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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공지영 孔枝泳
1963년 서울 출생. 198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장편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봉순이 언니』 등이 있음.
부활 무렵
1
“꽃이란 꽃은 다 피었네…… 봄이 오나 했는데 또 이렇게 봄이 가는구나.”
부엌 창밖을 내다보며 멍청하게 혼자 중얼거리다가 순례는 일하는 손을 재게 놀린다. 행주까지 말끔히 삶아놓고 식탁을 대충 보아두자 일이 끝났다. 순례는 거실로 나가 안주인에게 오늘은 좀 사정이 있어서 일찍 가야겠다고 말했다. 연노란빛 가죽소파에 앉아 의상잡지를 보고 있던 안주인은 돋보기 너머로 순례를 바라보았다.
“일은 다 끝내놨구요, 밥도 해놨어요. 국도 다 끓여놨고 조기도 구워놨으니까 사장님 들어오시면 데워 드시면 될 거예요. 저기…… 시댁에 제사가 있어서.”
그냥, 좀 일이 있어요, 하면 될 걸 순례는 있지도 않은 제사를 들먹이며 말을 꺼냈다.
“아니, 남편도 없는 사람이 시댁 제사는 뭘 그리 챙겨? 뭘 보태줄 집도 아닌 것 같은데.”
환갑이 지나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안주인은 목에 맨 긴 씰크스카프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평소 같으면 다 늙은 노인네가 이 봄에 집에서 웬 긴 스카프, 하며 마음속으로 투덜거렸겠지만 지금 순례는 그럴 경황이 없다. 며느리를 둘씩이나 두고 가끔씩 제사에 오너라 못 간다, 전화로 며느리들과 다투던 안주인은 과부인 순례가 시댁 제사에 간다는 소리를 듣고 요즘 젊은애들치고 넌 괜찮구나, 하는 표정이기도 했다. 제사 핑계를 댄 건 잘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안주인이 혹 알게 된 건 아닐까, 순례가 집을 나서려 할 때 지수 엄마 잠깐만, 내일부터 나오지 말아, 내가 소문 다 들었어…… 할까봐 뒷덜미께가 땅겨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90평 빌라를 청소하기가 좀 힘든 구석도 있지만, 식구가 두 사람뿐이니, 편한 집이었다. 그나저나 소문이나 나지 말아야 할 텐데, 큰일이었다.
“미친년, 도둑질을 하다니…… 이왕 도둑질하려면 아예 초장부터 큰 걸로 하나 해서 팔자나 고치고 살지. 나이 마흔이 다 돼가지고, 이게 무슨 망신이야.”
순례는 작업복을 벗고 아침에 차려입고 나온 검은색 투피스로 갈아입으며 투덜투덜 혼잣말을 했다.
“나이 마흔에 무슨 가방을 훔쳐, 훔치긴. 그 가방 든다고 지가 귀부인이 되나.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냐 말이야, 되긴.”
고급빌라들이 늘어선 무지개마을, 불곡산 자락에서부터 골목길까지 순례 말대로 꽃들이란 꽃은 다 피고, 찬바람 속에서도 볕은 뜨거웠다. 저기 무지개마을 삼성아파트는 친구 삼순이가 살던 집이 있었지, 순례는 버스를 기다리며 무지개처럼 멀리 있는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지금 아파트를 지은 저 산에는 임자 없는 무덤들도 있었다. 어른들이 육이오 때 억울하게 죽은 임자 없는 무덤들이라고 가끔 혀를 끌끌 차기도 했던 것 같다. 그 무덤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기 청구아파트 자리는 초등학교 때 소풍 갔던 자리. 친구들은 모두 단무지에 시금치에 당근을 넣은, 빨갛고 노랗고 파란, 꽃처럼 예쁜 김밥을 싸가지고 왔는데 순례는 소풍날에도 까만 보리밥 든 도시락이 부끄러워서 친구들 몰래 구석자리를 찾아찾아 갔다. 그때도 이렇게 꽃들이 피어나고 그때도 이렇게 연초록 이파리가 돋았다. 봄이면 붕어가 지천이었던 탄천, 그리고 저만치는 어린 그녀가 살던 집이 있었다. 집은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일찍 집을 떠나 서울로, 수원의 공장으로 떠돌다가 다시 고향땅으로 돌아와서 파출부 일을 할 줄 순례는 몰랐다. 분당의 농사꾼이었던 아버지는 얼마나 복이 없으면 분당이 개발될지도 모르고 땅을 팔았는지, 그 땅으로 소를 사고 소값이 똥값이 되고, 그러자 결국 아버지는 농사도 소키우기도 걷어치우고 커다란 함지박에 소고기를 받아서 팔러 다니다가 죽었다. 땅을 팔지 않았으면 소도 안 사고 그저 가만히만 있어도 돈이 커다란 함지박으로 가득했을 텐데…… 애쓰면 애쓸수록 가난은 올가미처럼 그녀와 가족들을 죄어들었다. 아버지가 애쓰지 않았다면, 만일 아버지가 그저 게으른 농부였다면, 그렇다면 아버지의 두 딸도 이 분당에서 남의집살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같은 봄이면 새로 뽑은 차를 타고 꽃구경을 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임대아파트 보증금 이백을 일주일 안으로 올려달라고 관리사무실에서 독촉고지서가 날아온 일이 희미한 추억을 비집고 들어섰다. 도둑질을 해야 될 사람은 사실 순례 자신이었다. 딸 지수 등록금 마련하느라 빚까지 얻었는데 이백을 어디서 마련하나, 미금역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자리를 잡았을 때 순례는 문득 머리가 멍해지면서 사는 게 고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는 별로 흔들리지도 않는 버스에 앉아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남편이 죽고 애들 데리고 시집을 나왔을 때도,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그녀였다. 장미농장에서 한철, 아침 일곱시부터 밤 세시까지 일할 때도, 함바집에서 200명 인부 밥을 해댈 때도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늙나, 순례는 문득 서글퍼졌다.
