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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오늘의 한국, 변모하는 사회운동
언론개혁운동의 과제와 전망
임영호 林永浩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시민운동이 정치판을 바꾸고 있다. 총선시민연대는 정치인 물갈이를 16대 총선의 쟁점으로 제기해 선거판도에 큰 파장을 가져왔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 단 기간에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언론보도에서 이를 주요한 정치적 의제로 부각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론은 낙선운동에서 ‘정치적 배후론’이나 ‘탈법·불법성’ 등을 제기함으로써 운동에 타격을 입히는 양면성을 드러냈다. 이는 언론이 사회운동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준 사례이다. 언론개혁운동은 다른 사회운동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사회부문의 모순을 개혁하는 데 목적을 둔다. 그렇지만 언론개혁은 언론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와 사회운동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이 점에서 언론개혁은 한국사회 전반의 개혁운동에서도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한다.
지난 90년대에는 갖가지 형태의 언론운동이 나름대로 언론개혁을 모색했다. 이 운동들의 성격은 그 객관적 여건에 따라 계속 변화했다. 90년대의 언론운동은 어떤 구조적 문제점들을 개혁과제로 삼았으며, 이러한 모순에 대응해 어떻게 운동을 전개했는가? 이 운동들의 개혁이념은 어떤 특징과 한계를 가지고 있는가? 90년대 언론개혁운동의 경험을 검토함으로써 우리는 2000년대 언론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많은 함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언론개혁운동이란 무엇인가?
언론개혁운동은 어떤 매체를 개혁대상으로 삼는지에 따라, 또 개혁의 의미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구체적인 성격이 달라진다. 언론이란 용어는 신문이나 방송 등의 대중매체를 지칭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언론이나 언론개혁이란 단어에는 ‘공공영역’(public sphere)의 기능과 같은 ‘규범적’ 차원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렇지만 언론이 이러한 기능을 실제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회제도로서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 효과적인 언론개혁 전략을 수립하려면 언론의 규범적 이상이 현실적 존재양식 속에서 어떻게 변질되는지 이해해야 한다.
언론매체의 제도적 존재양식은 시장, 국가와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정의할 수 있다. 예컨대 신문매체는 공공영역의 기능을 수행하지만, 시장에서 신문을 판매해 얻는 수입으로 운영되는 독립된 사기업 형태를 띤다. 따라서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지만, 시장논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반면에 방송매체는 소유와 운영에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여러 세력들의 통제를 받는다. 특히 전파자원의 희소성 때문에 국가는 전파관리의 명분으로 제한된 방송사에만 시장 진입을 허용하고 이를 관리하는 권한을 행사한다. 방송사의 구체적 소유, 운영방식은 공영제와 상업방송 등 다양한 형태를 띤다. 하지만 순수한 상업방송이라 해도 채널 이용이라는 특권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하므로 시민사회의 압력과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방송의 공공성은 이같은 제도적 위상에서 비롯된다. 신문과 방송의 이러한 제도적 차이 때문에 언론개혁을 위한 과제나 운동양식 역시 매체마다 상당히 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90년대의 언론운동에서 ‘언론개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시기의 다양한 언론운동은 추구하는 개혁의 의미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기존 언론매체의 문제 개선을 지향하는 개량주의적 운동인 ‘시민언론운동’이며, 다른 하나는 기존 매체의 개혁이 아니라 대안매체에서 사회 진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민족민주언론운동’이다.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언론개혁운동인 민족민주언론운동은 1987년 이후 『한겨레신문』이나 『말』지, 각종 노동자신문 등이 활기를 띠면서 한때 주목을 받았지만 90년대에 들어와 급진적인 사회운동의 쇠퇴와 함께 점차 퇴조했다.1
90년대의 언론개혁운동은 시민언론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여기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한 ‘언론인단체 운동’, 특히 언론노동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단체들이 주축이 된 ‘수용자운동’이다. 이 둘은 기존의 제도적 틀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점진적 개량을 통해 개혁을 지향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90년대의 언론노동운동과 수용자운동은 비슷한 이슈와 이념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모두 시민언론운동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2
