화라는 고유한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내생적 발전을 위해선 “시・도연구원과 공무원, 지역대학, 시민단체 사이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4대강사업 같은 큰 ‘삽질’에서 녹색성장사업 같은 작은 ‘삽질’에 이르기까지 이명박정부가 한국사회를 개발주의로 퇴행시킨 데 대해선 워낙 많은 비판이 있으니 굳이 말을 보탤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명박정부도 지역의 자율성과 권한, 자기혁신역량을 높이는 것이 내생적 발전을 이루는 길임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이명박정부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후퇴시키고 있으나 민주화 이전으로 돌리지는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수도권 규제완화가 지역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지역살리기는 불가역의 지점에 놓여 있는 절박한 당위다.

 

 

3. ‘정부의 것’과 ‘시민의 것’

 

참여정부의 지역정책을 평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총론에서는 분권과 균형을 표방하지만 각론은 여전히 토목이나 건설 위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해왔다. 좀더 부드럽게 표현하자면 “새롭고 좁은 길의 초입 어디에선가 길을 벗어나 옛길로 되돌아가버렸다”12)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참여정부가 근본적으로 이명박정부와 다름없이 개발주의적이었거나 혹은 무능해서였을까? 그렇다면 개발주의적이지 않고 유능한 정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정치엘리뜨들은 갈아치운다 해도 정책을 집행하는 전문관료집단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지역문제에는 지방자치와 지방분권 같은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 지역간 불균형을 품고 지속시킨 정치경제적・사회문화적・역사적 작동고리, 그 속에서 살아온 여러 행위주체들의 행위양식,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실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시민사회에 기반한 조직임을 자임하며 지역살리기를 주요한 과제로 여기고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현장과 만나온 희망제작소의 일원으로서 필자는 참여정부든 이명박정부든 당국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는 것은 부끄럽고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을 살리는 데는 ‘정부의 것’이 있고 ‘시민의 것’이 있다. 지역을 살릴 역량의 원천은 ‘시민의 것’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러한 역량은 현장에서의 다양한 시도와 실험, 때로는 성공 때로는 실패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만들어진다.

참여정부는 자립형 지방화를 추진하는 동력으로 ‘지역혁신체계’를 입안하고 시도별, 기초지자체별로 지역혁신협의회를 구성했다. 지역내의 정부, 대학, 기업, NGO, 언론, 연구소 등 다양한 주체들이 협력체계를 만들어 연구개발, 기술혁신, 신산업 창출, 행정제도 개혁, 지역자산 발굴, 문화활동, 주민참여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작용하고 협력함으로써 지역발전의 중심역할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 일환으로 지방대학을 지원하는 사업을 비롯해 다양한 혁신역량강화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역량과 네트워크는 몇년 안에 뚝딱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을 살릴 주체적 역량은 그 절박성에 비해 아직 너무 약하다. 지자체장은 여전히 중앙에서 토건예산을 끌어오는 일에 주된 관심을 쏟으며 “지역주민이 그것을 바란다”고 변명한다. 실제로 많은 지역주민이 “우리도 한번 오염되어보고 싶다”고 할 정도로 개발주의에 갇혀 있다. 대개의 공무원은 “주민이 주체성을 보이지 않고 그저 요구하기만 한다”거나 “우리에게 무슨 권한이 있느냐”고 한탄하며, 그나마 의욕있는 단체장과 공무원조차 “변화시켜보려고 해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춘 사람이 없다”13)고 토로한다. 예전에 비해 현저히 추락한 지방국립대학의 위상이 말해주듯이 능력있는 인재는 지역에 남으려 하질 않는다. 지식기반경제라고 하지만, 지역은 지식기반 자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 지역기업은 자금과 홍보, 유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지역의 시민단체와 활동가는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느라 개별 단체를 뛰어넘어 폭넓은 전망을 열어나갈 여력이 없다. 요컨대 내생적 발전을 밀고 나갈 콘텐츠와 사람이 없는 것이다. 지역의 토호집단은 이러한 틈새에 뿌리를 박고 온존한다. 지방자치나 분권에 반대하는 세력은 이런 현실을 들어 “자치역량이 부족하므로 분권은 아직 이르다”는 논리를 편다.

