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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학생회와의 행복한 재결합을 꿈꾸며
이호정 李鎬汀
부산대 영어교육과 4학년. nina610@hanmail.net
1. 대학사회는 올해도 어김없이 ‘등록금 투쟁’과 함께 새봄을 맞을 것 같다. 지난 2월 2일에는 전국대학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등록금 인상 저지 성명서를 발표했다. 요지는 ‘1989년 이후 3〜4배나 증가해온 살인적인 등록금 인상을 멈추고 국가 교육재정 6%를 확보하라. 교육의 국가 책임을 회피하는 교육정책을 철폐하라’는 것이다. 학생들의 땀내나는 몸부림(?)으로 가득 뒤덮였던 작년 봄 캠퍼스를 떠올리니 올해는 또 어떻게 지난한 싸움을 이어갈지 안쓰럽다. 새 학기의 흥분을 살풋 안은 채 학문과 교양활동에 전념하는 진정한 상아탑의 봄을 맞을 수 없는 우리 현실이…… 그러나 학교 행정권자들이나 정부와의 싸움에도 기죽지 않고 나서는 대학생들의 모습은 방향성을 잃은 듯 휘청대는 이 시대에 아직 남은 희망의 씨앗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서 이런 행동이 대학생들의 철없는 객기나 시대착오적 행위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비민주적인 기성질서에 안주하려고만 하기보다 부당하다고 믿는 것에 대항하려는 정열, 그것은 점점 더 힘들어져가는 이 시대에는 특히 더 소중하게 품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을 이런 활동 속에 모아낼 ‘학생회’가 이미 위기에 봉착했다는 이야기가 90년대 후반 이후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정치적인 문제는 더이상 대학생들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이제는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그렇다면 대학사회에서 학생회는 이제 더이상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공간인가? 지금 대학생들 의식 속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2. 대학생의 한 사람으로서 시대와 사회의 산물인 나 자신의 경우부터 돌아보자. 그간 대학생들의 성향을 거칠게 표현해서 ‘이념적 정당성 추구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가진 개인주의로의 변화’라고 한다면 나는 그 중간 정도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인물이리라. 『씨네21』을 애독하고 영화·비디오·만화 등의 문화상품을 밤새워 소비하고 즐긴다. 개인주의·자유주의에 익숙하고 밤낮이 뒤바뀐 게으름에 빠져 있다. 하지만 이런 생활 속에서도 마음속에 약간의 찜찜한 갈등을 느끼는 것은 내 생활의 또다른 축 때문이다. 대학신문사 생활 3년 동안 사회적으로 올바른 가치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공동체의 팀워크 속에 공적인 일을 해왔던 것이다. 나의 하루하루가 갈등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오늘날 대학생의 몇몇 타입 중 하나의 전형일 것이다.
사회에서는 대학생들이 이기적으로 변하고 자기보신주의에 빠져간다는 한탄의 목소리가 높다. 비판적 지성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일이 점차 사라져가는 데 대해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많다. 사실 나도 우려스러운 모습을 직접 목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성적을 위해 동원한 모든 수단은 그대로 미덕이 되는 현실…… 인터넷 자료를 그대로 짜깁기한 두둑하고 컬러풀한 리포트 내기는 이제 학생들 사이에선 상식이고, 축소복사해서 커닝 페이퍼를 만든다든가, OHP필름에 시험범위를 복사 인쇄해 시험에 몰래 이용하는 등 최첨단의 방법을 동원한 커닝행위를 주변에서 본 적도 있다. 어느 대학에서는 학점 때문에 부모를 대동해 교수를 졸라대는 유아적인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일부 대학생들의 이런 행위에 대해 한편으로 씁쓸하고 우울하면서도 대학을 둘러싼 우리 사회는 또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구조적으로 대학 또한 거대한 생존경쟁의 고랑에 빠져 대학생이라는 ‘개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허덕여야 한다. 최근 대학가는 제2의 IMF에 대한 위기감이 만연하다. 내가 재학하고 있는 부산대학에서도 인문사회계열 등의 졸업반 선배들이 제대로 취직을 했다는 소식은 거의 가물에 콩나듯 한다. 그들의 위기감은 저학년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요즘은 새내기 때부터 영어·컴퓨터학원에다 학점경쟁이 치열한 실정이다.
도서관은 매일 자리싸움이 벌어질 정도로 만원이지만 책상을 가득 메운 그들이 몰두하는 것은 학문탐구라기보다 학벌차별이 적으면서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 공부 또는 교대 편입이나 서울지역 편입 공부다. 지방대생을 평가절하하는 사회 의식구조의 매서움을 일찍 깨달은 자들의 나름대로 눈치빠른 대응일 테다. 서울지역 대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서열화는 또다른 계급구조를 만들어내 사회적인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 지방대생들은 ‘두뇌한국21’(BK21) 같은 ‘몰아주기’식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시행될 때마다 그 계급의 벽이 더욱 높아짐을 절감하게 된다. 실제 우리 학교 대학원 지원율과 지원자 수준은 계속 하락하는 실정이다. 주변의 다른 대학들에선 신입생 지원자도 매년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부산지역은 최근 경기하락의 길을 걸으면서 일자리가 부쩍 줄어든 탓인지 내 주변만 둘러봐도 대학신문사나 동문 선배들이 서울이나 다른 지방으로 일자리를 찾아가는 비율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물론 대기업은 아니다).
