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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언론개혁, 어디로 갈 것인가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사회 hosoon@sch.ac.kr

최문순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kfpu@pressunion.or.kr

박인규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편집국장(좌담 당시 경향신문 편집위원 겸 미디어팀장) inkyu@pressian.com

김기평

중앙일보 여론매체부 차장, 미디어담당 kkp44@joongang.co.kr

 

때: 2001년 7월 13일

곳: 창작과비평사 회의실

 

 

장호순  바쁘신 와중에도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지난 6월, 정부는 13개 중앙언론사에 242억원의 불공정거래 과징금과, 23개 언론사와 그 사주들에게 5056억원의 탈세 추징금을 부과했습니다. 한데 언론개혁에 대한 공감대는 확실히 형성된 것 같습니다만 그 절차와 방법에 대해선 의견이 다른 것 같습니다. 우선 현재 김대중정부가 언론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작업들이 방법상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론이 어떤 모습으로 개혁되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최문순 위원장님이 먼저 말씀해주시죠.

 

 

언론개혁을 통해 진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들

 

최문순  저는 우선 다원주의가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원주의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자신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들과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되자는 것인데, 지금까지 언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냉전적 관점, 분단의 관점, 국수주의적 관점, 개발독재 및 성장 일변도의 관점,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은 사회적·경제적 성장을 위해서는 무시되어도 좋다는 관점을 가지고 다른 시각의 사람들을 이 사회에서 배제하려 했는데, 이제는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다원주의적인 세상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가 제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언론에 간섭을 해서도 안되고, 특혜를 줘서도 안됩니다. 그 다음에 언론사의 사주들도 제자리로 돌아가 언론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켜야 합니다. 편집권·경영권·인사권에 대해서 간섭하지 말아야죠. 그래야 헌법에 보장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신이 언론에도 구현되고 다원주의의 바탕이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박인규  언론개혁에 대해 원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그 핵심은 언론 혹은 언론인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립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사주로부터의 독립’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적 상황으로 봐서는 정치권력과 언론의 건강한 긴장관계, 혹은 비판적인 거리가 요청됩니다. 우리나라 언론은 군사정권하에서 엄청나게 억압받다가 어느 순간 유착관계가 되면서 스스로 권력화되었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정치권력과 언론은 서로를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각자 제 역할을 하는 게 필요하죠. 한데 더욱 중요한 것은 언론인들이 전문성을 높이는 겁니다. 전문성에는 도덕성, 이른바 직업윤리도 포함되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진실을 캐나가는 데서의 깊이 등이 있는데, 현재 언론이 그러한 전문성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張浩淳  지금까지 한국 언론은 원래의 자리가 아니라 엉뚱한 곳에 있었습니다. 언론은 시민사회에 뿌리를 두고 정치권력과 자본을 견제해야 합니다.

張浩淳 지금까지 한국 언론은 원래의 자리가 아니라 엉뚱한 곳에 있었습니다. 언론은 시민사회에 뿌리를 두고 정치권력과 자본을 견제해야 합니다.

 

김기평  언론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과연 질 높은 신문 좋은 신문이 무엇이냐에 대한 해답이 저는 아주 기본적인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문마다 노선이 다를 수 있고 컬러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보도를 제대로 하는 것은 모든 신문의 기본이요, 필수요건입니다. 정확한 팩트 파인딩(fact finding)이 기본인데, 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언론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정확한 사실보도 능력의 배양을 바탕으로 해서 심층적인 비판과 다양한 정보제공 등의 기능을 갖춰야 신문이 질적 향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외부환경을 핑계삼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언론계 스스로가 철저히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할 일이죠. 기자들의 수도 많아야 하고, 내부경쟁을 통해서 양질의 기사가 생산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기자의 업무도 많고, 왜곡된 기사나 오보도 많습니다. 기자 수를 어떻게 늘리느냐 하는 문제, 그리고 사주나 편집국의 변화, 채용제도의 변화 문제 등 이런 것들은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합니다. 물론 외부 환경 문제도 심각하지요. 권력의 탄압 속에서 언론이 타협하고 안주했던 부끄러운 과거야 물론 부인할 수 없는 것이고, 지나친 부수경쟁과 상업주의화 경향 또한 심각한 문제인 게 사실입니다. 이같은 점에서 보면, 첫째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불편부당한 논조를 견지하는 문제, 둘째 광고주의 압력 등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탄탄하고도 건전한 재정을 갖추는 문제, 그리고 전문화를 통한 기자들의 역량향상 문제 등이 언론개혁의 주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崔文洵  언론은 최상의 도덕성을 지녀야 합니다. 정권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세무조사를 했다고 해서 언론사의 탈세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崔文洵 언론은 최상의 도덕성을 지녀야 합니다. 정권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세무조사를 했다고 해서 언론사의 탈세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장호순  결국 언론개혁은 공정하고 정확한 언론을 만들기 위한 작업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지금까지 한국언론은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를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어요. 또 다양한 시민사회의 여론을 반영하는 공론장의 기능도 발휘하지 못했지요. 한국언론이 시민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직도 과거 군사정권 시절처럼 권력과 자본의 영역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은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서 이를 감시·견제하고, 시장과 자본의 횡포를 막아 더욱 다양하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해나가기를 기대하는데, 언론은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언론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언론민주화에 대한 실망과 언론 본연의 기능이 회복되길 바라는 시민사회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봐요.

 

 

언론개혁인가 언론탄압인가

 

세 분 모두 한국언론계 내부의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해주셨는데, 이런 문제들은 이미 언론노조나 시민단체에서 제기해온 것들입니다. 정간법(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과 방송법을 고쳐 언론의 독립성을 보장하자는 주장이 나온 지는 이미 오래됐지요. 그런데 올해 1월 초 김대중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을 계기로 해서 갑작스레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의 조사가 진행됐고, 엄청난 액수의 과징금과 추징금이 부과됐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가 정말 언론개혁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언론탄압인가 하는 데는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 신문고시나 세무조사가 언론개혁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朴仁奎  기사가 대개 똑같고, 그러다보니까 기사의 독창성이나 깊이보다는 남보다 빨리 쓰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朴仁奎 기사가 대개 똑같고, 그러다보니까 기사의 독창성이나 깊이보다는 남보다 빨리 쓰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최문순  현재의 상황이 국민들에게는 매우 혼란스러울 것 같습니다. 언론사 세무조사로 시작된 상황이 여야간의 대결, 색깔론이 등장한 이념간의 대결, 지역대결, 신문과 방송의 대결, 또 신문과 신문의 대결로 나아가고 있는데, 우선 언론개혁이냐 언론장악 움직임이냐에 대해 분명한 판단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 언론장악의 의도 여부를 입증할 수는 없고, 다만 결과적으로 언론이 정치권력에 장악되느냐 안되느냐를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첫째는 조선·중앙·동아 세 신문이 굴복해서 정부를 비판하지 못하는 신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고, 둘째는 뒤에서 타협할 가능성입니다. 한데 지금 이들 신문을 보면 이들이 굴복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굴복한다는 것은 정부의 압력을 받아서 기자들이 기사를 제대로 못 쓴다는 건데, 지금까지 그런 현상은 드러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적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후자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뒤로 권력과 사주들이 서로 협상을 해서 이 문제를 끝낼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이죠.

그리고 지금 언론개혁 문제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조망하면, 이것은 세계체제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냉전체제가 붕괴됨으로써 안보상업주의에 기초해 성장했던, 특히 조선일보 같은 신문이 자기 기반을 잃게 되면서 공격을 받게 됐다는 것이죠. 색깔론이 우리는 근거가 없다고 하지만 본질적인 면도 갖고 있어요. 또하나의 관점은 국내적으로 정권교체가 됨으로써 권언유착 관계에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군사정권 시절에는 모든 신문들이 다 자기의 생존을 보장받으면서 각각 나눠먹기를 했는데, 군사정권이 끝나면서 언론사 내부의 그런 카르텔이 깨졌습니다. 또 언론 내적으로는 1996년을 기점으로 소유구조가 변경되면서 경향신문 등 독립신문들이 생기고 방송이 어느정도 정권으로부터 이탈하게 됨으로써 대결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IMF 이후 독점화가 진행되어 재정구조들에 차이가 나면서 신문사들간에도 대결구도가 생기게 됐지요. 현재 어느 신문사가 세금을 얼마나 맞았느냐는 것보다는 큰 역사적인 흐름을 보아야 합니다.

 

金起平  한국 언론의 미래는 그야말로 기자의 전문성에 달려 있어요. 사주나 경영층은 기자의 전문성을 키우는 데 신경써야 합니다.

金起平 한국 언론의 미래는 그야말로 기자의 전문성에 달려 있어요. 사주나 경영층은 기자의 전문성을 키우는 데 신경써야 합니다.

 

장호순  개혁대상으로 지목된 신문들이 권력에 굴복하느냐 타협을 하느냐 하는 두 가지 가능성을 거론하셨는데, 그렇다면 신문고시나 세무조사가 언론개혁으로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최문순  개혁이 되는 데 어느정도 긍정적인 역할은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언론족벌들이 도덕성에 타격을 받음으로써 지금까지 이 사회에서 가지고 있었던 영향력이 어느정도는 축소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는 갖고 있기 때문이죠.