아니, 어린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긴 있다. 그녀가 분당 고향집에서 서울 동부이촌동 아파트로 식모살이 떠날 때였을 것이다. 그때 버스정류장까지 따라나와 울던 동생 정례가 있었다. 날마다 순례에게 머리를 쥐어박혀도 언니를 떠나지 않던 정례…… 식모살이를 가는 게 뭔지는 몰라도, 다른 친구들 다 교복 입고 학교 가는데 날마다 소똥을 치우는 게 너무 지긋지긋해서 순례는 슬프지도 않았다. 그날, 언니를 따라가겠다고 울던 정례를 머리를 쥐어박아 떼어내고 작은엄마와 함께 버스에 올라탔을 때, 멀미 때문이었을까, 순례의 머릿속이 살구꽃 이파리처럼 하얘지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건 참 고되구나…… 그때 그녀 나이 열세살 무렵이었으니, 정례는 아마 여섯살이나 일곱살이었을 것이다.
2
“억울해 언니, 그냥 억울했어. 저 여자는 저렇게 많이 갖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없는가 싶고,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면서……”
사흘 전 일을 마치고 경찰서로 달려갔을 때 동생 정례는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 정례는 도둑이 된 것이다. 동생의 나이 마흔, 중학교 3학년짜리 아이를 둔 에미가 유명상표, 샤넬인지 구찐지 하는, 주인여자의 핸드백을 열 개나 훔친 것이었다. 병신 같은 것, 샤넬이든 구찌든 루이뷔똥이든, 성남 모란시장에 가면 오천원, 만원짜리가 널려 있는데 왜 그걸 훔쳐냈단 말인가. 등신 같은 년, 니가 들면 진짜라도 모란시장에서 산 것 같고, 주인여자가 들면 가짜라도 진짜인 것처럼 보이는 걸 몰라? 왜 바보 같은 짓을 해, 하긴! 마음 같아서야 어린 시절처럼 머리를 쥐어박으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지만 순례는 침만 꿀꺽 삼키고 말았다.
동생 나이쯤이던가, 아니면 그보다 더 전이던가, 파출부 일이 손에 익으면서 순례도 그런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화장을 하고 노래교실에 달려나가는 은행원의 부인도 있었고, 파출부 나온 순례는 사람도 아니니, 없는 셈치고, 전화기를 붙들고 정부와 밀어를 속삭이던 사업가의 부인도 있었다. 98평짜리 빌라의 여주인은 지갑을 펴더니 잔돈은 하나도 없네, 혼잣말을 하면서 안방에 놓여 있는 금고를 열고 돈을 꺼내주기도 했다. 대부분 순례나 정례 또래의 여자들이었다. 저 여자는 얼굴 어디에 복이 붙었을까, 하루종일 노는 저 여자는 어디서 돈이 저렇게 많이 나올까, 순례는 잠깐 일손을 놓고 주인여자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소고기 안심을 척척 구워먹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카레에 넣은 돼지고기 살점에 고개를 박던 제 아이들 생각에 울컥해졌던 건 그보다 한참 뒤였다. 남편이 살았을 때는 농삿일 때문에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고, 남편이 죽은 후에는 먹고사느라 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이들 때문에 아침부터 밤까지 죽도록 일하는데 아이들의 얼굴에는 날마다 그늘이 덮였다.
“왜 그런 얼굴들 하고 있냐 엉? 공부해! 기죽지 말고 살아! 엄마가 니들은 안 굶겨! 무슨 짓을 해서라도 대학 공부까지 다 시켜줄 거야. 근데 방은 왜 이렇게 어질러놨냐?”
빗자루를 들어 괜히 아이들을 두들겨패면서 기죽지 말라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이들은 순례의 눈치를 살피며 방구석으로 몰려가 울다 잠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재워놓고, 노느니 벌지 하면서 단란주점에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성남시내 단란주점에서 아줌마들을 찾는다는 연락이 옆집 성기네를 통해서 오면 그 밤에 화장을 하고 셋이나 넷이서 그리로 갔다. 밤늦게 온다고 화를 낼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밤마다 과부들끼리 둘러앉아 먹는 술, 그 술도 공짜로 먹고 노래도 부르고 이만오천원도 벌고, 나쁠 게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못 가 끝이 나고 말았다. 어느날 허벅지를 더듬는 남자를 뿌리치고 술집을 나와, 분당에 있는 단 두 개의 임대아파트 단지 앞에는 서지도 않는 버스를 타고 미금역에서 내려 걸어오면서, 순례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 짓은 안해, 내 맘 내키면 까짓거 공짜로 해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싫으면 싫은 거야. 개새끼, 어디다 손을 대, 대길…… 그러구두 집에 들어가면 마누라하구 애새끼들한테 큰소리치겠지, 생긴 건 꼭 족제비 같은 놈이 감히 이만오천원에 날 어떻게 해보려구? 어림없지, 개새끼. 내가 이 짓을 다시 하면 장순례가 아니다! 먹은 술이 얹혔는지 속이 울컥거렸다. 길거리에 침을 탁탁 뱉으며 걸어가는 순례의 눈앞으로 방구석에서 이불을 덮고 잠들어 있을 아이들의 어두운 얼굴이 떠올랐다. 그 족제비 같은 놈은 술 처먹고 지랄을 해도 어쨌든 애비가 아닌가. 그런데 내 새끼들, 애비랑 도시락 싸서 놀러도 한번 못 간 내 새끼들, 불쌍한 내 새끼들…… 새끼들 때문에 나는 죽지도 못하는구나! 가로수를 붙들고 꺼이꺼이 울면서 순례는 생각했다. 그래, 공평하지 않다! 공평하지 않아!
