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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50주기에 새로 보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이영철 李榮哲
부산대 철학과 교수. 저서로 『진리와 해석』이 있고,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철학적 탐구』 등을 번역.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은 20세기 철학계의 ‘슈퍼스타’로까지 불릴 만큼 탁월한 철학자로 간주되어왔다. 지난 세기를 마감하면서 『타임』(Time)지가 선정한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물들’에 철학자로서는 유일하게 들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의 무엇이 위대한가? 또 우리는 그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철학자의 위대성이 정확히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이야기될 수 있느냐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러나 어떤 시기에 어떤 철학사상이 사람들에게 어필한다는 점 자체는 어쨌든 의미가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나름대로 시대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꼽히는 인물을 둘러싼 이러저러한─당연히 허실이 있을 수 있는─점들에 대해 우리가 비판적으로 살펴본다면, 우리는 이 시대를 이루는 현실의 중요한 일부를 음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50주기를 맞아 이 글은 그의 철학을 재정리해보고 그것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고찰을 통해 그 의의를 살펴보려 한다. 필자는 그의 철학의 세세한 점들과 관련된 문제들보다는 가급적 그의 철학 전체의 핵심과 관련된 문제들을 조망해보고자 한다.
1. 비트겐슈타인의 삶과 철학 스타일
비트겐슈타인을 현대 철학의 ‘스타’로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은 단순히 그의 철학만이 아니라 동시에 철학자로서의 그의 삶과 스타일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 관한 전기들은 물론, 그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영화·소설·시·음악 등이 존재한다─최근에는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그의 이름을 딴 록그룹까지 등장했다─는 점이 이미 이를 증거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삶은 철학자로서는 드물게 극적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가령 그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의 당시 최고 부호 가운데 하나였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귀족적이고 예술적 분위기 속에서 보냈다든지, 실업고등학교를 나와 공학을 공부하다 철학자가 된 것, 또 1차대전 때 자원 입대하여 치열한 전투의 와중에서 『논리-철학 논고』를 완성한 것이나, 부친의 죽음으로 받은 막대한 유산을 포기하고 전후에 시골 초등학교 교사, 수도원 정원사, 건축가 등으로 전전한 일, 그리고 그렇게 철학으로부터 10여년의 공백기를 가지다가 다시 철학에 복귀하여 매우 새로운 방향의 철학을 한 일(그 가장 큰 결실이 그의 사후에야 출판된 『철학적 탐구』1이다), 그러나 강단생활이 싫어 소련에 노동자로 취직하러 가기도 한 일이나 그의 독특한 강의스타일에 관한 일화 등등은 이제 전설처럼 된 것들이다. 그외에도 그의 동성애 관계를 둘러싼 논란, 그리고 최근에는 히틀러의 반유태주의의 동기가 그와 같은 고등학교에 재학했던 유태계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되었으며, 또 비트겐슈타인은 소련 방문 후 제3인터내셔널의 첩자로 히틀러에 대항하여 활동했다는 알 수 없는 주장까지, 그의 삶과 관련된 문제 자체가 계속해서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2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삶이 이채로운만큼, 그의 철학 스타일도 역시 이채롭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글들은 우리가 다른 철학자의 저서나 논문에서 흔히 보는 것과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의 사유들을 논변 형식으로 단선적으로 표현하지를 않고, 그가 ‘소견들’이라 부른 대체로 짤막한 고찰들을 통해 마치 입체파 화가처럼 (또는 몽따주 기법을 사용하는 영화감독처럼) 중첩적으로 담았다. 그는 이러한 스타일이 문제들을 여러 방향에서 가로질러 고찰하는 자신의 탐구 본성에 어울린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의 글은 종종 읽기가 쉽지 않다. 그 어려움은 우리가 입체파의 그림을 대할 때 느낄 수 있는 낯섦 또는 난해함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주어진 것을 그대로 편안하게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주어진 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단편적 장면들의 이상해 보이는 집합에 불과하고, 온전한 모습은 우리 스스로가 그것들로부터 유기적으로 구성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도 사유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마치 어떤 수수께끼를 풀듯 사유하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의 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한마디로 그의 글은 우리 스스로도 철학하지 않으면 따라가기가 힘들다.
그의 글을 읽기가 쉽지 않은 것은 그러므로 그의 글에서의 어떤 논리의 비약이나 명료성의 결여, 또는 난해한 전문용어들의 사용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글은 독일어 철학 문장으로서는 거의 예외적이라고 할 만큼 매우 간결하고 투명한 명료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소견들’은 종종 경구처럼 함축적인 게, 니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후기의 글들에서 보이는 비전문적인 일상어의 사용에 의한 (내면적) 대화 구조는 플라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 자신은 자신의 문체가 프레게로부터 강하게 영향받았다고 말한다(Z §712).
사실 명료성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추구하는 주요 목표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글이 명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명료성이 우리를 괴롭히는 혼란스런 철학적 수수께끼들과의 지루한 씨름의 장에서 발견될 때, 그것은 특별한 느낌으로 와닿는다. 우리에게 그것은 끝없는 철학적 물음들의 절망적 미로에서 마주치는 한줄기 밝은 빛과 같을 수 있다. 그것은 오랜 철학적 번뇌의 매듭들을 명쾌하게 풀어내는 마술 같아 보이고, 그리하여 그의 ‘소견들’은 마치 깨달은 자의 법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은 그의 글을 거의 예술적인 것으로 만든다. 언젠가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은 본래 오직 시(詩)로 지어져야 하리라”고 쓴 바 있다(『문화』 60면). 물론 (시에 대한 통상적인 관념에 비추어볼 때) 그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글의 특출한 투명성과 함축성은 그의 글에서 사용되는 수많은 예와 비유의 참신함 내지는 기발함과 함께, 그의 글에 어떤 독특한 매력, 아마도 예술성을 부여한다고 할 수도 있다.3
요컨대, 비트겐슈타인의 독창성과 천재성은 그의 스타일에 이미 드러난다. 그의 글은 공학도적 치밀성과 명료성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예술가적 개성을 지니고 있다. 비트겐슈타인 자신도 자신의 특출한 독창적 재능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지닌 독창적 재능의 본성을 “토양의 독창성이지 씨앗의 독창성은 아니”(『문화』 84면)라고 보았다. 즉 그는 자신의 재능이 스스로 사유노선을 창안해내는 데 있다고 보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것을 받아들여 명료화하는 ‘재생산적’ 작업에 있다고 보았다(같은 곳).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는 이러한 재능을 유태인의 본성과 결부시켜 본다.) 자신이 창안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비유들이라고 그는 말한다(같은 곳).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받아들인 씨앗들로, 볼츠만, 헤르츠, 쇼펜하우어, 프레게, 러쎌, 크라우스, 로오스, 바이닝거, 슈펭글러, 스라파와 같은 사람들을 꼽았다(같은 곳).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그가 받아들인 이 씨앗들의 구체적인 성분과 그것을 자라게 한 그의 토양 성분을 일일이 구별해보는 작업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우리의 주 관심사인 바 거기서 ‘재생산된’ 열매들의 맛과 효능을 보는 가운데, 그 일부의 흔적들은 언급될 것이다.
