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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수학, 사회와 문화를 들여다보는 현미경
차종천 옮김 『구장산술/주비산경』, 범양사출판부 2000
박창균 朴昌均
서경대 수리정보통계학부 교수 ckpark4g@yahoo.com
일반적으로 수학은 엄밀하고 보편적인 학문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인간이 가진 지식 중에서 수학은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있다. 물리현상이나 생명현상을 직접 다루는 다른 자연과학과는 달리 수학이 다루는 대상은 추상적이고, 이 대상들은 실험실에서는 취급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자연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경험주의의 파고가 드높았을 때, 수학이 합리주의의 요새를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합리적 지식의 증거로서 제시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수학이라는 학문이 가지는 이런 특수성에 기인한다. 수학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20세기초 수학 기초에 대한 논쟁에서 그 정점에 도달한다. 그러나 논리주의, 직관주의, 그리고 형식주의로 대별되는 이 논쟁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가 발표된 후 잠복되고, 수학 자체 내에서 수학의 무모순성을 확립하려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그러나 수학적 지식은 꼭 경험과 독립적인가 하는 데는 다른 견해가 있어왔다. 수학적 지식은 경험의 일반화라는 밀과 같은 견해로부터, 수학은 오류 가능하고 수정할 수 있는 지식이라는 라카토슈의 ‘준경험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장이 제시되었다. 최근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수학이 사회의 구성물이라고 주장하는 ‘사회구성주의’나 수학은 인간적이고 사회·문화·역사적이라는 ‘휴머니스트’도 대두했다. 이러한 주장들은 수학의 근거를 수학 안에서가 아닌 외부에서 찾는다. 여기에서 수학사의 위치는 당연히 매우 중요하다.
수학사를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을 파악하거나 새로운 수학적 지식을 습득하려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수학 고전은 새롭고 창의적인 수학 발전을 위한 지적 자극의 원천이고 그 시대의 문화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지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수학 고전에 대한 이해는 그 시대의 문화에서 가려지고 보이지 않던 부분을 드러내 확대해서 볼 수 있게 하고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이해에 다다르게 한다. 이러한 이해는 순환적으로 다시 개별 학문에 대한 지적 자극과 현실의 장애를 창조적으로 타개할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한다.
이번에 차종천(車鍾千) 교수가 『구장산술(九章算術)』과 『주비산경(周算經)』을 번역하고 주해를 붙인 일은, 수학이 사회적 산물이고 결국 인간활동의 결과라는 특히 20세기 후반의 수리철학과 맥락을 같이하는 뜻있는 작업이다. 그는 문제에 대한 풀이법을 번역함은 물론 오늘날 수학에서 사용하는 친근한 풀이방법을 주해로 제시하여 비교할 수 있게 했는데, 수학과 상당기간 단절되었던 사회학자의 이러한 작업에 수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한편 역자의 역량에 감탄할 뿐이다. 이런 사회학자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또 학제간의 연구가 더 절실한 현실에 참으로 귀중한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구장산술』이나 『주비산경』의 번역은 이 책이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한 동양수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에 그 내용을 좀 알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당위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대로 창조적 상상력을 진작하고 문화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제공하는 유익성 때문에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구장산술』은 서구에서 약 2000년 이상 참된 지식의 표본이라고 여겨진 유클리드의 원론에 비견된다. 『구장산술』은 그 당시 관리들에게 필요한 수학을 모두 모은 것으로서 아홉 장에 246개의 문제를 수록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방전(方田, 경작지의 측량), 속미(粟米, 곡물의 환산), 쇠분(衰分, 차이를 두어 비례 안분하는 계산법), 소광(少廣, 넓이계산법), 상공(商功, 토목공사와 관련된 부피계산), 균수(均輸, 세로 거둔 곡식의 운반), 영부족(盈不足, 과부족셈), 방정(方程, 다원 1차 연립방정식), 구고(句股, 길이계산법) 등이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3세기에 만들어진 『구장산술』에 양수와 음수의 덧셈과 뺄셈이 나타나고 연립방정식의 해법도 세계 최초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음수가 유럽에서 17세기에 데까르뜨 이후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것을 생각하면 매우 앞선 것이었고, 또 연립방정식의 해법도 인도에서 7세기초에 선보였고 유럽에서 16세기에야 등장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구장산술』이 세계수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과소 평가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장인 9장에서 다루는 구고술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피타고라스 정리이다.
