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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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대한민국의 오늘, 내일의 코리아

 

한반도에 ‘일류사회’를 만들기 위해

 

백낙청白樂晴

서울대 영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저서로 『흔들리는 분단체제』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 『민족문학의 새 단계』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등이 있음. paiknc@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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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워낙 큰 사건이 많이 벌어지는 곳이라 그런지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기억조차 때로는 아스라해진 느낌이 든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그때의 감격이 아직 생생할 것이다. 아니, 훨씬 냉정해진 눈으로 돌이켜보더라도 이번 월드컵의 경험은 역사적 사건이라 일컬음직한 것이었다.

그 바람에 정부와 여론주도층이 강조했던 대로 한국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짐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기야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살벌한 세계시장에서 조금이라도 편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은 민중의 처지에서도 나쁠 것이 없다. 다만 월드컵의 종요로운 열매를 한국기업들의 경쟁력 증대에서 찾는 것은 2002년 6월의 역사적 의미를 축소하고 심지어 왜곡할 우려가 크다.

최근의 한 좌담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월드컵을 계기로 굉장한 에너지를 경험했는데, (…) 다양한 세력들 사이에서 그 에너지의 성격을 규정하고 이를 흡수하려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고 이런 시도는 앞으로 상당히 지속될”1 전망이다. ‘브랜드 가치 상승’이라거나 더 나아가 ‘일류국가 건설’이라는 담론도 그런 맥락에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이 일류국가를 향해 전진하는 것 자체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마다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붉은악마의 교훈을 ‘하면 된다’라는 귀에 익은 구호로 정리하는 데서도 느껴지듯이 ‘일류국가 건설’은 개발독재시대의 자못 뒤숭숭하고 가위눌리기조차 했던 낡은 꿈을 되풀이한다는 혐의가 짙다. 신자유주의시대의 경쟁논리에 맞춰 업그레이드했다 치더라도 바탕이 바뀐 것은 아니다. 응원에 동원된 또하나의 이름 ‘코리아’가 갖는 복합성을 외면한 점에서도 그렇다.

물론 축구장에서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칠 때의 응원대상은 ‘대한민국’의 대표팀이었다. 그러나 군중들 자신은 이딸리아전에서 ‘Again 1966’을 내세울 때나 서해교전 직후에도 ‘꿈★은 이루어진다’고 주장할 때 ‘코리아’가 대한민국만이 아님을 의식하고 있었다. 이 점은 부산 아시안게임에 북측 대표팀이 참가함으로써 더욱 명백해졌다. 남북 선수단이 동시입장하고 응원단의 상호응원이 벌어졌으며, 이때의 주된 상징은 태극기도 인공기도 아닌 한반도기였던 것이다.

실은 ‘코리아’의 뜻이 단순하지 않은 것이 ‘노스 코리아’와 ‘싸우스 코리아’의 존재 때문만은 아니다. 월드컵 때 ‘대~한민국’을 외쳐댄 사람들 가운데는 남북 어느 쪽의 국적도 아닌 수많은 해외동포가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동포’가 아닌 외국계 한국민과 외국인들도 있었고 이 점 또한 잊어서는 안된다.) 이들 동포는 미국과 미주 등지에서는 대체로 한인이라 불리고, 중국에서는 조선족, 구 소련에서는 고려인, 일본에서는 조선인 등의 이름으로 통하지만, 영어로는 모두 ‘코리언’이다. (미국시민인 어느 교포의 술회에 따르면 한국에 도착해서 초장에 가장 거슬리는 것이 출입국관리 심의대의 ‘내국인’ 줄에 ‘KOREAN’이라고 써놓은 점이라고 한다. 미국에 살면서도 코리언으로서의 정체성과 긍지를 지키려고 그토록 애써온 자신인데 말이다.)

