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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차별과 연대
외국인노동자 인권침해 실태와 극복방안
설동훈 薛東勳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위원. 저서로 『외국인노동자와 한국사회』 『노동력의 국제이동』 등이 있음. dhseol@plaza.snu.ac.kr
1. 노동시장의 변화와 외국인노동자의 유입
2000년 가을 이후 국내 경제의 사정이 좋지 않다. 실업자 수가 1998년 수준에 근접한다는 위협성 분석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시장 상황이 불안한데도 외국인노동자는 거의 대부분 일자리를 갖고 있으며, 새로 입국하는 사람도 계속 줄을 잇고 있다. 그 까닭은 외국인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인들이 취업하기를 꺼려하는, 어렵고 위험하며 지저분한 ‘3D’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실업과 구인난이 병존하는 ‘일자리-인력 부조응’(job-mismatch)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대졸인력의 구직난·실업, 생산기능직의 구인난·인력난이 병존해온 것이다. 중소제조업체의 생산직 인력난은 특히 심각하다. 실업률이 매우 높은데도 중소기업 생산직 인력 부족이 지속되는 것은 한국인들이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꺼리는 현상의 반영이다. 즉, 생존의 문제에서 해방된 한국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의 사업장에 취업하려 하지 않았다. 1997〜98년의 대량실업 사태 속에서도 한국인들은 이 부문을 여전히 기피했다. 결국 중소제조업 생산직은 열악한 작업환경과 장시간 노동, 저임금, 그리고 낮은 직업 위신(prestige) 등을 동반하는 기피직종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상당수 국내 중소기업 경영자는 빈 일자리를 메워줄 수 있는 대체인력을 외국인노동자에서 찾았다. 외국인노동자는 1987년경부터 한국으로 들어왔으며, 2001년에는 약 30만명에 달할 정도로 그 수가 급증하였다(설동훈 2000a, 190면). 그것은 국내 중소기업들이 1994년 이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를 창구로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을 대거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입국하여 국내에서 취업한 외국인 미등록노동자들이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외국인노동자 수는 1998년 국내 경기침체로 일시적으로 격감했으나, 1999년 가을 이후 다시 급증하고 있다. 그들은 전국의 공장·건설현장·식당·농장·어장 등 산업현장에서 한국인이 기피하는 일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그들은 한국 노동시장의 일정 부문을 전담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한국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고령화의 진전과 출산력의 감소로 노동력 공급이 감소하게 될 미래에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유엔이 2000년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이 1995년의 노동연령 인구, 노령인구 부양비를 2050년에도 유지하려면 2035〜50년에 연간 10만명 꼴로 150만명의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조선일보』 2000.3.23). 이는 생산성 증가 등 경제성장의 다른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이지만, 장래에 외국인력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데는 충분하다. 결국 외국인노동자는 국내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차지할 것이며, 이러한 경향은 자본의 전지구화가 심화될수록 더욱 뚜렷이 나타날 것이다. 외국인노동자의 국제적 이동행렬은 한국 자본을 포함한 세계적인 자본운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설동훈 2000a, 44〜54면).
외국인노동자 연구는 21세기 한국사회의 가장 큰 과제인 통일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통일 이후 한국사회가 직면할 가장 큰 난제는 남북한 주민간 상호대립과 불신일 것이다. “헤어졌던 형제가 어울려 사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을 것이냐”고 낙관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상이한 체제로 분단되어 대립한 세월 동안 사회의 이질화가 심화되었으므로, 통일 후 사회통합 과정은 별개의 두 나라가 합쳐지고 두 국민이 하나되는 과정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더불어 사는 사회’ 건설은 남북통일 후 한국사회의 가장 큰 과제가 될 사회통합의 기초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한국이 외국인노동자를 착취하는 야만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인권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사회 내부에서 자행되는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의 실태를 확인하고, 그 원인을 구명하며, 극복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긴요하다.
2. 한국인의 외국인노동자 차별
국내 외국인노동자 약 30만명 중 65%가 미등록노동자고, 29%가 산업연수생, 1%가 연수취업자, 5% 정도가 전문기술직 종사자다. 또 이들 중에서 95%는 단순기능직 종사자이고, 그중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자격을 인정받는 ‘연수취업자’는 1% 정도에 불과하다.(임현진·설동훈 2000, 8면)
한편, 국내 생산기능직 외국인노동자의 26%는 중국동포 또는 우즈베끼스딴·까자흐스딴 동포다(Seol 2000, 136면). 그들이 외국인노동자 속에 섞여 있는 것은 구한말 이후 시작된 한민족 이산(diaspora)의 유산이다. 기아와 식민 압제 및 전화(戰禍)를 피해 해외로 이주한 한인의 후손들이 할아버지의 나라로 귀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그들을 ‘다른 외국인과 전혀 다름없이’ 대한다.
