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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21세기, 어떤 시대인가

 

세계화와 국민경제의 긴장

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현황과 대안

 

 

유철규 劉哲奎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경제학. 편서로 『구조조정의 정치경제학과 21세기 한국경제』가 있음. yoocg@mail.skhu.ac.kr

 

 

오늘날 진행되는 세계화(globalization)는 ‘자본’의 세계화이고, 구체적으로는 국제적 금융자본을 필두로 하는 초국적기업의 자유화이다.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세계화를 경제개방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대다수 국민경제들에 있어 세계화는 재앙이 되고 있다. 세계화의 혜택과 위험은 각 국민경제에 대단히 불균등하게 작용하며, 그 혜택은 세계화를 주도하는 소수의 국가들, 그리고 이들 구가 내에서도 소수층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많은 경우 세계화는 국민경제의 조정기능을 약화시킴으로써, 국민경제의 내적인 발전동력을 파괴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기도 한다. 세계화에 따른 국민경제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한국경제도 외환위기 이후 세계경제로의 통합이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취약성이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외국 금융투자가들의 손에 국민경제의 운명을 내맡기지 않으면서 세계화라는 조건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맹목적 신뢰를 버리고 국민경제의 내적인 연관성을 높일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공존할 수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전략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국민 다수의 민주적 참여를 도모할 수 있는 개혁방안들이 고안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적 참여는 우리 사회가 자본의 해외탈출을 초래하지 않고도 새로운 개혁방안들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1. 세계화와 국민경제

 

세계화는 현대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인 변화를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유행어이다. 세계화란 금융자본을 핵심으로 하는 자본의 세계화이며, 이를 이끌어가는 실체는 초국적인(transnational) 기업이다. 현재의 세계화는 바로 전세계가 초국적기업들간의 경쟁과 각축전의 장소로 통합되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초국적기업들은 전세계를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엮어가는 가운데, 국민국가라는 경계를 무너뜨려야 할 장애로 여긴다. 국민국가들간에 존재하는 상이한 정치권력과 제도, 그리고 역사적 차이마저도 제거되어야 한다. 최소한 경제활동의 공간을 단일하게 통합할 만큼은.

한편 국민국가는 자본만큼 세계화되고 자유화될 수 없기에 거기에 몸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공간이 바뀌어가는 데 참여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름 모를 투자가들과 초국적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에 의해 자신들의 운명이 좌우되는 데 저항한다. 즉, 사소한 수익률의 차이로 국제자본이 대량으로 유출입되고 이로 인해 자신의 의지나 잘잘못과 무관하게 삶이 극도로 불안정해지는 왜곡된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의 삶을 그나마 덜 위협하는 방식으로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제자본의 활동이 국민경제의 발전에 봉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며, 또 국민경제 내 생산과 소비, 투자와 저축 간에 상당한 연관성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이때 의지할 수 있는 중요한 보루의 하나가 국민국가의 정치적 권력이며, 이를 통한 경제에 대한 의식적 개입이다. 민주주의는 자본 세계화의 희생자가 될 위험에 처해 있는 이들이 스스로 국가권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에, 그 발전도 필수적이다.

오늘날 세계화가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발전과 충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유권자들의 경제적 생존과 ‘모든’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형평과 공공의 복리라는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시장경제에서는 기업가적 자유와 경쟁에서의 승리가 우선적인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승리자의 권리가 관철되며 경쟁의 패배자에 대한 배려는 없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간의 균형은 각 국민국가의 내부적 조정기능에 의해 달성될 수밖에 없는데, 자본의 세계화는 국민국가의 힘을 약화시키는 한편 기업가와 주주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관철시킴으로써 양자간의 균형이 붕괴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힘으로 표현되는 자본의 세계화와 국민국가의 이해의 대립 및 충돌은 단순하지 않다. 비록 국민국가의 권력이 초국적자본의 활동에 장애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면서도 초국적기업들의 활동은 그들이 몸담고 있는 개별 국민국가의 정치권력과 정책적 개입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시장’(market)은 법률과 관습을 포함하여 특정한 제도적 틀 속에서만 작동할 수 있으며, 스스로는 자신이 움직일 비경제적(혹은 비시장적) 틀과 조건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의 제도적 틀과 정치적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여전히 개별 국민국가의 정치적 권력일 수밖에 없다. 즉, 한미·한일 자유무역협정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도, 유럽시장의 통합도, 그리고 IMF(국제통화기금)를 통한 개발도상국의 시장주의 개혁도 최종적으로는 관련된 국민국가들의 정치권력이 직접 행사되고 개입된 결과이다. 결국 초국적자본의 활동은 국민국가(혹은 국민경제)를 부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진행되는 자본의 세계화 과정은 대단히 불안정하며 모순적이다. 세계경제의 불안정은 초국적화하는 자본의 활동을 조정할 수 있는 주체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계속 심화될 것이다.