아무튼 월드컵 이후의 일류국가 건설론은 ‘코리아’의 의미를 분단국 한국으로 축소할뿐더러 분단체제의 해소 없이 대한민국 단독으로 일류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조장하기 쉽다. 또하나의 코리아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일류는커녕 이류에도 한참 못 미치는 상태로 남아 있을 경우, 과연 한국이 안보상의 우려도 없고 심각한 경제적인 불안으로부터도 면제된 일류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해서 북을 일방적으로 흡수한 ‘통일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일류국가론자 모두를 분단고착론자 아니면 흡수통일론자로 낙인찍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월드컵으로 결집된 힘을 제대로 간직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담론 또한 좀더 슬기롭고 사려깊어야 하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일류국가론에는 분단현실에 국한되지 않는 좀더 일반적인 문제점이 있기도 하다. 국가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국가주의가 깃들였을 수 있으며, 국가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여하튼 국민국가에 대한 집착이 전제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월드컵을 통해 형성된 동력, 그중에서도 특히 소중한 젊은 세대의 창의성과 개방성, 진취성을 제대로 살리는 목표는 ‘일류국가 대한민국’보다는–굳이 일류라는 표현을 쓰기로 한다면–‘한반도의 일류사회’로 설정되어야 하리라 본다. 국가보다는 실제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현장으로서의 ‘사회’를 앞세우는 동시에, 한반도에서는 어느 한쪽 절반만 떼어서 일류의 삶, 세계적으로 모범이 될 만한 삶이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을 전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한반도만 떼어내서 될 일도 아니다.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현존 세계체제의 일부라는 사실을 제쳐두고라도, ‘코리아’가 아닌 ‘코리언’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한반도 지역이나 한국 또는 조선의 국적을 훌쩍 넘어 지구 곳곳에 퍼져 사는 인간집단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실제로 한반도에서의 일류사회 건설은 전지구적 한민족공동체의 발전이라는 별개의 과업과 병행됨으로써만 가능하리라 본다.

 

 

2

 

‘일류사회론’이 일류국가의 성취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멋진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며, 기존의 단일형 국민국가에 집착함이 없이 한반도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국가형태를 창안하자는 것이다. 더구나 분단체제극복의 과정에서 복합국가형의 통치기구가 한반도에 세워지더라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국민국가(nation-state)의 틀을 아주 벗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봐야 한다.

국민국가의 극복을 바람직한 사회 건설의 전제로 삼는 논의 가운데는 복합국가와 국민국가를 상호배타적인 개념으로 오해한 경우도 없지 않은 듯하다. 동시에 마치 일부 급진적인 변혁론자들이 분단극복을 통해 자본주의 세계시장으로부터의 즉각적인 이탈을 꿈꾸듯이, 가까운 장래에 국민국가 체제로부터의 탈피가 가능하다는 공상에 젖은 경우도 있는 듯하다. 게다가 한반도에서 국가나 국민의 이름으로 자행되어온 온갖 폭력과 만행 들이 상당부분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통틀어 한번도 온전한 국민국가를 갖지 못한 데 기인했음을 간과하는 경향도 보인다.

어쨌든 국가보다 사람 중심,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 중심으로 한반도의 현실을 보자는 것은 일찍부터 분단체제론에서 강조해온 점이다. 통일 후의 국가형태도 단일형 국민국가를 최종목표로 미리 설정할 게 아니라,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등 그때그때 단계적 현실에 알맞은 기구를 한반도 주민들 다수의 실익을 기준으로 창안하자고 주장했던 것이다.2

그 점에서 “‘분단극복이 아닌 분단체제의 극복’이 문제라면, 통일만이 유일한 해법은 아닌 것이다. 유일한 해법으로서의 통일에 갇혀 있다면, 미래의 복합적 정치공동체에 대한 상상력의 빈곤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3라는 주장에 나도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미래의 복합적 정치공동체’가 한반도에–또는 적어도 한반도를 일차적 관할구역으로 삼고–세워지는 것일 때, 그것이 국가연합이든 연방국가든, 동아시아 지역연합의 일원이든 아니든, 국민국가와 전혀 별개의 성격을 지닌 어떤 형태가 가능할 것인가. 너무나 아득한 먼날의 일이라 지금 굳이 그 성격을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이는 분단체제의 극복이 한정없이 미뤄져도 무방하다는 듯한 자세요, 그렇게까지 오래지는 않은 일정기간의 “‘탈분단’(혹은 탈냉전)”4을 거치면 한반도 또는 동아시아에 그러한 정치공동체가 성립될 수 있다는 전망이라면 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이 나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국민국가’를 ‘단일형 국민국가’로만 이해한 결과일 수도 있는데, 그랬다면 ‘복합국가로의 통일’ 가능성을 열어놓은 통일구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론도 제기하지 못한 셈이다.)

실은 ‘탈분단=탈냉전’이라는 설정도 문제다. ‘탈분단체제’라면 모를까, ‘탈분단’이라고 하면 이는 상식적으로 ‘분단극복’이요 ‘통일’일 터인데, 그런 낱말을 ‘탈냉전’의 동의어로 쓰는 것은 언어의 남용이다. 물론 분단극복 없이 냉전종식도 없다는 주장은 가능하겠지만, ‘탈분단’론자의 입장은 정반대가 아닌가. 즉 분단에서 통일로 나아가지 않고도 한반도에서 평화공존체제를 구축하고 냉전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주장은 물론 ‘탈분단’론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반도에서의 당면과제가 통일보다 평화공존이라는 점이야 남북 정부의 입장이자 우리 사회의 폭넓은 합의사항이며 분단체제론에서도 강조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평화를 위해 통일담론 자체를 청산하거나 보류할 필요성을 내세우는 논리도 곧잘 만나는데, 특히 외국의 논자들이나 국내에서도 독일의 선례를 중시하는 지식인들 가운데서 흔하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브란트(Willy Brandt) 총리가 ‘동방정책’을 펴면서 통일담론을 평화담론으로 전환했고 뒤이어 1972년의 동서독 기본조약을 통해 분단하의 평화공존에 합의함으로써 긴장이 완화되고 교류가 크게 증대했다. 그처럼 통일목표를 제쳐놓은 덕에 오히려 1990년의 독일통일이 가능해졌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아직껏 통일론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해서 실질적인 긴장완화와 상호신뢰구축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5