한국에는 외국인력의 수입과 관리를 규제하는 법률이 없다. 한국정부는 단순기능 외국인력을 ‘공식적으로’ 수입하지 않고, 각종 편법을 통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업연수생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다. 그들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는 중소기업청과 노동부의 고시나 예규 등의 지침밖에 없다. 제도의 미비로 한국에서는 외국인노동자의 인권침해 사건이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발하고 있다.
미등록노동자는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상의 약점 때문에 임금체불, 사기 피해, 산업재해 등 인권침해를 당하고도 피해사실을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등록노동자가 자신이 입은 피해를 구제받기 위해서는 노동부에 진정을 하거나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불법체류 사실이 알려져 강제출국당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외국인노동자 인권침해 사건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는 것마저 어려운 실정이다.
산업기술연수생은 합법적 ‘체류자격’을 갖고 있으므로, 피해를 입었을 경우 보상받을 수 있는 구제절차가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산업기술연수제도는 외국인 산업연수생에 대한 차별임금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미등록노동자는 한국인노동자와 거의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지만, 산업연수생은 그보다 훨씬 낮은 임금을 받는다. 그 때문에 산업연수생이 지정된 사업체를 이탈하여 미등록노동자가 되는 경우가 빈발한다. 1994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도입한 제1차 산업연수생은 절반 이상이 지정된 사업체를 이탈했다(설동훈 1999, 122면). 산업연수생의 인권침해 사건은 그들의 사업체 이탈을 막으려는 기업의 부적절한 대응방식 때문에 주로 발생한다. 한편, ‘3년차 산업연수생’에 해당하는 연수취업자는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산업연수생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고 있다.
임금체불과 저임금
미등록노동자는 한국인이 일하기를 기피하는 3D 업종의 영세기업에 주로 취업하고 있다. 그들은 같은 기업에서 일하는 한국인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그들이 그렇게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은 직장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더 높은 임금을 주는 곳이 있으면 직장을 바꾼다. 그러므로 그들은 차별적 저임금 문제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임금체불 문제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1999년 1년간 전국의 69개 외국인노동자 관련 단체에 상담 접수된 임금체불 사례는 무려 4782건이었다(설동훈 2000b, 23면). 그들의 대부분은 미등록노동자였다.
미등록노동자의 임금체불이 심각한 까닭은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이 취업한 업체가 영세하여 도산이나 폐업이 잦다. 기업이 부도를 당했을 경우 그들의 임금은 거의 떼인다. 둘째, 미등록노동자의 이직률이 높다보니, 기업에서 그들을 묶어두기 위하여 일정 금액을 담보로 압류하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더욱이 외국인노동자가 일정기간(예컨대 1년) 이내에 다른 공장으로 직장을 옮기면 기업이 체불임금을 몰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셋째, 미등록노동자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하여 악의적으로 임금체불을 일삼는 기업이 더러 있다.
한편, 외국인 산업연수생은 저임금에 시달린다. 그들의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으므로, 임금수준이 미등록노동자보다 훨씬 낮다. 기업이 ‘외국인 산업연수제도 운영에 관한 지침’의 ‘규정대로만’ 연수수당을 지급하는 경우 산업연수생의 임금 불만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기업에서는 각종 수당 명목으로 산업연수생의 임금을 올려주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기업에서는 산업연수생의 사업체 이탈률이 매우 높다.
산업연수생의 임금체불은 미등록노동자에 비하면 심각하지 않다. 기업이 도산했을 경우 임금을 변제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고, 또 산업연수생이 임금체불 사실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 신고하면 이를 해결해주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도적 절차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산업연수생의 임금체불은 발생한다. 그 까닭은 기업의 자금순환이 어려울 경우 일차적 희생자가 외국인 산업연수생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출신 노동자 사후관리를 담당하는 한 업체가 만든 한국어 실용회화 교재에 “저는 월급 한푼도 못 받았어요. 왜 지금까지 월급 안 주세요? 월급 안 주면 일을 안할 거예요. 식비를 더 주세요” 등의 문장이 실려 있을 정도다(『문화일보』 2000.11.8).