2.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철학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크게 두 번에 걸쳐 열매를 맺었다. 그것은 『논고』와 『탐구』로 각각 대표되는 전기와 후기의 사상이다. 이 두 열매는 서로 맛이 매우 다르지만, 그래도 그것들은 같은 나무에서 열렸다고 해야 한다. 이 기묘해 보일 수 있는 상황은,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를 원용하자면, 마치 가지치기가 이루어진 나무에서 더욱 튼튼한 나무가 나온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첫번째 나무의 열매는 빈약한 열매, 또는 심지어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중의 풍성한 열매는 어쨌든 같은 뿌리의 나무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고, 그런 한─『탐구』의 머리말에서 암시되고 있듯이─비트겐슈타인의 후기사상은 그의 전기사상과의 연관과 대조 속에서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다.
『논고』는 극도로 절제되고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고, 그래서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저자가 지은 건물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 건물은 마치 가로·세로·높이의 세 직선이 건물의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다고 선언하는 듯하다. 『논고』는, 유의미한 것은 모두 세 낱말로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는 취지의 퀴른베르거(Kürnberger)의 말을 모토로 삼고 있다. 이 간결하면서도 까다롭기로 이름난 책의 요점은 무엇인가?
그 머리말에 따르면, 『논고』는 사고의 표현(즉 언어)에 한계를 그으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논고』는 사유의 한계를 분명히하려 한 칸트의 ‘이성비판’과 비슷하면서도 구별되게, ‘언어비판’이다. 이 ‘언어비판’은 무엇이 의미있는 말이 되고 무엇이 의미있는 말이 될 수 없는가를, 언어의 본질을 제시함으로써 명백히 보이려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어떤 본질이 존재하며, 그것은 바로 언어가 세계의 그림(또는 모델)이라는 것이라고 믿었다. 과학을 실재의 모델로 보았던 헤르츠의 생각과 통하는 이 믿음 자체는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고, 언어란 본래 뭔가를 표상하는 것이라고 보는 서양 언어관의 오랜 전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논고』는 프레게-러쎌의 현대적 논리분석의 힘을 빌려 그 오래된 그러나 직관적으로 머물러 있던 관점을 독창적으로 기초짓고 체계화함으로써 그 전통의 정점에 선다.
비트겐슈타인의 이른바 ‘그림이론’은 전통적 표상이론들과는 달리 낱말이 아니라 명제에 관한 것이며, 그 그림 그려지는 것도 사물이나 관념, 또는 실제 사실들이 아니라 ‘가능한 사태들’이라고 하는 가능성들이다. 명제에 의해 그려지는 그 가능한 사태들이 명제의 뜻이다. 그것은 명제가 참이라면 존립할─그리고 존립하면 명제를 참으로 만들─사태들, 즉 명제의 진리조건이다. 그런데─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은 프레게를 따른다─명제는 참 아니면 거짓으로 확정되고, 따라서 명제의 진리조건(뜻) 역시 확정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명제의 뜻은 명제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의미의 함수이기 때문에, 그 구성요소들의 의미 역시 확정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결국 명제의 궁극적 구성요소들(‘이름들’)의 의미인 ‘대상들’의 절대적 단순성을 요구하고, 이로부터 언어의 모든 명제는 오직 이름들의 결합으로써 동일 형식의 사태를 논리적으로 그리는 요소명제들의 진리함수이며 세계는 (단순히 우연적 사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름들이 가리키는 불변적 대상들의 결합들로 일어나는 ‘사실들’의 총체라는 『논고』의 원자주의적 의미론과 존재론이 탄생한다.
일상언어는 그 자체로는 논리적 그림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프레게와 러쎌은 일상언어를 포기하고 과학에 맞는 이상 언어를 따로 추구하였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그들이 추구한 논리적 질서가 일상언어 속에 이미 내재한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어떤 명제의 진리값을 몰라도 그 뜻은 알 수 있는 것이라든가, 유의미한 거짓명제가 가능하다는 사실, 그리고 유한수의 낱말들을 가지고 무한히 많은 명제들을 만들어 새로운 뜻을 전달할 수 있다고 하는 것 등은 언어가 이미 그림인 한에서만 설명 가능하다.
그림이론은 명제와 사태의 요소들이 일대일로 대응하고 또 같은 형식으로 결합되어 있을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언어와 그것이 표현하는 사고, 그리고 세계는 같은 형식 즉 논리를 가지며, 그 한계는 결국 동일해야 한다. 그러나 명제의 요소들과 사태의 요소들 사이의 대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비트겐슈타인은 그것이 사유의 투영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명제의 뜻을 생각함으로써 명제 기호는 세계와 투영적 관계에 놓인다.”(3.11) 그러므로 『논고』에서 의미의 원천은 이 투영적 사유인 셈이다. 비트겐슈타인은 투영작용을 사고에 본래적인 것으로 간주한 것 같다.4 즉 명제 기호와 달리, 사고는 그림이 되기 위해 따로 투영작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고는 그 자체로 그림이다.
