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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국을 보는 눈과 동아시아 영상

민두기 『시간과의 경쟁』,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1

백영서 『동아시아의 귀환』, 창작과비평사 2000

 

 

하세봉 河世鳳

동의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 주요 논문으로 「한국학계의 동아시아 만들기」 등이 있음. ha29sb@hitel.net

 

 

1. 사실은 마치 흩어진 사물처럼 존재할 따름이고, 그것은 명명됨으로써 기억으로 살게 된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그 생명력을 줄곧 가지는 명명이 있는가 하면 기억에서 사라지는 사실도 많다. 때로는 기억이 재조합되어 새롭게 명명되기도 한다. 흘러간 사실은 남겨진 기억의 잔해를 더듬어보는 자의 눈을 통해 시야에 들어오고 지각될 때, 비로소 보는 자에게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중국’은 ‘대한제국’이나 ‘제국 일본’이 탄생될 언저리에 등장한 20세기의 존재이고, 또 한편에는 동일한 실체를 지칭한 ‘지나(支那)’가 존재했다. 20세기 전반의 한국인에게 그것은 ‘지나’라기보다는 ‘중국’으로 받아들여진 편이다. 거슬러올라가 조선시대인에게 그것은 명조요 청조였지, 중국이란 기호로 다가선 경우는 적었다. 중국이란 기호가 19세기말 20세기초에 명명된 것이라면, 20세기말의 한국에서는 그 중국이 외연을 넓혀 동아시아라는 명칭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징후를 보인다. 한국의 눈길이 중국이라는 대상을 투과하여 동아시아라는 영상이 최근 맺어지게 되었는데, 여기서 다루려는 두 책 백영서(白永瑞)의 『동아시아의 귀환』(이하 『귀환』)과 민두기(閔斗基)의 『시간과의 경쟁』(이하 『경쟁』)이 바로 그것이다. 이전에 희미했던 동아시아라는 영상이 뚜렷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동아시아를 보거나 혹은 보고 싶다는 시선이 우선 자리잡아야 하고 다음으로 그 대상을 들여다보는 창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동아시아라는 영상의 생산과정은 시선─대상─창의 순서이다.

112-352한국학계에서 동아시아가 시선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에 접어들어서의 일인데, 『귀환』의 저자가 중국현대사 연구자로서 일찌감치 동아시아에 착목한 것은 중국사 연구의 비판적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당사자인 중국이나 근대사에서 중국에 역사적 부채를 가진 일본과는 다른, 한국의 독특한 역사적 체험을 살리되 그 체험의 강조가 초래할 위험을 넘어서기 위하여, 우리의 체험을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분단체제와 세계체제의 중간항인 동아시아에 대한 체계적 인식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이것이 동아시아에 착목하게 된 『귀환』의 시선인데, 이러한 시선을 세우면서 중국을 통해 동아시아를 발굴해나가게 된다. 『경쟁』에서는 동아시아를 하나의 논리로서 바라보려는 의도는 희박하다. 대신 『경쟁』에서 동아시아에 대한 시선은 중국에 집중되고, 부수적으로 중국과 대비되는 일본이나 조선이 그려져 결과적으로 동아시아를 이룬다.

시선은 의식적으로 추구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시대적 조류를 부지불식간에 내재화시킨 경우가 있는데, 『귀환』은 전자에 해당하고 『경쟁』은 후자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시선이 의식적일 때, 자신의 지적 전통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생각에 닿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귀환』은 대한제국기와 해방 직후 한국인의 중국인식이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은 것’이 상호 침투하면서 동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168면). ‘알고 싶은 것’에 의해 중국인식이 세 가지로 갈리나, 그 중국인식은 일본인식과 표리를 이룸과 동시에 개혁론이 공통분모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1900년 전후 한국 지식인층의 동양인식에 대한 검토도 ‘알고 싶은 것’을 찾아내어간 지적 과정이다. 그러나 『경쟁』은 ‘알고 싶은 것’보다는 ‘알고 있는 것’에 무게중심을 둔다. 동아시아에 존재했던 기독교도, 중국으로 간 사신을 통해 입수하는 중국정보의 존재, 혹은 동아시아가 역사적 경험을 공유했다는 것 등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한다. 중국이 줄곧 지향한 그러나 그다지 이루어진 바 없는 ‘혁명’과 대비하여, 혁명적 의미를 지니는 ‘메이지유신’ 등 일본의 역사적 사건들이 혁명으로 명명되지 않았음을 발견해낸 점은 돋보인다. 알고는 있으나 지각하지 못하는 사실을 발굴해내는 저자의 안목 때문이다. 『경쟁』의 출간 이전부터 저자는 한국의 중국사학자로서 보는 대상으로서의 중국에서 나아가 그것을 바라본 한국을 포괄해보려고 힘써왔고, 『경쟁』에도 관련된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윤재(李允宰)의 한글운동에 관련된 글에서는 대상을 보는 시선을 파악하려는 시도를 넘어서서, 자신 속에 들어온 타자의 작용까지도 관찰한다. 또한 만보산(萬寶山)사건에 대한 『조선일보』의 선동적 보도와 『동아일보』의 냉정한 보도의 차이를 원칙론과 현실론의 차이, 사세확장 경쟁에서 찾아낸 점은 최근의 언론개혁을 둘러싼 충돌에도 시사를 준다.

