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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오늘의 한국, 변모하는 사회운동
심상정 沈相奵
전국금속산업연맹 사무차장.
‘노동의 시대’를 위하여
민주노총과 한국 노동운동
21세기 노동운동의 방향을 상징하는 두 사건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수구·보수정객들의 생존경쟁이 치열했던 4·13총선은 지역주의의 괴력이 뿜어낸 매연에 휩싸여 끝났다. 4·13 총선이 진행되는 동안, 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방향을 상징하는 의미있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그 하나는 대우자동차 해외매각을 반대하는 자동차노동자들의 연대파업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노동당의 진보정치 실험이다.
대우·현대·기아·쌍용자동차 8만여 노동자들은 ‘대우자동차 해외매각 반대, 공기업화’를 주장하며 4월 12일까지 열흘간 연대파업에 돌입했다. 자동차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은 대우자동차의 해외매각이 곧 한국자동차산업의 종말을 예언하는 것이며 자동차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대량실직과 더 나아가 한국경제의 자립적 기초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고용불안·임금삭감·복지후퇴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은 끈질기게 지속되어왔다. 그러나 이번 자동차연대파업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외환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외국인 투자는 많을수록 좋다’는 김대중정권의 무분별한 개방화 정책에 맞서 해당 산업노동자들이 체계적인 산업정책을 요구한 최초의 공동파업이라는 데 있다.
한편 4월 14일 새벽 여의도 민주노동당 당사는 침울했다.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탓도 있었지만, 내부정치만 잘되었더라도 53년 만의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라는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자괴감이 컸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곧바로 4·13총선을 계기로 당을 더욱 확대·강화해갈 것임을 선언함으로써 선거 참패와 맞물려 명멸했던 지난 시기 진보정당들과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의 결의를 바탕으로 건설된 정당이고 장기적인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 전략에 복무하는 방향에서 16대 총선에 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의석확보는 실패했지만, 노동자 밀집지역의 계급투표 조직화와 21명의 후보 평균 13.2%의 득표를 얻은 것은 이후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결집 가능성을 밝게 해주는 것이었다.
21세기 노동운동이 직면한 일차적 과제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이며, 21세기 노동운동이 주력해야 할 최대 과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이다. 이 두 가지 과제는 노동운동의 발전전망 속에서 긴밀히 맞닿아 있다.
87년 노동항쟁: 노동운동의 새로운 고양기의 시작
노동운동의 현재와 미래를 말하려면 1987년 노동항쟁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87년 노동항쟁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고양기를 연 역사적 필연이었으며, 노동운동의 현재는 그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87년 노동항쟁은 노동자들의 인간선언이자 노동해방의 열망을 담지한 투쟁이었다. 당시 전국의 공장담벼락을 뒤덮은 구호들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 ‘배고파 못살겠다, 임금인상하라!’ ‘어용노조 물러가라, 민주노조 건설하자!’였다. 이미 노동자들의 거대한 투쟁에 묻혀간 아픈 역사가 되었지만, ‘공돌이·공순이’라는 노동자들을 비하하는 속어는 당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사회적 지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이 투쟁을 통해 경제적 빈곤과 차별, 자본과 정권의 전횡적인 통제와 탄압, 사회적 멸시와 천대, 정치적 무권리에 항거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고자 했다. 더이상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누르면 누르는 대로 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신들을 억압하는 제도와 체제를 구조적으로 인식하고 자신들의 힘과 단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열망은 곧 ‘노동해방’이라는 구호로 집약되었으며, 임금인상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연대투쟁의 활성화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 건설로 발전해나갔다.
또 임노동자계급 형성 이래 최대 규모의 대중적인 파업투쟁이며, 독점재벌·중화학공업의 대규모사업장 노동자들이 투쟁의 주력으로 등장하고, 장기적이고 완강한 투쟁양상을 보였다는 점으로 집약되는 87년 노동항쟁의 특징은 이후 노동운동의 비약적 발전의 토대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87년 이후 10년간의 노동운동은 87년 노동항쟁의 양적 토대 위에서 87년 노동항쟁이 제기한 과제들을 노동조합운동 차원에서 발전시켜간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조직확대와 민주노총 건설
87년 노동항쟁 이후 노동조합운동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무엇보다도 노동조합 조직의 영역을 대폭 확장함으로써 노동조합운동을 일반화·보편화시켰다. 87년 노동항쟁을 통해 표출된 ‘민주노조 건설’의 열망은 제조업 분야만이 아니라 언론·교사·금융·연구기관·정부투자기관·대학·유통 등 광범한 미조직 분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제 블루칼라든 화이트칼라든 교사든 써비스직이든 노동의 종류를 불문하고 노동이 존재하는 곳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는 것은 당연하게 인식되었다. 이러한 조직의 확대는 노동운동의 영역을 확대하고 노동조합운동의 전체 구도를 크게 변화시키면서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노동조합운동의 전면에 나서는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게 하였다.
