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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 전문·실업교육의 오늘

 

실업계 학교를 전문적 직업교육의 장으로

 

 

이난숙 李蘭淑

이리공고 국어과 교사.

 

 

1. 처음 이 글을 청탁받았을 때 머릿속이 대단히 어지러웠다. 그동안 고민해온, 또는 교육현장에서 느꼈던 수많은 문제들이 뒤엉켜서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근본적 해결을 위한 것도 있고 사사롭게 부딪히는 하찮은 것도 있으며 난감하다고 느꼈던 절망적인 문제들도 있었다. 교육의 위기에 대한 수많은 담론, 수많은 처방 들이 난무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여전히 소외되고 있는 실업계 학교의 문제를 가장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 나에게 맡겨진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추상적이고 거창한 것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나름대로의 대안도 덧붙였다. 이 글이 실업계 고등학교 문제가 인식되는 작은 계기가 되길 감히 바란다.

 

2. 며칠 전 우리 반 학생 두 명이 가출했다. 학교에서 불량학생으로 평가되던 아이들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집안에 문제가 있거나 특별히 무슨 계기가 있던 것도 아니다. 그중 한 아이는 수업료를 부모 몰래 휴대전화 사용료로 내고, 옷을 사는 데 써버리긴 했다. 학교와 가정에서 백방으로 수소문했고, 며칠 뒤 아이들은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가출한 이유를 묻자 띄엄띄엄 하는 말이 ‘그냥, 그냥’이란다. 요즘 들어 괜히 학교생활이 지겹고 집에 들어가기 싫었단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살림도구를 들고 나가버린 것이다.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실업계 학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실업계 학생들의 문제에는 수많은 요인들이 내재되어 있지만, 몇가지 중요한 고리들을 집어낼 수 있다.

먼저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을 들 수 있다. 그동안 수없이 교육정책이 바뀌고 전환을 거듭했지만, 결국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우리 사회의 학력 중심의 토대가 변화하지 않는 한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을 예비하는 징검다리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그간 학교의 성과가 초·중·고를 불문하고, 또 인문·실업계를 떠나, 그리고 설립목적이 무엇이든간에 오직 대학입시 결과에 의해 평가되어왔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또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학벌중심주의가 만연하면서 학부모들 역시 자녀를 명문대학에 보내는 것을 교육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아 사교육비를 엄청나게 쏟아부어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요즘은 실업계 고등학교 진학을 자발적으로 원하는 학생이 많지 않다. 다시 말하면 실업계에 진학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하고 이를 만회할 기회도 가질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의 자녀들이 대부분이다. 부모의 사교육 능력에 따라 자녀의 수학능력이 좌우되면서 사교육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 가정의 학생들이 학력에서조차 떨어지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학생들은 실업계 고등학교에 들어오는 순간 수학능력 면에서든 경제적인 이유에서든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목표 상실과 함께 심한 무기력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이들이 교과수업을 등지는 결과로 나타난다.

실업계 수업시간을 들여다보자. 공책은커녕 교과서도 갖고 있지 않은 학생들이 대다수이며, 어떤 경우는 볼펜조차 준비되어 있지 않다. 시간에 관계없이 잠만 자는 학생, 시간 내내 얘기하고 딴짓을 하는 학생, 멍하니 허공만 응시하는 학생, 교사가 아무리 소리쳐도 그 순간뿐 끊임없이 계속되는 소란, 훈계를 좀 할라치면 지겨워하는 표정을 짓고 엎드려버리는 아이들. 수업시간에 그래도 제대로 공부하려는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것이 날마다 시간마다 반복되는 실업계 고등학교 수업시간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어떤 식으로 진행해도 학교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교과수업조차 외면하는 학생들의 내면에는 깊은 좌절감과 사회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공고의 실습시간

어느 공고의 실습시간

 