체류자격에 관계없이 모든 외국인노동자는 노동부 예규에 의하여 임금체불을 비롯한 기본적 노동조건의 보호를 받지만, 현실적으로는 임금체불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임금체불은 외국인노동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근로감독의 문제다. 그렇지만 산업연수생은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미등록노동자는 그들의 취업 사실 자체가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철저한 근로감독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산업재해와 직업병
외국인노동자가 취업한 기업은 대부분 3D 업종으로 매우 열악한 노동환경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노동자의 산업재해 피해가 자주 발생한다. 1999년 1년간 국내 시민단체의 외국인노동자 산업재해 상담사례 수는 740건이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도 적지 않은데, 시민단체가 1년간 접수한 사망사고 처리건수는 125건이었다(설동훈 2000b, 23면).
한편, 근로복지공단의 「외국인 보험급여지급 현황」(2000)에 나타난 1999년 산업재해 피해건수를 보면, 산업연수생 619건, 미등록노동자 340건, 전문기술직 종사자 12건이었다. 산업연수생이 취업중인 기업은 미등록노동자가 일하는 기업보다 근로조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나, 그 역시 3D 업종이므로 산업재해가 빈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외국인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했을 경우, 산업연수생과 미등록노동자 모두 산업재해보상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산업재해보상보험료율이 인상되고 산업재해 다발 사업장으로 지적되는 것을 우려하여 산업재해 보상신청을 기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실제 산업재해 건수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산업재해 보상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산업재해 보상을 받았다 하더라도 애초에 기본급이 낮게 책정되어 있는 산업연수생인 경우는 보상액수가 턱없이 낮을 수밖에 없다.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이나 위자료는 거의 없다.
미등록노동자와 그를 고용한 기업은 불법체류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산업재해 보상신청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외국인 보험급여지급 현황」에서 미등록노동자의 산업재해 보상건수가 산업연수생보다 현저히 적다. 또 많지는 않으나 기업 또는 사후관리업체가 외국인노동자의 산업재해 보상금을 착복한 사례도 있다.
네팔인 노동자들의 모임인 네팔인자문위원회는 한국에서 산업재해를 당한 동료들의 모습을 담은 2000년 달력을 만들어 국내외에 배포했고, 한국에서 일하고 귀국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겪은 인권침해 실상을 고발하는 책을 발간했다. 그 책의 표지에는 ‘한국에서 일하다 팔이 잘린 노동자가 노려보는 사진’이 실려 있다(『중앙일보』 2000.5.23).
‘외국인 산업연수제도 운영에 관한 지침’에 의하면, 기업은 산업연수생이 도착하면 10일 정도에 걸쳐 산업안전·문화·언어 등의 교육을 하게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또한 노동부 산업안전국은 2000년 4월 30일부터 산업연수생을 대상으로 산업안전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나, 각국의 언어능력을 갖춘 강사와 교육자료가 부족하고, 그러한 기회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직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미등록노동자는 이러한 제도적 혜택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기후와 음식이 다른 낯선 곳의 열악한 작업장에서 장시간 일하다보니, 외국인노동자는 아파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일이 잦다. 직업병을 얻은 사람도 적지 않다. 필리핀 노동자들이 발행하는 소식지에 한국어 실용회화의 예로 “나는 아프다. 내 머리가 아프다. 내 어깨가 아프다. 내 눈이 아프다” 등의 문장이 실려 있을 정도이다(설동훈 1999, 291면). 산업연수생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나, 미등록노동자는 의료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 1999년 1년간 외국인노동자가 시민단체를 찾아 의료문제를 상담한 사례는 6759건이다(설동훈 2000b, 23면).