이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는 각자의 몫이 있다. 지역의 자기결정권 강화, 주민참여 경로의 확대, 자치재정의 확충, 지방대학을 비롯한 지식기반의 육성 등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고 사람을 키울 수 있는 정책적 환경을 만드는 일은 ‘정부의 것’이다. 시민사회는 이를 줄기차게 촉구하고, 필요할 땐 감시・비판하며 협력하고 참여해야 한다. 그와 함께, 아니 그 역할을 해나갈 수 있기 위해서도 지역의 현장에서 내생적 발전을 밀고 나갈 ‘원천 역량’을 길러야 한다. 지방자치와 지역발전의 주체가 지역주민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다시 말해 지역주민의 역량이 지역의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의 힘임을 믿는다면 그 근원의 힘을 키우는 일은 ‘시민의 것’이다.

우리는 흔히 지원이 끊기면 사업도 중단된다고 중앙의 지원사업을 비판하고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지역에 준비된 역량이 있으면 그것이 내생적 발전으로 전환하는 선로변경의 고리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서천군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14)

서천군은 장항갯벌을 매립하여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둘러싸고 갈등이 생기자 이 계획을 중지하고 생태도시로의 전환을 선택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중앙정부와의 협약에 따라 국립생태원,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건립중이고, 장항국가생태산업단지 조성도 입안되어 있다. 주목할 것은 (외부에서 온 자원으로 건설되는 하드웨어사업이라고 할) “이 사업이 창출한 부가가치가 지역 내로 귀속되고, 지역주민의 안정된 고용증대에 기여하며, 지역내 다른 자원과 연계되어 또다른 분야의 성장을 유발시켜 순환과 공생의 지역만들기의 토대로 연결될 수 있는 방안”으로 구상하거나 추진하고 있는 시책들이다.

서천군에는 현재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여러 지역공동체사업15)이 진행중인데, 우선 이를 생태단지와 연계시킬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공동체사업에 공감을 이루기 위해 지역주민의 학습동아리를 독려해 수십개의 동아리가 운영되고 있으며, 지역내의 농어업법인, 자활공동체, 민간비영리단체, 부녀회・새마을회・청년회 같은 자생조직 들의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편, 이들과 함께 민박과 식당, 기념품, 조경, 안내인력, 동물먹이, 지역투어, 시설관리, 로컬푸드 등 향후 생태단지와 연관해 사업화할 수 있는 자원을 발굴하고 있다. 충청남도가 충남발전연구원과 협약을 맺어 사회적경제지원쎈터를 설립 운영하고, 도의회가 사회적경제연구회를 구성하여 지역 내의 대학, 민간단체, 활동가 들과 협력하고 있어 사업추진 환경도 좋은 편이다.

‘정부의 것’, 즉 제도와 정책은 그것을 지역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작동 가능한 채널이나 프로그램으로 변환시키는 ‘시민의 것’이 없으면 속이 빈 채 외양만 갖춘 건물과 같다. 그런 점에서 중앙의 시민사회단체와 마찬가지로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도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시민사회단체’를 ‘시민운동단체’와 동일시할 정도로, 한국사회에서는 그동안 비판과 감시를 주된 활동으로 하는 이슈 주도형 시민운동단체가 시민사회를 과잉대표해왔다고 할 수 있다.16) 시민운동단체들은 “폭로, 비판과 감시, ‘영향의 정치’에 의한 ‘심판자’로서의 역할”에 치중하여 “사회비전을 제시하고 구체화하는 ‘문제해결자’로서의 역할”에는 매우 취약했다. 그 때문에 주민들과의 접촉이나 공감, 교류는 부족하면서 지역거버넌스(local governance)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단체에 대해서는 원론에 입각한 날선 비판을 하고, 특히 지역경제 현안의 해법에 대해선 무지하거나 무심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흐름에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인다. 가령 환경운동에서는 마을과 지역에 근거해 “주민과 소통하고 생활상의 욕구를 파악해 의제화하며 공간과 의식을 생태화하는 매트릭스로서의 환경운동”을 새로운 전망으로 강조하고 있고, 지역의 시민운동단체들도 “좀더 주민 속으로 들어가 주민을 시민운동의 주체로 만들어나가기 위한” 모색이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17)