『구장산술』의 본문은 문제와 해답 그리고 풀이법의 3단 구조로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풀이법에는 왜 그런 풀이가 정당한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단지 풀이방법, 즉 일종의 알고리듬만 제시되었을 뿐이다. 이런 점은 그리스 기하학에 나타난 논증적인 면과 대비되고 수학적으로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동양수학이 서양수학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양수학자 개개인이 서양수학자보다 지적인 능력에서 뒤떨어져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학사를 통해 보면 뉴튼이나 라이프니쯔가 다른 수학자 특히 페르마보다 더 뛰어나서 미적분학을 발견하고, 볼리아이가 가우스보다 더 훌륭하여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견자라는 영예를 얻은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개인적 기질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사회·문화적인 해명이 필요하다.
중국수학이 논증적이고 공리적 수학으로 발전되지 못한 요인은 무엇인가? 이는 차교수가 부록에 실은 논문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사회적 배경과 문화적 토양이라는 요인이다. 예컨대 『주비산경』은 중국 최고의 천문서이자 수학책인데, 여기서 당시의 우주론인 개천설(蓋天說)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수학은 조세, 토목이나 건축 등 행정을 위한 수학과 농업생산을 위해 역서를 만드는 천문학과 결부된 수학이 전부였다. 그들의 관심은 순수수학보다는 사회활동과 직접 관계가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응용수학이었다. 따라서 통치자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수학(관영수학)이 그들의 관심사였고, 수학은 나라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도구였지 어떤 보편적 진리를 찾는 고상한 것이 아니었다. 순수 또는 응용이라는 수학의 구분도 어쩌면 오늘날의 패러다임에서 가능한 것이지 그들에게는 응용수학만이 진정한 수학이고 수학의 전부였는지 모른다. 이런 인식 아래에서는 추상화되고 일반화된 논증수학으로의 발전은 애초에 기대하기 힘든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중국수학에서는 한번도 본격적인 논증수학이 등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사람들은 매우 실용적이다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그들은 핵무기도 소유하고 로켓도 발사하는 등 응용수학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아마 응용수학이 그들의 문화전통에 적합하고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사료가 부족한 탓인지 모르나 조선시대 수학은 중국수학의 아류로 알려져 있다. 이는 중국수학을 더 개선하려는 의지보다는 정통적인 것이 무엇이냐에 집착하고, 수학책도 산경으로(즉 하나의 경전으로) 경직되게 받아들여 함부로 고칠 생각을 하지 않은 데 그 원인이 있는 듯하다. 특히 수학을 다루는 산사(算士)의 경우 거의 세습되었기 때문에 선대의 작업을 비판하고 개선하려는 작업은 강한 유교적 전통에서 근본적으로 불경스러운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조선시대 수학이 침체했던 것은 우리나라 수학자들의 자질이 중국수학자보다 열등한 탓이 아니라 자유롭지 못했던 사회·문화적 토양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정통성과 명분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논쟁했던 그러한 특질은 오히려 그리스적 논증수학을 철저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문화적 전통을 가진 것이 아니었을까? 우습고 무의미한 가정일지 모르지만 만약 우리나라 옆에 중국이 있지 않고 그리스가 있었다면, 우리나라가 그리스 논증수학을 더 엄밀하게 완성시켰을지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은 나만의 몽상일까?
수학은 문화의 토양에서 발아되고 줄기를 뻗으며 열매를 맺지만, 그렇다고 극단적 문화지상주의에 빠지게 되면 수학지식의 보편성을 설명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를지 모른다. 어쨌든 차종천 교수의 노작을 통하여 우리는 『구장산술』과 『주비산경』이라는 열매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기에 동양의 사회·문화적 토양을 파악하는 데 더욱 가까이 다가선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