김기평  저는 단언하건대, 이건 정치적 의도가 있는 언론탄압이라고 봅니다. 그 근거로 1월 11일 김대중 대통령의 언론개혁 발언 이후 국세청과 공정위가 잇따라서 2월부터 조사했고 얼마 전 한꺼번에 발표가 나왔는데, 저는 이 점을 중시합니다. 더구나 얼마 전엔 폐지했던 신문고시까지 부활시킨 것은 정부가 비판적 언론에 철퇴를 가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보여준 겁니다. 굳이 신문고시 부활이 불가피하다면, 이미 시작된 공정거래법에 따른 불공정거래 여부 조사의 결과를 보고 나서 했어야 마땅한 것이지요. 이는 마치 수사도 제대로 안해보고 범인으로 몰아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도 정상적인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세무조사 자체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대할 명분이 없습니다. 당연히 조사받아야지요. 그러나 3개 신문에 대해 각각 추징된 8백억원대의 엄청난 액수는 일반기업 세무조사 관행으로 봐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숫자입니다. 만약 2백억〜3백억원 정도의 추징금이 부과됐다면 신문사들의 저항이 이처럼 심하진 않았을 겁니다. 물론 2백억〜3백억원도 신문사 경영이 휘청거릴 정도로 엄청나게 큰돈이지요. 그러나 일반적인 세무조사 관행에 따라 매겨진 추징액에 대해 뭐라 하겠습니까? 받아들여야지요. 그런데 2백억〜3백억원의 몇배나 되는 추징금을 매겨놓고 무슨 간첩단 검거 발표나 하듯이 국세청에서 TV 생중계를 해가며 빅3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지 않았습니까? 국세기본법에도 나와 있듯이 세무조사는 조용히 비밀리에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신문사들은 꼼짝없이 ‘아얏’ 소리도 못 내고 탈루 세금을 물어냈을 겁니다. 다시 말해 국세청은 세금만 제대로 걷으면 됩니다. 그런데도 국세청의 징세권이 정부가 언론을 탄압하는 강력한 무기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에요.

 

 

정치적 의도,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것

 

장호순  역대정권들은 언론을 자기편에 두기 위해 때론 강압적이고 위협적인 방법을 쓰기도 하고, 때론 회유와 특혜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5·16쿠데타 직후 박정희 정권은 ‘시설기준’이라는 조항을 만들어 고가의 윤전기를 구비할 만한 재력이 없는 사람들은 신문발행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죠. 대신 신문사에는 저리융자, 세금감면, 카르텔 묵인 등을 통해 큰 이익을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언론이 정권 편을 들게 만들었죠. 그리고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주장하는 언론인들에게는 사주를 통해 해직을 강요했습니다. 그 결과 권력과 언론은 사실상 밀월관계를 즐겨왔어요. 그런데 김대중정부는 주요 언론사들, 특히 시장점유율이 높은 신문사들에 사실상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정권의 차원에서 보면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그 의도는 무엇일까요?

김기평  정당의 최대목표는 정권장악입니다. 현재 여당 지지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옵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떨어졌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을 앞두고 이를 만회하려는 욕심이 지나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기업·금융·공공·노동 등 4대 부문 개혁을 짧은 시간 내에 보여주기 위해 철저한 준비 없이 추진하다가 잘 안됐는데 이에 대한 책임을 언론에 돌리는 겁니다. 언론이 개혁되어야 나머지 부분도 개혁될 수 있다는 것이죠.

박인규  작년에 한 방송사의 수습기자가 한밤중에 술에 취해 남대문서에서 소란을 피우다가 구속돼 말썽이 빚어진 적이 있었잖아요? 그때 그 방송사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그리고 경찰청 등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실린 네티즌들의 글을 읽었는데, 대부분 경찰도 나쁜 놈이고 기자도 나쁜 놈이라고 하는 겁니다. 다만 누가 더 나쁜 놈이냐라는 것이죠. 이번 세무조사의 경우에도 MBC에서 한 여론조사를 보면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의견이 56%이고, 언론사 사주를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63%, 이런 식으로 팽팽해요. 그걸 보면, 일반 사람들은 정권도 문제가 있고 언론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 김기평씨가 말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거나 그런 측면이 보이는 것은, 입증할 수는 없지만 여러가지 정황상 사실이라고 봅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정부측의 조치는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방송사를 제외했다든지, 빅3에 집중됐다든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것들은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신문사에서 너무 그런 측면만 부각시키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탄압이다, 명예훼손이다 하는데, 언론사나 사주가 그동안 깨끗이 해왔다면 문제가 없는 것 아니겠어요? 물론 조사가 얼마나 형평성 있게 이루어졌느냐는 따져봐야겠지만, 그 부분은 지금처럼 언론보도로 따질 게 아니라 앞으로 법적인 공방으로 따져야 할 문제죠. 그러니까 언론탄압의 의혹이 있다 하더라도 세무조사 자체가 일단 합법적이라면 지나치게 그걸 문제삼을 수는 없다고 봐요.

저는 이번 세무조사가 정치적 의도는 있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이유로는, 1966년도부터 신문판매시장 정상화를 위한 자율결의를 26번이나 했지만 한번도 이행이 안됐다든가, 또 75년도의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이후로 이렇다 할 언론계 자체의 개혁 노력이 없었던 것을 들 수 있습니다. 87년 이후에는 노조가 중심이 되어서 편집권 독립, 언론 자정을 위해 노력했는데 큰 성과 없이 끝났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러한 개혁 노력을 평기자만 하고 편집간부나 경영진, 사주는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평기자는 위계질서상 제일 밑에 있는 사람들인데, 그 힘만으로는 부족했어요. 그러다보니까 이제는 안되겠구나 하면서 시민단체가 나서고 정권이 나서는 상황까지 된 겁니다. 이런 측면에서 세무조사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만 그것이 어떻게 끝날 것인가는 정권이나 언론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텐데, 모든 것이 어느 한쪽의 의도대로 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차제에 언론사나 사주 쪽에서도 우리가 집안 정비를 잘못하면 언젠가는 당하겠구나 하고 조심할 것 아닙니까? 그리고 정권도 신문을 마음대로 하려 하기는 힘들 테고, 권력과 언론 간의 주고받음, 이런 것도 상당히 자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기여는 있을 것이라고 봐요.

최문순  저도 정치적인 의도는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배격해내고 독립성을 지키는 것은 언론사의 몫입니다. 정치적 의도를 갖고 세무조사 한 것을 비판해야겠지만, 그것은 정치권에 너무나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는 겁니다. 오히려 높은 도덕적 수준이 요구되는 것은 바로 언론 자신입니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재판을 하는 판사 그리고 시민단체나 노동조합까지 다 언론의 감시대상이라고 보기 때문에 언론은 최상의 도덕성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정권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세무조사를 했다고 해서 언론사의 탈세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지난 군사정권 시절에는 폭력과 공권력, 그러니까 힘을 가진 세력들이 통치를 했는데, 그 사람들은 다 교도소에 갔어요. 그것을 우리는 아주 충격적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6월항쟁 이후에 폭력이 무력화되고, 이제 말과 경제력이 세상을 움직이게 됐는데, 재벌과 언론들은 민주화가 덜 되어 있어요. 이들이 교도소에 가는 것은 큰 불행이지만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현재의 ‘대치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장호순  현재의 상황을 보면 보수언론에서 주장하는 대로 정치적인 탄압인지, 아니면 개혁세력들이 주장하는 언론자유의 신장인지를 선뜻 판단하기 어려워요. 과거처럼 정부 대 언론 간의 단순한 대립관계가 아니라 그 전선과 구도가 복잡하기 때문이죠. 언론계 내부에서도 거대신문사들과 군소신문사들 간에 대치상황이 펼쳐지고, 신문과 방송이 서로 견제하며, 시민단체와 야당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보기에도 혼란스러운데 국민들이 보면 더욱더 헷갈리는 거죠. 그래서 일단은 이렇게 전선이 복잡해진 배경을 설명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시민단체나 언론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는 한나라당 앞에서 시위를 하고, 또 야당 쪽에서는 언론을 탄압한다고 주장하는 것인가요?

박인규  저는 문제가 그리 복잡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 예를 들면, 1998년에 한겨레신문사에서 주최한 언론개혁 관련 쎄미나에 나간 적이 있는데, 여기서 나온 주장들을 들으면서 저는 깜짝 놀랐어요. 언론개혁을 위해 정부나 국회가 나서서 정간법을 개정하라는 것이었죠. 그때까지 정치권력은 비판과 저항의 대상이 아니었습니까. 특히 언론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죠. 그런데 언론이 정부에 대해 언론개혁 조치를 요구한 셈이지요. 그후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김대중정부 이후 정치권력의 성격이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그리고 수평적 정권교체, 즉 소수파 권력, 진보성 등의 상징성을 갖는 김대중정권이 들어선 이후 친일세력이라든가 군부세력, 재벌 등 기득권 세력과, 이들의 지배구조를 바꾸고 싶어하는 개혁세력이 갈라진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해봤습니다. 한겨레신문이나 시민단체들은 해방 후 지속되어온 이런 것들을 차제에 바꿔보자는 것 같습니다. 방송 같은 경우는 자발적 의지라기보다는 사실 권력 쪽의 요구가 작용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의혹이 들고요. 김대중정부의 개혁이 구체적인 세목에서 미숙하고 인사면에서 무능한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방향에서는 개혁을 해나가려는 사람들이 한쪽에 있고, 이른바 보수파에서는 이것 큰일나겠구나, 다시 정권을 탈환해야겠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각 분야에서 싸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김기평  원로 언론인 남시욱 전 문화일보사 사장이 어느 쎄미나에서 한 얘기를 저는 주목하고 싶습니다. 남 전사장은 언론사의 세무조사, 불공정거래 조사, 그리고 신문고시 등이 언론개혁의 일환임을 지난 2월 김대중 대통령이 ‘오마이뉴스’와의 회견에서 시사했다고 말했습니다. 김대통령이 “정부는 실정법에 의해 경영상의 문제만 조사하고 편집문제와 공정보도 문제는 여야, 언론계, 시민단체가 국회에서 할 일이다. 정부가 개입하면 언론탄압으로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죠. 이는 이전에 안정남 국세청장, 진념 부총리가 언론사 세무조사가 별다른 의도가 없는 통상적 정례조사라고 한 말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 남 전사장의 지적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문제의 본질은 제쳐두고 정부나 언론시민단체나 각자 자기들 입장의 정당성을 강조하려는 운동식·캠페인식 전략을 취하는 데만 급급하다는 것이에요. 기업체들이 소비자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치열하게 고민하지는 않고 저마다 자기 제품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과 흡사한 형국이죠.