한반도에서 통일담론 자체가 분단체제의 유지·강화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하는 경우가 흔한 것은 사실이다. 쉬운 예로 적화통일론, 북진통일론을 떠올릴 수 있지만, 평화통일을 전제할지라도 흡수통일론이라든가 단선적인 통일지상주의가 상대방의 위기의식을 조장하거나 분단체제의 실상에 대한 인식을 흐림으로써 분단을 굳혀주기 십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통일담론에 대한 경계와 비판은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통일담론조차 자기재생산의 기제에 편입시키는 분단체제의 복합성과 유연성을 정확히 알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일이지, 통일담론을 포기함으로써 평화정착이 가능하리라 보는 것은 또하나의 단순화요 독일과 한반도 현실의 차이를 간과한 공담(空談)에 불과하다.

한반도에서 통일담론이 분단체제를 오히려 강화할 수 있는 최대의 원인은 6·25전쟁이라는 (동서독 사이에는 없었던) 무력통일 기도와 그 참혹한 실패의 경험이다. 이 점에서 통일담론의 역기능은 분단독일에서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 반면에 한반도에서 평화담론만으로 평화정착이 불가능한 것은 6·25 전에 남북 모두가 북진통일과 남진해방을 공공연하게 다짐할 만큼 한반도의 분단이 아무런 명분 없이 외세에 의해 강요되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통일 없는 평화를 주장하는 일은 곧 이 타율적 분단을 추인하는 반민족적 범죄행위였으며, 지금도 분단체제의 질곡을 수용하면서 그 소수 기득권층으로 남으려 한다는 혐의를 벗기 힘들다. 독일의 분단이 비록 타율적인 것이었지만 나찌 독일의 범죄에 대한 응징의 성격을 지녔고 그 때문에 동서 양쪽에서 상당수 주민들(특히 진보적 인사들)의 명시적 또는 암묵적 지지를 받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인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통일을 하지 말자고 쌍방이 합의함으로써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북에서는 더구나 ‘통일’이 체제유지의 중요한 이데올로기가 되어 있지만, 남에서도 어떤 정치지도자가 통일을 배제하고 남북이 내내 좋은 이웃나라로 살자는 제안을 하는 순간, 그가 북으로부터 규탄의 대상이 됨은 물론이요 남의 대중으로부터도 지지를 상실함으로써 이래저래 평화정착사업에서 탈락하게 마련이다. 한반도는 통일을 너무 앞세워도 통일이 안되고 평화마저 위협받지만, 통일을 하지 말자고 해도 통일이 안됨은 물론 평화조차 어려워지는, 참으로 고약하다면 고약한 지역이다.

반면에 한반도는 독일과 달리 통일담론과 평화담론을 결합하면서 분단체제극복에 임할 수밖에 없는 절호의 공부자리이기도 하다. 실제로 독일의 통일이 귄터 그라스 같은 사람에게 그토록 불만스럽게 된 이유의 하나는, 구 서독에서 보수진영을 빼고는 평화담론에만 주력하고 통일담론을 소홀히했던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6 그리고 한반도 특유의 ‘공부’가 학자들의 담론에 머물지 않고 바로 남북 정상의 만남에서 공동선언의 형태로, 통일을 하기는 하되 서둘러 하지는 않는다는 절묘한 절충을 만들어내는 성과에 이미 도달한 바도 있다.