두 저서의 논의는 지식인의 사상이나 그들의 시선을 쫓아가면서 전개되는 점이 하나의 특징인데, 그것은 한국학계 동아시아론의 특징으로 확대할 수도 있겠다. 일본학계가 발견한 (동)아시아는 아시아교역권론으로 대표되듯이 사회경제 측면에서의 접근이 많은 편이다. 『경쟁』이나 『귀환』이 최근 일본학계의 연구성과를 활용하나, 정작 (동)아시아론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인용하고 있지 않다. 그만큼 일본학계와는 다른 동아시아상을 구축하려는 의지가 은연중에 드러난다. 중국에서는 개념으로서의 동아시아를 둘러싼 논의는 찾기 힘드나, 동아시아 각국간의 문화의 교류·공명이라는 측면의 저술은 적지 않다. 타이완(臺灣)에서도 아시아논의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시아의 해상교류에 관한 일련의 연구가 있어왔다. 단순화를 무릅쓴다면 일본은 자국이 경험한 근대 아시아의 통치나 구체적인 실태파악을 선호하는 연구풍토가 사회경제적 접근을 가능하게 했고, 중국은 전통시대 문화의 발신지로 중화제국의 역사적 경험을 선호했으며, 타이완은 도국(島國)으로서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이리라. 한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논의는 주로 일본의 아시아주의자나, 쑨 원(孫文)을 비롯한 중국의 지식인·정치가의 아시아인식 등에 치중되었고, 두 책에서도 유사한 인물들의 중국이나 아시아인식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혹 이 차이를 한반도 지식인들의 근본주의적인 내지 관념적인 전통의 투영이라면 지나친 풀이일까. 주자학이 쇠잔해진 시대에 조선의 사대부가 정통 주자학을 고집한 이래로 정통 맑스·레닌주의를 강조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론이나 인식을 배태한 사회적 배경의 탐구나 자기 식으로 해석해버리는 경향보다는 이론의 정수 그 자체를 중시한 흐름의 연속은 아닐는지.

 