언론사는 언론사대로 분명히 잘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당장 경제분야나 국제분야 등 현안들이 많은데 이를 제대로 보도한 데가 거의 없다는 거죠. 또 정부와 언론, 언론과 언론, 신문과 방송, 언론과 시민단체, 이렇게 갈라진 것은 각자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홍보식·운동식·캠페인식으로 내려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니 시민단체에서 정부에 동조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입니다. 세무조사 결과도 공개하라고 했다가 조·중·동 조사 결과가 나오니까, 그 뒤로는 그 목소리가 없어졌어요. 보도하는 싯점에서, 또는 목소리를 내는 싯점에서, 정책을 추진하는 싯점에서 이것이 제대로 가는 길인가를 면밀히 따지지 않고 감정적인 데 휩쓸리면서 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자기가 잘못한 부분은 인정하지 않았어요.

최문순  언론개혁 문제를 정확하게 바라보지 않고 전부 이념문제나 정쟁으로 몰고 가는 현재의 상황은 이 사회의 의사결정구조의 잘못된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어느 신문사나 방송사가 세금을 냈느냐 안 냈느냐는 문제를 논하는데 왜 색깔론이 등장합니까? 이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색깔론으로 물타기를 하고, 지역대결 구도로 만들어버리려는 의도이죠. 그 다음에 신문과 방송의 대결로 나타나는데, 이건 신문과 방송의 대결구도가 아니에요. 신문과 신문의 대결구도도 아니고요. 그런데 이런 대결구도로 나아가다보니까 편가르기가 불가피해지는 겁니다. 정권이 잘못한 부분은 뭐고, 언론사나 사주가 탈세한 부분은 뭔지, 정확하게 따지고 들지 않아요. 현재의 문제는 부패와 반부패의 문제이고, 경영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 아니면 그냥 불투명한 채로 구멍가게 경영으로 갈 것이냐는 문제입니다. 그건 방송도 마찬가지고요. 그 다음 문제가 소유를 분산할 것이냐, 편집권·인사권·경영권을 1인에게 집중시켜줄 거냐, 아니면 기자들에게 하부 이양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한데 현재는 이런 것들을 논의하기는커녕 물타기를 하고 편가르기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박인규  한가지만 덧붙이자면, 언론개혁이 어려운 것은 바로 고도의 정치적 게임이라는 성격 때문인데요. 사회의 주요세력으로서 정권의 힘이 상대적으로 많이 약화되었어요. 적어도 전두환 시대까지는 여러 사회세력 중 정권이 압도적으로 강했지만, 김영삼정권, 또는 김대중정권으로 오면서 정권의 규정력이랄까 지배력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심지어 언론이 더 세다는 말도 나오고요. 그래서 이제는 권력에 대해 비판만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예를 들면 자본의 문제 등에 대해서도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기평씨가 시민단체에 대해 한 말은 맞다고 봅니다. 지금 시민단체에서 하는 것도 정치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6월 25일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가 발표될 때 개인적으로 아주 참담했습니다. 왜냐하면 8백억을 탈세했든 10억을 탈세했든 탈세는 탈세거든요. 8백억을 탈세했으면 비도덕적이고 10억을 탈세했으면 괜찮은 건가?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전반적으로 동일한 잣대로 봐야 하고요. 그리고 지금까지 지적된 언론계의 문제점은 조·중·동만의 것은 아닙니다. 부정확한 보도라든가 피상적 보도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데 조·중·동은 정치적 입장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정치적인 입장을 빼고 전문적인 것만 가지고 얘기한다면 다 동의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성격이 가미되다 보니까, 그때부터는 싸움의 양상이 전문성이나 기사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누가 기선을 제압할 것인가가 되고, 결국 혼돈스럽고 본질을 놓치게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기평  참고로 IFJ(국제기자연맹) 총회에 대한 보도태도와 IPI(국제언론인협회)에 대한 보도태도의 예를 들어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IFJ는 기자들 조직이고 IPI는 발행인이나 편집인 등의 조직인데, 그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념이나 다원주의와는 상관없이 신문으로서 언론으로서 양자를 보도해야 하는데, 한쪽은 경영주의 구미에 맞는 것만 보도하고 한쪽은 기자 쪽의 얘기만 보도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 부분에서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사주에게 별로 안 좋은 얘기인데, IFJ 기사가 중앙일보에 1단짜리로 실렸어요. 저는 그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군소신문’이 ‘주요신문’을 비난하면서 IPI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를 안했어요. 최소한 독자들에 대한 써비스가 언론의 의무라면, 각사의 편집방향이 다르더라도 보도는 해야죠. 이것은 ‘주요신문’이든 ‘군소신문’이든 기사가 잘못 나오고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 부분은 좀 신경을 써야겠어요.

 

 

한국언론의 위기상황, 그 원인은 무엇인가

 

장호순  지금까지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싼 공방, 그리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짚어보았습니다. 이제는 한국의 언론이 어떠한 상황에 있는지 진단해볼 차례입니다. 사실 한국언론은 이미 상당한 위기상황에 있습니다. 통계청이 1996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주 1,2회 이상 신문을 구독하는 인구의 비율은 72.2%였습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그 비율이 65.1%로 떨어졌어요. 그 기간 동안 신문들이 무가지 배포, 경품 경쟁 등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들여가며 독자확충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이죠. 저는 신문에 대한 신뢰도 저하가 주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한국언론재단에서 실시한 뉴스매체 만족도 조사를 보면, 신문은 공정성·정확성·균형성·신속성 등에서 텔레비전 뉴스는 물론 인터넷 뉴스매체에도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출입기자실 문제라든가 일련의 언론인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표출되는 언론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에요. 국민들에게는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하고 국가사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공익집단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죠. 언론의 역량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합니다. 예를 들면 지난해 한국언론이 가장 많이 다룬 뉴스 중의 하나가 의사파업이었어요. 물론 사안 자체가 오랜 기간 진행되기도 했지만, 각 언론사가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해 보도했어요. 그런데 올해 어떤 결과가 생겼습니까? 의료재정이 4조원의 적자다, 5조원의 적자다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거든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물론 보건행정 당국의 책임이 크긴 하지만, 우리 언론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주면서 거기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 탓도 크다고 봐요. 이처럼 한국언론이 국민적 신뢰를 잃고, 사회적 합의와 대안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김기평  저는 첫째로 소유구조 측면에서 사주의 문제가 있고, 둘째는 기자의 전문성이나 자질의 문제, 셋째는 우리 사회 이념의 문제와 맞물린 언론사의 역량 문제가 있다고 봐요. 첫번째 소유구조 문제에서 저는 한국의 사주들이 도덕적으로 존경을 받지 못할 부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사주도 지금 바뀌고 있습니다. 사주의 세습에 대해서는 옳다 그르다의 차원이 아니라 그 문화적 토양에서 봐야 합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캐서린 그레이엄 명예회장이 소유구조에 대해서 2000년 4월 4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를 했습니다. 그레이엄 여사는 가족소유가 어떻게 보면 정부 압력을 버텨내고 언론자유를 지키는 데 필요한 독립성을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실례로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전 관련 국방부 보고서 사건, 이 중 후자는 『뉴욕타임즈』의 특종인데, 이들 사건은 언론이 민주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자유를 지킨 댓가가 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죠. 또 사주는 전문경영인과는 달리 신문사에 대한 영속성·사명감 등을 높여줍니다. 그래서 이런 신문사들은 경영이 어려울 때 주변에서 말린다 해도 해외특파원의 수를 늘리든가 해외지국을 설치하든가 합니다. 이것은 전문경영인이 볼 때 효율성의 측면에서 말도 안되는 거예요. 그러나 적자를 보면서도 밀고 갑니다. 미국의 권위지들은 거의 다 그래요. 그게 권위지들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주의 면모에 대해서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언론사에 대해서도 ‘옳다’ ‘그르다’로 판단하기보다는 이들이 시장원리에 따라 성장하고 도태되기 때문에, 굳이 인위적인 조치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둘째는 기자들의 문제입니다. 관훈클럽의 한국언론2000년위원회에서 학계 위주의 사람들이 1997년 조사를 했는데, 조사대상 언론인 중 33%가 타 매체에 난 보도를 확인 없이 그대로 베낀다고 답했습니다. 또 방송카메라니 윤전기니 하드웨어에는 투자를 하는데 기자에게는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보도가 정확하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가 저는 인력 부족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외국의 경우를 한번 정리해봤는데, 2년 전 자료이지만 지금도 유효하다고 합니다. 미국 4대지 중에 3대지의 기자 숫자인데 『워싱턴포스트』가 750여명, 『뉴욕타임스』와 『LA타임즈』가 약 1천명입니다. 그리고 『아사히신문』이 2660여명, 『니혼케이자이신문』이 1160여명,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짜이퉁』지가 320명 수준, 『르 몽드』지가 소수정예로 해서 230여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제대로 된 취재인력은 보통 2백명 전후이고, 국내 최대 신문사라고 해봐야 340명 정도입니다. 『아사히신문』은 조간 40면, 석간 24면, 합쳐서 매일 64면을 발행하는데, 우리는 많아야 56면을 왔다갔다해요. 한국은 신문 1면을 제작하는 데 6명, 『아사히신문』은 42명을 투입합니다. 기자 수는 1/7인데 지면 수는 엇비슷하다는 거죠. 그러니 일본 등 외국에선 기자들끼리 경쟁을 하고 그 지면을 만들기 위해서 속된 말로 박터지는 거죠. 이게 시장원리예요. 그리고 정보의 주권 차원에서 특파원 수가 중요한데, 우리는 결국 서방 논리에 둘러싸여 있어요. 코소보에서 발생한 전투를 보도하는 것은 대부분 서방의 논리입니다. 아프리카·아랍에서 벌어지는 전쟁 때도 마찬가지죠.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특파원 수가 많아야 하는데, 신문사 중에서 제일 많은 곳이 10명 겨우 넘습니다. 『아사히신문』은 50명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뭡니까? 하드웨어 투자분에서 2백억원만 전환하면 기자 4백〜5백명을 확보할 수 있고 뉴미디어 사업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또다른 문제는 전문성 확보를 위해 기자가 노력을 하지 않는 겁니다. 기자의 일이란 굉장히 전문적인 영역으로 분류가 되는데도 말이죠.