반면에 ‘분단극복’보다 ‘탈냉전’을 선호하는 지식인들의 활약도 일정한 현실적인 토대를 지녔다고 봐야 옳다. 6·15선언에 대한 전국민적 환호와 이산가족상봉, 씨드니 올림픽 및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남북팀의 동시입장 등 잇따른 감동적 사건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안에 통일에 냉담한 기류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젊은층으로 갈수록 더하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것 자체가 분단체제에 길들여진 결과로서, 우리 삶의 온갖 반민주적이고 비자주적인 요소가 분단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며 분단체제의 존속에–일방적인 통일담론이 그러하듯이–실질적인 이바지가 되는 담론이라는 주장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더 중요한 것은 대중의 ‘통일에 대한 냉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이다. 좀더 정확한 통계숫자를 요구하는 차원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성격의 냉담인지를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속에는 분단체제극복이 아닌 ‘아무렇게나 하는 통일’에 대한 거부의 지혜가 담겼을 수도 있고, 월드컵 때처럼 홀연히 분출할 에너지가 때를 기다리며 잠복해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통일비용 때문에 통일을 기피하는 심정에는 자본주의사회에 사는 인간 특유의 이기심도 작용하고 있겠지만, 대중의 통일과정 참여가 온갖 제도적 장치와 정치적 관행으로 제한되고 ‘통일은 정부와 기업가들이 알아서 할 테니 너희들은 세금이나 내라’고 하는 식의 반민주적이고 비자주적인 현실에 대한 젊은 세대의 건강한 반발도 없지 않을 터이다. 분단체제극복으로서의 통일이라는 목표가 아직껏 분명치 않고 남북화해의 진행조차 부진한 상황에서 대중의 열기와 창의력이 통일을 향해 집결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싶다.

 

 

3

 

그런데 2002년 후반에 들어 남북의 화해와 교류는 다시금 빠른 물살을 타고 있다. 월드컵 3, 4위전이 있는 날 벌어진 서해교전 등 온갖 곡절에도 불구하고, 흩어진 가족들의 만남이 재개됐고 각종 방문단이 오갔으며 부산 아시안게임에 북측 대표단과 응원단이 참여하여 수많은 감동장면을 연출했다. 무엇보다도 남북 군당국의 직접적인 동의와 개입을 전제하는 비무장지대 관통 철로 및 도로 연결사업이 착공되어 순조롭게 진행중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핵문제로 다시금 긴장된 분위기이고 미국측에서 이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대세가 바뀌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서해교전의 최대 교훈도 6·15선언의 획기적 의의와 지속적 효과에 관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명의 희생과 군함의 손실을 동반한 충격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주식값의 폭락이나 국민들의 사재기 소동 없이 지나갔으며, 외국자본이 철수하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월드컵 경기장의 열기와 질서도 여전했고, 전쟁의 위험을 실감할수록 평화를 염원하며 ‘꿈은 이루어진다’고 다짐하는 젊은 세대의 성숙함과 자신감이 돋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한때 냉전의 전초기지였고 지금도 그 ‘외딴섬’으로 불리는 한국에서 9·11 테러의 여파를 오히려 가볍게 느꼈었듯이, 서해교전이라는 근거리에서의 충돌 또한 당장의 공황사태나 남북관계의 장기적인 경색 없이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남북의 화해에 소극적인 미국정부의 태도 또한 그동안 꾸준히 변해온 것 같다. 핵문제 등 아직은 예측불허의 상황이지만 ‘악의 축’의 일원으로 몰았던 북과의 관계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부시 스스로 공언하는 형국인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을 터이다. 이라크와의 전쟁을 결행하는 것만도 벅찬 미국 패권의 한계도 그 하나일 테고, 북·일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부시의 대북강경책에 제동을 건 코이즈미(小泉) 수상의 지지기반이 부시 대통령의 지지기반과는 다같은 우익이면서도 이해관계를 달리한다는 지적도 가능하다.7

급변하는 세계 및 동아시아 정세 그리고 북쪽 내부의 사정에 대해 특별한 정보나 전문적인 훈련도 없이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게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제적 역학관계가 중요하고 특히 미국이 한반도에 미치는 힘이 아직도 엄청나지만, 한국민의 자주력도 전과는 다른 수준에 달했으며 특히 남북간에 보조가 맞았을 때 만만찮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월드컵 전에 이미 한반도에 관한 부시의 태도에는 ‘악의 축’ 발언 당시에 비해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었고, 여기에는 우리 정부의 설득뿐 아니라 부시 발언에 집중된 한국사회의 비판여론도 분명히 한몫 했다. 거기다 월드컵의 성공으로 한반도는 미국이 함부로 전쟁을 벌이기에는 한층 껄끄러운 땅이 되었으며, 드높아진 국민의 기상은 대북선제공격에 대한 한국정부의 동의를 미국이 얻어낼 가능성을 거의 완전히 봉쇄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한국사회 내부에서는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이른바 ‘남남갈등’이 여전히 심각하다. 그러나 부시행정부의 압박과 서해교전 같은 저해요인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햇볕정책’은 지속되었고, 특히 부산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보수야당의 대북강경자세도 얼마간 누그러진 느낌이다.

