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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건강과 질병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

전세일·전홍준·오홍근 편 『새로운 의학, 새로운 삶』, 창작과비평사 2000

 

 

박은숙 朴恩淑

강남성모병원 가정의학과장 espark@cmc.cuk.ac.kr

 

 

대체의학에 대한 의사들의 시각은 매우 다양하다. 환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는 치료법이라면 무엇이든지 섭렵하려는 열린 그룹이 있는가 하면, 정통 서양의학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정통파그룹이 있다. 나머지 대다수의 의사들은 양극단의 사이 어디쯤에 머무르면서 나름대로의 타협점을 찾는다. 최신식의 장비를 동원한 검사로도 원인을 찾지 못하는 기능적인 증상군이나, 정신적 문제와 신체적 증상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문제들, 노화와 더불어 불편함의 숫자가 늘어가는 복합증상군의 환자를 많이 만나는 일선의 의사들은 어느 전문직을 막론하고 열린 그룹 내지 그것에 우호적인 중간그룹에 속한다. 여기서 ‘열린’이란 말은 포용성, 수용성을 의미하기보다는 아직 확실히 정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더 크다. 열린 그룹에 속하는 임상가로서 『새로운 의학, 새로운 삶』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기획으로 생각되어 반가웠다.

1997년 공식적인 한국대체의학회 출범에 즈음하여 매스미디어에서는 유행처럼 대체의학이니 자연치료니 하는 단어들이 떠돌았다. 대체의학에 대한 이론적 정립도, 축적된 임상연구 결과도 아직 없고 시작하기 위해서 모임의 이름짓기나 하는 단계에 불과할 때, 마치 새로운 전문의학 분야가 하나 탄생한 듯이 미디어는 이름을 띄웠고, 건강의 이름으로 장사하는 산업체들은 그 이름에 주어진 권위와 신뢰를 이용하여 어제의 돌팔이 시장까지도 대체의학이라는 이름으로 광고를 올렸다. 인간의 건강과 안녕을 보살피기 위해서는 서양의학적 접근방법만으로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자각이 모아지는 싯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하여 미처 진지하게 숙고해볼 사이도 없이 이름만 빼앗긴 듯하여 허탈하였더랬다.

대체의학이라는 이름에 대해 우리들은 커다란 착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수천년간 경험해온 한의학이 있고 신통방통한 민간요법들이 숱하게 있으므로 대체의학을 이미 잘 알고 잘하고 있다는 착각이다. 그것은 마치 유교 불교 하면 공부하지 않고도 익숙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서양인보다는 그것을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것과 유사하다.

대체의학의 테두리 안에서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의술의 종류만도 수백가지가 된다. 이들에 대한 검증여부라든가 면허여부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확산되어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경고의 소리로 대체의학을 만병통치로 보아서는 안되며, 정통의학에 대한 경시풍조와 비윤리적 상술을 경계해야 하고, 신빙성 있는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는 엮은이의 우려야말로 새로운 방향을 찾는 우리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이 책이 기획되어야 하는 선명한 출발점이다.

112-452이 책은 신통방통한 새로운 치료법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별 소득이 없을 것이다. 일반독자들이 심심풀이로 읽을 만큼 호락호락한 책이 아니다. 대체의학이라는 명제를 최대한 다각적으로 조명해 정체성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 시각, 영적인 시각, 제도권 내의 대체의학 연구의 현황과 문제제기, 의사학적인 시각, 동아시아 의료의 시각, 한의학적인 시각, 동서 만남의 모색, 환경학적 시각, 지역 사회 보건학적 시각, 생활양식의 시각 등 가능한 모든 시각에서 새로운 건강관, 생명관의 필연성을 보여준다. 각각의 앵글에서 찍어내어 풀어 보여주는 저자들은, 그 분야에서 선구적이고도 독보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한 분들임을 느낄 수 있게 논지가 진지하고, 방대한 전문적 지식 혹은 깊이있게 쌓여진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제시하는 그들의 결론은 믿음직스럽다.

현대의학의 철학적 바탕을 역사적인 배경으로 깔고 진지하게 풀어낸 첫 장은 무겁고 딱딱하다. 그러나 현대의학의 한계점을 심각하게 느끼고 새로운 시각을 찾고자 하는 독자라면 동서와 고금의 과학사관을 꿰뚫어서 논리정연하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방건웅 선생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전홍준 선생의 글 속에서는 종교나 분파를 뛰어넘어 아집을 버린 순수한 의식의 회복 혹은 영성 회복이야말로 건강한 인간의 완성이며 행복으로의 환원임을 공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의료현장에서 사랑과 신뢰를 실천하며 아바타 운동을 해오고 있는 그의 공력이 글 속에 배어 있어 감동을 준다.

분리 배척하고 있는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현재를 재조명하고 그 속에 산재한 문제점들을 체계적으로 점검하여 다종 다양한 의술들을 어떻게 융합하여 바람직한 모습의 종합의학 또는 전일의학을 창출할 수 있을까에 대한 나름대로의 모색을 시도한 2부는 열린 마음으로 관찰하고 연구한다면 상호보완적인 요소들을 추출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한차원 높은 세계의학으로의 융합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사회의학 또는 사회생물학의 측면에서, 그리고 환경적 측면에서 건강중심의 새로운 생활양식과 지역보건정책을 실천, 수립하기를 강조한 3부는 이 책의 기획의 진지성을 보여주고 있다. 읽기 부드럽지 않은 면이 있으나 건강과 안녕의 증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더욱더 넓혀주는 부분이다.

4부와 5부에서는 몇가지의 건강증진 방법을 집중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국내에서 공신력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몇 안되는 치료분야를 가려뽑아서 소개하는 것이다. 필진 또한 임상경험의 관록과 연구심의 열렬함에서 신뢰할 만한 분들이다.

전세일 선생은 ‘엮은이 서문’에서 이 책이 제시하는 ‘의학의 새로운 흐름’의 내용은 획기적이고 새로운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낡은 것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은 시종일관 건강과 질병에 대한 사고체계(paradigm)가 아주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 책이 자극제가 되어 더욱 많은 사람이 새로운 사고체계의 필요성에 동조하고 의학의 새로운 흐름에 동참하기를 호소한다.

삼분지 일 이상의 의료가 대체의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건강산업 시장은 대체의학이라는 이름 아래 혼란스러우며, 서양의학적 접근방법에 한계를 절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열린 마음이든 닫힌 마음이든, 건강관리의 책임을 지는 전문가이든 비전문가이든 이 책을 읽고 음미해보아야 하며 새로운 패러다임 실현자의 대열에 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