마지막으로 이념 분야는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념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아요.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반공을 국시로 했고, 신문사도 반공 위주였다가, 다음에는 민주화 위주로 넘어갔습니다. 지금은 민주화도 반공도 이미 지나갔고 공정보도가 중요한데, 독일의 경우 공정보도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어요. 공정보도를 위해서 이념을 자유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인규  일단 언론이 위기라고 하는 데는 다들 동의를 하신다고 보는데, 그건 중요한 합의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것은 언론의 권력화가 아닐까 합니다. 언론은 우리 사회에서 사실상 유일한 비판·견제세력이었는데, 그 언론을 비판하거나 견제하거나 감시하거나 평가하는 기제가 거의 없었어요. 정치권력 같은 경우는 국민의 심판을 통해서 상당히 민주화가 됐죠.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이를테면 전두환이나 노태우는 감옥 가고, 잘못한 정치인들은 선거를 통해 떨려나갔습니다. 정권이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걸 감시하고 평가하고 비판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일정한 진화과정을 거쳐왔죠. 심지어 재벌만 하더라도 국제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 효율성을 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기를 개선하도록 만드는 기제가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언론은 없었습니다. 최근 언론사에 대한 소송이 많이 늘었지만 아직 멀었다고 합니다. 오보라든가 명예훼손에 대해 진짜 한 신문사가 망할 정도로 댓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언론은 기업이 아니었고 기업적인 마인드도 없었어요.

그리고 하나 덧붙이면 기자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한번 조선일보 기자는 영원한 조선일보 기자 아닙니까?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 기자는 개인의 능력보다는 신문사의 위상에 의해 그 위치가 좌우됩니다. 미국 같은 경우는 기자들이 지방신문에서 시작해 중앙지로 옮겨가는, 그러니까 나름대로 동료끼리의 평가를 토대로 커가는 과정이 있는데 우리는 없습니다. 동료들간의 평가가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 지식계랄까 지식 수준의 획일성·천박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기사가 대개 똑같고, 그러다보니까 기사의 독창성이나 깊이보다는 남보다 빨리 쓰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최문순  저는 우리나라 언론계의 핵심적인 키워드를 고르라면 사유화와 독점화라고 보는데요. 지금 사회의 여론주도층 그룹이 대개 전후세대인데, 이 세대는 냉전체제에 그리 익숙하지 않아요. 여러가지 다원주의가 몸에 배어 있는데, 편집 지면의 사유화가 현저하게 이루어져 있는 신문이나 방송이 그런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옛날의 냉전적 가치로만 세상을 재단하려 하고, 아직도 박정희식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이를 자꾸 주입하려 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신문사들의 경영이 부실해지는 이유 중의 하나로 세습을 들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4세까지 내려갔어요. 최초의 언론족벌 4세로 37세 김재호씨가 동아일보 대표이사 전무로 되어 있고요. 그 다음에 조선일보의 방성훈씨는 경찰기자 생활을 하고 있고, 국민일보의 조희준씨는 넥스트미디어 회장이죠. SBS의 윤석민 SBSi 대표이사, 한국일보의 장중호 일간스포츠 대표이사 등이 2,30대 후계자들로 언론사 내 권력자들입니다. 두번째로 독점화를 위한 무한경쟁이 결국은 자해행위, 즉 제 살 뜯기가 됐어요. 반상회에 가면 신문 돈 주고 볼 필요가 없다고 한답니다. 한 일간지 보다가 끊고 다른 일간지 보면 1년씩 무료로 보는데, 뭐하러 돈 주고 보냐는 거예요. 이번에 많은 세금이 부과되게 만든 무가지, 경품, 판촉비용 등이 신문사의 재정을 부실하게 하는 거죠. 그리고 많은 돈을 거기에 투입하니까 좋은 편집기자를 많이 채용하지 못하는 겁니다. 무가지는 보급소에서 바로 폐기창으로 가는데, 이건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신문사 경영에도, 국가경제적으로도 큰 문제죠.

 

 

편집권 독립, 법적 보장만으로 이루어지나

 

호순  신문의 질적 향상과 독립성 보장, 그리고 부실경영 차단을 위한 수단으로 편집권의 독립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언론사주와 언론인들의 관계가 주종관계나 종속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가 된다면 언론보도가 더욱 공정해지고 정확해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실질적으로 편집권 독립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편집권 독립 문제는 사주의 경영권과 충돌하기도 하고, 또 편집권 독립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편집권 독립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다른 것 같습니다.

참고로 앞서 언급된 미국의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971년 『뉴욕타임즈』는 자신들이 극비리에 입수한 베트남전 관련 미국 국방부의 비밀보고서를 보도할 것인가를 두고 내부적으로 상당히 진통을 겪었습니다. 기자들은 보도를 원하고, 변호사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보도하면 안된다고 주장했죠. 1974년 워터게이트사건 때도 『워싱턴포스트』에서 비슷한 양상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두 신문사 모두 사주가 최종결정권을 행사하게 되죠. 이때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 사주 모두 권력의 위협을 거부하고,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진실보도를 선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신문 모두 한국의 거대신문과 마찬가지로 가족이 소유한 신문이지만 편집권 침해에 대한 우려 없이 세계 최고의 권위지로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최문순  편집권 독립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기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자기 양심에 비추어서 기사를 쓰고, 어떤 불이익을 받더라도 끝까지 지켜내야 합니다. 이런 기자로서의 윤리의식, 사회적인 책임의식, 역사의식이 필요한 거죠. 기자가 기사를 쓴다는 것은 매일매일의 역사를 기록하는 건데, 그런 투철한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금의 언론사태에 대해서 모든 기자들이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주를 비판하는데, 사주도 정치권력과 마찬가지로 독점적인 권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속성이 있어요. 그걸 이겨내는가, 못 이겨내는가 역시 기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사주가 편집권에 간섭을 하고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했다가는 기자들이 다 떠나고 그 신문사는 망한답니다. 그 정도까지 되지 않더라도 기자들이 적어도 책임의식만큼은 분명히 가져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기자들이 그릇된 의미의 경쟁의식을 지나치게 가지고 있어요. 자기 회사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밖에서도 그렇게 행동해요. 그러다보니까 자기는 판매량 최고의 신문을 만들어야 하고, 가장 영향력있는 신문을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기사가 정확한가 아닌가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그건 방송도 마찬가지인데, 시청률 경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재작년에 개정된 방송법에는 편성법이 있어서 노사가 편성규약을 두도록 하는 조항이 있고,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에는 편집규약을 마련하도록 하는 조항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법으로 둘 수도 있겠지만 이는 상징성만 지닐 거고, 실제로는 결국 기자들의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봐요.

박인규  편집권 독립이 문제가 되기 위해서는 과연 기자들이 자기가 쓰고 싶은 기사를 사주 때문이라든가 국장 때문에 못 쓰고 있는가, 그래서 이같은 상황을 불편해하고 있는가가 먼저 점검돼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편집권은 1987년에 언론노조운동이 생기면서부터 제일 큰 문제였고, 각사마다 나름대로의 장치는 사실 다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자 사회의 능력이랄까 역량이 갖추어져 있느냐는 거죠. 하나 예를 들면, 아시다시피 경향신문은 1974년부터 87년까지 청와대 기관지였습니다. 그래서 소유구조를 개편하자고 하면서 87년 대선 직전에는 거의 모든 평기자들이 2박 3일 동안 철야농성까지 했습니다. 결국은 실패했는데, 그때 제가 느낀 것이 뭐냐면, 소유구조를 아무리 개편하자고 해봐야 보통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 청와대 때문에 못 쓴다 하면 무슨 소리인지 금방 알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보더라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아직까지 기자의 역량이 미흡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분에서 제도개혁이 현실보다 앞서 간다는 생각도 듭니다.

김기평  공감합니다. 제도개혁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사람 문제라고 봅니다. 편집권 독립은 그야말로 기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기자들은 스스로 과연 독자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썼는가, 정말 이건 독자들에게 꼭 알려줘야 할 이슈 및 정보가 되는가,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자기검증을 한다면 왜 도덕적 용기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편집권 독립을 위해서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 등 제도의 개혁도 필요하겠지만, 왜 그렇게 제도 만능주의로 생각합니까? 언론이라는 것이 그렇게 제도로 만들어졌습니까? 우리나라 신문은 우리의 문화적 토양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또 신문사에 있는 기자로서 정치권과의 연계나 관료들과의 연계를 제일 조심해야 합니다. 외부에 있는 정치인이나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의 청탁이 기자들에게 때때로 들어옵니다. 사익을 위해서 지면을 남용하거나 오용하는 사례를 보면 저건 아니다, 싶습니다.