언론인단체 운동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주로 국가권력의 간섭에 대항해 언론의 독립성을 지키는 데 주력했다. 한국신문편집인협회나 기자협회 등은 이러한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언론사마다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1988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출범하면서 언론인단체 운동은 강력한 조직과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는 노동조건 개선 등 노동조합 본래의 활동 외에 언론의 정치적 기능과 관련된 사안을 놓고 투쟁하는 사회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이는 언론계 ‘내부로부터의 개혁운동’으로, 언론사 내부에서 자본의 전횡을 막고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하는 제도적 장치를 정착시켰다. ‘편집권’이 권리로서 인정받고 노사가 같이 편집정책의 문제를 논의하고 평가하는 ‘공정보도위원회’가 제도화된 것도 이 운동의 성과다. 그렇지만 언론환경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언론노동조합 중심의 언론개혁운동은 점차 쇠퇴하고 있다. 우선 시민사회 영역의 성장과 제도정치권의 활성화로 대대적인 항쟁을 유발할 만한 정치적 쟁점이 감소했고, 시장경쟁의 격화로 단위노조들의 ‘자사이기주의’가 싹터 단체행동이 점차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수용자운동은 언론계 바깥에서 시민단체들이 주도하는 언론개혁운동이다. 수용자운동은 1986년의 ‘시청료거부운동’에서 시작해 90년대에 들어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스포츠신문 음란폭력 항의운동’(1990) ‘선거보도감시운동’(1992) ‘TV끄기 운동’(1993) 등이 두드러진 사례들이다. 시민단체의 언론운동 내에서도 세분화가 이루어져 어떤 것들은 아주 전문적이고 정치적 성격이 희박한 영역을 다루는 전문적인 매체운동으로 분화되었다.
언론노조운동과 수용자운동은 상시적 조직과 동원인력을 확보함으로써, 90년대의 언론개혁운동에서 가장 두드러진 두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앞으로 전개될 개혁운동은 이 운동들의 기여와 한계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가시화된 세력이나 활동빈도만으로 운동의 중요성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90년대에는 비록 조직적인 추진세력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개혁과제를 제기한 움직임들도 있었다. 중요한 개혁과제임에도 불구하고 개혁운동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이러한 미세한 움직임들과 공백을 검토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개혁운동의 방향 설정에 많은 시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 방송매체 개혁운동
시민언론운동이 주도한 언론개혁운동은 시기나 사안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는데, 특히 매체별로 뚜렷한 쟁점의 차이를 드러냈다. 90년대 언론개혁운동은 주로 방송매체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방송매체는 시장영역에 속하면서도 국가와 시민사회의 규제를 받는 독특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갖가지 사회세력들이 교차하는 지점이 되었다. 방송영역은 개혁운동 세력이 국가와 자본의 통제로부터 방송을 탈취하려는 힘겨루기의 장이면서 동시에 방송이념의 의미 해석을 둘러싼 담론정치의 장이 되기도 했다.
90년대에 방송매체를 둘러싸고 벌어진 언론운동은 크게 두 가지 이슈를 쟁점으로 삼았다. 하나는 언론의 정치적 민주화, 또는 국가 개입으로부터의 독립성 확보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업주의의 폐해를 막고 언론의 공공성과 책임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1993년 YMCA 등 시민단체들이 벌였던 ‘TV 끄기 운동’은 언론의 상업성과 선정성을 표적으로 삼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시기의 언론운동은 사회적·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시기별로 구체적 쟁점을 바꾸어가며 대응해왔지만 크게 이 두 이슈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각 시기 방송개혁운동의 구체적 쟁점은 당시의 정치적·이념적 환경에 대응해 형성되었다. 국가 방송정책이 어떤 이념적 지향을 토대로 추진되는지에 따라 방송의 문제점도 달라지고, 언론운동의 이슈와 이념 역시 여기에 대응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국가가 방송정책에서 채택한 이념들은 크게 ‘공공써비스 모델’과 ‘시장자유주의 모델’을 토대로 한다.3 국가·시장·시민사회와 언론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이처럼 상반된 이념들이 생겨나게 된다. 80년대까지 국내의 방송정책은 공공써비스 모델에 근거하고 있었지만, 1991년 민방(SBS) 설립을 기점으로 시장자유주의 모델로 전환한다.
공공써비스 모델에서는 언론의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하여 언론시장을 규제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에, 국가가 중재자로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이 시기만 해도 자본의 압력은 상대적으로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언론운동의 이슈는 ‘언론민주화’라는 정치적 틀 안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민언론운동의 이슈가 정치적 성격을 강하게 띤 것은 공공써비스 모델이 지배적이던 시기와 때를 같이한다. 오랜 권위주의 정권의 경험 때문에 국가의 언론통제와 간섭에 대한 비판은 오랫동안 언론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1986년의 시청료거부운동은 시민단체들이 주도했고 쟁점 역시 언뜻 비정치적으로 보이지만 KBS의 편파보도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성격을 강하게 띤다.
