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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전통적 해석과 주역 읽기

김석진 『대산 주역강의』 1·2·3, 한길사 1999

김병호 『아산의 주역강의』 상, 소강 1999

 

이강수 李康洙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주역(周易)』은 ‘역(易)’이라고도 부른다. ‘역’에는 세 가지 뜻이 있으니, ‘변역(變易)’과 ‘이간(易簡)’과 ‘불역(不易)’이다. ‘변역’은 사물들이 변화함을 뜻하고, ‘불역’은 그러한 변화 속에도 변치 않는 이치가 있음을 뜻하며, ‘이간’은 평이하고 간약(簡約)함을 의미한다. 이 ‘역’이 주나라 시대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주역’이라고 부른다.

『주역』은 ‘역경(易經)’과 ‘역전(易傳)’ 그리고 ‘역학(易學)’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역경’은 괘(卦)와 효(爻) 그리고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로 되어 있다. 지난날 유학자들은 복희씨(伏犧氏)가 괘를 그리고 주문왕(周文王)이 괘사를 지었다고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학자들은 증거가 없는 것은 믿으려 하지 않는데, 우선 복희씨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또한 주문왕의 사적은 사실(史實)을 가지고 논할 수 있다. 괘사나 효사 가운데는 주문왕이 죽은 뒤의 일들이 들어 있다. 예를 들면 강후(康侯)가 책봉받은 일이나 기자(箕子)에 관한 일들이 그것이다. 죽은 사람이 글을 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오늘날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역경’은 어떤 한 시기에 한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라, 은·주(殷周) 정권교체기로부터 장기간에 걸쳐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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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은 ‘역경’보다 훨씬 뒤에 만들어졌다. 그 시차는 수백년이나 된다. ‘역전’은 단(彖) 상·하, 상(象) 상·하, 문언(文言), 계사(繫辭) 상·하, 설괘(說卦), 서괘(序卦), 잡괘(雜卦) 등 모두 열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십익(十翼)이라고도 부른다. ‘역경’에 전(傳)이 있는 것은 새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인데, 전(傳)이란 현자가 성인이 쓴 경(經)에 대해 해석한 글을 말한다.

서기 1세기경 중국 한(漢)나라 사람 반고(班固)가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에서 말하기를, 공자가 단·상·계사·문언·서괘 등 10편을 지었다고 하였다. 그보다 앞서 사마천(司馬遷)도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역전은 공자가 지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은 이러한 설을 믿지 않는다. 송대(宋代)의 구양수(歐陽修)가 “역전은 공자가 지은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易童子問」)라고 말한 바 있고, 청대(淸代)의 최술(崔述)도 이에 동의하였다. 그뒤 이에 동의하면서 그 근거를 제시하는 학자들이 늘어갔다. 특히 1920년대에 그러한 논문이 많이 쏟아져나왔고, 그러한 글들은 『고사변(古史辨)』이라는 책 속에 수록되어 있다. 오늘날 학자들은 대체로 ‘역전’이 중국 춘추시대(기원전 770〜기원전 476)부터 전국시대(기원전 475〜기원전 222)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라고 본다.

‘역학’은 ‘역경’과 ‘역전’에 대한 학설로, 그 내용은 실로 방대하다. 한대의 맹희(孟喜)와 경방(京房)의 상수역(象數易)이 있고 위진(魏晉)시대 왕필(王弼)의 의리역(義理易)이 있는가 하면 송대의 정이(程)와 주희(朱熹)의 의리역이 있고, 명말·청초의 왕부지(王夫之)와 황종희(黃宗羲)의 역이 있는가 하면 청나라의 모기령(毛奇齡)과 혜동(惠棟)과 초순(焦循)의 역학이 있다.

『주역』은 원래 점치는 책이다. 삶의 길은 험난하여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도 위기사태를 만날 수 있다. 이때 사람들은 힘과 지혜를 모두 동원하여 해결하고자 하며, 자기 주변 사람들과 상의해보기도 한다. 그래도 안될 경우 점을 친다.

점에는 거북점도 있고 시초점(蓍草占)도 있다. 1899년 중국 하남성 안양현에서 발견된 갑골문자에는 은나라 때의 점사(占辭)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때는 주로 거북껍데기와 짐승뼈를 가지고 점을 쳤다. 시초점은 신령한 풀이라는 시초의 줄기로 만든 점대를 가지고 길흉(吉凶)을 점치는 것이다. 주역은 이 시초로 만든 점대 50개비를 가지고 점을 쳐서 어떤 괘, 어떤 효가 나오면, 그 괘의 괘사나 효사·단사 등을 보고 길흉을 판단한다. 그렇게 점을 치는 방법과 의식을 주자(朱子)는 서의(筮儀)라고 하였다.