정례가 일하는 집 주인여자는 싸늘한 표정으로 경찰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다가 울고 있는 정례와 순례 자매를 돌아보았다. 순례는 젊은 주인여자에게 비굴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지금 이 장면에서 도둑의 언니로서 미소를 짓는 것이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얼른 미소를 거두려니까 표정은 이상하게 일그러져버렸다. 여자는 뭐야, 저것도 한통속이잖아, 하는 경멸의 표정을 감추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녀가 순례보고 너도 도둑년이야, 한 것도 아니었는데 순례는 오기가 발끈 솟았다. 미친년, 백이 얼마나 많았으면 한두 개도 아니고 열 개나 없어지는데 그걸 두달 동안이나 모르고 있었어. 경찰서만 아니었다면, 동생이 도둑만 아니었다면, 순례는 아마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순례는
“이 등신아, 세상 불공평한지 이제 알았어?”
동생 정례에게 말하고 한숨만 쉬고 말았다.
주인여자는 진술을 마치고 경찰서 주차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순례는 따라가 그 여자의 뒤에 섰다. 꽃향기보다 진한 향수냄새 때문에 순례의 머리는 잠깐 아찔해졌다.
“저, 이보세요. 전 쟤 언니예요.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정말 이번 한번만 용서해주시면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제가……”
푸른빛 아이섀도우를 바른 여자의 눈매가 곧추섰다.
“다시는,이라뇨? 그럼 다시 우리집에 동생을 들이라는 이야기예요?”
생각해보니 그녀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한번 도둑질한 파출부를 다시 쓰지 않을 거라는 건 자명한 일이 아닌가. 순례는 두 손을 모아 애원하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저희 동생이 그걸 갖다 팔아서 돈을 챙긴 것도 아니고 다시 다 돌려드렸잖아요. 그것이 어린 마음에 그저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 여자들이란 게 좋은 거 보면 자기도 들어보고 싶고, 예쁜 옷 보면 한번 입어보고 싶고…… 아무리 없이 살아도 같은 여자니까 이해하시리라 믿어요. 우리 동생이 전과자도 아니고, 경찰 말이 취하해주시면 선처라는 걸 할 수가 있다고 하던데……”
주인여자는 순례의 얼굴을 외면하며 차문을 열었다. 순례는 순간 다급해져서 여자의 옷자락을 덥석 잡았다.
“왜 이러시는 거예요?”
짧은 파마머리를 한 주인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여자가 하도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순례도 겁이 나서 얼결에 두 손을 어정쩡히 들었다. 똥 묻은 사람을 대하는 듯한 그런 경멸과 두려움을 순례는 여자의 얼굴에서 읽었던 것이다. 순례는 얼결에 들었던 두 손을 힘없이 내렸다. 두 손을 어정쩡히 들고 서 있는 자신의 꼴이 너무 우스웠다. 하지만 순례는 참기로 했다. 자존심이란 게 얼마나 쓸데없는 감정인지 안 지 이미 오래었다.
“제발이지 제가 이렇게 빌게요. 제발이지 같은 에미 심정으로 집에서 혼자 엄마 풀려날 때만 기다리고 있는 애 얼굴 봐서 한번만…… 하라시는 대로 제가 대신 뭐든 하겠습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애 생각해서 한번만, 이번 한번만……”
경찰서 한가운데서 여자가 무릎을 꿇으라고 해도 꿇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빌어서 될 수만 있는 일이라면 못할 일이야 없는 것이다. 순례의 머릿속으로 문득 딸 지수가 유치원에 다닐 때 뇌척수막염에 걸렸던 일이 스쳐갔다. 수원 빈센트병원, 어린 지수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남편이 죽은 그 이듬해였다. 손주를 문병한답시고 찾아온 시어머니는 순례를 불러놓고 말했다.
“남편 잡아먹은 년이 딸까지 잡아먹게 생겼구나. 죽게 냅둬라, 먹고살기도 힘든데 딸년은 키워서 뭐하니. 너나 나나 딸로 살아서 좋은 게 뭐 있었냐. 게다가 병원비는 누구보고 물으라고 할 테냐? 집에 데리고 가서 송장 치울 궁리나 하거라. 저 상태라면 깨어나도 제구실도 못한다고 하던데……”
순례의 눈에 푸른빛이 번쩍, 하는 걸 봤는지 시어머니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딸이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순례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딸 지수에 대한 사랑, 어느 것 때문이었을까. 순례는 입을 앙다물었다. 살리고야 말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중환자실 밖으로 나온 순례는 넋이 나간 것처럼 병원 뜰을 쏘다녔다. 살리고 말겠어, 꼭 살려서 보란듯이 키우고 말겠어. 그때 순례는 병원 한켠에 서 있는 성모상에 무릎을 꿇었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병신이라도 좋고 제구실을 못해도 좋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저애에게 젖 한번 배불리 먹여준 적이 없습니다. 아침에 젖 먹이고 나가서 점심때 또 한번 젖 주고 저녁에 밭에서 돌아오면 어린것이 울지도 않고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갓난아기가 먹을 젖을 밭에다 짜 버리면서도 가슴이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나 힘든 생각에 저거 그냥 죽어버렸으면 솔직히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키가 하도 작아서 저애는 버스 탈 때 아직도 요금을 안 냅니다. 그러니 이대로 저애를 보낼 수 없습니다. 당신도 에미였으니 제 심정 아실 거 아닙니까. 살려주세요, 제 딸을 제발 살려주세요…… 병신이라도 좋습니다. 사람 구실 못해도 좋습니다. 제발.”