방송이념이 시장자유주의 모델로 이행한 것은 정치적 민주화가 본격화된 ‘문민정부’ 수립과 대략 시기를 같이한다. 시장자유주의 모델에서는 정부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언론이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통해 소비자의 심판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표방했기 때문에 자연히 큰 정치적 쟁점이 줄어들었다. 대신에 방송의 상업성과 선정성 문제가 수용자운동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반까지 언론운동은 언론민주화와 사회민주화를 중요한 운동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언론운동에서도 점차 정치적 색채가 퇴색하고, 대신에 매체교육이나 모니터 활동과 같은 비정치적 성격의 활동들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광주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1995년 2월 총회에서 규약을 개정하면서 조직 목적에 관한 조항에서 ‘사회민주화에 기여한다’는 내용을 삭제한 것은 언론운동의 탈정치화 추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하지만 시장자유주의 모델하에서도 정부의 방송정책은 언뜻 보기에 상반되는 성격의 노선들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국가는 한편으로는 소비자주권론을 표방하며 방송 ‘산업’의 논리를 강화하는 탈규제정책을 추구하면서도, 이와 상반되게 방송매체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국가 개입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등 시장자유주의와 어긋나는 정책도 폈다. 말하자면 서구의 시장자유주의가 국가의 개입과 규제를 줄이는 ‘탈규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데 비해, 한국의 국가는 언론부문에서 시장논리를 중시하면서도 국가의 강력한 주도권을 유지하는 ‘국가관리형 시장체제’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4
국가 주도의 시장체제는 정치적으로 몇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방송에서 공공영역의 기능을 희석시키고, 대신에 방송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도구적 가치(화폐의 논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공영성이 강한 매체에서도 시청률 경쟁은 소비자 선택권 중시라는 명분으로 포장되어 정당성을 얻어가고 있다. 이는 정치적 논란의 가능성이 많은 프로그램을 줄이고 대중성이 높은 비정치적 장르를 확대하는 추세로 나타날 수도 있다. 또한 이 체제는 국가에 시장체제 관리자의 역할을 강화시켜줌으로써 방송부문에서 시민사회 영역의 실질적 참여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물론 방송이념이 시장자유주의 모델로 옮아간 이후에도 시민언론운동은 언론을 국가와 시장 영역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공공영역으로 개편하려는 ‘신공공써비스 모델’의 이념적 지향에 입각해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이념은 시민사회에 의한 언론규제를 이상으로 보기 때문에, 방송에서 상업화의 폐해를 저지하고 국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을 주요한 운동목표로 삼는다. 국가가 방송부문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한 방송 독립성과 관련된 문제는 여전히 방송개혁운동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2000년 초 ‘통합방송법’이 통과되기까지 이 법안(특히 방송에 관한 전권을 갖는 방송위원회 구성방식)을 놓고 정부와 정치권, 언론노조, 방송사 사이에 오랜 갈등과 줄다리기가 계속된 것은 여전히 방송매체의 독립성이 중요한 정치적 쟁점임을 말해준다.
하지만 시장자유주의 이념하에서는 80년대에 비해 국가 개입의 문제를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시키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국가 개입이 예전에 비해 훨씬 간접적이고 세련된 기술적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언론개혁운동 내부의 지형변화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러한 변화로 언론개혁운동의 전략에 대한 재조망이 필요해졌다.