그런가 하면 지역에 밀착해 주민과 함께 일상적인 삶의 문제들을 다루어온 풀뿌리단체는 그간의 활동을 통해 의미있는 진전을 이루고 있다.18) 아직은 상대적으로 자원이 풍부한 대도시의 서민지역과 중소도시 중심이지만, 그 성과를 토대로 더 낙후된 지역으로 경험과 사례가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4. ‘삽질’ 없는 지역살리기를 위하여

 

지역을 바꿀 근원의 힘, 원천적 역량은 밑바닥에서 고투하는 원시적 축적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다행히도 이미 그러한 노력이 쌓이고 있으며 삽질 없는 지역살리기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주고 있다. 희망제작소의 직간접적인 경험에 의존하여 나름대로 그 방향을 정리해본다.

 

공동체성과 지방성 회복하기

지역운동이 주민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해온 여러 활동 가운데서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둔 대표적인 것이 마을만들기 운동이다. 마을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에 주민이 참여해 마을을 살리는 대안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지역의 고유한 자연, 역사, 문화에 대한 애착을 불러일으켜 공동체성을 높이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청주 육거리시장, 수원 못골시장처럼 쇠퇴하는 상가나 주거지역을 활성화시키기도 하고, 통영 동피랑마을, 인천 배다리마을처럼 문화적 매개를 활용하기도 하고, 남한산초등학교나 양평 세월초등학교처럼 학교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복원하기도 하고, 광주 푸른길가꾸기 운동처럼 방치된 공간을 주민들의 휴식이나 공동체 공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운동은 주로 농촌이나 중소도시에서 이뤄지지만, 조그만 육아공동체에서 출발하여 생활협동조합, 대안학교, 공동체라디오, 마을극장, 까페와 식당, 돌봄두레까지 광범위한 지역네트워크로 발전한 성미산마을처럼 대도시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낸 사례도 있다.19)

여러 곳에서 훌륭한 성과들이 쌓이면서 관련단체끼리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최근에는 지자체와의 협력체계도 만들어져 안산과 강릉, 대구 중구에 마을만들기지원쎈터가 설립됐다. 또한 마을만들기의 메카가 된 전북 진안군에서는 해마다 전국에서 활동가와 주민이 모여 경험과 사례를 나누고 더 넓은 전망과 협력체계를 논의하는 마을만들기 축제를 열고 있다.

공동체성의 토대가 되는 것은 지방성이다. 지방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발굴해야 한다. 역사, 문화, 자연, 풍광, 관습, 기후, 인물, 음식, 산업유산 등 모든 것이 자원이 될 수 있다.

 

지역사회교육과 사람 키우기

흔히 지역주민에 대해 마을 단위의 작은 문제까지 정부가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권리요구형’이라거나, “변화의 주체가 아닌 이해관계자”라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랫동안 참여의 기회를 봉쇄당하고, 개발주의 외에 다른 대안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을만들기에 참여한 한 주민리더는 이웃 주민을 설득하고 참여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견학이었다고 말한다.20) 다른 방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기만 해도 그들은 변한다. 주민의 개발주의적 욕구는 본질적으로 지역발전에 대한 바람이며, 다만 올바른 표현을 얻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주민자치위원이나 이장 같은 지역의 공공리더, 공무원을 위한 교육도 필요하다. 의무적으로 받는 진부한 교육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관점과 의제를 이해하고 협력하도록 하는 내용을 개발해야 한다.