장호순  편집권 독립을 법적인 장치로 보장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는 언론계 스스로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데 동감합니다. 저는 여러 신문에 칼럼을 쓰면서 제 칼럼을 받고 체크를 하는 기자들이 자기검열 하는 선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주나 편집국장이 이 기사는 안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신문사 조직 내에서 혹은 우리 신문에서는 이런 것은 안된다는 의식을 기자가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작년 EBS에서 「다큐 이 사람」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일보 수습기자 한 사람의 직장생활을 40분간 방영한 적이 있어요. 그걸 보니 수습기자들이 초판신문을 보면서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이 ‘물먹은 것이 없나’ 하는 것이더군요. 신문사 편집국장들 역시 타사 신문을 펼치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 ‘물먹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언론인으로서의 독립성을 가지고 줏대있게 세상을 보기보다는, 어떻게 조직논리에 순응하고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의식이 한국언론계에 팽배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적으로 아무리 편집권 독립이 보장되면 뭐합니까? 기자들은 사주의 이해관계에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이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김기평  저는 언론단체나 시민단체에서 정확한 자료를 내줬으면 좋겠어요. 편집권을 기자들이 가지느냐, 경영자나 사주가 가지느냐는 논란이 있는데, 편집권 독립을 위한 편집규약 제정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우려하는 쪽의 얘기도 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시민단체 등이 대표적 사례로 거론하는 독일의 편집규약은 국내 언론사에서 노사간에 체결되는 편집권 협약에 해당합니다. 독일 언론의 편집위원회는 기자들 내부의 위원회이지 ‘언론개혁시민연대’가 편집규약을 위해 노사 동수로 구성하자고 제안한 것 같은 노사공동의결기구는 아닙니다. 독일에서는 언론사의 기본 편집방침을 회사측이 정하고, 편집규약은 그 방침하에서 만들어집니다. 이런 각론을 가지고 얘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요.

박인규  저도 한가지만 덧붙이고 싶어요. 저는 수습과정이 우리나라 기자들을 획일화하고 규격화하는 주범이라고 생각해요. 경찰 기사라는 것이 별거 아니에요. 늘상 일어나는 일이기에 기사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자기의 눈으로 보는 기사인데, 다른 신문에 난 기사를 기준으로 너 물먹었어, 안 먹었어, 계속 그렇게 훈련을 시키거든요. 그러다보면 지금까지 반복돼온 유형의 기사만을 재생산하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기자가 만들어지니까 기자의 독자성이랄까 개성이 없어지고, 기자는 소모품이 되는 거죠. 이게 기사야, 이건 몇단이야, 하는 식으로 훈련을 받기 때문에 그밖의 것은 아예 기사라고 생각을 안합니다. 그런 문화가 우리나라 신문의 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거죠.

장호순  이 기회에 저도 덧붙이겠습니다. 앞서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편집권이 보장된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상당히 편집권이 독립되어 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의 한 작은 지역신문사를 방문했을 때 편집국장으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그 도시에 있는 공립병원의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를 쓰려고 하니 사주가 막더라는 겁니다. 병원이 신문에 광고하는 액수가 적지 않고, 주요 독자인 대다수 병원직원들이 반발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죠. 그렇지만 편집국장은 사주의 요구를 거절하고 기사를 내보냈다고 합니다. 어떻게 했냐고요? 그 기사가 안 나가면 기자들이 다 그만두겠다고 사주에게 통고했답니다. 기자들이 사직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그 신문사말고도 갈 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역신문 체제인 미국에는 일간지만 1500여개에 달합니다. 기자는 전직을 하면 되지만, 신문사는 신문발행이 중단되어 경영상으로 손실을 보고, 대외적인 신뢰도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기자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죠.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가 사실상 족벌 소유체제이면서도 여론독점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는 이유도 두 신문의 실제 신문시장 점유율이 극히 미미하기 때문입니다. 전체 미국 일간지 발행부수 5500만부 중 두 신문이 차지하는 부수는 200만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전체 신문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0%에 이르는 데 비해, 미국 최고 유력지의 시장 점유율은 3.5% 정도에 불과합니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신문은 발행부수가 10만부 미만인 지역 일간지입니다. 미국 신문의 평균 발행부수는 3만 5천 부입니다. 작은 신문이 많다는 얘기는, 그만큼 미국 언론인들에게 고용기회가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편집권이 독립되려면, 법적인 보장보다는 건강한 군소신문사들이 늘어나 언론인의 고용기회가 많아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에 몰려 있는 종합일간지들이 지방으로 분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대전권만 해도 인구가 130만명에 이르는데 지방지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대다수 독자들은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읽지만, 그 신문에 대전지역 뉴스는 거의 없습니다. 신문이 꼭 수도에서 발행되어야 전국적 영향력을 갖는 것도 아니고 수익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에요. 서울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한국의 신문이 지방으로 분산되면, 시장도 다양화되고 고용기회도 확장되어 신문의 질적 향상과 편집권의 독립 모두를 이룰 수 있으리라고 봐요. 사실 일간지는 30만부면 충분히 손익분기점이 되고 영업이익이 10% 이상 나올 수 있어요. 서울의 중앙지가 대전지역과 같은 대도시로 내려간다면 충분히 30만부 이상의 독자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권위지인 『르 몽드』나 『파이낸셜 타임즈』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짜이퉁』 등은 발행부수가 40만부 미만이죠.

 

 

언론노조운동의 성과와 한계

 

지금까지 편집권 독립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를 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언론노조의 활동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언론인들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조직된 우리나라 언론노조는 단순히 노조원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의 민주화, 편집권 독립 쟁취 등 공익적 활동을 함께 해왔습니다. 그러나 언론노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권언유착이나 사주의 전횡 등 고질적 폐해들이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 같은데, 최문순 위원장께서 먼저 말씀해주시죠.

최문순  우선은 오랫동안 언론노조운동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언론이 개혁대상이라고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데 대해 자괴감을 느낍니다. 이렇게 된 데는 몇가지 요인이 있다고 보는데, 우선은 권력과 언론의 탄탄한 유착구조가 있어 일선 기자들이 그 틀을 깨고 편집권 독립을 쟁취하기에는 너무 버거웠다는 생각이 들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기자들이 편집권 독립을 포기하고 살아남기 위해 회사에 대한 충성을 선택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스스로 종업원으로 전락한 것이죠. 그것이 국민과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 상실의 큰 요인이었다고 봅니다. 거기에는 지속적인 탄압이 있었죠. 사측이 강한 곳에서는 내부 저항세력이 거의 제거되고 뿌리가 뽑혔습니다. 족벌언론사 안에서 저항했던 노조위원장들은 예외없이 회사를 떠나거나 쫓겨났고, 내부 저항세력들은 발언권을 잃었습니다. 지금 단체협약 등을 보면 편집권 독립이 보장되어 있습니다만 하나도 지켜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IMF 이후 더욱 심화된 고용 불안정이 언론노조운동을 힘들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합니다.

김기평  저는 1994년에 노조 사무장을 했고, 『미디어 오늘』의 전신인 언론노보의 편집위원을 하면서 언노련 활동도 했지만, 지금은 사회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단계는 일단 벗어났다고 봐요. 현재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정보화사회로 나아가고 있는만큼, 노조의 활동방향도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편집권 독립을 위해서는 노조 스스로가 세력 규합에만 힘쓰기보다는 기자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그런 쏘프트웨어를 개발해 기자들을 소모품으로 생각하지 않고 중히 여기는 풍토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박인규  우선은 중앙조직과 각사의 노조를 구별해야 하는데, 중앙조직이 정치적 성격의 활동에 치중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저 자신이 노조운동을 하다가 2년 반 동안 해직되기도 했지만, 뼈저리게 느낀 것은 노조는 역시 주도권을 가질 수 없는 조직이라는 겁니다. 노조는 비판·감시·견제하는 조직이지, 경영이랄까 전체적인 방향을 끌고 갈 수 있는 조직은 아니에요. 그리고 또하나 조직의 가장 결정적인 약점이 차장 이하만 가입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문사에서 부장이나 국장의 권한은 막강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국장과 부장단들이 사용자 편은 아니지만 노조의 배척자 편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노조가 신문제작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기에는 태생적인 조직적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실 운동성을 가진 집단으로서 제일 먼저 생긴 것은 기자협회 아닙니까? 1964년에 언론윤리위원회법 제정에 기자들이 저항하는 과정에서 64년 8월 17일에 생겼는데, 실제로 기자협회는 그때부터 75년 동아투위 때까지는 진짜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부장들은 안 들어가는 평기자들만의 단체였죠. 그런데 그것이 동아사태를 거치고, 그리고 80년에 기자협회 회장단이 다 구속되면서 5공 때는 어용단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죠. 유일한 업적은 기자아파트 만든 것밖에 없거든요. 그 당시 기자협회보는 1년에 한번씩 각사의 임금 대비나 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경향신문사에서는 87년에 기자들 중심으로 경향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조직의 이름은 기자협회 경향분회가 아닌 기자협의회라고 했습니다. 노조는 그후에 결성됐지요. 당시 경향신문의 경우에는 직종간 임금 차이가 매우 컸습니다. 인쇄공 같은 경우는 월급이 매우 적었어요. 그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노조에 들어갔는데, 신문사는 워낙 직종간에 힘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는 못했죠.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비기자직들의 임금에 관련된 불만을 동력으로 하고 기자들이 이끌어가는 형태의 노조운동이 됐는데, 지금에 와서 그것은 한계가 있죠. 그래서 소망스럽기는 편집인협회나 기자협회가 기자의 전문성 함양을 위해 일해야 하는데, 그런 것을 너무 못하고 있습니다.

김기평  제가 잠깐 얘기하겠습니다. 중앙일보의 경우 사주가 없었을 때 부작용이 큰 것을 많이 봤습니다. 또 중앙일보가 처음에 가로쓰기를 했을 때 경쟁지들은 저것 봐라, 그게 함부로 되냐, 하며 좋아했죠. 그렇지만 저는 그것이 개혁이라고 봅니다. 정해진 법테두리 내에서 개선하고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섹션신문, 전문기자제도 도입했죠. 물론 전문기자제가 정착됐느냐, 기자가 전문화됐느냐 하는 문제는 앞으로 연구할 대상입니다. 그리고 계속 ABC(발행부수공사) 참여나 편집위원회 구성 등의 시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사주가 없을 때 됐느냐는 거죠. 사주가 어떠한 지향성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경영의 받침이 있어야 하고, 기자들의 의식이나 전문화를 위한 열정, 윤리성, 외부로부터의 갖은 유혹과 압력을 이겨내려는 노력이 종합돼야 합니다. 갑자기 이것 하자, 하면서 칼 들이대서는 안되고, 신문도 다른 데 대해서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봐요.