87년 노동항쟁 이후의 노동자투쟁은 노동조합을 주체로 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양태를 띠고 발전하였다. 투쟁의 내용도 임금 및 노동조건의 개선으로부터 노동탄압 중지, 노동법 개정, 교육개혁, 언론개혁, 의료개혁 등 이른바 사회개혁의 영역으로 확대되었고, 투쟁형태 역시 정권의 탄압에 맞선 지원·연대투쟁으로부터 과제의 성격에 따른 지역별·산업별·그룹별 투쟁 등 다양한 연대투쟁이 활성화되었다. 이렇게 투쟁과정에서 축적된 역량은 민주노총 건설과 함께 정책 및 제도 개선 요구를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통일투쟁으로 발전했다.
민주노조운동은 연대투쟁 활성화와 함께 형성된 몇 갈래의 연대조직—신규 제조업노조 중심의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사무전문직 중심의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 그리고 재벌그룹별 조직인 ‘현대그룹노동조합협의회’와 ‘대우그룹노동조합협의회’ 등—을 결집하여 마침내 95년 11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라는 전국 중앙조직을 건설하였다. 민주노총의 건설은 87년 노동항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성과를 집약하는 것으로서 한국 노동운동의 자주적·민주적 재편을 위한 주체역량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또한 민주노총이 건설됨으로써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한국노총과 더불어 양대 노총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운동 관련 각 주체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하였다. 노동조합운동 내에는 노동운동의 통일전선의 과제를, 자본과 정권에는 유일 노총 관계에 의존했던 노사관계와 노동정책의 근본적 재검토를 제기하였다. 또한 민주노총은 이제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조직적 대표체로서 확대된 운동영역을 포괄하여 내적 통일성을 높이는 일, 노동운동의 통일전선 구축, 대자본·대정부 관계의 새로운 설정, 여타 민중운동과의 결합을 통한 사회적 역할 제고 등의 사안을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운동의 방향을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한편 한국노총은 민주노총과의 공존시대를 맞이하여 생존전략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96년 2월 개혁파인 박인상 지도부를 출범시킴으로써 내부개혁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12·26 총파업투쟁이 남긴 교훈
이렇게 달라진 지형 속에서 노동계는 96년 12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맞서 사력을 다해 총파업투쟁을 전개하였다. 민주노총은 연인원 50만이 참가하는 총파업투쟁을 20일이 넘게 완강하게 전개하였다. 한국노총도 사상 처음으로 계획된 파업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총파업투쟁과정에서 이루어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연대투쟁은 12·26 총파업이 갖는 대중적 성격과 역사적 무게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후 노동통일전선의 가능성과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12·26 총파업투쟁은 각계각층의 범국민적인 지지 속에서 확산되고 고양될 수 있었다. 당시 결성된 ‘노동법·안기부법 개악 철회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는 기층민중조직은 물론 학계·종교계·의료계·법조계·예술계를 총망라하는 것이어서, 그 투쟁 역시 범국민적 저항으로 발전해나갔다. 이렇게 총파업투쟁은 철저한 조직적 준비, 양대 노총의 연대, 범국민적 지지가 결합됨으로써 성공적으로 조직될 수 있었다. 12·26 총파업투쟁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전체 사회운동의 중심세력으로서 노동운동의 지위와 역할을 제고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국제적으로 한국 노동운동의 위상을 드높인 투쟁이었다. 또한 민주노총은 정부수립 이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인 총파업투쟁을 성공적으로 조직함으로써, 한국 노동운동의 확고한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의의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운동은 총파업투쟁을 통해 이후 노동운동의 발전과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한계와 교훈을 남겼다. 우선 ‘노동법개악 철회’라는 투쟁목표를 완전히 관철시키지 못한 것은 노동운동진영이 갖고 있는 조직력의 절대적 한계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노동법개악의 정세적 배경과 그 본질적 의미에 대한 인식이 불철저했다는 점이다. 12·26 노동법개악 기도는 ‘세계화에 대비한 신자유주의적인 법·제도 정비’에 그 핵심이 있다. 그리고 ‘경제위기론’의 과대포장과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정지작업을 거쳐 계획적으로 추진된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내에서는 정부·자본의 노동법개악 의도─‘자주적 단결권 저지(민주노총합법화)냐 정리해고 도입이냐’─가 총파업투쟁 조직과정에서 쟁점이 되었을 정도로 정세인식이 불투명했다. 