폭행
외국인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가장 힘든 일만 전담하고 있다. 그들은 직장에서 한국인노동자와 같은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어떤 직종에서 일하든 주변적 역할을 담당한다. 그들의 직무는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하지만 생산과정에서 핵심적이 아닌 허드렛일이 많다. 그들은 사용자뿐 아니라 동료노동자로부터도 명령과 지시를 받는 위치에 있다. 그들과 같이 일하는 일부 한국인 관리자와 노동자들은 그들을 ‘부하직원’이나 ‘동료’로 대하기보다는 ‘하인’으로 부린다. 일부 한국인 관리자나 노동자는 자신의 명령에 외국인노동자가 복종하지 않으면 욕설을 하거나 구타·폭행 등 가혹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한 중소기업 사장이 “뺨을 때리는 정도를 문제삼으면 어떻게 일을 시키겠느냐”고 할 정도로 작업중 폭행이 빈발하고 있다. 베트남 노동자 사후관리업체가 만든 한국어 실용회화 교재에 “우리도 사람이에요. 함부로 때리면 안돼요. 왜 나를 때려요. 그 사람이 저희를 자주 때려요” 등 때리지 말라는 말이 여러 형태로 소개되어 있다(『문화일보』 2000.11.8). 외국인노동자가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다.
기업관리자나 동료 한국인노동자에 의하여 자행되는 폭력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행위이다. 그러나 피해를 당한 외국인노동자가 형사 고소나 민사상 손해배상 등 법률적 구제절차를 제대로 밟은 경우는 거의 없다. 미등록노동자는 불법체류 사실을 신고하여 강제 출국시키겠다는 위협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산업연수생은 기업관리자에게 잘못 보이면 해고 후 강제귀국 조치될 것을 두려워하여 ‘그냥 참고 견딘다’.
한 방글라데시인 노동자는 동두천시 의류공장에서 일할 때 한국인 관리자가 자국인 노동자를 때리는 것을 말리다 그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팔이 부러져 8개월 정도의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였으나, 겨우 치료비만 받고 보상금은 한푼도 받지 못한 채 해고되었다(『동아일보』 2000.12.11). 2000년 10월 20일 대전에서는 한 베트남 여성노동자가 직장에서 사귄 한국인 애인에게 구타당해 무참히 살해되었다. 가난한 이웃나라의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학대하다가 끝내 죽음으로 몰고 간 이 사건은 한국인에 의한 외국인 인권유린의 극단이었다(KBS 「추적60분」, 2000.11.26). 물론 외국인노동자가 한국인의 폭력에 항거하거나 더 강한 폭력으로 앙갚음한 사례도 없지 않으나, 한국인에 의해 자행되는 외국인노동자 인권유린 사례가 훨씬 더 많고 그 피해정도가 심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신분증 압류와 감금노동
상당수 기업에서는 미등록노동자의 이직 방지를 위해 여권을 맡아두고 임금의 일부를 압류하고 있다. 또 산업연수생을 사용중인 기업 역시 사업체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여권과 외국인등록증 등 신분증을 압수·보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의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 인권백서』(2000)에 의하면, 산업연수생 사용업체의 90% 이상이 신분증을 압류하고 있다(20면). 1995년 이후 기업이 외국인노동자의 신분증을 압류하는 것은 노동부 예규 위반이지만, 형사처벌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달리 그 이행을 강제할 방법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한데 신분증 압류는 ‘사업체 이탈 또는 이직 방지용’이므로, 미등록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은 신분증을 맡아두지 않는 곳도 많다. 신분증 압류가 미등록노동자의 이직을 방지하는 데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법체류자가 국내에서 여권을 사용해야 할 일이 별로 없고, 출국하기 위해서는 여권이 필요하지만 이 경우에도 자국의 외교공관에 신청하면 얼마든지 여권을 재발급받을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근로기준법 제29조에 의하여 강제저축이 금지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산업연수생 사용업체는 그들의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떼어 강제로 저축하도록 하고 있다. 1996년부터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산업연수생의 사업체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연수생에게 목돈을 만들어 귀국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연수생의 임금에서 일정부분(기본급의 50% 이상)을 강제적으로 정기적금에 가입하게 하고 계약기간이 끝나고 출국할 때 공항에서 지급하도록 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중소기업청 고시 ‘외국인 산업연수제도 운영에 관한 지침’ 제23조 자발적 의사에 의한 정기적금 가입 조항에 의하여 제도적으로 뒷받침된다.
그런데 정기적금 가입이 산업연수생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강요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면 문제가 된다. 실제로 많은 산업연수생은 입국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본국에서 큰 빚을 진 경우가 많고, 본국에 가족이 있으므로, 부채상환금이나 생계비를 본국으로 송금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임금 중 상당 금액을 강제적으로 정기적금에 가입하게 하는 것은 본인의 처분권을 제한하는 부당한 행위다.
