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한국아동문학사의 새로운 밑그림
원종찬 평론집 『아동문학과 비평정신』, 창작과비평사 2001
염희경 廉喜瓊
한국방송통신대 강사 nomachingu@hanmail.net
민족문학론을 선도해온 창작과비평사에서 처음 펴낸 아동문학 평론집은 이오덕(李五德) 선생의 『시정신과 유희정신』(1977)이었다. 벌써 이십여년 전 일이다. 그동안 이 책의 현실주의적 관점을 잇는 아동문학 평론집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그러던 중 소장평론가 원종찬(元鍾讚)씨가 『아동문학과 비평정신』을 내놓았다. 오랜 정체에 빠져 있던 아동문학 비평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평론집으로 눈길을 끈다.
『아동문학과 비평정신』은 현장성이 강한 ‘평론’보다는 우리 아동문학을 역사적으로 조명한 ‘연구’ 쪽에 더 무게가 실려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때 역시, 지금 이 자리를 확인하려는 자기점검이 짙게 배어 있다. 예컨대 이 책의 1부는 원종찬 비평의 선도성을 잘 보여준다. 우선 저자는 이재철(李在徹) 교수의 『한국 현대 아동문학사』(1978)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새 밑그림을 제안한다. 한국 아동문학의 기본성격을 현실주의로 보고, 20세기 한국 아동문학의 계보(방정환—마해송—이주홍—이원수—현덕—권태응—이오덕—권정생)를 새로 그린다. 특히 「한국 아동문학의 어제와 오늘」과 그 보론에서는 한국 아동문학의 독자성과 문제점, 그리고 과제를 논쟁적으로 다룬다. 저자는 국정교과서나 신춘문예의 견고한 동심주의와 교훈주의, 또는 그 반대쪽 편향이라 할 속류사회학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구체적이며 개방적인 전망을 이끌어낸다. 이런 점에서 현실주의적 흐름 속에서 창조된 개성적인 주인공들에 주목하거나, ‘새로운 문명을 예비하는 철학’에 근거를 둔 자유로운 동화적 상상력과 성격 창조로 나아갈 것을 역설하는 글도 눈여겨볼 만하다.
2부에서도 90년대 아동문학의 한가운데 서 있는 저자의 성찰과 실천이 뚜렷이 드러난다. 유치한 동심주의를 아이다운 발상과 분명히 구분짓고, 무분별한 감상주의나 관념적 낙관주의도 철저히 경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시대의 아이들과 함께 숨쉬는 창작이며, 그 안에 해방의 계기를 내장해두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3부는 분단상황 속에서 잊혀지거나 일그러진 작가들의 삶과 문학을 매우 꼼꼼하게 챙겨둔 작가론·작품론으로 아무래도 연구 쪽에 기울어 있다. 자료의 발굴과 전시에 그치고 마는 한계를 뛰어넘어 우리 아동문학의 역사를 끊임없이 재점검하고 현재화하려는 실천성을 여기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필자는 한국아동문학사를 꿰뚫는 저자의 일관된 구도에 공감하며, 다만 몇가지 논점만을 확인해두고자 한다. 먼저 방정환 문학의 본질을 ‘근대와의 긴장’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방정환은 계몽주의적 이상과 낭만주의적 이상을 양 축으로 하여 근대와의 긴장을 유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순수한 동심을 기리는 시각에서 웃고 울고 즐기는 감성의 해방을 꾀하는 동시에, 오늘의 어린이는 민족의 내일이라는 시각에서 나라의 동량(棟梁)이 되어달라고 소망하는 두 가지 모순된 요구는 한국의 역사현실이 안고 있는 이중의 과제를 반영하는 것이다. 방정환 문학은 이들 과제와의 대결 곧 ‘근대와의 긴장’을 본질로 하고 있”(91면)다고 평가한다. 여기서 ‘감성의 해방’과 ‘현실성(교육성과 사회성)’은 서로 모순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각각 ‘낭만주의적 이상’과 ‘계몽주의적 이상’에 어느정도 대응되는 것으로 읽힌다. 그런데 방정환의 주도로 조직된 ‘천도교 소년회 유소년부’의 활동방향 가운데 “재래의 봉건적 윤리의 압박과 군자식 교양의 전형을 버리고 유소년으로서의 소박한 정서와 쾌활한 기상의 함양을 힘쓸 것”이라는 항목을 보면, 감성의 해방은 봉건적 윤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차원에서 제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방정환이 추구했던 감성의 해방이란, 엄밀히 따지자면, 동심주의적 요소보다는 반봉건성이라는 근대적 계몽의 요소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방정환의 탐정소설들이 일제 당국의 탄압을 받았던 사실을 들어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 자체가 벌써 그의 문학의 본질을 이루는 ‘근대와의 긴장’이라고 할 수 있다”(74면)는 대목에서는 근대의 내포 및 문학의 내밀한 탄성률이 퍽 단순하게 이해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좀더 치밀한 논증이 필요한 대목이라 생각한다.
다음으로, 판타지의 개념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저자는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근대 판타지로 보면서 「토끼와 원숭이」의 경우 “판타지로서는 「바위나리와 아기별」 이상으로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105면)고 평가한다. 그런데, 현실을 빗댄 우의적 성격의 의인동화(擬人童話)를 판타지와 동렬에서 논의하는 것은 최근의 논의—알레고리와 판타지의 구분, 근대 이성중심 체제에 대한 근본적 물음으로서의 판타지론 등─에 혼란을 가중시킬 위험이 있다. “자연과 신비의 영역에 대한 무자비한 정복을 감행해온 이성만능주의라든지 시공간을 자본의 통제 아래 유폐시킨 근대를 넘어서는 방법의 하나로 ‘모든 존재에 말 걸기’로서의 판타지가 주목”(231면)된다고 하여 근대적 사유틀을 해체하는 힘을 내장한 판타지의 열린 가능성을 주목하는 대목에 이르면 결국 의인동화 설명과는 다른 차원의 판타지 논의임이 드러난다. 이에 대해서는 의인동화나 판타지에 대한 장르적·양식적 해명을 통해 좀더 생산적인 논의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또, ‘생활동화(사실동화)’를 일종의 유년소설·저학년소설로 보는 부분(259면)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해두어야겠다. 모호하게 사용되고 있거나 혼란스러운 개념들에 대한 정밀한 검증을 거칠 때 더욱 유연하고 실천적인 기획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아동문학과 비평정신』은 한국아동문학사를 새롭게 쓰기 위한 도전적인 구상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 한쪽 편에는 ‘작품으로 구성하는 한국근대아동문학사’의 힘이 놓여 있다. 저자가 중심이 된 ‘겨레아동문학연구회’에서 펴낸 『겨레아동문학선집』(전10권, 보리 1999)이 1980〜90년대까지 나아가면 새로운 주고받기가 가능할 것이라 기대한다. 한편 우리 아동문학의 현실주의적 흐름과는 또다른 줄기라 할 윤석중·강소천·김요섭 등에 대해서도 섬세하고 균형잡힌 시각의 재평가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아동문학과 비평정신』에서 시도된 밑그림이 풍부한 작가론·작품론을 통해 체계적이고 역사적인 방법론으로 한국 아동문학에 접근해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