그 자리에 부처가 서 있든, 산신이 서 있든, 장승이 서 있든 순례는 그렇게 빌었을 것이다. 그렇게 몇시간을 울며불며 기도했는데, 그날 밤 열 명의 꼬마 뇌척수막염 환자들 가운데서 기적처럼, 지수만 눈을 떴다.
“엄마, 야쿠르트.”
평소에 지수가 그렇게 먹고 싶어했건만 사주지 않았던 10원짜리 요구르트를 열 병이나 사다가 지수에게 먹였다.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다. 젖도 제대로 못 주고 요구르트 못 사준 거야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키운 그 지수가 올해 대학에 갔다. 제 오라비도 못 간 대학, 제 애비도 못 가보고, 제 에미도 못 가보고, 제 할미 할아비 삼촌 고모 아무도 가지 못한 그 대학이란 곳을.
“빈집에서 혼자 엄마 기다리는 병호 생각 좀 해주세요. 애가 엄마랑 단둘이 살던 버릇이 있어놔서 밤에 잠도 안 자고 울어요. 식구라고는 단둘뿐인데, 에미가 감옥에 가고 나면…… 동생이 전과자도 아니고 취하만 해주신다면 경찰에서 선처를 해준다고……”
여자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아이,라는 대목에서 여자의 얼굴에 흔들림이 생겼다. 저 여자도 에미였다. 그러니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애가 엄마 안 온다고 잠도 안 자고 학교도 안 가고 울고만 있어요.”
잠시 후 여자가 순례 쪽으로 돌아섰다.
“정말이지 나도 어쩔 수 없어요. 내가 병호 엄마 평소 행실 봐서 취하해주고 싶지만, 정말이지 내가 병호 엄마를 얼마나 믿었는데, 정말이지 그래서 안방 장롱도 잠그지 않고 다닌 거였는데…… 그래요, 정말이지 안돼요, 정말이지 가방도 가방이지만, 정말이지 병호 엄마를 믿은 만큼, 정말이지 나한테 밀려드는 배신감…… 정말이지 그 배신감은 나도 어쩔 수 없어요.”
여자는 입술을 앙다물고 배신감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배신감, 문제는 이제 백이 아니라 배신감이었다.
3
그런데 주인여자가 마음을 바꿔 고소를 취하했고 선처를 부탁했다. 그렇게 동생이 풀려나게 된 것이 어제였다. 한데 조건이 있단다. 무슨 조건을 달지는 겁이 좀 나긴 하지만 뭐 돈을 물어달래도 물어주는 수밖에. 무슨 짓이라도 다 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약속은 지켜야 했다. 순례는 오늘 과일이라도 사들고 동생과 그 집에 같이 가서 조건을 들어주기로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니 동생이 과일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어린 벚나무 아래 서 있는 동생은 작아 보였다. 순례는 순간 지금 저기 서 있는 마흔살짜리 동생이, 서울로 식모살이 떠날 때 버스정류장에서 울고 섰던 그 동생 같았다. 횟배를 앓아 배만 불룩하던, 먹을 것이라면 무엇이든 악착같이 달려들어 아귀아귀 입 안으로 밀어넣던, 머리를 쥐어박으며 귀찮다고 하는 자신을 따라오며 가만히 있을게, 따라가기만 하구 언니가 친구들하구 놀 때 난 가만히 있을게, 같이 가, 애원하던 그 어린 동생 같아졌다.
“과일 샀어?”
어린 동생에게 철없이 굴었던 것을 생각해서 콧날은 시큰한데 말은 어린 시절처럼 퉁명스레 나왔다.
“응.”
“얼마치?”
“비싸서 이만원어치밖에 못 샀어…… 딸기금이 그새 또 올랐더라구.”
“만원 더 써서 삼만원쯤 쓰지, 이만원이 뭐냐?”
“소문나서 일도 못 나가게 생겼는데 만원이라도 아껴야지.”
순례와 동생은 말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그때 가벼운 경적소리가 났다. 어떤 차가 우릴 보고 경적을 울릴까 싶어 무심히 서 있는데 반짝이는 일톤 트럭이 자매 앞에 섰다. 사촌이었다.
“어디들, 가는 거야?”
사촌은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어디 좀 가.”
자매는 심드렁한데 사촌은 입이 찢어져라 웃는다. 엉뚱한 교통사고를 내고 차를 샀다더니 정말 사긴 산 모양이었다. 사촌이 차를 사니 두 자매는 배가 아팠다.
“나 차 샀어.”