지역의 활동가에게도 새로운 흐름과 방법론을 익혀 역량을 키워갈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 그런데 지역에는 이를 담당할 인력이 미비하여 서울에서 많은 강사들이 내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대학의 맹성을 촉구하고 싶다. 지역의 지적 기반 거점으로서 대학은 지역 실정과 요구에 맞는 다양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책임이 있다. 일본의 많은 지역대학이 지자체와 협력해 중간지원조직이나 지역활동가를 위한 지역밀착 교육 프로그램 또는 전공학과를 운영하고 있다.21) 대학이 마음만 먹는다면 작게는 교육공간을 제공하는 것부터 시작해 현장의 사정, 주민의 요구와 특성에 밝은 지역단체의 활동가와 연계해 다양한 주제의 교육 프로그램과 강사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역활동가에 대한 지원도 절실하다. 현재 각 지역에는 오랫동안 헌신적으로 활동해온 리더들이 있다. 이들은 정부의 지원과는 무관하게 자생적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적은 인원에 변변한 사무실도 없고 생활을 제대로 꾸려나가기도 힘든 급여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버티다 못해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을 지원하고 살려야 한다. 또한 지역 출신 젊은이, 은퇴자 등 잠재적인 인적 자원을 고향으로 불러들이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그들이 귀향해서 지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희망제작소에서는 귀농이나 귀촌, 귀향을 희망하는 중년층 직장인이나 은퇴자를 위한 귀농귀촌 커뮤니티 비즈니스(CB, community business) 아카데미를 진행하여 현재 몇사람이 마을만들기 현장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지역순환경제・사회적 경제 만들기

지역에 기업을 유치해 일자리나 소득을 늘리는 방법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전통적인 제조업의 고용유발 효과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고, 대기업 지배구조 때문에 돈은 다시 중앙으로 빠져나가버린다. 지역 내에서 순환적 소비와 공급이 일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내야 한다. 향토 소기업이나 지역의 중소기업을 살리면서 협동조합과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회적 기업 같은 사회적 경제를 넓혀나가야 한다. 협동조합의 도시로 떠오르고 있는 원주에서는 17개 협동조합과 5개의 사회적 기업이 원주협동사회네트워크를 구성했고, 원주시 인구의 10% 가까이가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생협도 4대 생협인 한살림, 아이쿱, 두레, 여성민우회생협을 모두 합하면 2010년 기준 총매출액은 6천억원, 조합원 수는 45만명에 이를 만큼 성장했다. 아이쿱생협은 몇년 전부터 괴산에 생협클러스터를 조성하는 중이다. 옥천농협이나 이천의 도드람양돈협동조합처럼 지역에서 농협의 본래 역할을 되살린 곳도 있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로컬푸드 운동도 순환경제의 좋은 예다. 다만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경우, 시민사회가 지역 활성화의 한 방법으로 들여온 것을 정부가 단기적인 일자리 창출목적으로 받아들여 우려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마을기업(행정안전부), 농어촌 공동체회사(농림수산식품부), 지역형 사회적 기업(고용노동부), CB 시범사업(지식경제부) 등 여러 부처가 지역의 역량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공동체 복원이나 지역과제를 해결한다는 커뮤니티 비즈니스 고유의 취지를 무시한 채 몇년 안에 몇개를 육성한다는 성과주의 방식으로 재원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지역재단과 중간지원기관

지역살리기는 적어도 10년 정도의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꾸준히 추진해야 성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정부나 지자체에 재정을 의존하다보니 지원이 끊기면 사업도 중단된다. 이런 한계를 벗어나려면 시민사회 내부에서 안정적인 재정기반을 확보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 유력한 방법이 지역재단이다. 지역재단은 기부금을 모아 재단을 설립하고 지역의 비영리단체와 시민단체의 공익적인 프로젝트를 광범하게 지원하는 조직이다. 1914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만들어진 클리블랜드재단이 최초의 지역재단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미국에는 700여개, 캐나다에는 140개, 독일에는 84개, 영국에는 57개의 지역재단이 있다. 지역주민뿐 아니라 그 지역 출신인사, 지역기업 등을 통해 기부금을 조성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천안 풀뿌리희망재단, 김해 생명나눔재단, 성남 지역재단, 부천 희망재단, 안산 희망재단 등의 지역재단이 있으나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천안 풀뿌리희망재단을 빼면 아직은 복지분야에 쏠려 있다. 그밖에 잘 알려진 아름다운재단의 경우 특정한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배분원칙에 따라 지역단체도 일정하게 지원하고 있다.