중요한 것은 ‘남남갈등’ 및 ‘햇볕정책’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확보하는 일이다.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국론이 지나치게 갈리고 더러 맹목적인 발목잡기가 벌어지는 것은 안타깝지만, 분단체제극복이라는 과제의 성격상 남북관계를 둘러싼 남한 내부의 갈등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대북정책만은–외교와 국방 문제가 그렇듯이–초당적으로 대처하고 국민적 단결로 밑받침해야 마땅하다는 발상 자체가 실은 국가 위주의 사고이며, 분단체제의 본질을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 내지 정권의 대립구도로 오인하는 태도다.

분단체제론이라 해서 남북 국가기구간의 대립을 무시하거나 남북의 민중을 동질적인 집단으로 설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단체제에서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 체제에서 특혜를 누리는 소수와 자신의 인간적 존엄과 복리를 심각하게 제약받는 다수의 대립이며, 남북의 국가기구와 집권자들의 역할은 이 틀 안에서 그때그때의 정황에 따라 평가될 종속변수로 인식된다. 따라서 특정 사안에 대해 남한의 정부와 대다수 국민이 일치된 태도를 갖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도 있으나, 분단체제의 극복과정 자체는 장차 어떤 대안적 체제를 만들 것인가를 둘러싼 뭇 집단간의 끊임없는 다툼을 수반하게 마련이며, 특히 그동안 분단체제의 운영에서 소외됐던 다수대중이 새롭게 참여하면서 기득권세력과의 갈등을 일으키는 일은 불가피하다.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북관계를 둘러싼 남남갈등을 ‘통일세력과 반통일세력의 대결’로 보는 것도 속단이다. 통일을 하더라도 어떤 통일을 누구의 주도로 해나갈지에 대한 갈등이며, 통일 또는 교류·협력의 과정에서 누가 더 많은 이득을 챙길까를 다투는 싸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대북포용정책만은 다른 대안이 없는만큼 책임있는 정치인이나 시민이면 누구나 밀어줘야 하는 것 아닐까? 나 또한 원칙적으로 그래야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어떤 차원의 정책을 말하는지 좀더 분명히 가려줄 필요가 있다.

먼저, ‘햇볕정책’은 대북 포용정책 내지 교류협력정책(engagement policy)의 김대중정부판 호칭인 셈인데, 강경압박정책으로부터의 선회를 생생하게 표현해주는 잇점이 있다. 반면에 이솝 우화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건대 결국은 찬바람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옷을 벗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북에서 불쾌하게 여기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특히 분단체제극복운동의 관점에서는 상대방만 변화시키고 자신이 변할 필요성은 도외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불만스러운 표현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물론 그 내용이다. 한마디로 햇볕정책(또는 포용정책)이라고 하지만 이를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눠보는 것이 그 내용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첫째는 경제협력사업이나 철도연결, 스포츠 교류 등등의 구체적인 사안에 관한 ‘정책’을 말하는 경우다. 이러한 그때그때의 과제실행 차원에서는 어떤 조건, 어떤 방식으로 그 ‘정책’을 수행할지에 대해 여야간에, 그리고 여러 전문가집단과 시민들 사이에 얼마든지 논쟁이 가능하고 논쟁을 통한 검토가 바람직하다.

다른 한편, 오늘의 한반도 문제에 접근하는 기본자세가 냉전적 대결이나 북측 체제의 붕괴를 위한 개입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일단은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전쟁의 위협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는 게 옳은지를 선택하는 차원에서의 ‘정책’이 있다. 햇볕정책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은 바로 이 차원에 해당하며, 실제로 전쟁재발은 물론 이른바 흡수통일도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주장은 타당하다. 국제사회의 대다수 국가가–심지어 미국의 부시행정부조차–햇볕정책을 적어도 입으로는 지지하는 것도 그 때문이며, 극심한 ‘남남갈등’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때마다 햇볕정책 자체는 국민 절대다수의 찬성을 얻곤 하는 것도 이런 기본적 타당성 때문일 게다.

그런데 조금 더 긴 안목으로 본다면 어떤가? 가령 햇볕정책이 일정하게 성공해서 지금보다 훨씬 활발한 교류와 협력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정책의 추진자가 지향할 바는 무엇인가? ‘정책’이란 낱말은 이렇게 좀더 장기적인 차원에도 적용될 수 있다.

물론 햇볕정책의 요체는 바로 그러한 장기적인 고려사항을 일단 접어두고 당면한 긴장완화와 상호신뢰구축 사업에 치중하자는 데 있다. 변화의 과정이 시작된 뒤에 북의 체제가 어떤 길로 갈지, 통일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될지, 도중에 국가연합을 할지 ‘느슨한 연방제’를 할지, 이런 문제로 부질없이 마찰을 일으킬 게 아니라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 증대를 우선하자는 것이다. ‘정경분리의 원칙’도 그런 취지다. 이렇게 볼 때 장기적인 차원에서 햇볕정책은 ‘무책(無策)’을 표방하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그 최대의 미덕인 셈이다.