금융자유화를 중심으로 해서 자본에 대한 사회적 규제의 폐지는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을 크게 증가시키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다음 세 가지 측면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대다수 국가에서 정책자율성의 위축에 따른 국내적 불안정성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실업 문제나 사회복지 문제의 개선을 위해서 투자 확대나 정부지출 증가가 필요하더라도, 이를 위한 이자율 및 세율 조정은 곧바로 자본의 국외 유출을 초래함으로써 사실상 정책의 유지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단기자본의 이동인데, 만약 국내든 국외든 투자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정책이 시행되면, 이들은 그 국가로부터 자본을 빼서 해외 단기자산에 투자할 것이다. 어떤 지역에 얼마나 어떤 내용의 투자를 할 것인가에 대한 자본의 결정력이 증대함에 따라 소득 재분배, 환경문제, 복지, 노동조건 등을 둘러싼 국내의 갈등은 첨예화할 소지를 안고 있다. 둘째, 현재의 세계화 추세가 세계경제의 3극인 북미, 서유럽,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제한되고 여타 지역은 배제되는 경향을 띰으로써 국가간·지역간 불균등성이 커진다. 70년대 들어 오일달러의 환류(還流)가 개발도상국의 광범한 외환위기로 마감된 이후 최근까지 3극 지역과 그외 지역 간의 경제적 연관성이 현저하게 축소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세계시장의 통합과 더불어 국제정치적인 갈등이 심화되어간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자주 지적되는 것이지만 금융자유화가 투기적이고 비생산적인 금융활동을 촉진한다는 점이다. 투기활동에 의한 국제금융시장의 위기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화에 대응해 국민경제의 지속적 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을 병행시킬 수 있는 새로운 경제체제의 고안이 점점 더 절실해지고 있다.

 

 

2. 아시아 경제위기와 세계경제의 불안1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는 세계경제의 통합과정이 국민경제에 일으킨 마찰과 긴장의 한 예이다. 아시아 경제위기의 전개를 둘러싸고 상이한 주장들이 대립했지만, 세계 자본주의체제에 있어서의 아시아 경제위기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로, 위기 진단에 관한 문제이다. 세계경제에 미친 파괴적 영향력과 그 심도로 보아 이는 아시아만의 위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러시아와 브라질 등 남미 각국에, 그리고 미국의 헤지펀드에까지 영향을 미쳐 세계공황의 가능성을 어느 때보다 높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시아의 위기는 개발도상국 가운데 산업발전 면에서 가장 선진적인 부분, 글로벌화한 세계경제에 가장 깊이 통합된 부분, 금융자유화를 가장 선도적으로 수용한 부분에서 일어났다. 결코 세계시장에서 배제되어버린 부분에서 일어난 위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와 국제금융자본은 위기국의 내부 문제에만 촛점을 두었다. 금융자유화와 개방의 위험을 과소평가하려는 의도로 위기의 ‘전염효과’는 최소한 위기 초기에는 인정되지 않았다. 애초 위기의 원인을 형성했던 아시아지역으로의 자본유입과 다국적기업간 투자경쟁의 경과도 무시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아시아 자본주의체제의 결함에 관한 서구의 진단은 결과론적이었다. 언제나 패배자는 사전에 이미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에 대한 금융자본의 유입은 세계에서 자본축적이 가장 왕성했던 이들 지역에 대한 다국적기업간의 투자경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으며, 이 경쟁에는 한국과 같은 선발 개발도상국의 자본도 참여하고 있었다. 사실 과잉생산의 위험은 위기 이전에는 상당부분이 ‘잠재적’이었다. 인도네시아의 국민차사업이 기획단계에 있었고, 대만의 반도체생산이 본격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한 데서 보듯이, 위기의 싯점에서 생산과잉이 본격적으로 ‘현실화’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전통적인 산업자본간 경쟁전이었다면 과잉투자가 현실화되어야 조정이 발생하며, 그 조정은 서구의 다국적기업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사실, 동구 등 중화학공업제품 새로운 시장에서 이루어지던 아시아 자본과 서구 자본 간의 경쟁의 승패를 예단하기는 어려웠다. 예를 들면, 대우자동차는 폴란드 자동차시장의 40%를 선점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규모의 경제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고, 기아자동차는 인도네시아의 국민차시장을 선점했으나 투자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러나 잠재적인 과잉생산의 분위기만으로도 금융자본이 아시아로부터 이탈하기에 충분했다.