지역재단이 재정적 안정을 위한 것이라면 중간지원기관은 개별 마을이나 지역, 개별 기관이나 단체로는 감당하기 힘든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기관이다. 교육, 경리・세무・재무・회계・법률 등의 전문실무, 자금조달, 컨썰팅, 쎄미나・씸포지움・웹・기관지 같은 정보발신 기능, 교류 촉진, 홍보와 마케팅, 코디네이팅, 조사연구 같은 것들이 모두 가능하다. 그리고 주민과 대학, 행정기관, 기업, 언론 등 지역주체간, 지역과 지역, 지역과 중앙을 연계하고 중재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앞서 언급한 마을만들기지원쎈터나 전북 완주의 CB지원쎈터가 바로 중간지원기관이다. 최근에는 광주 광산구에서 시민공익활동지원쎈터를 추진하고 있다. 꼭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대구시민쎈터처럼 지역활동을 통해 신뢰를 얻은 시민단체가 중간지원기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참여와 교류, 협력과 연대

주민과 행정, 도시와 농촌, 생산자와 소비자, 공무원과 시민단체, 보수단체와 진보단체, 결정기관과 집행기관, 기초단체와 광역단체 등 지역의 모든 행위주체가 경계를 넘어 더 많이 만나고 관점과 경험을 교류해야 한다. 지역이라는 공간은 쉽게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며, 그러한 만남을 통해 공유한 지방성을 바탕으로 서로를 이해하면서 새로운 협력의 모델과 규범을 만들 수 있다. 주제와 부문, 터와 규모를 넘나들면서 횡적・종적으로 빽빽하고 두터운 협력과 연대의 관계망을 만들어야 한다. 그 관계망이 바로 지역거버넌스다.

 

 

5. 마치며

 

이 글은 지역살리기와 관련해 주로 시민사회의 과제와 해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국가정책 차원의 과제와 쟁점은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했고, 내생적 발전이라는 국내적 지역발전전략이 국경을 넘는 국제분업구조, 혹은 지구지역화(glocalization)와 어떻게 연계되어야 할 것인지도 논하지 못했다. 이는 국가적 의제보다는 현장 중심의 실행 프로그램에 무게중심이 있는 희망제작소의 경험치에 의존해 글을 쓴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정책을 논하는 목소리에 비해 정책을 견인하고 구현할 수 있는 역량을 묵묵히 축적하는 손발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필자의 ‘실무자적’ 문제의식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자기혁신과 역량강화에 주된 관심이 있다고 해서 국가정책이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중앙정부의 지역정책은 지역살리기의 불가결한 조건이자 기간선로다. 지역의 현실을 깊이있게 이해한 위에서 설계된 정책과 제도 배열, 그것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새로운 정부의 출현은 지역 현장에서 보더라도 긴급하고 절박하다. 4대강사업을 비롯한 대규모 개발계획, 수도권 규제 완화 등 이명박정부가 퇴행시켜놓은 것들을 되돌려야 할 뿐 아니라,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등 참여정부가 시도했다가 중단되거나 변질된 과제에 대해서도 그 원인을 찾아 길을 넓혀야 한다. 2013년체제를 준비하는 논의과정에서 지역살리기가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미세화하는 과제임이 공유되기를, 지역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경험과 목소리가 더 많이 존중되고 경청되기를, 그리하여 2013년체제에서는 지역의 일꾼들과 리더들이 든든한 자원으로 기간선로를 활용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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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계청 2010년 자료를 이용해 산출한 수치다. 공공기관 점유율은 2011년 광역지자체별 공공기관 본사 입주현황 자료를 근거로 했다.

2) 일부에서는 이 흐름이 지역의 자율성과 지역간 연계를 강조한 19세기말 유럽과 미국의 지역주의와 이론적 계보가 닿아 있다고 보고 신지역주의(new regionalism)라고 부르기도 한다.