이러한 한계1는 총파업투쟁의 목표설정, 투쟁전술, 그리고 이후 평가와 대책 마련에 있어 일관되게 드러났다. 12·26 총파업투쟁은 87년 노동항쟁 이후 계속된 노동법 개정투쟁의 연속이라는 측면보다도 ‘세계화·신자유주의’에 대항한 새로운 투쟁의 출발로 인식되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산별노조 건설’ 등 조직력의 절대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가 총파업의 조직목표로 분명하게 제시될 수 있었을 터이고, 투쟁 이후 총파업과정에서 확보된 양대 노총의 공조와 범국민연대전선 구축의 성과를 결코 방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노조진영은 총파업의 성공적 조직화라는 성과만을 과대평가함으로써 이후 급속한 노동환경 변화에 대비해 내부를 정비하고 조속한 대응체제를 마련하는 데 소홀하게 되었다.
한편 민주노총은 12·26 총파업투쟁의 성과를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연결하고자 했다. 97년 7월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98〜99년 정당건설, 2000년 국회 원내진출’을 골자로 하는 정치방침을 확정하고 97년 대통령선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권영길 민주노총위원장이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참패로 귀결되었다. 민주노총이 정치세력화 사업에 적극 나선 것은 지극히 환영받을 일이다. 그러나 두 돌밖에 안된 민주노총이, 그것도 총파업 이후 조직 안팎의 정비에 급급한 시점에, 무리하게 초대위원장을 대선에 출마시켜 참패를 겪음으로써 민주노총의 위상과 지도력에 많은 손상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바로 닥쳐올 외환위기 국면에 대한 지도력 공백으로 이어져 민주노총 내부위기를 확대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민주노조운동 10년이 남긴 것
민주노조운동은 87년 노동항쟁 이래 자본과 정권에 대한 쉼없는 투쟁을 전개하면서 노동운동의 자주성과 민주성, 연대성을 정착시키고, 노동자들의 계급적 각성과 정치의식을 향상시켜왔다. 또한 강력한 투쟁력을 바탕으로 임금인상과 복지향상을 이루어냈고 전교조·민주노총 합법화, 총파업투쟁지도부 구속철회 등 자주적 단결권의 확대와 파업권을 신장시킬 수 있었으며 조세개혁 등 사회개혁 요구를 쟁점화해냈다. 이러한 성과는 ‘악법은 어겨서 깨뜨리리라’는 노동가요의 노랫말처럼 자본·정권과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법 테두리에 구애받지 않는 완강한 투쟁을 통해 획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별협약을 중심으로 한 기업별 노사관계는 일정하게 정착되었으나 노동배제적인 자본과 정권의 기본 정책기조를 본질적으로 바꿔내지는 못하였다. 투쟁과정마다 정권의 탄압이 반복되었는데, 자본·정권과의 첨예한 대립과 격렬한 투쟁양상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특히 광범한 대중동원력을 수반한 전투적 투쟁기풍의 확립은 노동운동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가장 큰 자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 노동조합운동은 운동의 질적 발전의 측면에서 몇가지 본질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기업별노조체제와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다. 지난 10년간 기업별 노조를 기반으로 한 민주노조운동의 주된 실천내용은 임금인상 요구를 중심으로 한 기업별 교섭·투쟁이었다. 물론 노동법개정 총파업투쟁처럼 연맹이나 총연맹 차원의 노동법개정, 사회개혁 요구 등 대정부 제도개선투쟁도 전개되었으나 그것은 총량적으로 볼 때 부차적 지위를 갖는 것이었다. 이러한 투쟁의 성과는 그 협약의 효력을 기업별 테두리로 제한하여 기업의 지불능력에 따라 기업간 격차를 확대하였고, 미조직노동자들과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다. 이러한 노동자 내부격차의 확대는 기업별 이기주의와 종업원의식을 확산시킴으로써 전반적인 연대활동의 약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노조체제는 미조직노동자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영세하청 노동자, 여성노동자들이라는 점에서 조직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규직·대기업 중심의 한국의 노동운동은 상대적으로 잘사는 노동자 중심의 상층 노동운동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편 기업별 조직구조는 상급단체의 활동을 역규정함으로써 노동조합운동의 중앙조직이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주기도 했다.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자주성·민주성·계급성·연대성을 원칙으로 ‘노동해방’을 위한 한국사회 변혁까지 염두에 둔 방향에서 이념을 모색해왔으나, 당면 투쟁요구를 중심으로 정책대안을 제출하는 것 이상의 수준으로 이념을 진전시키지는 못했다. 통일적 이념과 노선을 갖지 못한 이 시기 민주노조운동은 전반적으로 ‘전투적·경제적 조합주의’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87년 이후 10년의 노동운동은 민주노조운동의 투쟁역량의 확충과 조직발전을 꾸준히 이뤄내면서 민주노조운동이 주도권을 확립한 시기였다. 그러나 낮은 조직률과 기업별 분산조직구조, 통일적인 이념과 노선 부재, 급변하는 노동환경에 대한 체계적 인식과 기본전략의 부재, 정치활동 역량의 취약 등의 한계는 97년 말 외환위기와 맞물리면서 노동의 위기를 심화시켰다.
