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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오늘의 한국, 변모하는 사회운동
인권운동, 그 위기와 기회
김형태 金亨泰
변호사.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장.
1. 혼돈의 시대
인권이 ‘운동’ 차원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지난 10년 사이의 일이다. 1789년 프랑스인권선언은 이미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지 아니하고 권력의 분립이 규정되지 아니한 사회는 헌법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국가란 국민의 기본적 인권보장을 위해 존재한다는 로크(J. Locke)와 루쏘(J.J. Rousseau)의 생각을 기초로 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의 국가에서는 국가 부문과 별도로 사회나 개인이 인권보장을 목적으로 운동을 벌일 필요가 없다.
우리의 경우도 헌법상으로는 국가의 목적이 국민의 인권보장에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1948년 정부수립 이래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국가야말로 인권침해의 장본인이었으니, 이 시기 우리 사회에서 인권운동이란 곧 독재정권에 대한 민주화운동을 뜻했다. 그후 1987년 6월 민주화투쟁, 노동자대투쟁을 전후한 10년 동안 인권운동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변혁운동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고 93년과 98년 이른바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변혁운동이 퇴조하고 시민운동이 급성장함에 따라 인권운동은 시민운동의 일환으로 그 성격이 바뀌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참여연대·환경연합 등 시민단체가 각광을 받고 시민운동은 제5의 권력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총선시민연대의 기자회견이 TV에 생중계되는 상황이니 2000년대는 가히 시민운동의 시대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처럼 시민운동이 급성장한 데 반해, 그 일부문인 인권운동은 ‘혼돈의 시대’를 맞고 있다. 총선시민연대가 한창 주목을 받던 지난 3월 우리 사회의 대표적 인권운동단체로 손꼽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내에서는 「민변의 위기, 그 원인과 대책」이라는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사회의 변화를 선도하기는커녕 뒤쫓아가지도 못하고, 사회적 관심은 점점 줄어들며, 회원수는 폭증하는데 활동회원은 감소하고, 무엇보다도 시국사건 변론이 줄어들면서 자기정체성조차 상실해간다는 것이 요지였다.
방현석의 소설 「겨울 미포만」(『창작과비평』 1997년 가을호)은 현재 인권운동이 맞고 있는 위기의 또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왜 우리만 이 짓을 하고 싸워야 하죠? 2만 2천명 중에 2만 1750명이 가만히 팔짱끼고 앉았는데.(…)자기만 잘살겠다고, 성과급 타서 아반떼에서 쏘나타로 바꾸겠다고 설치는데 우린 뭐죠?”(90면) 10년 전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가는 투쟁을 벌인 현대중공업노조는 지난 97년 1월 노동법·안기부법 개악에 반대하는 전국적 파업에 2만 2천명 조합원 중 겨우 250명만이 참여했던 것이다. 그리고 방현석은 변혁이니 공동선이니 하는 목표를 내던지고 개인의 이익에 매몰되어가는 노조원들의 행태에 대해 개인주의적 방식으로 대처한 ‘최이현’을 비판하며 “박을 때 다 같이 박는 집단주의, 그것 없이 무엇으로 우리가 사람 구실 한번 해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어?”(102〜103면)라고 물음으로써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감옥에 장기수가 없고 공안수사기관에서 행해지던 고문이 현저히 줄었으며 변론해줄 시국사건이 없어져간다 해서 정체성의 위기마저 겪는 민변이나, 오로지 개인의 경제적 이익에 매몰되어가는 노조 모두 인권운동의 혼돈시대를 보여주는 징표들이다.
과연 인권운동이 방향성을 잃고 혼돈에 빠져 있어도 좋을 만큼 우리의 인권 현실은 개선된 것인가. 인권운동의 상황은 어떠하며 그 문제점은 무엇인가. 전망과 대안은 있는가.
2. 민주화의 진전과 인권 현실
생명권, 신체의 자유,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등은 UN이 분류한 자유권에 속하고, 노동의 권리, 노동단체권,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건강, 교육권 등은 사회권의 영역이다.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최소한의 형식적 합법성을 얻은 노태우정권이나 민간 출신의 김영삼정권을 거치면서 과거의 폭압적 국가권력 행사방식이 점차 개선되어 예전에 비해 자유권이 신장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다음 들어선 ‘국민의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양대 목표로 내세웠다. 인권은 민주주의의 핵심과제이므로 양심수가 석방되고 고문이나 용공조작사건이 점차 줄어들어 자유권의 영역에서는 분명한 진전이 있었다.