그런데 이 사고는 누구의 것인가? 비트겐슈타인은─흄과 비슷하게─“생각하고 표상하는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5.631)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하나의 대상과 어떤 하나의 사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사실들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5.542). 즉 실체적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칸트와 비슷하게─사고는 형식적으로는 언제나 ‘나’의 사고라고 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나’를 사고-사실들의 총체로서의 형이상학적, 철학적 자아로 보았다. 모든 사고는 이 철학적 자아의 것이다. (따라서 의미의 원천도 결국 이 ‘나’의 투영적 사유라고 할 수 있다.5) 그런데 이미 말했다시피, 사고의 한계는 언어의 한계와, 그리고 세계의 한계와 동일하다. 그러므로 언어와 세계는 곧 ‘나’의 언어, ‘나’의 세계이다(5.62 참조). 나의 세계가 곧 나이며(5.63), 나의 삶이다. 세계와 (나의) 삶은 하나다(5.621). 이 점에서 『논고』는 순수한 실재주의와 통하는 유아주의의 관점을 포함한다(5.64 참조).
그리고 이렇게 해서 언어의 한계에 대한 고찰로서의 『논고』의 언어비판은 동시에 사유비판이며, 세계비판이며, 결국 삶의 비판이 된다. 그런데 삶의 비판, 즉 삶의 한계를 고찰한다는 것은 삶의 뜻을 고찰한다는 것이며, 또 삶의 뜻을 고찰한다는 것은 삶의 가치를 고찰하는 것, 즉 윤리적 고찰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고』의 요점은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논고』의 출판을 위해 쓴 한 편지에서 말했듯이)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6 다만 『논고』의 언어관에 의하면, 이 윤리적인 것은 말해질 수는 없다. 진정으로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림그려질 수 있는 것뿐이다.
‘말해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상은 ‘말해질 수 있는 것’에 관한 『논고』의 그림이론의 이면을 이룬다. 명제들은 무엇인가를 말한다(그림 그린다). 그러나 명제가 명제(그림)가 되기 위해 본질적으로 지녀야 하는 것들(세계와 공유해야 하는 것들)─모사형식, 논리적 형식, 명제의 뜻 등─은 말해질 수 없다. 그것들은 명제가 뭔가를 말하는 가운데 ‘보여질’ 뿐이다. 그것들에 관해서는 말해보아야 말(그림)이 되지 않는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림그려질 수 있는 것들, 즉 세계가 사실적으로 어떻게 있다고 하는 것들, 그러니까 과학에 의해 기술될 수 있는 세계에 속하는 것들뿐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이것들은 모두 가치가 같다, 또는 가치가 없다. 가치는 우연적 세계의 밖에 놓여 있어야 한다(6.4〜6.41). 그것은 신적이어야 한다.7
말해질 수는 없지만 중요한(가치있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은, 그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형이상학적 시도들에서 드러난다. 올바른 철학은 이러한 시도들의 헛됨을 깨우쳐줘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실은 『논고』의 철학적 명제들도 깨닫고 보면 무의미한 것들이다. 그것들의 의의는 단지, 깨닫고 나면 필요없는 사다리, 주해와 같은 것으로서만 있다(6.54). 결국 『논고』의 요점은, 그 머리말이 이미 말하고 있다시피, “좌우간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될 수 없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 『철학적 탐구』를 중심으로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에서도, 언어에 대한 고찰은 근본적으로 삶의 의미에 대한 고찰의 차원에서 계속된다.8 그러나 언어와 삶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은 크게 변화한다. 기본적으로 그의 생각은 전기철학의 원자주의적이고 본질주의적이고 유아주의적인 관점으로부터 사회적 실천을 포함하는 자연사적 삶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보는─아마도 ‘총체주의적’·‘맥락주의적’·‘자연(사)주의적’이라 부를 수 있는─관점으로 바뀐다. 글의 스타일도, 『논고』의 일방적이고 절대적 선언과 같은 형태로부터 내적인 대화의 형태로 변모된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탐구는 ‘언어놀이’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언어놀이’는 어린아이들이 모국어를 배우는 놀이나 어떤 하나의 원초적 언어, 또는 언어와 그 언어가 뒤얽혀 있는 활동들의 전체를 가리키는데, 언어를 말한다는 것이 어떤 활동의 일부, 또는 삶의 형태의 일부임을 부각하고자 의도된 것이다. 즉 이제 그의 고찰에서 근본을 이루는 것은 우리의 자연사적 삶이요 실천이다.9 이런 관점에서 그는 먼저 『논고』식 언어관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논고』는 단순한 대상들을 지칭하는 단순한 이름들로 이루어진 명제들을 가지고 사태들을 그리는(기술하는) 것을 언어의 본질로 보았다. 그러나 ㉮지시하고 기술한다는 것은 특정한 하나의 언어놀이일 뿐이다. 언어놀이는 다양하다. ㉯지시적 설명 또는 명명이 언어의 기초를 제공한다고 보는 것도 잘못이다. 그것들은 문제의 낱말들이 언어에서 일반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이미 명료해야만 기능을 한다. ㉰지시된 대상을 낱말의 의미로 보는 것도 이름의 의미를 그 담지자와 혼동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한 낱말의 의미는 오히려 ‘언어에서의 그것의 사용’이다. ㉱단순성이라는 것도 문맥(언어놀이)에 상대적이다. 또 단순자로 존재해야 한다고 보이는 것은 놀이에서의 견본 또는 범례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묘사방식에 속하는 것이다. ㉲분석이 반드시 더 명확한 이해를 가져오는 것만도 아니다(이상 『탐구』 §§1〜64 참조).
더 근원적으로는, 언어에 어떤 하나의 본질이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언어(놀이)는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근친적이며, 이러한 근친성 때문에 모두 ‘언어(놀이)들’이라고 불리는 것이지, 어떤 공통적 일자(一者)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근친성─‘서로 겹치고 교차하는 유사성들의 복잡한 그물’─을 비트겐슈타인은 ‘가족 유사성’이라 부른다. 놀이·수 등과 같은 개념은 어떤 고정된 한계에 의해 폐쇄되어 있지 않다. 즉, 그 적용규칙이 언제 어디서나 명확히 확정되어 있지 않아도 사용 가능하다. 따라서 『논고』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하였던 프레게의 ‘뜻의 확정성’ 논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모든 가능한 의심들을 제거할 경우에만 확실한 이해가 가능한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의심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가 실제로 그것을 의심한다거나 의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낱말의 적용규칙이 의심을 허용하면서도 사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규칙은 이정표처럼 있다(『탐구』 §85). 정상적인 상황 속에서 그것의 목적을 달성한다면, 이정표는 이상없다.
