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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통일, 이질성과 동질성의 변증법
또하나의문화 통일소모임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또하나의문화 1999
김귀옥 金貴玉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상근연구원
통일은 ‘신랑’처럼 결혼행진곡을 울리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신새벽의 ‘도둑’처럼 발소리도 없이 들이닥치는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진보적 독일지식인들은 흡수통일이나 급속한 통일을 반대했다. 우리는 숱한 통일독일의 명암 속에서 통일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과거 정부의 통일창구 단일화 논리가 1988년 이래 급진적인 통일운동에 의해 무너지는 시대적 전환점과 맞물리며 확산되었다. 이제 누구도 통일은 케사르(Caesar)의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은 상식이 되어버린 평화통일을 얘기했던 이땅의 빨갱이들─조봉암(曺奉岩)·장준하(張俊河) 등 수많은 통일일꾼들─은 불경죄에 걸려 처참하게 사라져갔으며, 여전히 현실과 논리 사이에는 큰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1998년의 정권교체는 이른바 ‘빨갱이’ 취급을 당했던 사람이 최고권력자도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화함으로써, 한때는 냉전의 언어 속에서 케사르의 전유물인 양 치부됐던 민주니, 통일이니 하는 신화가 급속하게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같은 케사르 신화에 틈내기를 하는 ‘또하나의 문화’ 통일소모임이 1996년에 이어 1999년 하반기에 ‘통일된 땅에서 더불어 사는 연습’ 두번째인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펴냈다. 그들은 더이상 북한을 북한이라 부르지 않으며, 또 남과 북을 남한과 북조선이라 부르도록 북과 남의 사람들에게 제안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등장시킴으로써 통일이 제도권 정치가나 통일운동가들만의 것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상세계의 구성원이나 실천가들이 분단구조를 인식하는 코드, 통일을 사고하는 태도와 (무)의식, 실천 등에 관한 다채로운 글들로 구성된 2부야말로 이 책의 맛을 듬뿍 담고 있다. 『레드 콤플렉스』(강준만 편역, 삼인 1997)가 3인칭의 시점에서 반공이데올로기가 인간의 사고와 행위를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보여준다면, 여기에 실린 「내 몸 속의 반공주의 회로와 권력」은 1인칭 시점에서 반공이데올로기에 포획된 개인과 사회를 성찰하는 깊이를 보여준다. 또한 고등학생에서부터, 비운동권 대학생, 수녀, 주부─그렇다고 이들이 단순한 일상인은 아니다. 이들은 대개 ‘또하나의 문화’나 유관단체들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각성된 소수이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들이 분단과 통일을 어떻게 사고하고 코드화하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정부와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통일언론을 만들어나가는 대중매체의 생각을 전하고, 대북지원 사업가의 대북인식과 통일전망을 소개한다.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독자로 하여금 통일을 ‘어떻게’의 문제에 앞서 ‘누구’의 문제와 관련지어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 문제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대개 한번쯤은 생각할 법한 문제를 쟁점화한 3부도 흥미롭다. 여러가지 쟁점들은 다음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는데, 첫째 평화와 통일의 상관관계 문제, 둘째 단일민족 이데올로기 문제, 셋째 문화적 동질성 딴지걸기 등이다. 이 세 가지는 한 몸통에서 나왔으나 서로 얽힌 채 다른 모습을 지닌 것들이다.
책의 전체 구성이 긴밀하지 못하다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이 책의 정답 없는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평자도 충분히 공감하는 터라 스스로에게 딴지를 거는 마음으로 몇가지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 우선 이 책의 기조를 이루는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개념은 과연 역사적인가? 79면에서 남북 정권의 공생관계의 예를 제시하고 있는데,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개념은 과거 냉전시대 서구의 지식인들이 양비론과 음모론적 관점에서 발전시켜온 것이다. 한완상(韓完相)은 이 관계를 남북 정권의 음모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의도는 적대적이지만 결과적으로 공생하게 된 것으로 해석하는 반면, 리영희(李泳禧)는 남북간의 모든 문제에 대해 인과관계의 구조 안에서 생각해야만 한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공생적인 것과 의도 자체가 공생적인 것이 별개의 문제라면, 한반도 문제를 보는 자세는 인과관계의 구조적 성찰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다음으로 이 책은 이질성(다양성)과 차이에 근거한 통일논의에서 빠진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한때 통일운동이 문화적 동질성을 강조했던 것은 이질성 문제와 북한 악마론을 연관지어온 반공주의 담론의 고리를 끊어내고자 했던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래 다양성에 근거한 통일논의가 점차 대중성을 얻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언급해야 하는 것은 차이의 역사성과 진보성에 대한 이해의 문제일 것이다. 다시 말해 ‘통합’이 다양성의 절충이 아닐진대, 왜 차이가 생겼고 새로운 사회의 전망에 비추어 어떤 것은 취하고 어떤 것은 버려야 하는가에 대한 종합적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어떤 동질성─예를 들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나 권위주의─을 거부하되 어떤 이질성 또한 배격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한편으로 이 책은 주로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통합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어서인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적·정치군사적 시각이 잘 드러나 있지 않다. 햇볕정책과 페리보고서는 어떤 관련이 있기에 남한 정부나 관계, 학계에서는 페리보고서의 개봉에 전전긍긍했을까? ‘또하나의 문화’가 이 문제 자체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해도 시민사회 수준에서 그러한 관계를 어떻게 인식해서 한반도 문제를 풀고 통일정치를 일상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더 숙고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주장하듯 동질성이 선이고 이질성이 악은 아니며 그 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통일이나 한반도 문제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절실하다. 나아가 통일된 사회문화의 전망은 이질성과 동질성의 변증법적 사고 어딘가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