3. 이렇게 제 것 챙기는 데 소홀하다가는 도태되기 일쑤인 살벌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보람있는 대학생활’ 운운하며 야학·동아리·학생회 활동 등에 눈돌릴 틈이 없다고 느낀다. 이를 반증하듯 동아리나 학생회는 해가 갈수록 신입생이 줄어들어 새내기 모집에 온갖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학생회 조직도 학생들의 ‘무관심’이 화두가 된 지 이미 오래며, 선거 투표율이 해마다 하락해 올해의 경우 대다수 대학에서 연장투표 실시로 겨우 투표율 과반수를 넘길 수 있었다. 우리 대학신문사의 사례를 들어보자. 지난해 초에 신문사에 입사한 새내기 중 한 학기 뒤까지 남은 사람은 단 한명이었다. 매년 한 학번에 8명 정도의 인원은 남는 편인데 2000년은 정말 최악의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처음에 들어온 숫자는 13명. 그러나 1명 빼고는 모두가 1〜2주 만에 신문사 생활을 정리했다. 다른 원인들도 있겠지만 요즘 새내기들이 나가는 이유는 “힘들어서” “사람관계 때문에” 등의 예전 문제와는 사뭇 달랐다. “해외연수를 준비하기 위해” “영어공부 때문에” “안정적인 사범대로 전과하기 위해” 등, 사회진출에 대한 현실적인 준비가 예전보다 훨씬 급박해져 피부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예전의 엄혹했던 독재시대보다 더 혹독한 생존의 논리, 교묘한 자본의 논리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이라 학생자치활동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학생회’란 대학생들이 캠퍼스생활을 하는 동안 한명의 사회주체로 민주적인 자치활동을 할 수 있는 터전이다.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소중한 공동체생활을 경험해나가는 근거지가 되기도 하고, 또한 사회진보에 힘쓰는 순수한 지성인으로서 담당해야 할 ‘사회비판’ 기능도 학생회를 통해 의견을 모아내서 힘을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회 사업에 예전만큼 많은 학생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선배는 “학생회와 일반 학생들은 다른 방향을 향해 쏜 화살처럼 하루가 다르게 사이가 벌어져가는 것 같다”는 안타까운 토로를 한 적이 있다. 학생회가 학생들과의 소통에 삐걱거리고 오해와 불신을 빚기도 하는 데에는 생존경쟁에 내몰린 대학생들의 처지, 대대적인 학부제 실시와 학사관리엄정화방안 등으로 과잉경쟁이 조장되는 교육현장 등의 사회적 문제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학생회 사업방식의 문제나 간부들의 경직성 등을 지적하는 학생들도 꽤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우리 대학에서도 이런 현실이 반영된 사건 하나가 크게 불거져나왔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출범식의 우리 학교 개최 여부가 뜨거운 논란거리로 떠올랐던 것이다. 학생회와 학생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쌓여온 학생들의 불만이 이 사안에서 폭발적으로 터져나왔다. ‘학생들에게 동의 여부도 물어보지 않고 총학이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볼멘소리가 총투표 요구로까지 비화되고 뒤늦게 학생총회까지 개최하는 등 한달 내내 학내가 떠들썩했다. 몇몇 학생들은 ‘작은 실천’이란 단체까지 만들어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도 보였다. 학생회에 대한 일반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총학=통일운동이라는 과장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진정한 학우의 대변인이 됐으면’ 하는 의견이 많이 들린다. 이런 분위기는 전국적인 것이다. 한겨레신문사의 하니리포터 싸이트에서도 대학생 기자들이 ‘진정한 학생회’에 대한 논쟁을 한동안 벌인 적이 있는데, 우리 학교 자유게시판상의 논쟁내용과 놀랄 만큼 흡사했다.
4. 학생들과 학생회가 ‘행복한 재결합’(?)을 이루고 진정한 대학인의 상이 캠퍼스에 자리잡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먼저 학생회 사업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포착하는 것이 관건이다. 정치투쟁을 중요시하는 만큼 학내문제와 학생들의 생활적 고민에도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개강투쟁선포식·대동제·농활·학술제…… 등으로 연례행사만을 타성적으로 따라가다가는 빠르게 변하는 학생들 의식을 읽을 수 없다. 또한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과 학생들과의 소통에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학생회의 주인인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파악하고 정서에 맞는 창조적인 방법들을 만들어내는 것, 다양한 통로로 의견을 모으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사회와 철저하게 연관되어 있는 대학사회의 모순은 대학 내에서만 풀 수 없다. 통일운동·민중생존권운동부터 교육의 공공성 문제,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 등 시기마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많은 운동에도 앞장설 수 있는 대학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현 시기 많은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렴해서 새롭게 정치적 지향들로 묶어세우는 것이 학생회가 떠안은 숙제일 것이다. 사실 학생회 간부들도 변하는 시대 속에서 새롭게 거듭날 것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있지만, 내부역량 문제 등으로 당장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점차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서는 학생회가 되어가리란 믿음으로 학생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