그러므로─이제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본다─필요한 것은 경험적이고 현상적인 것들의 배후에 숨은 본질, 내부에 놓여 있는 어떤 것, 우리가 사물을 꿰뚫어본다면 보는 어떤 것, 그리고 분석이 파헤쳐내야 할 어떤 것을 이른바 ‘논리적 고찰’에 의해 밝혀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명백하게 백일하에 놓여 있고 정돈함에 의해서 일목요연하게 되는 어떤 것, 우리가 현상들에 관해서 행하는 진술들의 종류를 상기해내는 ‘문법적 고찰’이 요구된다. 이른바 ‘본질’은 거기서 드러난다. (“본질은 문법에서 언표된다.”〔『탐구』 §371〕)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언어·사유·명제·진리 등의 본질이 사실과 경험으로부터 분리되어 숭고화되고 초개념화될 때 철학적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낮은, 일상적 사용에서 탐구되어야 한다. 우리 언어는 있는 그대로 완전한 질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논고』처럼) 우리 언어에 완전한 확정성·명확성·순수성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표현방식에서 비교대상으로서 이해되어야 할 이상(理想)의 역할을 오해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상적 요구는 우리를 마찰 없는, 그러나 그 때문에 걸을 수 없는 빙판으로 빠져들게 할 뿐이다. 우리는 거친 대지로 되돌아가 언어의 시공간적 현상들에 관해 고찰해야 한다(『탐구』 §§107〜108).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그것만이 언어의 일상적 사용으로부터 벗어나 발생한 철학적 문제들을 치유하는 길이다.
본질과 현상의 관계와 비슷하게, 낱말의 의미는 우리가 말을 이해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이미지)으로서 숨어 있지 않고, 사용에서 드러난다. 그림은 이런저런 사용을 암시할 수 있고 또 충돌도 할 수 있지만, 스스로 적용방식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해는 그런 그림을 소유하고 있는 심리학적이거나 생리학적인 내적 상태나 성향, 과정, 또는 체험에 있지 않다. ‘이해한다’는 말은 그런 내적인 것들의 기술이 아니다. 이해와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용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사용의 문제는 언제나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사용은 상황의 정상성을 요구한다. “오직 정상적인 경우들 속에서만 말의 사용은 우리에게 명료하게 규정된다.(…)경우가 점점 더 비정상적으로 될수록, 우리가 이제 여기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는 점점 더 의심스러워진다. 그리고 만일 사물들의 상태가 실제의 상태와 아주 다르다면,(…)우리의 정상적인 언어놀이는 그로써 그 요점을 상실할 것이다.”(§142) 그리고 정상성은 이렇게 대단히 일반적인 자연 사실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언어행위 자체에 대해서도 요구된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이 어떤 규칙(체계)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느냐의 여부, 그리고 우리가 그와 의사소통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그의 반응의 정상성 여부에, 즉 그가 규칙을 올바로 적용할 수 있는 정도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규칙을 올바로 적용한다거나 따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의 이른바 ‘규칙 따르기 논의’(『탐구』 §§185〜242)에 의하면, 규칙 따르기는 우선 단지 믿음이나 해석이 아니라 실천이다. 믿음이나 해석으로만 말한다면, 어떠한 행동방식도 주어진 규칙을 따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역설이 발생하고, 그러면 ‘규칙 따르기’는 의미를 상실한다. (규칙을 따른다고 믿는 것은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규칙을 ‘사적으로’ 따를 수는 없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한 개인의 전혀 다른 행동방식들이 하나의 동일한 규칙 따르기가 되어서는 규칙 따르기가 성립할 수 없는 것처럼, 상이한 개인들의 서로 전혀 다른 행동방식들이 동일한 규칙 따르기가 되어서도 규칙 따르기는 성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경우 그 ‘규칙 따르기’의 옳고 그름이 말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규칙 따르기는 공통적 실천을 전제한다. 규칙 따르기의 옳고 그름은 물론 규칙 자체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규칙과 관련하여 사람들 사이에 어떤 일반적 일치─정의(定義)의 일치뿐 아니라 판단의 일치─가 없다면, 그러니까 결국 삶의 형태의 공유로 특징지어질 어떤 공동적 실천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옳고 그름이 말해질 수 있는 하나의 규범적 실천으로서의 규칙 따르기에 대해 말하는 것은 뜻을 잃는다.
『탐구』의 ‘규칙 따르기’ 논의 바로 다음의 이른바 ‘사적 언어 논변’(§§243〜315) 역시 유명하고 중요하다. 이 ‘논변’은 언어적 의미의 궁극적 원천이 사적 주관에 있다고 보는 모든 관점에 대한 결정적인 비판이다. 이에 따르면, ‘사적 언어’ 즉 그 낱말들이 오직 화자만이 알 수 있는 내적 감각들과 연관된 언어는 불가능하다. 사적 언어가 가능하다는 관점은 내적-정신적 감각과 외적-물질적 표현이 근본적으로 분리 가능하다고 보는 관점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외적 표현은 내적인 것의 기준을 이룬다. ‘안’과 ‘밖’은 단지 경험적으로만이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결합되어 있고, 그런 한 그 둘은 근본적으로 분리 불가능하다. ‘사적 감각’은 ‘나만이 아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령 나의 고통과 같은 것에 대해 내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는 것은 뜻이 없고, 따라서 그런 경우에 ‘안다’는 말은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안다’의 정상적 사용에서, 다른 사람들은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경우를 자주 안다.) ‘사적 감각’은 기계장치의 작동과 무관한 단순한 장식품처럼, 언어놀이와 무관한 것이다. ‘감각’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의 공통적 언어놀이의 낱말로서, 이미 그 문법이 우리의 언어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감각뿐 아니라 의도 등 이른바 내적인 것들은 우리의 관습과 제도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탐구』 §337 참조).
이상은 『탐구』의 핵심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 함축은 크다. 그것은 우리가 여기서 살펴볼 수 없는 비트겐슈타인의 다른 여러 탐구 분야의 기초를 이룬다. 가령 표현을 지칭 대신 사용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비트겐슈타인의 기본입장은 수리철학(『수학 기초』)에서 플라톤주의·경험주의·논리주의·직관주의·형식주의 모두를 배격하고 수학적 명제들의 본성을 문법규칙들로 보는 새로운 입장으로 나타난다. 현상과 본질의 관계에 대한 그의 고찰은 기존의 실재주의 대 반실재주의 논쟁구도를 허무는 면이 있다. 또 ‘안’과 ‘밖’의 관계에 대한 관점은 이원주의와 환원주의 양자를 모두 배격하는 것으로, 그의 방대한 심리철학적 고찰의 기본노선을 이룬다. 그리고 앎과 의심의 문법과 관련된 관찰은 이후 『확실성』에서 인식론적으로 중요한 고찰들로 이어진다.