IMF의 도래와 노동의 위기
20세기 후반에 불어닥친 세계화는 자본에 대한 규제 완화, 사회복지 축소, 공기업의 민영화 추진, 노동통제의 강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동반하면서 전지구적인 노동의 위기를 불러왔다. 한국 노동운동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가져다줄 가공할 만한 도전의 깊이와 내용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채 IMF사태를 맞이하였다.
98년 2월 6일 새벽 한광옥 노사정위원장이 감회어린 목소리로 ‘합의문’을 읽는 순간, 민주노조운동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덮였다. 이른바 재벌개혁─노동자고통분담이라는, ‘빅딜’로 불리는 노사정합의는 자본에는 ‘정리해고’의 선물을 민주노총에는 ‘조직분열’의 선물을 안겼다. 정리해고제 도입이 불러올 노동의 고통은 나중에 논하더라도 ‘노동자들의 살생부’에 스스로 도장을 찍는 일은 ‘민주’를 표방하는 노동조합이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노사정위원회 합의—민주노총 지도부 사퇴—비대위의 재파업 결의—비대위의 파업철회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민주노총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내부분열이 급속히 확대되는 과정이었다. ‘상황의 불가피성과 한계’와 ‘타락과 야합’이라는 배타적 주장 사이의 골은 깊어졌고, 이후 민주노총 내의 분파적 흐름으로 형성되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지도부에 대한 전면적 불신, 대정부교섭 및 교섭틀에 대한 배타적 거부감, 그리고 현장성·민주성·투쟁성 회복을 위한 민주노총 혁신 등의 주장으로 집약되는 흐름이 뚜렷하게 형성되었고 이런 배경하에 민주노총은 ‘직선제’와 ‘비타협적인 투쟁’을 표방한 2기 집행부를 출범시켰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조활동 제한’을 핵심으로 하는 97년 개정노동법에, 노사정위원회 합의를 통한 ‘정리해고제의 즉각 시행, 파견근로제도의 도입’이 추가됨으로써 지금까지 민주노조운동의 유일한 제도적 기반이었던 기업별 노사관계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게 되었으며 노동자들은 일방적인 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의 칼바람을 맞게 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은 98〜99년에 정리해고 위협과 임금·복지 삭감, 단체협약 개악에 맞서 고용보장과 생존권 사수를 위해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민주노총은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반대를 중심기조로 정하고 ‘정리해고제 철폐, 일방적인 구조조정 반대’를 전면에 내건 총파업투쟁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정리해고냐, 임금삭감 단협개악이냐’라는 자본측의 강압적 공세가 진행되었고, IMF사태를 앞세운 자본측의 공세 앞에 기업별 노조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조합은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내놓아야 했다. 임금삭감과 복지축소를 ‘고용안정협약서’와 맞바꿨다. 그러나 부도·휴업·매각·분할·합병 등 구조조정 회오리 속에서 ‘고용안정협약서’는 잉크가 미처 마르기도 전에 휴짓조각이 되어버렸다. 자본과 노동 측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두 달이 넘게 치열하게 전개되었지만 ‘임금삭감, 정리해고 부분 수용’으로 막을 내린 현대자동차 투쟁은 기업별 노조 차원의 정리해고 저지투쟁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결국 줄기차게 투쟁하였지만 양보는 양보대로 하고 정리해고는 정리해고대로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IMF 상황하에서의 노동운동은 87년 노동항쟁 이래 최초의 패배를 겪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개방화·민영화를 앞세운 노동배제적인 구조조정은 계속되고 있고 노동운동은 아직 ‘반대’와 ‘거듭된 총파업 선언’ 이외의 종합적인 대안과 투쟁전략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거센 도전을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따라 규정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본 대안적 사회경제정책과 이를 관철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과 새로운 투쟁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21세기 노동운동의 과제와 전망