우선 방송부문에서 시민사회의 참여기회가 확대된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국가가 방송정책 결정이나 운영에 시민단체의 대표자를 참여시키게 된 것을 말한다. 예컨대 김영삼정권이 지역민방·유선방송 사업자 선정과정에 시민단체 대표를 참여시킨 것이라든지, 방송사에 시청자위원회를 제도화하고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을 늘린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1995년부터 국가나 공익단체가 시청자단체에 공익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 역시 국가와 시민사회의 변화된 관계를 상징한다. 물론 시민단체의 참여기회 확대는 80년대 이후 시민언론운동의 성과라 할 수 있으며, 앞으로 방송영역에서 시민사회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제한된 제도적 참여가 언론개혁의 열기를 완화하는 완충장치, 즉 ‘유사 시민사회’의 기능을 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5 예컨대 김대중정권은 대통령자문기구인 ‘방송개혁위원회’에 시민운동 대표자들을 참여시키는 등 시민언론운동 세력에 정치적 무게를 실어주었지만, 여기서 만들어진 통합방송법안이 실제 입법과정을 거치면서 개혁적 성격을 희석시키는 방향으로 변질된 것은, 아직 시민사회의 참여가 정치과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언론개혁운동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또 한가지 지형변화로는 개혁 추진세력의 내부 균열이다. 즉 시민운동 세력에서 양대 축을 이루던 언론노동운동과 시민단체의 분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90년대에 들어와 신문노조가 급격히 쇠퇴한 데 비해, 방송노조는 개별 노조를 산별노조로 확대 개편하는 등 방송개혁운동에서 여전히 강력한 세력기반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언론노동운동이 주로 정치적 쟁점 위주로 이루어져온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을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 쟁점이 점차 소멸해간다면 이들을 공통된 이념으로 묶어두기가 쉽지 않다. 언론노조운동은 집단적 이해관계에 근거한 노동조합운동으로 변해가려는 징후를 보인다. 언론노조는 편집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는 개혁세력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비효율적인 공기업(공영방송사) 부문 개혁에서는 경영진과 함께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기득권층의 일부를 이룬다. 1999년 통합방송법안을 둘러싸고 방송노조가 방송개혁위원회에서 탈퇴하고 파업에 들어가 국가와 직접 협상을 시도한 것은 이러한 집단적 이해관계의 표출이라 하겠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언론개혁운동에 어려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제는 시민단체나 언론사, 노동조합 등 몇몇 고정된 세력에 의존해 방송개혁을 추진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신공공써비스 모델에 의한 방송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자본의 압력에 맞설 수 있도록 시민사회 세력들을 조직적으로 결집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3. 신문개혁운동
신문매체 역시 방송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제도로 존재하지만, 그 양식은 방송과 크게 다르기 때문에 개혁의 과제와 운동전략도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신문은 방송과 달리 비교적 순수하게 시장메커니즘의 지배를 받는다. 방송매체에 비해 시장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고, 내용이나 운영 면에서도 외부세력(국가든 시민사회든)의 통제를 배제하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그렇다면 신문시장의 메커니즘이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면서도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의 언론을 수용할 수 있을 때, 신문 체제는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신문매체는 갖가지 형태의 문제점을 안고 있어 늘 개혁대상으로 거론되곤 했지만, 아직도 언론개혁운동에서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신문과 관련된 언론운동은 오랫동안 국가의 언론통제 문제에만 집중되었는데, 1987년 이후 신문에 대한 직접적 통제가 사라지면서 신문의 구조적 모순들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신문이라는 사회적 제도(특히 시장메커니즘)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동안 신문개혁의 움직임은 주로 언론관련 전문매체나 언론관련 단체의 행사 등에서 여론지도자층이 제기하는 비판 형태로만 이루어졌다. 이는 신문개혁 문제를 다룰 주도세력이 형성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본격적으로 대중적 운동의제로 제기할 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개혁과 관련된 문제가 신문에서 꾸준히 다루어진 데 비해, 방송에서 신문개혁 문제를 제기하려는 시도는 몇차례 이루어지긴 했지만 좌절되거나 축소되었다. 신문개혁을 제도적·구조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8월 언론관련 운동단체들이 모여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를 결성하면서였다. 언개연이 신문개혁의 과제로 제기한 것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는 언론사의 권력기관화이다. 신문사의 소유구조가 특정가문, 종교재단, 향토자본 등 전근대적 사유(私有) 형태를 띠고 있으며 소유구조나 운영에서 형식적인 공공성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신문사들은 권력과 자본에 유착해 세무조사 면제 등 각종 특혜를 누리며 사주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바람막이 역할을 함으로써, 시민사회 위에 군림하는 권력집단으로 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언개연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신문사를 공공적 소유구조로 개혁하고, 소유·경영·편집을 분리해 내부적인 견제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번째로 신문시장에서 ‘시장실패’ 현상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이는 공정경쟁질서의 붕괴(무가지와 경품 살포)와 함께 이른바 ‘사이비언론’이라고 불리는 각종 비리 형태로 나타난다. 언론비리는 곧 신문사의 비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대부분 신문에서 발생하고 있다. 신문사업으로 수익을 올리는 신문사가 아주 소수에 불과한 것도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다. 판매·광고 시장의 독과점체제가 심화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부각된다. 언개연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신문기업에 대한 특혜 철폐, 신문발행부수공사(ABC)제도 실시, 경영의 투명성 확보 등 공정경쟁이라는 시장메커니즘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세번째 쟁점은 주로 신문의 편파·왜곡보도와 언론보도에 의한 인권 침해, 직업윤리 실추 등 직업윤리와 연관된 것들이다. 이에 대해 언개연은 신문사 내부적 견제제도 도입과 더불어, 언론의 부당한 행위를 막고 수용자 주권을 확립하기 위한 외부적 견제장치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언개연의 신문개혁안은 시민언론운동 단체들의 이념적 지향을 잘 보여준다. 신문이 방송과 달리 사적 기업제도에 의존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신문사의 소유, 조직운영, 행위 등에 관해 방송과 마찬가지로 신공공써비스 모델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언개연의 신문개혁안은 이전처럼 비판에만 그치지 않고, 정기간행물법 개정운동, 언론개혁위원회 설립 추진 등 정치적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제자리걸음을 하던 신문개혁운동을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개혁안은 원래 의도와는 달리 몇가지 한계점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 언개연 청사진은 기본적으로 이미 정착된 거대신문 위주의 신문판도를 인정하고 그속에 운영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개혁안은 보수 성향 일색의 신문판도를 수정할 다양성의 이념을 포괄하기 어렵다. 이것은 이 개혁안이 주요한 개혁수단으로 삼는 시장메커니즘의 독특한 성격 때문이다.