4.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위상
주지하다시피,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20세기의 강력한 철학사조인 분석철학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의 전기철학은 논리실증주의에, 후기철학은 일상언어학파에 영감과 영향을 주었다. 분석철학에서 논의되는 많은 주제들에서 그의 관점은 지금도 생명력과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분석철학의 대표적 인물로 간주되곤 한다.
확실히 비트겐슈타인은 분석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또는 적어도 그런 인물들 중 한명이다. 그러나 그를 이러한 틀 속에서만 파악하려 한다면 잘못이다. 『논고』와 논리실증주의 사이에 중대한 차이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오늘날 분명해졌다. 그 둘은 논리와 언어, 그리고 과학의 본성에 대한 탐구에 몰두한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논리실증주의가 논리와 과학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적인 것들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데 반해, 『논고』는 오히려 논리와 과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말할 수 없는 것’(윤리·종교·예술)에 중요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물론 논리실증주의와 마찬가지로 『논고』 역시 형이상학을 비판한다. 그러나 『논고』가 염두에 둔 형이상학의 문제는 논리실증주의의 믿음처럼 종교-신학적인 사고로부터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과학적 사고로부터 오는 어떤 것이었다.10
비트겐슈타인이 전·후기를 통틀어 저항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과학적 방법에 의한 이론화 또는 체계화가 철학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었다. (이 믿음은 우리 시대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믿음은 논리실증주의뿐 아니라 그 이후 분석철학의 전개에서 주류를 형성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일상언어학파의 경우, 논리실증주의와 달리 일상언어의 사용에 세밀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일면을 계승한 점이 없지 않으나, 화용론 또는 언어행위 이론으로 발전되는 데서 보다시피, 언어사용 문제의 일반적 체계화 또는 이론화 자체에 몰입하고, 언어에 대한 고찰을 통해 삶의 의미를 드러내고 삶에 대한 관점 변화를 꾀하려는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근본정신을 살리지는 못했다고 보인다. 부흐테를과 휘프너의 지적11처럼, 일상언어학파에서는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고찰이 어떤 의미에서 언어 연구의 부산물로 전락했다.
일상언어학파 이후에도 분석철학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영향은 주요 철학자들에게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발견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분석철학적 전통과 분리하여 본다는 것은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이는 그의 철학이 프레게와 러쎌의 영향을 받으며 시작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영미 중심의 분석적 전통뿐 아니라 독일-오스트리아의 철학적·문화적 전통에 비추어보아야 옳게 이해할 수 있다는 인식들이 싹텄다. 그중 대표적인 것 하나는 그의 철학을 칸트철학과의 연관 속에서 파악하려는 것이었다.12 그러나 『논고』를 칸트철학의 (쇼펜하우어를 거친) 변형 내지 발전으로 파악하는 것은 그럴듯하다고 할 수 있지만, 『탐구』의 경우에도 그러한 관점이 깊이있게 적용될 수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언어놀이들에 대한 『탐구』의 고찰들은 언어의 가능성과 한계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여전히 언어비판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이제 언어놀이들은 더이상 형이상학적 원자나 선험적 자아와 같은 어떤 무엇에 의해 기초되어야 할 것으로서 간주되지 않는다. 즉 『논고』의 선험철학적인 면들은 사라진다.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은, 그 구체적 내용과 방법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헤겔-맑스와 통하는 면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인다.13 가령 ‘일어나는 일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실체의 부정과 함께 현상과 본질 사이의 근본적 구분의 폐기, 그리고 의미와 우연적 경험사실 사이의 상관관계 및 거기서 정상적인 것과 예외적인 것 사이에 성립하는 ‘양에서 질로의 변화’ 등의 고찰은 변증법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언어와 사회적 삶과의 본질적 연관성에 관한 고찰들, 신비적인 것은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바로 그 사회적인 것 속에 있다는 것,14 언어와 사고와 물질의 관계를 보는 데서 ‘안’과 ‘밖’의 근본적 구별을 거부하고 통일적으로 파악하려 하는 것 등은 분명 칸트 이후에, 특히 맑스를 거치면서 비로소 뚜렷해지는 점들이다.15 이런 점들이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을 전기와 구별짓게 하는 결정적인 점들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한, 그의 후기철학마저 여전히 칸트적 틀에 맞춰 이해하려는 것은 후기철학에서의 변화의 요체를 놓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은 서양철학사의 주된 흐름과 무관하지 않지만, 그 연관이 그리 단순하지도 않다. 그것은 기존의 어떤 하나의 주의나 학파의 틀에 집어넣기 곤란하다. 이는 과거뿐 아니라 현대의 주의나 학파들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그의 철학이 주로 분석철학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온 것이 사실이지만, 오늘날 그의 철학은 분석철학뿐 아니라 현상학-해석학, 구조주의-포스트모더니즘 등을 포함하는 더 넓은 맥락에서 음미될 필요가 있다. 그의 철학은 아마도 이들 상호 고립적으로 전개되어온 사조들간의 진지한 상호 이해와 비판적 교류의 길을 실질적으로 연 선구적 작업의 하나로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언어 이해의 문제에 관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고찰은 중요한 점들에서 (현상학적-)해석학적 고찰과 비교될 수 있다. 가령 하이데거의 현존재 분석에서 보이는 언어관은 비트겐슈타인과 통하는 면을 지닌다. 이 점은 하이데거에 강한 영향을 받은 가다머의 해석학에서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예컨대 놀이개념을 중시하고 언어 이해를 삶의 수행으로 보는 것, 말의 내용이 사용에 의해 결정되며 적용이 이해의 참된 핵심이라고 보는 것, 언어는 추상적인 규칙체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개념들의 사용은 확고하게 미리 주어진 엄밀한 규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보는 것 등은 분명 비트겐슈타인적이다. 또 모든 개별적인 말의 뜻에는 이미 말들의 체계, 언어가 놓여 있고 이것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뜻으로 환원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 화자가 뜻하는 바는 그것이 삶과 존재 차원에서 공통적인 것이 될 때만 분명해진다는 것, 따라서 이해는 계속해서 공유되는, 공통적인 것의 재생산과정으로서 존재하며, 불일치가 아니라 일치가 언어적 이해, 의사소통의 근본적이고 정상적인 구조를 이룬다고 보는 것, 그 일치의 기본구조는 전통과 제도에 의해 전승되는 것이며, 그렇게 전승된 것들이 이해의 조건을 이룬다는 것(이른바 ‘해석학적 순환’) 등등도 역시 비트겐슈타인과 통한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16