자매는 입을 다물고 만다. 사촌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게 그 새 차야? 좋다, 뭐 이런 말일 것이다. 그러니 그 말만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사촌은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백수로 놀던 사촌이 마누라 등쌀에 못 이겨 마을버스 기사로 취직한 게 지지난달이었다. 그런데 취직한 지 일주일 만에 무슨 외제 스포츠카를 들이박았다고 했다. 분명 저쪽에서 신호를 위반하고 달려들었다고, 사촌이 아무리 말해도 경찰은 믿어주지 않았다. 외제 스포츠카를 탔던 젊은 놈은 안 보이고 사촌 혼자 경찰서에 앉아 있고, 사촌올케는 저 인간이 마음잡자 사고친다고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 그때 두 자매는 낮에는 남의 집에서 일하고 밤에는 교대로 경찰서로 밥을 싸다 나르고 사촌올케 대신 아이들을 돌보아주었다. 그래도 마음잡고 살아보려다 일어난 일인데 올케가 참으라며 달래기도 했고, 신세한탄을 들어준 건 또 몇날 밤이었는지……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고급차 두 대가 사촌의 집 앞에 섰다. 그들은, 싸인만 해주면 보험처리는 물론 앞으로의 생활비조로 얼마, 위로금으로 얼마까지 다 책임진다며 변호사 명함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사촌이, 신호위반을 한 건 저 외제차가 아니고 나요,라고 눈 딱 감고 싸인해주면 그들은 거금 삼천만원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경찰서에서도 날마다 전화가 왔다. 그렇게 하면 모든 책임은 경찰이 진다는 것이었다. 사고를 낸 외제차의 주인은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들의 말이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그래서 생긴 차가 바로 이거였다. 머리를 싸매고 누워 있던 사촌올케는 얼마 전 백화점에서 새 투피스를 사입고 자매를 찾아왔다. 겨우 삼겹살 한근 사들고…… 그러니 자매는 심사가 좋을 리 없었다.
“버스 온다.”
싱글벙글하는 사촌을 모른 척, 순례가 동생을 끌었다.
“어떤 놈은 차사고를 내고도 돈이 생기고 재수없는 년은 가방 몇개……”
동생은 버스에 타서 중얼거리다가 언니 눈치를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래, 너 말 잘했다. 이렇게 된 마당에 너한테 양심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눈치라도 있어 몇개 하고 말았어야지. 그래 그걸 열 개씩이나……”
“처음엔 나도 그러려고 했었지. 처음엔 말이야.”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꾸역꾸역 버스로 올라탔다. 뜨거워진 볕 때문에 아이들의 볼도 꽃처럼 발개졌다. 그 아이들 보기가 민망해 자매는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언니, 경찰서에서 자는데 난데없이 병호 아빠 꿈을 꾸지 않았겠어? 가만히 생각하니까 얼마나 부아가 나는지…… 정말 저렇게 좋은 교통사고라도 나서 돈 한번 갖다준 인간이었으면 이혼 안했을 거야. 언니도 생각나지? 그때 병호 초등학교 일학년 땐가, 그 인간 교통사고 내서 전세금 다 날렸던 거. 그래놓고 뭘 잘했다고 날마다 술 처먹고 들어와서 패고…… 그러지만 않았어도 이혼 안했을 텐데…… 경찰서에 앉아 있으려니 남편 생각이 나긴 나더라구. 그 인간은 어디서 사람구실이나 하구 사는지 몰라. 근데 언니, 우린 왜 이렇게 복이 없어?”
“그걸 알면 내가 이러구 살겠니?”
버스에서 내린 두 자매는 딸기 바구니를 들고 걸었다. 고급빌라 정도엔 사는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찾아간 집은 39평 아파트였다. 39평 아파트 살면서 그 비싼 몇백만원짜리 백을 그렇게나 많이 샀단 말인가 싶어져서 순례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 정도 비싼 가방이라면 요즘 순례가 일을 다니는 90평짜리 빌라의 안주인 정도가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얘, 니네 주인 39평 살아도 돈은 엄청 많은가보다?”
순례는 혹시나 하고 물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남편 몰래 가방을 사들인 모양이야. 이번에 나 때문에 들통이 나서 이혼한다 어쩐다 난리도 아니었던 모양인데, 알고 보니 카드빚이 몇천이래.”
“저 여자는 많이 가졌는데 너는 아니어서 억울하다고 울고불고했잖아?”
“글쎄…… 그 비싼 걸 자꾸 사들이니 돈이 엄청 많은 줄 알았지 뭐야.”
순례는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그게 빚이었다니 말이 되니? 그런데 가방은 왜 그렇게 사들였대?”
“몰라, 친한 친구가 부자래. 그 친구 따라댕기며 막 샀다는데……”
“그년도 너만큼 미친년이구나.”
동생에게 다시 화살을 쏘면서 순례는 갑자기 억울해졌다. 막상 정례가 풀려나고 나자 괜히 구걸했나 싶어진 것이다. 겨우 39평짜리 살면서 그 위세를 부리다니, 빚 얻어 가방 산 년인지 모르고 하늘에서 떨어진 선녀라도 되는 듯 떠받들어주다니, 너도 불쌍한 인생이구나 싶어졌지만 집으로 들어서자 순례는 머리 숙여 공손히 절을 했다.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정말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는 목사님께 드리세요. 정말이지 이번 주일이 부활절만 아니었어도, 정말이지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며, 정말이지 목사님이 절 설득해주시지 않았다면, 정말이지 그 배신감을, 제가 이길 순 없었겠지요.”
여자는 차게 말했다. 순례와 정례는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서, 연회색 양복을 입은 목사라는 사람에게 머리를 숙였다.