그런데 김대중정권이 내세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근본에서부터 양립 불가능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자원의 최적 배분이라는 효율성을 유일한 목표로 하는 시장은 근본적으로 복지와는 상충한다. 김영삼정권에서 시작된 세계화 주장은 월러스틴(I. Wallerstein)이 말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로의 편입을 더 확실히 하자는 말에 다름아니고, 김대중정권 역시 IMF체제의 극복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더욱 거세게 추진했다. 수량적 유연성, 기능적 유연성, 임금의 유연성을 구체적 내용으로 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결국 해고제한 규정을 완화한 정리해고제 법제화로 이어졌다. 사회안전망이 전혀 확보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일종의 사회보장 구실을 하던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기본생존권 자체가 위협받게 되었다.
구제금융 한파와 맞물린 정리해고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1998년 7월 현재 실업자가 165만명에 이르고, 실업률은 7.6%에 달했다. 노동조합의 조직율 역시 95년 13.8%에서 97년 12.2%로 낮아지고, 조합원수도 148만 4194명으로 계속 줄어들어, 사회권의 핵심이라 할 노동권이 후퇴했다.1 최근 들어 정부는 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함으로써 이제까지 빈민의 최저생활에 대한 보장을 일종의 시혜로 여기던 태도에서 벗어나, 국가에 대한 권리 개념을 도입했다. 또 ‘생산적 복지’ 개념을 도입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보완하려 하지만, 자본자유화에 따른 국제금융자본의 대규모 이동, 기간산업의 해외매각 등으로 전체적으로는 사회권보장에 적신호가 켜져 있는 상태다.
금년 6월 남북정상회담 개최라는 새로운 변수가 생기기는 했지만 2000년대까지 분단체제가 지속됨으로써 냉전논리를 기반으로 한 국가보안법의 시대는 끝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국가보안법을 남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나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영남위원회사건을 비롯해 이른바 조직사건이 끊이지 않음으로써, 99년 한 해 동안의 국가보안법 구속자만 해도 374명에 달한다.2 국가보안법은 단순한 반인권적 해악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 전반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을 막고 있다는 점에서 그 역기능이 매우 심각하다.
사회 전반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 문제에는 괄목할 만한 진전이 없었다. 여성특별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되고 1997년 가정폭력방지특례법 제정, 가족법상 동성동본불혼 조항의 삭제, 남녀차별금지법 제정 등 성차별을 없애는 제도들이 도입되었으나 아직도 제도로만 존재하고, 실제 현실에서는 성차별 문제가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사회의 주요 부문에서 일하는 여성의 수는 극히 미미하며,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 공천에서 의석 30%를 여성에게 할당하기로 한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99년말 현재 20만 6천명에 달하는 외국인노동자, 장애인,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도 여전하다.3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영화 「거짓말」에 대한 수사에서 보이듯이, 국가의 권위주의적 태도 역시 국가보안법과 더불어 새로운 천년을 맞는 우리 사회의 상상력을 틀어막는 주요 기제로 남아 있다. 국가가 개인들의 판단과 사고 영역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상황은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또 2000년 2월 현재 6만 4천명에 이르는 교도소 재소자들의 인권 역시 권위주의적 억압과 통제 때문에 인권의 마지막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4
3. 변혁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인권운동이 지난 10년 사이에 보인 가장 큰 변화는 변혁운동의 전망을 포기하고 시민운동으로 전환한 것이다. 1988년 5월 창립된 민변의 준비모임 과정에서 사실상 민변의 전신이었던 청년변호사회의 이름으로 제안된 모임의 목적은 “외세의 압박과 독재정권의 억압, 국토의 분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민주세력의 활동을 지지하고 민주적 변호사활동을 통하여 법제도 및 법조계의 개혁을 도모함으로써 한국사회의 민주적 변화를 위하여 기여”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내부쎄미나를 통해 “한국사회의 변혁운동에 있어서 법조부문이 담당하여야 할 고유한 활동영역을 선정”하였고 “법조운동은 그 한계가 명확하며 최선의 경우에도 변혁의 주된 세력은 될 수 없으며 보조적 역량으로 민중운동의 성장·발전에 기여”한다고 주장하는 등 민변의 대다수 구성원은 인권운동이 변혁운동의 일부분임을 명확히하였다.5