둘째, 위기의 배경에는 세계경제의 금융자본화가 자리잡고 있다. 산업자본간 경쟁전의 격화에 따라, 아시아지역에서 투자수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확산됨으로써 곧바로 자본의 이탈이 가능했던 것은 세계경제의 금융자본화가 크게 진전되었음을 의미한다. 산업자본의 투자와 회수 속도는 금융자본의 그것에 원천적으로 미치지 못한다. 정보기술의 발전과 자본이동의 자유화 자체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조정속도 차이를 더욱 확대했다. 아시아 경제위기가 보여주었듯이, 산업자본간 경쟁전의 승패는 사후적으로나 판정나는 실제적인 생산의 경쟁력보다는 점점 더 사전적으로 또는 투자 중간 싯점에서 일어나는 국제적 금융자본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일단 금융자본에 의해 패배자로 선정되면, 자금조달 비용이 급등하게 되고 그 경쟁력이 일순간에 하락한다. 이런 의미에서 금융자본의 지배가 확립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과 제대로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1998년 상반기부터 세계적 차원에서 위기대응을 위한 개입이 있었다. 미국을 주도로 일본, 유럽 각국 간에 유동성 확대(및 금리 인하)를 위한 정책공조가 실행되었으며, 국제금리의 인하를 배경으로 한국 등 아시아 위기국에도 일정한 수준에서 유동성 증가와 재정적자가 허용되었다. 따라서 선진국간의 공조적 ‘개입’이 세계공황의 발현을 억제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국내경제에서 시장실패에 대응해 국가의 개입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국제적 수준의 개입 공조에 의해서 위기가 전면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시아 경제위기는 세계 차원에서 자유화된 시장이 실패한 결과였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이러한 사실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IMF의 개입이 결코 ‘시장적’이지 않으며, 매우 강력한 정치적 개입방식이라는 점과 잘 부합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언급되듯이 신자유주의하에서 국가(및 경제에 대한 정치적 개입)가 일방적으로 후퇴하는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의 개입방식과 개입방향이 바뀌는 것으로 인식할 필요성이 크다.