그런데 무책도 무책 나름이다. 아니, 자연 속에 진공이 유지될 수 없듯이 현실 속에서 문자 그대로 무책의 정책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예컨대 통일은 2, 30년 후에나 가능하리라고 하는 정부지도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햇볕정책의 정경분리원칙이나 ‘무책’의 노선이 꽤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 되는데 과연 그런가? 6·15선언 당시의 드높았던 기대가 본격적으로 실현되기 전인데도 남과 북 모두가 엄청나게 변하고 있는 실정이거늘, 이런 변화에 일단 가속도가 붙는다면 그때 제기될 도전과 야기될지 모르는 혼란을 ‘정경분리’와 ‘상호불간섭’의 원칙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질문을 떠올릴 때 장기적 차원에서의 햇볕정책의 본심은 역시 일종의 흡수통일이 아닐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전쟁 아니면 경제파탄을 초래할 당장의 급격한 흡수 시도가 아니라, 한층 완만한 병합 구상일 터이다. 또는 북측 당국자와의 협상 및 이익배분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예멘식에 가까운 통일일 수도 있다.

문제는 햇볕정책이 한동안 진행된 후의 상황이라고 해서 이런 구상이 지금보다 현실성이 커지겠느냐는 점이다. 누구도 예견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햇볕정책으로 북의 체제가 안정된다면 그때라고 북측 정권이 흡수통일에 고분고분 응할 리가 만무하다. 반면에 체제가 심각하게 흔들리는 혼란상태라면 독일식 병합 기도에 일전불사로 맞설 가능성은 오히려 커질 터이며, 쌍방의 당국자들이 예멘식 담합으로 사태를 제어할 확률은 그만큼 낮아질 것이다.8

그러한 사태가 벌어질 경우, 교류와 협력 외에 다른 대안이 없음에 현재 합의하고 있는 남과 북의 정부, 남북 민중 대다수, 여러 외국 정부와 집단들 등 수많은 당사자들이 각기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햇볕정책이 초래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놓고 갈리게 될 것이다. 그중 한반도에서 분단체제를 제대로 극복한 ‘일류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햇볕정책이 장기적 차원에서 ‘무책’의 정책임을 환영하는 이유는 남다르다.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고 남북간의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남북 정권 모두의 통제력과 외세의 지배력이 약화되게 마련인데, 이는 그만큼 대중들 자신의 능동성과 창의력이 발휘될 공간을 넓혀주는 것이기에 이에 따른 혼란은 마땅히 감수해야 한다는 취지인 것이다. 다시 말해 외세와 한반도내 기득권층이 겨냥하는 질서정연한 체제개편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의 ‘혼란’을 감수하면서 민중의 참여기회를 확대하는, 미래를 향해 진정으로 열린 ‘무책’이어야 한다. 아무런 장기적인 설계와 경륜이 없어 외부의 제국경영자들에게 놀아나는 무정견(無定見)도 아니요, 시기만 늦춘 흡수통일을 속내로 감춘 분단체제 기득권세력의 연명책이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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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런 갈림길에 도달하기 전에는 기득권층 온건파의 대북포용정책 추진과 분단체제극복운동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분단체제의 극복이 아닌 단순한 분단극복이라면 정부당국이나 대기업 등 현실적으로 힘있는 세력들이 합리적인 통일정책을 펼치는한 일반시민은 이를 지지해주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나 한반도에 현재의 남과 북 어느 쪽보다 훌륭한 새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일 경우, 남북의 사회를 각기 지배해온 집단들에 이 과업을 내맡길 수는 없으며 두 사회가 합쳐지는 날까지 이 작업을 미뤄둘 수도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 처한 삶의 현장에서 자기 자신을 바꾸고 주변을 바꾸며 나아가 세상 전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진행함으로써만 분단체제보다 나은 체제가 이땅에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햇볕정책과 관련해서도, 앞서 말한 세 차원 가운데 중간 차원에 해당하는, 당장에 전쟁보다 평화, 급격한 통일 시도보다 점진적인 통합을 선택하는 노선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 노선에 따라 수행되는 구체적인 정책과제의 영역에서는 모든 사람이 혹은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하고 혹은 시민적 양식에 의존하여 그 우선순위와 실행방법을 따져야 하며, 특히 당국자들이 외면하기 쉬운 환경보전이나 약자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때로는 강력히 개입해야 한다. 더욱이 장기적 정책이나 경륜이라는 또하나의 차원에서는, 예컨대 햇볕정책의 정경분리원칙이 장래의 정치적 결정을 남북한 민중의 의사에 맡기는 슬기롭고 용기있는 ‘진짜 무책’이어야지 분단체제 기득권세력의 주도권 유지에 복무하는 ‘위장 무책’이 되지 말아야 함을 미리부터 강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분단체제극복을 위해 병행되어야 할 작업으로는 앞서 언급한 ‘코리언’의 전세계적·탈한반도적 차원에 대한 인식과 대응도 포함된다. 한반도 통일작업에 해외동포의 참여를 포함시키려는 노력은 익숙한 것이지만, 이러한 한반도중심주의는 세계 곳곳에 이미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고 사는 해외 코리언들의 욕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뿐더러, 한반도에 진정으로 선진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안되기 쉽다. 한반도에서 새로운 유형의 통일국가와 함께 멋진 인간사회를 만드는 작업과 더불어, 여러 다른 지역과 상이한 정치공동체에 소속하면서도 하나의 문화적 실체로서의 민족을 형성하는 ‘한민족공동체’를 발전시키는 작업이 병행될 때, 두 가지 모두 성공이 담보되고 세계사적 의의가 증대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관계나 해외동포와 직접 관련없는 온갖 분야에서도 실질적인 개혁을 위한 노력이 수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특히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와 무관한 듯이 보이는 문제들이 실제로 어떻게 분단현실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분단체제극복의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닫는 일이다. 예컨대 언론개혁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일차적으로 이것은 남쪽의 내부문제로 인식되고 있지만, 무책임하고 편파적인 보도와 무리한 부수확장사업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신문들이 바로 남북관계에 대해 가장 퇴행적인 자세를 보인다는 점에서도 분단체제의 수구세력이 언론의 선진화를 방해하는 세력이기도 함이 분명해진다. 교류협력이나 통일도 이들을 슬기롭게 제어하고 변화시키면서 한국사회가 ‘일류신문’ 또는 그에 근접한 매체를 갖게 되는 가운데 성취되어야 한반도에 진정한 ‘일류사회’가 세워질 수 있다.