이처럼 80년대 변혁운동의 일부문으로서의 인권운동은 그 성격상 신체의 자유, 구속 같은 자유권 부문을 다룰 때도 천부인권이라는 측면을 강조하기보다는 체제변혁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이나 사상의 자유라는 측면에 촛점을 맞추었고, 사회권 부문에서도 임금·근로조건 같은 개별적 근로관계보다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같은 집단적 근로관계를 둘러싼 집단적 권리에 투쟁의 무게중심을 두었다. 또 노동운동과 함께 기층 민중운동인 농민·빈민운동 역시 활발히 벌어졌다. 당시의 인권운동이 변혁운동적 관점, 즉 민족민주운동의 차원에서 이루어졌음은 대한변호사협회의 1987〜88년 인권보고서에서 “노동자·농민·빈민을 비롯한 절대다수 국민의 생존권과 기타 제반 인권상황은 거의 향상되지 않고 있으며, 당국의 다양한 대(對)북한 평화공세에도 불구하고 분단체제의 극복과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민주운동에 대한 탄압은 여전하다”6고 한 데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민주화투쟁을 위해 결집했던 세력들 사이에 계급분화가 진전되면서 87년 노동자대투쟁에 불안을 느낀 중간계층은 노동세력과 결별하고 김영삼·김대중정권의 보수적 개량화정책에 동화되었다. 이에 따라 변혁운동적 관점은 쇠퇴하고 시민운동이 대두했다.
현단계의 시민운동 뒤에는 시민 또는 시민사회와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길고도 드라마틱한 사상사적 변천이 자리한다. 로크는, 시민 개개인은 자유와 생명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화폐 등을 통하여 재산을 축적할 수 있게 되면서 이 권리들을 보장받기 위하여 사회계약을 통하여 국가를 형성했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시민은 국가의 존재기반이고 정당성의 근원이다. 루쏘는 인민의 직접 민주정치를 강조함으로써 지배와 피지배의 일치, 다시 말해 시민이 곧 국가라는 등식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헤겔(G.W.F. Hegel)은, 시민사회란 인간의 본능과 특수한 욕구에 근거하는 갈등의 장이고, 국가는 이러한 개별적 자기목적 달성의 수단에 불과한 시민사회를 도덕적 보편성으로 통일하는 데 존재의 목적이 있다고 보았다. 헤겔에 따르면, 개인적 이해의 장에 불과한 시민사회는 도덕적 우위에 있는 국가에 동화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니, 시민사회가 국가와 대립된 존재로서 국가에 대하여 무엇을 요구할 처지에 있지 못하다.
한편 맑스(K. Marx)는 로크식의 시민사회론에 대해, 봉건체제로부터 얻은 정치적 해방이란 이기적 개인들, 기업조직과 같은 결사체들, 그리고 길드의 특권화와 지배세력화를 가능케 하는 자유를 허용했을 뿐이며, 시민사회를 이기주의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의 영역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국가 역시 이러한 유산시민계급의 이해를 관철하는 도구에 불과하므로 시민사회와 국가는 공히 소멸되어야 할 존재들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회주의에 의해 대체되어야 할 서구 자본주의체제는 계속 유지되었으며, 계급과 함께 소멸해야 할 사회주의국가 역시 국가사회주의로 더욱 공고해져갔다. 그람시(A. Gramsci)는 여기에 주목했다. 그는 군대·경찰 같은 강제력에만 의지하는 국가 부문 이외에도 도덕적 지도력, 즉 헤게모니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시민사회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에게 있어 시민사회는 헤게모니에 의한 자발적 동의를 바탕으로, 국가를 존재케 하는 윤리적 기반의 구실을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하버마스(J. Habermas)는 토대인 경제와 그 위에 존재하는 국가 이외에 ‘생활세계’(Lebens Welt)라는 개념을 추가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한 인간이 생산관계 내에서는 노동자로서 관련을 맺고 변혁운동의 주체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소비의 영역인 생활세계에서는 가장으로 종교인으로 시민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이러한 그람시·하버마스의 이론을 토대로 할 때 비로소 국가와 별개의 시민사회가 존재가능하게 되며, 이는 서구의 신사회운동을 설명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시민사회론은 우리나라에서도 89년 경실련, 93년 환경연합(당시 환경운동연합), 94년 참여연대의 결성을 설명해주는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 시민사회 내의 중간계급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시민운동단체들은 과거 노동자·농민·빈민 등 기층민중 중심의 변혁운동단체들이 지녔던 계급적·체제변혁적 지향을 버리고, 부정부패 추방과 경제정의 실현, 환경보존, ‘작은 권리 찾기’같이 구체적·점진적인 방식으로 제도와 의식의 개선을 추구하였다. 그 방법에서도 시위보다는 언론을 통한 캠페인·강연·시민홍보 같은 합법적·평화적 방법을 택하였다.