중국 고대에 제사나 전쟁은 매우 중대한 일이다. 그밖에도 성 쌓는 일이나 국가적인 재해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일들이 있을 때는 점을 쳐서 그 일의 길흉을 판단하였다. 그리고 그 일을 마친 뒤에 복인(卜人) 또는 사관(史官)이 점친 일의 내용과 그 결과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서사(筮辭) 또는 복사(卜辭)라고 했다. 그러한 기록 가운데 자주 맞았거나 기이하게 맞은 것을 골라서 64괘의 괘와 효 아래에 써 붙여놓았는데, 이것이 ‘역경’의 괘·효사가 되었다.

‘역경’을 편찬한 사람은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삼았을 뿐 아니라 자연계와 인류사회의 일체 사물·사건들을 관찰하여 터득한 지식과 지혜, 그리고 이론을 활용하여 괘사와 효사를 만들었다. 그들 괘사와 효사는 비유를 한 것도 있고, 역사적인 사실을 쓴 것도 있으며, 직접화법을 사용하여 자기의 사상을 서술한 것도 있다. 그 목적은 길흉의 조짐을 보여주고 시비의 표준을 제시하여 취사선택할 수 있는 길을 분명히 알려주려는 데 있었다.

 

2. 근래에 많은 사람들이 대산(大山) 김석진(金碩鎭) 선생의 주역강의를 들은 것 같다. 이 책은 그 강의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것으로, 주역입문, 주역 상·하경, 계사전 외, 부록 등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주역입문에서는 주역의 역사와 유래, 역에 관련된 기본용어, 하도(河圖)의 원리, 낙서(洛書)의 이치, 복희씨의 선천팔괘, 문왕의 후천팔괘 등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그중 주역 상경과 하경이 이 책의 몸통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서 대산 선생은 64괘에 관한 괘사와 효사 그리고 단전과 상전을 직해한 뒤 보충설명을 붙였다. 그리고 선생이 점쳤던 실례를 들어서 상세히 해설하기도 하였다.

건(乾)괘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기로 하자. 선생의 건괘 강의는 괘의와 본문 강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괘의에서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와 관련지어 건괘의 뜻을 설명하고, 또 건(乾)이라는 글자를 분해하여 설명하였다. 선생은 이를 ‘파자해(破字解)’라고 했는데, 사실 이러한 방식은 학자들이 별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본문 강의는 먼저 괘사를 풀이한 뒤 여섯 효를 차례로 설명하고 단전과 상전과 문언전을 구두어(口頭語)의 형식으로 밝힌 뒤에 총설을 달았다.

또한 선생은 괘·효사를 설명하면서 흥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일례로 건괘 문언전 구오(九五) 효사의 설명 부분에서, 선생의 은사인 야산(也山) 선생이 『금강경(金剛經)』의 대가로 알려진 신소천 선생을 많은 대중들 앞에서 논파(論破)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화들이 이 책을 읽는 흥미를 더해준다.

나는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치밀한 논리로 짜여진 전문서적보다 이러한 대중적인 책들은 우선 머리가 아프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역학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학문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책에는 걸러져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신화와 전설을 역사적인 사실처럼 간주한 것도 있고,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말한 것들도 있다. 복희씨·문왕·주공·공자와 관련지어 『주역』을 말한 부분과 하도·낙서에 관하여 말한 부분 같은 것이 그것인데, 그러한 설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논문이나 글들이 오늘날 많이 나와 있다.

선생의 주역관은 대체로 송나라의 정이천(程伊川)의 『역정전(易程傳)』과 주자의 『역본의(易本義)』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주역관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주역』의 원래 뜻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한·당(漢唐)시대 역학자들의 학설도 알아야 하고, 오늘날 역학자들의 연구성과도 참조해야 한다.

