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문화평

 

한국영화의 부흥, 그 빛과 그늘

1999년의 한국영화와 2000년의 한국영화

 

김영진 金泳辰

영화평론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한 장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한 장면

1999년 7월 23일 새벽 0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첫 기술시사가 열린 씨네플러스극장의 객석에는 긴장이 흘렀다. 초읽기에 몰린 채 후반작업을 마무리한 필름 프린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이명세 감독을 비롯해 제작자와 기술 스탭들은 초조하게 상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기술시사가 끝나고 영상과 싸운드가 조금 어긋나는 결함이 발견됐다. 스탭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그러나 이날의 불안감은 기술시사에서 확인된 미흡한 음향효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대중의 호응을 받을 만한 박중훈의 코미디영화처럼 보였지만 「첫사랑」 「지독한 사랑」 등의 영화에서 이미 보여준 이명세 특유의 판타지 영화의 기운이 물씬 났다. 앞선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한 후로 어느새 대중은 이명세라는 이름을 뇌리에서 지워가고 있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이명세의 개성이 크게 돋보이는 영화라는 것은 곧 그 영화의 불투명한 흥행을 뜻하는 것이었다. 사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박중훈식 코미디와 이명세식 판타지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았다. 그러나 개봉을 앞둔 싯점에서 누구도 그 균형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다음주 개봉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이명세 영화의 성숙을 칭찬한 언론의 호평과 오랜만에 박중훈의 코미디를 극장에서 보고 싶어한 대중의 바람이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켜 서울 관객 70만명이 넘는 흥행기록을 세웠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성공은 여러모로 99년 한국영화계의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하마터면 재기불능 상태에 빠질 뻔한 이명세 감독 개인이 앞으로도 영화감독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전화위복의 기회였을 뿐 아니라, 99년 한국영화계가 시장점유율 40%라는 초유의 기록을 세우며 언론이 99년을 한국영화의 중흥기로 기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한국영화는 「쉬리」의 기록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다. 한 해 동안 한국영화를 볼 수 있는 관객의 수가 한정돼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한 비관론자들은 「쉬리」의 성공으로 99년 한국영화 잠재관객의 동원은 더이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극언까지 내놓았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흥행을 전후한 분위기에는 극적인 맥락이 숨어 있다. 이 영화의 실질적인 배급을 맡은 씨네마써비스의 강우석 감독은 그 흥행 여부를 놓고 노심초사했다. 5월에 개봉한 박광수의 「이재수의 난」이 흥행 재난을 맞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비슷한 재난을 맞는다면 한국영화 배급의 메이저를 자임했던 씨네마써비스는 큰 타격을 입을지도 몰랐다. 영화 한 편의 흥행 여부에 따라 위기를 맞을 수도 기사회생할 수도 있는 불안정한 상황이 곧 여전히 위기의 상황에서 기회를 맞고 있는 한국영화의 상황이다. 이미 대기업 자본은 영화계에서 철수했고 창업투자회사의 자본을 축으로 한 금융자본도 본질적으로 항구적인 자본이 아니다. 영화산업 내에 축적된 자본은 이제부터 축적해야 할 자본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한국영화는 어느 때보다 민감하게 대중의 취향을 읽어내고 때로는 끌어낸다. 「쉬리」 「유령」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주유소 습격사건」 「텔미썸딩」 「해피엔드」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그리고 해를 넘겨 개봉한 「박하사탕」과 「거짓말」에 이르기까지 계속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두고 있다.