신자유주의적 도전에 맞선 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결코 멈출 수 없는 투쟁 앞에 노동운동은 시급히 승리의 전망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새로운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적 힘을 확대·강화하는 일이다. 그것은 미조직노동자 조직화, 산별노조체제 확립, 현장조직력 강화, 노동조합운동의 통일전선 구축 등을 통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정리해고, 실업의 증가와 노동시장 유연화에 따른 비정규직 확대, 그리고 산업구조상 써비스 부문이 확대되는 현재의 추세라면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멀잖아 10%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주변층노동자로 전락하고 있는 비정규직·영세하청 노동자, 여성노동자들의 조직화에 주력하는 일이 조직확대사업의 중심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업별노조체제를 극복하고 산별노조체제로 전환하는 과제는 이후 노동운동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의 중요성을 갖는다. 현재의 기업별노조체제로는 대내외적인 도전에 대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기업별노조체제는 해체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IMF 이후 산별노조 건설사업은 급속히 추진되고 있다. 의료노조, 대학노조 등이 산별노조로 전환되었고 금속연맹·언론연맹·섬유화학연맹 등 민주노총 산하 연맹들은 대부분 산별노조 건설의 과제를 일정에 올려놓고 있다. 한국노총도 산별노조 건설을 주요 방침으로 정하고 있으며 최근에 금융산별노조가 건설되었다. 산별노조체제로의 전환은 조직확대와 정치투쟁 역량을 강화하여 전국적 통일투쟁과 정치투쟁을 용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노동정책, 노사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한편 대내외적인 노동환경의 심각한 변화는 자본과 정권에 대한 노동운동 통일전선 구축의 기운을 높이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대립적·경쟁적 시각에서 벗어나 광범한 대중적 요구를 바탕으로 공동실천과 연대투쟁을 강화해야 하며 더 나아가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개편을 원칙으로 한 조직적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
21세기 노동운동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정세에 조응한 노동운동의 이념과 실천전략 수립이 필수적이다. 노동운동의 이념 정립은 노동운동의 원칙에 충실하고 노동운동의 궁극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자본주의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기본방향으로 해야 하며, 노동운동의 내외적 조건을 정확히 고려한 실현가능하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민주노조운동의 이념은 매우 추상적이고 단편적으로 제시되어 이념으로서 실천적 함의를 갖기 어려웠다. 이로 인하여 특히 IMF사태 이후 급격한 노동환경의 변화 속에서 투쟁방향을 둘러싼 노선 차이가 노정되고 분파주의가 확대되었다. 사실 그동안 노조운동 안팎에서 제기되었던 ‘전투적 조합주의’ ‘민주적 조합주의’ ‘사회적 조합주의’ ‘정치적 조합주의’ 등은 운동의 서로 다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불필요하게 대립된 측면이 많았다. 현재 민주노총은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를 구성하여 노동운동전략 수립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는 노동운동의 이념 모색과 더불어 대안적 사회경제정책 마련과 단계적 실천방안, 노정·노사관계의 정확한 설정과 정책참여 방안, 제반 사회세력과의 연대전선 강화 방안, 민주노총 내부개혁과 민주노조운동 조직구조 개편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얻는다면 정책의 일관성과 조직의 통합력을 높여 민주노총의 지도력 복원과 노동운동의 질적 전환의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21세기 노동운동의 최대 과제가 될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운동이 노동조합운동의 테두리를 넘어 대안세력으로 발전하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한국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추진할 주체역량의 성장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의의를 갖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은 97년 정치세력화 방침을 마련한 이후 지속적인 정치사업을 전개하여 99년 민주노동당을 창당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민주노동당 창당은 이제 ‘노동의 정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비록 아직까지는 일선의 노동자들이 광범하게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민주노총 내부의 정치사업을 대폭 강화하고 당 중심의 정치활동 경험을 축적하면서 노동자 정치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은 당의 주요 정치역량을 뒷받침하면서도 노동조합과 당의 기능에 걸맞은 관계설정을 구조화해야 할 것이다. 한편 민주노동당이 명실상부한 근로민중의 진보정당으로 성장해나가기 위해서는 ‘민주노총당’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아직 포괄되지 못한 제반 진보세력과의 결합을 중층적으로 확대해내야 한다. 