비슷한 사례는 각 분야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열거하거나 개관하는 것은 이 글의 몫이 아니며, 그중 하나를 골라서 심층적인 분석을 가할 준비도 나로서는 되어 있지 않다. 다만 얼마 전 ‘통일시대의 개혁과 진보’를 논한 글에서 ‘서울과 지방 간 격차의 확대’ 문제가 언급된 것을 계기로 한두 마디 덧붙일까 한다.

 

예컨대 그간 ‘한국적’ 세계화의 피해전가 메커니즘이 잘 드러난 한 부문이 서울과 지방 간 격차의 확대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추세도 통일시대를 상정하면 위험성이 한층 커지기 십상이다. (…) 통일시대로 진입하면서 한반도 전체가 어느 정도 다극화의 길로 갈 수 있을지, 아니면 경제력과 교육 등의 격차나 사회·문화적 이질감 때문에 불평등이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위계제가 한층 공고화될지의 갈림길에서 현 추세는 후자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만든다.9

 

이는 매우 중대한 문제제기로서 저자가 더이상의 설명을 안해준 것이 아쉽다. 수도권 집중과 농어촌의 피폐, 이로 인한 전국적 불평등의 심화는 제3세계의 공통된 문제이며, 이른바 선진국에서도 제반조건이 유리해서 덜 심각하게 드러날 뿐이지 자본주의 발달의 일반적 현상이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불가피성에 체념하며 끝내 불평등 심화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 한반도에서 ‘일류사회’ 건설은 헛소리로 끝날 것이 뻔하다.