90년대가 영화의 시대였다고 하지만 한국영화의 시대는 아니었다. 한국영화는 몇년 전부터 비로소 대중문화의 중심부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주도한 것은 중견감독들이 아니다. 기사회생한 이명세, 그리고 올해 초부터 화제로 떠오른 「거짓말」의 장선우와 「춘향뎐」의 임권택 감독이 있지만, 이들을 뺀 중견감독들은 예전만큼 한국영화계에 자장을 일으킬 박력이 없다. 「이재수의 난」을 통해 50년대 세대의 이상주의를 예술적 야심으로 돌파하려 한 박광수의 야심은 기대한 만큼 미학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장선우는 「거짓말」로 여전히 한국사회를 도발할 능력이 있는 감독임을 검증했으나, 「거짓말」이 작품으로서 어떤 위치에 놓일 수 있을 것인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한국영화의 전통은 신인감독들의 영화로 새로운 틀을 짜고 있다. 여기에는 바람직한 징후도, 부정적인 징후도 골고루 다 들어 있다. 서울에서 1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김상진의 「주유소 습격사건」은 부정적인 징후의 대표적인 예로 꼽을 만하다. 주유소의 한정된 공간을 중심으로 아무 생각 없이 주유소를 턴 젊은이들의 하룻밤 행각을 담은 이 영화는 돈과 권력으로 위계화된 한국사회를 야유하고 풍자한다. 사람과 사람이 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예의도, 친밀감을 이루는 데 필요한 사회적 합의도 전혀 없는, 끔찍하리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우가 없는 한국사회를 이 영화는 막무가내식의 행동이 몸에 밴 젊은이들의 주유소 습격을 통해 폭로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젊은이들이 어른들의 권력을 빼앗고 대신 그 자리에 들어선다는 이야기로 통쾌감을 주는 대신, 씁쓸한 여운이 남는 뻔뻔한 자기기만으로 이야기를 덧칠해놓았다. 권력탈취의 우화에 관한 이 상징적인 이야기는 권력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상관없이 서로 빼앗기만 한다면 된다는 식인 우리 사회의 정치현실과 섬뜩하리만큼 닮았다.

대중영화에 비평이 개입해야 한다는 전제 앞에서 강제규의 「쉬리」와 장윤현의 「텔미썸딩」은 곤혹스러운 영화이다. 「쉬리」는 로맨스영화와 첩보액션영화의 틀을 합친 이야기로 북한에 대한 관제화된 이미지를 탈색시킨 매력적인 대중영화이자 유사 할리우드 영화전략으로 한국영화를 몰고갈 지표의 성격도 띠기 때문이다. 「쉬리」는 「타이타닉」을 이긴 한국의 로컬영화이자 할리우드가 주도하는 표현의 전지구화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영화이기도 한 것이다. 「텔미썸딩」은 억눌린 여성의 쎅슈얼리티를 공포스릴러의 틀에 녹인 흥미로운 영화일 수도 있었으나, 장르의 근본전제인 이야기의 약속을 난폭하게 어김으로써 어리둥절한 반응을 낳았다. 목이 잘린 피의자 아버지의 시체 앞에서 울부짖으며 쓰러지는 주인공 한석규의 이미지와 빠리행 비행기를 탄 여주인공 심은하의 우아한 모습을 병치시킨 이 영화의 결말은 억눌린 여성의 복수극으로 더이상 공격적일 수 없을 만큼 파격이지만, 결국 한석규·심은하라는 강력한 스타씨스템과 비밀주의로 화제를 끈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텔미썸딩」을 둘러싼 이상 열기에는 거품의 혐의가 짙다.

90년대 중반 이후로 한국영화는 비로소 장르와 스타를 대중의 취향과 연결짓는 기획영화·대중영화의 꼴을 잡아가고 있다. 새로운 세기의 첫 해인 2000년에도 어느 때보다 다양한 2,30대 감독들의 영화가 포진하고 있다. 김지운의 「반칙왕」, 장진의 「킬러들의 세계」, 봉준호의 「플란더스의 개」 등의 영화가 젊은 대중영화의 꼴을 가늠하게 할 것이고, 홍상수의 「오! 수정」과 변혁의 「인터뷰」가 새로운 영화의 꼴을 보여줄 것이다. 젊은 제작자와 신인감독 들이 주도하는 이런 움직임은 한국영화가 대중문화산업의 복판에 설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춰가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또한 드물기는 하지만 주류 상업영화의 틈새에서 자기만의 영토를 만들어가는 이창동·홍상수·김기덕 등의 영화가 생존할 틈새도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주도하는 가공할 매체환경의 변화와 아울러 게임과 만화로 확산되는 젊은 층의 기호는 몇년 안에 영화를 대중문화의 자리에서 밀어낼지도 모른다. 한국영화는 대중의 취향을 앞서 간취해야 한다는 장르의 다변화와 혁신을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요구받고 있다. 한국영화가 대중문화의 총아로 자리잡기 위한 본격적인 위기와 기회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