최문순  기업이 빠른 속도의 성장을 하는 데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되었겠지만, 그것 때문에 경영이 부실화되고 IMF를 맞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은 주인 없는 신문이나 주인 없는 기업이 더 낫습니다. 답답해 보이고 시장에서 처질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회 전체를 위해서는 전문경영인이 커나가고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되고 해야 합니다. 이전의 압축성장 시대, 개발독재 시대의 것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방송의 문제점과 개혁과제

 

장호순  언론노조운동에 대한 논의에서는 한계와 함께 앞으로의 활동방향이 많이 거론되었습니다. 한편 논란이 많은 방송으로 방향을 돌려보죠. 방송개혁에 대해서는 작년 방송위원회가 탄생되기 전까지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많은 대안들이 제시되었어요. 그러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공정거래위 조사나 세무조사가 신문에 집중되면서, 방송계의 부조리는 덮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최근 신문개혁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공영방송이라고 할 수 있는 KBS MBC가 DJ정권의 나팔수가 아니냐는 주장까지 야당을 통해서 나오고 있어요. 방송의 독립성이 또다시 문제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또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을 비난하는 각 방송사들이 자회사·계열사를 만들어 앞다투어 위성과 케이블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십시오.

김기평  저는 일단 규제냐 탈규제냐를 떠나서 방송은 공공의 전파라는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땅도 넓고 사람도 많고 방송사도 많은 미국은 개방체제이지만, 우리는 여건 자체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데 방송국은 진입장벽이 있어요. 방송국 허가증이 있습니다. 얼마 전 종합편성·보도·홈쇼핑 세 개 분야를 빼곤 방송채널사용자(PP)에 대해 등록제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 방송이 정권에 의해서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러냐면, 최근의 케이블 진입이나 위성방송 진입이 지상파에 유리하게 됐어요. 물론 현재의 여건상 지상파말고 방송을 그렇게 할 주체가 없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문화관광부와 방송위원회가 방송정책에 관해 합의하도록 한 조항도 독소조항이어서 정부의 방송개입 여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얘기들을 합니다. 저는 방송의 독립성 문제를 두 가지로 요약하고 싶어요. 하나는 현 정부의 당근정책이 방송의 독립성을 해친다는 겁니다. 최근에 한국디지털위성방송의 경우를 보면 KBS MBC SBS 세 방송사에 3개씩 9개 채널을 줬어요. 전파가 남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일들은 진짜 방송 육성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같은 상황을 볼 때, 그리고 최근의 세무조사나 공정거래위 조사 보도를 볼 때, 방송의 독립성이 훼손됐다는 지적들이 있어요. 또다른 문제는 방송사 내부에 계신 고위관계자들이 그런 당근정책에 호응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언론비평단체나 시청자단체에서 얘기하듯이 고발뉴스가 없어졌어요. 그 유명한 MBC의 ‘카메라출동’은 어디 갔습니까? KBS도 그렇고 SBS도 그렇고, 고발 프로그램은 다 없어졌어요. 그리고 프로그램이 연성화됐습니다. 방송사 내부에 있는 분들이 그런 고발프로를 통해서 정부를 견제해야 하는데 말이죠. 이런 데 대해서는 내부에 계신 분들이 자성해야 합니다.

최문순  대개 맞는 말씀이라고 보는데요. 다만 한가지, 신문 얘기를 할 때 꼭 방송 얘기를 함께 해야 하느냐 싶습니다.(웃음) 물론 저도 방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늘 비판적인 입장인데, 핵심은 저질경쟁·상업화라고 봅니다. 요새 연예인 문제 등도 있지만 다 방송사의 자업자득이라고 보고요. 독립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방송이 완전 독립은 아니지만 권력으로부터 상당히 벗어나 있다고 봐요. 김중배 선생이 MBC 사장이 되는 과정을 보면 정부 뜻과는 전혀 달라요. 저는 옆에서 생생하게 지켜봤기 때문에 잘 알죠. 김중배 사장은 친DJ가 아니고 오히려 여러차례 반DJ에 섰던 분이죠. 다만 고향이 광주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해받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KBS는 독립성이 덜하다고 보고요. SBS는 족벌체제이기 때문에 회장의 독점권력이 지나치게 강하고 2세 문제도 끊임없이 있어요.

우리는 방송위를 문광부로부터 독립시키려고 10여년 동안 계속 싸워왔는데, 싸움을 할 때마다 보수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당했어요. 저는 그것이 정말 섭섭해요.(웃음) 정부로부터의 독립투쟁을 하는데, 한번도 도와준 적이 없어요. MBC만 하더라도 파업을 열 번 했습니다. KBS는 대여섯 번을 했고요. EBS는 독립공사를 만들면서 끊임없이 교육부로부터 독립하려는 노력을 했어요. 신문은 그 싸움에서 한번도 방송을 도와주지 않고 독하게 비난했어요. 특히 조선일보가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가서 달걀도 던지고 그랬는데, 지금에 와서 방송이 왜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냐고 하는 것은 참 섭섭해요.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는 거죠. 다만 고발 프로그램이 약화된 데 대해서는 똑같은 생각을 합니다.

김기평  저는 언론개혁에서 방송사가 빠지는 것은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언론개혁에서 방송이 빠지면 이건 신문개혁이고, 신문개혁에서 군소신문이 빠지면 조·중·동 개혁이에요. 그렇다면 이게 무슨 언론개혁입니까? SBS를 뺀 방송의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임명과정입니다. SBS도 일단 정부에서 허가를 해줬으니까 넓은 의미로는 포함되는데, KBS는 정부가 100% 출자를 한 것이고, 임명도 방송위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니, 결국 다 정부의 입김이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MBC도 영향을 받는데, 김중배 사장의 경우에는 이번에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반란으로 된 것이니 예외라고 해야지요. 방송사가 예전에 ‘땡전 뉴스’로 국민들을 호도해놓고 지금 와서는 반성 하나 하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신문을 공격하니까 참담한 문제가 생기는 거죠. 방송법에 명시된 각 방송사의 편성규약 제정 문제를 MBC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하려다가 흐지부지되고 있어요. 그러고는 방송사들은 신문사에 대해 당신들 왜 정간법 개정해서 편집규약이나 편집위를 만들지 않느냐 하는데, 신문과 방송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요. 그리고 일단 방송국에 진입하면 피디든 기자든간에 자리가 보장이 되어 있어요. 방송사도 경쟁체제로 가야 합니다.

 

 

방송의 독립성과 공영성을 확고히하려면

 

박인규  적어도 5공 때까지는, 아니 김영삼정부 때까지만 해도 방송이 정권의 사유물 비슷했던 것은 다 인정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정권에의 예속문제는 절대적 잣대로도 평가할 수 있겠지만, 과거에 비해, 예를 들어 김영삼정권 시대에 비해서 얼마나 진전이 있었는가로도 평가할 수 있다고 봐요. 만약에 일정한 진전이 있다면 그런 부분은 평가를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해요. 실제로 MBC의 김중배 사장 선임은 과거에 비해서 나아진 사례 아닙니까? 저는 이제까지의 언론개혁 중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사례라고 봅니다. 권한 중에서 제일 큰 것이 인사권인데, 예전에 비해서는 이것의 독립을 강조할 수 있는 쪽으로 바뀌어간다고 보고요. 그리고 얘기가 약간 빗나가는 것 같지만, 정권으로부터의 독립 문제는 이른바 관영매체, 관변 언론단체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합뉴스·대한매일이나 언론재단·방송광고공사 등의 문제도 지적해야지요. 대한매일은 소유구조 자체가 관영이니까 소유주가 바뀌어야겠지만, 사실 연합뉴스는 방송사와 신문사가 주주로 되어 있거든요. 이 주주들이 독립성을 발휘하기만 하면 정부 입김 따위는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언론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재단도 이사들이 기자협회·신문협회 사람인데, 왜 언론재단 이사장은 모두 정치퇴물들이냐는 거죠. 그건 사실 법적인 문제가 아니거든요. 법적으로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독립성을 발휘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언론인으로서 참 쑥스러운 일인데, 언론인들 가운데 누구도 이런 문제는 제기하지 않고 있어요. 이런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 정권이 자꾸 방송을 이용하려 한다고 비판하는데, 적어도 언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정권을 탓하기보다는 언론 스스로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최문순  언론 스스로 방송이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동안은 그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집중공격을 하고 빨갱이로 몰기도 하고요. 정권으로부터의 독립투쟁을 하는 데 최대의 걸림돌이 사실은 우리 언론이었어요.

장호순  그리고 아직도 신문이 방송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죠.

최문순  방송의 콤플렉스가 있죠. 그런데 지금은 청와대 수석이 MBC에 전화하는 등의 행동은 못합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김중배 사장한테는 못해요. KBS 박권상 사장한테도 못해요.

박인규  신문에 오래 몸담으신 선배들은 방송이 어디다 대고 겁없이, 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정부나 기업은 방송의 영향력이 세다는 것을 아니까, 기자회견 한번 하려고 해도 방송카메라가 오지 않으면 안한다면서요. 그런 데서 생기는 묘한 경쟁의식이랄까 갈등의식이 신문과 방송 간에 있는데, 그런 것을 고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런 점에서 동업자 의식이 필요하다고 봐요. 상대를 무조건 감싸주는 동업자 의식이 아니라 상대를 좋은 길로 인도하는 비판적 동업자 의식 말입니다.