2. 두 저자는 중국 근·현대사를 전공으로 하는 학자이듯이 중국을 통하여 동아시아를 보았다. 그러나 중국이란 대상에 접근하는 창은 각각 다르다. 『귀환』은 근대중국을 민간사회라는 창으로 보고자 한다. 국가와 사회를 대립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공동의 이념을 공유하면서 경쟁하고 타협하는 관계로 보고, 이 관계 속에서 등장하는 민간집단이 국가권력 내지는 기성 정치권력과 경쟁·협상하는 정치적 행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시민사회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귀환』의 민간사회론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인권문제에서도 아시아보다는 인권에 무게를 두는 형태로 투영된다. 보편성과 특수성 사이를 오가는 무게추는 읽는 사람에게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안긴다. 어느 한쪽도 버리지 않으면서 한쪽에 약간 더 무게를 실어둔 저울은 입바람으로도 일순에 저울대가 기울어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중국을 보는 창은 세 가지로 추릴 수 있다. 하나는 왜 중국에서 혁명이 지선의 목표(방향)로 끊임없이 추구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망국을 피하고 부강을 이루기 위한 조급함이 혁명의 선호로 나타났고, 조급함은 일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해당하는 것이어서 성급한 제국주의 국가로의 욕구가 결국 팽창과 침략으로 구현되었다는 답을 제시했다. 이를 “역사의 시간과의 숨가쁜 경쟁”(3면)이라고 표현한 것은 신선하다. 다른 하나는 집권과 분권의 관점인데, 공산당도 항일전쟁이 끝날 무렵 해방구의 존립이라는 현실의 정치적 필요로 분권론을 주장한 사실을 들어, ‘중국은 하나’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당위론을 상대화시켜내었다. 또 하나는 자유주의에 입각한 가치관이다. 이론보다 사실에 입각한 연구를 시종 관철해왔지만, 그 속에 저자의 자유주의가 투영되어 있다. 대만사에 대한 서술은 반독재투쟁으로서의 민주화를 위한 역정으로 그려지고, 후 스(胡適)에 대한 그의 애착도 마찬가지의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전근대 동아시아 왕조간 관계에서 ‘편의로운 오해’(44면)라는 『경쟁』의 표현은 ‘시간과의 경쟁’과 더불어 신선하다. 다만 ‘편의로운 오해’의 존재를 지적할 뿐 그것이 왕조간 관계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근대 동아시아 왕조간의 적절한 오해는 힘의 강약이라는 현실과 변방의 자존심 간에 여백 내지는 완충지를 허용했고, 이것이 전근대 동아시아가 왕조간에 비대칭적인 세력균형─달리 표현하면 ‘기우뚱한 균형’─속에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한 비결은 아닐까. 동아시아의 근대가 그러한 ‘편의로운 오해’나 애매한 완충지대를 없애가며 경계선을 확정해간 역사라면, 21세기의 동아시아는 경계선의 유동화나 ‘편의로운 오해’의 부활에서 전망의 실마리가 있을지 모른다. 가령 불법체류자를 어느정도까지는 묵인하는 것을 ‘편의로운 오해’의 연장선으로 간주하는 것은 비약일까. 이러한 전망은 『귀환』이 지향하는 ‘근대의 극복’과도 통하리라.

두 책의 저자는 주체와 객체 간의 지나친 근접은 밀착사관으로서 경계했다. 보는 자의 입장강조가 지나쳐 일방적인 면을 부조하거나 보는 대상이 너무 가까워지면, 사실이 객관적인 모습을 잃어버리기 십상인 것이다. 그런데 두 책은 연구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동아시아의 현실에 개입한다. 『경쟁』에는 중국과 일본의 대국화에 대한 경계심의 표명, 동아시아 각국간에 실질적으로 평등한 관계의 전망에 그치고 있으나, 『귀환』에는 좀더 뚜렷하다. ‘복합국가’의 제시, 성찰적 주체의 형성에 대한 기대,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패권주의=대국주의의 해체, 상호 대등한 국제협력과 민간차원의 연대, 동아시아에 대한 수평적 사고 등을 근대극복의 처방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이나 처방은 동아시아라는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이 아울러졌을 때, 보는 자가 보이는 대상에 개입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것이 동아시아적 시야가 갖는 장점이다. 그런데 밀착과 개입의 경계선은 어디일까. 가령 그것이 편견과 비판으로 구분된다면, 편견적 밀착에서 비판적 개입으로 넘어갈 수 있는 대상과의 적정한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하고 평자는 자문해본다.