물론 차이도 존재한다. 하이데거-가다머는 우리의 일상언어와 구별되는 ‘근원적 언어’나 ‘자연의 언어’ 같은 것에 대해 말하곤 하는데, 비트겐슈타인에서는 근본적인 언어가 어디까지나 우리의 실제 자연언어, 즉 일상언어일 뿐이다. 또 ‘존재’ ‘존재 진리’ ‘전통’과 같이 ‘근거’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되는 것은 비트겐슈타인에서는 한편으로는 그 ‘근거’에 근거한 것들의 운동에, 그 ‘근거’에 근거한 일상적 언어놀이의 작동에 의해 정립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은 하버마스와 비슷하지만, 그러나 그와도 대조되는 점을 지닌다. 즉 하버마스가 전승과 일상적 의사소통의 체계적 왜곡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이상적 담화상황’을 추구하는 쪽으로 나가는 데 반해, 비트겐슈타인은 바로 그 왜곡될 수 있으면서도 가능한 의사소통의 본성과 거기 내재된 비판적·치료적 능력에 대해 신뢰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17
한편, 비트겐슈타인은 구조주의자 및 탈구조주의자와도 통하는 점들을 가지고 있다. 규칙과 구조의 강조(기호는 기호들의 규칙체계로서의 언어구조에서 그것의 의미를 얻는다고 하는 것), ‘사적’ 기호의 부정과 제도의 강조(말의 의미는 주체의 어떤 심리적 연합이나 의식적 의도작용을 통해서 성립되지 않고, 오히려 의미와 의도작용조차도 공적 제도 속에 그 문법규칙이 마련되어 있어야 가능하다고 보는 것), 문법규칙들과 언어의 자율성 주장(그것들은 실재 또는 사실적인 어떤 것에 의거해서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 언어에서 지시의 비본질성에 대한 주장, 의미 문제에서 차이들—동일성과 마찬가지로 제도적 본성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는 차이들—이 결정적이라고 보는 관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더 들여다보면 여기서도 역시 차이들이 존재하는데,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추상적이고 엄격한 규칙체계로서가 아니라 실천적인 활동으로서, 그리고 언제나 엄격한 규칙들의 지배를 받는 것만도 아닌—그렇다고 모든 것이 불확정적으로 되는 것도 아닌—활동들로서 이해한다. 언어의 자율성은 그러한 언어놀이들의 자율성이다. 여기서 문법규칙들은 개별 활동들보다 확고한 위치를 점하지만, 그 지위는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언어적 실천들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 언어적 실천들이 달라지면 그 지위는 흔들리고 폐기될 수 있다. 언어의 의미를 결정하는 차이들의 경우에도, 비트겐슈타인이 강조하는 차이는 어디까지나 언어사용의 실천 문제에서의 차이들이지 단순히 기표들 사이의 차이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말의 뜻을 알려면, 우리는 그것이 어떤 실천적 차이를 만드는가를 보아야 한다. “우리의 말은 우리의 나머지 행동들에 의해서 그 뜻을 얻는다”(『확실성』 §229). 이러한 실천적 사용의 장에서는 기표가 기의에 닿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현상은 없다. 물론 여기서도 경우에 따라 미끄럼은 존재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걷기에 충분한 마찰이 존재한다.
5.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역할과 의의
비트겐슈타인이 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그가 성취하거나 추구한 것은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현대철학의 근본적 특징을 ‘언어적 전환’이라는 말로 나타내고, 비트겐슈타인을 그 전환의 주역으로, ‘스타’로 꼽는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오늘날 ‘정보화 시대’라는 말이 일상화된 데서도 드러나듯이, ‘언어적 전환’은 현대의 철학뿐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특징짓는 것이 되었다. 정보화시대라는 것은 단순히 과학을 통해 자연을 지배하는 것을 넘어서 정보매체인 우리의 언어와 논리까지 통제할 수 있어야 가능하고, 이는 언어와 논리의 본성에 대한 어떤 근본적으로 새로운 통찰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석철학은—특히 초기에 프레게와 러쎌의 새로운 논리 개발을 통해—이런 방향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그런 작업들이 지니는 철학적 의미를 누구보다 가장 명료하고 철저하게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언어적 전환’은 예전에 무시되었거나 아니면 어쩌다 연구주제가 되곤 했던 언어에 이제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단순한 방향전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문제들의 본성이 바로 언어적이라는 새로운 자각을 포함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비트겐슈타인(및 분석철학 일반)의 작업을 ‘메타이론적’작업이라고 부르곤 했다.18 그것은 언어 또는 이론에 대한 이론적 해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동시에 이미 그런 것들의 한계를 역설하고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철학은 이론적 작업이 아니며 ‘메타’이론적 작업도 아니다. 철학의 근본문제들은 도대체가 이론적 작업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그의 관점은 철학을 고차의 이론으로 보는, 그리고 분석철학의 주류 철학관을 형성해왔다고 할 수 있는 러쎌-콰인 식 철학관과 대립된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철학은 어디까지나 명료화를 추구하는 실천적 활동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명료화 작업인가? 언어 비판과 해명은 물론 그 자체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더 큰 목적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의 요점을 윤리적이라 했다. 이것은 철학적 명료화 작업이 결국 가치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가치의 영역을 그 나머지로부터 명확히 경계지음으로써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세계)을 가치있게 만드는 문제를 포함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삶(=세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논고』에서 이 점은 (철학적 자아의) 의지 문제인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선악의 의지를 통해 세계는 전혀 다른 세계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행복한 자의 세계는 불행한 자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이다.”(『논고』 6.43) 여기서 선악의 의지는 의미의 원천인 투영적 사유와 통한다고 할 수 있고, 따라서 삶 또는 세계를 바꾸는 문제는 세계를 올바르게 보는 문제(『논고』 6.54), 그러니까 명료화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비트겐슈타인은 윤리적-철학적 자아의 의지가 사실들을 바꿀 수는 없다고 보았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단지 ‘세계의 한계들’(『논고』 6.43) 그러니까 논리들뿐이다. 이 소극적으로 보이는 관점은 후기에 가서도 되풀이되는 것으로 보인다. “철학은 언어의 실제 사용을 어떤 방식으로도 침해해서는 안된다.(…)철학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놓아둔다.”(『탐구』 §124) 철학은 우리의 언어 사용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기술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목요연한 조망은 단순히 주어진 언어놀이 내의 것들을 정돈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공동체 내의 것들에 한정된 반성은 ‘부르주아적’이다(『문화』 45〜46면 참조). 비트겐슈타인이 추구하는 것은 세계와 사물을 보는 방식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뿌리깊은 그림들을 극복하고, 우리의 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탐구』 §144; Z §461 등 참조). 그러나 그것은 어떤 하나의 관점을 단지 다른 하나로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주어진 언어놀이나 공동체에 얽매이지 않는 관점 전환이다. (“철학자는 어떤 한 사유 공동체의 시민이 아니다.”〔Z §455〕). 그것은 보는 방식의 변화일 뿐, 어떤 경험적 사실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경험적 사실들은 전환 이전이나 이후나 어떤 의미에서 같다. 그러나 보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한다면,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변해야 하고,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거의 종교적 개종과 같은 것이다.