넷째, 아시아 경제위기는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 전망에 대해서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제외하면 기존의 개발도상국 발전모델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전세계에 걸쳐 130개국을 넘는 개발도상국에서 발전의 문제란 바로 산업구조의 의도적인 변화가 가능한가의 문제이기도 했다. 따라서 발전은 필연적으로 시장의 비교우위 법칙에 저항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50〜60년대의 발전경제학이 새로운 산업부문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이유였다. 실제로 동아시아는 오랫동안 발전의 성공사례였다. 성공적인 구조조정으로 건전한 거시경제적 성과를 달성했던 사례로 소개되곤 했던 것이다. 좀더 일찍이 발생한 모든 개발도상국의 경제위기에 대한 정책처방은 예외없이 동아시아를 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아시아에 위기가 발생하자 그간 의도적으로 무시해온 아시아 경제의 특성, 즉 서구적 기준에 비추어 비시장적 방식으로 산업발전을 추진했다는 특성이 갑자기 부각되었다. 이제 친(親)시장적인 성장의 본보기로 추켜세워지던 아시아의 경제는 거꾸로 시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되었다. 이를 대신해서 개발도상국의 자본주의 발전모델로 등장한 것이 미국경제이다. 일본의 장기침체와 통일후 독일 자본주의의 부진에 이어 아시아형 발전모델이 무너짐으로써 이제 현실적으로 개발도상국들이 모델로 삼을 만한 경제유형은 없어진 것 같다. 이로 인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미국경제의 부침에 의존하는 정도는 훨씬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몇몇 예외를 제외한 대다수 개발도상국에는 미국을 모델로 삼으라는 말이 곧 발전을 포기하라는 말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 미국경제의 사소한 변화나 정책 실수가 미국 모델의 추종을 거부할 명분을 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으며, 마지막 모델의 붕괴가 현 세계화 과정의 혼란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더구나 지난 수십년간 금융자본의 양적 확대는 경제잉여를 창출해야 할 실물부문의 확대를 압도적으로 능가해왔다. 이는 어느 싯점에선가 금융자본을 부양할 경제잉여의 부족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세계 자본주의 성장의 절반을 담당했던 아시아 산업의 붕괴는 금융자본을 부양할 경제잉여의 부족을 한층 심화시킬 것이다. 더욱이 신자유주의 개혁은 기존의 질서와 체제를 해체하는 데 중점을 둠으로써 성장의 측면에서 아시아 각국의 경제제도가 갖고 있었던 강점을 파괴하는 데 비해, 다른 대안체제를 형성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3. 세계화의 이념 신자유주의와 불안정의 확대

 

위기 이후의 아시아 국가들에서 최대 문제는 자국의 계급관계를 내부적으로 조정할 힘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구의 과거 복지국가 체제에서 보듯이, 국민경제 내부에서 계급 관계가 조정되기 위해서는 경제잉여를 정치적으로 재분배하고 투자 결정시 계급타협적인 배려가 이루어져야 한다. 잉여를 재분배하는 유력한 방식은 공적인 지출이겠지만, 국제금융시장과 신자유주의 개혁은 재정지출의 축소를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계급갈등을 해소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재분배가 허용되기 어렵다. 또한 금융자본의 논리는 투자에 대한 공공적인 결정 가능성을 제한한다. 따라서 위기 국가들이 내부적 계급갈등을 어떻게든 완화하고 그에 근거해서 성장을 회복한다면, 그것은 신자유주의 개혁이 불철저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폭압적인 방식으로 계급갈등의 표출을 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현실사회주의가 그러했던 것처럼 자본주의도 다양한 유형을 갖고 있다. 2차대전 이후만 보더라도 다양한 자본주의체제는 대체로 일본형, 독일형, 그리고 영미형으로 유형화되곤 했다. 물론 같은 유형 내에 속하는 국민경제간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차이들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계급모순을 처리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사회적 합의에 의해 계급갈등이 처리되는 방식과 계급갈등을 개인간 갈등으로 환원하는 방식 간의 다양한 조합들이 체제유형의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각국의 자본주의가 하나의 체제로 재생산되려면 반드시 계급간·계층간 갈등을 처리하는 제도적 장치 혹은 메커니즘을 갖추어야만 하는데, 이는 결국 각국의 역사적 경험과 조응하기 마련이다. 세계화의 예찬자들은 경쟁의 논리를 극대화할 경우 가장 효율적인 혹은 가장 선진적인 체제만이 남고, 기타의 유형들은 소멸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세계화는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는 셈이다. 그러나 과연 세계화가 자본주의 유형간의 차이를 소멸시킬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세계에서 절대다수의 경제와 지역이 세계화 과정에서 배제되어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세계적 분업체제가 유지되는 한 각국의 산업구조상 차이가 소멸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의 세계화는 전세계적 차원에서 분업구조를 고착화하면서 산업발전의 격차를 확대하고 있다. 자본주의 유형간 차이의 중요한 척도인 금융씨스템의 경우도 산업구조와의 조응이 중요하기 때문에 동형화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미국 기업이 선도적인 규제완화를 통해 타국의 경우보다 사적 비용을 더 많이 사회적 비용으로 떠넘긴다는 사실이다. 이 사회적 비용은 공적인 복지체계를 강화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연구개발비일 수도 있으며, 사기업이 담당하는 노동자교육 투자비나 환경오염에 대한 추징금일 수도 있다.