시민운동은 하버마스의 ‘생활세계’ 개념에서 보이듯이 정치경제학적 ‘토대’의 영역과는 다른 생활세계의 문제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생활세계의 영역별로 주제가 다양하게 분화된다. 예전의 변혁운동이 그 주체를 중심으로 노동자·농민·빈민운동 하는 식으로 나뉘었다면, 시민운동은 경제개혁, 부정부패 추방, 소비자, 환경, 여성, 교육, 교통, 보건의료, 문화, 언론개혁 등 생활영역별로 분화된다. 이에 따라 인간 만사에 빠지지 않고 관계되어 있는 ‘인권’ 역시 각 생활영역별로 나뉘어 다루어진다.
이처럼 여러 부문의 시민운동에 역할을 나누어주고 나서 인권운동 부문의 고유한 몫으로 남게 된 것은 불심검문 반대, 공권력 남용의 감시, 재소자문제, 사상의 자유 등 자유권을 중심으로 한 것들뿐이다.
2000년 현재 진보네트워크라는 인터넷 홈페이지(www.jinbo.net)에 등록되어 있는 인권운동단체는 80년대에 설립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회의(민가협), 민변, 천주교인권위원회, 그리고 90년대에 설립된 불교인권위원회,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한미군 범죄 근절을 위한 운동본부,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운동사랑방, 동성애인권단체협의회를 비롯하여 약 83개에 달한다.
이러한 인권운동의 부문별 분화현상으로 민변 같은 단체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민변은 인권부문별로 노동위원회·언론위원회·경제정의위원회·환경위원회·사회복지위원회 등이 설치되어 있으나, 각 부문별 전문 시민운동단체들이 생기면서 일부에서는 통합적 인권운동단체로서의 위상을 포기하고 공익소송활동을 주된 임무로 하는 일종의 공익소송쎈터로 개편하자는 논의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인권운동의 전문분야별 분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종전에는 소외되고 미처 관심이 미치지 못하던 분야에까지 관련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인권운동이 확산되었다. 생명권을 둘러싼 사형폐지운동협의회나, 낙태, 미혼모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낙태반대운동연합, 자신의 정체성과 성 경향의 정당성을 인식시키고 밝고 건전한 동성애문화를 창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동성애자 모임인 ‘친구사이’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수년 전만 해도 산업재해보험의 적용조차 받지 못하며 임금체불·인격모독 등으로 극심한 소외상태에 있던 외국인노동자의 인권을 다루기 위해 외국노동자대책협의회, 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 중국동포의 집, 안산 외국인노동자쎈터 등 많은 단체들이 생겼으며, ‘좋은 벗’이란 단체는 북한의 식량난과 탈북자·난민 문제로까지 인권운동의 영역을 넓혔다. 과거 변혁운동적 인권운동에서는 기대하기 힘들었던 이런 영역으로 관심이 확대된 것은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조에도 힘입은 바가 크다.