우리의 보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논고』에서처럼 획일적이 아니라 언어놀이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진정한 욕구를 선회축으로 해서 방향 전환되어야 한다(『탐구』 §108). 이것은 실용주의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이 염두에 두는 것은 우리에게 실용적으로 유용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좋건 나쁘건) 실제로 주어져 있고 사용되는 모든 것들이다. 우리가 사는 것은─그리고 생각하는 것은─그것이 유용하기 때문은 아니다(『수학 기초』 293면 및 『탐구』 §467 참조).19
한편, 언어놀이와 보는 방식의 다양성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강조는 상대주의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가령 파이어아벤트(P. Feyerabend)처럼─단순히 다르게 보는 것 자체를 미덕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에 의하면, “우리의 개념들은 우리의 삶 한가운데에 있다”(LS2 72면). 그러므로 그것들은 탄력적이긴 하되 자의적이지는 않으며, 그것들을 사용하는 우리의 믿음들 역시 객관적 실재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신뢰와 불신이 객관적 실재에 아무런 기초들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것들은 단지 병리학적 흥미들밖에 자아내지 못할 것”(LS2, 24면)이다.
우리를 사로잡는 철학적, 형이상학적 그림들은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대부분 언어사용 문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언어사용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놀이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든다. 우리는 우리의 실제언어, 일상언어에서 언어놀이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피고, 그 속에서 문제의 그림들이 하는 일이 없음을 보아야만 한다. 그리고 다양하게 새로운 언어놀이 가능성을 봄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그림과는 달리 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문제삼은 것은 기본적으로 철학자들의─그리고 이들로부터 영향받은 자들의─보는 방식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기본적으로 ‘철학자들의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파리통에 갇힌 파리들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그들에게 빠져나갈 출구를 가리켜주고자 한다. 그러나 그 파리통 밖은 어떠한가? 일상언어로 돌아가면 과연 모든 문제가 끝나는가? 일상언어 역시 이미─가령 각종 이데올로기에 의해─오염되지 않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런 점을 들어 비트겐슈타인식 처방의 문제점을 제기한다.20 과연, 일상언어 역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가령 논리실증주의자나 후기 하이데거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꿈꾸었던 것처럼─일상언어를 떠나 살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의 ‘자연’언어인 것이다. 설사 그것이 오염되어 있더라도, 우리는 그 속에서 살면서 오염을 정화해나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일상언어의 오염은 전면적이 아니며, 또 그럴 수도 없다. 만일 일상언어가 완전히 (형이상학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오염되어 있다면, 그것은 완전히 오염된 공기와 같이 이미 언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우리는 질식했을 것이다.21
물론 비트겐슈타인이 비판하는 바 철학적으로 오염된 언어들이 일상언어에도 침투되어 있는 것이 현실인 한, 그의 작업은 일상언어의 오염에 대한 정화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 비판과 통하는 정신을 지니고 있지만, 그러나 통상적 이데올로기보다는 더 뿌리깊고 감지하기 어려운 그림들에 대한 비판이다. 그의 작업은 아마도 이러한 것들에 의한 오염의 심각성을 절감한 사람들에게나 중요하게 여겨지고, 눈앞의 좀더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그의 작업은 마치 히말라야나 아마존처럼 멀리서나마 우리에게 사상적 산소를 공급하고 있다. 그것이 철학적 오염을 막아주는 최후 보루로 남을 수 있을지, 아니면 계속되는 철학적 산성비에 의해 언젠가 그것마저 결국 무력화될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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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저술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약호들을 사용한다. 『논고』=『논리-철학 논고』, 천지 1998; 『탐구』=『철학적 탐구』, 서광사 1994; 『문화』=『문화와 가치』, 천지 1998; 『확실성』=『확실성에 관하여』, 서광사 1991; 『수학 기초』=『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 서광사 1997; TB=Tagebücher 1914〜1916 (Wekausgabe 1), Suhrkamp 1984; Z=Zettel (Werkausgabe 8), Suhrkamp 1984; BPP=Bemerk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Psychologie (Werkausgabe 7), Suhrkamp 1984; LS2=Letzte Schriften über die Philosophie der Psychologie Bd. 2, Blackwell 1992.↩
- 비트겐슈타인의 전기로는 R. Monk, Ludwig Wittgenstein (Jonathan Cape 1990)이 훌륭하다(이 책은 최근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동성애 문제는 W.W. Bartley III, Wittgenstein (Century Hutchinson, 1986; 초판 1973)에서, 그리고 그의 히틀러 반유태주의 동기와의 연관설 및 그의 소련 첩자설은 K. Cornish, The Jew of Linz (Random House 1999)에서 제기되었다.↩
- 데렉 자만(Derek Jarman) 감독의 영화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을 위한 대본(BFI 1993)의 서론에서 T. 이글턴은 비트겐슈타인을 “시인들과 작곡가들, 극작가들과 소설가들의 철학자”(5면)로 기술한다. 펄로프(M. Perloff)는 비트겐슈타인의 글에 깃들여 있는 시적 성격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현대시와 그 해석에 대해 가지는 중요성을 다루고 있다(Wittgenstein’s Ladder, Chicago U.P. 1996).↩