김기평  저는 언론사가 현 정부에 이용당하고 있는 예를 들겠습니다. 미디어렙, 즉 방송광고판매대행사인데요. 김중배 사장이 임명되기 전의 MBC 태도는 지금과 다릅니다. 현재 방송광고공사가 있습니다만, 그런 것을 하나 더 만들어서 경쟁체제로 가야 한다는 쪽으로 예전에 방송개혁위원회의 의견이 집약됐습니다. 그런데 MBC가 미디어렙을 하나 더 만들자고 주장하면서 방송광고판매대행사가 모두 3개가 될 뻔했지요. 이것은 KBS MBC SBS 3사가 하나씩 자회사 비슷하게 만들자는 얘기입니다. 실제론 SBS가 먼저 불을 질렀죠. 그 다음에 MBC가 안되겠다 싶어서 나섰는데, 신문들이 미디어렙 문제를 거론하면서 싸움이 붙었고, 이런 상황에서 언론개혁의 신문·방송 간 싸움으로 번진 겁니다. 미디어렙의 경우를 봐도 방송이 광고시장을 뺏으려다 보니까 신문의 무가지를 공격한 거예요. 물론 무가지는 잘못됐습니다. 그런데 방송이 그 영향력있는 화면을 가지고 공격하니까 문제지요. 물론 연구결과를 보면 국민들이 방송을 많이 신뢰하지만, 여론주도층은 신문을 주로 봅니다. 여하튼 신문사에 있는 사람들은 화가 나는 정도가 아니에요. 무리한 미디어렙 증가는 급격한 광고시장의 변화는 물론 신문사의 사이비 기자 양산을 불러온다는 것이 학계 등 전문가들의 우려입니다. 그것이 언론계와 사회, 독자나 시청자를 위해서 좋겠습니까? MBC가 미디어렙 증가에 따른 씨뮬레이션(simulation) 결과도 따지지 않고 이익을 챙기려고 해서 신문과 방송 간에 싸움이 붙었어요. 정부는 신문과 방송 사이의 이런 싸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언론매체의 양대 축이 그렇게 싸우는 것보다는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해야 하는데, 직무유기를 하고 있어요. 경제문제도 있고 남북문제도 있고 국제문제도 있는데, 얼마나 많은 지면과 화면을 낭비하고 있습니까? 이건 죄악이라고 봅니다.

장호순  방송이 디지털씨스템으로 전환하면서 가용전파수가 늘어나고 채널수가 늘어나면서, 과연 공영방송이 필요한가 하는 점도 짚어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전파의 희소성 때문에 국가가 공공성을 담보로 공영방송체제를 운영했습니다. 그 결과 공중파 시절에는 모든 국민들이 똑같이 서너 개의 채널을 봤습니다. 이러한 공영방송체제는 한국사회의 통합성을 키우는 데는 나름대로 기여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방송도 그에 따라 다원화의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의 한국 방송은 그러지 않아요. 오히려 점점 비대해지죠.

독립성이 주어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방송사를 견제할 수 있는 집단이 없어진다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한국처럼 비대해진 방송구조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 방송은 프로그램 제작과 편성, 송출을 방송사가 거의 독점합니다. 이렇게 거대화된 방송씨스템을 나누지 않고는 방송의 독립성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거대신문의 여론 독과점이 문제라면 방송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특히 공중파 방송사의 외주제작자들에 대한 횡포가 심한데, 이는 충분히 지적되지 않고 개선되지도 않고 있어요.

최문순  제가 MBC에서 노조활동을 오랫동안 했지만, 거기서는 탈세할 가능성은 없어요. 계속 감사받고 국회에도 자료를 제출하고 하기 때문에 방송사는 왜 이렇게 액수가 적냐는 얘기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늘상 투명하게 되어 있고, 방송광고공사를 통해서 수입이 정확하게 나오고 지출도 정확하게 나오죠. 내부자 거래 같은 것은 있을 수 있겠지요. KBS는 감사원 감사시 복사지 매수까지 감사를 받습니다. MBC는 감사원 감사를 직접 받지는 않지만 국회의 감사를 받죠.

여러 외주제작사에 대한 횡포는 계속 고쳐나가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근본적인 문제는 일을 너무 빨리 진행시킨다는 것입니다. 방송을 만드는 인력, 예를 들어서 PD 하나를 길러내려면 적어도 10년은 걸립니다. 그런데 지금 길러내는 데는 아무 데도 없어요. 지상파 3사밖에 없다고요. 거기에서 자꾸 길러서 배출해야 하는데, 채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다 보니까 전부 하향 평준화, 저질 평준화가 되어버린 겁니다. 차근차근하게 방송인력도 길러내고, 하드웨어도 발전시키고, 쏘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도록 학교나 제작쎈터도 만들어야 하는데, 갑자기 정부에서 채널 수를 확 늘려놓았어요. 그래서 방송사는 프로그램을 채우지 못하니까 할리우드에서 싸구려 가져오고 말이죠. 저는 그런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순차적으로 개선해가야 한다고 보고요. 대신 지상파 3사는 공영성이 분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대중음악프로그램 같은 것은 외국의 경우 지상파에서 안합니다.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현상인데, 치열한 시청률 경쟁 때문에 생긴 거죠. SBS를 포함해서 지상파 방송은 공공 방송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히하고, 나머지 케이블이나 위성방송은 상업방송을 하는 체제를 짜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기평  한국처럼 이렇게 지상파의 화면을 오락과 쇼로 도배질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방송매체의 오락성을 무시하진 않습니다만, 문제는 시청료를 받는 공영방송마저도 너무 오락성에 치우치고 있다는 것이죠. 또 시청률 경쟁에 내몰리고 쫓기니까 날림공사가 되는 거예요. 전에는 외주제작물의 질이 안 좋았지만 지금은 예전에 비해서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내부의 PD와 외주제작사들이 경쟁을 해야 합니다. 그런 경쟁체제로 가지 않으면 정말 시청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방송이 됩니다.

 

 

기로에 선 한국언론의 미래

 

호순  방송개혁과 방송의 공영성, 독립성에 관한 소중한 얘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제 한국언론의 미래를 전망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최근 들어 한국언론이 내외적으로 위기상황에 이르긴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맡아야 할 역할이 축소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널리즘 본연의 기능은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언론매체의 등장으로 너무나 많은 정보가 유통되는데, 언론은 그중에서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중요하고 재미있는 것을 선별해주어야 합니다. 이때 언론은 정보선별능력을 갖춤으로써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할을 과연 한국언론이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의문이 들어요. 최근 언론개혁과 관련해서 신문이나 방송은 자신들의 입장에 부합하는 정보, 자신들의 견해와 같은 사람들의 주장만 전달하고 있어요. 그건 보수 쪽이 됐든 진보 쪽이 됐든 마찬가지죠. 이러한 편향성은 언론에 대한 신뢰를 급격히 떨어뜨릴 것이고, 국민들로 하여금 언론을 외면토록 만들 것입니다. 이는 또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할 공론장이 없어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입장과 주장을 언론을 통해서 접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언론이 공론장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한국사회가 당면한 지역간의 갈등 해소나 남북간의 화해 등의 문제가 대화를 통해서 해결되기 어려워집니다. 결국 갈등과 반목만 계속되고 화해와 타협이 힘들어지는 거죠. 이제부터라도 언론인들이 사회적 사명감을 가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무조건 ‘안티’만 하고 ‘타도’만 외치며 외면할 것이 아니라,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입장도 경청하고, 비록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지면이나 뉴스에 반영할 수 있는 성숙한 언론이 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김기평  저는 세 가지를 생각하는데, 첫째는 이념의 문제, 둘째는 과연 언론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는 문제, 셋째는 시장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이념의 문제에서, 우리는 그동안 너무 획일주의 아래 살아왔습니다. 전체주의, 그러니까 소수 엘리뜨가 국가를 끌고 가는 거죠. 다양성이나 다원주의라는 것은 없었던 사회예요. 신문도 이제는 이념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정부나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시장의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거죠. 두번째로 한국언론이 국민적 갈등을 해소하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한국언론에 미래가 있겠는가, 이것은 그야말로 기자의 전문성에 달려 있어요. 사주나 경영층은 기자의 전문성을 키우는 데 신경써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의료개혁 보도만 해도, 개혁의 당위성 강조에만 치우친 나머지 정부의 잘못된 정책 선택에 대해 적극적인 제동을 걸지 못했어요. 기자들이 전문적인 지식과 판단력을 갖췄다면 정부의 오류를 그처럼 방치하지 않았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시장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물론 부수경쟁을 떠나야 합니다. 그러면 무가지도 사실 줄어듭니다. 우리 신문 얘기를 해서 뭐하지만, 중앙일보는 무가지를 줄였어요. 한데 무가지 관행을 없애야겠지만 그게 칼로 무 자르듯 되겠습니까? ABC에 중앙일보가 참여했지만 ABC운영과 관련해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도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정부가 나서서 서두르기보다는 절차와 과정을 중시해 좀 지켜봐야 합니다. 

박인규  저는 사실 초년 기자 시절부터 우리나라 언론에 대해서 이런 비유를 많이 했는데요. 아무것도 모르는 대여섯살 먹은 어린애가 엄청나게 큰 칼을 들고 휘두른다는 것입니다. 우리 언론의 지적 수준은 상당히 떨어지는데 정치·사회적 파워는 엄청나거든요. 서울대 장경섭 교수와 박승관 교수의 『한국의 언론권력』 요약글이 『신문과 방송』 7월호에 실렸는데, 이를 보면서 많이 공감했어요. 우리나라 언론의 위기랄까 문제점은 언론이 지나치게 권력화가 된 것이고, 그에 따라서 기능적 과부하가 생겼다는 거예요. 언론의 권력화라는 것이 뭐냐면, 우리나라가 압축적 근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서양의 문물을 학문적인 소화를 거쳐서 들여온 것이 아니라 저널리즘의 형태, 정보의 형태로 들여왔고, 그러다보니까 언론의 역할이 커졌다는 것이죠. 그리고 박정희정권 이래로 사법부와 입법부의 기능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해 그나마 유일하게 비판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던 데가 언론이었다는 거죠. 그래서 사회의 감시·비판세력으로서 언론에 대한 기대가 많았고, 그러다보니까 언론이 상당히 많은 권력을 축적했다는 겁니다. 기능적 과부하란, 사회가 다양화·세계화·전문화됨에 따라 지적 수준이 매우 낮은 언론이 자꾸 여러 문제를 다루다보니까 감당을 못하게 됐다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는 출판이라든가 전문인, 학계가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신문에 보도된 것을 가지고 판단한단 말입니다. 이런 풍토가 우선 바뀌어야 하고요.