실제로 흡수통일이 된다고 가정할 경우에는 기존의 서울중심 현상이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물론 평양이 얼마간 특수한 지위를 지닐 것이고 서울중심을 완화하기 위한 이런저런 대책들이 제시되곤 하겠지만, 수도권집중의 대세를 뒤집을 방도는 없지 싶다. 반면에 남북 당국자간의 타협을 통한 ‘대등통일’–나쁘게 말하면 ‘담합통일’–이 이뤄진다면 서울과 평양의 양극체제 비슷한 것이 성립하겠지만, 나머지 남북 도시들의 주변화와 시골의 소외 및 전반적인 불평등의 심화는 막지 못하리라 본다. (게다가 세월이 갈수록 양극체제가 서울의 단일중심체제로 기울어갈 확률이 크다.) 오로지 기존의 개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남북의 통일 또는 통합 과정과 결부될 때만, 서울과 평양의 두 극을 확보함과 동시에 다양한 여러 도시들에 활력을 불어넣고 도시와 시골 사이의 새로운 유대를 꿈꿀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막연한 이야기 같지만 분단체제의 흔들림과 더불어 그 실현가능성의 기미가 이미 곳곳에서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북에서 추진하는 신의주특구만 하더라도, 그 성패는 미지수지만 평양 이외에 전혀 색다른 중심을 만들려는 시도가 아니겠는가. 남쪽에서는 자본주의화와 대외개방의 진도가 훨씬 더 나갔기 때문에 경제특구나 자유도시 설립으로 수도권중심체제에 큰 변화를 줄 여지가 오히려 작다. 그만큼 이곳에서는 더욱더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발상이 요구되는데, 이 맥락에서 나는 새만금간척사업의 슬기로운 방향전환과 마무리가 결정적인 변수가 되리라 본다. 본지 이번호에 발표되는 김석철 교수의 대안 구상은 앞으로 철저한 검토와 검증을 거쳐야 할 테지만, 요컨대 발상을 크게 바꾸어 기왕에 쌓은 둑을 활용하되 새만금의 갯벌도 살리고 새로운 지역개발의 모형을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만약에 그러한 노력이 열매를 맺는다면, 이는 남쪽에서의 그간의 경제성장노력과 개발의지, 반환경적 개발에 대한 비판의식과 그 조직화를 가능케 해준 민주화과정, 그리고 대안적 발전에 대한 지적·학문적 모색 등등이 행복하게 합쳐진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남한 자체의 능력이 아무리 축적됐다 하더라도 중국의 개혁·개방과 근년에 남북관계의 결빙상태가 얼마간 녹아서 ‘황해안 공동체’와 ‘철의 씰크로드’를 말할 수 있는 세월이 되지 않았더라면 발상 자체가 불가능했기 쉽다. 이처럼 한반도 긴장완화의 진전이 남북 각기에서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변화를 자극하고 이들 변화가 다시 남북관계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진행에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분단체제를 제대로 넘어선 멋진 사회가 한반도에 자리잡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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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담 「월드컵 이후 한국의 문화와 문화운동」, 『창작과비평』 117호(2002 가을) 17면 김종엽의 발언.
  2. 졸저 『흔들리는 분단체제』, 창작과비평사 1998, 제1장, 특히 26~28면.
  3. 임지현 「다시,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창작과비평』 117호(2002 가을) 200면.
  4. 같은 면.
  5. 이런 주장은 예컨대 나도 참여했던 지난 5월 29~30일의 중앙대 한독문화연구소 주최 ‘통일과 문화’ 국제 심포지엄에서도 거듭되었는데, 독일에서 온 귄터 그라스가 독일의 전철을 밟지 말고 훨씬 더 서서히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심을 갖고 통일하도록 권유하는 데 머물렀다면(심포지엄 자료집 『통일과 문화』에 실린 Günter Grass, “Die Wiedervereinigung als andauernde Aufgabe” 및 그 국역본 「통일은 계속 풀어나가야 할 과제」, 『역사비평』 2002년 가을호 참조), 아직도 통일담론에 집착하는 한국인의 미숙성에 대한 질책은 오히려 국내 지식인들 쪽에서 나왔다.
  6. 예의 국제 심포지엄에서 토론자로 나온 이우영 박사가 최정호 교수에게, 나 자신은 그라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으나 답변을 들을 기회는 만나지 못했다. 나의 기조강연에서는 이러한 비판이, “독일은 분단 이전에 이미 선진 대국이었고 분단상황에서도 동서독 모두 남북한이 못 가진 경제적·문화적 자산을 숱하게 지녔음을 상기한다면, 독일인들이 통일과정에서 세계사에 이렇다할 창조적 기여를 못했다는 판정이 가능합니다”(자료집 『통일과 문화』, 「한반도 통일을 위한 지구적 시각을 찾아서」 6면)라는 식으로 훨씬 완곡하게 제기됐었다.
  7. 이에 대해서는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2002년 9월 18일자의 「북-일정상회담 이면에 숨겨진 ‘아시아의 대밀약’」(http://www.pressian.com/section/section_article.asp?article_num= 30020918073858&s_menu=경제) 및 ‘동아시아 뉴딜 플랜’에 관한 후속기사들 참조.
  8. 덧붙이자면, 나는 남북 예멘 지도자간 1990년의 통일합의를 ‘담합통일’로 규정한 바 있지만 90년 직후의 상황이나 4년 뒤 이 담합이 깨지면서 무력충돌을 거쳐 북예멘이 통일을 완수한 상태가 분단의 영속화보다 못하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한반도는 그런 담합이 통하거나 담합이 깨졌을 때의 무력충돌이 그 정도의 한정된 살상으로 끝날 수 없는 전혀 다른 현실로서, 제대로 된 분단체제극복작업이 아니고서는 평화적인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9. 유재건 「통일시대의 개혁과 진보」, 『창작과비평』 116호(2002 여름) 27면.

백낙청白樂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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