“좀 앉으시죠.”
목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자매는 엉거주춤 앉았다. 정례가 사가지고 간 딸기 바구니를 내밀었다. 주인여자는 본체만체 정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만정이 떨어진다는 얼굴이었다.
“두 분 종교가 있으십니까?”
목사가 부드럽게 물었다.
“없어요. 엄마가 예전에 만신한테 다녀서 우리도 따라다녔던……”
눈치없는 동생의 말을 자르며 순례가 끼여들었다.
“가져보려고 하고 있어요. 게다가 이렇게…… 이렇게 고맙게 해주시니, 교회라도 다녀볼까 안 그래도……”
“아, 그러십니까.”
오십이 좀 넘어 보이는 목사는 감격스러운 눈길로 순례와 정례 자매를 바라보았다.
“자매님들 이렇게 만난 것도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우선 잠시 기도할까요?”
주인여자가 먼저, 이어 목사가, 그리고 순례와 정례 자매가 두 손을 모았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 여기 뒷골목을 헤매던 어린 양들이 왔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죄를 따지자면 무고한 자 그 누구겠습니까마는 아버지 특별히 이들 자매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간음한 여인을 두고 너희들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어 저 여인을 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어둠속에서 헤매는 두 어린 양들을……”
목사의 기도를 듣고 있다가 순례는 눈을 떴다. 도둑질은 동생이 했는데 왜 불쌍한 어린 양이 하나가 아니고 둘이 된단 말인가. 이것들이 내가 동생 일에 발벗고 나선다고 나까지 도매금에 도둑으로 넘기나 싶어 순례는 화가 난 것이다. 게다가 누가 뒷골목하고 어둠속을 헤맨단 말인가. 남편 죽고 십몇년 동안 남의 물건 손 안 대고 내 손으로 벌어서 새끼들 키워놨는데, 몸 파는 거 빼고 안해본 것 없이 고생고생 살아왔는데, 어두운 골목을 헤맬 시간이 어디 있었나, 싶었다. 이래서 내가 교회를 안 나간다니까…… 순례는 불쾌해졌다. 언젠가 딸 지수의 성화에 못 이겨 나간 교회에서도 순례보고 그랬다. 회개하라고, 당신의 죄를 반성하라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순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딸이라고 공부 안 시켜준 어머니 죄였고, 좀 지그시 기다리지 못하고 분당의 땅을 홀랑 팔아버린 아버지 죄였고, 남편을 죽여버린 하나님 죄에다가, 아들 죽었다고 어린것들 딸린 순례를 돈 한푼 주지 않고 내쫓은 시어머니 죄였다. 그러나 목사의 기도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순례는 눈을 뜬 채로 앉아 있었다. 잠시 기도하자더니, 목사의 말은 끝날 듯하면 이어지고 끝날 듯하면 이어졌다. 눈을 감고 있기도 뜨고 있기도 뭐했다. 그래서 순례는 목사처럼 다시 두 손을 모으고 혼자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저 목사님의 기도가 빨리 끝나게 해주십시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정말이지 제가 억누를 수 없는 배신감을 극복하고 마음을 바꾼 건, 정말이지 여기 계신 목사님 덕분이에요. 정말이지, 저는 생각했죠. 하나님께서 제게 이 시련을 주신 의미가 뭘까, 정말이지 목사님과의 대화를 통해 저는 알게 됐어요. 그건 바로 하느님께서 어둠속을 헤매고 있는 병호 엄마 자매를 저보고 인도하라는 사명이라는 것을…… 그러는데 정말이지 계시처럼 어떤 기억이 떠올랐죠.”
기도가 끝나자 주인여자는, 그 조건이라는 것을 말하겠다면서 순례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병호 이모께서 하나님이 내려주셨던 기적을 우리 교회에 나오셔서 간증하고, 정말이지 두 자매분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조건을 요구하기로 말이지요.”
“예?”
하도 놀라서 순례의 목소리는 난데없이 컸다.
“우리 주 하나님께서 다 죽은 딸을 살려주시는 기적을 베풀어주셨다면서요. 그걸 저희 교회에 나와 간증해주시고, 정말이지 새 삶을 시작하신다면……”
목사가 아멘, 하고 말했다. 아마도 동생 정례가 순례의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도둑질한 것 용서해주는 거하고, 딸 지수가 기적처럼 살아났던 일하고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순례는 알 수 없었다.
“정말이지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는 주님 안에서 제가 받은 이 참을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을, 정말이지 오롯이 주님의 부활과 승리로 되돌려드리는 영광을 얻게 될 거라는 이야기예요.”
“그, 그러니까…… 그때 그 빈센트병원, 성모상 앞에서 기도한 그 이야기를 나보고…… 사람들 앞에서…… 하라구요?”
당황스러운 순례가 다시 물었다.
“성모상?”
순례가 묻자 이번에는 주인여자가 놀랍다는 듯 정례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한 게 아니고, 성모상이었어요, 그게?”
정례는 우물거린다. 동생이, 교회 다니는 주인여자 비위를 맞추느라 성모상이라는 이야기는 빼고 하나님이라고 말한 모양이었다. 저것이 지 얘기나 하지 왜 내 얘기까지 해서 사람을 또 귀찮게 만드나. 아니, 해도 좋다 쳐도, 똑바로나 할 것이지. 순례는 정례를 노려보았다. 정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여버렸다. 네 사람 사이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게 하나님이 아니라 성모상이었으면 돈을 내놓든지, 다시 경찰서로 가라든지, 마음이 바뀔까봐 순례는 갑자기 겁이 났다.