또 기자의 질적 제고 문제인데요. 한국언론2000년위원회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신문사의 매출액 중에서 판촉비용이 25%인데 이건 사실 엄청난 것이에요. 그런데 인건비 투자는 20%밖에 안돼요. 미국 경우는 인건비가 45, 50% 된다고 해요. 그러니까 우리는 가용자원의 상당 부분을 사람에 안 쓰고 판촉비용으로 쓴다는 것이죠. 한림대의 정연구 교수가 어느 쎄미나에서 소개한 바에 따르면, 동아일보·조선일보의 판매국장들도 우리나라 신문은 판매를 기사의 질이 아니라 지나치게 마케팅, 즉 판촉에 의존한다고 말했답니다. 그런데 왜 거기서 못 벗어나느냐? 그건 우리 신문시장의 경쟁의 룰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일본은 무가지가 3%인데, 우리는 실상 30% 정도로 추산됩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지금부터 우리 판촉비용은 줄이고 그 돈을 기자를 채용하는 데 쓰자라고 모여서 합의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게 안된다면 누군가 외부에서 그런 룰을 만들어줘야 하는 건데, 어쨌든 그런 게임의 룰을 바꿔보자는 것이죠. 물론 거기에는 정부가 그걸 공정하게 집행한다는 전제가 있어야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이번의 신문고시가 게임의 룰을 판촉이 아니라 신문의 질로 승부하는 쪽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문순  우선 큰 흐름에 대한 인식을 같이했으면 합니다. 저는 백낙청 교수의 주장대로 분단체제가 흔들리는 붕괴과정에서 현재의 상황이 발생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언론은 스스로 돈을 벌려고 해서도 안되고 경쟁논리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언론이 권력의 반대편에 서 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시민사회 편이 아니라 기득권 편에 서 있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라는 데 대해 언론계 안에서 토론이 시작돼야지요. 언론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 못하고 밖으로부터, 정치권력으로부터 개혁대상이라고 욕을 먹고 있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시민단체들이 매우 도덕적이지만, 언론은 도덕성에서 그보다 더 우위에 있어야죠. 공론장을 만들어서 자기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에 대해서 함께 얘기해야 합니다.

장호순  우리 사회가 다원화·다양화되고 있는데, 우리 언론은 아직도 획일성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언론계 내부의 관행 탓도 있지만, 시장과 자본의 압력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봅니다. 언론기업으로서 다양한 요구에 맞춰서 뉴스를 제작·판매하는 것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 수익성이 떨어집니다. 이윤 높은 상품을 제작하다 보니 내용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소비자들인 시청자와 독자가 외면하고 저항하는 거죠. 언론 역시 다른 산업분야와 마찬가지로 경영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변화해야 합니다. 

수요감소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합니다. 1960년대에 10만부 내외였던 한국의 신문들이 1980년 전후해서 어떤 신문들의 경우 거의 10배인 1백만부로 규모가 늘어난 것은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386세대, 즉 학교교육을 받아 신문을 읽을 수 있는 계층이 급격하게 성장한 덕택입니다. 경제성장으로 국내 소비가 늘어나면서 광고시장도 급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독자와 광고시장 모두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특히 지금의 신세대들은 신문을 읽지 않고, 방송뉴스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인터넷에 들어가 자신에게 맞는 뉴스와 정보를 찾습니다.  

신문 구독자의 감소는 단순히 신문사의 고객이 줄어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다양한 이해집단들이 서로 절충하고 합의할 수 있는 씨스템이 약화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아주 피상적으로, 감정적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하죠. 의사가 파업하면 의사는 죽일 놈, 나쁜 놈이라고만 하지, 항생제 남용이나 의료수가 책정과 같은 핵심적 문제는 외면하는 겁니다. 자연 사회적인 효율성이 떨어지고 민주주의가 위협받습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하여

 

이제 토론을 마칠 때가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언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이 언론개혁으로 귀결되려면, 언론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언론의 자유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진정 언론인들도 수용할 수 있고 독자와 시청자들도 수긍할 수 있는 언론개혁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미래지향적인 대안들을 말씀해주시죠.

박인규  저는 솔직히 좀 비관적으로 보는데요. 우리 사회에는 모든 것을 입장 하나 가지고 좋은 놈, 나쁜 놈으로 편가르는 이분법이 횡행하고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신문기사의 깊이를 가지는 것이 제일 큰 관건입니다. 그리고 언론계라는 것이 개혁의 대상이자 주체거든요. 자체적으로 이게 문제구나, 이걸 고쳐야겠구나 하는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한 대안모색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과정으로는 그런 전망이 사실 안 보입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부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자발적인 노력입니다. 개혁이 조·중·동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는 거죠. 모두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룰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1년 뒤에 뭘 하자 하는 식은 곤란하고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언론발전위원회 같은 공론의 장을 정파에 무관하게, 특정사의 이해에 무관하게 만들어보자는 거죠. 그리고 사족을 붙인다면, 언론의 비판기능을 얘기하면서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을 많이 얘기하고 있어요. 권력에 대한 비판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사회의 큰 지배세력으로서 과연 정치권력밖에 없는가 하면 자본이란 게 있거든요. 지금까지의 얘기 중에 거론되지 않은 것이 자본의 영향력입니다. 우리나라 신문처럼 광고에 많이 의존하는 경우도 없고, 그 광고도 전부 대기업 광고죠.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면, 기사에서 삼성 자만 나오면 자기검열들을 합니다. 삼성이 DJ보다 훨씬 무섭습니다. 아실지 모르지만 이미 6,7년 전부터 신문사가 광고주들을 상대로 골프접대를 하고 있습니다. 신문사 기자나 간부들이 대기업 홍보실장, 이사들 골프접대에 동원되고 하는데, 이건 전례가 없는 것입니다. 광고 때문에 그렇죠. 제가 보기에 자본은 한국신문의 앞날을 좌우하는 가장 큰 규정력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자본이라는 새로운 권력에 대해서 신문이 제대로 비판을 하고 있는가, 더 나아가서 IMF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외국자본에 대해서 비판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가, 그런 부분도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기평  저는 언론의 미래모습에 대해서 사실 비관적이지는 않습니다. 몇십년 전에 TV가 등장하면서 신문은 없어질 것이다 했는데 결국 살아남아 있고, 또 최근에 국제언론단체에서 조사한 신문의 증감을 보면 꼭 그렇게 급격하게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올라간 데도 있고 말이죠. 신문의 미래에서 요체는 콘텐츠라고 봅니다. 결국은 요약하고 압축해주고 정보를 가치있게 만드는 핵심은 콘텐츠이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자입니다. 그래서 기자와 콘텐츠는 같이 가고, 이 기능은 계속 유지되리라는 것이죠. 또하나 언론개혁을 얘기할 때 언론발전위원회를 말씀하시는데, 좋습니다. 그러나 정치인이 개입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언론인이 개혁의 대상이냐 주체냐는 논란에서,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실어야 합니다. 언론에 대한 비난만 한다면, 거기에 기자들이나 언론인이 가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언론은 내부적으로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토론과정에서 자신의 얘기를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윗사람이 만들어줘야 하고, 민주주의적인 절차를 거쳐서 윗사람이 결정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부장이나 데스크가 어떻게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알고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겠습니까? 아랫사람이 더 많이 알 수도 있어요. 그런 문화가 형성됐으면 좋겠습니다.

최문순  신문에는 이 사회에 대해 분석·비판하고 깊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정리해주는 아주 귀중한 역할이 있죠. 『뉴욕타임즈』 발행인인 썰즈버거는, 사람들은 『뉴욕타임즈』를 살 때 세상살이의 지침을 사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가슴에 와닿더라고요. 지금 인터넷이 매우 발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텔레비전보다 더 즉흥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굉장히 시청률 지향적입니다. 누가 몇회 접속했느냐는 것이 텔레비전 시청률보다도 더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면이 있고요. 이것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발전해 어쩌면 TV까지도 대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TV보다 신문의 역할이 중요해지는데 신문이 TV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편집 같은 것을 보면 그림 많이 넣으려고 하는 등 자기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우리나라 신문을 보면 전신문이 대중지입니다. 퀄리티 페이퍼(quality paper)나 프레스티지 페이퍼(prestige paper)가 하나도 없어요. 사진 안 쓰는 『르 몽드』지 같은 신문도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촘스키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사적 독재예요. 자본에 기초한 사적 독재가 더 무섭다는 것이지요. 우리 기업의 발전과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도 언론기업을 공영화해나가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우리 언론은 정말 다시 한번 자율을 스스로 높여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합니다.

장호순  지금까지 한국언론은 원래의 자리가 아니라 엉뚱한 곳에 있었습니다. 언론은 시민사회에 뿌리를 두고 정치권력과 자본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은 권력과 자본 쪽에 뿌리를 뻗고, 시민사회는 이윤추구를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했습니다. 한국언론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결국 원래의 위치인 시민사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시민사회로부터 확고한 신뢰를 받는 언론이 되어야 권력의 억압에 저항할 수 있고, 자본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좋은 말씀해주신 토론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정리: 편집부]