- N. Malcolm, Nothing is Hidden, Blackwell 1986, 4장 참조.↩
- 이 점에서 필자는 맬컴(앞의 책 4장)과 견해가 다르다. 필자가 보기엔, 『논고』에서 사고의 본래적 투영작용을 인정하는 것과 이것을 (철학적) 자아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양립 가능하다.↩
- 한편, 비트겐슈타인은 삶의 뜻, 즉 세계의 뜻을 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TB 1916.6.11), 그렇게 본다면 『논고』의 요점은 또한 종교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1929년에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윤리학을 이렇게 요약하였다. “만일 어떤 것이 선하다면, 그것은 또한 신적이다. 이상스러울지 모르지만, 이로써 나의 윤리학은 요약된다./오직 초자연적인 어떤 것만이 초자연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다.”(『문화』 19면)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의 가치관이 사실과 가치의 세계를 실체적으로 이원화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는 문제이다. U. Steinvorth, “Wittgenstein, Loos und Karl Kraus”(Zeitschrift für Philosophische Forschung 33, 1979, 74〜89면)는 A. 야니크와 S. 툴민의 잘 알려진 책(Wittgenstein’s Vienna)에서의 그러한 칸트적 해석을 비판하고 있다.↩
- 『논고』의 경우처럼 이것 또한 종교적 차원의 고찰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모든 문제를 종교적 관점에서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R. Rhees, ed., Recollections of Wittgenstein, Oxford U.P. 1984, 79면 참조). 비트겐슈타인 후기철학이 지니는 종교-신학적 함축에 대해서는 F. Kerr, Theology after Wittgenstein, Blackwell 1986 참조.↩
-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말은 오직 삶의 흐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BPP 2권 §687). 그러므로 삶 속에서 말이 실천적으로 어떻게 사용되는가, 어떤 일을 하는가가 탐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말에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실천이 말에 그 뜻을 준다.”(『문화』 180면)↩
- G. von Wright, “Wittgenstein and the twentieth century,” R. Egidi, ed., Wittgenstein: Mind and Language, Kluwer 1995, 1〜19면 참조.↩
- K. 부흐테를·A. 휘프너 『비트겐슈타인』, 한길사 1999, 187〜88면 참조. (이 책은 번역상태가 좋지 않다.)↩
- 이런 시도의 구체적 예들에 대해서는 쑤전 프롬의 『칸트 대 비트겐슈타인』(동국대 출판부 1996) 참조. 국내에서는 아마도 이승종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연주의」(『철학연구』 36집, 1995, 205〜27면)가 그런 시도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 그밖에 니체나 프로이트와도 부분적으로 비교될 수 있는 면들을 가지고 있다. 가령 ‘가족 유사성’이란 말은 이미 니체(『선악의 피안』)에서 나타난다. 또 비트겐슈타인은 프로이트를 비판하면서도 자신을 그의 ‘제자’ 또는 ‘추종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 이 점은 카라따니 코오진(『탐구 1』, 새물결 1998)에 의해서도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정작 ‘사회’를 ‘하나의 언어게임으로 닫혀 있는 영역’으로서의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대화 역시 ‘나 자신의 확실성을 잃게 하는’ ‘일종의 방법적 회의의 극한에서’ 나타나는 ‘타자’─결국 ‘우리말을 이해 못하는(…)외국인’─와의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이에 따르면, 공통규칙에 따르는 공동체적 대화는 동일한 타자와의 대화, 다시 말해 모놀로그일 뿐이다.) 이런 관점은 문제인데, 비트겐슈타인에서는 제도화된(공동체적) 문법규칙이 있어야 대화도 의심도 가능하다. 또 ‘타자’는 ‘나’와 마찬가지로 이미 문법규칙에 의존하는 것이지, 그 역이 아니다. 코오진의 관점은 규칙 따르기에 관한 명백히 문제있는 크립키(S. Kripke)의 무비판적 해석의 수용 결과로 보인다.↩
- 언어관에서 비트겐슈타인과 맑스(주의)의 유사점들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필자의 「비트겐슈타인과 마르크스의 언어관」(『시대와 철학』 19권, 1999) 참조.↩
- H.-G. Gadamer, Gesammelte Werke 1,2권(J.C.B. Mohr 1986) 참조.↩
- 비트겐슈타인을 해석학자들과 비판적으로 비교하는 하나의 시도로 (불충분하지만) 필자의 논문 「이해와 합리성」(한국분석철학회 편 『합리성의 철학적 이해』, 철학과현실사 1998) 4절 이하 참조.↩
- 예를 들어, 이명현 『이성과 언어』, 문학과지성사 1982, 33면과 43면 참조.↩
- 비트겐슈타인과 실용주의가 거리가 있다는 것은, 그가 놀이 행동, 사용, 규칙 따르기 등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논할 때 그것을 곧바로 유용성의 문제와 연결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어쨌든 그것들의 옳고 그름이 이야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그의 논의에서 근본전제로 되어 있고 따라서 진리개념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에서 여전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점에서 그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과도 거리가 있다.↩
- 가령 T. Eagleton, “Wittgenstein’s friends,” New Left Review 135, 1982, 64〜90면 참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태도는 역시 보수주의적인 것일까? J.C. Nyíri는 “Wittgenstein’s later work in relation to conservatism”(B. McGuiness, ed., Wittgenstein and his Times, Chicago U.P. 1982, 44〜68면) 등의 일련의 논문에서 비트겐슈타인의 특징적인 관점을 1920년대와 30년대의 독일-오스트리아의 신보수주의와 연관시켜 보고 있다. 이에 대한 하나의 반론으로서, J. Schulte, “Wittgenstein and conservatism”(S. Shanker 편집, Ludwig Wittgenstein: Critical Assessments 4권, Croom Helm 1986, 60〜69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