오늘날 『주역』 연구는 고고학·민속학·인류학 등의 연구와 문자학의 발달에 힘입어 획기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특히 갑골문자의 발견으로 중국 고대문자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바로잡히게 되었다. 그 한 예가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정(貞)자이다. ‘정’은 그동안 ‘바를 정(正)’자의 뜻으로 해석되어왔다. 그러나 갑골문자에 의하여 그것이 ‘점쳐 물음(貞問)’을 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3. 『아산의 주역강의』(上)은 총론과 상경과 부록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총론에서는 『주역』의 개념과 『주역』의 구성과 하도, 낙서, 복희씨 및 문왕의 팔괘 차서도(次序圖)와 방위도(方位圖) 등을 해설하고 주역의 기본이론을 소개하였다. 아산(亞山) 김병호(金炳浩) 선생에 따르면 『주역』은 태극의 원리를 설명한 책이고, 만물이 음과 양이 되는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사리의 철학서이자 우주학서요 대자연학의 책이다. 한데 이런 설명은 사실 오늘날 학자들로 하여금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법정에서는 법률적 용어를 사용해야 하듯이 철학의 영역에서는 철학적 개념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인데, 이 점 아쉬운 부분이라 하겠다.

아산 선생도 대산 선생과 마찬가지로 복희씨가 처음으로 팔괘를 그리고, 문왕이 괘사를 만들고, 주공(周公)이 효사를 만들고, 공자가 십익을 달아 『주역』을 집대성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책의 몸통인 상경(上經)에서, 건(乾)괘로부터 리(離)괘까지 30개의 괘를 강론하였다. 각각의 괘에 대한 강론 부분은 괘사와 단전과 상전과 효사의 대의를 논한 뒤에 원문을 풀이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중 원문을 총설(總說)과 각설(各說)로 나누어 해설하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 책도 『대산 주역강의』와 마찬가지로 『주역』에 관한 송유(宋儒)들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가운데 성리학(性理學)적 이론으로 『주역』을 해설하고자 하는 부분이 두드러져 보인다. 곤(坤)괘 육이(六二) 효사의 직방(直方)을 곤의 성정(性情)으로 본다거나 원형이정(元亨利貞)을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관련지어 논한 것이 그러한 사례이다. 이 책 역시 전문 학술서적이라기보다 대중용 강의록의 성격을 지니는 데서 기인하는 듯하다.

 

4. 『주역』은 동아시아 전통문화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내용을 지닌 지혜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역』의 내용이 한 사람의 저서에서 제대로 소개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주역』을 강론한 두 선생의 책은 많은 보완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점을 몇가지 들어보기로 하겠다.

비(比)괘 단(彖)전에 대하여 대산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편하지 못해서 바야흐로 온다는 것은 위와 아래가 서로 응함이요, 뒤에 하면 대장부라도 흉하다는 것은 그 도가 궁할 대로 궁해짐이라. (不寧方來 上下應也 後夫凶 其道窮也)

 

아산도 대산과 비슷하게 해석했다. 그러나 왕필과 공영달(孔穎達) 그리고 오늘날의 학자들은 달리 해석했다.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臺北: 藝文印書館 1965)의 『주역』에 수록되어 있는 왕필과 공영달의 주소에 따라 해석해보겠다.

 

편치 않은 나라가 오는 것은 위 아래가 호응하기 때문이요, 뒤에 이르면 흉하다는 것은 그의 도가 곤궁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왕필은 불녕방(不寧方)에서 ‘방’의 뜻을 ‘바야흐로’가 아니라 ‘나라 또는 지방’으로 보았고, 후부(後夫)의 ‘부’도 ‘대장부’가 아니라 어조사로 보았다. 오늘날의 고형(高亨)도 이들의 견해와 같이하여 해석했다(『周易大傳今注』, 中國 齊魯書社 1979, 127면 참조).

역시 비괘 구오(九五) 효사를 예로 들어보겠다.

 

구오(九五)는 현명하게 도움이니 왕이 삼구법(三驅法)을 씀에 앞의 새를 놓치며 읍사람이 경계하지 아니하니 길하도다. (九五: 顯比 王用三驅 失前禽 邑人不誡 吉)

 

역시 아산도 이와 유사하게 번역했지만, 왕필의 주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구오는 가까이 하는 도(道)를 뚜렷이 하니 왕이 세 방면에서 몰아들이는 예법을 사용함에 앞으로 오는 짐승을 놓아주며 자기 고을 사람들이 방비할 필요가 없게 하니 길하도다.

 

당시 삼구법의 사냥방법에 의하면 사냥감을 세 방면에서 몰아들이되 사냥의 주인공인 왕을 등지고 도망가는 짐승은 쏘지만 마주 오는 짐승은 놓아주었다고 한다. 당시 국왕의 사냥은 일종의 공개적인 군사훈련으로, 이 훈련을 통하여 국왕에게 등지고 가는 자는 쏘아 죽인다는 사실을 국내외에 뚜렷이 보여준다.