타국보다 앞서서 규제완화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미국의 기업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상대적으로 적게 짐으로써, 자유화된 세계시장에서 비용 면의 우위를 누리고 있다. 이 비용 우위가 세계시장에서 ‘우수한’ 경쟁력을 갖게 되는 요인이다. ‘자유로운’ 세계시장에서는 사회적 통합을 위한 기업지출이 많거나 사기업의 노동자교육 비용이 높거나 환경부담금을 많이 내도록 하는 체제는 비효율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적어도 2차대전 이후에는 사회발전과 더불어 기업이윤 추구가 야기하는 사회적 비용을 그 비용 발생의 주체인 기업에 부담시키는 많은 제도적 장치들이 발전했다. 현재 진행되는 방식의 세계화는 이러한 사회발전의 성과들을 사적인 비용의 측면에서 비효율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폐기하도록 강요한다. 사회적으로 가장 비효율적인 체제와 기업이 시장 기준으로는 가장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의 세계화를 주도하는 이념으로서 신자유주의는 결코 인류 역사에 진보를 가져올 수 없으며, 거꾸로 역사발전에 반동적인 이념체계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의 위기는 위기 당사국들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 전반에 걸쳐서 가장 반사회적인 자본주의 유형을 채택하도록 하는 또하나의 계기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각국 내부의 사회적 갈등은 증폭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또한 신자유주의는 이윤추구라는 관점에서 다국적 자본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지역과 국가 들을 세계화로부터 배제하기 때문에, 지역간·국가간 긴장도 증가시킨다. 이념대립이 일단 종식된 이후 지역간 분쟁이 격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발전의 전망을 잃고, 삶의 질이 악화되는 가운데 분쟁의 확대는 거의 필연적이다.

 

 

4. 구조조정과 한국경제의 위기화

 

또다시 경제위기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정부가 IMF체제를 극복했다고 선언하고, IMF도 한국의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칭찬한 지 몇달 지나지 않아 시작되었다. 기존 제조업은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대표적 내수산업인 건설업은 공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선진적인 산업구조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선전되던 벤처산업도 시간이 갈수록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은행을 대신할 것이라던 주식시장은 자생력을 잃고 약간의 외국인 자금만 빠져나가도 휘청거리며, 오직 외국인 투자가의 은혜로운 손길만 기다리기에 이르렀다. 국내 투자가들이 외국인 투자가의 행태를 추종하면서, 한쪽에서는 남아도는 자금이 갈 곳을 몰라 헤매고, 다른 쪽에서는 웬만한 대기업도 자금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살아남기 위해 국제기준의 자본비율(BIS비율)을 맞추기에 여념이 없는 은행은 기업금융을 포기하고, 그나마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가계금융에만 매달린다. 깎이기만 하는 임금과 늘어나기만 하는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위기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견뎌온 노동자들도 이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IMF와 정부가 추진해온 구조조정에 전면적인 반기를 들고 나설 태세이다.