3) ‘지역’의 범위를 다소 좁게 한정하는 이유는 이 글의 한계와 연관이 있다. 필자가 속한 희망제작소는 주로 마을이나 군 단위, 광역시의 자치구와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희망제작소는 구체적인 현장에서 실사구시하는 역량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서 관점의 폭이 그리 넓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그 한계를 잘 인식하면서 희망제작소가 딛고 선 자리에서 바라보고 느끼는 것들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4) 도서개발촉진법(1986)에 따라 도서종합개발사업, 오지개발촉진법(1988)에 따라 오지종합개발사업,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1996)에 따라 개발촉진지구사업이 추진되었다.

5) 국민의 정부 때도 이전의 지역정책에 비해서 질적으로 진전된 정책이 수립되기는 했지만, 정책의 최우선순위가 외환위기 극복에 있었던 데다 애초의 기획도 그리 획기적이거나 종합적이지 못해서 특별히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청와대 비서실에 지역균형발전기획단이 설치되었고 지역산업진흥계획에 따라 테크노파크 조성, 지역기술혁신쎈터 설립, 지역진흥사업 등이 추진되었다. 지역진흥사업의 경우, 처음에는 대구의 섬유산업, 부산의 신발산업, 경남의 기계산업, 광주의 광산업(光産業)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13개 광역도시로 확대되었다.

6) 최시영 「누구를 위한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인가?」, 『도시와빈곤』 81호, 한국도시연구소 2006.

7) 최상철 「MB정부의 국가균형발전 방향과 전략」, 국가균형발전위원회 2008.

8)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지역발전위원회, 균형발전특별회계는 광역・지역발전특별회계, 지역혁신협의회는 지역발전위원회로 바뀌었다. ‘지속 가능성’이란 용어도 대부분 녹색성장으로 대체되었다.

9) 5개 광역경제권(수도권, 충청권, 호남권, 대경권, 동남권)+2개 특별광역경제권(강원특별경제권, 제주특별경제권).

10) 5+2 광역경제권 활성화 전략의 핵심사업으로서 광역경제권에 5년간 50조원을 투입하여 30개의 대형 투자사업을 선도 프로젝트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11) 「지역정책 핵심은 연계와 협력…… 갈등해소는 분권으로」, 『한겨레』 2011.7.5.

12) 정건화 「지역정책, 창대한 시작과 초라한 결실」,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 엮음 『노무현시대의 좌절』, 창비 2008.

13) 이원재 「지역살리기 키워드는 ‘지식’과 ‘사람’」, 『지역리더』 2009년 3~4월호.

14) 송두범 「서천 정부대안사업의 의의와 지역공동체사업의 전망」, 충남발전연구원 2011.

15) 중앙정부의 부처별로 보면, 고용노동부의 ‘사회적 기업’,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어촌공동체회사’, 지식경제부의 ‘커뮤니티 비즈니스’, 여성가족부의 ‘농촌여성 일자리사업’ 등이 있다.

16) 시민사회단체(CSO, civil society organization)는 NGO의 일부로서, NGO는 원래 복지기관, 교육기관, 종교단체, 각종 자생조직과 이익단체를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다.

17) 이 단락의 인용은 모두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창립 10주년 기념심포지움 ‘시민운동, 지난 10년 앞으로 10년’ 자료집, 2011.6.9.

18) 이러한 단체들과 그 활동내용에 대해서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풀뿌리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한 ‘풀뿌리 시민운동상’(2003~2008) 수상사례를 참조할 것.

19) 유창복 「도시 속 마을공동체운동의 형성과 전개에 관한 사례연구: 성미산마을 사람들의 마을하기」,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2009.

20) 「‘마을가꾸기 사업 1년’ 점검 좌담회」, 서울신문 2007.12.10.

21) 커뮤니티 비즈니스 관련 과정이나 학과를 운영중인 학교는 미야기(宮城)대학, 시가(滋賀)현립대학, 요꼬하마(浜)국립대학, 수도대학토오꾜오(首都大學東京), 릿꾜오(立)대학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