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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중국의 韓流, 그 흐름과 막힘
중국 속의 한국 대중문화
조창완 曺暢完
문화평론가
난카이(南開)대학과 톈진(天津)대학의 정문 맞은편에 위치한 문화샹챵(商場). 수십여개의 상점들이 음반, 잡지, 영화VCD와 DVD 등 각종 문화상품을 판다. 지난 일년간 이곳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한국 대중음악은 물론이고, 영화, 드라마 등이 전시대의 한 공간을 확실히 장악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뻬이징의 대학가가 밀집되어 있는 쉬에위안루(學院路)의 문화거리인 우따오커우(五道口)도 별반 차이가 없다.
톈진유선텔레비전은 중국에서 수차례나 재방송됐던 「별은 내 가슴에」 「내 마음을 뺏어봐」를 연속 방영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뻬이징텔레비전에서 「의가형제」를 방송했다. 지난 1년 사이 한국 드라마는 중국 방송에서 끊이지 않을 만큼 안정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한국문화의 중국 유입은 벌써 3〜4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올 들어 그 속도가 빨라지면서 한국문화의 흐름을 가리키는 ‘한류(韓流)’라는 단어가 생겼다.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하한쭈(哈韓族)라는 호칭도 생겼다. 이전에 일본문화를 추종하던 이들을 가리키던 하르쭈(哈日族)나 프랑스문화를 추종하는 이를 가리키는 하파쭈(哈法族)에 대응하는 용어이다.
중국에서 외국 대중문화 수용은 연령별로 경향이 뚜렷하다. 대학 가기 이전의 연령대에는 하한쭈가 많고, 대학생 쪽에는 하르쭈가 우세하다. 물론 이것은 대중음악의 수용세대를 중심으로 한 것이고, 드라마나 영화의 수용층은 이보다 조금 올라간다. 하지만 중국에서 한국 대중문화는 확실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중국에 처음으로 수용된 외국 대중문화는 인도문화다. 1949년 공산화 이후 서구 대중문화의 수용은 하나의 금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1966년부터 10년간 이어지던 문화대혁명 시대의 광기는 중국 스스로도 문화에 대한 이해를 재고하게 했다. 1980년대에 집권하면서 실익을 중시하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내세운 떵 샤오핑(鄧小平)은 문화수용 면에서 상당히 유연했다. 이 시대를 파고든 것이 인도문화다. 인도문화는 광기의 시대에 대한 암울한 역사의 기억을 이겨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공허한 중국인들의 마음에 인간에 대한 사랑, 정, 개방 등을 소재로 한 인도문화의 반향은 컸고, 이런 흐름은 서서히 약해지기는 했지만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지금 한국 대중문화의 유행을 바라보는 시각의 상당수는 인도 대중문화의 수용과 한국 대중문화의 수용을 유사하게 본다. 인도의 정신이 당시에 중국인을 사로잡았던 대신에 지금 한국문화는 소비중심의 자본주의 문화를 담고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 파고든다는 것이다. 그들이 한국문화를 인도문화에 견주는 이유 중 하나는 인도문화가 지금은 중국 내에서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듯이 한국문화 역시 오래지 않아 이 영역을 잃어갈 것이라는 자신감의 발로다. 대부분의 중국 문화평론가들은 한국 대중문화가 갖는 품위와 미적 감각이 그다지 높지 않고, 연예인의 개성이 부족하며, 작품 역시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미국이나 일본의 대중문화의 혼성모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 대중문화가 이미 미국이나 동구를 포함한 유럽, 일본 문화를 거친 중국인들에게 어떻게 수용되는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이후 중국에서 미국의 대중문화 수용은 상업적인 이유에서 개봉을 제한하는 등 몇가지 장벽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다. 지금은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가 일주일 만에 중국어 자막으로 처리되어 출시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2위안(한화 240원 가량)이면 대여해 볼 수 있다. 일본문화 역시 1980년대 이후 중국에 들어와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홍콩, 대만 드라마와 더불어 삼각편대를 이뤄 드라마 제작능력이 떨어지던 중국의 안방을 점령했다.
뻬이징대에서 대중문화를 전공하는 김진열(金鎭烈)씨는 “97년 중국에서 방송되어 남녀노소에게 사랑을 받았던 「사랑이 뭐길래」의 경우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과정을 완만하게 풀어가 중국인 모두에게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에 진출한 대중음악이나 드라마들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스포츠, 패션쇼 등과 같은 문화상품들의 영향이 크다”고 평하면서, 이런 움직임은 샹하이(上海), 꽝저우(廣州) 등을 중심으로 다시 주체적으로 재편되고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탄탄한 문화적 기반을 가진 중국문화 내부에 흡수될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톈진대학에 다니는 쟝꺼우싱(張國興)군은 중국 청소년들이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드라마 안에 가끔씩 나타나는 연기자들의 유머나 미모, 화려한 소품 때문이지, 드라마의 이야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한다.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속도가 빠르고, 현대적인 느낌을 가졌다는 것이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선호 이유였다.
중국 문화평론가 난쥔(南君)은 한국문화가 중국에 파고들 수 있는 배경으로 한국문화가 현대적인 모습을 담고 있지만 내용은 매우 전통적이라는 점을 꼽는다. 특히 서구나 일본 드라마가 갖고 있는 음란성이 없다는 점도 중국인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요인으로 본다. 또한 효와 의를 중시하는 풍토가 중국인의 정서에 맞는다고 분석했다. 특히 중국의 드라마 제작기술이 아직 부족한 탓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흐름도 곧 바뀔 수 있다. 새 밀레니엄을 맞은 중국 내에서 가장 인기를 끈 드라마 중 하나가 상하이에서 제작한 「연애편지(情書)」였다. 이 드라마는 신세대 한국 드라마들의 강점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물질적으로나 숫적으로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는 중국이 홍콩, 대만의 드라마 제작기술과 방식을 수용하면서 제작능력이 크게 향상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드라마에 대한 호감도가 급속히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중국정부 역시 공산주의 이념과 상치될 수 있는 소비중심의 상업주의 문화에 아직까지는 별다른 방해를 하지 않고 있다. 단적인 예가 10월 1일부터 시작되는 국경절 기간에 ‘한류’를 이끈 한국 가수들의 뻬이징 공연을 허용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 공연기획자의 사기로 인해 취소된 이 공연은 이미 문화의 주기상 생명력에 한계가 있는 한국 대중문화의 수명을 줄이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한류’도 1980년대 중국을 풍미하다가 사라졌던 인도문화와 같은 운명일까. 가장 다른 것 중의 하나는 인도가 정신문화 등 비물질적인 요소로 중국에 찾아든 반면, ‘한류’는 중국인들 스스로가 가장 중시하는 경제적인 요소와 더불어 각종 마케팅 기법이 함유된 문화상품과 함께 접근한다는 점이다. 다만 정체성도 뚜렷하지 않고, 고집해야 할 우리만의 것도 없이 시류에 따라 부유하는 지금의 ‘한류’가 분명한 제 위치를 찾지 못한다면, 대하(大河)에 휩쓸려버릴 수 있는 가능성 역시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