인권운동의 부문별 분화로 인해 역으로 연대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참정권 행사의 일환으로 조직된 총선시민연대가 975개 단체의 힘을 모아 낙천·낙선운동 등 정치권개혁을 시작한 것은 좋은 예다. 민변·민가협·천주교인권위원회·인권운동사랑방 등 10개 단체는 인권단체협의회를 결성해 인권문제에 공동 대처하고 있으며, 99년에는 국가보안법의 개정 및 폐지를 위해 민가협·인권운동사랑방·민변 등이 모여 ‘국가보안법반대 국민연대’를 결성했고, 천주교 내 33개 단체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를 만들었다. 한편 국가기관의 인권침해를 감시, 조사하고 인권교육 및 인권정책 입안 등의 역할을 하게 될 국가인권위원회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민변·민주주의법학연구회 등은 국가인권기구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과 실질적 활동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하여 법무부·국회 등과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7
인권운동은 국제무대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992년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인 B규약(A규약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에 따라 정부가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최초 보고서에 대하여 민변과 ‘한국기독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는 반박보고서를 제출했고, 인권이사회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했다. 1993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회의에 참석한 한국의 인권단체들은 아시아 국가들에 공통된 국가보안법에 의한 인권침해와 정신대 문제를 국제사회에 제기하였다. 또한 B규약 선택의정서에 따라 박태훈·김근태·손종규 등 개인들이 제기한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서 인권이사회는 국가보안법 제7조, 노동쟁의조정법상의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을 폐지하고, 그 법에 따라 처벌받은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고 정부에 권고하였다.8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ILO(국제노동기구) 등 노동관련 국제기구에 대표를 파견하고 외국 노동단체들과의 연대를 확대하고 있다. 동티모르의 독립과 인권을 위한 동티모르연대, 티베트인권독립회의 등 외국의 인권운동을 지원하는 모임도 생겨났다.
4. 장기적 전망의 부재와 시민 없는 시민운동
현재의 인권운동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거대담론의 상실에 따른 장기적 전망의 부재이다. 변혁운동적 관점과의 결별에 따라 인권운동은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사회변동의 역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생활세계에서 벌어지는 인권문제에 대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데 그치고 있다.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노동자의 대량해고라는 구체적인 인권문제의 근원은 실상, 월러스틴이 말했듯이 세계제국(world-empire)을 무대로 활동하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압박에 있다. 이런 거시적 관점을 상실한 결과 부문 인권운동은 점차 이익집단화 경향을 띠어가고 있다. 축협노조가 농협과의 통합에 반대하거나, 의료보험 통합을 둘러싸고 직장의료보험노조가 반대운동을 벌이는 것 그리고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이 ‘성과급 받아 아반떼를 쏘나타로 바꾸려는’ 목적에서 노동법개악 저지 총파업에 불참하는 것 등이 그 예다. 사회변혁의 보조역량을 자임하던 민변이 한낱 공익소송쎈터로 전락하려는 모습 또한 거대담론을 잃어버린 당연한 결과이다.
인권이란 인간의 권리를 뜻하는데, 권리라는 개념 자체는 본래부터 이기적 속성을 띠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인 사회변동의 안목에서 사회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사회 전체의 공동목표는 무엇이고 타파되어야 할 구조악은 무엇인지 등을 살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인권운동은 이익집단화하기 십상인 것이다.
두번째는 유기적·통일적 대응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거시적·체계적 관점을 잃은 결과 생활영역별로 마치 백화점처럼 인권문제들을 나열해놓다보니 자유권·사회권에 대한 종합적 대응이 어렵다.
당초 유엔에서는 사회권을 다룬 A규약과 자유권을 다룬 B규약을 하나의 규약에 담기로 하였다. 인권은 몇가지 범주로 명확히 나누거나 가치의 서열을 매길 수 없으며, 사회권 없는 자유권의 완전 보장은 어렵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근거에서였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사회권이 현실적 이행의 강제가 보장되기 어려운 하나의 강령적 성격을 띤다며 두 범주의 권리를 따로 나누어 규약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상의 자유,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같은 자유권의 보장 없이 노동권이 제대로 보장될 수 없음은 많은 노동자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체포되는 현실을 통해 익히 검증되었다. 한편 노동권이나 적정한 생활수준을 보장받을 권리가 전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자유권이란 굶어죽을 자유에 불과하다. 인권부문 전체를 동시에 확보하려는 노력을 통해서만 개별 인권부문도 확실히 보장된다. 따라서 인권항목의 나열을 통한 백화점식 인권운동은 심각한 문제점을 지닐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백화점식 인권운동 양상은 인권운동 부문 사이에 ‘인기 인권아이템’을 선점하려는 경쟁현상까지 초래하고 있다. 인기 인권종목을 다 빼앗기면 민변의 여러 위원회처럼 할 일이 없어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기도 하고, 반대로 아무리 중요해도 인기없는 인권종목은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하기도 한다.