신문시장의 정상화는 시장실패로 인한 문제를 해결할지는 모르나 새로운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다. 신문시장에서는 진입 비용이 높고 규모의 경제원리가 작동하고 있어, 치열한 시장경쟁은 주변적인(특히 진보언론 같은 소수층 대상의) 언론들을 도태시키고 시장 전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획일화하는 속성이 있다. 만일 신문시장의 메커니즘이 정상화되면 신문업계가 보수적인 성향의 거대신문 위주로 재편될 것임은 이미 많은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보아서 알 수 있다. 신문개혁 추진 세력이 개혁안을 마련하면서 참고한 외국의 신문개혁기구(영국의 왕립신문위원회)는 시장 정상화가 아니라 시장 속성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만일 지금 신문언론의 문제가 비리개혁의 차원뿐 아니라 사상의 다양성 부족에도 있다면, 문제는 어떻게 하면 기존의 시장메커니즘의 편향을 보완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느냐 하는 것이다. 신문개혁안이 시장실패 개혁방안의 하나로 제시했던 신문공동판매제는 신문사의 불공정 행위를 줄여줄 뿐 아니라 신규언론의 투자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사상의 다양화에도 기여하는 부수적 효과도 가져올 것이다. 이밖에도 최근의 기술발전을 활용함으로써, 시장의 지배를 상대적으로 덜 받는 새로운 언론형태를 육성하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강준만의 ‘1인 저널리즘’이라든지 패러디신문인 ‘디지털 딴지일보’(ddanji.netsgo.com)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강준만의 독특한 개인 저널리즘은 안정지향적 보수중산층에 영합하는 극우 보수언론의 무책임한 인기주의 시장전략이 어떤 정치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부각시켜 관심을 끌었다. ‘딴지일보’ 역시 발행인 1인의 작업으로 시작되어 패러디신문이라는 독특한 저널리즘 양식을 유행시켰다. 물론 이것들이 기존 언론에 대항한 ‘대안’언론으로 발전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이들의 활동이 독자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기존 언론의 보도내용을 재활용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절제되지 않은 독설과 극단적인 주장, 특유의 선정주의 역시 이들을 소수의 목소리 이상으로 발전시키기 어렵게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혼자서 적은 재원으로 기존 언론이 다루지 못한 틈새를 공략하는 게릴라전 형태의 새로운 언론양식이라는 점에서 미래형 언론의 한 유형을 보여준 셈이다. 이는 곧 90년대 초 쇠퇴한 ‘민족민주언론운동의 이념’이 2000년대의 상황에서 다양한 형태로 뿌리내릴 가능성이 있음을 말한다.
지금까지 신문매체는 시장 경제학의 지배를 받았다. 앞으로도 시장경쟁은 신문업계를 더욱더 거대언론사 위주로 재편할 것이다. 아마도 이 때문에 신문개혁운동은 거대언론사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신문기업의 거대화는 신문의 목소리를 갈수록 표준화시킬 것이고, 따라서 견해와 사상의 다양화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 점에서 앞으로는 싸이버 공간과 같은 테크놀로지와 공공성을 띠는 제도적 장치(공동 배포조직 등)를 활용함으로써 틈새시장을 노린 다양한 목소리들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신문개혁의 과제다. 신문의 공공성과 다양성은 신문개혁에서 동시에 추구해야 할 이념이다.