다시 태(泰)괘 구이(九二) 효사의 경우를 보기로 하자. 『대산 주역강의』와 『아산의 주역강의』의 해석을 차례로 보면 다음과 같다.

 

구이(九二)는 거친 것을 싸며 하수(河水)를 맨발로 건너는 것을 쓰며 먼 것을 버리지 아니하며 붕당을 없애면 중도를 행함에 합함을 얻으리라. (九二: 包荒 用馮河 不遐遺 朋亡 得尙于中行)

 

구이는 거친 것을 포용하며 걸어서 강을 건너듯 쓰며 먼 것을 버리지 아니하며 ‘사정(私情)에 흐르지 않고’ 붕당을 없애면 중용지도를 행함에 떳떳함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을 가지고는 의미를 선뜻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득상우중행(得尙于中行)’의 ‘상’자의 해석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역시 왕필의 주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구이는 더러운 것을 포용할 수 있으며, 맨발로 황하를 건너는 사람(어리석은 사람)을 쓸 수 있으며, 사람을 멀리 버리지 않는다. 붕당이 없으면 가운데 있으면서 구이가 할 바를 행하여 배필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왕필은 ‘상’자를 ‘배필’의 뜻으로 해석했다. 지난날 전제군주시대에 천자의 딸을 아내로 맞는 사람을 상주(尙主)라고 했다. 점을 쳐서 이 효가 나오면 상주가 될 조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더러운 것을 포용할 수 있고, 모자란 사람을 쓸 수 있으며, 사람을 멀리하거나 버리지 않으며, 붕당을 만들지 않고, 가운데 있으면서 신하의 정도(正道)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천자의 부마로서 적합한 것이다.

해석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의미가 좀더 명확해져야 할 부분도 적잖이 눈에 띈다. 한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건괘 단전의 ‘각정성명(各正性命)’의 ‘성명’을 아산은 ‘천부지성(天賦之性)’이라 했고, 대산도 성품과 명이라고만 했다. 그러나 공영달에 의하면 성(性)은 강유(剛柔)·지속(遲速)과 같은 성품이고, 명(命)은 궁통(窮通)·수요(壽夭)·귀천(貴賤)과 같은 사람의 운명을 뜻한다. 역시 건괘 단전의 ‘자시(資始)’와 곤괘 단의 ‘자생(資生)’의 경우를 보자. 이에 대하여 대산은 ‘바탕하여 비롯하다’와 ‘바탕하여 생하다’로 풀이했다. 그러나 공영달의 설명이 더 분명하다. 그는 말하기를 ‘처음에 그 기(氣)를 품수받은 것을 시(始)라 하고 형체를 이루는 것을 생(生)이라 한다’(『十三經注疏』, 18면 참조)고 했다. 이에 따르면 ‘자시’는 사람이나 사물이 하늘의 덕인 건도(乾道)에 의하여 기를 받는 것이요, ‘자생’은 땅의 덕인 곤도(坤道)에 의하여 몸을 형성해가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주역』을 제대로 알려면 오늘날 학자들의 연구성과도 참조해야 한다. 예를 들면 건괘와 곤괘의 용구(用九)와 용륙(用六) 같은 경우이다. 1973년 마왕퇴한묘(馬王堆漢墓)에서 발굴한 백서주역(帛書周易)에서는 용구·용륙을 형구(逈九)·형륙(逈六)으로 썼다. 형(逈)은 ‘멀다’는 뜻보다 ‘통하다’의 뜻으로 해석한다. 통구(通九)·통륙(通六)은 양효 아홉과 음효 여섯이 모두 변한다는 뜻이다. 시초점을 쳐서 양효가 모두 변하거나 음효가 모두 변하면 통구와 통륙으로 그 길흉을 판단한다.

대산 선생은 주역점을 쳤던 사례를 여러 곳에서 언급하였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점을 쳤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혹 주자의 서의에 따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자의 서의에서도 문제점이 있다는 설이 제기되었다. 주자의 서의로써는 『좌전(左傳)』에 보이는 점사들을 해석하기 어렵고, 또 효사보다 단사에 의해 판단한 경우도 많다.

총괄하여 말하자면, 대산과 아산 두 분의 주역강의는 송유(宋儒)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주역의 본뜻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어떤 하나의 시각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유학이 진부하다거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은 유학이 송유의 견해에서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