세번째는 현 인권운동이 시민운동의 성격을 띰에도 불구하고 인권운동의 주체를 살펴보면 시민이 없다는 것이다. 본래 시민운동이란 시민들이 구성원이어야 하며, 그래야 그 ‘생활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그들 자신의 직접 경험을 통해 해결해나갈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인권운동단체를 보면 7,80년대 민주화운동과정에서 배출된 소수의 지식인 활동가에 의해 단체가 꾸려져가고 있다. 싸이버 NGO네트워크연합(www.ngo.or.kr) 자료실의 분석에 따르면, 인권운동단체들은 50여명으로 추산되는 전문활동가들의 생계유지와 재정자립에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총선시민연대도 시민회원들의 참여 없이 몇몇 대표자·실무자들이 언론홍보 중심의 활동을 벌임에 따라, 머리만 있고 손발이 없는 운동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5. 인권 개념의 재검토와 대안의 모색
인권 개념은 서구 시민혁명과 더불어 자유권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자본주의 발전단계에 맞추어 사회권으로 그 범위를 넓혀갔다. 이러한 인권 개념은 본질적으로 스피노자(B. Spinoza)가 말하는 ‘인간의 자기보존 노력(Conatus)’을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표현해내는 하나의 미사여구이다. 따라서 개인의 자기보존의 권리가 우선하며, 다만 예외적으로 이것이 사회와 충돌할 때 그 한계가 있다고 본다. 프랑스인권선언 제4조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유란 타인을 해하지 않는 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각자의 자연권 행사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에게 같은 권리의 향유를 보장하는 것 이외에는 한계를 가지지 않는다.”
이러한 개인주의 자연권사상은 결국 사회주의적 집단주의의 도전을 받게 되었고, 개인뿐 아니라 집단에도 권리 개념이 인정되기에 이른다. 노동 3권 등이 그것이다. 또한 로크는 화폐라는 매개를 통해 축적이 가능해진 재산을 생명·자유와 더불어 기본적 자연권의 하나로 보았으나, 우리 헌법에 이르면 재산권은 더이상 인간에게 처음부터 주어진 권리가 아니라 사회가 인정한 하나의 제도에 불과할 뿐인 것이 된다.
권리 개념은 처음부터 동양적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서로 제 말이 옳다고 다투지 말게 하고(不尙賢 使民不爭), 얻기 어려운 것을 귀히 여기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도둑질하지 말게 하며(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욕심나는 것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마음이 심란해지지 않도록 하라(不見可欲 使心不亂)”(『노자』 제3장)는 노자의 생각에 이르면 이성이나 권리는 한낱 가소로운 억지요 인위에 불과하다. 현실을 중시하는 유교에서도 권리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에서도 서구 정치사상이 주장하는 권리는 그것의 도덕적 의미와 성격 때문에 책임이 된다.9
나아가 ‘인권’은 인간의 권리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라”(창세기 1장 28절)는 기독교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회주의·자본주의를 막론하고 인간 중심으로 환경을 변형하는 산업주의는 지구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인권이란 보편적 진리라기보다는 시간적으로는 16,17세기, 공간적으로는 서구, 정치·경제학적으로는 시민계급의 개인주의·자유주의 사상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출발한 도구적 개념이다.