또한 산업연수생을 사용하고 있는 일부 기업에서는 그들에게 한국인 감시자를 붙이거나, 일과 후 또는 휴일에도 그들의 공장과 기숙사 밖 외출을 통제하고, 밤에는 아예 기숙사의 방문을 밖에서 잠그기도 한다. 보통 산업연수생이 사업체를 이탈할 경우 자국인 미등록노동자나 브로커를 만나 노동시장 정보를 입수해 행동에 옮기는데, 이는 그 과정의 첫 단계부터 차단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감금노동은 노예에게만 행해졌던 극단적 인권유린으로 엄격히 금지되어야 하지만, 교묘하게 변형되어 시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3. 차별의식의 근원
차별(discrimination)은 ‘신분’관계의 출발점이자 그것을 강화하고 지속시키는 주된 요인이다(김필동 1999, vi면). 차별은 고정관념(stereotype), 편견(prejudice)과 함께 ‘다른 집단에 대한 적대적 집단의식’을 구성하는 세 요소다. 고정관념은 집단적대감의 ‘인지적 요소’로 ‘어떤 집단 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믿는 성격이나 행동양식의 특징’을 말하며, 이러한 지식이나 신념은 단순화되어 부정확하고 비논리적이며 쉽게 바뀌지 않는다. 편견은 ‘평가적 요소’로 ‘어떤 집단 성원들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지칭하며, 집단적대감의 핵심이다. 차별은 ‘행동적 요소’로서 ‘어떤 개인 또는 집단 성원들을 그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 때문에 불공정하게 대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일부 한국인은 외국인노동자를 깔보고 무시한다. 이를 일컬어 함한희(1995, 208〜13면)는, 한국인들은 외국인노동자가 피부색깔이 검고 가난한 나라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그들을 열등한 인종으로 대하는 인종주의(racism)적 태도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인의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편견·차별이 중국동포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러한 태도가 ‘인종주의’보다는 ‘배타적 위계의식’에 기반을 둔 ‘전근대적 노사관계 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설동훈 1999, 395면).
신분적 위계제에 바탕을 둔 전근대적 노사관계 관념에서 노동자는 고용주와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위계의식에 젖은 한국인들에게 그들은 노비 또는 머슴·식모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말하자면 많은 한국인은 외국인노동자가 가난한 나라 출신으로 한국인이 꺼려하는 직업에 종사한다는 점에서 그들을 멸시한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나라와 직업에는 귀천(貴賤)이 뚜렷하다.
한국인은 전근대적 위계의식을 평등의식으로 전환할 겨를을 전혀 갖지 못한 채 외국인노동자를 맞이해야 했다. 위계의식에 사로잡힌 자에게 인간의 평등과 존엄이란 사전 속에만 있는 단어일 뿐이다. 이러한 차별의식은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사회에 이식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전통사회에서 존재하던 직업에 따른 위계의식의 발로일 수도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해, 전통사회에서부터 지속되어온 위계의식에 식민주의적 태도가 부가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직업에 따른 위계서열〔士農工商〕이 매우 엄격했고, 식민지 시대와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정복과 피정복, 지배와 복종의 서열적 관계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어왔다. 그러므로 가난하고 약한 자를 무시하고 착취하는 것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100년 전 이 땅에서 저질렀던 과오를 반복하는 짓이다. 즉, 피식민 국민으로서 남의 종살이를 하면서 증폭된 한국인의 비뚤어진 마음의 한 구석이 해방 55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은 현대에도 계승되어 육체노동자 천시 풍조로 잔존하고 있다. 위계의식의 발로로 한국인이 기피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천대 분위기가 확산되었으며, 결국 그것은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로 발현되었다.
한국인들이 외국인노동자를 차별하는 현상은 전통적 배타의식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배타의식은 위계의식과 상호작용하며 차별적 태도를 배양해왔다. 배타의식이 강한 한국인들은 ‘우리’를 강조한다. “우리가 남이가?”라고 할 때, 여기에는 우리는 무조건 좋은 것이고 남은 무조건 좋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태도는 민족문화에 대한 과장된 자부심과 열등감의 기묘한 혼합물이다.
사회심리학의 구별이론(distinctiveness theory)에 따르면, ‘우리’라는 정체성은 특정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 자신이 같음을 확인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별함으로써 형성되는바(McGuire & McGuire 1988, 102면),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외국인노동자는 결코 ‘우리’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은 중국동포조차 그가 한국에서 3D 업종의 일을 떠맡아 하는 단순노동자인 이상 ‘우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한국인노동자의 마음속에서 외국인노동자는 ‘영원한 남’으로 자리매겨진다(박노자 2000, 83면).