또한 진보정치이념을 구체적인 정책과 사업으로 펼쳐내고 대중참여·대중주체·대중주도라는 진보정당의 원칙을 국민 속에 확대해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노동운동이 신자유주의 공세에 적극 대처하고 정치적 대안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운동 차원에서 각계각층의 민중연대전선의 강화를 위한 노력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특히 IMF사태 이후 20대 80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고실업 상태가 지속되는 조건에서 전체 민중역량을 전선으로 확대·결집해야 할 요구가 증대되고 있다. 민중연대전선은 노동자·농민·빈민 등 기층민중을 중심으로 진보적 지식인과 종교계·시민운동세력2까지 광범하게 포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노동자·농민·빈민 등 기층민중이 중심이 된 협의체를 구성하고 민중대회 등 공동투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연대전선의 재편과 정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초국적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WTO뉴라운드와 한미·한일투자협정 등 선진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수탈이 더욱 강화됨에 따라 노동운동의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도 새롭게 증대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남아공·브라질 등 제3세계 노동운동을 비롯, 세계 노동운동의 진보적 블록과 공동대응을 강화하고 더 나아가 자본의 무자비한 세계화에 대항하는 국제시민단체와의 연대도 추진하고 있다.
21세기를 ‘노동의 시대’로
영국의 사학자 홉스봄(E.J. Hobsbawm)은 20세기를 ‘노동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 예속과 분단 그리고 독재에 의해 노동운동이 좌절과 고난으로 점철되었던 한국의 20세기도 ‘노동의 시대’라 할 수 있을까.
지구촌이 뉴밀레니엄을 자축하는 그 시각에 노동운동은 농성장에서 새천년을 맞았다. 새천년의 길목에서 노동운동은 희망의 꿈보다는 생존의 위기를 느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자리에 섰던 노동조합운동의 지도자는 ‘21세기를 노동의 시대’로 선언했다.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 노동운동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맞서 비록 수세적이긴 하지만 완강한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지구상에 이와같은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노동운동은 87년 노동항쟁 이래 지속적인 성장을 계속해왔으며 광범한 대중투쟁력이 여전히 건재하다. 그리고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노동운동의 희망이다. 그리고 이러한 희망은 노동운동 주체들의 철저한 반성과 자기개혁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한다면 21세기는 진정 노동의 시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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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보다 ‘오류’라는 표현이 정확할 수도 있겠으나, 정세인식 능력도 주체적 성장 정도와 맞물려 있는 것이고 민주노총이 창립된 지 한돌밖에 안되었으며, 현싯점에서의 사후평가라는 점에서 ‘한계’로 표현하였다.↩
- 그러나 현재의 조건으로는 단일한 연대전선으로 시민운동세력을 포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기층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 궁극적 지향에서 하나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결합 정도와 방식은 시민운동의 진보적 경향성이 어느 선까지 연장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에서 드러났듯이 대안적 실천을 기조로 하는 노동운동세력과 언론의 지면을 주요 활동공간으로 하는 시민운동은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총선시민연대가 주도한 낙천·낙선운동이 엄청난 국민적 호응 아래 정치개혁에 일정하게 기여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치개혁의 당면과제가 지역정당에 대한 정책정당, 1인 보스 주도의 정당에 대한 당원 중심의 민주적 정당, 그리고 금권정치를 근절하기 위한 각종 제도개혁 등에 있음은 온 국민이 공감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시민연대는 낙천·낙선운동이라는 지극히 협소한 테두리를 설정함으로써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후보 개인의 부패와 부도덕성에 가둬놓고 오히려 기성 정당체제에 면죄부를 주었으며 결과적으로 대안적 실천방향에 역기능을 초래하였다는 점 또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간극을 좁히고 사안별 연대활동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모두에게 부여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