이제 서구자본주의는 전세계적 규모에서 지배력을 확고히하면서 근대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영국의 집권 노동당에 ‘제3의 길’이라는 이념을 제시한 기든스(A. Giddens)는 근대성(modernity)의 표지로 자본주의, 산업주의, 군사적인 힘, 정보의 통제와 사회적 관리를 뜻하는 감시체제, 네 가지를 들었다. 이 근대를 탈출하려는 노력 가운데 저항적 흐름은 여성·환경운동 등으로 나타났고, 체제순응적 흐름은 대량소비·문화다원주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월러스틴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 역시 내재적 모순으로 종말을 맞을 것이라 진단한다. 그러나 대안체제가 어떤 것일까에 이르면 이미 과학을 넘어서 희망, 상상력이 가미될 수밖에 없다. 그는 “평등과 형평을 극대화하고 민주주의 영역을 확대하며 상상력을 해방시키는 새로운 역사적 사회주의”의 도래를 기대하고 있다.10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체제와 근대성의 확고한 지배 속에 있다. 동시에 권위주의·연고주의 같은 전근대도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이 생산해내는 각종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상황의 근원이 되고 있는 서구자본주의가 창안한 인권 개념이 아직도 유용한 도구이며 다른 대안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인권 개념은 그 시공간적·사상사적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면서도 현체제를 좀더 나은 사회로 바꾸려는 도구로서 계속해서 내용을 확대해나가고 풍부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성의 과잉이라 일컬어지는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으로 변혁운동의 관점도 쇠퇴하고 시민운동적 인권운동이 한창인 요즈음이지만 사회주의의 성쇠가 남긴 교훈은 인권운동의 전망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조희연(曺喜)은 80년대식 변혁운동이 지닌 한계로서 경직된 환원주의적 사고, 편협한 경제주의적 사고, 스딸린식 사회주의를 맑스주의의 핵심으로 간주하는 속류 맑스주의 등을 지적했다.11 우리가 공기처럼 의식도 못한 채 몸담고 살아가는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그 한계를 지적해내고 근본적 변혁을 주장하는 변혁운동론은 목표와 문제의식에 있어 여전히 유효하다. ‘작은 권리 찾기’ 식의 신변잡기적 운동12이 인권운동의 대중적 확산에 필요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변혁운동의 관점은 현 시민운동적 인권운동에서도 중심 화두가 되어야 한다.
또한 기왕 시작된 시민운동이라면 사회의 토대인 경제가 지닌 모순을 담지한 기층민중이기도 한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변혁운동적 관점과 시민운동적 관점을 조화시키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지금은 자본주의·사회주의·서양·동양·전근대·근대·탈근대가 동시에 용광로속에서 끓고 있는 위기의 시간이자 새로운 전망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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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재형 「노동자의 권리」, 『1998년 인권보고서』, 대한변호사협회 1999, 96면.↩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1999년 인권실태 보고서』, 3면.↩
- 인권운동사랑방 『인권하루소식』 2000년 4월 26일자.↩
- 자세한 내용은 천주교인권위원회·인권운동사랑방 『한국 감옥의 현실』, 도서출판 사람생각 1998 참조.↩
- 이상은 민변 준비를 위한 청년변호사회 내부쎄미나(1988. 4) 자료 「민중운동과 법조운동」 참조.↩
- 조용환 「1987〜1988 인권상황 개관」, 『인권보고서 제3집』, 대한변호사협회 1989, 10면.↩
- 법무부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자신들을 통제·감독하지 못하도록 그 위상을 국가기구가 아닌 특별법인으로 하려고 함으로써 국가인권기구공대위와의 협상이 결렬된 상태이다.↩
- 유엔 인권이사회의 권고에 실질적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한국정부는 아직도 그 권고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 서구에서는 권리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인해, 권리와 책임, 권리와 관계, 권리와 역할 간의 긴밀한 균형이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개인에게 중심을 두고 있는 인권 원리는 인류통합의 토대를 제공하지 못하고 집단간·계급간·국가간·종교간 갈등을 빚어내 ‘자아’만 살찌울 뿐이라고 한다(찬드라 무자파 「이슬람과 인권」, 『계간사상』 1996년 겨울호 90〜107면).↩
- 김호기 「현대성과 세계성」, 『한국의 현대성과 사회변동』, 나남출판 1999, 70면에서 재인용.↩
- 조희연 「시민사회와 시민운동론」,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당대 1998, 235면.↩
- 1998년 민변창립 10주년 기념 씸포지엄에서 서준식(徐俊植)은, 화장품에 유통기한이 없다거나 미리 낸 세금이자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작은 권리 찾기’운동은 90년대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에 편승, 영합하는 기회주의적 운동이라고 혹평했다(「진보적 인권운동을 위하여」,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1998년 9월호 94〜9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