외국인노동자에게 누가 자신을 가장 차별하는가를 질문했더니, 그들은 직장의 관리자와 사장이 차별대우하는 것으로 대답했고, 동료 한국인노동자는 비교적 친절하게 대하는 것으로 응답했다(설동훈 1999, 268면). 같은 노동자로서 서로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서가 지배적인 것이다. 그런데 외국인노동자 중 일부는 동료 한국인노동자가 관리자보다 더 극심한 차별대우를 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중국동포들에게서 이러한 대답을 특히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동포’가 아니라 ‘똥포’로 대접받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박혜란 1996, 103〜104면). 일부 한국인노동자는 자신이 마치 외국인노동자의 사용자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뿐 아니라, 사용자·관리자보다 훨씬 심한 차별대우를 일삼는다. 유명기(2000, 166면)는 이러한 현상을 차별받는 자가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것으로 파악해 ‘복합차별’이라 개념화한다. 그에 의하면, 일부 한국인노동자들은 외국인노동자를 자기보다 낮은 존재로 위치시킴으로써 자신의 우위를 확립한다. 한국사회의 지위 서열에서 자기보다 낮은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계급이 ‘남성다움’의 문화를 내면화하여 타인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으로서, 성차별이나 인종차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으며, 때로는 중간계급보다도 더 노골적인 차별자가 된다는 윌리스의 분석(Willis 1977)을 떠올리게 한다. 부연하거니와 이 말은 한국인노동자가 외국인노동자를 가장 심하게 차별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노동자조차도 차별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한국노동자의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외국인과 한데 어울려 산 적도 없고, 같이 일한 적도 없는 한국인의 일반적 통념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4. 외국인노동자와 더불어 사는 사회
전지구화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외국인과도 상생(相生)을 도모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이와는 거의 정반대다. 국내에 체류중인 많은 외국인노동자가 인권침해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업기술연수제도와 연수취업제도 등 한국의 외국인력정책은 ‘현대판 노예제’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Linard 1998;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2000). 그리고 외국인노동자가 약자라고 깔보고 업신여기는 비열한 인간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타인의 인권을 유린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 외국인노동자 인권침해가 만연한 일차적 원인은 미등록노동자를 양산하고 산업연수생의 사업체이탈 사태를 초래한 ‘잘못된 외국인력 정책’에 있다. 또한 그 제도조차 뒤죽박죽으로 운영한 사람들의 책임과, 외국인노동자를 무시하고 차별해온 일부 한국인들의 저열한 인식이 이러한 상황을 초래했다.
외국인노동자의 인권실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적·제도적 장치를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도’는 외국인노동자를 연수생이 아닌 ‘근로자’로 받아들이고, 내국인노동자를 구할 수 없는 국내기업에 외국인력을 공급하겠다는 방안으로, 불법체류자 문제와 인권침해 문제뿐 아니라 송출비리까지도 척결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사코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외국인노동자를 ‘근로자’로 대우하는 데 극력 반대하면서, 그것은 국가적 낭비라고 우긴다. 이러한 태도의 근원에는 배타적 위계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억지가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산업기술연수제도와 연수취업제도를 외국인력정책의 중추로 유지하려는 시도는 기필코 저지되어야 한다.
제도개선과 동시에 외국인노동자에 대하여 차별대우와 인권침해를 일삼는 일부 한국인 관리자와 노동자의 의식을 계몽하려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 내용은 피부색과 문화가 다른 외국인노동자도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며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익숙하지 않을 뿐, 외국인노동자들은 그들 고유의 언어와 ‘나름대로 합리적인’ 문화를 갖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즉, 한국인들은 외국인노동자가 한국사회의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훌륭한 구성원임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한국인들이 외국인노동자를 ‘기피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이웃’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 비로소 이 땅에서 외국인노동자의 인권침해가 사라질 것이다.
5. 통일된 땅에서 더불어 사는 연습
중국동포는 외국인노동자 중에서 ‘차별받는다고 인식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집단이다. 그들의 임금수준은 외국인노동자 중 가장 높지만, 한국사회에 대한 불만수준 역시 가장 높다. 그들은 같은 민족이므로 내국인 대우를 요구하는 데 반해, 한국인들은 그들을 ‘동포’라기보다는 ‘외국인’으로 여긴다. 즉, 한국인들은 재외동포 노동자들을 ‘우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은 중국동포나 구소련동포 노동자를 주변인(marginal man)으로 만든다(설동훈 1999, 392면).