4. 평가와 전망
90년대를 거치면서 언론개혁운동은 꾸준히 역량을 축적해왔다. 이 점은 운동조직이나 운동방식 등 여러 측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산발적으로만 전개되던 운동을 더욱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에 입각해 조직화할 수 있는 연대조직이 생겨났고, 제도정치권 내에 시민운동 세력이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했다. 이러한 여건변화에 맞추어 운동방향과 방식 수립에도 좀더 정교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매체의 특성에 맞는 개혁 이념과 전략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시민언론운동이 주도한 90년대의 언론개혁운동은 시민사회가 언론매체를 규제함으로써 공공성을 확보하려는 신공공써비스 모델의 이념을 기반으로 삼았다. 이러한 이념은 방송부문에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이다. 언개연의 신문개혁운동에서 추진하고 있는 과제들도 비슷한 이념적 지향을 보인다. 그렇지만 언개연의 신문개혁 이념은 반(反)시장주의적인 공공써비스 모델의 성향이 강하면서도 시장논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신문의 정치권력 집단화를 저지하는 데 무게를 두는 등 정치적 성향이 강하다. 이는 한국 상황에 맞춘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장주의를 통한 개혁 전략은 아마도 신문의 불공정행위를 차단함으로써 공공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오겠지만, 몇몇 거대 보수언론 중심으로 신문시장을 재편하는 부정적인 효과도 예상된다. 이같은 한계는 신문 시장메커니즘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방송부문의 개혁이념인 신공공써비스 모델을 신문매체에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생겨난다. 신문의 공공성 이념은 방송과 다를 수밖에 없다. 방송이 매체 내에 시민사회의 다양성(즉 사상의 시장 다양성)을 포괄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면, 신문에서는 매체 내부가 아니라 시장 내에 다양한 성향의 매체들을 육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방송부문에서도 소출력 라디오 활성화, 국민주 방송 설립 등을 통해 사상의 시장 다양화를 어느정도 시도할 수는 있지만, 다양성이라는 이념은 아무래도 신문매체에 더 적합하다. 민족민주언론운동이 추구한 대안언론의 이상은 다양성을 언론개혁의 중요한 이념으로 설정하고 있어 신문개혁운동에서 아직도 유효하다고 하겠다. 진보언론이 활동한 경험이 별로 없는 우리 사회에서는 언론시장에 다양한 대안언론의 싹을 심는 작업이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언론운동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1인 저널리즘의 사례들의 의미를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높이 평가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시민언론운동은 언론개혁의 추진 전략으로 국가를 끌어들이려 하고 있으며, 이는 현단계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언론운동 진영은 방송에서는 국가 개입에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신문개혁에 관해서는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는 다소 상반된 입장을 드러냈다. 하지만 방송매체와 달리 신문개혁 추진과정에서 국가를 개입시키는 전략은 양면적인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불과 3,4개 중앙지와 1,2개 지방지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신문사가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국가 주도의 시장정상화를 통한 개혁조치는 어차피 선별적인 타협이 될 확률이 높으며, 이 과정에서 신문에 대한 국가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될 수도 있다.
신문개혁운동은 신문영역의 비리를 뿌리뽑고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와 시장메커니즘을 동시에 끌어들이는 독특한 전략을 채택했다. 문제는 시장메커니즘이 개혁추진에서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시장메커니즘의 정상화가 가져올 신문 논조와 내용의 동질화, 표준화 추세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시장메커니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틈새시장 언론들을 육성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시장메커니즘의 한계를 수정하려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시장 정상화를 통한 신문개혁은 한계에 부딪칠 수도 있다. 신문개혁의 딜레머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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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규 「언론운동과 언론민주화」, 한국사회언론연구회 엮음 『현대사회와 매스커뮤니케이션』, 한울 1996, 436〜38면.↩
- 강상현 「정보화시대의 시민언론운동: 현단계 운동평가와 미래전망」, 『한국사회와 언론』 3호, 1993, 96〜98면.↩
- 이 모델에 관해서는 정용준 「1990년대 한국방송구조의 공익성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95 참조.↩
- 정용준 「시민사회의 방송개혁론, 그 문제점과 대안의 모색」, 『한국사회와 언론』 7호, 1996, 39면.↩
- 정용준 「시민사회의 방송개혁론, 그 문제점과 대안의 모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