앞서 두 저서는 중국이라는 대상을 투과하여 동아시아로 맺어진 영상이라고 평했지만, 사실 두 저서가 그려내는 동아시아 영상은 뚜렷하게 와닿지는 않는다. 그것은 두 책의 저자가 동아시아를 발명하려는 것이 아니며, 동아시아란 중국을 보는 하나의 방편에 그치기 때문이나, 한편으로는 동아시아라는 지역패러다임 자체가 원천적으로 논리적인 엄밀성을 갖기 힘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역적 범주나 문화적 혹은 역사적 경험의 공유에 대한 회의가 아니다. 지역이라는 것 자체가 다의적이기 때문이다. 민족은 상대적으로 선이 분명하게 그어지나, 지역은 그 개념자체가 역권(域圈)·지대(地帶)·지방 등으로 논자에 따라 각각 달리 사용될 정도로 함축적인, 다시 말하자면 애매모호한 것이며, 지역과 지역의 경계선도 민족에 비해 불분명하다. 지역을 파악할 때의 관건은 거리의 문제이나, 먼가 가까운가는 상대적인 형용사로 민족문제같이 양분법의 피아로 재단하기 어렵다. 중심과 주변도 거리의 문제이다. 『귀환』은 ‘주변’으로부터 중국과 일본을 다시 보는 시각의 유용성을 확인하나, 단서를 붙인다. 주변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을 특권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점을 부연하여 『귀환』은 중심에 거주하는 개인이나 집단도 주변적 사고를 할 수 있듯이 주변에서도 중심적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65면). 이 부연은 납득되기도 하나, 중심부인의 주변적 사고는 관념적일 수가 있고, 근대사에서 주변인의 중심적 사고는 중심지향적 사고라고 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귀환』에서 높이 산 임화(林和)나 김기림(金起林)의 통찰력있는 안목은 제국 일본의 지적(知的) 중앙 토오꾜오(東京)에 대한 ‘지역적 사고’로 달리 파악될 수도 있다. 그 차별적이고 상치 혹은 충돌하는 주장과 논리를 ‘민족’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역시 근대적 사유방식이 아닐까. 개성적인 통찰력 속에서 달리 추급(追及)되어야 하는 것은 ‘지역적 사고’이다. 모호하다는 점에서 지역패러다임은 근대적 사유방식을 넘어서는 힌트를 내장하고 있는지 모른다.

 

3. 그래서 생각해볼 일은 정보나 지식의 유통문제이다. 두 책에서도 특히 정보의 유통문제에 유념하고 있다. 한국언론의 중국정보 유입루트에 대한 언급이나, 조선왕조의 아편전쟁에 관한 정보수집 등에 관한 분석은 흥미롭다. 그런데 중국에 대한 언급에서는 정보나 지식의 유통보다는 대개 유명인을 위주로 한 지식의 생산에 촛점을 맞추었다. 량 치챠오(梁啓超), 후 스 등의 동서문화론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생산된 지식 모두가 해당 사회에 유통되는 것은 아니고, 그 소비자들도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 대하여 주목되는 언급이 『경쟁』에 실려 있다. 『경쟁』은 근대중국에서 사회변혁의 담당자로 기왕에 주목받은 해외유학생층보다도 중소도시, 향촌지대의 소학교 교사의 양태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그들은 신교육에 의한 신분상승 욕구를 가졌으나, 현실에서 겪는 좌절로 인해 반체제적 아웃싸이더로서 급진운동에 이끌리게 된 점을 강조했다. 또한 ‘문명’이란 말이, 화자가 단순하게 고급한 단계를 의미하여 사용하는 경우에도,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부르주아적 또는 서양적 가치나 단계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평자의 용어로 말하자면, 이러한 지적은 신지식을 소비하는 2류, 3류 지식인의 존재와 그들의 지식소비 그리고 소비의 자의성이다. 『경쟁』은 또한 신문의 기사를 사실로서 인용할 뿐 아니라, 기사의 형태를 살핀다. 가령 만보산 사건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 분석에서 기사의 표제, 활자의 크기, 단수, 기사의 박스 등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러한 주의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 편집을 통해 등급화되면서 차별화된 지식 내지 정보로 대중들에게 소비되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러한 점에 천착한 것은 아니고 편린적인 언급에 그치고 있지만, 그의 지적과 분석기법은 사상사 연구자들이 대부분 특정 유명인사 개인연구에 치중하고 개인의 저작물 위주로 분석하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념과 지식의 생산뿐 아니라 그 생산된 이념이나 지식이 어떻게 확산되고 유통됐는가가 함께 검토되지 않으면 사상사 연구는 완결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 사상은 사회적으로 유통되고 작용하여 연구의 가치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사적으로 보면 수동적 대중의 의미도 적지 않다. 근래 중국에서 퍼져가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소비자로서의 개인’에 대하여 『귀환』은 상업주의 폐단으로 우려하는 듯한데, 그런 현상은 이미 중국만의 현실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에 걸친 현실이고, 동아시아에서 그러한 현상은 이미 20세기초부터 있어왔다. 1930년대 중국 젊은이 사이에서 공산주의나 삼민주의보다 훨씬 인기가 있었던 『싱스(性史)』의 저자 쟝 징셩(張兢生)의 유미주의를 소개하는 한국언론의 기사를 ‘생동감, 현장감 있는 보도’로 평가하는(218면) 『경쟁』의 안목은 ‘소비자로서의 개인’과 관련하여 주목된다. 『귀환』은 자율적인 중간집단에 주목하는데, 그 중간집단은 능동적 대중이다. 그러나 능동적 대중이 소수라면 수동적·소비적 대중이 다수이다. 다수의 수동적·소비적 대중을 외면하고서는 『귀환』이 지향하는 근대의 극복은 단지 지향에 그치기 쉽다. 『귀환』은 중국의 환경문제에 대하여 “우리 자신이 고도소비를 절제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다는 믿음직한 자세를 보여주어야만 한다”(231면)는 ‘도덕적 희망’을 피력하고 있다. 능동적 대중이 그런 자세를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환경문제 나아가 동아시아 지역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소비적·수동적 대중이다. 20세기초 민간 차원의 아시아 지역연대의 구상이 단명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일반민중의 일상생활 속의 실감과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귀환』의 평가에서 그 일반민중은 바로 수동적·소비적 대중이 아닐까. 『귀환』이 애국계몽기의 신소설에서 당시 일반 조선인의 중국상을 찾아내었듯이, 소비적 대중은 루 쉰(魯迅)같이 사회의식이 투철한 작가의 작품보다는 원앙호접파(鴛鴦蝴蝶派)의 통속소설에, 『뚱팡짜즈(東方雜誌)』보다는 『량여우화빠오(良友畵報)』에, 『시소오(思想)』보다는 『킹(キング)』 같은 통속잡지에, 그리고 잡지나 신문의 기사내용보다는 광고에 숨어 있을 것이다.