한국정부의 재외동포정책 역시 국적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된다. 정부는 다른 재외동포에게는 자유로운 한국방문을 허용하면서, 중국동포나 구소련동포에게는 친척방문의 조건을 55세 이상, 그것도 90일 동안으로 정하여 규제한다. 또 재외동포법에 의하여 재외동포들이 국내에서 내국인과 마찬가지의 대우를 받으며 취업하고 장기체류할 수 있으나, 중국동포나 구소련동포는 여기서도 제외된다. 재외동포법의 적용대상을 ‘과거 대한민국 국적을 지녔던 사람이나 그 자녀’로 한정하여, 1948년 정부수립 이전에 해외로 이주한 사람과 그 자녀는 배제하기 때문이다. 결국 아직까지 재중 동포와 재 구소련 동포는 여전히 ‘재외동포 체류자격’ 사증을 발급받을 수 없는 ‘한국계 외국인’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그들이 가난한 나라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정부의 재외동포정책은 동포들이 살고 있는 나라를 빈부의 기준에 의해 위계적으로 배치하여 차별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면, 남북통일이 이루어졌을 때 북한동포들이 어떤 대접을 받겠는가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한 언론인의 보고에 의하면 “통일 후 남한 사람한테 열등 국민의 멸시를 받기보다는 차라리 자폭의 길을 택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소리가 북한동포들 입에서 나오고 있다.”(최병권 1999, 123면) 통일을 피정복과 예속의 길로 본다면 어느 누구든 마지막 순간까지 통일에 저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남북간의 경제와 문화 협력 등을 통한 인적·물적 교류 단계를 거쳐 마침내 통일을 달성할 것이다. 통일은 사람들의 이주와 취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달리 말해 남북 노동시장 통합을 동반한다. 노동시장 통합은 사회통합의 첫 단계며, 통일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다. 통일이 되면 처음에는 따뜻한 동포애가 지배적일 것이나, 들떴던 열광이 식으면 즉시 현실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박완서 1991 참조). 통일 직후의 열기가 식으면서 남북한 주민들은 서로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점에 좌절할 것이다. 북한주민들은 직업 상실의 공포, 학교 졸업 후의 구직문제, 대규모 인구유출 등에 직면할 것이고, 남한주민들은 대량실업과 경제성장의 정체를 절감하게 될 것이다. 북한주민들은 남한주민들이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분개할 것이고, 남한주민들은 북한주민들이 괜히 트집잡는다고 짜증낼 것이다. 이 과정을 잘못 관리하면, 개인 수준에서는 독일인들이 행하는 것과 유사한 ‘희생양 찾기 놀이’가 발생할 것이고(Böhm, Brune, Flörchinger, Helbing & Pinther, eds., 1993), 집단 수준에서는 예멘사회가 경험한 것과 같은 ‘내전’상황으로 치닫게 될지도 모른다(임현진·공유식·김병국·설동훈 1996).
이러한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해’와 ‘관용’의 정신이 절실히 요구된다. 관용은 참아준다는 뜻이다. 당사자에게는 모욕일 수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인정해야 한다(강정숙 2001, 8면). 즉, 남북한 주민 누구나 “그 처지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통일된 땅에서 더불어 사는 연습’을 위해서 외국인노동자는 매우 소중한 존재다. 현재 한국에는 중국·필리핀·파키스탄·방글라데시·몽골·인도네시아·스리랑카 등지에서 온 노동자들이 온갖 멸시와 불이익을 당하며, 산업재해를 무릅쓰고 노동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전지구화된 세계 속에서 발전을 거듭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민주주의’를 존중해야 한다. 그 방법은 바로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데 있다. ‘더불어 사는 사회’는 모습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화합하며 같이 살아감으로써 건설된다. 상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너의 성공은 곧 나의 패배’ 또는 ‘너의 고통은 나의 즐거움’과 같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너와 나, 또는 그들과 우리가 한데 어울림으로써 씨너지효과를 발휘하는 포지티브섬 게임(positive-sum game)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우리’가 아닌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와 ‘연대’가 절실하다. 연대는 ‘차별적 신분’을 극복한 ‘평등한 공동체와 조직’을 형성하는 기반이자 그것을 유지·발전시키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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