지난 2년간 경제를 지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소비와 투자마저 급속히 축소될 기미가 보이고 있다. 자금난 속에서 기업들이 투자를 포기하고, 부채가 늘어나고 소득은 회복되지 않는 가운데 중·저소득층 가계가 더이상 씀씀이를 유지할 수 없게 된 탓이다. 고소득층과 중·저소득층 가계의 소비 및 소득 불균형은 이미 위험수준에 다다라 사회적 통합을 파괴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회적 통합의 파괴는 산업구조의 통합성과 상호의존성이 약화되거나 파괴되는 현상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경제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이 점점 더 한국경제의 다른 부분들과 관련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미 지나치게 높았던 수출의존도는 적정수준으로 조절되지 못하고 외환위기 이후 오히려 더욱 높아졌으며, 충분한 국내저축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외자에 의존하는 정도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한 부문의 호황이 다른 부문으로 확산되는 경로가 파괴되면서 수출의 호황이 내수의 회복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외환위기 이후의 구조조정과 제도변화 가운데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각 구성요소들이 상호 연관성을 잃어가고 있다. 만약 새로운 경제위기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경제의 부문간에 최소한의 연관성과 상호보완성이 유지되어야 개방과 해외자본의 유입이 국민경제에 유리한 방향으로 관리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못하면 국민경제에 위기요인을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지적한 국민경제의 해체현상은 1999년과 2000년에 걸쳐 대단히 높은 경제성장률이 유지된 가운데 일어났다. 이상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2년 가까이 고성장을 지속하면서, 그리고 공식적으로만 109조원에 달하는 공적 자금을 집어넣고도 부실채권은 기대한 것만큼 줄어들지 않는다. 더이상 대외적으로 순채무국이 아닌 한국에서 기업뿐 아니라 금융기관까지 외자유치에 갈수록 목을 매고, 자본시장의 외국인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국내 저축은 투자를 압도해서 남아도는데, 남아도는 자본은 국내 기업의 정상화와 금융기관 부실채권의 감소에 기여하지 않는다. 선진경제의 조건이라는 국내 저축과 국내 투자 간의 연결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두 가지 대답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기존에 IMF가 강요하고 한국정부가 거의 맹목적으로 추종해온 구조조정은 애초부터 방향이 잘못 맞춰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답변이 한국경제의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점 자체를 의문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하나는 IMF 구조조정의 내용과 방향은 올바른데 한국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이같은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정확한 판단인가를 알려줄 실마리는 우리보다 앞서 외환위기를 겪었고 아직도 구조조정에 매진하고 있는 남미의 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과 IMF는 한국에 요구한 것과 대동소이한 내용의 구조조정을 1980년대 초 이래 남미의 외채위기 국가들에 강요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잃어버린 10년’을 넘어서 멕시코는 18년째 구조조정을 계속하고 있다. 멕시코의 경우 상업은행의 자산에서 차지하는 부실채권의 비중이 1994년에 10% 수준이었다가, 1995년에는 16%, 1996년에는 21%로 증가했다. 그런데 1995년과 96년은 바로 멕시코 경제가 급격한 회복세를 보이고, IMF도 구조조정의 성공사례라고 추켜세우던 시기였다. 정도의 차이만 빼면 한국의 현 경제상황과 놀라우리만치 비슷하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IMF와 국제금융자본측은 구조조정의 방향은 옳지만 남미 국가들의 정부와 국민이 열심히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탓이라는 진단을 되풀이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구조조정을 반복해 기존의 경제구조와 제도를 파괴하면서도 새로운 제도를 창출할 여유를 주지 않은 데 있다. 외국자본이 소유한 금융기관은 더이상 국내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데 관심을 갖지 않고, 주식과 채권시장에 투자된 외국자본은 장기적인 산업발전에 관심이 없다. 한국도 이미 위기와 구조조정의 반복이라는 남미와 러시아의 경험을 뒤따라갈 준비를 갖추었는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앞서 이루어 세계경제에서 지배적 위치를 점할 수 있었던 소수의 선진국가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후발산업화국가 혹은 개발도상국은 체제상의 결함을 갖고 있기 쉽다. 새로운 산업화의 룰과 방식이 외부로부터 주어지거나 강제되고, 이 새로운 질서는 내부적 질서와 충돌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급속한 산업화를 추구할수록 충돌을 해소할 시간이 짧아지기 때문에 그 체제적 결함은 커질 것이다.