“뭐, 성모상이나 하나님이나 다 한식군데 어때요. 한식구 맞잖아요. 할게요. 하죠 뭐.”
“그럽시다. 그게 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니…… 성모상이라는 얘기만 빼시고 하나님이라고 해주시면……”
곰곰 생각에 잠겼던 목사도 말했다.
“그럼요. 그럼 그 얘긴 뺄게요.”
순례는 39평짜리 아파트 베란다에서 죽어가는, 누렇게 말라붙은 난초를 보며 대답했다.
4
차라리 공사장에 나가 일을 하는 게 순례로서는 나을 뻔했다. 며칠 후 그놈의 부활간증이라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하고, 어둑어둑한 때 겨우 빠져나오는데 순례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동네 여자들하고 싸울 때 빼고,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본 건 난생 처음이었다. 동생만 아니었다면, 어머니처럼 하늘처럼 자신을 믿고 있는 동생만 아니었다면 평생 이런 짓을 또 할까 싶었다.
“언니, 정말이지 미안해.”
하루종일 당황해하는 순례에게 어쩔 줄 몰라하던 동생은 풀이 죽어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내가 언니하고 조카들한테, 정말이지 고개를 들 수가 없어……”
“정말이지 소리 좀 그만 하고 정말이지, 가게 가서 소주나 좀 사와. 내가 너 땜에 별의별 꼴 다 당한 생각을 하니까 다리가 떨려서 술 한잔 하고 자야겠다. 양심이 있으면 순대도 좀 사오고.”
“알았어. 근데 언니, 나 교회 다닐까봐.”
정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얘가 정말 이번 일로 충격을 받긴 받은 모양이다, 싶어서 순례는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거기 가믄 너 십일조라구, 버는 것의 십분의 일을 세금으로 바쳐야 돼. 그러니까 그 돈 떼어내고도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가는 데야, 거기가. 내가 교회 괜히 안 가는 줄 아니?”
“그래두, 오늘 목사님 말씀 들어보니까,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돌에다 콱콱 박아서 이야기했다는데, 꼭 내 얘기 하는 것만 같아서 얼마나 챙피스럽던지…… 나 죽어서 지옥 가면 어떡해?”
“등신아, 넌 지옥을 아직도 안 가봤니? 난 많이 가봤다. 그렇게 살고도 아직 그걸 몰라?”
교회라도 나가보겠다는 정례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순례는 퉁명스레 말했다. 저애가 마흔이 되도록 어떻게 저렇게 갈팡질팡일까, 한숨도 나왔다. 순례는 걸음을 빨리 한다. 지옥을 갈 때 가더라도 사는 건 살아야지 별수 있나, 싶었다. 애들이 밥은 먹었는지 이것들이 또, 있는 밥 안 먹고 라면이나 끓여먹고 있는 게 아닌지…… 공부하라고 대학에 들여보내놨더니 딸년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엠티다 뭐다 날마다 늦게 들어왔다. 이렇게 돈만 많이 받고 이렇게 공부 안 시켜주는 게 대학인 줄 알았으면 여상이나 보낼걸…… 걸음을 재촉하는데, 집안에 들어가니 가뜩이나 좁은 집에 아이들이 한가득이었다. 군에서 막 제대한 아들에다 오늘따라 일찍 들어온 딸에다, 조카 병호, 게다가 아래층 사는 절름발이 아저씨네 애들까지 있었다.
“엄마, 이 병아리 깨어나려구 해…… 살았어.”
그래? 하며 순례는 지수의 책상 앞으로 갔다. 며칠 전, 제대한 아들 몸보신이나 시키려고 전에 일하던 양계장에 들러 얻어온 곤달걀이었다. 삼계탕은 못해줘도, 병아리가 되다 말고 죽어버린 곤달걀은 약으로 인기가 높았다. 그런데 그중의 한 알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에 순례는 혹시나 해서 딸 지수의 스탠드를 켜고 그 밑에 수건으로 감싸두어봤다. 그런데 그게 드디어 병아리가 되긴 되는 모양이었다. 순례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달걀껍데기를 콩알만큼 떼어내주었다. 성한 놈이었다면 뽀송뽀송하게 껍데기를 깨고 나올 걸, 삐욱 소리만 나는 걸 보니 힘이 없는 놈인가보았다. 너도 그렇게 약해빠져가지고 한세상 어떻게 사냐, 순례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밥들은 먹었냐?”
“먹었어.”
“니들은 왜 잠 안 자구 왔냐?”
순례는 아래층 사는 절름발이 아저씨네 애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도망간 지 오래, 술주정뱅이 아비와 사는 아이들은 툭하면 밥을 굶고 순례네 집으로 왔다. 애들이 그렇게 착하지만 않았으면 야멸치게 떼어버릴 것인데 애들은 순례의 말에 혼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얼른 고개를 푹 숙인다.
“애비가 또 밥 안 주고 술 먹으러 나갔냐?”
“아니에요, 우린 라면 먹었어요…… 오늘은. 우리 라면 주구, 아빠 술 먹으러 나갔어요.”
“니 애비가 이제 철이 나나보다. 늦었으니까 가서 자구, 애비 안 들어오거든 아침에 밥 굶구 핵교 가지 말구 우리집에 오구. 알았지? 병아린 내일 와서 봐두 늦지 않다. 저 병아리 다 나오려면 사흘은 걸린다.”