『경쟁』은 저자의 이전 저작과는 꽤 색다르다. 시기적으로 천년을 넘나들기도 하고, 지역적으로 중국과 일본, 조선을 종횡하는 거시적인 큰 스케치가 그러하다. 또한 단정적인 표현을 가급적 피하고 절제했던 것과는 달리, 『경쟁』의 표제논문인 「시간과의 경쟁」에서는 상당히 단호한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철저하게’ ‘전혀’ ‘(일본의) 독선과 오만’ ‘끝까지’ ‘서슴없이’ 등의 표현이 그러하다. 큰 스케치와 단호한 표현은 저자의 고쳐쓴 「후기」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가 다시 반추하고 싶었던 후 스의 말, “만약 어떤 노력이 사상적으로 깊이 생각한 끝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언젠가는 효과를 발생할 것입니다.” 저자는 오랜 동안 온축한 지혜를 『경쟁』에 남김없이 퍼담으려 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여기서 그는 오랜 심사숙고의 지혜를 더욱 간결하고 강한 어조로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저자는 왜 예전과 달리 거시적인 스케치와 강한 어조로 후일을 기약했을까. 후 스가 피력한 믿음은 당시 중국사상계에서 주목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젊은 시절의 것이었지만. 저자는 이미 한국 동양사학계의 둘도 없는 대들보였다.

근래 한국학계에서 동아시아론이 점차 축적되어가는 과정에서, 두 저서는 방향과 방법에서 하나의 지표를 제시한 셈이다. 그동안 한국의 동아시아론이 문명적 대안론같이 관념적인 선언에 그치는 논의가 적지 않았다. 근현대 중국을 보되 끊임없이 동아시아를 의식한 두 연구는 보는 주체와 보이는 객체를 비교보다는 상호관련 속에서 교차하려 한 점에서 이전의 연구와는 차별되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특히 『귀환』은 국민국가의 전개과정, 민간사회의 궤적, 그리고 인권의 문제를 씨줄로 삼으며 동아시아를 날줄로 엮어내었다. 씨줄과 날줄을 짜내면서 저자가 끊임없이 씨름한 질문은 동아시아가 어떻게 근대에 적응해왔는가, 적응과정의 탐색에서 근대의 극복을 위한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하는 점이다. 지식인으로서 이 땅에서 해야 할 역할은 후자의 문제에 대면하게 만들고, 역사학자란 전자의 작업을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의무를 다하는데, 그 어느 쪽도 소홀히하지 않은 지적 작업이 『귀환』이다. 다만 사회가 지식인에게 요구하는 역할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줄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점과 관련하여 『귀환』의 저자가 하는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21세기문명 구상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예언자적 지식인이 아니라 익명적인 교사 같은 존재이다(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