이 결함들을 편의상 국민경제 전체의 취약성과 기업 등 개별 경제주체의 약점으로 나누어보자. 체제의 결함을 가진 국민경제는 앞의 두 가지 취약성 가운데 최소한 한가지의 결함은 갖게 되는데, 경제개발기 한국의 경제체제에서는 개별기업 혹은 재벌의 취약성이 국민경제 전체의 취약성보다 컸다고 볼 수 있다. 외환위기도 거시경제(fundamentals)의 불안정보다는 개별기업과 금융기관의 문제로부터 발생했다. 그리고 국민경제 전체가 개별기업의 취약성을 보완해주는 양상을 띠고 있었다. 예를 들어 개별기업으로는 필요한 자금을 끌어올 수 없었지만, 중앙은행이 뒷받침하는 은행의 보증이나 기업들의 상호보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개별기업은 자신의 약점 때문에 국민경제 전체의 움직임이나 이해관계에 공조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에, IMF위기 이후 한국에서 새로이 나타나는 경제체제는 취약성의 구조가 거꾸로 되어 있다. 개별기업의 약점은 줄어들되, 그 댓가로 국민경제 전체의 약점은 높아지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약점을 줄일 수 있는 기업이 전체의 극히 일부분뿐이라는 점이다. 한국경제의 현 발전단계에서 미국식 신용평가 기준을 들이대었을 때, 정상적인 신용등급을 받아 제대로 제도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기업은 극소수인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소수의 기업은 국내외 금융투자가의 투자대상이 되지만, 나머지는 시장에서 버려질 운명이 된다. 이 버려지는 부분이 다수를 점할 때 국민경제 전체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전체의 취약성은 소수 개별 구성원의 강점으로 보완하기 어렵다. 한국의 경우 개별 경제주체가 전체에 의해 자신의 약점을 보완받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부실은 증가한다. 과거에는 위험해 보이지 않던 것이 이제는 점점 더 위험해지는 것이다. 구조조정의 성과로 내세워지는 자기자본의 증가, 부채비율의 감소, 상호지급보증의 완전한 해소 등이 기대한 효과를 별로 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호황과 통화증발로부터 발생한 100〜200조원에 이른다는 부동자금이 한켠에서 놀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절대다수의 기업들이 자금난에 빠져드는 기이한 현상은 국내 금융투자가들의 시각이 외국 금융투자가들의 시각과 합치된 결과이고, 따라서 왜곡된 세계표준(global standard)을 추구했던 작금의 개혁은 성공했다(!).

 

 

5. 한국경제의 대안: 국민참여경제

 

현재 한국경제의 개혁을 둘러싸고 현실적으로 관철되는 것은 앵글로쌕슨형(영미형) 자본주의로의 개조이다. 이것은 IMF와 미국의 압도적인 힘에 의해 관철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과거의 씨스템을 개선하는 효과를 지니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개방을 통해 외국인 투자를 촉진하고 한국경제를 세계경제에 한층 더 통합시키는 것을 가장 우선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국민경제의 왜곡을 가져오고 위기요인들을 심화하는 경향이 있다.

개발독재 시기의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 한국경제의 위기요인은 기존 체제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른바 한국의 구(舊)경제체제의 특징은 ‘수출과 외자에 의존하는 노동억압적 발전체제’ ‘재벌체제에 의한 집중체제’라고 할 수 있다. 수출과 외자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세계경제의 불안정성 등 대외적인 충격에 우리 경제가 취약하게 된 요인이었으며, 노동억압적 성격은 임금분배율을 낮게 유지함으로써 국내 대중소비시장의 발전을 억제했다. 또 대기업 및 재벌 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구조는 국내 산업간 연관성을 낮게 만들어 내수시장의 발전이 억제되었다. 따라서 국민경제 발전의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국내 산업간 연관의 확대와 강화, 그리고 내수소비재 시장의 발전을 통한 경제의 ‘두터움’의 확보, 그리고 외자에 대한 의존도를 적정범위 안으로 조정하는 일 등이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과제는 이미 사적 기업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화된 재벌의 생산력을 제도적 차원에서 사회화해 제도적 일치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IMF가 주도한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한국경제의 전개과정은 국민경제의 발전과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한국의 산업화과정 자체가 부정됨으로써, 그 속에서 발전해온 체제부정의 요소와 부분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던 발전의 내적 동력 또한 함께 거부되고 폐기되었다. 수출산업에 대비해 내수산업이 상대적인(혹은 절대적인)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산업간 연관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으며, 국내 저축과 국내 투자의 연관성이 약화되어 외자의존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또 이미 내용적으로 사회화된 재벌의 생산력을 재사유화함으로써 제도적 불일치를 확대했다. 이러한 경향은 IMF의 관리 아래 추진되어온 거시경제 정책과 구조조정 정책에 이미 내재되어 있던 것이기도 하다.