3. 며칠 전 우리 학교에 시험이 있었다. 학생들은 시험지와 답안지를 받자 2,3분 만에 모두 끝마치고 그때부터 나머지 시간을 그냥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다. 한 과목당 100분, 120분씩 하는 그 긴 시간을 그냥 앉아 있어야 하는 아이들은 몸부림을 치고 볼멘소리만 계속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마지막 외국어영역 시간에 시험감독을 들어간 교사에게 아이들은 아예 시험지도 나눠주지 말고 답안지만 줄 것을 요구했다. 어차피 찍을 텐데 페이지도 많은 시험지는 필요없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학생들의 실력을 점검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행해지는 모의고사였다. 실제 수학능력시험과 똑같은 형태의 시험으로, 문제도 문항수도 시간도 똑같이 배정되었다. 유일하게 대학입시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있는 학생들에게 인문계에서 시행되는 수학능력시험 대비용 시험을 똑같이 치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정책이 그 현란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무책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이른바 실업계는 대학 진학을 희망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좀더 질 좋은 기술교육을 시켜 이들이 직장에 취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이다. 즉 적어도 실업계 학교는 이 나라의 모든 학생과 학교를 지배하고 있는 ‘입시’라는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만큼 학생들에게 실용적인 직업교육을 시켜야 옳다.

물론 실업계 학교의 교과과정 편재는 인문계와 판이하게 다르다. 실과계통의 수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과목에 배당되는 시간은 현격하게 적다. 하지만 일반과목 교과서는 대학 진학을 위해 편성된 인문계 교과서를 씀으로써, 국어과목을 예로 들면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3년 내내 배우는 국어교과서 상·하를 2년 동안에 끝내야 한다. 그런데도 이른바 학업성취도 검사라는 명목 아래 인문계 학생들과 똑같은 기준으로 실업계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다.

실업계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인문계 학생들을 평가하는 시험지가 아니라 그들이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게 될 교육 기자재이다. 현재 학생들이 실습하고 있는 기자재는 생산현장에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고물이 된 낡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실제 생산현장에 나갔을 때는 막상 학교에서 한 실습이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자신의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참여했던 학생들마저 좌절을 맛보는 것이다.

 

4. 실업계 학교에서 느끼는 인성교육이나 생활지도의 어려움도 교사들의 무력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요인이다. 아이들이 시한폭탄처럼 느껴진다. 모두는 아니지만 상식도 없고 예고도 없고 대상을 가리지도 않으며 참을 줄도 모른다. 세상에 대한 관심도,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다. 교사들이 지도할라치면 아이들은 무관심과 외면, 반항으로 대응한다.

이러한 문제가 인문계 학생들에 비해 실업계 학생들에게서 특히 심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합리적 문제해결 능력과 비판적 사고능력이 이들에게 취약하기 때문이다. 또 그 원인은 이들이 중학교 때부터 성적 위주의 학교에서 낙오자로 취급받았고 오랜 기간 패배의식과 열등감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긍심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비판과 이성적 문제해결 능력을 갖출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다. 획일적이고 권위적인 유교적 병폐는 사라졌는데, 그 공백이 민주적 훈련을 통해 메워져야 할 싯점에서, 즉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규범이 자리잡아야 할 싯점에서 학생들은 교사들의 지도를 거부한다.

또 앞에서 언급했듯이 실업계 학생들은 학교생활에 애착이 없다. 하지만 방과 후 주어진 시간은 인문계 학생보다 훨씬 많으니 밖으로만 시선을 돌린다. 이런 그들을 끌어당기는 것은 현란한 유혹덩어리의 세상이다. 나의 초라한 현실을 잊어버리고 왕이 되어 군림할 수 있는 게임, 몇시간이고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와 비디오, 그리고 말초적인 텔레비전 프로그램. 또한 청소년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천박한 상업주의가 만들어놓은 대중문화와 온갖 색깔과 모양의 소비제품들은 학생들의 사고를 지배한다. 그래서 이들의 사고는 조직적이지 못하고 즉자적이고 단선적이다.