책상 위의 달걀이 병아리로 변하는 걸 보고 싶은 눈치지만, 풀죽은 아래층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예, 하고 순순히 자기네 집으로 돌아가고 만다. 아이들이 대충 엎어놓은 그릇들을 씻으러 가다 말고 순례는 다시 책상 앞으로 갔다. 연분홍빛 말간 부리가 힘겹게 껍데기를 깨고 있다. 순례는 다시 콩알만한 껍데기 조각을 조심스레 두세 개 떼어내준다.
“엄마, 내가 책에서 보니까 병아리가 껍데기 깰 때 도와주면 안된다고 하던데? 자기 힘으로 깨고 나와야 잘 살지, 안 그런 건 죽게 내버려둬야 된다구…… 그게 자연의 법칙이래.”
책상 앞에서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달걀을 들여다보던 지수가 물었다.
“어떤 바보 같은 인간들이 좋은 책에다 그런 말도 안되는 걸 써? 힘이 없으면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
“하긴 엄마, 이 병아리 너무 불쌍하다. 나 어려서 아팠을 때 엄마, 그때 나도 이 병아리 같았겠지? 할머니가 나 내다버리라고 했다며?”
내가 술 먹고 딸내미한테 시어머니 이야기까지 했나, 싶어 순례는 문득 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다버리라고 하긴, 누가 산 걸 내다버려…… 사는 건 다 살아야지.”
“맞아 엄마. 엄만 선수잖아.”
딸은 갑자기 희망이라도 본 듯 기쁜 어조로 말했다.
하기는 곤달걀뿐인가, 다리 다친 부엉이도 있었고, 알을 더이상 못 낳는다고 양계장에서 폐기처분된 닭을 데려다가 키워서 달걀을 한 광주리도 더 얻은 일도 있었다. 이웃들은 화초가 죽어가면 순례에게 가져왔다. 같은 물을 주고 같은 햇볕을 받는데 이상하게 순례에게 오면 죽어가는 것들은 새로운 삶을 얻어 태어났다. 지수 엄마 참 희한한 사람이야,라고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 순례도 남편은 살리지 못했다. 남편이 죽을 무렵 병으로 쓰러져가던 젖소들도 살리지 못했고, 아이들 얼굴에서 사라져가던 밝은 빛도 살려내지 못했고, 그래서 결정적으로, 자꾸만 무너져내리던 그녀의 나날들은 하나도 살려낼 수 없었다. 그건 그녀가 어찌해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병아리가 말간 부리로 껍데기를 톡톡 친다. 순례는 병아리의 껍데기를 몇조각 더 조심스레 떼어주었다.
“그래, 내가 네게는 지금 하느님이겠구나. 힘들지? 내가 도와줄게. 힘내라 응? 병아리두 되구, 암탉도 되구, 알두 낳구, 그 알 또 까서 병아리로 키우구……”
순례는 말을 멈춘다. 그러고는 죽을 것이다. 어쩌면 순례네 냄비 속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래 살아라. 사는 날까지는 살아야지. 그 다음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지만……”
문득 죽은 남편 생각이 났다. 평소엔 멀쩡하다가도 술만 들어가면 순례를 패던 남편은 죽기 두어 달 전부터는 사람이 변했다. 술도 끊고, 시어머니 몰래 설거지도 해주고, 밭에서 돌아올 때는 발이 아프다던 그녀를 업어주기도 했다.
“참 이상하다. 언젠가 말이야, 순례야, 내가 이렇게 널 업어준 때가 또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이상하게도…… 든다. 순례야, 만일 나 죽어도 딴데 시집가지 마, 응?”
나 죽어도 딴데 시집가지 말란 소리는 왜 했을까. 제가 죽는다는 걸 알기라도 한 걸까. 남편 제삿날이 다가오는 걸 보니 이맘때쯤이지 싶다, 논둑길 멀리 홍시보다 붉은 노을이 지고 햇볕에 데워진 따스한 봄바람이 부드럽게 귓바퀴를 감쌌으니까. 그때 남편 등에 얼굴을 묻으면서, 이런 게 사는 거구나 싶었는데, 두달 만에 남편은 오토바이 사고로 죽어버린 것이다. 차라리 그전처럼 술 마시고 순례를 패다가 죽었으면 좋았을걸, 저 인간 어디 가서 뒈지기나 했으면, 하고 그렇게 빌 때는 펄펄히 살아 죽지도 않더니, 산다는 건 어쩌자고 그토록 야속한지……
“그나저나 니 이모는 술 사러 가서 또 순댓집 여편네하고 한잔하고 있나부다.”
딱히 딸 지수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리며 순례는 창문을 열었다. 만일 조금만 무심히 지나쳤더라면 저 병아리는 끓는 물 속으로 들어가 순례의 안주가 되었으리라. 그렇게 무심한 눈길에 버림받고, 다시 버림받았던 시간들이 순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순례 나이 마흔여섯, 살아온 날들 모두 궂은일뿐이었다.
“엄마 병아리가 힘든가봐. 이렇게 조그만 게…… 엄마 불쌍해.”
딸이 소리쳤다.
“괜찮아, 죽는 거보담 조그맣고 약한 게 나은 거야.”
부드럽게 딸을 안심시키면서 순례는 끌리듯 베란다로 한걸음 걸어나갔다. 별은 없고 신도시의 휘황한 불빛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순례는 그 불빛과 마주선 채로 혼자 중얼거렸다.
“한번 살게만 해주면 어떻게든 사는 거거든. 한번 살게만 해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