앵글로쌕슨형 자본주의는 나름의 독특한 역사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경제씨스템이며 지고지선(至高至善)의 체제가 아니다. 오히려 경제성과와 관련된 각종 지표는 안정성까지 고려해볼 때 흔히 라인형(독일형)이라고 부르는 씨스템이 우월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앵글로쌕슨형 자본주의가 부분적으로 개혁적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국가재벌체제의 일각을 무너뜨리고 재벌 내부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의 계급갈등과 국제적 마찰을 나날이 증폭시키는 이러한 체제는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할 수 없다. 국제적으로도 앵글로쌕슨형/신자유주의형 자유화는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현재로서는 ‘이해당사자사회’(stakeholding society), 또는 ‘국민참여경제’라는 체제를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체제의 미시단위의 구성과 거시적 조절메커니즘은 아직 정립되지 못했지만 미시적 단위에서는 효율적인 노동자참여 기업과 거시정책으로 생산성을 제고하는 자산재분배 정책을 고려할 수 있으며, 은행과 기업의 관계에 관해서는 일본과 독일 등의 관계지향형 금융을 참조하여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한국경제의 특수성을 그 독특한 성장의 동력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시장과 그것에 대립되는 조직을 어떻게 정의하든, 한국의 개발과정에는 서구식의 시장조직과 달리 국가를 중심축으로 하는 어떤 위계적인 조직형태가 존재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개입이 노동현장에까지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조직은 사실상 노동자에게까지 확장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체제는 직접적인 폭력수단과 이데올로기적 수단을 통해, 그리고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국민적 열망과 결합함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조직의 성공 혹은 국가의 성공과 개인의 성공을 상당부문 동일시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성공’이 기업에 대한 국가의 지원에 정당성을 부여했고, 노동자의 ‘자기희생적 노동’이 당연시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어떤 조직이든 민주주의 사회에 속한 것이라면 조직의 일원이 그 조직의 성과에 대해 권한을 갖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기업에 자본을 제공한 모든 경제주체와 노동자까지도 (나아가 기업의 도산에 의해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되는 모든 경제주체까지도) 기업의 주인으로서 최소한 일부분의 권리는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때 기업의 경영자는 모든 관련 주인의 대리인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경제에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가 왜 경제적 비효율성의 문제로 제기되기보다는, 정치적인 문제로 등장하는지가 이해된다.

만약 한국경제의 산업화가 노동자의 자발적 동원에 기인한 것이라면, 경제성장의 잠재력 유지라는 과제와 부합하는 경제개혁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즉, 지금까지의 경제적 성과(개별기업[군]의 성과까지 포함해서)에 대한 국민의 기여와 권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국민참여경제의 역사적인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주주자본주의는 한국의 산업화과정에서의 기여에 걸맞지 않게 주주에게 과도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권리와 책임, 기여와 보상의 불일치를 확대하게 된다. 노동자를 위시한 이해당사자의 참여는 노동자의 창조적 역할이 갈수록 커지는 새로운 산업구조의 창출과 발전에 꼭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과거와 같은 위로부터의 동원이 아니라 민주적 동원에 의해서 국민의 힘이 끌어올려질 때 지금 겪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글로벌시대에도 탄탄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민주적 동원은 주요 씨스템의 가시적 변화와 함께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며, 새마을운동과 같은 위로부터의 동원에 의해서는 이제 불가능하다. 노동자 등 국민이 미시적 결정단위와 거시 결정단위에 참여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글로벌시대의 시장화가 가져오는 불안정화 속에서 우리 경제가 살아남는 효율적이면서도 형평의 조화를 이루는 지름길일 것이다.

자본이 세계화를 지배하는 현상황에서 신자유주의의 교리에 반대하고 금융자본의 이해에 복종하지 않는 새로운 국민경제의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어려울 수는 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금융자본의 세계화에 대한 최선의 대응책은 그들의 요구에 따라 국민경제를 파편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훼손된 국민경제의 내부적 자생력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파편화된 국민경제는 어느 순간이 되면 금융자본으로부터 버림받게 되지만, 내부적인 발전동인을 유지하는 경제는 금융자본을 유인하며 또 관리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갖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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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절은 유철규 「구조조정의 늪: 신자유주의 개혁의 함정」, 윤진호·유철규 편 『구조조정의 정치경제학과 21세기 한국경제』(풀빛 2000)에 의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