단적으로 학생들은 선악의 가치판단이 부재하고 오직 호오(好惡)만이 있을 뿐이다. 내가 좋아하면 선인 것이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사고가 만연해 있다. 또한 합리적 조정능력이 부족한 학생들간에는 오직 힘의 논리만이 지배할 뿐이어서, 복학생들에게 철저히 복종하고 약자에게는 군림하려 한다. 교사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즈음 왕따가 만연하고 그 대상이 힘없는 약자이거나 장애자인 것도 이런 일련의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모든 문제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것이 실업계 학교의 위상을 위협할 정도의 자퇴율이다. 실업계 고등학교의 자퇴율은 같은 지역의 인문계 고등학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은 좀더 효과적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부모와 상의해서 자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실업계 학생의 자퇴는 가출로 인한 것이거나 무조건적인 학교 거부가 주된 원인을 이룬다.

 

5. 실업계 고등학교의 위기는 우리 사회의 갖가지 모순이 중첩된 것이기에 근본적이고도 다양한 해결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학교 부적응 학생들이 배출되는 것도 결국은 사회적 모순의 결과라고 볼 때, 인문계 학교보다 실업계 학교에 부적응 학생들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부모들의 열악한 삶의 조건 때문에 이들에게 충분한 교육 기회가 주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실업계 부적응 학생들에게 더 많은 배려가 있어야 한다. 학교마저 그들을 포기할 때 결국 우리 사회에 극단적인 부적응자들이 양산되고, 이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우리 교육현장의 암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들은 고등학교 진학 이전부터 불평등한 상황에 처해 있던 그들을 오직 하나의 잣대로 다그치기 전에 그들이 우리 사회 모순의 피해자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열등하다고 몰아세우기 전에 그들에게 살아갈 자신감을 주고 삶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애정이 필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교사들은 무조건적 적대의식과 피해의식 속에서 등을 돌린 그들에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실업계 교육과정이 입시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만큼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교육과정을 개발해야 한다. 언제까지 학생들만을 탓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학교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때 교사의 설자리도 없어지는 것이며, 결국 우리의 사회의 미래는 더욱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교과서의 틀에서 벗어나 그들의 현실과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그들이 사회를 개선해나갈 건강한 원동력이 되고, 그 속에서 자기 삶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교사들은, 인문과목 교사든 실업과목 교사든 간에, 생산직 노동자에게 필요한 현장에서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 실업계 졸업생들은 대체로 생산직 혹은 이와 유사한 직종에 취직을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작업장이면서 이 사회 생산현장의 핵심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경제구조와 그것이 내포한 생산현장의 문제점에 대한 사전지식을 습득할 기회는 전혀 얻지 못한 채 생산현장으로 나가게 된다.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노동의 신성함, 노동의 위대함을 일깨워주는 교육은 물론 노동자로서의 권익과 노조활동 등에 대한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이 사회의 모순에 대해 즉자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당당하게 문제를 풀어나가고 생산직 노동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높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최근에 활발히 모색되고 있는 대안학급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 먼저 교사들이 좀더 애정을 가지고 실업계 학생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하겠다. 현상적으로 실업계 학생들의 생활태도에 문제가 많기에 그들을 지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합리적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하고 무기력하게 된 근원이 우리 사회의 경제적·교육적 모순 때문이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당부하건대 교육부는 오직 경쟁력있는 소수의 학생들을 위주로 한 교육정책에서 탈피하여 실업계 학생들에게 더 많은 지원과 배려를 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불평등구조가 교육의 현장에서마저 그대로 나타나는 현재의 교육현실을 직시하고 실업계 고등학교에 대한 적극적이고 실질적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식경쟁력에서 밀려난 실업계 학생이기에 이들에게 오히려 더 많은 특기·적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경제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씨스템에 맞추어 학과와 교과목에 대한 편재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여기에 맞추어 교과서가 새롭게 개편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부는 장기적으로 실업계 고등학교를 전문적 직업교육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창백한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하기보다 건강하고 질높은 생산직 노동자를 배출하는 데 힘써야 한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생산현장에 맞는 기자재로 바꾸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직업교육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현재 구상중인, 실업계 학교를 모두 인문계 학교로 전환시킨다는 안이한 발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런 모든 문제를 야기한 우리 사회의 암, 학벌중심주의 사고가 하루빨리 사라지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