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를 말하다
- 유신 독재, 군사정권의 폭압에 억눌려 있어서 자유가 몹시 갈구되던 때였는데, 그걸 깨는 잡지가 1966년에 나온 거예요. 용기를 줬어요, 지식인들에게. 나를 계몽시키고 나에게 용기를 줬던, 나의 스승이자 동행해온 동지, 친구죠.
- 대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본 잡지가 『창작과비평』 창간호였어요. 백낙청 선생의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라는 글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고,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번역됐을 때는 줄을 치면서 공부를 했고, 김윤수 선생의 고희동 이중섭 이인성 박수근론은 우리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의 방향을 알려주는 글이었기 때문에, 창비는 내 인생의 교과서 같은 것이었습니다.
- 『창작과비평』은 우리 사회의 우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지성의 맑은 물이 솟아나고, 그걸 우리 공동체가 마실 수 있게 하는 그런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잡지 특성상 어떤 시간에 아주 절치부심해서 맞닿아 있어서, 그 시간을 온전히 말하고 살아내는 ‘시간을 잡는 단행본’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우리에게 다가올 이 무수한 혹은 두려운 시간들을 잘 잡아주면 좋겠습니다.
- 창비의 역사는 한국 민주화의 역사다. 판매금지와 회수, 강제 폐간의 역경에도 창비는 굽히지 않았다. 창비가 주창한 분단체제론과 민족문학론은 70년대 이후 한국 지식인사회를 움직인 동력이자 정신이었다.
- ‘창비’는 한국사회 민주화의 실천적 담론과 문학을 생산해왔고, 구비구비 새로운 역사에 대한 전망들을 제시해왔다.
- ‘창비’와 함께해온 이름들을 뺀다면 70·80년대 우리의 문학과 지성사는 얼마나 허술하고 참혹했을까. ‘창비’가 없었다면, 그 혹독한 시절을 살아온 이들의 정신의 서재는 또 얼마나 초라했을까. 이 끔찍한 상상만으로도 ‘창비’가 일궈온 성취는 입증된다.
- 1966년 창간호가 서점에 깔린 뒤 『창작과비평』의 목차를 훑다가 주저없이 한권을 사들고 나왔다. 편집상의 특징도 상당히 침착·세련되어 보였지만, 문학과 사회와 역사를 하나의 유기적인 그물로 파악해 들어가는 백낙청 교수 등 생소한 필진들의 정연하고 진지한 입론이 내게는 여간 신선하지 않았던 것이다.
- 『창작과비평』이 한국 문학과 지성계에 끼친 공로와 영향은 지대하다. 우선 한용운 선생 시의 고격을 한층 드높였으며 김광섭 선생의 만년 시편들의 진가를 알아보게 했을뿐더러, 흙속에 묻혀 있던 신동엽의 시를 캐내었고, 모더니스트로만 간주되던 김수영의 시에서 치열한 동시대성을 찾아내 보여주었다. 창비는 표류하는 암울한 시대의 등대였으며 방향타였다.
- 70년대만 해도 문화적으로 암흑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진 않지만 『창작과비평』을 읽는 것 자체가 정치적 행위이자 문화적 행위였다.
- 80년대 이후 일련의 역사적 격동기를 겪으면서 나는 ‘창비’의 모든 책들을 통해 그 어려운(?) 역사, 사회, 문화적인 고민들을 해결해나갔다. 창비는 분명히 내 문학과 삶을 갈고 닦게 해준 학교였던 것이다. 입학도 없고 졸업도 없는 영원한 학교 말이다.
- 이웃 학교에 최루가스가 터질 때, 명동성당에서 노동자들이 단식투쟁을 벌일 때, 동료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장론 교재에 데모 안 하는 것이라고 자조적인 문구를 새겨가지고 다닐 때, 나는 터벅터벅 내 방으로 돌아와서 ‘창비’ 합본호를 베개 삼아 베고 한권은 가슴에 올려놓고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복을 누릴 수 있었다.
-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급진적 민주주의 이론에 대한 지적 갈증도 컸던 시기에 창비는 그러한 갈증을 공식적으로 해결해주는 매체였다.
- 『창작과비평』은 한국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여러 부침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지켜낸 우리의 소중한 지적 자산이자, 작가들의 ‘운동(運動)-장(場)’ 같은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실제로 많은 의미있는 사회운동과 문학적 고투가 발생했다.
- 『창작과비평』의 계간지로서의 성격을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 것인가. 이와나미 쇼뗑(岩波書店)의 『세까이(世界)』 『시소오(思想)』 『분가꾸(文學)』를 하나로 묶은 것이라 말해야 할까. 아니 그보다 분량은 적지만 세계사를 크게 파악하는 것은 한층 명료하고, 더구나 사회에 뿌리내린 자세도 더 명확하다.
- 우리가 『창작과비평』만한 잡지를 가졌다는 것은 분명 지성사의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